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목차 돌아가기] |
성경: 살전5:13 "저희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홀어머니를 모신 내외가 있었는데 날마다 고부간에 싸워서 가정의 평화라고는 없었습니다. 어머니 편을 들 수도 없고, 아내 편을 들 수도 없고 중간에 끼어서 고생하는 것은 남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좋은 꾀를 내어 밤 한 말을 사가지고 와서 아내에게 "여보, 당신과 어머님과 싸우는 걸 더 이상 볼 수가 없구료, 당신이 죽든지 어머니가 돌아가시든지 해야지 안되겠소. 그러나 젊은 당신이 죽어서야 되겠소? 그래서 오늘 감쪽같이 어머니를 앓지도 않고 돌아가시게 하는 좋은 약을 사왔으니 내 말대로 꼭 해야 하오." 그러면서 밤을 내 주었습니다. "이건 밤이 아니에요?" "음, 이걸 삶아서 매일 잡숫게 하면 어머니는 뚱뚱하게 살이 쪄서 혈압이 높아져 앓지 않고 쉽게 죽는 다오 그러니 돌아가실 분에게 공손히 잘 대하구려." "네, 어디 그럼 당장 내일 아침부터 해보겠어요." 며느리는 좋아 라고 밤을 삶아서 이른 아침에 가지고 들어가서 전에 없이 공손한 말씨로 시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시장하실텐데 이 밤을 잡수세요." 시어머니는 뜻밖의 일이라 아무 말 않고 받아 먹었습니다. 이튿날도 또 그 다음 날도 매일 공손한 인사와 함께 며느리에게 서 밤을 받아먹은 시어머니 마음에 후회하는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 착한 며느리를 괜히 내가 심히 굴었지! 이렇게 생각하자,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싸움이 그칠 줄 모르던 이 집안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나 인제 저 밤 내다 버릴 테야요." "아니 왜?" "어머님이 돌아가실 까 겁이나요! 그렇게 인자하신 어머니를 죽이려고 한 내가 나쁜 년이었어요!" 그러면서 흑흑 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흐느끼는 아내의 등을 어루만지며, "여보, 어머닌 벌써 돌아 가셨다오!" "네? 거짓말! 조금 전에도 정정하셨는데...." "하하하 여보, 그 밤은 며느리를 미워하는 시어머니를 죽였다오! 그 독약 참 효과 만점인데!" "난 몰라요! 그렇게 감쪽같이 사람을 속이구..." 아내는 눈을 홀겼습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벧전3:11) /한태완 목사 지음, 백문사, "마음의 문" 중에서 2. 행복한 가정의 비결 어느 동네에 두 집이 이웃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집은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대가족이었고, 한 집은 젊은 부부만 사는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대가족을 이룬 가정은 항상 화목하여 웃음꽃이 피었는데, 부부만 사는 가정은 항상 부부싸움이 잦았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이웃집의 화목한 모습을 보고 크나큰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 우리는 둘만 사는데도 매일 싸워야 하고, 이웃집은 여럿이 함께 모여 사는데도 저토록 화목한 것일까? 그래서 어느 날 젊은 부부는 과일 한 상자를 사 들고 이웃집을 찾아갔다. 다과를 나누며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댁의 가정은 대가족인데도 웃음이 떠날 줄 모르고 우리는 둘이 사는데도 매일 싸움만 하는데, 선생님 댁이 그렇게 화목하게 지내시는 비결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이웃집 주인은 대답했습니다. "아. 네! 그것은 당신네 두 분은 모두 훌륭하시고, 우리 가족은 모두 바보들이기 때문이죠!" 그 말을 들은 젊은 부부는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그 집 주인은 말하기를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내가 출근하다가 물을 엎질렀습니다. 그때 나는 내 아내에게 내 부주의로 물을 엎질러 미안하다고 하며 용서를 청했지요. 그랬더니 내 아내는 '아니오' 하면서 생각이 모자라 물그릇을 그곳에 놓아두었으니 자신의 잘못이라고 하며, 오히려 나에게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런데 옆에 계시던 저의 어머니께서는 '아니다, 나잇살이나 먹은 내가 그것을 보고도 그대로 두었으니 내가 잘못이다.' 하셨습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해 바보가 되려고 하니 싸움을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젊은부부는 이웃집의 그런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아 화목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3. 화목의 조건 화목한 가정들은 대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잘못된 일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려 하는 것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방바닥에 누가 물그릇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만 아이가 지나가다가 발로 차서 물그릇을 쏟았다. 이 광경을 본 할머니는 제일 먼저 달려와 “내가 먼저 보고 치워야 하는데 내 잘못이야”하고 미안해하신다. 아들은 “제가 물을 먹고는 바로 치운다는 게 그만 잊어버렸습니다.제 잘못입니다”하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부엌에서 달려온 며느리는 “제가 좀 잘 살펴야 하는데 제 잘못입니다”하며 자신을 탓한다.손자는 “제가 조심해서 걸어야 하는데 제가 잘못했어요”라면서 자신의 과실을 인정한다. 그러니 싸움이 일어날 일도,다툴 일도 없다. 똑같은 일이 우리 가정에서 일어났더라면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5:17) 4. 화목한 가정 우리나라 옛 전래동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색시가 시집을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루는 밥을 짓다 말고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남편이 이유를 물으니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은 오늘은 바빠서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했더니 물이 부족해서 밥이 탔다며 이것은 자기의 잘못이라 위로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울음을 그치기는 커녕 감격하여 더 눈물을 쏟았습니다. 부엌 앞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사정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늙어서 근력이 떨어져서 장작을 잘게 패지 못했기 때문에 화력이 너무 세서 밥이 탔다고 아들과 며느리를 위로했습니다. 그 때 이 작은 소동을 들은 시어머니가 와서 이제 내가 늙어서 밥 냄새도 못 맡아서 밥 내려 놓을 때를 알려주지 못했으니 자기 잘못이라고 며느리를 감싸주었습니다. 옛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잘 살펴보면 모두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스스로 반성하고 또 자기가 잘못을 뒤집어쓰면서까지 남을 위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화목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화목한 가운데 만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우리 안에 성령님이 동거하고 계십니다. 이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일치시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가족이 성령님이 인도하시고 감화 감동시켜 주시는 대로 순종하면 서로 이해, 용서, 위로, 격려하며 살아가는 가정천국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5. 화목하게 하는 삶 유명한 화가가 되기를 원하는 몇 명의 소년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방문 했습니다. 그는 아주 조용한 가운데 예수님의 얼굴을 그리는 작업에 열중 하고 있었는데 한 소년이 화판 더미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예민한 그의 작업이 방해를 받아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는 붓을 집어던지고는 어쩔 줄 몰라하는 소년에게 화를 내며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소년은 울면서 화실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다시 붓을 들고 예수님의 얼 굴을 완성시켜 보려고 애썼지만 그림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그의 창조성 과 영감은 화를 낸 후 전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울 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미안하구나. 내 말이 너무 지나쳤다. 나를 용서해다오. 나는 너보다 더 잘못했구나 너는 그저 화판에 걸려 넘어진 것뿐인데. 나는 공연히 화를 내어 나의 생명 안에 흘러 드는 하나님의 영감을 막았구나. 나와 함께 다시 화실로 들어가지 않겠 니?" 그런 후 그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화목 하게 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평화와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겸손함과 용납과 사랑에서 화목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평화를 깨뜨리는 역사는 교만과 우월감 또는 열등감과 자기 비하의 감정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책임은 예수 그 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화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책임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6. 화해와 희생의 대가 성경은 화해에 대해 특별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예물을 가지고 제단에 드리기 전에 먼저 형제와 화목하라고 했습니다. 인간과 불화한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화해의 사도가 되어야 합니다. 화해는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생의 대가를 치러져야 합니다. 일본의 동지사 대학의 초대 총장인 '니이지마죠'의 이야기입니다. 한때 그 대학에 분규가 일어났습니다. 교직원과 학생들이 완전히 두 파로 나누어졌습니다. 어느 날 총장님은 교직원들과 전교생을 모았습니다. 총장님은 이번 분규의 총책임자를 엄하게 처벌하겠다고 엄숙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총장님은 팔을 걷어올렸습니다. 굵은 벚꽃 나무 막대기로 자신의 팔을 계속 사정없이 세게 내려쳤습니다. 막대기는 꺾어지고 팔에는 피가 줄줄 흘렀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던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모두 총장이 피를 흘리고 있는 앞자리로 나와 엎드렸습니다. 모두 자기들이 잘못했다면서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이로써 적대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화해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온전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화평케 하는 자, 즉 평화를 만드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 어디를 가든지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전파하는 사도가 됩니다. 마음의 상처 입은 자를 위로하고 낮은 자를 높여주고 우는 자와 같이 울고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 신연식 7. 화목과 사랑 성경: "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 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잠 18:19) 한 랍비에게 12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의 가정은 화목과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형제의 우애를 강조하면서 서로 격려하며 살 것을 권면했습니다. 어느 날 밤 가족이 잠들 무렵, 한 아들이 랍비에게 와서 "아버지 다른 형제들은 잠만 자는데 저는 자지 않고 계속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빙긋이 웃으며 이렇게 타일렀습니다. "얘야 그래서는 안 된다. 다른 형제의 흉을 보는 것보다 다른 형제와 같이 자는 편이 훨씬 나은 거란다." 세상 사람들은 분노하면 한바탕 싸우고 나서 풀어버립니다. 그러나 형제간에 노여움이 생겨서 반목하게 되면 쉽게 해결되지 않고 원한이 깊어집니다. 에서와 야곱이 그 좋은 예입니다. 한쪽이 화해를 하려 해도 분노한 쪽에서는 산성의 문빗장처럼 굳은 마음의 문빗장을 걸어놓고 화해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완고한 마음의 문빗장도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는 열립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서만 참된 용서와 화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용서할 때 분노가 설자리를 잃고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지고 화목케 되는 것입니다. * 묵상: 형제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주며 권면해 보십시오. 8. 화평케 하는 자의 복 고대 중국에서 있은 일입니다. 두 나라가 서로 싸웁니다. 가만히 보니 더 싸우다가는 두 나라가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이것을 알고 어느 지혜로운 사람이 중간에 나타나 가지고 이쪽 나라에 가서 왕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유해 말하건대 이 나라는 만월같고 저 나라는 초생달 같습니다. 큰 나라가 되어서 굳이 조그마한 나라를 왜 치려고 하십니까?" 듣자니 왕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 "아, 그러면 그만두지 뭐..."하고는 전쟁을 그만두게 되는데, 이 사람이 이번에는 저쪽 나라에 갔습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 사람 보더니 "뭐라고? 그 나라는 만월이고 우리는 초생달이라고? 이 사람이 우리를 영 무시하는 구만!"하고 대듭니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십니까? 만월은 이제부터 기울 것이고 초생달은 이제부터 커질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째서 내가 당신네를 무시한 것입니까." "오, 그렇구만!" 그래서 두 나라 사이의 싸움이 그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 한마디로 화해가 이루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만, 화평케하기 위해서는 대개 많은 희생이 요구됩니다. 어느 부부가 오랫동안 서로 싸우다가 결국은 이혼을 결정하고 물건을 나누게 됩니다. 살림을 다 나누는데 마지막에 남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몇 년 전 불행하게 죽은 아들의 유품이었습니다. 다 없앤 줄 알았는데 이것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 아들의 일기장이었습니다. 부부는 이것을 서로 자기가 가져가겠다고 다투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일기장을 열어 보았습니다. 일기장에는 이런 말이 씌어 있었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아빠 엄마 싸우지 마세요' 부부는 목이 메어 마주 보다가 무심결에 서로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아이의 소원을 이루어 줍시다"하며 다시 화해를 했다고 합니다. 피스메이커가 됩시다. 나로 인해서 동서가 합치고, 남북이 합치고, 나 하나의 희생으로 인하여 서로가 하나되는 역사가 있을 때 바로 거기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태완 목사(예화포커스) 9. 결투 벌인 금붕어의 비극 작은 어항속에 금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 둘은 서로를 미워하면서 툭하면 싸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대판 싸웠다.결국 그중에서 많이 다친 금붕어는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살아남은 한 마리는 이제 혼자서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며칠뒤 그 금붕어도 죽고 말았다. 죽은 물고기가 악취를 내면서 몸이 썩기 시작했기 때문이다.이 우화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사람은 홀로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서로 도와가면서 살아야 한다. 한자의 사람 인(人)을 생각해보라.서로가 서로를 받치고 있는 형상이 아닌가?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더불어 믿어야 한다.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하고 세워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장작이 떨어져 있으면 화력을 낼 수 없지만 함께 포개지면 큰 화력을 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인 우리들은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더욱 배려해주자. /박상훈 목사/국민일보 10. 세 마리의 개구리 무지개 연못 한가운데 작은 섬이 하나 있었습니다. 연못가에는 조약돌들이 깔려 있고 잡풀들이 우거져 있었습니다. 그 섬에는 툭하면 싸우는 개구리 세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날이 샐 때부터 공연히 옥신각신 말다툼을 했습니다. “연못에 들어오지 마. 이 물은 내 거야.” “그 섬에서 나가 그 땅은 내 거야!” “공중은 내 거야.” 그런 식으로 계속 싸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어두컴컴해지면서 멀리서 천둥소리가 울리고 번개가 쳤습니다. 섬은 순식간에 물줄기에 휩싸이게 되었고 빗줄기가 하늘을 메우더니 연못은 흙탕물이 되었습니다. 물이 불어나서 섬은 점점 작아졌습니다. 개구리들은 춥고 겁이 나서 덜덜 떨었습니다. 그들은 거세게 출렁이는 시커먼 물 위에, 아직 솟아 있는 몇 개 안되는 미끄러운 바위 위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바위들도 곧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연못에는 바위가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개구리들은 모두 그 위에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이상하게도 셋이 그렇게 붙어 있으니까 점점 무서움은 덜해지고 함께 희망을 나누게 되자 마음이 든든해졌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자 연못의 물이 조금씩 빠지더니 다시 연못은 제 모습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개구리들은 이제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살았습니다. 11. 엉킨 두 마리 사슴뿔 독일 베벤하우젠 근처의 오래된 수도원에 서로 엉켜있는 두 마리의 사슴뿔이 있다. 그 두 마리의 사슴은 수 년전에 발견되었다. 사슴들은 싸우다가 서로의 뿔을 상대편에게 쑤셔 넣음으로써 떨어질 수가 없게 되었고, 끝내 두 마리 모두가 죽게 되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낸 케어 박사는 "그런 뿔이 모든 가정과 학교에서 제거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파멸의 대결"이 모두 제거되었으면 좋으련만. "만일 서로 물고 물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 12. 다툼 장소 어떤 두 사람이 버스 안에서 심하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다른 승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높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함께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이 얼마나 불편이 컸겠습니까? 어느 중년의 승객이 참다못해 다음 정거장에 버스가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던 승객은 버스 문앞에서 뒤를 돌아보더니 다투던 사람들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여기가 교회인줄 알아?”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다툼의 장소로 인식된 것은 슬픈 일입니다. 세상에서의 큰 다툼은 작게 인식되지만 교회에서의 작은 다툼은 세상에서 큰 다툼으로 인식됩니다. 교회는 작은 다툼이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권하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다툼이 있는 곳에 화평이 되어야 합니다. /이성희 목사 13. 포로가 된 나팔수 나팔수가 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살려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여러분 아무쪼록 부탁이니 저를 살려 주십시오. 그리고 이유도 없이 저를 죽이거나하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 주세요. 어쨌든 저는 스스로 누구 한 사람 죽인 일이 없었으며, 다만 이 나팔외에는 아무 무기도 갖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나팔수를 붙잡은 자들은 말했다. "아냐, 그러한 까닭이니 만큼 더욱 빨리 너를 죽이는 것이다. 까닭인즉 너는 싸울 생각도 없으면서 다른 자들을 부추겨 싸우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기 때문이다." 선동시켜서 싸우게 만드는 자는, 싸움에 참가하는 자보다도 훨씬 더 나쁘다. 14. 형제와 화목하라 어느 분이 자전거 바퀴에 공기를 넣으려고 이웃집 펌프를 빌렸습니다. 그런데 쓰던 도중에 그만 펌프가 망가졌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망가진 펌프를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숨긴 채 자기합리화에 빠져들었습니다. ‘펌프가 낡았고 어차피 고장날 수밖에 없었어.’ 허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결국 이웃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은 동일한 상황에서 새 펌프를 사들고 주인에게 갔습니다. “제가 펌프를 사용하다가 그만 망가뜨렸습니다. 제가 연장 다루는 법이 좀 서툴러서요. 그래서 새 펌프를 사왔어요. 죄송합니다.” 주인이 오히려 미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돈은 좀 들었지만 이웃과의 관계는 전보다 더 좋아졌습니다. 적은 돈으로 좋은 관계를 산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4)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15. 충격요법 하나님의 사랑은 가끔 충격요법으로 나타난다. 지난 연말, 서울 아산병원 15층 병실에서 바라본 창밖의 야경은 아름다웠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사이를 흐르는 한강에 올림픽대교의 오색찬란한 불빛이 환상적이다. 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마친 맏형 같은 선배 목사님이 나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최 목사, 나 이번에 많이 회개했어. 원만치 못하고 화목지 못했던 인간관계를 얼마나 회개했는지 몰라. 침상에서 받은 은혜가 참으로 커.” 그 동안 나에게 섭섭했던 일들을 다 털어놓으셨다. 나는 선배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 동안 오해로 인해 마음에 쌓였던 담이 무너졌고 하늘로부터 온 평안으로 충만해졌다. 목사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우리는 2006년도 역사의 강을 건너기 전에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하나되는 화목의 십자가를 경험했다. 하나님은 때로는 충격요법으로 치유와 회복을 주신다. /최낙중 목사<해오름교회> 16. 가정이 화목한 비결 장 공예의 집안은 9대를 내려오면서 세간을 나지 않고 한 집에서 살아 식구가 수백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 가정은 언제나 화평하고 돈후하여 당나라 고종 황제의 귀에까지 그 소문이 들어갔다. 고종은 이를 기특하게 여겨 그 집에 행차하여 주연을 베풀어주었다. 그때 고종은 장 공예에게 9대를 내려오면서 다투지 않고 화목하게 지내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장 공예는 종이와 붓을 가져다 놓더니 참을 인(忍)자를 백 개나 꽉 차게 써넣었다. 그것을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화목하지 못함은 어른들의 의복과 음식이 고르지 못하다든지 젊은이들의 예절이 잘못되었다든지 하는 데서 비롯되는데 오직 참는 것으로 저희 집안의 헌법을 삼고 있습니다. 누구나 서로 이해하고 참는 데서 자연스럽게 말이 없고 화목하게 됩니다." 17. 가정과 화평 메이어라는 랍비는 설교를 잘하기로 유명하였다. 그는 매주 금요일 밤이면 예배당에서 어김없이 설교를 했는데, 몇 백 명씩 한꺼번에 몰려 들어 그의 설교를 들었다. 그들 가운데 메이어의 설교듣기를 매우 좋아하는 여인이 있었다. 다른 여자들은 금요일 밤이되면 안식일에 먹을 음식을 만드느라 바쁜데, 그 여자만은 이 랍비의 설교를 들으러 나왔다. 메이어는 긴 시간 동안 설교를 했고 그 여인은 그 설교에 만족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남편이 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내일이 안식일인데 음식은 장만하지 않고 어디를 쏘다니고 있느냐며 화를 내며 물었다. [도대체 어디를 갔다 왔어!] "예베서에서 메이어 랍비님의 설교를 듣고 오는 길이예요" 그러자 남편은 몹시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 랍비의 얼굴에다 침을 뱉고 오기전에는 절대로 집에 들어올 생각은 하지도 말어!" 집에서 쫓겨난 아내는 할 수 없이 친구 집에서 머물며 남편과 별거하였다. 이 소문을 들은 메이어는 자기의 설교가 너무 길었기 때문에 한 가정의 평화를 깨뜨렸다고 몹시 후회했다. 그리고는 그 여인을 불러 눈이 몹시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남의 타액으로 씻으면 낫게 된다는데, 당신이 좀 씻어 주시오'하고 간청하였다. 그리하여 여인은 랍비의 눈에다 침을 뱉게 되었다. 제자들은 랍비에게 '선생님께선 덕망이 높으신데, 어째서 여자가 얼굴에 침을 밷도록 허락하셨습니까?'하니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가정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는 그 보다도 더한 일이라도 할 수 있다네." 18. 화목한 비결 화목하기로 소문난 가정에 한 친구가 찾아와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대답하기에 앞서 장남을 불렀습니다. “얘야, 뒤뜰 감나무에 가서 감 한 광주리만 따오거라.” 친구는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막 파랗게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 감을 따오라고 시키다니…. 과연 아들이 시키는 대로 할까?’ 그러나 주인의 장남은 아버지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저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여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또 주인은 차남을 불렀습니다. “외양간에 가서 소를 끌어다가 지붕에 올려 놓거라.” 이번에도 친구는 이해할 수 없는 심부름에 깜짝 놀랐으나, 주인의 차남은 사다리를 놓고 소를 지붕으로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친구는 그 가정이 화목한 비결이 바로 아버지의 권위에 대한 아들들의 순종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이와같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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