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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예수의 증인이 되자! (행 1:6-8)

by 【고동엽】 2022. 3. 10.

《제2강》 예수의 증인이 되자! (행 1:6-8)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발자취를 자세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이야기' 또는 '사도들의 전도기록'이란 뜻이 있습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는 '복음을 들고 세상에 나가 전하라'는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의 최후의 명령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제일 중요한 말은 '증인'입니다. 사도행전 여기저기에 "우리는 증인이다.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증인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주제가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입니다.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그의 저서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라는 책에서 '자신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해마다 가지는 전도 프로그램에 14년 동안 동참하여 한해에 평균 10가정씩 140세대를 전도하고 자랑스럽게 여겨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1966년 주지사 입후보 시에 선거운동 3개월 동안 악수를 나눈 사람이 30만 명을 헤아리게 되자 하나님을 위해서는 14년 동안 겨우 140가정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이 땅위에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교회로써 해야 할 가장 큰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혼 구원'하는 일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으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길과 산울가로 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십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써라"고 하십니다.
이상의 말씀들을 보면 전도하라는 말씀은 언제나 명령형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주님의 부탁입니다. 명령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주님의 명령 앞에서 모든 성도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제목소개!▶

 

우리는 지난 시간에 서론적으로 1-5절까지를 상고해 보았습니다. 4-5절 사이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한 몇 가지 명령이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둘째,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보혜사 성령님이십니다. 이 성경은 구약의 요엘(욜2:28) 선지자가 이미 예언했으며, 예수님도 요14:1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는 '성령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 '세례를 받는다.'는 말은 '담근다, 적신다, 씻는다.'는 뜻으로 성령 속에 '잠기고 머물러 물 드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영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공기 속에 잠겨 살듯이, 고기가 물 속에 잠겨 살듯이, 말씀 속에, 성령 안에서 잠겨 사는 상태를 가리켜 '성령 세례를 받고'의 의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또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말씀만을 주십니다. 부모는 자녀의 필요를 알고 있습니다. 부모의 능력이 미치는 한 자녀들이 필요한 것은 모두 공급해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며칠 전에 한 어머니는 어학 연수차 나간 아들의 학비를 보내지 못할 형편이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가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참된 스승은 제자들에게 필요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교훈을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꼭 필요한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4-5절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선생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모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의 말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한 자매 님이 잘못된 애정 속에 빠져 유부남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말리고 타일렀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마취요,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고, 급기야는 하나님에 대한 도덕상의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매 님은 우리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우주보다 더 그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그 남자 부인보다 훨씬 더 그 남자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사랑은 무엇으로 억제할 수 없는 자유라고 항의했습니다.
급기야는 그녀 자신의 행복을 위해 그 유부남과 같이 살기로 하고 이혼을 시켰으며 전실 자식들과 함께 남자를 소유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막상 소유하고 보니 별거 없는 남자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이상형의 남자도 아니었으며 또 둘이나 되는 아들들이 그녀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기만 했습니다.
그때서야 부모님이 반대하시던 음성이 떠올랐습니다. 목사님과 친구들의 권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죄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울며불며 자신을 자학하다가 마침내 자살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미수로 그쳤지만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부모의 교훈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믿/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들이 궁금해하는 것만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6절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저희가 모였을 때" 여기서 '저희'는 '사도'들을 말하고 그들이 모인 곳은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감람원이라고 하는 산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묻자와 가로되" 원어에 보면 제자들이 급하게 반복하여 예수님께 물었다고 나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 말씀은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또는 "주께서 이스라엘을 나라로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이렇게 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주께서 부활하신 다음입니다. "그렇다면 선생이시여,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일어나신 당신의 그 놀라운 권능과 능력으로 우리의 조국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날이 이제야 온 것입니까?" 이런 의도가 깔린 질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나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옛날 하나님이 모세를 들어서 이스라엘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시키셨듯이 저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심리학자인 AB '매슬로우'는 인간이 지닌 최고의 욕망은 '자기실현의 꿈'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에게도 한가지의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조국인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 제국 아래서 짓밟히고 심음하고 있었던 유대민족에게는 이 보다 더 절실한 꿈은 없었습니다. 이때에 유대 땅에 젊은 선지자 예수가 나타나 귀신을 쫓아내고 풍랑도 잠잠케 하고, 오병이어의 기적 뿐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을 나타내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저 정도 사람이라면 이 민족을 해방시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정치적 메시야가 어느 날 허무하게 십자가에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시던 날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꿈이 사라져버린 날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옛날의 고향으로 흩어져 갑니다.
그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하면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처럼 저마다 고향으로 허무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습니다. 바로 그때 흩어진 제자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퍼지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입니다.
그 소문대로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꿈의 소멸이었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의 새로운 꿈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정말로 제자들에게 궁금한 점 하나가 있었습니다. 3절의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제자들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정치적인 나라로 잘못 알고 제자 중에서 한 사람을 대표로 뽑아 예수님께 나와 그 궁금한 점을 물은 것이 오늘 본문의 6절입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제자들의 꿈은 야무집니다. 사실 꿈이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꾸고 있는 꿈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다면 수정해야 합니다.
▶옛날 스위스에 '앙리 뒤낭'이라는 유명한 은행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전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유명한 장군이요 황제였던 '나폴레옹'을 만나보는 것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그가 나폴레옹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시대 최고의 영웅이었던 황제를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나고 싶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스위스의 은행장으로서 불란서와 더불어 경제 협력의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램이었습니다.
드디어 그는 조국 스위스에 경제 사절의 임무를 띠고 파리로 가서 나폴레옹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나폴레옹 황제가 전쟁에 출정한 후에야 파리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가 황제를 만나고 싶다는 꿈이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전쟁터를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 프랑스 군대와 오스트리아 군대와 더불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 구경꾼이 되었습니다.
이윽고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뒹굴고 있는 수많은 시체들을 바라보면서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생명의 허무를 깊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는 거기 남아서 오랫동안 의사를 도와 부상병을 치료하고 시체들을 치웠습니다.
그는 황제를 만나 경제적인 새로운 부를 획득하겠다는 꿈은 사라졌지만 전쟁터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꿈 하나를 간직하고 돌아옵니다. 그것은 평화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이들을 돕기 위해 어떤 일이든 내가 해야 한다."는 마음의 다짐이었습니다. 이것이 꿈이 되어 그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몇 몇 친구와 함께 한 가지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시작이 되어 탄생한 것이 저 유명한 '적십자사'운동입니다. 그는 첫 번째 노벨 평화상을 수상 받았습니다. 이 적십자기는 색상과 순서배치만 다를 뿐 스위스 국기와 똑같은 깃발입니다.
그는 하나의 꿈이 절망으로 끝났을 때 절망하지 않았고 새로운 꿈을 찾아 이루었습니다. 어쩌면 그가 가졌던 처음 꿈보다 더 위대한 꿈을 꾼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의 꿈은 예수님을 세상 적인 정치 메시아로 보고 이스라엘이 해방이 되어 그들이 높은 지위에 앉아 유대를 다스리기를 원하는 그런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꿈은 더 커다란 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꿈은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꿈꾸는 나라는 정치적인 나라였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인 나라이기보다는 영적인 나라이며 영원한 천국 건설의 꿈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꿈꾸는 나라는 전쟁에 의해서 확장될 수 있는 나라지만, 예수님이 꿈꾸는 하나님의 나라는 전쟁이 아니라 전도라는 방법에 의해서 땅 끝까지 확장되어갈 나라입니다. 제자들은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이스라엘의 해방을 물었습니다. 7절은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7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제자들이 물은 각도에서 예수님은 완전히 다른 각도로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물었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종말, 즉 주님의 재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 '때와 기한'은 긴 시간과 보다 짧은 시간을 가리킵니다. '때'는 시간의 지속을 가리키고 '기한'은 정해진 '한 순간'을 의미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들이 자신의 민족의 독립에 대하여 무관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독립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너희들은 바른 삶을 살기만 하면 너희 민족의 해방은 반드시 올 것이다."는 의역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여기 '때와 기한'은 주님이 마24:36절에 말씀하신 대로 오직 아버지만 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의 시기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언제 주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까?'

▶여러분, 재림에 관심을 갖고 준비하는 신앙은 귀한 신앙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재림 신앙은 사회에 큰 무리를 일으킵니다. 오래 전에 성경에 분명한 명시가 없는 휴거설을 퍼뜨리면서 92년 10원 28일이라고 해서(이장림파) 그 당시 얼마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고 신앙 세계를 얼마나 혼잡케 했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의 재림의 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깨어 기도하며 기름을 준비하는 자세가 절대 필요합니다. '교회 중심의 생활,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 늘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 바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입니다. /믿/
여기 '때와 기한'은 인간 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와 기한도, 우리 주님의 재림의 때와 기한도 하나님의 권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도 하나님의 때에 쓰임을 받게 됩니다. 기도의 응답도, 축복의 시기와 때도, 모두 하나님의 권한에 있습니다.
"너희의 알바 아니요"란 말은 '너희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만약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의 질문의 의도대로 이스라엘의 독립의 때와 기한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그들은 졸도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1948년이 되어서야 이스라엘이 완전 독립했으니까요. 그런데 만약 예수께서 지금부터 약 2천여 년이 지나야 독립이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면 뒤로 '꽈 당' 넘어졌을 것이므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알 바 아니다'고 대답하신 것은 가장 현명하고 합당한 대답이었습니다.
또 "너희의 알 바 아이요"란 말씀 속에는 '때와 기한은 하나님께 다 맡겨 놓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 하나님 아버지께 맡기며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맡길 때 우리의 짐이 가볍습니다(마11:28).
우리가 살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인생의 앞날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사상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라도 앞날에 대한 궁금증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하나님께 맡겨 놓아야 합니다. 나라의 장래도 가정의 장래도 개인의 장래도 하나님께 맡겨 놓아야지 우리가 아무리 장래를 걱정해 바야 소용이 없고 아무리 연구해 바야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앞날은 하나님께 맡겨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때가 가장 합당한 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본문에 보면 제자들의 꿈과 예수님의 꿈은 서로 달랐습니다. '오월동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이가 서로 나쁜 '오'나라와 '월'나라 사람이 한 배를 타고 있는 경우를 얘기하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은 서로 다른 꿈을 가지고 한 배를 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꿈을 바로 갖기 위해 8절의 말씀을 주십니다. ▶8절은 사도행전의 주제가 되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입니다.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헛된 꿈을 버리고 너희는 나의 제자답게 '성령을 받아라! 그래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예수의 제자가 되라'는 당부입니다. 그러니까 '온 세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라'는 명령이십니다. /믿/
여기 '오직'은 '유일하다,'는 뜻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표현입니다. '오직'이라고 하셨으니 다른 것은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 적인 지위나 권력은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꾼들이므로 '오직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8절에서 네 가지의 단어가 매우 중요합니다. "오직, 임하시면, 받고, 되리라"
①'오직' 이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것으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오직' 이 말은 유일한 하나라는 말입니다. '오직'이라는 말은 다른 것으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구원의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오직' 성령 충만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임하시면'이 필요합니다.
②'성령이 임하시면' '임한다.'는 말은 5절에 언급한 '성령의 세례'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사랑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임하시길 구할 수도 있지만, 내가 내려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의 충만 주시기를 구하지만, 그 분량과 종류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주십니다.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정할 수는 없습니다.
⑴성령은 '생기'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다(창2:7)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생기는 곧 힘을 말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생기발랄합니다. 그러나 병든 사람은 생기가 없습니다. 겔37장에는 마른 뼈들의 환상이 기록되었는데 생기 없는 시체들 위에 생기가 들어가니 큰 군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우리의 육체가 강건해 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건강해 집니다. 우리의 영이 강건해 집니다. 성령의 생기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⑵성령은 '지혜'입니다. 지혜와 지식은 물론 다르지마는 둘 다 큰 힘이 됩니다. 요셉과 다니엘이 하나님의 신(성령)에 의해 꿈을 해독하는 지혜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은 지혜와 지식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⑶성령은 '불'과 같습니다. 오늘날 에너지의 대부분이 화력을 통하여 얻어집니다. 석유를 태워 열을 얻고, 석탄을 태워 에너지를 얻습니다. 성령은 불같은 성질이 있습니다. 성령은 사람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아 내리게 합니다. 성령의 불은 죄악으로 굳어버린 마음을 허물어 버립니다. 죄악을 소멸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열정을 줍니다. '주여! 나에게 성령의 불을 주소서! 성령의 불로 충만 충만케 하소서!'
⑷성령은 '물'과 같습니다. 물은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을 수 있습니다. 물은 낮은 곳을 향해 불평 없이 흐릅니다. 따라서 성령의 사람은 겸손합니다.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보다 겸손한 사람이 힘이 있습니다.
⑸성령은 '바람'과 같습니다. 바람은 언 땅을 녹이고, 생명을 실어 나르는 전령과 같습니다. 봄바람, 가을바람, 산들바람, 하늬바람이 있는가 하면 순식간에 집과 자동차를 날려버리는 폭풍도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다양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③'받고' 주실 때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해야 권능을 받습니다. 여기 권능이란 말은 '파워, 힘, 세력'을 의미하는데 폭발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④'되리라.' 잘 보세요, '되어라'가 아니고 '되리라'입니다. 성경은 한 단어, 한 단어를 잘 읽어야 합니다. '되어라'고 했다면 '내가 노력해서 되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부담'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되리라'고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는 복음을 전해야 할 지리적인 순서입니다.
이 순서는 몹시도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은 먼저 예루살렘에서 증언해야 합니다. 여기 예루살렘은 주님이 부활하신 장소요, 제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 곧 자기의 도성, 자기의 고장, 자기의 집에서부터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는 우리가 전도할 때, 자기 가족, 친척, 그리고 친구는 잊어버리고 원거리에 가서 전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은 성령이 충만한 증인은 먼저 자신의 집에, 동네 친구들을 전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에만 머물지 말고 범위를 넓혀서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유대는 예루살렘을 둘러쌓고 있는 큰 도시입니다. 이스라엘은 세 도시가 있습니다. '갈릴리와 유대와 사마리아'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복음이 전파되어 유대를 점령해야 하고 사마리아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사도행전이 진행되어져 갔습니다.
오늘 8절은 사도행전의 주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성령'과 '증인'이라는 단어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만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능력 있는 전도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사41:14-15절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여기 '지렁이' 같다는 표현은 '무력하고 무능하고 무가치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지렁이같이 무능하게 보이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하면 트랙터나 불도저처럼 산을 갈아 부셔놓고 바위를 부셔서 가루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과연 지렁이같이 무력하고 무능하게 보이던 갈릴리의 어부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 그들이 권능을 받아서 유대교의 본성을 무너뜨려 버렸고, 또 율법의 본산인 시내 산을 헐어 버렸고, 온 유대인들의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부셔버리고 복음의 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흩어져 나갈 때, 혼혈 속의 고장인 사마리아 땅의 우상 사슬에 사로잡힌 안디옥까지 복음이 증거 되었으며, 한 걸음 더 나가서는 사자같이 세계를 향하여 우렁차게 부르짖던 로마제국의 수도 로마까지 복음으로 점령한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증거하는 영입니다.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므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제자들은 권능을 받았고, 전혀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매사에 확신이 넘쳤고, 세상사는 일에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라고 외쳤습니다. 또 증인이라는 말은 전도라는 의미입니다. 성도는 말로 예수를 증거하고 행동과 인격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또 증인이라는 말은 '순교자'란 의미도 있습니다.
증인의 법적 용어는 바른말로 증거 해야 하고 보고들은 것만 증거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위하여 세상에 오셨고, 사셨다가 죽으셨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좌정해 계시고 지금도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를 세우시고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6.25때에 경기도 평택에 인민군이 점령하면서 교회당에 들어와 십자가를 떼고 김일성 사진을 걸었습니다. 평택교회 목사님은 죽음을 각오하고 김일성 사진을 뗐고 십자가를 걸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때 인민군들이 후퇴하면서 교회에 들어와 누가 사진을 떼었느냐고 할 때, 목사님이 내가 떼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인민군은 목사님을 마당으로 끌고 가 교인들이 보는데서 작두에 목을 잘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신앙이 좋은 장로님이 "목사님을 살려야 교회가 살고, 교회가 살아야 민족이 산다."고 외치면서 "목사님 대신 나를 죽이라"고 가로막았습니다.
이것을 본 전 성도가 합심하여 대항했습니다. 그때 인민군 인솔자가 살려주면서 "나도 이북에서 어릴 때 주일 학교 다닌 경험이 있습니다. 잘 믿고 천국가세요. 우리는 이북으로 갑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교회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라는 말을 '예루살렘을 다 복음화 시키고 온 유대 다 복음화 시키고 사마리아를 다 복음화 시키고 땅 끝'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단계적 실천'으로 발아 들이는 분들입니다.
아닙니다. 동시에 예루살렘에도 전도하고, 동시에 온 유대에도 전도하고, 동시에 사마리아에도 전도하고, 동시에 땅 끝까지 전도해야합니다. 이 말씀은 단계적 실천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동시적 실천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내 증인이 되라'가 아니고 '내 증인이 되리라,'입니다.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정치에나 경제에나 인권에 관심이 이었던 것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증인'이란 말은 재판정에서 쓰여지는 용어입니다. 국회에서 증인들이 허위로 증언하면 위증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재판정에서도 허위로 증언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자신의 본 것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자와 증인' 두 종류가 있는데 신자는 처음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음으로서 사는 증인이 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자기 몸으로 '증거'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영광스런 증인은 '스데반'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을 듣는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능력 있는 설교로 청중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찔림을 받은 무리들이 스데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때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열리고 주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어 스데반을 성밖으로 내치고 온 몸을 돌로 치니 살이 찢기고 터져 그는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이때 스데반은 입을 열어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순교자는 죽는 것이 아니요 죽음으로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증인은 예수를 증거함으로 자신을 영광스런 존재로 또 위대한 존재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증인이 되기 전에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까? '권능'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능이 무엇입니까? 곧 힘입니다. 권능을 나타내는 헬라어는 '두나미스'인데 여기에서 영어의 '다이너마이트'라는 단어와 '다이나믹스'라는 두 단어가 파생되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는 '파괴력을 가진 힘'이고, '다이나믹스'는 역동성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전도하려고 해도 힘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 또 '권능'은 영어로 '파워'(power) 라는 말로, 이 말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천둥과 번개를 발하는 하나님의 힘'이라는 뜻이 있고, 기적을 이루는 힘과 귀신을 내어쫓는 것 같은 능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권능이라는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권능을 가졌다는 뜻을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권능이란 '반드시 해야 할 것을 행하고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능력'입니다.
좋은 자동차는 두 가지 기능이 탁월해야 합니다. 달릴 때는 힘이 있어야 하고 설 때는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달리기만 잘하고 서지 못한다면 사고가 날 것입니다.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의 기능이 탁월한 차가 좋은 차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권능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해가 되면, 아멘! /할/


▶어떤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이 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람이 권능을 받은 사람이고 능력의 사람입니다. ▶능력(권능)이 무엇입니까?
⑴성령이 능력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입니다. 성령은 유순한 비둘기와 같고, 강한 불과 같고, 강한 폭풍우와 같으며, 시원한 폭포수와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지 않고는 증인이 될 수 없고 전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⑵기도가 능력입니다. 막9:29절에 보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이 "기도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라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왕상18장에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 불을 내릴 때도 기도의 능력이었습니다.
기도는 질병을 물리칩니다. 가난을 물리칩니다. 저주의 사슬을 끊어 버립니다. 사탄의 결박을 끊어버립니다. 맺히고 묶인 것을 풀어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⑶십자가가 능력입니다. 고전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왜 십자가가 능력이 있습니까?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뜻인 인류구원이 그곳에서 이루어졌습니다.
⑷말씀이 능력입니다. 말씀의 창조적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능력이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말씀의 능력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꿉니다. 말씀의 능력이 에스겔 골짜기 해골 떼에게 생명을 줍니다. 말씀의 능력이 죽은 자를 살립니다. 말씀은 살았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골수를 찔러 쪼갭니다. 우리의 생각까지 감찰합니다. 주여! 말씀의 능력을 주옵소서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⑸찬양이 능력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랬더니 감옥 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 드릴 때 증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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