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권세를 회복하라 약5:17~18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 굴복 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이것이 이번 집회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굴복 당하고 다스림을 당하는 지배 당하는 삶이 아니라
다스리는 사람으로!
하나님이 본래 우리를 지으셨을 때, 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 그러셨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왕권을 회복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배 받으면 안돼요.
돈의 지배를 받고 환경의 지배를 받고..
지배 받는다는 건 끌려 다닌다는 얘깁니다. 끌려 다니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의 삶을 못 삽니다.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거죠.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권세를 주셨단 말이죠.
그런데 엉뚱한 곳에 우리가 마음을 파니까 권세를 다 빼앗겨버렸어요.
▲대표적으로 삼손 같은 사람. 하나님께서 멋진 것을 많이 주셨는데
여자 꽁무니 따라다니다가 다 잃어버렸어요.
엉뚱한 데 힘을 쓰다가. 인생의 초점이 분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도 다 엉뚱한 데 쓰게 됩니다.
나중에 어떻게 돼요? 눈 뽑히고 노예가 되고, 사람들 앞에 웃음거리가 되고.
재주 피우면서. 노리개가 되는 거예요.
영권이 없는 신자가 되면 세상 속에서도 교회에서는 물론이고,
세상 속에서도 제대로 못 삽니다.
여러분 영권을 가지면 세상 사람들이 압니다. 정말 압니다.
이 사람이 영물이라 그러잖아요. 나이롱 신자인지, 진짜 신자인지 알아요.
영권을 가지고 있으면 직장에서도 함부로 못해요.
자기가 화를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오게 되어 있어요.
영권이라고 하는 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게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목사님들도 영권을 잃어버렸어요. 참 통탄할 일입니다.
영권이 없으면 신자든 뭐든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해도 안돼요.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영권이 회복되도록 기도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안 되면 교회 문 닫는 겁니다. 그게 교회 생사의 1번지입니다.
신자도 마찬가지고. 가정에서 부모가 영권을 회복해야 합니다.
딴 걸로는 안 되고, 영권이 있으면 반드시 자녀는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일제시대를 보면 많은 신자들이 신사참배 문제가 있었을 때,
영권이 없는 사람들은 신사참배해야 해요. 이길 영권이 없으니까. 핍박, 주변의 압력에 무너집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냥 목숨 내놓는 겁니다.
두렵지가 않아요. 그게 영권입니다. 아무리 핍박 받아도 두렵지 않습니다.
영권은 부활의 권능에서 나옵니다. 난 죽어도 산다.
그냥 양심 팔고 신앙의 지조를 버리고 사는 것은 내가 원치 않는다.
수치스러운거니 그냥 죽는 거예요. 죽는 게 겁이 안 나는 겁니다.
물권을 이겨내는 영권이 있어야 물질 세계를 다루잖아요.
물질 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정신의 세계고, 정신의 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영의 세계입니다.
영의 세계에 깊이가 있으면 정신도 컨트롤해요.
우울증이나 정신 질환은 영계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못 다스리니까. 내 정신을 내 감정을 내가 못 다스리니까. 뭐가 오면 눌려버리잖아요.
근심과 염려를 한 두시간도 아니고 한 두달 간다면, 이미 잡혀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금식을 해도 마귀가 유혹을 하는데도
돌이 떡이 되도록 하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물리칩니다.
그게 영권입니다. 이런 영권이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권세가 있어요, 힘이 있다구요.
돌을 어떤 음식으로든 변하게 할 수 있는 주님이
사탄아 물러가라, 사탄아 물러가라. 정면대결 하잖아요. 영권으로!
바울이 지하 감옥에서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찬송가를 부를 수 있는 게 영권입니다.
구약에 영권을 가진 사람은 많습니다만 오늘은 한 사람입니다. 엘리야.
구약에서 가장 기적이 많이 일어났던 때가 출애굽 때와 엘리야 시대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의 승리,
그리고 3년 6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았던 땅에 비가 오게 하는.
야보고서의 결론을 뭐로 내렸냐면 야보고가 엘리야의 이야기를 하면서
야고보서 행함에 대한 야보고서의 결론을, 엘리야의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신약의 기도의 사람하면 야보고입니다. 여기서 야보고는 예수님의 동생이죠.
사도가 아닙니다. 너무 기도를 많이 해서 무릎이 낙타처럼 변한. 기도의 사람인 야보고가
구약의 전체 인물을 보면서 딱 한 사람 꼽아내는데
기도의 사람으로 엘리야를 찾아냅니다.
영권을 가진 엘리야의 삶에서 가장 뚜렷한 특징은 오직 한 가지, 기도였습니다.
◑기도의 권세, 기도를 통하여 하늘의 권세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첫 번째, 영적 수로가 열려야 합니다. 영적 수로.
우리나라는 수로가 많지 않지만, 외국에는 수로들이 있죠.
수원지의 댐에 어떤 물이 흘러오게 만드는 겁니다.
영권이 흘러오게 하는 어떤 수로가 있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 연결되도록 하려면 통로가 있어야 합니다.
수원지의 물이 우리 집에 들어오려고 하면 물에 관이 있어야 합니다.
수원지에 물이 아무리 많아도 우리 집으로 연결되는 수도관이 있어야 물이 나오잖아요.
이게 기도입니다. 통로에요.
하늘의 권세가 땅으로 임하게 하는 것. 이게 기도입니다.
신자에게 기도는 너무도 중요합니다.
사실 기도의 능력이 없으면 영권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영권을 얻는 핵심은 기도에요. 그 기도는 수로 역할을 합니다.
엘리야 시대는 답답한 시대였습니다.
시대 자체가. 모든 게 막혀 있는 시대였습니다. 수로 자체가 말라 있었어요.
수로가 없거나 수로가 말라있거나 녹이 슬거나 관이 녹슬거나 이러면 어떻게 해요?
아무것도 안되잖아요. 하늘의 권능이 아무리 많아도 안되는 겁니다.
반드시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 오게 됩니다.
능력 있는 기도란 이 관을 뚫는 것입니다. 관을 뚫는 것.
하늘의 권능을 내려오게 하는 수로 역할. 신자는, 하늘의 능력의 출처는
첫째, 둘째도 기도, 셋째도 기도입니다.
파이프가 없으면 물을 나를 수밖에 없는데요, 길어 나른다고 생각해보세요.
요즘 같이 아파트에서. 수로가 없으니까. 물지게 같은 걸 지고,
저는 10층인데, 엘리베이터도 없이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수로가 열려 있지 않으면, 하늘이 열려 있지 않으면 틀림없이 힘듭니다. 답답해요.
기도를 통해서 하늘의 보물창고가 열립니다. 모든 것은 기도를 통해 오는 것입니다.
인생이 열리려면 기도가 먼저 뚫려야 합니다. 기도가 열려야 인생이 풀립니다.
기도가 막혀 있으면 인생이 답답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한들 한계가 있어요. 인간은.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것은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이 풀어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열심만 가지고 이 세상에 들어가면 우리는 승산이 별로 없습니다.
세상은, 머리를 쓰고 음모를 꾸미고 사기도 치고 거짓말도 하고 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이깁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에, 다 같이 열심을 하지만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것이 풀려져야 일이 되는데,
될 듯 될 듯 하다가 안 될 때가 많잖아요. 하나님이 푸시는 겁니다.
인생이 풀리는 건 그거에요.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하시는 것.
안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뭐가 딱 스탑이 되버려요.
돈줄이 막히든, 사람 관계가 꼬이든, 결정적이 순간에 뭐가 막히면 끝난 겁니다. 게임 끝.
이것을 인정한다면, 뭔가 다르게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늘의 복이 우리에게 넘어오려면 통로가 뚫려 있어야 합니다.
삶이 답답한 분이 계십니까. 무엇인가 꽉 막히고 조여오는 느낌이 있다면
다른 게 아니고 기도가 막힌 것입니다. 수로가 막힌 것입니다.
기도가 막히면 마치 호미로 내가 땅을 파는 것과 같은, 물동이로 물을 나르는 것 같은..
기도의 수로가 열리면, 콸콸콸콸 틀면 나오는 겁니다.
요즘 인터넷, 얼마나 편리합니까. 인터넷은. 온 세계로 연결되어 있는 망이죠.
월드와이드웹이잖아요. 이메일이, 원터치로 그냥 미국으로 런던으로 파리로
아프리카로 연결이 돼요. 다른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이전에는 복잡하고 힘들었습니다. 연락하려면.
기도가 막힌 사람은 연결망이 없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가 그랬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일이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웠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 길이 열렸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톨릭처럼 중간에 거쳐야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다이렉트로. 이제는 직통이에요,
직통. 망이 열렸어요. 원터치에요. 애니콜이에요.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이제 하늘로 갈 수 있는 수로가 이미 열려있어요.
문제는 뭐냐면, 그 특권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그 열려진 길에 돌멩이고 뭐고 잡초가 우거져 있는 겁니다.
내가 이용을 안 한 거예요, 이용을. 수로가 있는데 그냥 막혀 있는 거예요.
활짝 열린 관계 안으로 왔다갔다해야 대로가 열리는 겁니다.
기도를 하는데 잘 안되잖아요? 그게 수로가 막혀 있어서 그래요.
잡초가 우거지고 돌멩이도 있고. 고양이도 왔다갔다,
똥개도 볼일 보고 가고, 길이 엉망이 된 거예요.
이번 기회에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활짝 열려있는 대로에 청소를 다 하시고
벌초도 하시고. 돌멩이도 다 들어내시고. 신작로를 내는 거예요.
하이웨이를 내는 거예요. 수로가 확, 뚫리는 겁니다.
이게 먼저 작업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 자체가 안 되면 안 되는 겁니다.
일단 여러분, 평소에 기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괜찮지만,
열려져 있는 길을 닦으셔서 수로가 활짝 열려서 기도가 되는.
기도를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별 도리가 없습니다.
먼저, 이 기도의 수로가 열렸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이용만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기도를 하지 않은 사람은 이용을 하지 않은 겁니다.
기도를 뚫어라. 기도가 열려야 한다는 겁니다.
▲2, 기도할 때 하늘 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본문을 보면,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의 기도는 하늘문을 닫고 여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기도는 하늘문을 닫고 여는 권세가 있다는 겁니다. 하늘의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풀 수 없는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지점을 훌쩍 뛰어넘는 경험, 기도를 통하여
하늘의 영권을 가지면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겁니다.
같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차원이 다른 겁니다. 하늘문이 열린다는 이 말은,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얘깁니다. 다른 세계는 뭡니까?
예레미야 33장 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게 뭐에요?
네가 부르짖으면 내가 네게 응답하리라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겠다.
그게 뭔지 우리는 잘 몰라요, 그런데 하늘문이 열린다는 거예요.
그럴 때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행차하시는 겁니다. 성경을 보면 하늘문이 열리는 일이 수없이 열립니다.
초자연적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상식적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신자들도 기적을 믿지 않고 기적을 구하지도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홍해 갈라지는 역사는 하늘문이 열려야 가능한 일입니다.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일도 하늘문이 열리면 가능한 것입니다.
내 삶에 하늘문이 열릴 때에 크고 작은 하늘의 수많은 능력을
오늘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늘문이 열리면 삶의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집니다.
오랫동안 끊을 수 없던 내 삶의 중독현상도 한순간 끊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술 중독, 끊기 어려워요. 주독에 한번 걸리면. 웬만해서는 술 중독 끊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하늘문이 열리면 끊어져요.
담배 중독, 하늘문이 열리면 끊어집니다. 그러면 맛이 일단 확 가버려요.
그렇게 골초였던 분이 저 멀리서 누가 담배만 피워도 구역질하는 겁니다.
갑자기 하나님 역사하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희한한 역사입니다.
술 드시는 남편 자꾸 잔소리 하지 마시고 기도 많이 하세요.
가정파탄 지경까지 갔다가도, 하늘문이 열리면 회복이 됩니다.
경제적으로 길이 보이지 않았는데 하나님 역사하시면 희안한 일이 일어나요.
연락 끊겼던 사람이 막 연락이 오고, 그렇습니다.
간증들 많이 들으셨잖아요. 그렇게 내가 사업을 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데
생각지도 않은 일이 일어나면서 막 밀려오는 겁니다.
하늘문이 열리면 때로는 병자가 낫고 사탄이 떠나가고
나를 사로잡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는 겁니다.
하늘문이 열린다는 이 말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없는,
내 힘과 수단과 방법으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겁니다.
하나님이 마스터키를 늘 맡겨놓진 않으시고 빼앗아 가십니다.
아예 맡겨놓으면 안 찾아오니까, 필요하면 주시는 겁니다.
인간의 한계성을 뛰어넘는 역사를 경험해보면 신앙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하늘문이 열리면 하늘을 체험하는 것이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늘문을 여실 때, 하늘문이 열리는 것을 본 사람은
인생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늘문이 열리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요,
그 순간 성경 안으로 들어간 겁니다. 전에는 성경 바깥에 있었어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희한하다.’ 그러고. 성경 바깥에 있다가.
하늘문이 열리는 체험을 해보면 내가 성경 안으로 들어간 거예요.
이론이 아니에요, 성경이. 기도를 경험하기 전에는 신앙이 이론입니다.
실제적으로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신앙이 매우 메말라 있어요.
모든 문제를 기도로 풀어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인간적 수단과 방법으로 문제를 푸려고 하는 습성이 매우 익숙해져 있습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기도생활을 웬만큼 한 사람도
아차 하는 순간에 인간적인 방법이 나옵니다.
저에게도 그런 게 있습니다. 어느 날, 기도 안하고 내가 왜 이러지.
아차 하는 순간이에요.
인간이 얼마나 자기의 힘을 의지하고, 자기 능력을 의지하고, 자기 가진 것을 의지하고
자기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 것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몰라요.
그런데 우리가 기도를 평소에 하지 않은 사람, 말할 것도 없어요.
우리가 기도를 얼마나 무시하고 사는지 몰라요.
기도를 무시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무시한다는 말입니다.
‘그 문제는 나에게 와야 하는데 너 뭐하냐 지금?’
여러분 기도하는 게 얼마나 우선순위에 밀리는지 몰라요.
안타까운 일은 기도가 마지막 수단이라는 거예요.
최초의, 최후의 모든 것이 기도여야 하는데
‘마지막 수단으로 아이고, 기도나 해보자.’
하나님이 참 너그러우셔서 그래도 자비를 베푸시지만.
다 깨지고 다 헝크려놓고 찾아오는 거예요.
기도는 마지막 수단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삶의 처음부터.
기도를 마지막 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는 겁니다.
이것 저것 다 해보고, 안 되면 기도한데요.
기도를 무기력한 사람의 전유물로. 너 기도나 하고 있을 때입니까? (아닙니다)
기도로 문제를 확실하게 풀어본 적이 있습니까?
다른 것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기도로만 문제를 풀어본 경험을 가진 적이 언제였습니까.
이게 있어야 해요.‘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기도하다가 중간에 흐지부지하지 않고 기도로 뚫고 나가본 경험.
기도로만 돌격 앞으로 해서 뚫고 지나간 경험을 해본 분들이라면
다른 차원을 살고 있는 거예요. 하늘문이 열린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끝장을 내는 승부 기질.
이게 있어야 하나님이 감당치 못할 자로다. 엘리야의 기도는 태도가 달라요.
아주 간절합니다. 이 기도에 있어서 간절성,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죽습니다, 나는 외길입니다.
하나님, 역사해주십시오. 이 태도입니다.
영권은, 기도로 하늘문이 열리는 경험을 한 사람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하늘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권세가 임하는 것을 본 사람은,
거룩한 배짱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해도, 하늘문이 열리면 된다는 확신이 있으면 당당한 거예요.
포스가 달라요,
그런 사람은. 어떤 문제가 터지면 이런 사람은 눈이 반짝반짝합니다.
위기가 오면 모든 사람이 다 겁먹고 절망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착각하지 마세요.
그런 순간이 오면 더 초롱초롱해지고 기대감에 설레는 사람이 있어요.
영적 권세가 있는 사람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고 꼬여도
하늘문이 열리면 간단한 일입니다.
이것을 경험치 못하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로 모든 것을 풀어가는 체험이 여러분의 삶에, 몸에, 배여지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경험해보십시오.
“나는 기도로 문제를 푼다. 내 방법과 재주와 머리를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기도로만!”
이걸 몸에 배이게 하자는 겁니다.
문제가 오면 마지막 수단이 아니라 최초의 수단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늘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할 때에 우리에게 영권이 임하는 겁니다.
▲3. 우리가 기도에 대해 너무 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일상의 기도 생활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능력의 기도만 보고 부러워할 수 있는데,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야고보서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야고보서는 5장 17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이 말은, 똑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 여러분, 그러면 엘리야의 이 기도가 어떻게 나타났느냐,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인가? 아니에요.
오랫동안 기도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느 날 능력이 나온 거죠.
위기의 시대에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 속에
엎드려 기도하는 삶을 살아온 겁니다.
기도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닙니다. 어느 날 한번 알라딘의 램프처럼 지니가 나와서
모든 상황을 바꾸는 게 아니에요. 기도에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그러니 성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 생활에 성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게으르거나 바쁘면 기도 못해요. 언제나 변함없이 무릎 꿇는 성실함.
이게 수로를 여는 사람들이죠.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
하나님과의 긴밀한 내통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하게 되고
그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좋은 영적습관을 가지는 게 중요한데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성실하게 일상에서 기도를 훈련해야 합니다.
그냥 반짝 새벽기도나 부흥회 때 하고 일년 농사 지었다, 이러면 안되는 거예요.
일상의 기도라는 말은 따로 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간단한 기도를 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을 감아도 되고 눈을 떠도 돼요. 눈을 감으면 감은대로,
눈을 뜨면 뜬 대로. 운전하면서 기도 얼마나 좋습니까.
소리를 내어도 되고 안 내어도 되고. 사람들 있는 데서는 가만히 속으로 해도 좋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열려 있으면 언제든지 기도가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와서 특별한 시간에만 기도해야 한다는 사람은 문제가 있어요.
일상이 모든 영역에서 기도의 삶이 되도록 하는 연습에 불과합니다.
짧은 기도지만 순간순간 하나님이 내게 어떤 생각을 주신다면, 그것을 기도로 바꾸는 것.
생각을 기도로 옮기는 훈련.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주님께로 가지고 나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너무 즐겁죠. 모든 시간이 기도가 되는 거예요.
모든 삶의 순간순간이 하나님과 연결이 되도록 하는 것.
컴퓨터를 켜놓은 것과 똑같습니다.
이 짧지만 일상 속의 수없는 하나님과의 대화를 이루면
짧은 기도지만 역사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뉴스 보다가도 기도 많이 하잖아요. 하루 종일 지냈는데 어떤 느낌,
어떤 감정들 이런 걸 다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겁니다.
일상의 기도가 중요합니다.
일상의 기도는 모든 시간이 하나님께 열려져 있는 것. 대화가 되는 것.
그러면 반질반질한 수로에요.
기도를 너무 어렵게 생각치 마세요. 그냥 떠오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겁니다. 열려 있습니다.
▲4. 네 번째, 깊은 기도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늘 기도하지만, 깊은 기도를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 내가 하나님께 푹 빠져들었다는 경험을 해보셨습니까.
이게 뭐냐면 집중력 있는 기도입니다.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집중력 있는 기도를 하지 않으면 소용 없는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훈련이 필요하지만 성령이 도우시면 언제라도 가능해요.
하루에 단 한번이라도, 그게 10분이든 30분이든 상관없지만
푹 담겨졌다고 하는 느낌. 푹 빠져들었다는 느낌.
하나님께 미끄러져 들어간 듯한. 몰입의 기도. 기도 마치고 나면 개운한,
푹 젖어들었다는 느낌. 하나님이 내 기도를 받으셨다는 느낌.
기도를 마치니까 하늘문이 열리는 듯한 느낌. 할렐루야.
이것을 하루에 반드시 한번은 경험해야 합니다.
하루에 한번이라도 하늘과 연결이 되는, 기도의 경험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어찌 하루 한번이라도 하나님과 접촉이 일어나지 않고 하루를 살 수 있겠어요.
엘리야의 기도는 집중력의 기도에요. 기도는요, 집중력의 기도입니다.
집중력의 기도는 강력한 겁니다.
평상시의 일상적 기도와 다르게 하루에 한번 집중력 있게.
엘리야는 어떤 기도로 유명합니까.
무릎과 무릎 사이에 머리를 집어넣었다고 해요. 거의 요가 수준이에요.
이게 뭐냐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본 거죠.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겁니다.
완전히. 기도도 태도가 매우 중요합니다. 해보면 그렇습니다.
하루 한번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세요.
무릎이 안 좋으신 분들은 무리하지 마시고. 간절함은 표현하세요.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게 달라요. 벌써 내 안에 겸손함이 찾아와요.
자세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잖아요. 무릎을 완전히 꿇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때, 내 안의 교만함이 빠져나가고 집중력이 생겨요.
여러분, 사탄은 기도의 집중력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알기 때문에 방해합니다.
집중하지 못하게 해요. 분주하게 만들고 분산시키고. 기도를 못하게 합니다.
좀 하려고 하면 일이 생기고, 좀 하려고 하면 핸드폰이 울리고.
기도를 할 수가 없어요. 핸드폰이 아주 우리의 영혼을 분산시킵니다.
기도하는 시간에는 그냥 밧데리 빼버려요.
뭔가 잡념에 사로잡혀 있는. 자기만의 기도의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집중력 있는 기도가 결국 문제를 뚫고 나가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뚫린 기도, 뚫는 기도는 한 마디로 되는 기도다. 기도가 되는구나.
이걸 본인이 알아요. 기도가 된다, 본인이 알아요.
기도를 마치고 나면 금방 자신도 느낍니다. 그 때 오는 만족감.
하늘이 열렸을 때 오는 만족감. 우리가 기도를 할 때 시간만 채울 때가 있어요.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잡념에 시달리다가 갈 수가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 흘러야 됩니다. 급류가 흐르듯이. 내가 기도하는 게 아니라
기도가 나를 이끌어나가는 듯한 느낌. 기도하는데 금방 30분이 지난 거예요.
금방 30분이. 이게 기도에 깊이 빠진 겁니다. 그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서 얻는 황홀경이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지만
하나님과 일치를 맛보는 황홀경에 빠져들고
그 기도의 세계 속에 신비를 맛보는 은혜도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영적의 피안도 그 기도의 세계 안에서 볼 수 있어야 하고
하나님과 나와의 독대를 통해 하나님과 나만의 영적인 비밀을 가진 자가 되어야
이 땅의 권세 있는 주의 백성이 될 줄로 믿습니다.
표현이 안 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박한 시대입니다.
주변에는 만만한 게 없어요. 아차하는 순간 벼랑 끝입니다.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하늘문이 열릴 기회입니다.
어려운 순간이야말로 기도를 배우고 영권을 얻는 순간입니다.
▲5. 편안할 때는 기도가 잘 안 됩니다. 엘리야가 왜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위기의 시대를 넘나들었기에 엎드려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오늘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위기의 순간을 맞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늘, 내가 하늘의 영권을 얻고 하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요,
내 신앙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이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편안한 환경에서는 웬만해서는 기도를 배우기가 힘듭니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고수는 일이 없을 때 사람을 만나요.
하수는 일이 생겨야 비로소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영적으로 고수는 일이 생기지 않아도 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도 형편이 어렵지 않아도
늘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고수에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수는 일이 생겨야 기도를 해요. 영적 하수.
일이 생겨야 기도하는 사람. 진짜 더 하수가 있습니다.
일이 생겨도 기도 안 하는 사람. 이건 거의 배째라 수준입니다.
미리 기도로 삶을 준비한 사람은 일을 만나도 쉽게 통과합니다.
일이 생기면 막 기운이 생겨요. 위기가 기회로 변한다는 것을 익힌 사람들.
영권을 가진 사람들. 담대합니다.
엘리야가 위기 앞에 더 강력해졌습니다. 힘들면 더 힘이 납니다.
하늘의 권능이 임한 것입니다.
기도로 하늘문을 연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 하늘문을 열고 그 시대를 완전히 해결하는, 그런 통치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의 권세가 회복되면 하늘의 영권이 우리에게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의 권세를 반드시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로 수도의 문을 열고 하늘문이 열리는 역사를 통하여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영적인 거인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제별 설교 > 권세설교 30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권위주의 와 영적권위 삼상3:19~21 (0) | 2022.03.04 |
---|---|
귀신을 제어할 권세를 가진 자 (0) | 2022.03.04 |
깨어짐과 권위 벧전 2:23, 고전13:4-7 (0) | 2022.03.04 |
능력은 있는데, 권위가 부족하다 마7:29, 5:9 (0) | 2022.02.27 |
사역자의 권위의 세 받침 엡4:11~12 (0) | 2022.02.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