(제15강) 큰 권능을 행하는 사도들! (행 5:12-26)
지난 시간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사건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자'이고, 삽비라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지 못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을 소유하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바나바가 교회에 헌신한 일로 인하여 많은 성도들이 그를 존경하게 되자 자신들도 명예욕에 따라 하나님께 서원하고 그 서원한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순간 땅을 팔 때까지는 몰랐는데 현금을 손에 쥐고 보니까 욕심이 생겨 땅을 판 돈 중에서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에게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사실을 알고 책망하자 아나니아의 영혼이 떠나 죽었고, 조금 후에 삽비라도 똑같은 저주가 임하여 두 부부는 한날에 죽고 말았습니다.
▶왜 그들이 그런 저주를 받았습니까?
①성령을 속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성령을 속이면' 이 말은 단순히 그들이 성령을 기만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령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시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막12:31절에서 '성령을 훼방한 죄는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
②재물을 자신들의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눅12장에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 사람이 지닌 재물은 결코 자신 것이 아님을 교훈 했습니다. 인간들은 엄격히 따지면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로서 특히 성도들에게 있어 자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재물 뿐 아니라 몸도 시간도 자녀도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사용하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하시면 우리는 무엇이든지 돌려드려야 합니다.
③교회, 즉 공동체를 속인 죄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입니다. 이는 운명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사람이라도 이기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문제가 발행하게 됩니다. 이 공동체는 오직 서로에 대한 헌신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 속에 이기적인 생각을 품은 자가 들어오게 되면 공동체의 단결은 무너지고 시기와 질투가 생겨 세상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운 수치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제 초대교회는 막 자라나는 어린순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기적인 집단이 들어와 교회를 무력화시킬 우려가 크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예 초장에 이런 삯을 가감이 제거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교회의 '거룩성과 성결성'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는데서 저질러지기 때문입니다. /믿/
이제 오늘 본문은 교회 내에 잘못된 죄의 삯을 잘라내고 교회가 정결케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순결함과 거룩함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동시에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목소개!▶
오늘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12-16절은 '큰 권능을 행하는 사도들!' ②17-32절은 '또 다시 핍박'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핍박 중에서는 주의 성령이 강권하여 주도하는 사건입니다. 오늘은 26절까지만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기에 절대로 거짓이나 위장이나 아부 같은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곳에만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국의 정치가요 청교도 혁명의 지도자인 '올리브 크롬웰' 장군이 황실의 화가를 초청하여 초상화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크롬웰은 그 얼굴에 사마귀들이 많아 보기가 흉했습니다. 그래서 그 화가는 크롬웰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얼굴에 흉터인 사마귀를 그리지 않고 얼굴만 예쁘게 그렸는데 나중에 자신의 얼굴에 사마귀가 없는 초상화를 보았을 때, 그는 기뻐하기보다는 화를 내면서 하는 말이 '이번 것은 집어치우고 내 얼굴을 있는 그대로 그리라'고 불호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큰 사람은 무엇이 달라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분명히 초대 교회의 어두운 일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 성도들은 신앙의 동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모여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12절에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귀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열심히 모여 예배하는 생활을 뜻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모일 때에 힘있는 성도가 되고, 열심히 모이는 성도들이 많아야 힘있는 교회가 되어 집니다. 아무리 교회의 역사가 오래되고 건물과 시설이 훌륭해도 유럽의 교회들처럼 모이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생명이 없는 교회요, 죽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는 살아 움직이는 교회요, 생명력 있는 교회요, 힘있는 교회가 분명합니다.
이제 초대교회가 거짓을 제거하자 하나님께서 큰 능력을 입혀주셔서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막 일어났습니다.
▶12절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본문에 나타난 사도들의 행적은 마치 예수님의 초기 공생애 사역과도 매우 흡사했습니다. 늘 그러했듯이 표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병인들은 건강을 되찾았고, 솔로몬 행각에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또한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 모든 사람들이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라고 했는데 사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어려운 사람, 병든 사람을 일일이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다보니 그 손으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 '민간'이라고 한 것은 당시 교회를 핍박하는 관원들과 구별된 말로 불쌍한 민초들을 가리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교만하여 교회를 대적했는데 평범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 은혜를 받았습니다.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되어 지는 모든 이적을 뜻합니다. 병 고침의 역사, 죄 사함의 역사, 문제해결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병 고침이나 어떤 이적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서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하여 주어진 이 사건들은 그들의 사도 권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당신의 종들을 세우시고 능력과 권능을 주셔서 당신의 일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본 절에서 초대교회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또 하나는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입니다.
솔로몬 행각은 헤롯왕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동편 뜰에 있는데, 벽은 없고 지붕과 기둥만으로 된 방들을 말합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정자 비슷한 것입니다.
성전 동쪽 뜰에는 이런 곳이 많았습니다. 그곳에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들어갈 수 있었기에 다양한 모임이 그 곳에 많이 이루어졌고, 주로 종교적인 가르침을 주고받을 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오늘날과 같은 예배당이 없었기 때문에 솔로몬 행각에 모이곤 했음을 알게 됩니다. 솔로몬 행각은 초대 교회의 일종의 집회 장소였습니다.
①믿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모여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도가 모인다는 것은 성별의 표식입니다. 곧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표식입니다.
②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인 것'입니다. 이것은 살아 움직이는 초대교회의 특색입니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했습니다(1:14). 또 2:46절에 보면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여 날마다 성전에 모이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 높여 찬양했습니다.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특징 중에 하나는 '표적과 기사와 함께 성도들의 일치된 마음'입니다. 초대교회에 강력하게 역사 하셨던 성령의 역사는 믿는 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일치시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성령은 성도들로 하여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하고, 표적과 이적의 체험을 통하여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요17:22절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참된 일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믿음과 참된 헌신, 거듭난 삶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영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교회는 일치가 됩니다. 그럴 때 교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한국교회는 일치하고는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도들의 종류를 12로 분석해 놓았습니다.
▶감투교인: 교회의 감투를 안 주면 안 나오는 교인 ▶인력거교인: 심방을 가서 끌어내야만 겨우 나오는 교인 ▶핑계교인: 이렇게 저렇게 항상 핑계하며 잘 빠지는 교인 ▶오락교인: 친목회 운동경기 야유회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교인 ▶시험 채점관 교인: 설교비평과 남의 흠잡기에 우수한 교인 ▶유람선교인: 이 교회, 저 교회를 왔다갔다하는 교인 ▶벙어리교인: 믿음생활을 오래해도 기도 못하는 교인 ▶광고교인: 사업적으로 교회에 다니는 교인 ▶묵상교인: 예배를 시작하면 조는 교인 ▶국회의원교인: 한 가정에 대표로 혼자 나오는 교인 ▶가시교인: 교회의 가시노릇이나 하는 파괴적인 교인 ▶장례위원교인: 부모의 장례식 예비를 위해 나오는 교인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③하나님의 성전에서 모였습니다. '솔로몬의 행각'은 이전에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된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곳에서 다시금 사도들과 성도들이 모여 말씀을 전하고 듣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대적들의 감시가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주의 능력이 함께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표적과 기사' 이것이 초대교회의 특색입니다. 사도들이 말씀을 전하고 손을 얹고 기도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에는 목마른 인생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표적과 기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소유한 자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의 증거입니다. 교회는 교리도 중요하고, 법도도 중요하고, 조직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여러분, 정녕 하나님을 소유하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오늘도 성림의 제단에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믿/할/
▶13절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일반 불신자들은 교회를 향하여 오해하거나 힐난하지 않고 오히려 '이 일을 듣는 자들이 다 크게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또 본문에서는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 나머지'라는 말은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상종한다.'는 말의 원어의 뜻은 '밀착시키다, 붙어 있다, 연합하다'라는 뜻입니다. 불신자들과 붙어 있다거나 불신자들과 밀착되어 있다거나 불신자들과 연합한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에는 그러한 신자들이 없다고 하는 뜻입니다.
불신자와 밀착하고, 불신자들과 동업하고, 불신자들과 연합하는 것, 이것이 바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옛날 로마 사람들의 가장 무서운 형벌 중의 하나가 산사람을 죽은 송장과 함께 묶어 놓는 형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시체의 독이 산사람에게 옮겨져 죽도록 한 사형 방법이었습니다.
불신자와 연합해서, 밀착해서 사는 것, 결혼해서 사는 것은 성도의 영혼에 이처럼 치명적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불신자와는 결코 멍에를 같이 하지 마시고, 믿지 아니하는 여러분의 가족들은 최선을 다해서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불신자들과 연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신자들이 성도들을 칭찬했습니다. 불신자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초대 교회 성도들은 바르고 의롭게 살고, 서로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자기들과는 달리 보였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날로 부흥하고 성장하고 또 아무나 사도들과 같이 동등한 입장에 서려고 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무슨 권세로 이러느냐? 당신이 무엇인데 사람을 이렇게 죽일 수 있느냐?' 따지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은 칭송했습니다. 대단한 신뢰 심과 존경심으로 좋은 인상을 뜻합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멸시했고, 대적했으며, 사도들을 무시하고, 그들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질시와 비방에도 불구하고 사도들과 성도들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은 높아만 갔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참모습이요, 성도의 참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대형사고 나는 곳에는 항상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송은커녕 비난을 받는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초대교회가 칭송을 받게 된 주된 원인은 '정직함으로 헌신'하는데 있었으며 '경건한 삶이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성도의 의로운 헌신만큼 좋은 전도도 없습니다.
주님은 마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4절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교회가 더욱 크게 부흥되어 갔습니다. 병 고침을 받고자 나온 것이 아니요, 물질의 축복을 받고자 나온 것도 아닙니다. 순수하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자 나온 무리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오순절에 이미 3천명이 회개했고, 그 후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았을 때, 5천명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남녀의 큰 무리가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는 새로운 입교 자를 말합니다. 진정한 교회의 부흥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성도들의 수가 늘 확산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예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입니다. 우리 성림교회도 본문처럼 '남녀의 큰 무리가' 주님을 영접하는 귀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아멘!/
▶15절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많은 병자들은 베드로의 그림자를 통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마9:20절 이하에 보면 혈루증의 여인은 예수님의 뒤에 가서 옷깃만을 스쳤는데도 깨끗하게 치료받았습니다. 바울도 그의 손수건으로 병든 자를 일으켜 세웠습니다(행19:1-12).
놀라운 역사 아닙니까? 이 역사가 그 당시 초대교회 역사로 끝나고 말았습니까?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권능은 어제나 오늘도 동일하십니다. /믿/
'심지어'란 말은 그 당시 상황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입니다. 또 '홀'이란 말은 '나만'이라는 뜻으로 이는 병자들이 최소한 베드로의 그림자에라도 덮이려는 간절한 기대를 표현한 말입니다.
여기에 온 사람들은 아주 절망적인 그런 사람들입니다. 병든 사람을 매어왔고, 침대와 요 위에 누워있는 존재였으니 그냥 병이 난 정도가 아닙니다. 일어나지도 못하는 큰 병에 걸린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열심을 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은 침상 채 매고 나와서 사도들의 그림자라도 스치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도 축복하실 때 항상 믿음을 칭찬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워하였느니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아멘!/
왜 베드로의 소문이 이렇게 많이 났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베드로 앞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아! 굉장한 사람이구나' 하고 모여든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안수 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안수 기도 받기가 힘이 들자 베드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환자들을 눕혀 놓았습니다. 이는 베드로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고침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실제로 베드로의 그림자에 능력이 있어 치료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신다는 그들의 믿음을 보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에게는 똑같은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
▶'거북이 신자'란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새는 먹지 않고 9일을 산다합니다. 개는 먹지 않고 20일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먹지 않고 자그마치 500일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거북이 신자란 말씀과 은혜 없이 사는 성도를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거북이 신자가 아니라 힘차게 창공을 솟아오르는 독수리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6절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예루살렘 근방에 있는 허다한 무리들이 모였습니다. 그러니까 서울 장안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인천, 부평, 안양, 수원, 의정부 등지에서 많이들 모였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초대교회는 예루살렘 주변으로 복음이 퍼져 나가게 된 것입니다.
본 절은 복음의 능력이 예루살렘에서 서서히 그 주변으로 전파되기 시작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리라고 한 주님의 말씀이 점차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나타내어 줍니다. 당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방해공작이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모여든 것은 구원의 능력이 주님께 있음이 입증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이런 능력이 안 나왔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에게만 이 능력이 나온 것입니다.
병든 사람도 낳았고, 더러운 귀신도 소리치며 떠나갔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사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다 나음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다 나음을 얻으니라'는 말은 어떤 종류의 질병이든지 사도들로 말미암아 못 고치는 병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또 이것은 영육의 쾌유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막16: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표적과 기사가 복음 증거의 주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귀하신 이름만이 증거되는 통로로 이런 표적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은 후에 교회는 날로 정화되고 참으로 부패를 방지하는 거룩한 성도의 집단으로 부흥시켜주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권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권징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교회에 권징의 두려움이 있어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조심하며 신앙생활을 이루게 됩니다.
▶이제 17절부터는 또다시 핍박이 전개됩니다.
▶17-18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여기 나오는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이미 사탄의 도구입니다. 그들에게는 어떤 능력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왜 그들이 또다시 사도들을 핍박했습니까?
①교회가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②교회가 날마다 부흥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③사도들의 능력 앞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진실로 깨달았다면 회개하고 무릎을 꿇었어야 하는데 그들의 마음속에는 '시기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다 마음의 시기가 가득하여" 이들이 누구입니까? 대제사장, 즉 안나스인데 그 당시 종교 최고지도자입니다. 그리고 사두개파 당파들입니다. 그들은 '영도, 부활도, 천사도, 천국도, 믿지 않는 종파'입니다.
인간이란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시기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시기심은 사탄이 제일 먼저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죽인 사건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열납하셨는데 자신의 제사는 열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때 사탄이 가인에게 시기심을 유발시켜 친동생인 아벨을 돌로 쳐죽이는 최초의 살인사건이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예루살렘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두개파들은 그 당시 굉장한 지식층에 있던 무리였습니다. 굉장히 과학적인 논리를 주장하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영도 부활도 천사도 천국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이 왜 시기심이 났습니까? 불학 무식한 베드로가 설교를 하니까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온 것입니다. 그들을 가만히 두었다가는 자신들의 입지가 땅으로 떨어질까 봐 두려워서 시기심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아마도 그들 양심에는 가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 때 체포와 투옥은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즐겨 쓰는 협박과 공갈과 구속의 도구였습니다. 그들은 툭하면 잡아다가 투옥시키고 공갈 협박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19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참으로 스릴 만점의 신비한 사건입니다. 주의 사자가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이끌어 냈습니다. 22-23절을 보면 사도들이 감옥에서 나왔지만 옥문은 그대로 잠겨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분명히 베드로의 탈옥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주의사자'는 하나님께서 구령운동을 위해 쓰시는 천사들입니다. '주의사자'는 주님이 보내신 사자입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는 언제나 주의 사자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 어려움이 있을 때, 더욱 주의 사자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믿/
왕하 6장을 보면 아람의 군대가 엘리사를 치기 위해 수많은 병역으로 에워쌌습니다.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이 모습을 보고 간담이 싸늘해져서 엘리사에게 외쳤습니다.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그러나 엘리사는 태연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는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리고 게하시의 눈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게하시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엄청난 수의 불 말과 불 병거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불신으로 어두워진 눈에는 세상의 세력이 그렇게 위대하고 당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조명을 받은 사람은 오늘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주의사자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 ▶사도들을 옥문에서 인도하여 낸 천사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20절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전하라" 주의 사자, 그러니까 천사의 음성은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①성전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성도들이 날마다 모이는 생명의 광장입니다.
②그 가운데 서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공개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말입니다.
③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④복음전파의 대상은 백성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파가 아닌 일반 서민 대중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라하고 했습니다.
옥중에 갇혀있는 사도들은 단순히 해방시켜 준 것이 아닙니다. 사명을 받은 자는 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왜 살려주고 계시는지 아십니까? 우리로 하여금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우리를 살려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하여는 '예배'의 사명이 있고, 세상을 향하여는 '전도'의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믿/
▶21절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그들은 지체하거나 서로 격론을 벌이지 않고 즉시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즉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그 곳으로 모이기를 시작하자마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누가 그들에게 핍박과 방해와 체포하려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내일' 이런 소리가 마음속에 들리면 성령 역사를 방해하는 악령의 속삭임으로 여기시고 우리 모두 즉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
우리는 성전에서의 새벽예배를 존중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새벽미명에 나가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은 기도하는 시간일 뿐 아니라 영혼의 양식을 섭취하는 능력을 받는 시간이기도합니다.
새벽에 옥문이 열리고 사도들이 성전으로 왔습니다. 우리도 죽음의 문, 고통의 문, 슬픔과 근심의 문, 온갖 사슬을 풀어버리고 주님을 찾아 영혼의 양식을 얻으려 성전으로 모여야 합니다.
한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산헤드린 공회를 열어 사도들을 처벌하려고 서둘러 대고 있습니다. 여기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측근들이 모였다는 말이요, '공회'는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만 소집됩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까지 모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국이 혼란해지면 대통령이 원로들을 모셔다가 상의합니다. 그러니까 '시국대책회의, 국정자문회의'가 열린 것입니다. 분위기가 삼엄하고 급박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한 것입니다.
▶22-23절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관속들이 옥에 가보니 옥문은 든든히 잠겨있고, 지키는 사람도 문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옥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관속들은 당황하여 급히 돌아가 그대로 보고했습니다. 천사들이 사도들을 옥에서 끌어낼 때에 지키는 사람들도 알지 못하도록 졸게 했는지 모릅니다.
▶24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 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도들이 기적적으로 탈출한 것을 보고 받자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의혹'했다고 했습니다. 곧 당황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어찌될까?'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신비한 기적의 연속 앞에 허탈감과 공포와 불안이 휩싸여 '이 일이 어찌될까?' 당황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또다시 기발한 소식이 저들의 고막을 노크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세상에서 들어보아도 처음 듣는 소리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감옥에 가두었는데 그들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문은 단단히 잠겨있는데, 보초를 서는 사람들이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귀신같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사건은 사람 사회에서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어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쯤 되었으면 사도들을 죽일 생각이나 위협할 생각을 포기하고, 잘못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입니다.
▶25절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밖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감옥에 가두었던 예수의 사도들이 지금 성전에 서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탈출한 죄수들은 의례히 다시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여 피신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결코 숨어서 피신하지 않았습니다. 떳떳하게 그리고 능력 있게 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할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26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일러라."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을 풀어서 사도들을 다시 잡아왔지만 강제로 못하는 것은 백성들이 오히려 자기들을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잡아오긴 왔는데 묶어서 '따라와'하고 강압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갑시다'하고 붙잡아 왔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강제로 잡아 왔다가는 백성들이 돌로 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의 여론이 무서웠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미 대세가 기울어졌습니다. 사도들에게 큰 은혜를 받은 백성들이 사도들을 잡아을 보고 그냥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대중이 분노하면 봇물이 터진 것 같아서 감당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 4·19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사도들이 공회로 다시 끌려 왔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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