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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강) 일곱 집사를 세운 초대교회! (행 6:1-7)

by 【고동엽】 2022. 3. 10.

(제17강) 일곱 집사를 세운 초대교회! (행 6:1-7)

 

지구상에는 많은 단체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단체들 가운데 교회처럼 외부로부터 많은 비판과 공격을 받는 단체도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 많은 비판과 공격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계속 성장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 초대교회는 엄청난 박해와 핍박에도 불구하고 '제자가 더 많아'졌음을 본문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왜 교회가 그 엄청난 핍박과 박해 속에서 든든히 서 갈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몸 된 교회를 보호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 예수님께서 친히 마16:1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교회를 핍박을 하고 박해를 해도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교회 편에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모택동은 문화혁명을 통하여 중국대륙에서 철저한 교회 말살 정책을 썼습니다. 모든 선교사가 추방되었고, 모든 교회가 문을 닫았고, 모든 성직자가 성직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랍게도 오늘날 중국대륙에는 1억이 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중국 인구의 10%이상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비공식 집계가 나왔습니다.
지상에 세워진 교회는 문을 닫았지만 그 교회가 지하로 숨어들어 더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똘똘 뭉쳤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산권 선교를 전문으로 하는 한 선교단체의 보고에 의하면 오늘날 북한의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교회는 평양의 한 모퉁이에 있는 봉수교회 하나밖에 없지만 아직도 지하교회는 30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날 수 없는 교인들입니다. 행4-5장은 초대교회의 핍박 장입니다. 그런데 6장에 넘어오면서 교회가 체계적으로 든든히 서가고 일곱 집사를 세워 사도들과 업무를 분담하고, 또 6장부터 예루살렘교회는 세계로 뻗어 가는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일곱 집사 중에 아주 충성된 스데반 집사가 순교함으로 많은 사람들은 흩어졌고, 그들이 곳곳에서 선교의 불을 지피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6장부터는 예루살렘 교회는 더 부흥되어지고 세계 선교를 문을 여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목소개!▶

 

▶1절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유대인들은 원래 유랑하는 약소민족이었습니다. 히브리란 어원은 '하비루'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비루'란 '유랑자, 방랑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의 원래의 직업은 목축업이었기에 한 곳에 정착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런 민족을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비밀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의를 자랑치 못하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십자가의 미련함으로 구원 사역을 이루신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입니다.
여기 '그 때에'는 어느 때입니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의 핍박으로 인하여 초대교회 사도들이 두 번째 감옥에 들어가 공회의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의 최고 지도자 가말리엘의 변호로 사도들이 채찍으로 때리고 내어주면서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하면서 내어주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고도 도리어 기뻐하면서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를 가르치고, 예수를 전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제자가 수가 더 많아'졌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제자'라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마태, 마가, 누가, 공관복음에서 160회, 요한복음에서는 78회, 사도행전에서는 28회가 사용되는 단어로서 당시 12제자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될 사람들까지 지칭하는 단어가 된 것입니다.
랜스키 주경학자에 의하면 당시 성도의 수는 약 2만에서 2만5천 정도 된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불과 1,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 정도로 부흥되었다는 것이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장하면서 부작용도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사람이 살아가는 곳, 인생의 현장에는 언제 어디서나 이런 부조화의 흔적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공평과 평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는 완전한 공평의 사회, 평등한 삶의 현장을 찾기는 힘이 듭니다.
일부 성도들 가운데 보면 교회에 불만을 품고 이 교회, 저 교회를 옮겨 다니는 철새 교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상 교회는 완전한 곳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인생들의 모임 체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상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주님의 형상을 바라보며 부단히 노력하고 전진해야 합니다.
'새로운 인격, 변화된 인격'이 되기까지 깨어 기도하며 자기를 쳐 복종시키는 일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할/
그런데 여기 초대교회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왔었는데 그 중에서 나이 많고, 의지할 데 없는 가난하고 생활방도가 없는 불쌍한 과부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들에게 먹을 것과 옷가지 등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러한 선행이 있는 곳에는 불평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때도 헬라 파 유대인들이 공평하지 못하다고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헬라 파 유대인들과 히브리 파 유대인들에 대해 잠시 알아보겠습니다. '헬라 파 유대인들'이란 각 처에 흩어져 살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디아스포라'출신의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히브리 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적어도 약간의 헬라어를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어는 당시 국제 통용어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파 유대인은 아람 어를 썼습니다. 그리고 선민의식이 대단했습니다. 반면 헬라 파 유대인들은 혼합적인 영향력에 의해 개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유대인들 간에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배경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는 과부의 계급을 둔 제도가 있었습니다.
과부는 흔히 젊은 과부(딤전5:9-14)와 늙은 과부로 나누어지는데 젊은 과부에게는 불필요한 험담이나 죄를 피하기 위하여 재혼을 하도록 권면했고(고전7:29-40), 늙은 과부에게는 특별보호조치를 취했습니다. 즉 교회의 공동비용으로 생활하면서 기도와 봉사와 자선을 베푸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행9:41/딤전3:3-16).
▶그 당시 오늘날 구역헌금에 해당하는 '광주리 기금, 쟁반기금'의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광주리 기금이란 정기 구호금으로 매 금요일 아침에 돈이나 물품을 거두어 하루 두 끼씩 계산하며 그 날 분배하였고, 쟁반기금이란 긴급 구제 금으로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집집마다 다니면서 모은 헌금입니다.
당시 로마 사람들은 하루에 4끼씩 먹었고, 헬라 사람들은 3끼, 유대 사람들은 2끼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원망의 발달은 구호금을 균형 있게 분배하지 못한데서 온 것입니다. 즉, 헬라 파 유대인들이 '자기네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지고 있다'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어째든 '잘못된 원망이고, 정당한 원망'이건 간에 교회 안에 불평과 원망이 생겨난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명예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사랑의 공동체에서 '화목과 일치와 협동'이 힘이고 능력입니다. /아멘!/
유대인들의 가장 훌륭한 특징 중 하나는 가난한 이웃에 대한 책임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네 가난한 이웃이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것을 결코 내버려두는 법이 없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초대교회 당시에 유대인 사회에는 가나한 이웃을 위한 아름다운 관습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매주 금요일이 되면 아침부터 공식적인 수납 자들이 시장과 가게와 가정집을 돌아다니며 가난한 이들에게 줄 돈이나 옷이나 먹을 것을 거듭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다른 책임자들이 거둔 것을 가지고 돌아다니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루에 두 끼씩 먹는 것으로 계산해서 한 주일동안 14끼니를 먹을 수 있는 양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쿱바'라고 합니다. '쿱바'는 '바구니, 광주리'란 뜻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기적으로 하는 '쿱바' 이외에 갑자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불우한 이웃을 돕는 쟁반 구제헌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이 유대인의 아름다운 구제 관습을 그대로 계승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제 때문에 교회가 원망에 휩싸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원망은 하나님이 슬퍼하시고 사단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10:10절에서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 했으며, 약5:9절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이 원망의 문제를 풀기 위해 12사도가 주체가 되어 공동회의를 소집하게 됩니다.

 

▶2절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모든 제자들이 모여서 의논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본문은 제자들이 교회 사업상의 문제로 모인 최초의 기록으로서 여기서 그들은 교회의 소유물을 다스릴 새 기구를 만들기로 합의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일곱 집사'의 임명동기가 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온전치 못함을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하나님 말씀 전하는 것을 등한히 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도들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정확하게 문제를 잡아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가끔 우리의 현주소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는 바르지도 못하고 완벽하지도 않습니다. 피아노를 오래 치면 줄이 늘어나서 원래의 음가를 잃어버리듯이 사람도 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시험이 오고 문제가 꼬이고 복잡해집니다. 그럴 때는 신앙과 삶의 표준이 되는 말씀의 근원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신앙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신앙은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꼬이면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풀립니다. 그것이 정답입니다.
교회에서 구제도 귀하고, 자선사업도 귀하지만 교회에서 제일 우선순위는 바로 말씀선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만이 죽어있는 사람들이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생활의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믿음이 성장할 수가 있고, 바르게 봉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서 원망이 터져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교회의 최고의 권위는 바로 말씀 선포의 권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제대로 선포하면 언젠가는 삶이 바뀌고 인격이 변하고 모습이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최대의 관심은 말씀선포에 있었습니다.
마28: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들은 바르게 깨달았습니다.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궤가 교회에서 어떤 저속한 일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12사도들에게 있어 공궤하는 일보다 복음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질의 문제였습니다. 사도들이 부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봉사할 수 있는 집사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 행정이 처음부터 민주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선거는 교인들에 의해서 실시되었고, 선출된 일곱 집사는 사도들에 의하여 안수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직책 사이에 차이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직은 '가르치는 일과 말씀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집사 직은 '공궤를 일삼는 것' 즉 재정을 관리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봉사 직'이었습니다.
3절에서는 초대교회가 일곱 집사를 세울 때, 기준과 그 자격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무나 아무렇게나 세운 것이 나이고 엄격한 자격 기준을 정하고 거기에 맞는 사람을 세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과 그의 몸 된 교회를 맡길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3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대기업의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조건과 원칙이 있습니다. 대학 졸업자나 예정자, 만30세 미만인자, 병역의무를 필한 자, 건강한 자, 성실한 자를 기준으로 합니다. 그리고 용모도 봅니다. 직업관도 봅니다. 또 운동권은 아니었나? 확인합니다. 아무나 뽑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위해 일할 사람들과 교회를 섬길 사람들을 뽑는 일을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습니다.
▶3-5절을 보면 '성령 충만한 사람, 지혜가 충만한 사람, 칭찬 듣는 사람, 믿음이 충만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그러니까 집사 자격의 세 가지 원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①성령 충만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롬8: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세상 적인 학식과 높은 지위와 많은 물질이 있다 할지라도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렘17:9절에 보면 성령을 의지하지 않은 마음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행2:4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 충만하다는 말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그 성령에게 인도를 받는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의 마음은 마귀에게 지배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그 마음과 성품을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
②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여기서 지혜란 인간의 지혜가 아닌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 받은 결과로서 영적인 지혜가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 일은 머리 좋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돈 많은 사람이 교회를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적으로 지위가 높다고 해서 교회의 일을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철저하게 성령과 말씀으로, 믿음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야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세상 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여기 '지혜가 충만하다'는 말씀도 인간적인 지식이나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아 얻게되는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사람과 그 뜻에 순종하려는 사람이요, 모든 일을 복음 적인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리스도적인의 가치로 판단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성령은 지혜의 영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지혜는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고 돌보고 아끼고 양육하는 지혜입니다. 약3:17-18절에 보면 지혜의 사람의 모습이 나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사회 생활하는 데는 지식보다 지혜가 더 소중합니다. 그런데 세상 지혜만 가지고는 교회를 섬길 수가 없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지혜롭다는 것이 꾀를 피우는데 사용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혜만 가진 사람은 잔꾀를 부리고 문제를 만들 가능성이 있지만 성령의 지혜를 가진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든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일꾼 될 자격이 없습니다.
일은 지혜롭게 처리하는 것 같은데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순전히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만을 동원하는 사람도 교회 일꾼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이런 사람은 문제를 과대 평가하여 작은 일은 큰일로 비화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도 일꾼 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한 일을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 성령의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교회 일꾼 될 자격이 있습니다. /믿/
③칭찬 듣는 사람을 뽑았습니다.
칭찬은 정당한 평가를 의미합니다. 여기 칭찬 받을만한 사람이란 훌륭한 인격과 신앙을 갖춘 사람으로서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고 덕이 되는 그런 덕망의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협동적인 사람이 칭찬을 받습니다. 인간성이 결여되었거나 봉사정신이 없는 사람은 교회 일꾼으로서 적격자가 아닙니다.

▶바울은 딤전3:8-13절에서 집사에 자격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⑴단정한 사람, ⑵일구이언을 하지 않는 사람, ⑶술, 담배를 안 하는 사람, ⑷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사람, ⑸깨끗한 양심, ⑹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 ⑺모든 일에 충성된 자입니다.
칭찬은 정당한 평가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가장 믿음이 좋다든지, 옳게 살고 있다든지, 내가 믿음 안에 최선을 다하고 충성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주변에서 어떻게 평가하느냐?'입니다. /아멘!/
'제가 뭘 했나요?' 하더라도 '아닙니다. 위대한 일을 했습니다.' 하는 칭찬 받은 사람이 본문이 말하는 칭찬입니다. '내가 다 해냈다. 나 아니면 어림도 없지,' 라고 기염을 토하지만 주위에서 '지가 뭘 했다고' 라고 빈정댄다면 그 사람은 칭찬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칭찬이 결과가 되어야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칭찬 받기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고 좋은 일을 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칭찬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칭찬이 목적이 되면 눈가림만 하더라도 칭찬만 받겠다는 발상이 나옵니다.
본문의 교회 집사 자격의 기준을 지탄받고 손가락질 당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칭찬 받는 그런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
④믿음이 충만한 사람을 뽑았습니다.
믿음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성립되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성립되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눈으로 본다든지 코로 냄새를 맡는다든지, 손가락으로 만지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믿음은 형이상학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믿음은 성장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믿음은 자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혼자서는 자랄 수 없습니다. 내 믿음을 자라도록 도와줄 만한 좋은 교회와 좋은 지도자와 좋은 이웃을 만나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과의 관계는 믿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히11: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믿음이 없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 일을 하다보면 부작용이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일곱을 택하라" 집사의 숫자를 굳이 일곱으로 정한 이유에 대하여 다양한 견해가 있습니다.
①유대인의 경우 7이라는 숫자는 완전수, 성수로 보기 때문입니다.
②유대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지역 책임자들이 일곱 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예루살렘 교회가 그 유래를 따른 것입니다.
③유대의 관습상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인 위원회를 구성하는데 그 관습을 따른 것입니다.
이 밖에도 예루살렘 안에는 일곱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7은 완전수로서 실제적으로 편리한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충성스럽고 지혜로운 일꾼의 자격표준'을 몇 가지로 분류해 놓은 것이 있어 소개합니다.
⑴특급일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깨닫고 일하는 사람.
⑵1급일꾼: 눈치가 보이면 곧 알아차리고 즉시 일하는 사람.
⑶2급일꾼: 남이 이야기해주니까 아차 하고 즉시 일하는 사람.
⑷3급일꾼: 주어진 범위 안에서만 일하는 사람.
⑸4급일꾼: 재차 지시를 받고서야 일하는 사람.
⑹쓸모 없는 일꾼: 두세 번 책망 받고서야 겨우 움직이는 사람.
⑺위험한 일꾼: 누가 뭐라 하든 자기 고집, 제멋대로 하는 사람.
⑻가장 불쌍한 일꾼: 일할 능력이 있으면서 인색함과 게으름과 무관심으로 자기 개발을 하지 못하는 사람.
⑼가장 불행한 일꾼: 일할 분위기를 만들지 않고 불평불만으로 일을 그르치는 사람이라고 분류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4절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여기서 평신도들과 목회자들의 기본적인 사역의 방향이 제시됩니다. 평신도 지도자들은 교회 안에 여러 봉사를 담당하는 것이고, 주의 종은 오직 기도와 말씀 준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은 기도를 통하여 말씀선포를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집중적으로 훈련시키는 것이 바로 기도훈련과 말씀 공부였습니다.
여기 '기도'란 개인 '기도뿐만 아니라 기도회 같은 기독교 공동체의 공동예배'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본문은 말씀과 함께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말씀 앞에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또 말씀을 전파할 때,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은 기도 없이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기도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 없이 말씀은 살아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할/

 

▶5-6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모든 회중은 사도들의 제의를 기쁘게 환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만하고 구제하는 일은 집사들에게 맡김으로 하나님의 복음 사업이 더 잘 되어 나갔기 때문입니다.
여기 일곱 집사는 다 안수집사입니다. 교인들이 '택하였다'는 것은 '뽑았다는 말이요, 선출했다는 뜻이고, 투표했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유래해서 교회와 공동회의에서 집사를 선출하고 장로를 선출하는 제도가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제자들이 그 결정과 임명권을 사도들 앞에 두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은 그들을 일일이 안수했습니다. 여기서 사도들이 안수한 것은 민27장에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자신의 후계자를 세운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일곱 집사의 이름이 다 헬라이름으로 되어 있으나 모두 헬라 파 유대인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당시에는 팔레스틴의 유대인들도 헬라 이름을 가진 자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일곱 집사'를 알아보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곱 집사가 다 재정을 담당하고 구제하는 일만 한 것이 아닙니다.
⑴'스데반'은 집사의 모델입니다. 베드로가 사도의 모델인 것처럼 스데반은 집사의 모델이요 일곱 집사의 대표입니다. 그는 순교의 제물이 되어 복음을 이방으로 수출한 장본인입니다.
⑵'빌립'은 사마리아와 가이샤라에까지 가서 전도했습니다. 그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를 가진 내시에게 세례를 줌으로 아프리카 복음에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행8:38).
⑶'브로고로'는 사도요한을 도와서 요한복음을 대필했습니다.
⑷'니가노르'는 주님의 초기 사역에 부름을 받아 70인 제자 중에 한 사람으로서 봉사한 자입니다.
⑸'디몬'은 후일에 보스트라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화형으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⑹'바메나'는 트라야누스 황제 때 빌립보지역에서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⑺'니골라'는 유대교에서 입교한 안디옥 사람입니다. 그런데 '니골라'라는 사람은 후에 '니골라당'을 세운 이단자가 되었다고 보는 학자가 있습니다. 계2:15절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대부분의 학자들이 '니골라'가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12제자 중에도 가룟유다가 나왔고, 일곱 집사 중에서도 니골라가 나왔습니다.
사도들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안수한 것은 구약 시대 제사장 임명 시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기서 안수의 의미는 어떠한가?
⑴이 직분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신적인 기원'을 가집니다. 지상에 최초로 집사의 직분이 공식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⑵직분을 감당함에 있어서 능력이 임하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딤후1:6절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⑶이 직분을 위해 목숨을 받칠 사명자의 명세입니다. 행20:24절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일꾼을 뽑은 후 교회는 더욱 더 강한 힘을 얻어서 크게 왕성하게 되었습니다. 일꾼을 뽑은 후 일꾼들로 인해 교회가 더욱 은혜가 있고 더욱 하나가 되어 주의 종을 도와 교회 성장과 발전에 이바지 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에 일꾼을 세우는 목적입니다. /아멘!/
초대교회는 일꾼을 뽑은 후에 교회는 더 평안해졌습니다. 그 어느 한 사람도 이에 대해 불평 불만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일꾼을 세우는 것은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결국은 하나님께서 세우는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세움을 받은 사람은 생명을 바쳐 교회와 주님을 섬겼고 세움 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감사하며 주의 종과 뽑힌 일꾼과 하나가 되어 더욱 충성하였습니다.
▶사도들에 의해 집사제도가 시작되고 나서 ①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왕성하여 졌습니다. 이는 사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염했기 때문입니다.
②더더욱 교회는 부흥되어 졌습니다.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한국교회가 이렇게 성장해야 하고 우리 성림교회가 이런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할/
③허다한 제사장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귀의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핍박하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초대교회에 일어났습니다. /할/
초대교회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교회의 모델입니다. 우리 모두 좋은 성도, 좋은 일꾼이 되어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사랑 받고 사람들에게 좋은 교회로 소문나는 복된 교회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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