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유다 대신 '맛디아'를! (행 1:15-26)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자살해버린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열 두 사도로 뽑은 보궐 선거입니다. 성경을 보면 확실하게 예수님께서 세우는 자가 있는 반면에 폐하시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때 사울은 참으로 겸손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잃어버린 나귀를 찾으러 갔다가 사무엘 선지자를 만나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 당시 사울은 보통 사람보다 어깨 위는 더 컸다고 했는데 아마도 키가 거인 정도 되었나 봅니다. 그런데 사울이 제비에 뽑혔는데 찾아보니 사울이 보이지 않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다른 사람의 이삿짐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자기가 왕이 된 것이 부끄러워 숨은 것입니다. 이것은 사울이 그만큼 겸손했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왕이 되어 겸손할 때는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임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해지자 하나님은 그를 세운 것을 후회하시고 다윗을 기름 부어 이스라엘의 2대왕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들어 쓰시고, 교만한 자를 버리십니다. 겸손하면 주님이 쓰십니다. 우리 모두 겸손한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 선교의 문을 열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120문 도가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전혀 힘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수제자 베드로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가롯 유다 대신에 열 두 사도의 자리와 사명을 감당할 사람을 뽑자고 제의를 하자, 제자들은 '바사바'라고도 하는 요셉과 다른 한 사람 '맛디아'를 추천한 후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정하여 사도의 수에 가입시키게 됩니다. ◀제목소개!▶
▶15절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여기 '모인 무리'가 바로 교회이고 건물은 예배당입니다. 교회라고 할 때는 성도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교회는 '헬'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에크'란 '무엇 무엇으로부터, 어디에서부터'라는 뜻이 있으며, '레시아'는 '불러내었다. 건져내었다. 뽑아 주었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죄에서 부름 받은 무리가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모인 무리'라고 했는데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다 교회입니다. 교회는 무리가 모였기 때문에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또 모였을 때는 질서를 운영해 나갈 리더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의장을 뽑는답니다. 본문에도 보면 베드로가 이때 모인 무리의 리더입니다.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 이십 명이나 되더라!" 120이란 수는 성경에 12숫자와 묘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12지파로 구성되었습니다. 또 왕상18:31절을 보면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열두 돌을 취하여 무너진 제단을 수축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 불러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12는 교회의 수요, 10은 충만한 수이기 때문에 120문도는 충만한 교회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그 당시 다락방에 모인 수가 120명이었습니다.
고전15:6절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많은 무리들이 흩어지고 나머지가 120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라 다녔던 무리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되 참 제자로 따라 다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빵을 위하여 또는 병 고침을 받기 위하여 또는 구경거리로 따라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찾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진심으로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120문 도들과 같이 주의 은혜를 사모하고 주님을 기다렸다가 주님 재림 시에 우리 모두 공중 휴거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리'들이고, 둘째는 '제자'들입니다. 마5:1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무리'와 '제자'가 구분됩니다. '무리'와 '제자', 무엇이 다를까요? 겉으로 보면 무리들과 제자들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첫째로, 무리들도 제자들처럼 주님을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마4:25절 "허다한 무리가 좇으니라." 마13:2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여들거늘" 그들은 '들로, 산으로, 동네로' 예수님이 계시다면 불나게 쫓아다녔습니다.
둘째로, 무리들도 주님의 교훈을 들을 만큼 듣고 감탄했습니다. 마7:28절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셋째로, 무리들도 주님의 기적을 목격하고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 마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마9:33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들은 주님 곁을 떠나갔고, 제자들은 주님 곁에 남았습니다. 무리들은 말씀을 잊었지만 제자들은 말씀을 기억했고, 무리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제자들은 주님을 메시야로 믿었고, 무리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제자들은 평생 목숨을 걸고 주님을 전파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믿/
15절에 120문 도의 대표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베드로를 소개하기를 형제라고 한 것입니다. 또 16절에서 베드로 자신도 '형제들아!' 이렇게 불렀습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베드로가 교황이라고 나오지는 않습니다. 베드로는 교황이 되고자 한 적도 없고, 교황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본문을 보면 당시 120문도 중 리더였습니다. 그런데 행15장을 보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의 교회의 의장이 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의장으로 있다가 야고보에게 돌아가면서 교회를 다스렸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16절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예수를 잡는 자들을 지로한" '지로'란 말은 '길을 인도한다'는 뜻으로 가롯 유다가 '예수 잡는 자들의 길을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생각할 때마다 저는 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작은 그럴 듯 했으나 결과가 너무도 안 좋았던 사람. 그는 분명 열 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참으로 명예롭게 출발했습니다. 성경을 잘 살펴볼 때 유다는 꽤나 똑똑하고 능력 있고 야심만만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세무행정에 밝은 마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신임을 받아 회계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함께 드러난 유다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재물에 너무 탐심이 많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너무도 세상 적이고 정치적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죽음을 준비했을 때에도 그 행동을 단순히 세상의 물질적 가치로 폄하시켜 버렸고 그 후엔 예수님을 흥정대상으로 삼아 은돈 30세겔에 팔아버렸습니다(마26:15).
그리고는 뉘우쳤으나 그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 주님으로부터의 마지막용서와 구원의 길을 차단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결과가 너무도 비참한 사람입니다.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에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본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쉽게 표현하면 가롯 유다의 배신이 우연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신 성경의 예언대로 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41:9절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또 요17:12절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또 요13:18절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드리지 못해서 성령이 임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드리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시109:8절에서도 "그 연수를 단촉케 하시며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시며"라고 했습니다. ▶에서의 장자 권은 야곱이 취했습니다. ▶르우벤의 장자 권은 유다가 취했습니다. ▶가롯 유다의 사도 권은 맛디아가 취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직분을 받아놓고서 불성실하므로 타인에게 기업과 복을 빼기지 말고 그대로 누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의 가롯 유다의 비참한 최후가 그냥 된 것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요, 가롯 유다 대신 사도를 뽑는 것도 베드로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에 응한 일입니다.
▶가롯 유다를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겠습니다.
⑴가롯 출신으로 '단도를 휴대한다.'는 뜻으로 그는 민족해방 운동 자로 예수님을 혁명의 우두머리로 삼아 로마를 정복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예수님을 세계의 왕으로 삼으려는 야무진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하리라"는 말씀에 실망하여 예수님을 배신한 것입니다.
가롯 유다라고 한 것은 12사도 중, 유다라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서 그의 출생지의 이름을 붙여 사용한 것입니다. 가롯 유다를 제외한 11명은 모두가 갈릴리 출신이었습니다.
⑵가롯 유다는 12사도 중 회계를 맡았습니다. 요12:6절에 '그는 돈궤를 맡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12장을 보면 마리아가 주님께 향유를 부을 때,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에게 줄 수 있겠다고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도적질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⑶그는 유월절 만찬 석상에서 예수께로부터 그의 죄상을 지목 받았습니다. 주님은 성만찬 석상에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마26:23)>고 그를 지목했고,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라"(요13:26)고 했으며, 또 "내가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로라"(요13:26)고 까지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한 조각을 가롯 유다에게 주었습니다.
요13:27절에 보면, 가롯 유다가 그것을 받자마자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사실을 가리켜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고 한 성경을 이루게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⑷마26장을 보면, 가롯 유다는 만찬석상에서 나간 후 곧 유대 교권주의자들에게 달려가서 은30냥을 받기로 하고 예수님을 잡아주는 앞잡이가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시고 주님 앞에 다가와 입맞춤으로 예수를 잡는 암호로 삼았습니다.
⑸그는 후회는 했으나 회개는 없었습니다. 마27장에 예수께서 결박을 당하여 빌라고 법정으로 끌려가 심문 당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은30을 도로 돌려주며 말하기를 "내가 무죄한 자의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노라" 하고 후회했으나, 그는 결국 회개할 줄을 몰랐습니다. 가롯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져 놓고 스스로 목 매여 죽었습니다(마27:5).
⑹그는 결국 천고에 불명예와 저주의 표본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승을 판자, 예수님을 버린 자'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비참했습니다.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오는 최후를 남겼습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시편에 나오는 가롯 유다의 예언은 다윗이 쓴 시에 나오지만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의탁하여 쓰게 되었으니 성령의 작품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읽을 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는 것입니다.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베드로는 성경은 반드시 응하고,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었던 사람입니다. 우리들도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할/
▶17절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가롯 유다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의 수에 들었던 자입니다.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 우리도 한 부분을 맡은 것이지 전부를 맡은 것은 아닙니다.
교회 일은 혼자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진 일만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믿/ 오늘 가롯 유다를 보면서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참여하지 못하고 다만 수만 채운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롯 유다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왜 예수께서 가롯 유다를 제자로 택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유다의 마음을 아셨는데 왜 배신한 자를 택할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 우리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를 선택한 것은 구약에 기록한 예언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18-19절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 밭이라는 뜻이라"
가롯 유다의 죽음과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짐은 말하고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밭을 사고" 했는데 유다가 예수를 팔고 난 뒤, 심문 당하는 것을 보니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은 30냥을 쥐고 제사장에게 가서 "내가 잠시 실수해서 예수를 팔았으니 이 돈을 도로 받고 예수를 놓아주시오" 하자 그들이 말하기를 "네가 그 핏 값을 당하라. 우리는 책임지지 않는다. 한번 팔았으면 끝난 것이지 또 무르려고 하느냐!" 하므로 가롯 유다는 너무 괴로워서 그 돈을 성전에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자 제사장들이 "이 돈은 사람의 피 값인데 성전 고에 넣어 두면 안 된다"고 하며 돈을 꺼내 그 돈으로 나그네의 묘지를 산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개 같은 자의 돈은 성전 고에 넣어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판돈이니 더러운 돈이라 하여 그 돈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을 사 가지고 거기다 죽은 사람들을 묻어 주는 공동묘지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 밭은 '피밭, 불의의 밭'이라고 하는 아람 방언으로 '아겔다마'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것도 이미 예언된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보면 가롯 유다의 죽음이 마태복음의 기록과 조금은 다릅니다.
마27:5절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고 했으나 본문 18절은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사건이 다르게 표현됐습니까? 마태복음의 기록은 전반부의 기록이고 사도행전의 기록은 사건의 후반부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유다가 죽은 곳은 낭떠러지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목매어 자살한 뒤에 목에 매였던 줄이 끊어지면서 떨어져 돌에 창자가 부딪쳐 터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태는 유다의 죽음의 방법을 기록한 것이고, 누가는 죽음의 비참한 결과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것입니다.
▶20절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본 절은 구약 시편의 인용으로서 전반부는 시69:25절을 인용하여 "원수의 거처가 황폐케 될 것을 예언한 것"이고, 후반부는 시109:8절을 인용하여 "원수가 급하게 죽고 다른 사람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직분을 타인에게 취하게 하소서"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그냥 되어 진 것이 아니라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예언은 모두가 다 이루어집니다. /믿/ 이제 예언의 마지막부분은 주님의 재림만 남았습니다.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주를 팔아먹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방해한 자는 그 집이 저주를 받아서 망하게 됩니다.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팔아먹고 예수를 잡아죽이는데 동참했기 때문에 유다의 집이 저주를 받아서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가롯 유다 대신 맛디아가 그 직분을 받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에게 손해 주고 교회에 손해를 준 사람은 하나님이 그 직분을 빼앗아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가롯 유다를 보면서 몇 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⑴하나님을 절대로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⑵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해서도 안 됩니다. ⑶하나님의 소명과 직분을 포기하는 것도 안 됩니다. ⑷우리 모두 충성합시다. /할/
▶이제 21-26절은 가롯 유다 대신 맛디아를 뽑는 보궐선거가 이루어집니다. 21-22절은 베드로의 설교 후반부입니다. 가롯유다의 배신과 그 참혹한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임을 설교한 베드로는 이어서 하나님의 교회가 갖추고 있어야 할 사도들의 보강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21-22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본문을 보면 사도의 자격 조건을 몇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⑴사도들의 자격으로는 요한의 세례부터 예수의 승천하신 날까지 약 3년 간 주님의 전도생활을 함께 한 제자라야 합니다. 여기서 3년 간이란 시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세례요한의 회개를 통하여 깨달은 자라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회개를 외칠 때,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회개한 자가 사도 보궐 선거에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께서 3년 동안 보여준 기적과 말씀을 확실히 믿는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라고 했는데 주와 동행하는 자라야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충성스럽게 주님을 따른 자가 주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주님의 발 밑에 앉아서 배운 사람, 또는 오랫동안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를 사람이어야 사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⑵그 사람은 부활의 좋은 증인이어야 합니다.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는 사도행전의 주제입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왜 위대한지 아십니까?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만 있고,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사장된 종교입니다. 주님이 3일 만에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였기에 기독교는 지금도 살아 있는 종교입니다. /믿/
사도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 선택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총 제목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교회의 특별한 음성입니다. 사도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언자라면 그리스도인은 그 부활을 믿는 자들입니다. /할/
그런데 22절을 보면 사도의 자격 하나를 또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로 더불어" 더불어 덕이 있어야 하고, 더불어 과묵이 있어야 하고, 더불어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불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불어 협력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공동생활을 하면서 가장 귀한 태도는 같이 더불어 협력하는 덕, 자기만 잘난 줄 알고 독선주의로 나가는 사람은 안 됩니다.
▶베드로가 사도의 12수를 채우려는 것은 직분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12사도를 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가책과 불의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사도가 공석이 된 그 자리를 채우자는 것이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12숫자는 완전수입니다. 그러므로 채우는 것이 열심을 내는 첩경이요. 주님이 바라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대를 이여 사명을 완수하고 그 일을 하는 것이 제자된 도리라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나한사람 빠지면 못 한다'라는 착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교만한사람은 끌어내시고 겸손하고 충성하는 사람을 선택하여 일을 하게 하십니다.
지금 유다가 공석이 된 자리를 채우도록 해야 합니다. 교만 때문에 떠나고 욕심 때문에 떠나고 죄악 때문에 떠나고 실패하므로 떠난 유다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 주님의 일이요. 생명을 구하는 일입니다.
유다는 돈과 명예 때문에 주를 떠났습니다. 우리 한번 따라합시다. "유다의 자리를 내가 채우리라" 주님의 일을 채우는 자는 그 사람의 생활을 채우십니다.
시편에 "너는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셨습니다. 말3:10절에는 "너희는 내 창고를 채우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 창고를 채우리라"고 하셨습니다. 채우는 믿음이 되길 축원합니다.
▶12수를 채워야하는 것은, 22절에 '우리와 함께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려 함'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로 부름을 받은 것은 예수의 부활을 전하고 죽어 가는 생명을 건지는 일입니다. 집사로 부름 받은 것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고 천국사업을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한 사람 이라도 더 증인으로' 세우려는 베드로의 열심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세우려는 열심히 여러분에게 생기기를 축원합니다. 빠진 공백을 내가 채우겠다는 믿음이 생기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직분이라 함은 '복음을 증거 하는 일'과 생명관리, 생명 건지는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증인'으로 12명의 제자를 세우셨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주님이 선택하여 세우셨습니다.{요15:16}
그러므로 주님의 주신 직분은 천국의 복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딤전2장에도 보면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자는 아름다운 지위를 얻고 담력을 얻고 주님께 인정받는다고 했습니다.
▶23절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두 사람을 천하니" 우리가 흔히 하는 배수 공천을 한 것입니다. 한 사람을 뽑는데 두 사람을 추천했으니 그야말로 민주적인 투표입니다. 그래서 노회 임원들도 복수로 천거해서 결정은 하나님께서 이번에 쓰시고자 하는 사람을 투표자 대다수의 마음속에 주시므로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으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두 사람 모두 자격자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만 뽑아 쓰셨다는 점이며,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그야말로 화려한 사람입니다. 별명이 많은 사람은 화려한 사람입니다. 요셉이라고 하는 사람은 별명이 둘이나 됩니다. '바사바'라고도 하고, '유스도'라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6년을 같이 학교에 다녀도 별명하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활동이 없는 사람이 별명이 없습니다. 여기 '바사바'란 '바사의 아들' 즉, '안식일에 태어난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유스도'는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이라는 이름은 그 옛날 창세기 때 야곱과 라헬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수치를 씻는다'는 뜻과 앞으로 '아들을 더 주십시오.'라는 뜻을 담은 '더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의 뜻 그대로 요셉은 사람들에게 많은 인정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고 의로운 일을 서슴지 않고 언제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사도의 후임자로 물망에 올랐으며, 요셉자신도 틀림없이 자기가 그 후임자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뜻밖에 그를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슨 까닭인가? 사도 바울은 갈1장에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고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의 차이를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요셉을 보며 오늘 우리 자신은 과연 어떤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유스도라고 불리는 요셉은 70인의 제자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별로 알려져 있는 것은 없으나 후에 핍박 자들로 인하여 독사의 독을 마셨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맛디아'입니다. 그야말로 단순한 사람입니다. 조용한 사람입니다. 맛디아는 요셉처럼 눈에 드러나는 외적 조건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 모르게 주님의 선한 일을 했고 또한 변변히 그런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그를 '맛디아'라고만 불렀습니다.
그런데 사실 맛디아는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만 사모했던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들 생각 같으면 경력이 화려한 바사바를 택할 줄 알았는데 뒤에 보면 맛디아가 뽑힙니다. 하나님의 종은 부족하지만 진실된 자를 택하여 쓰십니다. 맛디아에 대하여는 '에디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24절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모든 일은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백화점 왕이던 '워너메이커'에게 성공의 비결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일을 시작한다. ▶일의 우선순위를 두고 순위대로 한다. ▶시작과 끝은 반드시 기도로 시작하고 마무리한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것은 다 아는 것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자 워너메이커는 말했습니다. "아는 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실천하는 것은 힘들다."라고 했습니다. 안다는 말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것이 힘듭니다.
어떤 사람이 결혼하는 청년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을 주웠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는 1번 기도하라. 배타고 바다를 항해 할 때는 두 번 기도하라. 그러나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의 열쇠입니다. 나아가서는 발전의 열쇠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공의 열쇠입니다. /할/
본문의 사도들은 기도로 하나님께서 지시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70명의 제자들 중에 택해 주시기를 간구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 중에 누구냐?'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는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이 할 일을 다 하고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의 종이 직분 자를 세울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세웁니다. 또 많이 기도한 자가 뽑힙니다. /할/
그들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에게 간구했습니다.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뜻과 사랑과 체질과 머리칼까지도 아시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기에 우리는 기도하고 맡길 수 있습니다. "누가 주의 택하신 바가 되어" 주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야 되기 때문에 주의 뜻대로 기도한 것입니다. 사도로 선택될 때는 그의 마음과 그의 기질과 성격에 의해 택하여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사도를 선택할 때 제비를 뽑았는데 먼저 사람들이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 봉사하는 일과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사선택에 실수가 없었습니다. /할/
▶25절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사도는 주님을 대신해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 당에 계실 때도 섬김을 받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모두 봉사의 집무입니다. /믿/
목사, 장로, 권사, 집사가 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을 받아 가지고 봉사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직무 유기 죄에 해당됩니다. /믿/
여기 유다가 지옥 갔다고 하자니 좀 그렇고 해서 제 곳으로 갔다고 표현했지만, 여러분, 가룟 유다가 어디로 갔겠습니까? 지옥으로 갔습니다.
▶26절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제비를 뽑는 것은 많은 사람의 의견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잠16:33절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주권과 결정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 위하여 제비를 뽑는 것입니다. 제비를 뽑는 것은 구약적인 배경을 앉고 있습니다.
레16:8절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또 삼상10:20-21절에 보면 사무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을 때, 각 지파 별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욘1:7절을 보면 제비를 뽑아 그 재앙의 원인이 누구인가를 알았고 요나가 뽑혔습니다.
"저가 11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여기 가입이란 '함께 헤아린다'는 뜻으로 사도의 정식 멤버가 된다는 선포입니다.
'맛디아'는 '여호와의 선물'이란 뜻으로 아람의 이름으로는 '마태'입니다. '알렉산더 클레멘스'는 맛디아를 삭개오로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설이 아닙니다.
가롯 유다 대신에 맛디아가 뽑혔습니다. 성령의 인도 따라 뽑힌 것입니다. 기도하고 뽑힌 것입니다. 교회의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모든 교회의 직분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임명될 수 있도록 기도와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할/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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