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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제3권-4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91-120

by 【고동엽】 2022. 3. 2.
[처음 목차 돌아가기]
 
 

91.성화 '세상의 빛'


계시록 3장 20절의 '문'은 우리의 마음의 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 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고 하였습니다. 유명한 예술가 홀맨 헌터라고 하는 분이 성경 말씀을 기초로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성화를 그렸습니다. 그 성화에 보면 예수 님께서 굳게 닫힌 문 밖에서 한편에는 등불을 들고 다른 한편 손으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령의 문밖에서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올시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모습으로 표현되나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찾으심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비유를 기억하시겠지요. 목자가 양을 찾습니다. 여인이 잃은 돈을 찾습니다. 그리스도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어떤 때는 양심을 통하여 어떤 때는 이성을 통하여서 때로는 경험을 통해서 슬픔, 기쁨 등, 때로는 친구의 권면(勸勉)을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방송을 통해서 인간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문의 바깥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 문 밖에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열어야 하며 다른 이가 열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마음 문의 주인은 우리 각자 자신입니다. 주님의 문 두드리시는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어서 주님께서 마음속에 들어오시어 자신과 같이 먹고 마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열쇠는 내게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나 열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멸망의 책임도 우리들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열린 문과 닫힌 문>에서

 

 
 




92.무명 용사들의 공헌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약 15분간 남쪽으로 걸어가면 거기 조그마하게 두드러진 곳이 있습니다. 사방에 소나무를 뺑 돌아 심어서 그 속에 들어가면 조용하고 누가 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종종 시간이 있으면 그 곳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 조그마한 산은 다른 게 아니고 무명 용사의 무덤이올시다. 미국 독립전쟁 때에 큰 전쟁이 그 프린스턴에서 일어났습니다. 많은 미국의 독립군과(그 때는 영국과 싸울 때입니다) 영국군인들이 한꺼번에 죽어서 적군이나 아군의 시체를 모아 보니 조그마한 산을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나무를 잘 심어 놓고 그 안에다 돌로 무명 용사의 무덤이라고 새겨 놓았습니다. 저는 그 곳에 가서 조용히 머리를 숙일 때마다 제 마음 가운데 큰 느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미국의 번영과 축복과 이 나라가 이렇게 자라게 된 것은 배후에 이런 무명의 용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라를 위해서 싸운 무명의 용사들이 있었을 뿐만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 싸운 무명의 용사들도 많았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방면에 이 무명의 용사들의 공헌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나라가 된 것입니다. 나라나 교회나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나 우리 교회도 과연 축복 받는 나라와 교회가 되려고 할 것이면 이런 무명의 용사가 많아야 합니다.
강원도 일부에 공비가 침투해서 소탕 작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신물을 펼 때마다 자세히 읽어봅니다. 감격한 것은 우리 군경과 예비군들이 용감히 나라를 위해서 싸울뿐더러 국민들도 그저 공비가 척 발견만 되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곧 신고를 해줍니다. 말하자면 우리 국민들 하나 하나가 무명의 반공의 용사라고 하는 것을 제가 알게 될 때에 마음은 아주 감격했습니다. 그러면 나라가 됩니다. 그러면 교회도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남북 통일도 분명 될 수 있을 것입니다.

 

 
 




93.스파르타의 성벽


전에 헬라에 여러 작은 나라들이 있었는데 그 때에 스파르타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성을 쌓고 사는데 이 스파르타 나라에 가니까 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그 나라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에는 다 성이 있는데 당신 나라는 왜 성을 쌓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그 나라 사람이 "우리 스파르타 나라는 우리 국민 하나 하나가 나라를 지키는 한 벽돌이올시다, 성이올시다."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나라는 잘 됩니다. 교회도 그와 같은 사람으로 구성이 되면 부흥됩니다.  <천국과 무명용사>에서

 

 
 




94.구원 역사의 책


성경은 참 이상한 책이올시다. 아무리 잘 팔리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아무리 베스트셀러라고 할지라도 한 10여 년 지나게 되면 그 책을 찾는 사람이 벌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근 이천 년 전에 쓰인 책인데 지금까지도 제일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올시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 책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제일 많은 비난을 받고 공격과 박해를 받아오는 책입니다. 옛날 셀서스라고 하는 사람을 비롯해서 18세기의 볼테어 같은 사람 그리고 20세기에 와서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항상 공격과 박해의 대상이 된 책입니다.
옛날 로마 시대에 교회를 핍박할 때에는 믿는 사람만 잡아다가 불에 태워 죽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도 찾는 대로 거두어서 불살라 버린 것입니다.

 

 
 




95.세 가지 지혜를 주는 책


영국 같은 나라에서도 16세기에 윌리엄 틴테일이라는 사람은 처음으로 성경을 영국 말로 번역한 죄로 화형을 당했습니다. 영국의 헨리 8세는 누구든지 이 새 번역 성경을 읽는 사람은 한 달 이상의 금고에 처한다는 포고를 내리기도 했었습니다. 오늘날 문명이 더 발전되었다고 하는 20세기에 와서도 잘 아시는 북한 같은 데서는 이 성경을 자유로이 내놓고 읽을 수 없는 것입니다. 소위 공산 국가에서는 아직도 성경을 자유로이 출판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많은 박해를 받는 책이지마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성경은 제일 많이 팔리는 책이올시다. 제일 많은 방언으로 번역된 책입니다. 1천 2백여 다른 방언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읽는 책입니다. 또 각계 각층의 사람이 읽습니다. 학생도 읽고 군인도 읽고 철학자도 읽고 정치가도 읽고 실업가도 읽고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각계 각층이 모두 성경을 읽습니다.
왜? 그 대답이 우리가 읽은 이 구절 가운데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간단히 말하면 세 가지의 말씀이 있습니다. 마지막부터 생각합시다.
첫째로 이 성경은 지혜가 있게 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이 성경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96.강도를 변화시키는 성경

이탈리아에 시실리라고 하는 큰 섬이 있습니다. 어떤 권서가 밤길에 산골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돈을 다 뺏기고, 등에 지고 가던 성경책까지 뺏어서 모닥불 속에다 넣으라고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합니까? 권총을 대고 넣으라고 하니, 집어넣으려다 권서가 얼른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 책을 불 속에 넣겠는데 당신은 여기에 무슨 말이 있는지 모를 것이 아니요? 그러니 내가 여기서 한두 마디만 읽고 불에 넣겠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권서가 성경을 척 펼쳤더니, 시편 23편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 읽었습니다.
  강도가 다 듣더니 "아하! 그것 이상한 말이 다 있구먼. 그 책은 여기 놓으시오." 합니다. 그래서 다른 책을 들면서 "여기서도 한 마디 읽고 넣읍시다"하고 성경을 펼치니 산상보훈이 나오는데 어떻게 하는 사람이 복 받는다 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강도는 "아하! 그것도 이상하니 그것도 넣지 마시오." 이렇게 해서 나중에는 책을 다 넣지 말라고 하더니 자기가 다 싸 가지고 가버렸습니다. 그 권서는 돈도 잃고 책도 다 잃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여러 해 후에 어떤 점잖은 사람 한 분이 그 권서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손님이 "당신은 언젠가 산에서 강도를 만났던 일을 기억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니까 "그 강도를 기억합니까? 제가 바로 그 강도올시다. 제가 당신의 성경책을 뺏어 가지고 가서 좀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성경책을 읽는 가운데 저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뿐 아니고 저는 멀리 가서 신학 공부를 하고 지금은 목사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도가 변해서 목사가 되게 하는 책이 성경책이올시다.

 

 
 




97.감옥 속에서 신약 백 독


위대한 애국자요 교육자인 남강 이 승훈 선생을 기억합니다. 105인 사건 때 서대문 형무소에 들어가 있으면서 신약 백 독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책은 안 읽고 신약 백 독을 하였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되었음이라."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포로가 될 때에 우리 양심은 바른 양심이 됩니다. 바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전에 어떤 책을 보니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사다 두기는 하지만 읽지를 않아서 성경 위에 먼지가 많이 쌓여있다 더라" 하는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어떤 글귀가 있는고 하니 "만일 오늘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네 성경책 위에 있는 먼지를 일시에 떤다고 하면 먼지가 너무 많아서 한 3, 4일 동안 해가 가리워 질 것이다."라는 말이 적혀 있더랍니다. 여러분의 성경은 어떻습니까?<구원에 이르는 지혜>에서

 

 
 




98.새긴다는 뜻
 
우리 한국에는 이런 풍속이 그렇게 많지 않지마는 외국에는 아직도 상당히 있는데 특별히 해병들이나 어부들 가운데 자청(刺靑)이라고 먹으로 살을 떠서 팔이든지 손잔 등에 그림도 그려놓고 글자도 새기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여기 새긴다는 말도 그 뜻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너 곧 시온을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했습니다. 쓴 것이 아니라 새겨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워지지 아니합니다. 그냥 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게 무슨 뜻입니까? 몇 가지 뜻이 있는 줄 압니다.
손바닥에 새겼으니 언제나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하여 우리가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러나 기념비는 보지 않는 때가 많습니다. 잊지 않고 어떤 사람을 기억하기 위하여 동판에다 그 사람 이름을 새겨 넣는 풍속도 혹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항상 보는 것은 아닙니다.

 

 
 




99. '풔겟 미 낫'


미국 사람들은 조그만 어느 꽃을 '풔겟 미 낫(forget Me Not)'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나를 잊지 말아라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자기 애인에게 편지할 때에 혹 그 꽃을 따서 같이 보내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꽃도 금방 시들고 마는 것입니다. 반면에 손바닥에 새긴 것은 언제나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잊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이렇게 잊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아니하십니다. 사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지었으므로 징계의 채찍이 그들에게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포로가 되었고 멀리 가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렸다, 잊었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이 그런 사랑의 채찍을 맞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잊지 아니한 증거입니다.<시온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에서

 

 
 




100.푸에블로호 승무원의 증언
 
바로 며칠 전에 푸에블로호의 승무원 82명이 북괴에 납치되어 가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석방되어 돌아왔습니다. 이들이 북괴에 잡혀가서 당한 경험을 들으면 신문에 보도되는 대로 갖은 폭행을 다 당했습니다. 주먹으로 맞기도 하고 발길에 채이기도 하고 곤봉으로 맞기도 하였습니다. 부커 함장이 기자 회견에서 대답할 때에 여러 말을 하다가 마지막쯤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우리들과는 다르리라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내가 겪은 북괴 인들은 내 자신이 알고 있는 인간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인간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고 강조했습니다.
공산당들은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과는 멀어졌으나 짐승과는 가깝다고 하는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동해안에 침투한 공비의 만행을 우리는 신문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열 살 미만의 어린아이 입을 찢어서 죽이고 네 살 난 아이를 때려죽이는 만행까지 감행했다고 하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우리는 떨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인간의 행동과는 너무나 먼 행동입니다. 20세기에 인간의 덕성은 너무나 타락했습니다.

 

 
 




101.차라리 동물원을?


신문을 보니 얼마 전에 일본의 동경대학이 좌익학생들의 선동과 데모와 폭동으로 수라장이 되고 심지어 교수를 감금해서 70시간이나 괴롭히는 광경을 본 일본의 한 저명한 문사가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동경대학은 차라리 동물원을 만들어 버리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간이 아니요, 이미 짐승이 다 되었으니 차라리 동물원을 만들자는 말이 아닙니까?
어떤 나라의 한 대학생은 실감 있는 자유의 체험을 얻기 위해서 벌거벗고 연설을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이쯤 되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20세기 인간의 도덕성은 너무나 타락하였습니다. 성도덕의 타락과 혼란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범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가 됩니다. 이 타락한 인간을, 깊은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할 이가 누구입니까? 여러분 크리스마스는 이러한 인간들을 죄악에서 구속하게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를 보내신 날입니다. 오직 크리스마스가 있으므로 20세기에는 소망의 별이 비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우주시대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크리스마스와 우주시대>에서

 

 
 




102.사신의 역할


제가 약 2개월 전에 남장로교회의 초청을 받고 미국으로 갈 때에 하나님께 조용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속에 특별히 깨닫게 한 것은 "너는 지금 미국에 가는데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가는 것을 기억해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교회를 다섯 주간에 방문하는데 아마 한 40교회를 방문한 것 같아요. 저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고 하나님과 화목 하는 참된 은혜를 베푸는 그 사명을 마음 가운데 항상 기억하고 여러 교회를 순회했습니다.
또 제가 그곳에서 한국 학생들과 교포들을 만나서 같이 예배를 드릴 때에도 이 말씀을 같이 생각했습니다. "당신 네 들이 외국에 와서 공부를 하거나 혹은 공부를 다 마치고 일자리를 구해서 있거나 당신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것이면 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이 나라에 와서 이 직장에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여야 하며 그 직장에서 한국의 크리스천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 하나 하나는 어떤 직장에 있든지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사신이리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03.사신이 된 식모 이야기


제가 들으니 어떤 식모가 믿지 아니하는 집에 일을 하려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식모는 참 신앙이 있는 분이올시다. 물론 가난하고 공부도 별로 못하였기에 다른 집의 식모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분은 안 믿는 집에 있으면서 "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이 집에 와서 식모노릇을 한다"하는 생각을 가졌답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을 정성껏 하고 언제나 마음으로는 이 집이 아직 예수를 모르고 죄악 가운데서 사니 이들을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 나오게 해달라고 항상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에 나가지 않겠느냐고 하고 또 어린이들이 병중에 있을 대에는 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느냐 하며 자기 친구를 데려다가 기도하게 하고 목사도 청 해다 기도하고 해서 마지막에는 잘 믿는 식모 하나로 인해서 온 가정이 잘 믿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104. '여호수아 중대'


제가 전에도 말씀했지마는 약 2년 전에 월남에 갔을 때에 여호수아 중대라는 부대를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이 중대는 모두 예수 믿는 군인들로 조직된 부대였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예수 믿는 군인만 뽑아서 중대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처음 조직할 때는 예수를 믿는 군인이 10명도 안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들이라는 마음으로 사명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온 중대가 감화되어 예수를 믿게 되고 여호수아 중대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믿는 청년들이 군데에 많이 나가는데 이 청년들 하나 하나가 이런 그리스도의 사명감을 가지고 군대에 나가서 군인 노릇을 한다고 할 것이면 우리 한국의 전 군대가 오래지 않아서 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고 관청에 있는 이들, 회사에 있는 이들, 상점에 있는 이들, 어떤 직장에 있든지 그 사명을 바로 지킬 것입니다. 가령 어떤 여자가 믿지 아니하는 집에 출가를 했다고 하면 그 가정에서 "나는 그리스도께서 이 가정에 보낸 그리스도의 사신이라"하는 것을 깨닫고 그 곳에서 사명을 다하면 온 가정이 감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다. 우리 믿는 사람 하나 하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어떤 직장에 있든지 그곳에서 사신 노릇을 하여야 합니다.

 

 
 




105.숨은 속 사람
 
참으로 행복 되고 하나님께 영광 되는 가정 생활의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다 인간입니다. 고로 개성이 다릅니다. 성품도 다릅니다. 또 다른 환경에서 장성합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애정의 도취로 말미암아 그저 꿈같은 사랑으로 지나갑니다. 얼마가 지났습니다. 몇 달이 지나게 되면 남자나 여자나 그 속에 있던 숨은 사람이 점점 나타나게 됩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유명한 소설이 있지요. 그 하이드라는 말은 숨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숨었던 괴팍한 성품도 나타나고 고집도 나타나고 좋지 못한 습관도 나타나고 신경질도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천사인줄 알고 결혼했으나 몇 달 지나면 천사가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남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본래 결혼한 여자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자 가운데도 그런 말을 합니다. "내가 본래 알고 결혼한 그 남자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결혼생활의 위기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생활이 계속 행복하고 또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정으로 끝까지 지킬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행하는 참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106.알버트 비벨 목사의 보고


또 만일 우리 가정이 기독교 가정이라고 하면 반드시 가정 제단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일년이 가도록 집안에서 찬송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기도도 한번 같이 안 하다가 대 심방 때에나 억지로 같이 예배 보는 가정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 사람의 속담 가운데 같이 기도하는 부부는 같이 머물고 갈라지지 않는다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같이 예배보고 같이 기도하는 부부의 가정이 안전합니다. 화평합니다. 또 이런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자연히 어려서부터 종교 교육을 바로 받습니다.
알버트 비벨이라는 유명한 목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은 많은 결혼식을 주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년에 자기가 주례를 해준 750쌍의 부부에게 편지를 다 내면서 이런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 당신들이 가정 생활을 해나가는 가운데서 가정을 행복 되게 하는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이 대답하기를, "가정에서 매일 매일 종교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신앙 생활을 실천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하고 성경을 보고 찬송을 부르고 또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피차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라는 대답을 보내온 것입니다.

 

 
 




107.사랑은 오래 참는 것


여기에 특별히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얘기를 들어 보셨습니까?
전에 나이 75세난 어떤 노인이 종합 진단을 받으려고 어느 종합병원에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병이 하나도 없이 아주 건강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가 놀라며, "노인은 어떻게 그렇게 건강이 좋습니까? 어떤 비결이라도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노인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50년 전에 내 아내와 결혼을 하였는데 결혼할 때에 우리는 이런 약속을 하였습니다. '가령 우리가 같이 살아가다가 내가 어떤 잘못을 해서 당신이 성나면 당신은 대답하지 말고 참고 얼른 주방으로 나가시오. 또 혹 당신이 실수해서 내가 성나면 나는 말하지 않고 꾹 참고 얼른 밖으로 산보를 나가겠소'하는 약속을 하였는데 지금 한 50년쯤 지내고 보니 산보를 참 많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건강한 것 같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세요.

 

 
 




108.눈으로 먹는 약


옛날 신의주에서부터 저를 잘 아는 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주례한 가정을 제가 많이 보았는데, 목사님 권면(勸勉)대로 잘 믿고 잘 사는 가정들은 다 큰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교회도 안 나오고 성경대로 안 하는 가정은 이상하게도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거 이상할 것 없어요. 으레 그럴 것이 아닙니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관찰과 경험에 의한 말입니다. 제게 주례를 받은 이들이 여기에 있으시면 특별히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에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처음 전도할 때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목사고 또 의사였습니다. 그래서 어디 가든지 약을 많이 가지고 다니면서 약을 나누어주어 육신의 병을 고치고 그 다음에 전도를 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어떤 흑인이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목사님, 나의 마음속에는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더러운 마음이 가득한데 이 마음을 고치는 약을 좀 주세요." 그 말을 들은 리빙스턴은 자기 옆에 있던 성경책을 처 들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흑인이 눈이 둥그래지면서 "그것을 어떻게 먹습니까"하고 묻습니다. 리빙스턴은 "이것은 입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먹는 것이니 이것을 갔다가 잘 읽고 이대로 하십시오" 하고 권했다고 합니다.<가정의 정신적 기초>에서

 

 
 




109.마틴 루터의 아내
 
남편이 사회에 나가서 성공하고 크게 봉사하는 데는 아내의 공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와 그 어진 아내에 대한 얘기를 여러분은 다 기억할 것입니다. 루터 같은 이도 종교개혁 운동을 해 나갈 때에 한 번은 너무 어려운 일을 당해 낙심이 되어 침대에서 일어나지를 못하고 그냥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에 그의 부인이 검은 상복을 입고 그의 침실에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미틴 루터가 깜짝 놀라면서 누가 죽었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그 여인은 하나님이 죽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루터가 성이 나서 하는 말이 그런 외람 된 말이 어디 있느냐고 노했습니다. 그 때에 그 부인이 온순하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당신은 왜 낙심합니까? 라고 대답하였답니다.
이렇게 현숙한 아내는 그 남편을 격려하고 위로합니다.<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110.강하고 담대 하라
 
아프리카 밀림 지대를 지나가던 어떤 두 청년이 갑자기 발 뿌리에서 개구리 소리가 났는데 사자 소리인 줄 알고 혼비백산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왜? 겁에 질렸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에 이런 사람들이 성공한 예는 하나도 없습니다.
마틴 루터가 이런 사람이었다고 할 것이면 종교 개혁의 위대한 사업을 이루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웜스 국회에 출석하라고 하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가려고 준비할 때에 가까운 친구들은 그렇게 위험한 곳을 어떻게 가려느냐 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의 대답은, 비록 마귀가 웜스 국회 의사당의 기와 장 같이 많을 지라도 나는 가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이순신 같은 장군이 이런 마음이 없었다고 할 것이면 적은 수를 가지고 많은 왜적을 물리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겁을 집어먹는 사람이 이루어 놓은 일은 도무지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강하고 담대 하라고 말합니다. 예수 님께서도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내니 두려워 말라고, 주님께서 같이 하시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111.낙심하지 말라


참된 신앙은 공포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 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참된 신앙은 모든 공포심을 제거해 줍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를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욥이 그 많은 환난 가운데서 낙심하였다면 최후의 큰 축복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낙심한 사람이 성공한 예는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광산을 찾아보는 과학자들이 어떤 산에 가보니 거기서 꼭 금이 날 것이 분명히 보입니다. 그래서 이 산을 파면 반드시 금이 나겠으니 파보자고 해서 산을 팠습니다. 그런데 조금 파다가 보니 어떤 사람이 파보았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매우 많이 팠으니 계속해서 좀더 파자고 하면서 옛 광산 하던 자리를 계속 팠습니다. 한참 파다보니 큰 곡괭이가 박혀있는데 그 자루가 썩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니 오래 전에 광부들이 그 곳을 파보았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광부들을 동원하여 팠습니다. 그런데 그 곡괭이가 묘하게도 금만 있는 노다지 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깊이 곡괭이가 박힌 먼젓번 사람이 뽑아 내지를 못하고 낙심하여 돌아간 모양입니다. 그 곳을 계속해서 파니 많은 금이 나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낙심하는 사람이 성공한 예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교훈 하여 주십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피곤해도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했습니다.<모험적 신앙>에서

 

 
 




112.부모의 마음과 아기
 
저는 경험은 없으나 제가 들으니 얘기 젖먹이는 재미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또 얘기 없고 다니는 재미도 대단하답니다. 제가 신의주에 있을 때에 어떤 교회 목사님이 광고하기를, 분주하니 예배당 올 때에 얘기를 업고 오지 말라는 광고를 했다고 합니다. 그 광고를 듣고 얘기 어머니들이 불평이 대단했다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얘기 업고 예배당 오지 말라는 광고는 하지 않고 얘기 없고 오는 이들은 다 딴 방으로 가라고 광고를 합니다.
제가 이따금 예배를 볼 때 한 가지 좋은 것은 그 방이 아주 명랑합니다. 가만 보면 어머니들이 강대 상은 별로 안 보고 얘기 얼굴만 보려고 합니다. 얘기 얼리는 어머니, 싸 가지고 온 과자를 먹이는 할머니, 아이들이 문턱에 올라가면 끌어내리는 어머니, 하여간 좀 분주하기는 하지만 그 방에 얼굴을 찡그리고 앉은 어머니는 없습니다. 아주 명랑합니다. 어린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얘기가 점점 커서 유치원에 가게 되면 그 보습이 얼마나 예쁩니까? 혹 유치원에 가서 무슨 그림을 그려 가지고 오면 그 그림을 얼마나 잘 그렸는지, 자기 아들 그림 잘 그린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혹 국민학교에 입학해서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게 되면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쁩니까? 그러다 혹 상장이라도 타 가지고 오면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기쁩니까?

 

 
 




113.어린이는 가정의 화평


사실 부모들이 아이들 위해서 수고한다고 하지만 무료 봉사한다고 생각지 마세요. 사실은 값 받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린이들이 가정의 화평도 가져옵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부부간에 싸움을 하고 있다가도 유치원에 갔다오는 아이가 엄마 아빠하고 들어오게 되면 성났던 것도 봄 동산의 눈처럼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다시 어린아이를 가운데 놓고 싱글벙글 웃습니다.
내가 들으니까 어떤 가정에서 부부간에 싸움을 크게 하고는, 나는 이런 집에서 못 살겠오 하며 보따리를 싸 가지고 그 부인이 문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나가려고 하는데 댓 살 난 어린애가 놀다가 뛰어 들어옵니다. 들어오다 보니 어머니가 보따리를 싸 가지고 나갑니다. 이 얘가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엄마 못 가, 나하고 같이 살자 하며 매달리니 그만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어린애들이 이혼 방지하는 데는 가정법원 판사보다 나은 줄 압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혼 많이 하는 나라의 통계를 보면 얘가 없는 가정의 이혼율이 얘기 있는 가정의 이혼율보다 퍽 높습니다. 그게 무엇을 증명합니까? 어린이들이 단연 이혼도 방지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도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더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취직을 하게 되면 더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결혼까지 하게 되면 더 큰 기쁨을 가져옵니다.
어린이들이 부모에게 많은 기쁨을 가져옵니다. 이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많은 기쁨을 가져오는데 그 가운데 제일 큰 기쁨이 무엇입니까? 사도 요한 이 한 말을 다시 생각해 보세요.
여러 가지 다른 말을 듣는 것도 기쁨을 가져오지마는 자기의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들을 때에 제일 기쁘다고 했습니다.

 

 
 


 
114.첫 달 봉급



몇 주일 전에 어떤 자매 님이 제게 봉투 하나를 줍니다. 그래서 이게 무엇입니까 물으니까? 웃으면서 "우리 아이가 이번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는데 이번 첫 달 봉급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교회에 바치겠다고 합니다." 하면서 그 봉투를 저에게 줍니다.
제가 그 봉투를 받으면서 그 어머니의 얼굴을 보니 어떻게 기뻐하는지, 참 기쁨을 어머니가 체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몇 해 전에 편지를 하나 받았는데 뜯어보니 그 속에 돈이 좀 있어요. 누구에게 왔는고 하니 전주 예수 병원에 있는 간호사에게서 왔는데, 그 간호원은 본래 우리 보건원에서 자라난 분입니다. 여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곳 간호학교를 졸업한 후 간호원이 되어 자기가 받은 첫 달 봉급을 보낸 것입니다.
그 편지 사연은, "저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첫 달 봉급을 본 교회에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여 목사님께 보내니 이것을 교회에서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그 편지를 받을 때에 믿음의 부모로서 얼마나 기쁜지 이런 아이 하나만 기른 것도 보건원 세운 보람이 있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애가 이렇게 믿음이 좋더니 후에 목사 부인이 됐습니다. 둘 다 미국에 가 있는데 자기 남편은 미국 교회에서 일을 보고 자기는 병원에서 간호원 일을 본다고 합니다.
  "내가 자녀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고 사도 요한 은 말했습니다.<부모의 가장 큰 기쁨>에서

 

 
 




115.마음의 두 가지 성품
 
스티븐슨의 유명한 작품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가운데는 두 가지 성품이 있는데 하나는 지킬 박사요. 하나는 하이드라고 합니다. 지킬 박사는 아주 덕망이 높은 좋은 과학자요 하이드는 아주 악한데, 이 두 성품이 인간의 마음속에 같이 있다고 합니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킬 박사로 변해 가느냐 또는 하이드와 같은 악한 사람으로 변해 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문하에서 배웠지마는 하나는 하루에 삼천 명씩 회개시켜 새 사람을 만드는 위대한 사도 베드로가 되었고 하나는 결국 예수를 팔아  먹고 자살로 최후를 마치는 유다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가 무엇으로 변해 가느냐, 우리가 베드로로 변해 가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이란 항상 고정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항상 도중에 있습니다.
요컨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방향으로 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옳은 방향으로 변합니까? 베드로의 방향으로 변합니까? 혹 유다의 방향으로 변합니까? 천당의 후보자로 변합니까? 혹은 지옥의 후보자로 변합니까?
특별히 청년 시대에 옳게 변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생을 옳게 살며 옳은 생활, 옳은 일을 하며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116. '노인유욕'과 '보고덕부'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은 사명이 있습니다. 사회적 사명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디 가나 모든 방면에서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서 이 사회를 밝게 하여야 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 사회를 명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 40세쯤 지나면 누구나 그 육신이 원치 아니하는 방면으로 변해집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얼굴에는 점점 주름이 생기고, 머리에는 서릿발이 내리기 시작하고, 등이 점점 굽어지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면 변하기 쉽습니다. 암만 보아도 북망산 후보생에 알맞게 변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을 읽으셨습니까? "겉 사람은 후패(朽敗)하나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비록 이렇게 변하지마는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롭게 변화돼야 합니다. 인생의 황혼에 속 사람이 옳게 변해야 됩니다. 잘못하면 늙어가면서 속 사람까지 잘못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노인유욕(老人有慾)이라고, 늙으면 욕심이 많아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옛 글에도 계기재득(戒己在得)이라고, 늙어서는 얻는 데에 경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수전노 되기 쉬워요. 젊었을 때는 좋은 일에 돈 쓰기 쉬워도 늙어가면서 인색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늙어가면서 완고(頑固)만 해지고 고집쟁이만 되기 쉽습니다. 늙어갈수록 옳게 변해야 합니다. 옛날부터 동양에 내러 오는 말 가운데 보고덕부(報高德富)라고, 보가 높아지면 덕이 부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야 합니다.

 

 
 




117.달고 쓴 기억들


먼저 기억에 대한 유산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이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달고도 또 가장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무슨 말인고 하니 여러분, 우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기억은 매우 기쁩니다. 그러나 어떤 기억은 매우 슬픕니다. 여러분, 어렸을 적에 가정에서 자라던 기억 중 어떤 기억이 내 머리에 남아 있나 지금 각각 생각해 보세요. 아마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단 기억이 많은 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쓴 기억이 있기도 할 것입니다. 기쁜 기억이 머리에 떠오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기억도 있을 것입니다.

 

 
 




118.어릴 때의 기억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개인의 어렸을 적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자라났으니까 농촌에서 자라나던 여러 가지 경험이 제 머리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봄철에는 뒷동산에 진달래꽃이 아름답게 피고 옆에 있는 송림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뻐꾹 새의 울음소리가 지금도 쟁쟁하게 들리고 들에 나가면 보리밭에서 나와 공중으로 올라가면서 아름답게 노래하던 종달새의 소리가 지금도 쟁쟁히 들립니다. 그래서 삼팔선만 열리면 내 고향에 가서 종달새 소리를 한번 더 듣고 죽으면 한이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아주 어려서 어머니를 따라 목화밭에 가서 목화를 따던 기억이 늘 납니다. 아마 여기 젊은 사람들은 목화가 무엇인지 잘 모를 분도 있을 것입니다. 솜 만드는 나무를 목화라고 합니다. 그것을 따는 재미는 보통이 아닙니다.
또 시골에 있으니까 닷새에 한번씩 장이 섭니다. 아버지가 늘 장보러 가곤 하는데 한번은 장에 따라가서 국수 한 그릇 얻어먹고 왔던 것이 어떻게 기뻤던지 지금도 기억납니다. 못 따라 가게 되면 점심을 먹고 아버지 오시는 길목에 나가서 기다립니다. 그 목적은 아버지가 오실 때에 엿을 하나씩 사다 주시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나기 전에 조그만 예배당이 촌에 세워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거기 가서 찬미 배우던 생각, 처음으로 키 큰 방 목사라고 하는 서양 사람을 보던 생각이 지금도 늘 납니다.
그이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라는 찬미를 저에게 배워줬습니다. 어렸을 때의 기억을 생각하면 어떻게 기쁜 기억이 많은지 모릅니다. 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밤새 더듬어 보아도 제 기억 가운데 우리 부모님들이 싸우는 것을 본 기억이 안 납니다. 저는 그것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또 매맞아 본 기억도 없습니다. 한번 책망 받은 기억이 생각나는데 그것은 언젠 고 하니 우리 어머님이 병중에 계실 때에 약을 달여서 잘 짜 놓았는데 뛰어다니다가 그만 그것을 엎질렀어요. 단단히 책망을 받은 것 지금도 기억납니다. 물론 저에게 슬픈 기억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열 살날 때, 정월 열 나흗날 어머님이 세상을 떠난 일입니다. 그 기억이 늘 슬픈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여간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 어렸을 적의 기억을 가만히 회상해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참 감사했습니다.

 

 
 




119.어느 소매치기의 수기


저는 부모님께 대해서는 언제나 감사하고 부모님이  나를 극진히 귀여워하고 사랑했다 하는 생각밖에 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런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에 소매치기 하다가 자수한 사람이 쓴 수기를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진주의 어떤 부자 집 첩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자기 기억에 세 살 적에 어머니와 아버지와 싸움이 났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놓고서 싸우는고 하니 자기를 놓고 이게 내 아들이냐 아니냐 하면서 싸웠습니다. 그러다가 이것은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하여 결국은 어머니에게 업혀 둘은 내쫓겼습니다. 그것을 보니 그의 어머니가 행실이 좀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그 후에 화병으로 자기 어머니는 다섯 살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아버지는 자기 아들 아니라고 내쫓았고 어머니는 화 김에 세상을 떠난 다섯 살 난 고아가, 이런 기억밖에 없는 고아가 어떻게 옳은 길 가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특히 귀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난 청년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한가를 이 시간에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0.성스러운 기억은 최대의 교육


유명한 문호 도스토에프스키가 어떤 저서 가운데 이런 글을 썼습니다. "좋은 기억, 특별히 어렸을 때의 가정 생활에 있어서 귀한 기억처럼 장래에 깊은 감화를 주는 것은 없다. 귀한 성스러운 기억은 최대의 교육이 된다. 그런 기억이 많은 사람은 최후까지 인생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런 기억이 단 하나만 있어도 그는 그의 영혼을 기억할 수가 있다. 그 한 가지 기억이 그를 많은 죄악 가운데서 건질 수 잇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 현재의 부모 되신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기쁜 가정의 기억이 남도록 좋은 기쁨의 유산을 남겨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가정이 단란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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