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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제3권-1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1-30

by 【고동엽】 2022. 3. 2.
[처음 목차 돌아가기]
 
 

1.언어의 한계


동양에서는 옛날부터 춘추전국시대의 인물인 소진과 장유 같은 사람이 말 잘 한다고 소문났습니다. 서양에서는 데모스테네스 같은 사람이 말 잘 한다고 소문났습니다. 우리 교회사를 보면 크리소스톰 같은 이는 아주 말 잘 하는 사람으로 금과 같은 입을 가졌다고 '골든 마우스'라고 했다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가 말을 잘 한다고 하지만 말로써 우리의 생각을 다 표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전에 중국의 어떤 사람이 금강산을 항상 보고 싶어하다가 정작 금강산에 한번 가게 되었습니다.
가서 그 굉장한 만 이천 봉을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아, 아, 아" 하고 아 소리만 세 번  하였다고 합니다. 너무 화려하고 너무 웅장하고 너무 아름다워 말을 못했던 것입니다.

 

 
 




2그랜드 캐년과 오로라


제 경험으로는 자연의 경치를 보고 감탄한 적이 특별히 한 번 있습니다. 그것은 알프스 산을 보고 그런 것도 아니고 금강산을 보고 그런 느낌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미국에 그랜드 캐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콜로라도 강이 흘러가면서 대협곡이 생겼습니다. 논란 것은 차 타고 가서 여관에 여장을 풀고 나가 보니까 좌우의 절벽과 모든 것이 그 규모가 얼마나 웅장한지, "아" 소리밖에 다른 말 할 것이 정말 없었습니다.
이번에 베를린에 다녀오면서 전에 얻지 못한 한가지를 얻었습니다. 전에는 유럽에 갈 때 인도와 베이루트를 거쳐서 갔지요. 지금은 제트기가 있어서 동경에서 직접 북극으로 넘어갑니다. 북극을 지나서 갔습니다. 책에서는 전에 보지 못하던 북극을 가까이 하게 될 때에 북극에만 볼 수 있는 오로라라고 하는 극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비행기 위에서 정말 "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거지의 강냉이 다섯 알


우리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 어떤 예물을 드려야 하는가? 물론 드리는 액수는 생활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마는 적든지 많든지 우리의 참 정성의 표현이 아니고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얘기를 알지요.
전에 인도의 어떤 왕이 궁전에서 나가다가 한 거지를 만났어요. 손을 내밀고 무엇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왕이 거지에게 하는 말 "네가 나에게 무엇을 주면 자도 너에게 주겠다." 거지가 뭐 있겠습니까? 옆집에서 강냉이 한 홉을 얻었는데 그 강냉이 주머니를 열고 "저는 이것밖에 없습니다"하며 강냉이 다섯 알을 내밀었습니다. 왕이 그것을 척 받더니 웃으면서 하인에게 "얘! 금 주머니에서 이 강냉이 알만한 금덩이 다섯 개만 꺼내서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것을 대신 너에게 주니 받아라." 물론 거지가 감사히 받았지요. 그러나 속으로 탄식하면서 갔다고 합니다. 왜? "내가 그 강냉이 주머니를 다 그대로 드렸으면 금 주머니 째로 내가 다 받았을 텐데"하는 탄식이었던 것입니다.
그것 보세요.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는 것입니다. 감사의 예물은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에서

 

 
 




4. 현대인의 회색 그림자


작년에 작고한 미국의 철학자요, 신학자인 폴 틸리히 박사는 일찍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현대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회색 그림자 셋이 있는데 하나는 공허감, 텅 빈 느낌 둘째는 죄악감 죄의식, 셋째는 사망의 공포심이라고 했습니다. 물질주의만 따라가다가 스스로 자기의 영적 방면의 생활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심령에는 이 세 가지 회색 그림자가 밤이나 낮이나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고 있습니다.

 

 
 




5.현대인의 공허감


이번 세계 복음화 대회에 와서 연설한 인도의 압둘 학 박사는 여기에다 한 가지를 더 첨가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현대인의 심령에는 공허감이 있습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심리학자 융 박사는 "현대인의 근본적인 심리의 병은 공허감이다. 만사가 무의미하다는 느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느낌은 현대 미술, 음악, 철학 등 모든 방면에 반영이 됩니다. 아무리 물질 생활이 풍부하여질지라도 생에 대한 허무감은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어떤 집에 다섯 살 난 계집아이가 그냥 울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우는지를 모릅니다. 아무리 달래도 그치지 않고 그냥 웁니다. 겨우 달래어 아버지가 "너 왜 우느냐?"고 물으니까, 이 아이가 대답하는 말이 "아빠, 내가 뭘 원하는 것이 있기는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그래서 울었던 거야." 이것이 현대인의 심령에 있는 공허감입니다.
현대인들이 물질 세계만 추구하는 가운데 자기의 심령 세계를 잃어버렸습니다. 잃고 보니 그 심령 속에는 물질로는 메울 수 없는 어떤 텅 빈 데가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을 들을 때에 우리는 자연히 구약 전도서 첫 장을 기억하게 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 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할꼬." 사실 인간이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모든 것이 헛됩니다. 의미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심령이 고독하여집니다. 인간은 대우주의 한 고아가 되고 맙니다. 

 

 
 




6.에티오피아 황제 셀라시에 Ⅰ세


이번 복음화대회 때에 특별히 초청한 손님은 에티오피아 황제 셀라시에 1세가 멀리서 친히 오셔서 제일 처음에 우리에게 연설을 해주셨습니다. 그 황제를 청한 데는 이유가 있는 줄 압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에티오피아는 구스 내시가 제일 먼저 전도를 받아서 믿게 되었습니다. 황제도 제일 먼저 그 얘기부터 했습니다. 황제는 구스 내시에게 전도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먼저 기독교 국가가 된 나라가 에티오피아입니다. 또 지금까지 열심히 예수를 잘 믿는 황제가 이 셀라시에 황제라고 합니다.
길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결론으로 말하면 "아무리 현대문화가 고도로 발달해서 달나라에 가기까지 노력하고 있지마는 결국은 현대문화가 하나님을 저버리면 바벨탑과 같이 무너질 것이니 조심해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와 지식이 많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키가 없는 배와 같다. 닻이 없는 배는 언제 풍랑에 밀려서 파선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문화를 구원하실 이는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전 인류의 선한 목자요, 전 현대인에게 생명을 주실 분이요, 또한 구원하실 분이십니다.<현대인과 그리스도>에서

 

 
 




7.반역자 주리안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로마의 기독교 황제 콘스탄틴 황제가 죽은 후에 주리안이라는 사람이 잠시 황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처음에는 예수를 믿는 체하다가 황제가 된 다음에는 예수를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흔히 반역자 주리안이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자기 군대를 거느리고 파사에 가서 파사 사람과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행군을 해 갈 때에 믿지 않는 군인들이 어떤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을 향해서 비웃는 태도로써, "네가 믿는 그 목수 노릇을 하던 주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잇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잘 믿는 그리스도인이 대답하는 말이 "그 분이야 목수니까 목수 일을 하겠지요, 아마 당신 왕의 관을 짜고 계실거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후에 이 왕이 전장에 나가 싸우다가 부상을 당했고 얼마 후에는 죽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죽을 때에 "오! 갈릴리 사랑이여, 당신이 결국은 승리했습니다."라는 탄식을 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예수 님은 주리안 황제의 관만 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독재자들의 관도 짜십니다.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만 유의 주'요, '만 왕의 왕'이십니다.

 

 
 




8.리빙스턴의 마지막 기도


일생토록 아프리카에 가서 몸을 바치다가 외롭게 세상을 떠난 유명한 선교사 리빙스턴이 세상 떠나기 며칠 전에 자기 일기책에 이런 기도를 적어 놓았습니다. "나의 예수, 나의 왕, 나의 생명, 나의 전부시여, 나는 다시 내 몸 전체를 당신께 그리나이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중심에 영접한, 주로 영접한, 왕으로 영접한 종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과연 예수를 주로 영접합니까? 과연 예수를 왕으로 영접합니까? 그것은 주의 뜻에 절대 복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헌신을 의미합니다. 내 몸으로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귀하게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최고의 충성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하나 하나가 오늘 예수 님을 내 주로, 내 왕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다음 주일에 학습과 세례 받을 여러분은 온전히 예수 님을 내 주로, 내 왕으로 모시는 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만 유의 주, 만 왕의 왕>에서

 

 
 




9.동 백림의 전쟁 기념탑


제가 얼마 전 독일 백림에 갔을 때 동 백림에 건너가 모니 2차 대전 당시 전쟁이 가장 격렬하여서 독일 청년, 소련 청년 수만 명이 쓰러졌다고 하는 그 자리에 소련 사람들이 넓게 터를 닦고 큰 전쟁기념탑을 세운 것을 모았습니다. 그 구내에 들어가면 높은 애 위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우는 어머니의 상이었습니다. 그 상을 바라보며 거기서 쓰러진 아들을 위해서 흘린 모든 어머니의 눈물을 생각할 때에 실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공산당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전쟁이 지금도 월남에는 계속되어서 어머니들의 눈물이 이 땅을 계속해서 적시는 것은 실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10. 가시 면류관에 대한 이야기


이와 같은 옛날 얘기가 있습니다. 옛날 중세 시대에 어떤 수도사가 성지 순례를 갔습니다. 갈보리 산 근처에 돌아다니던 중에 뜻밖에 이 수도사는 예수 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쓰셨던 가시 면류관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가시 면류관은 보기에도 험상스러운 가시로 되었고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볼품은 없지마는 주님께서 쓰셨던 가시면류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지극한 보배로 여겨서 그 면류관을 고이 자기 나라까지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리고서는 자기가 있는 수도원 예배당의 강대 상위에다 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부활절 아침을 맞아 수도사들이 일찍 예배 보기 위해서 그 예배당 문을 열었더니 온 예배당이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차 있더랍니다. 이게 웬 일이냐고 사방을 둘러  보니 그 험상스러운 면류관의 가시에 아름다운 장미꽃이 많이 피었더랍니다. 물론 얘기에 불과하지만 여기에는 뜻이 있습니다.
부활주일은 생명을 의미합니다. 승리를 의미합니다. 향기를 의미합니다. 기쁨을 의미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그를 영접하는 이에게는 새로운 생명이 생깁니다. 새로운 능력이 생깁니다. 향기가 나는 생활로 변합니다. 기쁨이 충만하여지는 것입니다. 이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 이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심으로 참된 생명과 승리의 향기와 기쁨을 얻었습니까?
바라건대 이 기쁜 주님의 날에 충심으로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부활의 주님을 영접해서, 이 시간부터 여러분의 생활이 새로운 생명, 새로운 승리의 생활, 향기를 뿜는 생활, 기쁨이 충만한 생활로 변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부활의 기쁨>에서

 

 
 




11.회개와 부흥


어떤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도무지 부흥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후에 알아보니까 그 교회에 장로 두 분이 있는데 5년 동안을 한 교회에 다니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 가운데 장로 한 분이 그것이 큰 죄인 것을 깨달아서 다른 장로에게 가서 자기 죄를 자복(自服) 하고 화해를 청했다고 합니다. 그 때에야 그 이도 자기의 죄를 자복 하면서 피차에 화해하니 그 다음부터 교회가 일취월장해서 크게 부흥했다고 합니다.

 

 
 




12.돈주머니의 침례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침례 받으려 왔는데 보니까 호주머니에서 어떤 것을 끄집어내어 놓기에 목사가 물으니 돈주머니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목사가 "그 돈주머니를 넣고 침례를 받으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돈주머니도 침례를 받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것은 다 회개하면서도 돈주머니는 회개를 못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는데 그것을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정욕의 문제를 해결 못합니다. 고양이 쓰다듬듯 싹싹 쓸어 줍니다. 회개는 온전히 백 퍼센트 해야 됩니다.
그러면 회개는 언제 할 것입니까? 내일? 모래? 악마는 그렇게 미룹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일이 꼭 있을는지 확실히 압니까? 회개는 지금 하셔야 합니다. 지금이 회개할 때요 오늘이 구원의 날입니다.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예수님 말씀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 큰 기쁨이 된다고 했습니다.

 

 
 




13 영원토록 빛나는 별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 : 3)
칸트의 유명한 말과 같이 하늘에는 별이 있고 인간의 가슴속에는 양심이 있습니다. 별은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상징으로 별이 사용되어 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렇듯 군대에는 장성(將星)이란 말이 있습니다. 삼성(三星)장군 혹은 사성(四星)장군, 이런 말들을 씁니다. 장군들에게는 별을 달아 줍니다. 그뿐 아닙니다. 문단이나 시단이나 스포츠 방면 또는 연예 방면에 이르기까지 그 방면에 우수한 이들을 명성, 즉 밝은 별 혹은 혜성이라고 하는 말들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렇게 사용치 아니하였습니다. 다만 성경에 보면 주님을 새벽 별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계시록 22장 16절에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뜻은 가장 빛나는 별이라고 하는 뜻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다니엘 12장 3절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가장 빛나는 별들은 영계(靈界)에 있습니다. 아니 영원토록 비치는 별들은 오직 영계에만 있습니다. 본문에 있는 지혜 있는 자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는 자는 같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지혜가 있어서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과연 지혜가 있는 사람들이올시다.

 

 
 




14 사람을 낚는 어부


유명한 암브로우스 라는 목사는 문필의 재주는 좀 있지마는 품행이 매우 불량한 청년을 만나서 잘 인도하여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가 성 어거스틴이 되어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가 되었고 유럽의 1천년 역사의 사상을 지배한 위대한 인물로서 금생(今生)과 내생의 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전에 어떤 유명한 교인이 시카고에서 한 양화점 직공에게 관심을 가지고 드나들면서 교회로 잘 인도했더니 그 소년이 점점 커서 많은 사람들을 문자 그대로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유명한 전도자 무디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했습니다. 잠언 11장 30절에는 "의인의 열매는 생명 나무라 지혜 있는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의의 열매는 의올시다. 사람의 열매는 사람이올시다. 우리가 참된 의인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지혜 있는 사람은 사람을 얻습니다. 사람을 죄 가운데서 돌이켜서 의 가운데로 돌아오게 합니다. 이런 이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교회의 별들>에서

 

 
 




45.기회의 신(神)


서양의 철학자들은 옛날부터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교훈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강조해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기회라고 하는 것을 의인화해서 그림을 그릴 때 그 앞이마에는 털이 많이 났지마는 뒤에는 대머리가 되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그려 놓았습니다. 그것은 기회라고 하는 것은 쉽게 잡을 수가 있지마는 한 번 지나간 후에는 다시 잡을 수가 없다고 하는 뜻입니다. 파사의 오마라고 하는 유명한 분은 돌아오지 않는 것에 넷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배 얕은 말, 쏜 살, 지나간 생활, 잃은 기회"라고 했습니다. 옛날 영국 색슨의 어떤 왕이 자기에게 반역하는 성을 점령하고 그날 밤에 큰 촛불을 성문 위에다 켜 놓고 성 사람들에게 고하기를 "누구든지 이 촛불이 꺼지기 전에 내게 와서 항복을 하면 다 용서해 주겠다. 그러나 촛불이 꺼진 후에는 절대 용서해 주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왕은 그 말 그대로 실행했다고 합니다.

 

 
 




16 천하 만사의 때


학문을 연구하는 데나 사업을 성취하는 데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나 할 것 없이 천하 만사에 시간적 제한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습니다. 천시(天時)가 있습니다. 촛불이 꺼지기 전에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가장 귀한 영혼의 구원, 영생을 얻는 것도 시간적 제한이 있습니다. 기회가 있습니다. 천시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십니다. 언제나 계십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가까이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에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가까이 계실 때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17.맑은 양심의 청년 시기


그러나 청년 시기에는 대체로 그 마음 밭이 옥토입니다. 뿐만 아니라 비교적 양심이 맑습니다. 이상이 높습니다. 인생의 깊은 뜻을 탐구하고 영혼을 사모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이 이 청년시기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선지자들을 돌이켜 생각해 보십시오.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이 다 청년 시대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을 생각해 보세요. 베드로, 요한, 야고보, 디모데, 바울, 디도, 이들은 모두 다 30대의 청년으로서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여러 청년들, 청년 시기는 과연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입니다. 이 때에 참된 신앙을 얻으셔서 일생의 방향을 바로 잡으시고 일생을 통해서 많은 봉사를 하시기를 특별히 부탁합니다.

 

 
 




18.생의 위기와 영혼 구원


우리 인간의 일생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때때로 우리는 누거나 생의 위기를 당합니다. 가령 누구나 질병을 앓습니다. 또 흔히 병석에 눕게 됩니다. 그래서 병은 눈썹에서 떨어진다고 하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그만 병석에 눕게 되면 인간의 허약성, 제한성, 무능을 깊이 느낍니다. 자연히 마음이 겸손해집니다. 특별히 병이 위독해서 사망에 직면하게 될 때에는 문자 그대로 인생의 깊은 뜻을 더듬게 됩니다. 그래서 병상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들이 많습니다. 성(聖) 프랜시스가 그랬습니다. 로욜라가 그랬습니다. 위대한 과학자 파스칼이 그랬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말하길,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어떤 때에 우리 육신에 병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병상은 영혼이 구원을 얻을 만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아니하리요 마는 우리의 몸이 연약할 때에 하나님을 찾아서 신앙을 가지고서 일생의 삶을 위해 옳은 길을 가고 굳센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병도 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든지 몇 변은 슬픈 일을 당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납니다. 어떤 때에는 처자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슬픈 일은 흔히 예고 없이 오는 것입니다. 큰 슬픔이 마음에 깃 들게 되면 아무리 강퍅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이라도 그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온유하고 겸손해집니다.

 

 
 




19.눈물의 렌즈


시기나 교만이나 미움이나 질투의 마음도 큰 슬픔 아래에서는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 슬픔의 밀물이 들어올 때에 믿음의 배를 띄워 영생의 포구를 향하여 돛을 다는 이가 많습니다. 눈물의 렌즈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얼굴을 보고  내세의 실재를 깨닫고 참된 신앙에 들어오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슬플 때에는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는 것입니다. 이탈리아에 가면 발텐시안이라는 유명한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를 창립한 피터 월드라고 하는 사람은 원내 중세 시대에 살던 사람인데 본래는 방탕한 생활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 저녁은 여러 친구들과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댄스를 하며 질탕하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까운 친구 하나가 쓰러졌습니다. 죽었습니다. 호화로운 연락의 장소는 갑자기 울음의 바다로 변했습니다. 피터 월드라고 하는 이 청년은 인생의 허무를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인생의 깊은 뜻을 찾게 되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고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위대한 인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차차 믿으시오' 작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에 사탄이 자기 부하를 모아 놓고는 어떻게 하여야 땅 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데려올 수 있을까 하고 그 방안을 연구했습니다. 어떤 귀신이 일어나서 하는 말이 "제가 땅에 내려가서 무엇보다도 성경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선전을 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다른 귀신이 일어나서 하는 말이 "저는 땅에 내려가서 하나님이 없다고 선전하겠습니다. 즉 무신론을 선전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귀신이 일어서더니, "저는 천당과 지옥이 없다고 선전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늙은 귀신이 척 일어나더니 "그것도 다 좋지마는 저는 땅에 내려가서 믿는 것도 괜찮지마는 차차 믿으라고 선전하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사탄은 한 달 기한을 두고 다 땅으로 내려보냈습니다. 귀신들은 열심히 일한 후 올라와서 그 동안의 성과를 보고합니다. 누구는 몇 백 명을, 누구는 얼마를 데리고 왔습니다 하는데 그 중 넷째 귀신이 제일 많이 지옥으로 데려왔단 말입니다. 차츰 믿어도 된다고 하는 귀신 말입니다. 여러분, 시간적 제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회 주실 때에 작정하고, 과거의 생활을 끊어버리고, 회개하고, 주님을 내 구주로 영접해야 합니다. <가까이 계실 때에 부르라>에서

 

 
 




21.화해의 역사


성경은 말씀합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속히 화해하라"는 것입니다. 화해에 꼭 필요한 조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화해를 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최고의 대가를 지불하시면서 인간에게 화해를 청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는 아무개와 화해할 마음이 있기는 하지마는 저가 먼저 말하지 않는데 왜 내가 먼저 말해야 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도 꼭 같은 생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다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은 내가 먼저 화해를 청하는 것입니다.

 

 
 




22.제가 잘못했습니다.


전에 어떤 부부가 여러 해를 단란하게 살다가 성질이 거칠어져 심하게 싸운 후에 서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이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정녕 이혼을 하고 보니 후회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공연히 했군, 혼자 살자니 이거 안 되겠군." 그러나 자기가 한 이혼이라 다시 살자고 할 수는 없었지만 상대편에서 살자고 청해 오면 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추석이 되었습니다. 마침 자라다가 죽은 아이의 무덤 생각이 났습니다. 이 아버지가 그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섰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이혼한 여자도 죽은 아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역시 그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멀리서 무덤 앞에 선 남자의 뒷모습을 보니 전날의 자기 남편이었습니다. 돌아갈까 하다가 기왕에 왔는데 그냥 갈 수야 있나 하고 멀리 서있었다고 합니다. 이 남자가 한참 울고 가려고 돌아서서 내려다보니 자기 아내가 서 있었습니다. 그때 남자가 하는 말이 "내가 그저 잘못했습니다. 내가 성질이 못 되어서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했습니다"라고 하자 여자도 "아니올시다,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리하여 죽은 아이의 무덤에서 다시 화해했습니다. 이 때부터 다시 살았다고 하는 얘기입니다. 내가 먼저 잘못했다고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말을 못해서 우리가 화해를 못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무조건 내게 지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23.미워하는 마음


저는 오래 전에 전도사로서 교회 일을 시작할 때 어떤 원로 목사님이 제게 와서 그 분의 경험 이야기를 해주던 것을 지금도 잊지 않은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목사님 말씀이 자기가 신학교를 졸업한 후 어떤 노회에서 목사 되기 위해서 시취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는 노회 장소 한가운데 세워놓고 이 사람 저 사람 묻는 방식을 써서 동의 재청해서 가결하던 때라고 합니다. 어떤 분하고 시취를 같이 받는데 대답은 그쯤 했으면 되려니 했는데 마지막에 어떤 선교사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여러 형제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마는 제가 보기에는 이 분들이 대답은 무난하지마는 아무도 목사가 될 준비는 안 된 줄 아오"하고는 앉더랍니다. 그만 선교사의 말인지라 회중 공기가 싹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한 분이 "연기하도록 동의합니다"하고, 동의에  재청해서 가결을 짓고 나니 영락없이 낙제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바리에 들기 전에 기도를 하려니 마음이 불편해서 기도가 잘 안 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기를 "그 선교사와 나 사이에 사감(私感)은 하나도 없는데 왜 그 분이 내게 대해 그런 말을 했을까? 그렇다면 필경 내게 유익하게 하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잠을 잤다고 합니다. 이튿날아침 거리에서 함께 낙제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는 만나는 첫 마디가 "아, 선교사 그 놈"하고 아직 분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있더랍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에도 노를 풀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반년 후에는 두 사람 다 목사가 되기는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목사가 된 다음에도 그 친구는 선교사 미워하는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더랍니다. 그리더니 결국 그이는 목사 일을 가만 두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으면 내 마음에 은혜가 떠납니다. 은혜가 떠나면 목사의 일을 볼 수가 없습니다. 은혜가 떠나면 장로의 일도 볼 수가 없습니다. 집사의 일도 볼 수가 없습니다. 마침내 평신도보다 못하여 내가 내 영혼도 구원 못합니다. 그러기에 내가 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에 대한 원한이나 미워하는 마음을 오래 품으면 아니 됩니다.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미국의 문필가 마크 트웨인이라는 분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용서는 자기를 짓밟는 발꿈치를 향수로 발라주는 앉은뱅이 꽃의 향기와 같다." 용서는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가장 고귀한 인격을 가지고 있어야만 충심으로 남의 죄를 용서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화해하십시다.

 

 
 




24.루터의 마지막 생애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 사업 때문에 언제나 분주했지만 자기 고향에 있는 멘스필드라고 하는 친구 백작의 가정에서 재산을 둘러싸고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졌다는 말을 듣고 가서 권면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 루터의 나이 예순 세 살이었습니다. 노구를 무릅쓰고 고향까지 가서 밤새도록 권면을 했습니다. 싸우지 말고 화해하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그의 말을 듣고 형제간에 화해를 했습니다. 하루 저녁 더 자고 이튿날 떠날 계획으로 잠들었다가 그날 저녁 병들어 그 이튿날 아침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생각하면 섭섭합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해를 시키려고 많은 애를 썼을 뿐더러 거기에서 자기의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이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각계 각층을 보세요. 불화, 불목, 분쟁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이러한 사회에서 살 때에 어디 가든지 화해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형제간에도 직장에서도 관청에서도 정계에서도 어떤 곳에서든지 이 화해자가 필요합니다. 세계 정세를 보세요, 사실 이 같은 화해자가 나타나지 아니하면 세계 인구가 이 땅에 남아 있을는지 의문되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화해의 복음>에서

 

 
 




25.밝은 면을 보는 습관


여러분, 자기의 믿음이 얼마나 되는가를 알고자 합니까? 내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이 얼마나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감사한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올시다. 이 은혜를 우리가 다 받았는데 이 은혜를 잘 지키는 것이 또한 문제입니다. 그러면 하 두 가지로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는 항상 광명 면을 바라보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좋습니다. 인생에게는 항상 광명 면과 암흑면이 있습니다. 햇빛을 먼저 보되 그늘을 먼저 보지는 마십시오, 비가 내립니다. 한 사람은 말하기를 "아, 오늘 먼지가 없으니 좋구나."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오늘은 길이 질겠다." 같은 포도를 먹으면서도 한 사람은 "그 포도 맛이 좋다."고 하나 한 사람은 "그 씨앗이 귀찮다"고 불평입니다. 같은 장미를 바라봅니다. 한 사람은 "참 장미가 아름답다"고 격찬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그 장미는 가시가 많군." 합니다. 같은 국화를 바라봅니다. 한 사람은 "그 국화 참 예쁘다"고 말하나 다른 한 사람은 "쑥 냄새는 좋지 않다"고 불평입니다. 암흑면을 바라보지 말고 밝은 면을 보는 습관을 양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26.감사의 할아버지


여러분, 이런 이야기 들으셨지요. 어떤 잘 믿는 할아버지 한 분이 있었는데 언제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다니니 감사의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할아버지가 한 번은 거리에 나가서 고기 한 근을 사 가지고 돌아오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서 고기를 손에서 놓쳐 버렸습니다. 때마침 한 마리 개가 곁을 지나가다가 고기를 물고 달아납니다. 할아버지는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어떤 젊은이가 지나가다가 묻기를 무엇이 감사한 일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 때 할아버지 하는 말이 "아 이 사람아, 고기는 잃어버렸으나 내 입의 입맛은 그냥 있네"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고기가 아무리 많아도 입맛이 없으면 별로 감사한 일이 못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캄캄한 밤에도 별을 보고 감사합니다. 검은 구름 위의 무지개를 보고 감사합니다. 슬픈 가운데에서도 소망을 보고 감사합니다.

 

 
 




27.로빈슨 크루소의 감사


여러분,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를 다 알고 계시지요. 이 분이 파선을 만나서 무인고도에서 혼자 산 이야기 말입니다. 혼자 고독한 섬에서 자기의 신세를 돌아봅니다. 파선을 당한 면에서 보면 불행한 생각이 납니다. 그러나 다른 편으로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면을 볼 때는 감사할 일입니다. 비록 분리되어 있기는 하지마는 그래도 굶지 않고 먹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옷 입은 것이 한 벌밖에 없으나 불행한 일이나 그런 대로 섬의 일기가 더워 옷이 별로 필요 없으니 역시 감사할 일입니다. 방비할 무기가 없으니 이는 불행한 일이나 자기를 해칠 맹수가 없으니 또한 감사할 일입니다. 마주앉아 이야기할 말동무가 없으니 불행하나 차츰 파선된 배가 그 섬에 닿아 배속의 여러 가지를 보니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불행하기는 하지만 감사한 면이 더 많다고 하여 감사의 결론을 맺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감사한 마음을 항상 보존하는 중요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채워 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성경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특별히 귀한 성귀(聖句)를 골라 외우고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에서 18절을 다 외우십니까? 한 번 손들어 표해 봅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빌립보 4장 4절 이하를 외우십니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충만하면 감사한 마음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감사한 마음>에서

 

 
 




28.인디언과 흑인


미국 같은 나라는 물론 백인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거기 가면 유력한 두 종족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한 종족은 본래 미 대륙의 본토인입니다. 인디언이라고 하는 종족입니다. 또 한 종족은 아프리카에서 본래 노예로 잡아온 종족인데 약 백 년 전 남북 전쟁 이후에 해방 얻은 흑인종입니다. 그런데 이 두 종족을 비교해 보면 똑같은 미 대륙에서 똑같은 미국 헌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데 흑인들은 그래도 장성하고 발전하는 중에 있어서 그 가운데 인물도 나고 각 방면에 위대한 사람이 종종 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토인에게서는 장성과 발전을 볼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그 본국 그 본토인은 점점 자멸하는 운명에 있는 것을 목도할 수가 있습니다. 자유인은 장성과 발전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솔직히 우리 민족 자체를 반성해 소세요. 우리 민족이 해방을 맞은 지 20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 얼마나 모든 방면에 있어서 장성하고 발전하였는가? 정계는 얼마나 성장했는가? 경제는 얼마나 발전하였는가? 문화는 얼마나 진보되었는가? 사회는 얼마나 발전하였는가? 우리 남한에 있어서는 온전한 신교 자유가 있는데 이런 정세 아래서 남한의 교회는 얼마나 발전하였는가?
물론 이 모든 방면에 다소간 발전과 장성이 있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성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은 왜 좀더 장성하고 좀더 발전하지 못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 가운데 자유를 바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고, 자유는 장성과 발전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한 이가 적었던 이유가 아니겠는가 라고 우리는 솔직히 반성할 수밖에 없는 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 한국 민족 안에 있는 내재적 능력을 발휘하고 장성하고, 세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29.자유와 문화발전

춘추전국시대를 여러분은 기억하시는지요? 주나라 말기에 제국의 정부가 약해지니까 여러 지역의 성 전부가 독립을 했습니다. 여섯 나라, 일곱 나라, 여덟 나라, 열 아홉 나라로 독립해서 다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독립국이 되어서는 각각 자기 마음대로 정치를 할 수 있고 어떤 정치가든 여기서 등용되지 못하면 다른 나라에 갈 수도 있고 여기서 말못하면 다른 나라에 가서 말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독립국이 있게 되니 오히려 중원에 자유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문화가 발전되었습니다. 철인이 일어나고 문인이 일어나고 성인들도 일어났습니다. 노자 같은 이, 공자 같은 이도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일어난 성현입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 압니까? 이 국가들이 자기네들끼리 싸움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진나라에게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독재 정권이 들어올 때에 문화는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자유가 있는 곳에 성장과 발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이기적 목적으로 쓰려는 정신이 들어올 때에 결국 잘못하면 망합니다. 자유인은 봉사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유를 가지고 피차에 봉사해서 종노릇을 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유와 그 책임>에서

 

 
 




30.시간 관념
 
몇 해 전에 어떤 교회에서 어느 목사가 배척을 받아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배척받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목사는 어느 집에 심방을 가든지 일어설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시간 관념이 없는 것이지요. 우리 교회 권찰 가운데 이런 권찰은 꼭 없어야 하겠습니다. 심방은 마을도리가 아닙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마을도리 할 시간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능률 있게 하도록 머리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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