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제1권-6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161-190

by 【고동엽】 2022. 3. 3.
[처음 목차 돌아가기]
 
 

161.죄와의 대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기를 죄를 지은 다음에 그 죄를 덮어두면 그 만인 줄 압니다. 다른 사람의 눈만 가리우면 괜찮은 줄 생각합니다. 일시적으로 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선 분명히 알 것은 죄를 다른 이들에게는 가릴 수 있지만 자기 양심에게는 가릴 수 없습니다. 양심은 조용히 죄지은 사람을 찾아내서 그 사람이 죄와 항상 대면하게 만듭니다.
잠언에 보면 죄지은 사람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간다고 하였습니다. 왜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데 도망갑니까? 그 사람의 양심 속의 죄가 그 사람을 쫓아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 사람의 마음속에 공포를 일으키게 합니다.

 

 
 



162. 이비커스 이야기

이비키스는 주전 약 5세기에 산 사람으로 유명한 시인 가운데 한 분입니다. 이 사람이 고린도에 가까운 촌에 여행을 갔다가 어떤 산골짜기에서 강도를 만나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매를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너무 억울해서 죽기 전에 크게 외치기를 마침 그 주위를 빙빙 떠돌고 있던 학을 보고 하는 말이 “너 학은 내가 이런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니 내가 죽은 다음에도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말을 강도가 다 들었습니다.
그 후 여러 달이 지나도 그 도적을 잡을 길이 없고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고린도의 노천 극장에서 연극을 하게 되어 많은 사람이 모여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학 몇 마리가 공중에 날아와서 빙빙 돌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은 어떤 사람에게 거이 머리에 닿게 날아다닙니다. 그러니까 거기 앉았던 사람 가운데에 어떤 사람이 외치는 말이 “아 이비스키의 학이 여기 원수 갚으려고 오누나”하고 말을 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 말을 듣고 알아보니 그 사람이 도적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소리를 했을까? 남이 다 가만있는데 학이 머리 위로 날아가면 어떻습니까? 죄가 그 사람의 양심 속에서 그 사람의 죄를 찾아내서 그 사람의 양심 속에서 그 사람이 범한 무서운 죄를 대면하게 했습니다

 

 
 



163.가룟 유다를 보라

죄는 사람의 생각을 처음에는 무척 괴롭히지만 자꾸 죄를 지으면 양심이 마비되어서 그 다음에는 죄를 양심 속에서 찾아 만날 길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 그럴 수도 있습니다. 죄로 인해서 양심이 마비되어 그를 찾아내지 못 한다고 하지만 꼭 피하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그곳은 어디인지 아십니까? 사람의 성품 속에서 죄가 그를 찾아내고 맙니다.
사람이 한번 죄를 지으면 흰 손수건을 더러운 물에 한번 담그는 것과 같습니다. 이 손수건은 꺼낼지라도 더러운 물이 이 손수건에 듭니다. 한번 더 담그면 그만큼 더러운 물이 듭니다. 그래서 더 더러워지고 검어집니다.

사람이 한번 죄를 지으면 그만큼 더 부패하여 집니다. 두 번 죄를 지으면 그만큼 더 그 성품이 부패하여지고 세 번 지으면 그 만큼 더 그 성품이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한번 주사 맞고, 두 번 세 번 주사 맞아서 마지막에는 아편쟁이가 되고, 한잔 마시고 두 잔, 석잔 마시고 그 다음날 마시고 나중에는 고주망태가 되고, 거짓말 한번 두 번 세 번하여 나중에 거짓말쟁이가 되고 맙니다.
여러분 가룟 유다가 하루아침에 은 30냥 받고 선생을 판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요한의 기록대로 보면‘저는 도적이라 맡긴 돈을 몰래 쓰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 님과 12제자를 위해서 회개의 직분을 맡아 가지고 그 가운데서 한번 도적질해 쓰고, 조금 도적질해 쓰고 나중에는 돈을 원하고, 돈을 사랑하고, 돈 때문에 부패한 성품이 결국은 자기의 선생님까지 팔아먹은 가룟 유다를 만들었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죄는 부패한 그 사람의 성품 가운데 반드시 찾아 만나서 대면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164.피 맛을 본 호랑이

이런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인도에 어떤 사람이 산에 가서 어떤 작은 호랑이 새끼를 잡아다 길렀는데 고양이처럼 집에서 먹이고 길렀습니다. 말 잘 듣고, 길이 잘 들어서 좋다고 하면서 길렀습니다. 어느 듯 점점 자라서 중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이 주인이 낮에 고단하여서 졸았습니다. 전에는 졸 때에도 작은 호랑이가 옆에 앉아서 손발을 핥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졸다가 갑자기 놀라 깨니까 그 호랑이가 그 사람의 손을 깨물고 있었습니다. 그 호랑이의 눈을 보니까 불처럼 되었는데 야수성이 나타나서 그의 손목뿐 아니라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야단하였습니다. 요행히 옆에 총이 있어서 곧 총을 가지고 쏘았습니다. 어떻게되었나 하면 그 사람의 손을 상해서 붕대로 감았는데 이 호랑이가 핥는 바람에 그 붕대가 풀려서 피가 나왔습니다. 이 호랑이가 그 피 맛을 보고는 물고 늘어졌다고 합니다.
죄라고 하는 것이 작은 호랑이 같아서 처음에는 별로 겁낼 것이 없습니다. 크게 상하는 것도 없고 잘 지킵니다. 그러나 점점 자라면 그 악한 성품이 죄를 통해서 결국은 그 사람을 망하게 만듭니다. <죄와의 대면>에서

 

 
 



165.신앙의 어머니

어머니의 믿음은 어떻게 하면 꼭 아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기르고 바로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데 나타납니다. 자연히 양육과 교육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어머니의 믿음과 교육을 생각할 때 우리교회 역사에 있어서 주후 2, 3세기에 산 유명한 교부(敎父) 오리겐의 어머니를 연상하게 됩니다.
오리겐은 날 때부터 천재로서 매우 총명하였습니다. 말을 배우자마자 세 살 네 살 적부터 시편과 산상보훈을 다 외고, 7, 8세 되었을 때는 성경의 대부분을 그저 머리 속에 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별명을 들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재주가 있지만 혼자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의 덕이올시다.
이렇게 어렸을 적부터 믿음이 있었던지 17세 때 큰 핍박이 일어나서 자기 아버지가 로마 관원에게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수감(收監)중에 있는 자기 아버지에게 그때 17세의 아들이 편지하기를“조금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굳게 지키세요, 그리고 믿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수감 중에 있는 자기 아버지에게‘믿음을 지키라’고 격려했습니다. 순교했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순교하겠다고 자기 아버지가 순교한 곳으로 떠나갔습니다.
그때 어머니의 말씀이 내가 네 믿음은 알지마는 순교하는 것은 다 하나님의 때가 있는데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순교하게되면 하려니와 순교를 자청(自請)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어머니의 제재로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18세 때에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유명한 신학교의 대리 교장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자기 어머니에게 이와 같은 철저한 교육을 받은 오리겐이올시다. 그 후에 온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큰 일을 한 것은 교회 역사를 읽는 사람은 다 기억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믿음을 생각하게 되면 자연히 어머니의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아기를 하나님 앞에 바칠 분더러 믿음의 어머니의 입술에는 가정을 위해서 끊임없는 기도가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생각하게 될 때에는 주후 4, 5세기에 걸쳐서 산 어거스틴 어머니 모나카를 연상하게 됩니다. 이 어거스틴은 그 때 로마 판도인 북 아프리카 힛포 라는 데서 멀지 않은 다가스데 라는 작은 촌에서 났습니다. 자기 아버지는 신앙이 없고 방탕한 사람이었으나 자기 어머니 모니카는 믿음이 독실하고 총명하고 애정이 깊은 아주 경건한 부인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머리가 좋고 총명하고 재주가 많아서 어렸을 적부터 매우 공부를 잘 했습니다. 이 학교 저 학교에서 매우 공부 잘한 수재올시다.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당시에 젊은 사람들이 공부하던 수사학, 철학, 문학 모든 학문을 잘 배워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되고 사실 수사학 선생으로 여러 곳에서 불리 움을 받게 된 그런 학문적 기반을 닦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말하면 어거스틴은 방탕한 성질을 아버지에게서 받았습니다. 이렇게 재주가 있어서 공부는 잘하고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치지마는 그 행실은 부족했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권면하지마는 예수는 믿지 아니했습니다.
오히려 그 때 이단이 마니교를 따라다니며 어머니의 마음을 더 상하게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이 아들이 회개하게 해달라고 아무리 기도했지만 응답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30 남짓해서는 북 아프리카 지방을 떠나서 이제는 이렇게 북 아프리카에만 있을 것이 아니라고 로마로 가서 내 이름을 날리고 활약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로마 제국의 수부(首府) 로마로 향해서 가려고 합니다.
그 때 청년들이 흔히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 모니카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입니다. 이곳 자기 어머니 앞에서도 항상 실수하는 청년이 호화롭고 죄악이 많은 로마 도시에 가서 어떤 깊은 죄에 빠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로마에 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어머니 모니카는 마음이 너무 상해서 자기 목사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내 아들을 위하여 지금까지 기도하고 특히 로마에 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종래 이 아들이 로마에 가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 목사가 하는 말이“그렇게 많은 기도를 받는 사람이 그냥 죄 가운데 있을 수는 없으니까 과히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후에 혼자 보내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어머니가 로마로 따라갔습니다. 로마에서 얼마 있었고 그 당시 좀 북편의 밀란 이라는 큰 도시가 있었는데 밀란 에 가게되니까 거기 또 따라가는 등 같이 다닙니다. 그런데 이상스럽게 밀란 이란 곳에 그 당시 유명한 암브로스라는 목사요 설교자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거기서 암브르스의 명성을 듣고 그의 설교를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그 예배당에 한 두 번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려다가 33세 때에 밀란 교외에서 고요히 동산 속에 앉아 있으려니까 어떤 아이의 소리인지는 모르지만“어서 책을 펴서 읽어라”는 소리가 들려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고 성경을 찾아 펴서 읽으니까 그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니고 로마서 13장 23―14절이었습니다.“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 성경 구절을 받은 다음부터 온전히 변해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온전히 회개한 후에 그 다음 부활절에 세례를 받고 너무 기뻐서 내가 이제는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고 본 고향에 돌아가서 좀더 공부해서 내가 이 앞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멀리 북 아프리카를 향해서 모자(母子)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로마를 좀 지나서 작은 어떤 촌에서 자기 어머니가 병들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가“내가 여기서 세상을 떠난다고 조금도 섭섭해 말라, 나는 내 기도를 이루었으니 나는 한 이 없다”“내 시체를 어디 장례 할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고 “내가 네게 한가지 부탁하는 것은 네가 제단에 나가서 기도할 때마다 나를 기억해 달라”는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166.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

제가 작년(1957년)에 로마에 갔다가 밀란 이란 곳에 잠깐 내렸는데 밀란 교외에서 삼보를 하면서 암브로스를 생각하고 또 어거스틴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태리에 여러 아름다운 도시가 많지만 밀란 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없는 곳 같습니다. 북편으로는 아름다운 알프스 산이 흰 눈으로 덮인 채로 병풍처럼 둘려 있고 그 아래는 기름진 넓은 광야가 있고 그 가운데는 맑은 강이 흐르고 그 속에 밀란 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라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제가 나이는 많지만 이런 예(例)는 종종 보았습니다.
이와 같은 기도의 어머니는 그의 전 생활이 자녀에게 산 모범이 됩니다. 어머니의 기도의 모습, 어머니의 교회에 나가는 모습, 어머니가 가정에서 가정기도회 보는 그 모습, 어머니의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 하는 모습, 다른 사람을 구제하는 모습, 다른 사람에게 친절히 하는 그 모든 모습은 자녀에게 영원히 산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167.헨리 위드와 링컨의 어머니

미국 남북전쟁 때 유명한 설교가 헨리 위드 비쳐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이가 이 비슷한말을 헸습니다.“나는 한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철학자, 과학자가 전부 모여서 기독교를 반대하고 한편에 경건한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고 하면 내 어머니 한 분이 이 모든 사람을 다 대적하고 도 남는다”고 하였습니다. 산 교훈을 줍니다.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 링컨이“나의 현재 생활 전부와 또한 내가 장차 바라는 장래 생활의 전부도 오직 천사 같은 나의 어머니에게 빛 진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천사와 같은 어머니, 믿음의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천사와 같은 인상(印象)을 주게 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로이스와 유니게와 같이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여기 앉은 어머니들은 천사와 같은 어머니가 되고 여기 앉은 아들은 디모데와 같은 아들이 되기 바랍니다. <어머니 마음>에서

 

 
 



168.기독교와 어린이

마가 10장 13­16절에 있는 말씀은 어머니들이 자기 아이들을 예수 님께서 한번 만져주시기를 원하여서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 님께 나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 그 이유는 별로 적혀 있지 않지만‘예수 님께서 여러 가지 큰 일에 바쁘신 데 곧 어른들만 가르치기도 바쁘신 데 어떻게 어린이들까지 이렇게 분주하게 하는가?’라고 생각하여 꾸짖은 것 같습니다.
예수 님께서 그 말씀을 듣고 분이 여기셔서『어린아이가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면서『천국에 있는 사람들이 다 이와 같은 자 들이라』고 말씀하시며 아이들을 다 자기에게 오게 하고 어린이들을 자기가 친히 안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안수해 주시면서 다 복을 빌어주시고 계속해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너희들이 하나님 나라 받들기를 이 어린이들과 같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 님의 생활 가운데 한 간단한 일화이고 간단한 교훈입니다. 하지만 예수 님의 어린이에 대한 이런 태도, 또한 이와 같은 교훈이 세계 역사를 통해 준 영향은 심히 큰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어린이들에게 이런 태도를 취하셨고 또 어린이를 중심으로 하는 귀한 교훈을 주셨음으로 어린이들이 이 세상에 있어서 사회적 지위와 법률적 권리 등 이런 모든 방면에 큰 영향을 준 것입니다.
사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여러 나라, 여러 사회, 여러 문명 가운데서 어린이들에 대한 태도를 찾아보면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가장 오랜 문명을 찾아볼 때 옛날 5천년 전 애굽의 문명을 기억하게 됩니다. 애굽이 5천년 전에 각방면에 문명이 발전했던 것을 우리가 찬탄(讚歎)해 마지않는 점이 많습니다. 그렇지마는 그 사회에서 어린이를 어떻게 했는가는 출애굽기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물론 애굽 어린이들은 잘 대했겠지만 그들의 종노릇하는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은 여자를 낳으면 그냥 살려두었지만 남자를 낳으면 곧 나일강에 던지라는 법령을 내린 일도 있습니다.
애굽을 문명한 사회라고 하였지만 어린이의 지위가 이런 지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서양 문화 가운데 문명한 사회를 생각하면 헬라문화를 기억하게 됩니다. 지금부터 4천년 전에 어떻게 철학과 예술이 발전되었고 과학이 발전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다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마는 그 나라 사회에 들어가 볼지라도 여기 헬라의 여러 나라 중에 스파르타라고 하는 작은 나라는 아예 아이들을 낳으면 국가에서 검사관을 보내서 커서 좋은 운동가나 군인이 될 수 있으면 그에게 그냥 기르라고 하고 그렇지 않고 뼈가 약하고 약질로 생겨서 그 애가 커서 국가의 부담이 될 것 같으면 그 애는 기르지 않고 버리라고 했습니다.
만일 영국의 유명한 아이작 뉴턴 같은 사람이 스파르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하면 낳자마자 내다버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팔싹 동이올시다. 맨 처음 낳은 다음에는 뼈가 채 굳지도 못하고 약한 것을“이것이 다음에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면서 의심하여 길렀습니다. 길렀더니 제일 머리가 좋은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동양 5천년 문화를 가끔 이야기 하지만 기독교 문화가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동양에 있어서 어린이의 생명이란 것도 이보다 더 귀한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 동양에 있어서 어린이의 생명은 부모에게 절대의 권리가 있어서 사실 부모는 자녀의 생사에 대한 권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옛날은 부모가 자기 아이를 죽이면 그것이 법률상 죄가 되지 않고 더욱이 노예의 아들이나 노예의 어린이들은 짐승의 새끼와 같이 어릴 때부터 팔고 사고했습니다. 이와 같이 어린이의 생명이 천한 대우를 받은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를 볼 것이면 기독교 문화가 들어왔고 현대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법률적으로 어린이의 생명이 보호를 받는 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면 서울 안에서 거의 매일 어린이를 내다 버리는 영아 유기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어떻게 어린아이가 났던지 그것은 말할 것 없고 우리 사회의 일반 사상이 어린이의 생명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할 것은 이 세상에 예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오셔서 아이들을 귀히 여기시고 아이를 존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면서 오히려 어린이에게 배우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어린이도 그 생명에 존귀성을 갖게 되었고 점차 기독교 문화가 보급됨으로써 어린이의 생명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게되고 법률적으로도 인정 받게 된 것을 생각 할 때에 이 간단한 일화와 교훈을 우리가 소홀히 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과 어린이>에서

 

 
 



169.진리의 매매

마태복음 24장 5절에『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특색은 나는 누구라고 해서 영광을 진리이신 예수 님께 돌리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돌립니다. 영광을 그리스도께 돌리느냐 자기에게 돌리느냐 그것을 보고서 참된 선지자와 거짓된 선지자들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또 유다 서 1장 8절에『그러한 때 꿈꾸는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毁謗)하는 도다』 이 사람들도 꿈 많이 꾸겠다고 하였습니다. 보통 꿈만 꾸지 않고 계시를 받는 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권위를 업신여기겠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권위를 없이 하겠다고 했습니다. 현실 교회를 비방합니다. 영광을 훼방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이요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하나님의 교회를 훼방하겠다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의 증거를 분명히 알고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다 서 4절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色慾)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제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이니라』베드로 후서 2장 2절에는『여럿이 저의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 받을 것이요 하나님은 은혜를 색욕 거리로 삼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 사람들은 호색하는 사람이 되어서 결국은 음란한 일로써 하나님의 교회가 훼방 받게 만들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교회사를 보면 사실 이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몰몬 이라는 사교가 있습니다. 이 몰몬 사교를 설립한 요셉 스미스라는 사람은 계시를 받고 계시 가운데 몰몬 성경까지 받아서 썼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에는 여자를 많이 얻으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육 칠십 명 얻었습니다.
종교 개혁 때에 독일 문스터 시를 중심으로 하고 잔 오브레이드 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하면서 몬스터에 새 예루살렘 교회에 가야 구원을 얻는다고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마지막에 여자를 열 여섯 명 얻었습니다. 은혜를 색욕 거리로 삼았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떠돌아다니는 이상한 말은 없습니까? 정신 차려야 합니다. 진리를 살지언정 팔지는 말라 진리를 사야 합니다.
우리 인생 일생에 할 일은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를 사서 진리를 내 소유로 만들고 팔지 말고 끝까지 진리 안에 사는 것이 우리 인생 일생에 본분이 되는 것입니다.
천로역정(天路歷程)의 기독 도라는 이가 호화 시를 지나갑니다. 그 호화 시에 세상의 모든 허영의 상품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장사하는 사람이 기독도 보고“이것 사세요, 저것 사세요”합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사지 않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당신은 무엇을 구합니까?”묻습니다. 기독 도는“진리를 구합니다. 꼭 진리를 구해야 되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스펄죤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온전히 진리만 사라, 진리의 전체를 사라, 진리는 어떤 값을 주고라도 사라, 진리를 산 다음에는 절대로 놓지 말고 진리는 사고 팔지 말라” <진리의 매매>에서

 

 
 



170.웨슬레의 어렸을 적 일화

요한 웨슬레의 사적을 볼 것 같으면 그가 내 살 되었을 때 하루는 그가 이층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아래층에서 불이 났습니다. 방이 전부 불에 둘려 싸였습니다. 어른도 다 뛰어 나오고 물건도 다 들고 나와서 이제 다 살아난 줄 알았는데 나와 보니까 이층에 어린애가 자는 것을 그냥 버려 두고 내려왔습니다 불길이 사방에 퍼졌는데 올려다보니 문 창으로 아이가 깨어나서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보고 어른들이 얼른 사람 위해 사람이 올라가서고 그 위에 또 사람이 서서 그 얘기를 겨우 구했더니 그 아이가 그 다음에 커서 위대한 위슬레가 되었습니다.

 

 
 



171.핀잔 받는 전도사

정월 초하룻날, 어떤 집에 전도하려 들어가 보니 여러 젊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서 화투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는 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도 지를 주며 예수 믿으라고 하니 대단히 시끄럽게 여겼습니다.“잘 노는데 기분 나쁘게 회개하라고?”이런 핀잔을 들었습니다. 아주 시끄러워 합니다. 아주 싫어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친구나 그런 친척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오늘 아침 예배당 갑시다”하면 속으로는 대단히 시끄럽게 생각합니다.“남은 좀 집에서 편안히 잇으려고 하는데 예배당에 가자고?”하면서 대단히 시끄럽게 생각합니다.

 

 
 



172.고스란히 도적 맞은 이야기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전에 어떤 사람이 오늘 저녁엔 좀 잠을 편안히 자겠다고 해서 밤에 개가 짖으면 시끄러울 터니 개를 죽였습니다. 닭도 새벽에 울면 시끄러울 터니 닭도 죽였습니다. 그리고서는 아예 문을 꼭 eke고 불도 다 끄고 편안히 잘 잤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실컷 자고 일어났습니다. 닭소리도 없어서 잘 잤습니다.“이거 몇 시쯤 되었나?”하고 시계를 보니까 시계가 없어 졌습니다. 그 다음에 옷을 입으려고 하니 의복도 없어졌습니다. 재봉틀, 라디오 그밖에 중요한 물건은 거이 다 없어졌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자는 가운데서 깨라고 하면 싫어합니다. 시끄러워 합니다. 설교도 보통 다른 설교하지 이렇게 깨라고 하는 설교는 시끄러워 합니다.
그러나 어찌하여 깨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자지마는 여러분의 마귀 원수가 자지 아니합니다. 우리 원수 마귀는 자지 아니하고 우는 사자와 같이 밤중에도 삼킬 것을 찾으려고 다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는 것만 보면 여러분의 집에 여러분의 속에 들어와서 여러분이 가장 귀한 것, 여러분의 영혼을 도적질 해 갑니다.<자는 자여 어찜이뇨?>에서

 

 
 



173.눈물의 아들은 회개할 때가 있다

교회 역사를 통해서 우리 교회 가운데 진주같이 귀한 경건한 어머니가 수없이 일어납니다. 아마 그 가운데 제일 유명한 어머니, 일반적으로 알려진 어머니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인줄 생각합니다.
모니카의 아들 어거스틴은 매우 재주가 많은 사람이올시다. 공부도 잘 했습니다. 글 잘하고 말도 잘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안 믿었습니다. 죄악 가운데 빠졌습니다.
경건한 이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틴을 회개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응답은 없었습니다. 죄악 길로 그냥 나갑니다. 더욱이 한번은 아프리카 북방의 고향을 떠나서 로마로 가려고 합니다. 제일 화려한 곳 죄악이 많은 로마로 가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모니카는 가지 말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어떻든지 못 가게 하려고 갖은 애를 다 쌌습니다.
그러나 모니카 몰래 배를 타고 도망쳐서 로마로 가기 전 모니카가 얼마나 마음이 상했던지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 목사에게 와서 사실을 호소하였습니다.
목사가 이 말을 가만히 듣거니“과히 염려하지 마세요, 이와 같은 눈물의 아들이 언제든지 회개할 때가 있습니다”그랬으나 모니카의 기대와는 반대로 오히려 어거스틴이 로마에 가고 그 다음에 밀란 에 가게되고, 밀란 에서 유명한 암브로스 목사를 만나고 그의 설교를 듣고 그의 감화로 회개해서 모니카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여기 간절한 기도로써 승리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우리가 봅니다. 이와 같은 어머니는 옛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도 여러분 게십니다.

 

 
 



174.진주보다 더 귀한 어머니의 모습

제가 지난 이른봄 어떤 날 늦게 저녁을 먹고 앉았노라니 까 우리 교회에 다니는 어떤 자매 님이 아이를 다섯을 데리고 제 집에 찾아 들어옵니다. 들어와서 하시는 말씀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어미 사정은 대강 압니다. 이 어머님은 6·25때 자기 남편이 행방 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일 어린것은 두 살인가 그렇게 되고 좀 큰대야 아마 열 너덧 살 이렇게 났던 모양인데 이 어머니는 아이 다섯을 대리고 살려고 하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에 있지 못하고 직장에 가서 일합니다. 또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다 학교에 보냅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이 세살 난 아이입니다. 이 아이를 어디 맡길 때도 없고 볼 사람도 없고 그래서 부득이 갈 때는 어디 가서 잃어지면 안 되겠다고 그래서 밖으로 문을 걸고 마치 가두다시피 하고 늘 직장에 나가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랬었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금년에 우리 맏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두어 기르던 저 애가 이제는 국민학교에 다닙니다.”
그 어머니의 얼굴과 그 아이들을 쭉 둘러볼 떼 참 눈시울이 뜨거워서 눈물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을 억지로 참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어머니가 우리 교회와 우리 한국에 얼마든지 많이 계십니다. 이와 같은 어머니로 말미암아서 가정이 유지되고 교회가 유지되고 국가가 유지되고 아니 전세계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진주 보다 더 귀한 어머니의 모습이올시다. 여러분, 얼마 전 신문에서 영등포에 기차가 지나갈 때에 마치 어린것이 차 앞에서 놉니다. 어머니가 그것을 보고 뛰어 들어가서 어떻게 아이를 구해서 내 던지고 어머니는 달리는 기차에 치어서 죽은 사실을 여러분 다 기억하실 줄 압니다.
이와 같은 비극 가운데서 거룩한 모성애(母性愛), 어머니의 경건한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무조건 사랑입니다. 아이들이 잘났던지 못났던지 어쨌든 자녀를 사랑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깨끗합니다. 불순한 동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희생적 사랑입니다. 그런고로 어머니의 기도는 간절합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기도는 응답이 됩니다.
내 어떤 책을 보니까 어떤 잘 믿는 어머니 셋이 있는데 자기 아들들은 다 안 믿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 님 말씀이『두 세 사람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겠다』고 했는데 우리 함께 모여서 기도합시다. 그래서 한 주일에 한번씩은 늘 모여서 자기 아들을 회개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기도 동맹을 조직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 동안에 얼마 있다가 두 어머니의 아들은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나 한 어머니의 아들은 종래 회개를 안 합니다. 그만 회개하는 것을 못 본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다음에 이 아들이 회개하고 그 후에 목사가 되었다는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건강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175.의인을 대망 함

제가 몇 달 전에 이탈리아 나폴리에 갔다가 가까운 폼페이성의 폐허를 가서 구경했습니다. 이 폼페이성은 일찍 주전 3, 2, 1세기, 주후 1세기까지 번영했던 도시가운데 하나였습니다. 1세기 말엽에 갑자기 그 옆에 있던 비스비어스 화산이 폭발되면서 말할 수 없이 많은 화산용암과 제가 하루아침에 20자 이상 덮임으로 몇 사람 도망해 나온 이외에는 사람이나 가축이나 할 것 없이 전부 제로 변해 버린 비참한 도시입니다. 너무 깊이 묻혀 있었기 때문에 발굴할 생각을 못했지마는 몇 십 년 전에 비로소 그곳을 발굴했습니다. 지금은 근 2천 년 동안이나 땅 속에 있던 그 폐허가 다시 나타나서 누구나 옛날 폼페이의 시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가는 비록 좁지마는 돌로 깔았고 물론 위에 있던 것도 다 없어 졌지마는 돌로 쌓았던 담들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 때에 산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당시 얼마나 술을 많이 먹었다고 하는 것도 술집이 즐비하게 있는 것을 보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고 하는 것도 아직 남아 있는 벽화의 그림들을 보고 그 사람들이 남겨준 조각을 보아서 능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사람들이 얼마나 우상을 섬겼다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주피터의 부러진 목이 그대로 남아 있고, 주피터의 신당에 올라가는 돌로 쌓은 계단이 반반하게 닳은 것을 보아서 능히 짐작하고도 남았습니다. 당대에는 호화스러웠지만 지금은 황폐된 그 거리를 왔다갔다하면서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 가운데 하나는, 이 성에도 결국은 의인 열 사람이 없었던가, 그런 생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국가나 민족이나 혹은 어떤 문화의 강약 혹은 우열 혹은 흥망성쇠를 물리적 조건에 의해서 수나 양의 세계에서 판단하기 쉽습니다. 어떤 나라가 강한 나라이냐? 면적이 얼마나 넓으냐? 인구가 얼마나 많으냐? 그 나라에 공장이 얼마나 많으냐? 그 나라에 비행기가 얼마나 많으냐? 군함이 얼마나 많으냐? 오늘날로 말하면 원자탄이나 유도탄이 얼마나 많으냐? 흔히 이런 것으로써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아니해야 될 것은 이보다 더 중요한 민족이나 국가나 문화의 흥망성쇠 요소가 되는 것은 정신적 요소란 것입니다. 그 나라, 그 민족의 민족적 정기가 어떠하냐? 민족적 사기가 어떠하냐? 그 민족의 도덕적 분위기와 수준이 어떠하냐? 그 민족이 얼마나 깨끗이 살며, 얼마나 옳게 살며, 그 나라와 그 민족에게 얼마나 공의가 행하여지느냐?
다시 말해서 성경의 말씀대로 말하면,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힘은 그 민족과 그 국가 안에 의인이 얼마나 잇느냐? 요컨대 그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의 흥망성쇠를 마지막으로 결론지어 버린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오늘날도 프랑스 나라에서는 과격한 정치 파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신문을 통해서 압니다. 18세기에는 프랑스 대 혁명이라는 큰 혁명이 일어나서, 왕을 잡아다가 단두대의 이슬로 만들고, 귀족들은 잡아죽이고, 서로 민족끼리 싸워서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하고 그 후에야 프랑스 민족이 자유의 정부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18세기 영국에서는 피 흘림이 없이, 비극이 없이, 재산의 희생이 없이 옛 체제에서 변해서 좀더 새로운 자유와 평화가 있는 나라로 변천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 있는가? 역사가들이 하는 말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를 열거할 수 있지마는, 무엇보다도 큰 힘은 영국에는 요한 웨슬레 라는 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에도 당시에 부폐한 것이 많았습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것 중 숙청할 것이 많았습니다. 평민 가운데 불평이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한 웨스레라고 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사방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평민이 회개하고, 귀족도 회개하고, 국회 의원도 회개하고, 공장의 직공도 회개하고, 각계 각층 사람이 변해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피 흘리는 혁명의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자연히 국회가 아름다워 졌습니다. 정부가 좀 더 깨끗해졌습니다. 공장도 더 일할만하게 되었습니다. 사회정의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각 방면으로 사회의 모든 형편이 아름다워지고, 자연히 그리스도의 이상과 사랑에 의지해서 변천된 새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19세기에 와서 전 세계의 최강의 나라로 발전되었습니다.
국가의 흥망과 성쇠도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우리 인간이 죽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병이 나서 죽습니다. 병은 왜 납니까? 흔히 하는 대로 말하면 우리 육체 속에 악한 균이 들어옵니다 균이 들어와서 우리의 육체를 썩힙니다. 그러면 우리 육체 속에 있는 백혈구가 총 동원이 됩니다. 그래서 열이 오릅니다. 우리 원수인 썩히는 세력이 들어와서 우리의 피와 살을 썩힙니다. 이 균들을 잡아죽이려는 백혈구와 여러 균 사이에 전쟁이 몸 속에 일어납니다.
한편에서는 육신을 자꾸 썩히려고 합니다. 다른 한 편에 있는 백혈구는 자꾸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이 둘이 싸우다가 마지막에 어느 편이 이기느냐? 균이 이기면 마지막에는 사람이 죽습니다. 그러기에 거이 세상을 떠나가는 사람 옆에 가 앉으면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 편이 이기면 죽습니다. 새롭게 하는 백혈구가 이기면 죽지 않고 삽니다.
우리 사회와 민족도 그와 비슷합니다. 우리 사회에도, 우리 민족 사이에도 두 가지 세력이 싸웁니다. 하나는 썩히려고 하는 세력입니다. 그러나 하나는 새롭게 하려고 하는 세력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믿는 사람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입니다. 소금은 무엇 하는데 씁니까? 썩는 것을 방지하고 새롭게 하는데 씁니다.
여기 생선이 있는데 생선을 그냥 두면 썩히는 미균(黴菌) 때문에 못 견디어 썩어집니다. 그러나 소금을 많이 쳐서 소금의 세력이 강하면 균을 죽여서 썩지 않게 방지합니다.
<의인을 대망 함>에서

 

 
 



176.종교개혁에 얽힌 이야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개혁의 표어가 되는 구절이올시다. 오는 10월 마지막 주일은 흔히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킵니다. 그것은 주후 1517년 10월 31일에 비로소 유명한 16세기 종교 개혁이 시작하게 된 까닭입니다. 물론 마틴 루터 이전에도 교회의 개혁을 부르짖다가 희생을 당한 사람이 많지마는 종교 개혁은 실상 마틴 루터로부터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된 까닭으로 흔히 종교 개혁을 생각할 때는 우리가 먼저 그를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 마틴 루터는 독일의 자그마한 어떤 지방, 가난한 광부, 혹 어떤 때는 농사를 짓는 그런 가정에서 난 사람이올시다. 부모가 빈한했지마는 신앙은 독실해서 어렸을 적부터 마틴 루터에게 그 당시에 행하던 신앙생활을 하는 법대로, 마리아도 열심히 숭배하고, 여러 성자도 열심히 숭배하는 법을 어렸을 적부터 배우게 된 것입니다.
그후에 대학에 가서 다닐 때에 점점 나이도 많아짐에 따라서 인생 문제에 대한 깊은 사색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자기가 한번 중상을 당해서 거이 죽을 뻔한 경험도 있었고 중병을 알아서 심히 고통을 받은 경험도 있었고, 또한 자기 가까운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그와 같은 고통을 통해서 더욱 인생문제에 대한 번민(煩悶)을 대학 시절에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큰 폭풍우가 있는 어느 날, 어떤 곳을 지나가다가. 바로 자기 옆에서 낙뇌(落雷)가 되는 그러한 위험한 일을 당하게 될 때에, 이 청년은 큰 공포에 싸여서 그 자리에 꿇어앉아서“성 안나 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제가 수도사가 되겠습니다.”이런 부르짖음을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시 광업을 하던 사람들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가 된다고 하는 성 안나를 수호 성자로 섬기던 때이어서 루터도 성 안나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청년으로서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서도 자그마한 독방 생활을 하면서 적은 문 하나밖에 없는데 그 문을 열어 놓으면 공동 묘지 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기도를 하며, 묵상을 하며, 공부를 하며, 연구를 하며, 어떻든지 자기의 구원을 완성하길 애썼습니다.
그렇지마는 지기의 고통은 점점 더해 졌습니다. 그 까닭은 성경을 연구해보매 성경의 교훈과 그 당시 교회에서 가르치던 교훈과, 행하는 일에 많은 차이를 발견하게 되어서, 거기에 대한 고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둘째로는, 자기가 그때에 가르치는 대로 어떻든지 착한 일을 하고 어떻든지 공덕을 많이 쌓아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고 죄 사함을 받으려고 아무리 힘을 쓰고 정성껏 모든 것을 다 한다고 하지마는 도저히 양심의 평안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세수 물을 떠다 놓고 손을 씻으면서“아무리 씻고 또 씻어도 내 몸은 그냥 더러우니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스스로 탄식하는 말까지 나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더 연구하며 또 성경을 그 때 비덴베르그 대학에서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시편을 가르치고, 갈라디아서를 가르치고, 로마서를 가르치게 되어서 이런 책들을 연구하는 가운데서 그 때 교회에서 가르치던 교훈이 근본적으로 성경에 가르치는 교훈에서 떠났다고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람이 율법을 행해서, 선을 행해서, 누가 덕을 쌓아서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 진리를 분명히 깨달은 동시에 지금 읽은 이 말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인데, 이런 까닭으로 오직 복음 가운데 나타난 십자가의 의를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진리를 분명히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자기가 어떤 행실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으려고 힘쓰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였는데 오직 이 믿음으로써 십자가의 공로에 위에 온전히 자기 몸을 바치게 된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온전히 믿고 십자가를 의지하는 가운데서 비로소 자기의 죄가 십자가의 공로로 다 용서된 것을 깨닫게 되고, 그 다음부터 자기가 구원받은 것을 확실히 알게 되고, 따라서 그 다음부터 구원에 참된 기쁨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서도 이 성경을 대학에서도 가르치고 자기가 주일마다 설교하는 교회에서도 이 진리를 가르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로마에서는 그 때에 레오 10세라고 하는 교황이 있었는데 그 전 교황 때에 굉장한 성 베드로 예배당을 새로 짓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굉장한 예배당을 짓게 되니까 재정이 대단히 궁핍해서 그때에 흔히 하는 법대로 속죄 표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도 테텔(Tetel)이라는 교황 사절을 보내서 속죄 표를 사방에서 팔았습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고 이 속죄 표를 샀습니다.
루터는 자기가 깨달은 그 진리대로 설교도 하고 가르치던 그 때인지라 이런 광경을 볼 때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517년 10월 31일, 자기가 설교하는 캣슬 교회 문밖에 속죄 표를 파는 것이 그릇된 것이며, 참으로 죄 사함을 얻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 얻는 다고 하는 그런 조항에 대한 95개조를 내걸고, 누구든지 내가 주장하는 여기에 대하여 반대하는 의견을 가졌으면 내가 공중으로 변론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95개조가 바람에 날리듯 전 유럽에 펴지게 되었습니다. 사방에서 이 루터의 95개조를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고 종교 개혁의 3대원리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율법을 행함으로나, 선행(善行)함으로나, 공덕(功德)애 의지해서, 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義)를 믿음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이 원리입니다.
둘째로는, 당시 교회의 모든 형편을 성경을 권위로 삼기보다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여러 가지 교회의 전통에 더 치중해서, 성경의 진리가 가리어지니까 앞으로는 성경만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고 교회에 내려오는 전통은 성경에 의지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원리를 주장했습니다.
셋째로는, 그 당시에 보니까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성경에 보면 중보는 오직 예수 님 한 분밖에 없는데) 반드시 신부를 통해서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이런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성경에 없는 진리이니까, 누구든지 제사장의 자격이 있어서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중보로 삼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가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직접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다시 말하면,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 3대 원리가 요원의 불과 같이 전 유럽에 퍼지게 되어서 사방에서 종교개혁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가령 스위스 같은 데서 쥬리히 라고 하는 곳에서 찌빙글리 같은 사람이 종교 개혁의 봉화를 들게 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존 칼빈(John Calvin), 그 후에 제네바로 갔지마는, 칼빈 같은 사람이 역시 종교 개혁의 불을 들게 되었고, 스코틀랜드 같은 데서는 죤 녹스 같은 사람이 역시 이에 호응하게 되어 종교 개혁의 불길이 온 유럽 천지에 차게 되었습니다. 교황은 물론 루터를 파면하고 여러 가지로 탄압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무력으로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구교를 치중해 믿고 교황을 후원하려는 이런 나라를 동원해서 신교 믿는 사람들을 무력으로 탄압하기 시작하니까 결국은 신교들도 역시 무력으로 항쟁하기 시작해서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16세기 중엽부터 17세기까지 근 한 세기 동안 종교 전쟁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극히 비참했던 30년 전쟁도 그 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648년 웨스트 팔리아(Westphalia) 협약에 의지해서야 비로소 구교나라에서 신교 믿는 사람에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신교의 자유가 많은 희생을 통해서 얻어지게 된 것을 우리가 잊지 아니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신교와 구교의 차이가 대체 무엇이냐? 구교 혹은 천주교 혹은 카톨릭교와 우리 신교 곧 장로교니 감리교니 하는, 이 신교의 차이가 대체 무엇이냐? 대체로 구교는 중세시대 기독교와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가령 이렇게 몇 가지로 대조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① 신앙의 차이
첫째로, 그 신앙에 대해서 지금도 말했지마는 우리 신교에서는 성경만을 신앙과 행위의 표준으로 삼습니다. 구교에서는 성경뿐 아니고 교회의 전통을 지금까지도 중요시해서 전통대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성경만이 신앙과 행위의 유일무이한, 참으로 무오(無誤)한 법칙인 줄 믿고 그렇게 행하려고 합니다.
구교에서는 성경 이외에 교회 전통뿐 아니라 특별히 교황이 있어서 교황 무오설(敎皇無誤說)을 믿습니다. 교황이 신앙문제나 행위 문제에 대해서 확정하는 것은 그릇될 수 없다고 하는, 그가 그리스도의 대리임을 믿습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만 믿습니다. 그들은 성모 마리아를 믿고 여러 성자도 많이 믿는 모양입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죽은 후 천당에 가지 아니하면 지옥에 가는 것이라는 성경에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구교에서는 성경에 없는 연옥이라고 하는 딴 곳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밖에도 많지만 이런 몇 가지가 특별히 다른 것입니다.
② 예배의 차이
예배는 어떠냐? 우리 신교에서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단순히 성경의 교훈과 같이 신령과 진리로써 예배합니다. 구교 예배는 의식을 존중히 해서 그 신부나 감독의 의복이 화려하고 찬란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예배당에 들어가 보면 성모 마리아와 여러 성자들의 성상들과 그리스도의 성상들과 이런 우상과 비슷한 것이 많이 나열되었고 많은 성도들이 그 성상 앞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신교에서는 예배 순서가 간단합니다. 찬송과 기도와 설교, 그저 이 몇 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밖에 미사 제를 드립니다. 미사 제라는 것이 성경에는 없습니다. 어디서 왔는고 하니 예수께서 성찬 예식을 행하실 때에 말씀하시기를『이것은 내 몸이니 이것은 내 피니…』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천주교회서는 이 떡과 포도즙을 위해서 특별히 신부가 기도할 때에는 이 떡이 사실상 예수 님 몸으로 변하고 이 포도즙이 사실상 예수 님 피로 변해서, 그러니까 예수 님 몸과 피를 다시 제사로 하나님께 드린다는 이런 전통이 생겼습니다.
이 교훈은 성경의 교훈과 정 반대 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님께서 만민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갈보리 산상 십자가 위에서 단번에 제사를 지냈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이것과 반대로 합니다. 신부가 그 십자가의 제사를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반복해서 미사 제를 지냅니다. 우리 신약에는 전혀 없는 풍습입니다. 성례(聖禮)하면 신교에서는 단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즉 세례와 성찬, 신약에 있는 대로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구교에 보면 거기에 다섯 가지가 더 있습니다. 가령 견신예(堅信禮)라 하여서 세례 받은 다음에는 감독이 안수하는 풍습이 있고, 종유례(終油禮)라 하여서 사람이 죽기 전에 기름 바르는 풍속이 있고, 참회라 해서 죄지은 다음에 신부에게 가서 자복하고 용서받는 그런 예가 있고, 결혼식도 성례로 간주하고 또 무슨 임직 식도 성례로 간주해서 성례를 일곱 가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③ 정치의 차이
정치는 어떠하냐? 우리가 신약을 보면 초대교회에서 집사를 택할 때에 여러 사람이 모이여서 일곱 집사를 투표했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천주교에서는 그 풍속이 다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구교는 교황이 있어서 교황이 그 아래 기관을 임명하고, 대감독과 감독을 임명하고, 감독이 각 교회 신부를 임명하는 교황 전체 정치입니다.
지금까지도 천주교에 모호한 점이 있습니다. 로마에 가보면 교황과 성 베드로 예배당에 있는 그 자그마한 구역을 바티칸(Vatican)이라고 해요, 교황은 전 세계에 있는 주권자인 동시에 바티칸 나라의 왕입니다.
그러면 이 로마 교회에 입교한 사람들이 어떠한 의미에서 로마 교황에게 충성을 하느냐? 이것을 나라로 간주하는 나라에서는 교황청에서 사자를 보냅니다. 우리 나라에도 사실 교황청의 사자가 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그곳을 나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황청의 사자를 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정말 나라이냐, 이것이 교회이냐 에는 모호한 점이 지금까지도 있는 것입니다.
④ 문화의 차이
종교 개혁이 된 지 벌서 4백여 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된 것을 지금은 대강 엿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영국, 독일 그리고 북부 유럽은 대체로 다 신교입니다. 납부 유럽인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지방은 대체로 구교입니다. 또 남북 아메리카를 보면 북 아메리카인 미국과 캐나다는 대체로 신교입니다. 남아메리카는 대체로 구교입니다.
이 두 지방을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문화적인 면에서, 구교를 주로 믿는 나라가 더 앞섰느냐, 신교를 믿는 나라가 앞섰느냐? 더구나 민주주의적 견지에서 보아, 민주 정치가 주로 구교를 믿는 나라에서 더 발전되었느냐, 신교를 믿는 나라에서 더 발달되었느냐? 그것은 여러분의 판단에 맡깁니다.
우리가 지금 까지도 한 가지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신교가 많고 구교가 적은 나라에서는 신교 자유 문제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자유를 줍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구교가 많고 신교가 적은 나라 가운데는 구교도가 신교를 많이 핍박합니다. 콜롬비아 같은 나라에서는 지금도 많은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스페인에서도 작년에 신교 신학교 하나 있던 것마저 강제로 폐문 시키고 말았습니다. 지금도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북에서 오신 분이 많은데 압록강이 본래 백두산 꼭대기 맑고 맑은 천지에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물이 직접 흘러 내려와 여러 곳을 지나서 신의주쯤 와서 보면 물이 대단히 흐립니다. 왜 흐립니까? 오래 흘려 내려오는 동안에 거기에 섞이지 않아야 할 것이 많이 섞었습니다. 기독교회가 맨 처음에 갈보리 산상과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맑은 물이 흘려 내려오는 동안, 여러 역사적 과정을 지나오는 가운데, 헬라, 로마 시대를 지내오고 암흑 중세시대를 지내오는 중, 여러 가지 섞이지 않아야 좋을 것이 섞인 것입니다. 우리 신교는 본래 근원지인 성경에 돌아가서 맑은 물을 마시는 이러한 신앙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종교 개혁의 근본 원리>중에서

 

 
 



177.감사의 싸움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에 천당 구경을 한 번 갔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천당간 꿈을 더러 꾼 이들이 계실 줄 알아요. 어떤 분이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아 그래서 가보니까 어떻게 아름답고 화려한지 알 수 없습니다. 한 곳에 가보니까 넓은 뜰인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크게 이야기를 하면서 떠드는데 얼른 보니까 싸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천당 구경간 사람이 이거 천당에도 싸움이 있나 하며 무슨 일인가 고 생각했어요, 그래서는 가까이 가서 구경을 했다고 합니다.
구경을 하니까 그 많은 사람 가운데 어떤 험상스럽게 생긴 사람,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 주먹을 들면서“여러분 내 말씀을 좀 들어보세요, 제가 먼저 할 말이 꼭 있어요, 들어 바요”이렇게 떠들어 땝니다. 저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려나 하고 가만히 보니까, 이 사람 하는 말이“난 본래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이렇게 험상스럽게 생긴 사람이요, 난 본래 어렸을 적부터 나쁜 장난 많이 하고 학생 시대엔 깡패에 들어서 깡패 노릇하고, 그 다음에는 젊어서 허랑 방탕하고 일생 동안 세상사람이 짓는 죄란 안 지어본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살인이요, 별의별 죄 다 짓다가 아, 그러다가 서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아, 그래서 죽게 되었습니다.”
“아, 그 때 저의 집에는 예수를 믿고 회개한 그런 좋은 아내가 있습니다. 우리 아내가 교회에 가서 교역자를 청했는데 목사와 권사 한 분이 와서 자기에게 권면하는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이제라도 회개하고 천당에 가라는 이런 전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처럼 일생 동안 이런 죄 많이 진 사람이 어떻게 회개할 수 있느냐고 물었죠, 그러니까 하는 말이 예수와 함께 못 박혔던 살인 강도도 십자가 위에 달려서 회개하고도 천당에 갔는데 나라고 이제 와서 회개할 기회가 없겠느냐고 합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더군요, 그래서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 회개를 하고 예수를 믿었는데 죽은 다음에 와 보니까 이렇게 화려한 천당에 왔으니 나보다 더 감사할 사람이 어디 있겠소”이렇게 이야기를 한단 말이요.
그리더니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그저 하나님 은혜 감사하외다. 마는 내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나는 이래서 감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난 본래 우리 부모가 잘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나자마자 곧 세례를 받았어요, 난 물론 몰랐지마는 그 다음에 점점 커서는 주일 학교를 늘 다녔습니다. 그리고 또 18세 나서는 입교 문답을 하고 이어 교회에 입교했습니다. 그리고 믿는 중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믿는 대학엘 다녔어요, 그리고서는 곧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사업체에 취직해서 거기서 일 잘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는 주일학교도 가르치게 되고, 성가대 노래도 부르게 되고, 얼마 있다가는 집사 직분을 맡으라고 해서 집사 일도 하고, 또 얼마 있으니 장로 직분 맡으라고 해서 장로의 직분을 맡고 물론 여러 가지 죄야 많이 지었지요, 그 자그마한 죄, 그런 죄를 많이 지었지마는 무슨 큰 죄는 별로 지어보지 못하고 그저 온 집안이 항상 평안 한 가운데서, 그저 평화스러운 가운데서 일생을 살다가 내가 지금 천당에 왔으니 나처럼 더 은혜 받은 사람이 아디 있소. 내 생각은 제가 제일 감사를 드려야 할 줄 압니다.” 한 사람은 그런 단 말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 어떤 무리의 사람 말이 갑자기 우레 소리처럼 들리면서“우리들의 말을 들어보시오, 우리가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의 말을 들어보시오”말하는 것입니다. 다름이 아닙니다. 무리 가운데 보니까 한 사람은 나이 많아도 보이고, 어떤 사람은 젊어도 보이는데 무리 가운데는 일찍이 예수를 믿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오래 믿은 사람도 잇고, 오래 못 믿은 사람도 있고, 나이가 많아서 믿은 사람도 있는데, 그 들이 다 세상에서 살 때에 다만 보통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큰 핍박이 왔습니다. 큰 핍박이 와서 그들 믿는 사람을 학살하는 그런 경위를 당했는데 그들이 그때 이상스럽게 한 곳에 모이게 되었고, 한 가지로 꼭 죽을 때를 당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도 믿음을 배반한 사람 없이 믿음을 지키고, 그들의 생명을 바쳤으니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지마는 여기 와서 이렇게 순교자의 면류관을 받게 되었으니 이것처럼 감사한 일리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순교자의 면류관을 보이는 데 참 황금빛 보다 더 아름다운 면류관을 보입니다. 꿈에 천당 구경을 갔던 사람이 그것을 보고서야“아 이거 천당에도 싸움이 있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싸움이 아니고‘감사 싸움’이구먼”하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영락교회에서는 싸움을 할 바에는 감사의 싸움을 합시다. 오늘 누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참으로 깨달아서. 우리가 다 깨달아서 하나님 앞에 제일 큰 감사를 드리는가 우리 보십시다. <감사의 싸움>에서

 

 
 



178.한 소년의 헌신과 그 결과

사회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이렇게 개인들이 모여서 백 명도 되고, 천 명도 되고, 천만도 되고, 삼 천만도 되는 것입니다. 태산이 아무리 높다고 하지만 티 끝이 모여서 태산을 이룹니다. 아무리 태평양 바다에 물이 많다고 하지만 한 방울이 모일 때 태평양의 물결을 이룹니다.
따라서 대륙을 움직이고 이 사회를 개혁하고 이 사회를 옳게 만드는 모든 운동도 결국은 한 사람이 깨닫고 먼저 시작하고, 또 한 사람이 그 사람을 따르고, 개인 개인이 움직이는 가운데 마지막에는 큰 운동을 일으켜서 위대한 일이 이 세계 역사에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특별히 이 본문(요 6:1∼15)을 보고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한간에서 보통 서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 이거 큰 일 났다고 하며, 정치니, 경제니, 문화니, 관청이니, 군(軍)이니, 학교니 할 것 없이 각계 각층이 속속들이 썩어 들어가는 데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나? 이것을 나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나? 이것을 몇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나?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을 막아야 되고 이것을 고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될 줄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그날그날 유유 도일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5천 명을 먹이는 이 위대한 기적이 한 어린아이가 먼저 자기에 있는 것을 바침으로 시작되었다 하는 이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에 사람이 많지만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이렇게 모여서 우리 사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생활을 하고 각기 그 직장에서 싸워 나간다 하면 위대한 이적이 오늘날 20세기에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줄 생각합니다.
둘째로는,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한 어린아이가 자기에 있는 것을 참 순진한 마음으로 전적으로 그리스도에게 갖다 바칠 때, 이것을 축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하나님께서도 한 개인의 헌신을 축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가 비록 작지만 온전히 헌신해서 그리스도 의 손안에 들어갈 때에 그것은 불고 불어서 5천 명을 먹일 수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아무리 한 개인일지라도 그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의를 위해서 싸울 때에는 온 우주가 그의 배후에서 그를 후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동양의 성인도“덕불고(德不孤)요 필유인(必有隣)이라”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덕이라는 것은 외롭지 않다고, 맨 처음에는 외로운 소리로 홀로 부르짖기 쉽습니다. 그러나 덕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있다고, 의를 위해서 싸울 때에, 전 민족 전체의 복리를 위해서 싸울 때에, 진리를 위해서 싸울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축복해 주신다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179.안중근 의사의 헌신

안중근 의사가 할빈 역두(驛頭)에서 일본의 정치가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저격할 때에 선언서를 미리 인쇄했다가 뿌렸다고 합니다. 그 선언서 한 절 가운데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나를 절대로 일본의 정치가 한 사람을 암살하는 한 자객으로 알지 말라, 나는 대한민국 독립군의 한 사람으로서 전 일본 제국을 향하여 싸우노라”모든 사람들이 다 어찌할꼬 하고 손들고 있을 때에 독립군의 한 사람으로서 전 일본 제국을 대항해서 싸웠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일을 하나님께서 축복해서 마지막에 우리 민족에게 다시 독립과 자유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한 소년의 헌신과 그 결과>에서

 

 
 



180.신령한 날개

전에 제가 미국에서 학교에 다닐 때에 어느 여름 방학에 어떤 미국 부잣집 별장에 가서 일 한 경험이 한 번 있습니다. 높은 산 위에 아름다운 호숫가에 좋은 별장을 지었는데 여름만 와서 삽니다. 거기 가서 한 해 여름 일을 했는데 저뿐이 아니고 일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흔히 저녁이 되면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놀기도 하고 춤도 추는 그런 곳이었어요.
어떤 날 저녁에 저 보고도 자꾸 춤추는 곳, 댄스 홀에 가자고 그런 단 말이오, 그래서 나는 춤도 출 줄 모르고 그런 곳에 도무지 갈 마음이 없노라고, 이렇게 거절하니까, 그 젊은 사람들이 다 간 다음에 그 집주인이 제게 웃으면서 하는 말이“네게는 벌써 네 옆구리에 천사의 날개가 나기 시작했구나”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 이야기를 해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신령한 의미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 가운데 과연 거듭나면 신령한 날개가 나기 시작합니다. 높은 곳을 향해서 올라가려고 하는 마음! 높은 곳을 사모하는 미음! 보다 더 깨끗한 것을 간절히 원하는 성품! 이것이 생깁니다. 벌래가 벌래 대로 있을 때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본성입니다. 이 놈이 변해서 나비가 되던지 벌이된다고 하면 위로 올라가는 것이 본성입니다. 그리고 성충이 된 다음에는 밝은 곳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이 그 본성입니다. <새해의 새 출발>에서

 

 
 



181.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우리의 신앙이 어떠합니까? 우리 신앙의 중심은 그리스도입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입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십니다. 이 그리스도를 믿고, 이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이 그리스도를 순종하고, 이 그리스도와 같이 살며, 이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이 그리스도 교 신앙 생활입니다.
이렇게 우리 신앙이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면 자연히 겉 길에 나갈 염려가 없습니다. 무슨 이상한 것이 있다고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무슨 주의나 사상이 나타난다고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의 무슨 이상한 이야기를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이상한 의복을 입고 다닌다고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꼭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이에게는 겉 길로 갈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182.거짓 예수 이야기

내가 얼마 전에 어떤 잡지를 보니 문명하다는 미국 같은 나라에도 어떤 사람이 예수 님 입던 그 의복 비슷이 만들어 입고 다녔습니다. 수염을 깎더라도 그렇게 나타난 예수 님 수염모양으로 깎고 머리도 그 비슷한 모양으로 깎고 돌아다니며 자기가 메시아라고 선전을 하며 다니니까 참 메시아가 왔다고 여자와 남자 가운데서도 따라다니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제자들이라 하는 몇 사람을 정해서 제자들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자기는 지혜와 지식과 진리와 생명의 근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말은 대단히 좋습니다. 얼마쯤 따라다니다 보니까 이 사람이 공수표도 더러 썼습니다. 더욱이 남녀관계가 깨끗하지 못한 것이 사실로 나중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제자 가운데 두 사람이 분해서 이렇게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놈을 처벌해 달라고 검사국에 고소를 했지마는 검사국에서 미쳐 처리를 하지 아니하니까 이 사람들이 참지 못해서 마지막에 다이너마이트를 48개나 가지고 가서 그 사람이 있는 데를 폭발시켜서 메시아라 하는 사람과 따라다닌 사람 할 것 없이 모조리 폭사해 죽였다는 잡지의 기사였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183.리빙스톤의 유해

일생을 아프리카 대륙을 위하여 바친 리빙스톤이 아프리카 밀림 지대에서 홀로 기도하다가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소식이 세계에게 퍼지게 되었습니다. 영국 조야(朝野)의 여론이 이와 같은 인물을 아프리카에 그냥 묻어 둘 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유해를 영국 본국으로 운반하여 다가 영국의 모든 귀한 사람들이 묻히는 웨스트민스터 예배당 안에 묻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정부에서는 특별히 사람을 파송해서 리빙스톤의 유해를 운반하려고 할 때에 그냥 다 가져온 것이 아니고 그 유해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꺼내서 그 심장만은 그이가 일생 동안 제일 사랑한 아프리카 대륙에 묻은 것입니다.
사람에게 제일 귀한 것은 그 마음이올시다 그리스도 마음이 어떠하였는가? 사람의 생각으로 다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단순히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그대로 오늘 아침에 잠깐 동안 생각하기를 원하는 것 입이다.
먼저 말씀하시기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마음은 온유하셨습니다. 온유(溫柔)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그 뜻을 잘 압니다. 아마 따스하고 부드럽다고 하는 뜻인 것 같습니다. 예수 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위에 올라오실 때에 성신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그 머리 위에 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둘기 모양으로 임한 것은 순결한 뜻도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역시 온유한 성품의 표시도 그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속에는 온유한 성신이 충만히 계신 것입니다.

 

 
 



184.점점 작아진 사람

톨스토이의 여러 가지 작품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추운 날 예배당 근처에서 떨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자기의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이 사람은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이 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데려왔지마는 그 부인은 성가시니까 이 분을 친절하게 대하지 아니하고 냉정하게 보고 불친절하게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데려온 사람은 어른이었는데 이상스럽게 점점 줄어지고 쪼그라져서 그 사람이 작아졌다고 합니다. 그것을 보고 주인이 민망해서 부인에게 잘 말해서 다시 친절히 그이를 대하고, 좋은 말을 하고, 좋은 음식을 대접하니까 작아졌던 사람이 점점 다시 커지고 아름다워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천사였다고 합니다. 천사는 항상 온유한 기분과 사랑이 충만한 하늘에 있던 분이 되어서 그렇게 냉정하고 조폭한 분위기 가운데서는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온유한 사랑의 분위기 가운데 있게 될 때에 다시 크고 아름다워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의 심령이 그렇습니다. 온유하고 사랑의 분위기 가운데서 심령이 바로 자랍니다. 아이들도 사랑의 분위기 가운데서만 그 심령이 원만히 자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온유한 마음을 배웁시다.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185.삶의 황금률

단순히 이론적으로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기 위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겠다고 말하기는 쉽지마는, 실상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런고 하면, 그것은 내가 그 사람의 자리에 있으면 그 자리에서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능히 상상력으로 생각할 수 있고 따라서 그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186.노예시장을 목격한 링컨

아브라함 링컨이 젊었을 때에 뉴 올리안즈에 있는 노예시장에 가서 구경하는 일이 한번 있었습니다. 그때에 미국에서 흑인을 그냥 노에로 사용할 때이었으므로 노예시장에 있어서 흑인들을 다른 상품처럼 흥정해서 팔고 사고하는데 이 광경을 링컨이 직접 목격하였습니다. 한 가족인데 아버지는 딴 집으로 팔려가고, 어머니는 또 딴 집으로 팔려가고, 또 큰딸은 다른 집으로 종으로 팔려 가는 비참한 광경을 그가 보았던 것입니다.
비록 얼굴은 까맣고 공부는 하지 못했지마는 인정이야 다르겠습니까? 서로 갈라져 따로 갈 때에 목을 껴안고 울며 떨어지지 아니하려고 하나, 애통 가운데 할 수 없이 온 가족이 분산되는 광경을 링컨은 친히 목도했습니다. 누구나 그런 광경을 볼 때에 동정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동정을 더 할 수 잇느냐 하면, 만일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하면 내가 어떤 느낌을 가지며,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하면 어떤 대접받기를 원하겠는지를 생각해 보는 사람일 것입니다.
링컨은 젊은 시절에 이러한 광경을 보고 언제든지 그 광경이 자기 머리에서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어떤 대접을 받기 원하겠는가? 그 대접은 이 흑인들에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그와 같이 하려고 하면 부득이 저 사람들도 나와 같이 자유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지 아니하면 아니 되겠다고 하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처지에서 어떤 대접을 받기를 원 했는지 그 대접을 생각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대접할 수 잇는 그러한 동정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187.슈바이쳐 박사가 아프리카에로 가게된 동기

80노령에서도 저 아프리카의 캐머룬 지방에서 일을 하다 가신 슈바이쳐 박사가 본래 독일에서 대학교 교수의 자리를 내어놓고, 자기가 다시 의학을 공부하고 자기 아내로 하여금 간호원 공부를 하게 해서 직접 자기들이 아프리카로 일하려간 그 깊은 동기 가운데도 이와 같은 생각이 그 머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슈바이쳐는 어떤 날, 우연히 거리에서 조그마하게 만들어 놓은 흑인 동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 흑인 동상을 통해서 그의 눈에는 아프리카에 수 없이 많은 흑인들은 연상할 수가 있었습니다. 벌써 수 백년동안 아프리카가 발견된 이후에 우리 백인들이 저 흑인에게 어떤 대접을 하였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얼마나 많은 학대를 했고, 얼마나 많은 압박을 하였고, 얼마나 많이 상품처럼 이용을 하였고, 착취를 했는지, 백인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가슴이 무거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기 혼자라도 저 흑인들이 받기 원하는 대접을 하여 보겠다는 결심 가운데서, 좋은 자리를 다 내어놓고 직접 그 사람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그 사람들의 상처를 만져 주고, 병을 고쳐주는 그 사업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남에게 대접을 받기 원하는 대로 너도 남을 대접하여라』하는 주님의 명령을 순복(順服)하기 위해서 평생에 걸쳐 그런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였던 것을 우리가 잘 아는 것입니다<생의 황금률>에서

 

 
 



188.물 대인 동산

우리 믿는 사람의 심령은 물 대인 동산 같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그대로 물 대인 동산 같습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생명수가 있습니다. 시편에 보면 믿는 사람의 심령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광야를 흘러내리지마는 요단강 근처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무성한 것을 볼 수 잇습니다. 그 까닭은 그 속에 요단강이 있는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의 속에는 말하자면 이 요단강이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의 생명이 있고, 장성이 있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복스러운 열매를 맺히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심령에는 기쁨과 만족과 영원한 노래가 있습니다.

 

 
 



189.시들지 않는 장미

지금 세상을 떠났지마는 전에 볼티모아에 있는 존 홉킨즈 대학의 외과 의사요 교수로서, 또 특별히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전도에 열중하던 켈리 박사라고 하는 유명한 분이 계셨습니다. 저도 친히 그의 말씀을 한번 들어보았습니다. 켈리 박사의 일화 가운데에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이가 언제든지 그의 양복 옷에다 좋은 장미꽃을 늘 꽂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 일인지 그 교수가 꽂고 다니는 장미는 도무지 시들지를 아니하고 그저 방금 꺾어서 꽂은 장미와 같은 꽃을 늘 꽂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꽃은 어떻게 그렇게 도무지 시들지 않는데 무슨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웃으면서 그 방법은 별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양복 앞섶을 뒤집어 보였습니다. 그 속에 보니까 조그맣게 옆집을 달고는 그 속에 물병을 넣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실상 그 꽃이 물 속에 꽂히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시들지 아니하고 언제나 청청(靑靑)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이 때에 이 켈리 박사가 하는 말이 우리가 이 세상에 다니면서 언제나 신성하고 아름답게 항상 향기를 나타내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되려고 하면 우리 생활 속에 믿음의 뿌리가 이와 같이 물 속에 있어야 되다고 했습니다. 생명수 속에 있어야 된다고 그 진리를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나에게 와서 마시라』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수 주시는 반석이올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앞에 나와서 이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속에 생명의 강이 흘러서 언제든지 풍부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심령이 기갈한 자에게>에서

 

 
 



190.인도인의 속담

악한 마귀는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갑자기 우리를 시험합니다. 갑자기 우리를 미혹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됩니까?
여기 전쟁의 술어를 쓴다고 하면, 첫째는 전격(電擊)전을 써야 됩니다. 곧 물리쳐야 됩니다. 예수께서도 악한 마귀가 와서 예수를 높은 산 위에서 천하 만국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고, 넌지시 하는 말이 자기에게 절만 하면 이 모든 영광을 예수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하는 말씀이『사탄아 물러가라 오직 주 너의 하나님만 공경하고 그에게 절할 것이니라』이와 같은 말로 대답한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그것이 나를 죄로 인도하는 것이 분명하면 곧 그 때에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인도 사람의 속담 가운데에“코끼리는 코부터 들어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코끼리가 방안에 들어오려고 할 때에 우선 코부터 못 들어오게 해야지. 그놈이 어떻게 코만 조그만 구멍이라도 있어서 들어오게 된다면, 그 다음에는 못 견딘다고 합니다. 다 들어오고야 말지요.
시험이 꼭 그렇습니다. 처음에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릴 때에, 악한 유혹이 우리 마음에 엄습할 때에 마음에서부터 아예 물리쳐 버려야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자기의 제일 사랑하는 제자 곧 근방 반석이라고 불렀던 베드로를 향해서도『사탄아 물러가라』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십자가의 고난을 피하라는 권면을 할 때, 사람의 뜻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아니하니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이와 같이 강경히 물리친 것입니다. 죄와 협상하지 맙시다. 타협해서는 아니 됩니다.
물론 이 시험을 다 이기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미리 준비태세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전쟁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준비를 잘 확충해서 육, 해, 공, 각 방면에 군비를 해 두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올시다. 병을 예방하는 방법은 그저 평소에 우리의 생활과 우리의 위생을 조심해서 우리의 건강을 튼튼히 지키는 것입니다. 건강이 약해지면 백 병이 침입합니다.
모든 시험을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우리의 신앙생활을 철저히 해서 우리의 심령이 튼튼하고 우리의 믿음이 건전한 생활을 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우리가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언제든지 성령이 충만한 생활을 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유혹이 들어 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악하고 죄악이 많은 세상 가운데 나아가서 하루 동안 사는 것은, 마치 군인이 전쟁에 나가서 하루 동안 격전을 하는 것과 거이 비슷한 형편이올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의 일을 준비하는 아침시간에 반드시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을 튼튼히 무장하고 그 후에 세상에 나아가서 살아야 될 것입니다. 튼튼한 준비 태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이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 줄 압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제가 인용하겠습니다.『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라』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는 것입니다. 분주하게 주를 위해서 일하는 것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