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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6 한경직 목사 설교 예화 151-180

by 【고동엽】 2022. 3. 2.
[처음 목차 돌아가기]
 
 

151 슬픔 중에 얻는 은혜
 
제 오래된 목회 경험 가운데서 많이 보았습니다. 어떤 아들과 딸들을 보면 부모가 살았을 때는 그렇게 열심히 믿지 아니하고 부모의 속을 썩힙니다. 그러다가 부모가 세상을 떠납니다. 큰 슬픔을 당하게 됩니다. 그 때야 비로소 아들과 딸들은 깨달아서,“내 믿음의 어버이가 나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고 얼마나 믿음의 생활을 원했던가 이제 앞으로는 어버이의 믿음을 계승해야 되지 않겠는가”하고는 새사람이 됩니다. 약한 가운데서, 슬픈 가운데서 주님의 은혜를 받아 오히려 부모보다 더 크게 주님께 봉사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실패와 궁핍(窮乏) 가운데서도 주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납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고통의 가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이들이 상당히 있을 줄 압니다. 낙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원망하지 마세요. 자포자기하지 마세요.“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하는 족한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으면 그 가시야말로 큰 축복의 디딤돌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 능력은 약한 가운데서 온전히 이루어져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는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는 능력>에서

 

 
 




152.우월감     


세계 인류의 일치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 인류는 한 조상 아담의 후손으로 실상은 한 종족입니다. 기후와 환경에 따라서 얼굴의 모습과 피부와 키가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지만 실상 다 한 혈통으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보면 어떤 민족이나 소위 민족적 우월감, 민족적 편견을 가지고 삽니다. 이것은 백인만 아닙니다. 황인 도 그러하고 흑인도 그러합니다.

 

 
 




153.제일 일등 되는 종족


제가 어떤 책자를 보니 아프리카의 하렌 파크라고 하는 흑인 부족이 하나 있는데 이 사람들은 흑인 가운데에도 키가 작고 가장 원시적인 사람들이긴 하나 그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자기네가 세계에서 제일 먼저 지음을 받았고 일등 되는 종족이라고 자랑한다고 합니다. 이 부족만이 아닙니다.
세계 민족이 다 이와 같은 우월감을 가지고 삽니다. 우리 한국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일본 사람은 외(猥)놈 이라고 불렀고 중국사람을 되놈이라고 불렀고 서양사람은 양비자 혹은 양코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154.황인종 이야기
 
아마 여러분께서는 이런 얘기를 들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에 진흙으로 빚어서 불에다 구웠다고 합니다. 그 분이 진흙으로 빚어서 불 속에 넣어 굳는데 넣고 나서 조금 후에 꺼내니 좀 덜 익어서 섧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진흙으로 빚은 후에 불에 넣었습니다. 이번에는 좀 오랫동안 두었습니다. 그리고 꺼내보니 새까맣게 타 버렸습니다. 이것은 너무 익었구나 하고는 다시 진흙으로 빚어서 불에 넣었다가 적당한 시간에 꺼내니 꼭 알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설익은 것은 백인종이 되었고 너무 익은 것은 흑인종이 되었고, 꼭 알맞게 익은 것은 황인종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얘기를 누가 지어냈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말할 것 없이 황인종이 지어냈습니다.
우리 한국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담 가운데 사람마다 저 잘난 재미에 산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민족마다 저 잘난 재미에 삽니다. 그런데 사실은 어떤 민족간에나 우수한 사람도 있고 열등한 사람도 있습니다.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민족적 편견을 버리고 우리는 대우와 칭찬을 베풀도록 힘써야 될 것입니다.
특별히 후진 민족일수록 그 지리적, 역사적 원인이 있으므로 적극 협조해서 같이 발전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새 시대, 우주시대에 사는 우리 마음의 태도입니다.  <한 혈통으로>에서

 

 
 




155.주님을 아는 사람


시편 34편 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니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맛보라는 말입니다. 수박이 단지 안 단지 알려고 할 때 제일 쉬운 방법이 무엇입니까? 물론 보아서도 알 수 있고 만져보아서도 조금은 알 수 있으나 잘 알려면 먹어 보는 것이 제일입니다.
체험을 해서 우리가 진리를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대로 행해 보아야 그 말씀이 진리인 줄 알게 됩니다. 예수 님과 같이 동행해 보아야 예수 님께서 진리이신 것을 압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진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156.‘트라이’와‘프루브’
 
전에도 제가 이런 얘기를 한 것 같지만, 서양의 어떤 여자는 늘 성경을 읽을 때 줄을 치면서 어떤 구절에 영어로 P자와 T자를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물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그녀는 대답하기를“T자는 영어로 트라이(try)라는 뜻이고 P자는 프루브(prove)라고 하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트라이라는 말은 내가 해 보았다는 말이고 프루브라는 말은 해보니 그대로 되더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실 주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참 제자의 도>에서

 

 
 




157.쿼바디스
 
나를 위해서 자기 몸을 주신 주님을 깨닫게 될 때에는 이 몸은 주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에 나가면 쿼바디스라고 하는 작은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에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쿼바디스란 말은“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뜻입니다.
로마에 큰 핍박이 있을 때에 베드로가 로마 성을 빠져 나와 멀리 교외까지 나왔습니다. 나오다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예수 님께서 마주 오십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예수 님이 대답합니다 “나는 로마에 들어가서 성도들과 같이 고난을 받으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는“주께서 어찌 다시 고난을 받으시겠습니까, 내가 돌아가 받겠습니다”하고는 로마로 다시 들어가서 순교하였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순교자는 문자 그대로 그 몸을 바쳤습니다. 그 생명을 바쳤습니다 <자기 몸을 주신 그리스도>에서

 

 
 




158.사랑의 헌신
 
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 제가 신학교를 미국에서 마치고 폐가 약해져서 미국 서 남방 뉴멕시코 주 알바버치라고 하는 작은 도시에 있는 장로교 요양원에 가서 한 2년 동안 치료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있는 동안에 한 번은 거기에 와서 오래 치료하던 환자 한 분이 세상을 떠나서 저녁에 추도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저도 참석했는데 그 추도 예배의 다른 순서는 다 잊어버렸지마는 그 예배 도중에 고인의 젊은 부인이 조가를 직접 부르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를 않습니다. 찬송가를 독창하였는데 그 독창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때에 세상을 떠난 이는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 폐가 약해져서 그 요양원에 치료하려 오게 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사귀어 장래에 가정을 이루기로 서로 약속한 여자가 있었답니다. 그 분이 이처럼 병으로 공부를 못하게 되니 대학을 졸업한 그 여자는 멀리 버지니아 주에서 그 곳 까지 와서 병원 원장의 서기 일을 보면서 그 환자의 치료비를 대주고 사랑하는 이를 간호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불행히도 그 남자의 병이 중해져서 의사는 얼마 살지 못하겠다고 최후의 선언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여자는 목사님을 찾아가서, 자기는 일생을 이 남자와 같이 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그의 병이 악화되어 며칠밖에 살 수 없다고 하니 이 남자의 성이라도 인계 받을 수 있도록 결혼식을 올려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풍속에 의하면 결혼하는 경우에는 남자의 성을 여자가 받아서 아무 게 부인이라 합니다.
목사는 처음에 좀 주저했지마는 부탁이 간절하고 또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확실함으로 결국 허락을 했습니다. 마침내 남자는 침대 위에 누어있고 여자는 신부로 단장을 하고 병실에서 결혼식을 거행하였습니다. 그 후에도 그 여자는 병원에서 계속 일 하면서 이 남자를 극진히 간호하였습니다. 그 정성에 의해서인지 결혼식을 한 후에 그 남자는 무려 8년을 더 살았습니다. 침대에 누운 채로 8년을 더 살았던 것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여자는 “내가 지금 까지는 한 남성을 위해서 내 온 몸과 마음을 바치며 봉사해 왔지마는 이제는 이 병원에 들어오는 모든 환자를 위해서 내 일생을 바치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에 이 분이 병원을 위해서 어떻게 열심이었던지 그 병원의 총무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 일을 봅니다. 온 병원의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제가 몇 해 전에 이 부인을 특별히 방문하기 위해서 알바버치에 내렸던 일이 있습니다. 또 제가 지난 삼월에도 미국 남방을 여행할 때에 전화로 이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왔습니다. 거이 80이 됐는데 지금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그 부인의 일생을 보면 문자 그대로 깊은 밤에 기도한 찬송과 봉사의 생활을 계속해온 것입니다.  <깊은 밤에 기도와 찬송>에서

 

 
 



159.볼기 맞는 우상
 
제가 전에 어떤 책을 보니 어떤 지방에 가서 선교하던 선교사가 어느 아프리카 토인 부락을 지나가다가 깜짝 놀란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가만 보니 그 부락의 한 토인이 자기 옆에 늘 모시고 다니던 우상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볼기를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선교사가 놀라서 이렇게 당신이 섬기던 우상을 매달아 놓고 볼기를 칠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그 토인이 대답하는 말이, 내가 이 우상을 10년이나 섬겼는데 복은 하나도 주지 않고 화만 주니 이런 우상을 어떻게 섬기겠느냐고 했답니다. 이런 종교사상을 가진 이들이 지금도 상당히 많은 줄 압니다.

 

 
 




160.집도 못 지키는 하나님?
 
전에 들으니 어느 부인이 몇 주일 동안 교회에 잘 나오다가 갑자기 안 나오기에 그 교회 권사 님이 찾아가서 사연을 물었다고 합니다.“왜 잘 나오시다가 안 나오십니까?”“나는 이제 안 나갑니다. 글세 지난 주일날 문을 걸고 교회 다녀오니 도둑놈이 와서 모두 다 가져갔습니다. 그래 집도 못 지키는 하나님을 뭣 하려 섬기겠습니까?”이런 유치한 종교사상을 가진 이가 지금도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감사하지만 얕은 생활을 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이 있는 줄 압니다.
그 반면에 사도 바울과 같이 범사에 감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의 교훈대로 모든 일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을 만듭니다. 기독교 신앙이 꼭 지혜 있게 만든다고 보증하기 어렵지요. 꼭 지식이 많은 사람을 만든다고 보증하기 어렵지요. 돈을 잘 버는 사람으로 만든다고 보기도 어렵지요. 그러나 누구든지 참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면 그는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161.감사의 안경
 
외부 세계, 혹은 환경은 안경의 빛깔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검은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검게 보입니다. 그러나 분홍안경을 쓰면은 모든 것이 분홍색으로 보입니다. 믿음의 안경을 쓰고서 보면 모든 일에 감사할 것이 있습니다. 검은 구름에도 햇빛이 비치면 아름답고 무지개가 나타납니다. 근심의 안개, 슬픔의 구름에도 그리스도의 빛이 비추면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 프랜시스의 태양의 노래를 기억하시지요, 그 노래의 내용을 보면, 그는 햇빛을 위해서 감사드립니다. 오곡백화를 위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산해어별(山海魚鼈)을 위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형제자매를 위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에 드릴 감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죽음을 위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죽음을 자기의 자매라고 부르면서 이 죽음을 주시니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죽음도 주안에서의 죽음은 감사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된 신앙은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 가슴에 채워 줍니다.  <폭풍우 중에 감사>에서

 

 
 




162.리빙스턴의 충실한 종
 
아프리카의 유명한 선교사 리빙스턴이 그 곳에 가서 얼마나 큰 일을 하였습니까? 마지막에 외딴 곳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에서 일 할 때에 열심히 그를 도왔던 흑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분이 자기 친구를 모아 가지고 리빙스턴의 시체를 항구가 있는 곳까지 수 천리를 걸어서 운반하여 영국으로 가져와 온 영국이 그 유해를 맞아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예배당에서 훌륭한 장례를 차렸습니다. 그 때에 시종 리빙스턴을 따라다니면서 그를 도왔던 웨인 우리잇이라는 키가 작은 흑인이 런던까지 따라와서 그의 장례를 지냈습니다. 그때에 물론 모든 사람들이 리빙스턴을 존경하고 그를 추모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리빙스턴만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리빙스턴을 따라서 종시 충성되게 리빙스턴과 일생을 같이한 그 흑인 동역 자를 역시 크게 존경하고 찬양했다고 합니다. 왜? 리빙스턴은 그가 받은 바의 재능에 충성을 다한 사람이올시다. 이 흑인 일군도 자기가 받은 바 은사에 대해서 역시 똑같은 충성을 다한 사람이올시다.

 

 
 




163.하나님 앞에서의 결산


전도서 11장 9절에 이렇게 경고합니다.“청년들이여 네 젊은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며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에 보이는 길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에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할 날이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물론 자유가 있습니다. 상인은 상점에서, 직공은 공장에서, 공무원은 관청에서,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에 심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일찍이 미국에 다니엘 웹스터라고 하는 유명한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 어떤 분이 찾아가서 이런 질문을 하였다고 합니다.“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왔던 모든 생각 가운데 가장 엄숙한 것은 무엇입니까?”그가 얼른 대답하기를“나의 지금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가 있으리라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산 할 때가 있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연말에 아주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잇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청산하는 겁니다. 죄로 해를 넘기지 맙시다. 한 분이라도 양심에 거리끼는 죄가 있으면 해를 넘기지 말고 청산합시다. 우리가 연말에 꼭 생각해야 할 것은 끝을 올바로 맺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의 결산>에서

 

 
 




164.홀트 양자회 운동
 
제가 이번에 미국을 다녀오면서 느낀 것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전도 운동이요, 둘째는 사랑의 운동입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생활에 있어서 상부상조할 줄 아는 사랑의 운동의 선구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바로 지난주간에 유진 오레곤이란 지방엘 가서 홀트 양자회 이사회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제가 한국에 나와 있는 홀트 양자회의 이사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으므로 본부 이사회에 꼭 참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번에 참석한 것입니다.
여러분 홀트씨에 대해서 조금 들으신 분도 계시겠지마는 아마 잘 모르는 분도 계실 겁니다. 이번에 제가 홀트씨의 집을 방문하여 그 사정을 더욱 자세히 알고 왔는데 홀트씨는 별로 큰 교육을 받은 분이 아닙니다. 8학년까지 공부했다고 하니까 우리의 학계로 말하자면 중학교 2학년까지 마친 분입니다. 촌에서 농사 짓던 분이었지만 커서는 진실하게 열심히 일해서 넉넉히 사는 농부였습니다.
그런데 6·25사변 때에 한 분이 와서 유진이란 곳에서 피얼스 박사가 한국사정을 얘기한다고 하니 같이 구경가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하여 부인과 딸들을 데리고 가서 피얼스 박사의 얘기도 듣고 사진도 보여주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한국 고아의 사정이 매우 딱한 것을 알게 되자 돌아오는 길에 부부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피얼스 박사가 “당신 네가 도우려면 한 달에 10불씩 우리 선명회에 보내주면 이것을 받아 가지고 고아 한 사람을 기를 수 있소”하는 말을 듣고 곧 그들로 고아 두 사람을 도와주어야겠다고 한 달에 20불씩을 내어 고아 두 사람을 돕겠다는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면서 부인과 아이들과 종종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만 해 가지고 될까?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고 성경에 말씀했는데 우리가 고아를 이렇게 도와서 될 것인가?”어느 날 좀더 고아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한국에 나올 생각이 났습니다. 한 번 나와서, 부산 대구 서울을 다니며 고아원의 실정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내가 두 아이만 돕는 것으로 될 수 있나. 우리 집은 상당히 넓은데 고아들을 대려다가 기른 다면 얼마나 좋겠나”하는 자기네 아이가 여섯이나 되는데도 아래층을 수리하고 집을 손질하면 아직도 여덟 아이는 더 기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을 수리하고 한국에 나와 고아 여덟 명을 데려가려고 신청을 했습니다. 자기가 직접 기르려고 말입니다. 그런데 미국에는 양자는 두 아이 이상은 기를 수 없는 법이 있어서 그 법을 고치려고 국회의원과 교섭을 한 결과, 국회에서는 몇 달 안에 그 법을 고쳐주었어요. 마침내 한국에 나와 고아 여덟을 데려다가 자기 아이 여섯과 같이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하니 그 광경을 보고 그를 아는 이들, 교회 교우들, 친척들이 감동을 받아 자기들도 한국 고아를 데려다 기르겠다고 해서 다른 가정에도 보내는 일을 하기에 이르러 소위 홀트 어덥선 프로그램(Holt Adoption Program) ―홀트 양자회라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홀트씨는 아이들을 빨리 받아들여 기르기 위해서 한국에 와서 고아원 하나를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홍제동에 세웠다가 일산으로 옮겼는데 현재도 있어요. 거기에는 언제나 버러진 아이들을 우선 받아서 기르는데 늘 5, 6백 명의 고아가 있습니다. 홀트씨는 몇 해 동안 친히 한국에 나와 고아를 위해 일하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국 고아를 위해서 생명을 바쳤어요. 그러나 그 부인과 친구들이 계속해서 이 일을 합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지금까지 이 홀트 양자회를 통해서 미국과 서서등 여러 나라에 한국 고아를 보낸 수가 작년까지 5천 명이 넘었어요. 5천 명을 좋은 가정에 들여보내서 잘 자라게 했습니다.
여러분, 이번 이사회에 내가 가서 가만히 보니 이사들이 약 20명되는데 자기네 아이들이 있지만 한국 고아를 두 셋씩 데려다 기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가 없어요. 한국사람인 나로서는 깊이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외국사람들이 이렇게 한국의 고아들을 데리다가 기르는데 왜 한국 사람들은 이렇게 할 수 없겠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떻든지 사회 안에서 사랑의 운동의 선구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에서

 

 
 




165.심리적 원인
 
스텐리 존스 박사의 저서를 보면 그런 실제를 많이 열거했습니다. 가령 어떤 젊은 여자가 하나 있는데 그는 무엇을 먹기만 하면 도로 토하고 맙니다. 의사가 아무리 위를 검사해 보아야 아무 병도 없습니다. 심리적으로 그 여자를 분석해 보니 그 속에 자기 시어머니에 대한 미운 마음이 가득해서 결국은 육체적으로 그런 고장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젊은 여자가 갑자기 오를 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이 아무리 진찰을 해보아야 아무 병도 없습니다. 심리적으로 진단을 해보니 자기 어머니에 대한 증오감으로 인해서 그 손으로 어머니를 때릴 마음이 가득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해소시킨 다음에는 곧 팔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우유를 많이 먹기 시작하지마는 성난 소에게서 짜 낸 우유를 먹으면 해롭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가 몇 해전에 미국에서 농장을 가보니 젖 짜는 방을 아름답게 꾸미고 거기에 음악을 트러놓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성난 어머니가 얘기들에게 젖먹이는 것을 본 일이 있지요.? 그거 아마 좋지 않을 것입니다. 성난 기분 가운데서 나오는 젖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심리적 상태가 육체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한국에는 전부터 이런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사촌이 밭을 사면 배를 앓는다.”어려서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오랫동안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심리학을 배우고 생각해보니 꼭 그렇겠어요. 사촌은 밭을 사는데 나는 못 산 데서 시기하는 마음이 가득하게 되면 위액이 제대로 분비되지 못 할 것입니다. 자연히 소화 불량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배가 아프게 되겠지요.
사실 위궤양이니 하는 병은 육체적 원인보다도 마음의 불안에서 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곧 용서해 주지 아니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은 내 자신에게 큰 손해가 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13절에 이렇게 가르쳤습니다.“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에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했습니다.
분한 마음을 오래 품고 있으면 내가 손해를 봅니다. 연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한 분이라도 이런 기분 가운데 계시는 이가 혹 있으면 이 시간에 다 용서하시고 풀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166.향나무가 찍힐 때 발하는 향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같이 못 박힌 강도가“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회개할 때에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시며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서 하신 기도가 뭡니까?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수를 뿌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님께서는 문자 그대로 향수를 뿌리신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좀더 그리스도를 본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구약의 모든 인물 가운데 예수 님을 가장 닮은 인물은 요셉이라고 합니다. 왜? 요셉이 자기 형들의 죄를 용서해 준 까닭입니다.
서반아에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가 하는 일이요,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은 인간들이 하는 일이요,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 32절에“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옛부터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는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가 손해보고 천대받은 것은 다 잊어버리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가족간에도, 친척간에도, 친구간에도, 적은 일로 혐의를 품고 살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에 암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스펄존 목사는 일찍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용서해라. 잊어버리라. 미친개를 파묻을 때에 꼬리를 내놓지 말아라”무슨 말인고 하니 혐의를 아주 없애라는 말입니다.
어떤 분이 아브라함 링컨을 평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그의 마음은 바다 같이 넓으나 남의 혐의를 둘 방은 없었다”모든 혐의를 아주 잊어버릴 수 있는 그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는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힘써야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용서>에서

 

 
 




167.겸손과 위대함의 관계
 
먼저 이 위대함에 대한 옛 표준을 생각해 보십시다. 제자들은 위대함에 대한 옛 표준의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위대해지려면 높은 지위와 권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이 사상은 그 때의 제자들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 때의 모든 사람이 다 이런 사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때의 온 유럽지역을 다스리던 왕을 가이사라고도 하고 그 이름을 어거스트라고도 하는데 그는 그냥 황제라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 어거스트 대제( 大帝)라고 불렀습니다. 큰 황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라틴말로 8월을 어거스트라고 하는데 그 왕의 이름이 같은 어거스트니까 8월을 적은 달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7월이 크니까 8월은 작은 것이 상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어거스트을 작게 할 수 없다고 해서 2월에서 하루를 떼어다 31일을 만들어 7월도 크고 8월도 크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트는 크다는 관념에서 역서(歷書) 까지 고쳤단 말입니다.
또 그때 팔레스틴 지방을 다스리던 왕은 헤롯왕인데 헤롯왕도 그저 왕이라 하지 아니하고 헤롯 대왕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2천년 전, 로마시대에만 이런 위대함의 표준을 삼아 살아 온 것만은 아닙니다. 역사를 통해서 어느 시대나 다 이러했습니다. 우리 구 한국 시대를 보아도 그러했습니다. 나이 좀 많은 이는 기억하실 것입니다 어른들이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너 글 잘 읽어라 글 잘 읽어서 과거(科擧)봐야 돼 과거해서 벼슬을 해야 돼 그래야 입신양명(立身揚名)하는 법이니까. 큰 권력을 가져! 그래야 크게 돼”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과거 보려고 굉장히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것은 우리 한국사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위 현대인들도 그 대부분이 아직까지도 이 위대함에 대한 낡은 표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관청에서는 계장 보다 과장이 큽니다. 과장보다도 국장이 더 큽니다. 국장보다는 장관이 더 큽니다. 그래서 저마다 장관 되기를 원합니다. 회사에서는 계장보다 과장이 큽니다. 과장보다는 전무가 큽니다. 전무보다는 사장이 큽니다. 저마다 사장이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옛 표준으로는 돈만 많으면 사람도 큰 줄로 생각합니다. 집이 크면 사람도 큰 줄로 압니다.
이런 표준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서 제일 큰 인물이 누굴까? 아마 제일 높은 고층 건물을 지은이라고 대답할 수박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고층 건물 짓기 경쟁을 하는 모양입니다. 이 표준대로 보면 20세기에 최고로 큰이는 누구이겠습니까? 아마 제일 먼저 히틀러 그리고 스탈린과 무솔리니 등을 곱을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도 이런 옛 사상을 가지고 삽니다. 그런데 예수 님께서는 이런 옛 표준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높은 자리에서 금력과 권력으로 권세를 부리는 자가 큰 것이 아니고, 오히려 종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이가 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겸손해서 다른 사람을 많이 섬길수록 더욱 위대하다는 말입니다. 제일 많이 섬기는 이가 제일 위대하다고 합니다.

 

 
 




168.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저는 3년 전, 백림에서 열린 세계전도대회에 참석했을 때  들은 빌리 그래함의 얘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도 들으신 분이 계실 줄로 생각합니다. 이런 간단한 얘기입니다.
어떤 호숫가에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 있습니다. 그 때 기러기들이 공중에서 날아와서 호숫가에 앉아 물을 먹고 공중으로 다시 나라 올라갑니다. 개구리 가운데 하나가 무슨 생각이 났는고 하니 “나도 저 기러기처럼 공중에 날아 봤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는 기러기에게“얘 기러기야 나도 너처럼 공중엘 오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날 좀 도와줄 수 없겠니?”“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니”“저기 막대기가 하나 잇는데 저 막대기 한 쪽 끝을 네가 입으로 물면 네가 공중에 올라갈 때나도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 아냐 그렇게 해 줄 수 있겠니?”“그러지.”그래서 기러기 한 놈이 막대기 한 끝을 물고 한 끝은 개구리가 물었습니다. 기러기가 날아 올라가니 개구리도 올라갑니다. 호숫가를 한바퀴 빙 날아서 도니까 아래 잇는 수많은 개구리가 부러워서 “저 개구리는 공중을 나라 올랐구나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냈노”개구리들이 칭찬을 합니다. 개구리가 물고 공중을 날아다니다 칭찬을 하니까 “내가 했지”하고 자랑스럽게 대답을 하고 싶었습니다.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열자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중에서 떨어졌습니다. 허리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알지요. 아무리 내가 봉사를 잘 해도“내가 했지”이렇게 자랑하게 되면 큰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릴 것입니다. 그러기에 산상보훈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는 말입니다.  <위대의 새 표준>에서

 

 
 




169.영접하는 마음 


오늘 아침에도 읽었지마는“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 고, 곧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마음이 깨끗해집니까?
주께서도 산상보훈에 말씀하시기를“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마음이 청결해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까? 머리에는 위대한 사상을 가지고 가슴엔 깨끗한 마음을 품는 것 이상에 귀한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여야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습니까?

 

 
 




170.마음을 씻는 길
 
마틴 루터가 어느 날 아침에 세수대아에 물을 떠서 손을 씻었습니다. 한번 씻고 두 번 씻고 그냥 자꾸 씻습니다. 옆에 잇는 친구가 이상이 생각해서“왜 손을 자꾸 씻는가?”고 물으니 루터가 대답하는 말이“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내 마음은 깨끗이 할 수가 없구려”하고 탄식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베드로에게 오니 베드로는 너무 황송해서“제 발은 못 씻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 님께서“네가 씻지 아니하면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씻어 주어야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주님을 영접할 때에, 주님이 우리 마음을 씻어 주실 때에야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171.손잡이 없는 문


예수 님을 영접하려면 몇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내 마음 문을 열어야 합니다. 요한 계시록 3장 20절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고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예수 님께서는 우리 마음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 성경 구절을 묘사한 폴만 헌트란 화가의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굳게 잠긴 문 밖에 서서 두드리는 예수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어떤 분이 그 그림을 구경하다가 그것을 그린 사람에게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이 그림은 썩 잘 그렸는데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습니다”“그것이 무엇입니까”“여기 문은 있는데 문에 손잡이가 없습니다.”화가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참 자세히도 보셨군요. 그것은 제가 빠뜨린 것이 아닙니다. 일부러 그리지 않았습니다. 마음 문에는 밖에 손잡이가 없기 때문입니다.”마음 문에는 밖에서 여는 손잡이가 없습니다. 마음의 문은 안에서 나만이 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님을 영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님께서는 지금도 마음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마음 문을 열지 아니하면 그 책임이 내게 있는 것입니다. 고집, 편견, 교만, 적은 지식을 가지고 마음 문을 그냥 닫아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영접하라>에서

 

 
 




172. 천사가 인정한 성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어떤 곳에 성자가 한 분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은 깨끗하고 덕이 되어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천사들까지 이 성자의 생활에 감동을 받아서 땅으로 그를 찾아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생활을 잘 살펴보니 과연 성자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은 그에게 은혜를 더 주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잘 하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그대가 기도하기만 하면 무슨 병이나 다 낫고 죽은 자라도 살릴 수 잇는 권세를 드리려고 합니다”그러자 성자는 잠시 생각하더니“감사합니다마는 저는 그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인간의 병을 다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셔야지 제가 할 수 잇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는 그 은혜를 사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은 다시 물었습니다.“그럼 그대가 말만 하면 어떤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게 하는 권세를 드리려는 데 이것은 어떻습니까?”성자는 똑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저는 그 은혜도 받을 수 없습니다”“왜 그러시오?”“그것은 성령의 역사이니 성령께서 하셔야 할 일이지 어찌 제가 그 일을 하겠습니까?”천사들은“그렇다면 그대는 무슨 은혜를 원하시오?”라고 물었습니다. 성자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예, 한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어떻든지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되 그 선을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고 행할 수 잇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얼마나 겸손한 마음입니까? 아무리 우리가 좋은 일을 하되 그 일을 내가 한다는 것을 알게되면 아무래도 거기서는 개운치 않은 무엇이 있게됩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결론은 이렇게 맺어집니다. 즉 천사들은 의논 끝에 그 성자에게 그의 그림자 뒤로 비칠 때 그 그림자에 들어가는 모든 병자와 죄인들이 고침을 받고 새 사람이 되게 하는 은혜를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 여러 가지 은혜를 다 사모해야 합니다. 꼭 받을 능력도 다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제일 귀한 것은 예수 님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에 받는 일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그 마음을 받는 일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이가 모인 가정은 언제나 화평할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이들이 모인 단체는 언제나 한 마음 한 뜻으로 일하게 될 것입니다.  <새해에 새 마음>에서

 

 
 



     
173.편견 된 마음의 눈
 
우리의 마음 눈을 가리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욕심이 그것입니다. 정욕, 물욕, 권세욕, 명예욕 등 온갖 욕심이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 눈을 가리우게 될 때에 우리는 올바르게 보지를 못합니다. 때로는 친구도 못 봅니다. 민족도 못 봅니다. 나라도 못 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도 못 봅니다. 이리하여 죄를 짓습니다.
둘째로 편견, 선입(先入)주견(主見) 따위도 언제나 우리의 눈을 가립니다. 갈레리오가 코페르나쿠스의 지동설을 주장할 때에 얼마나 고난을 당했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소위 문화인들이 편견 때문에 새로운 사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임스 심슨이라는 분이 클로로포름을 마취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 당시 의학계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다는 이야기도 유명한 사실입니다. 편견이 당시 의학자들의 눈을 가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사실이나 진리에 당면할 때 내가 그것을 무슨 이유로 반대하는 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진리에 입각해서 반대하는가, 아니면 편견 때문에 반대하는가 말입니다.
셋째로 시기나 미움 같은 감정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 눈을 가립니다. 그래서 요한 1서 2장 11절에는“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시기나 미움에 사로잡히면 사리를 바로 보지 못합니다. 바른 판단을 못합니다.  <새해에 밝은 눈>에서

 

 
 




174.학대받는 자들


우리는 6·25를 계기로 해서 얼마나 많은 기독교 신도들이 학대를 받고 학살당했던가를 지금도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학대는 38선 이북 또는 모든 철의 장막 배후에 있는 국가에서는 지금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범브란트 목사가 《걷혔을 때에 돌아보았는가?》라는 제목의 책자를 출판하였습니다. 영어 제목은 《그가 만일 그리스도라면 당신의 담요를 드리겠는가?》입니다.
이 목사는 이미 들으신 대로 일찍이 루마니아에서 14년 동안 공산당 치하에서 옥고를 치르고 나왔습니다. 또 작년에 우리 한국을 방문했고 바로 이 영락교회 강단에서도 그의 체험을 간증한 일이 있습니다. 이 책 가운데서 그가 최근에 수집한 철의 장막  배후에서 갇히고 학대받은 많은 소식들이 실려 있습니다. 그 몇 가지만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1969년 8월 19일부 소련에서 발행되는 프라우다라고 하는 신문지에 다음과 같은 지하교회에 대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 침실밖에 없는 작은 집에서 비밀히 모여 모두 울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원수도 사랑하여야 한다고 설교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련의 한 여자는 여름 성경학교를 몰래 열고 어린이 12명을 가르친 죄로 멀리 시베리아 수용소에 추방되어 갔다”또“시베리아 북쪽 깊숙한 곳에서 기독교인들만 모여 사는 한 촌락이 발견되었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자유로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하여 보통은 너무 추워서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에 따로 모여 살았던 모양인데 이것마저 발각된 모양입니다.   

 

 
 




175.‘공상당의 조상은 원숭이’

소련의 게치크라고 하는 분은 비밀 기도회에 참여한 죄로 두 달 봉급의 벌금을 물었다고 합니다. 또 소련에서는 어린이들에게 종교 교육을 하였다고 수백 기독교가정에서 어린이들을 빼앗아다가 멀리 딴 곳에 수용해서 부모와 자식이 격리되어 전혀 소식을 모른 체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어린이 수용소에서 새어나온 소식 중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 선생이 어린이들을 가르치면서 “우주 비행사가 공중에 올라가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하나님을 못보고 내려왔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없다”고 말했답니다. 그랬더니 한 어린이가“그 비행사들이 마음이 깨끗하지 못했나 보죠? 마음만 깨끗하면 하나님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데요”이렇게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모든 사람의 조상이 다 원숭이 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공산당의 조상은 원숭이라는 말이 맞을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에게 이렇게도 포악하고 잔인하게 굴 수 있겠어요?

 

 
 


 
176.소련의 숨은 교회



공산 국가 특히 소련 권(圈)에 속해 있는 국가에는 두 가지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는 공인된 교회입니다. 말하자면 공공연히 나타난 교회입니다. 소련의 공식으로 나타나 있는 헬라 정교회의 교인 수는 기독교협의회에 보고된 바에 의하면 약 5천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인되지 않은 비밀교회, 소위 지하교회들이 있는데 이 지하교회에서 교인 수가 약 4천 5백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한편 공인된 교회는 물론 공식으로 모일 수는 있지만 역시 여러 면으로 정부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177.루마니아 교회의 세례


동구(東歐) 위성(衛星) 국가 중 가장 자유화되어 있는 나라가 루마니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루마니아에 있는 교회가 어떤 간섭을 받는지 아십니까? 여기서는 목사가 안수를 받을 때에도 먼저 정부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설교도 일정한 범위 안에서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세례도 일일이 허가가 있어야 받을 수 있는데 가령 한 20 명 세례를 주겠다고 명단을 제출하면 보통 그 중 4분의 1정도만 허락이 내린다고 합니다. 결국 20명 중 5명만 세례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목사는 비밀히 세례를 주는 수가 있는데 만약 이 일이 발각되면 목사는 물론 세례 받는 사람도 징역 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지하교인들 중에는 심지어 자신이 스스로의 머리에 물을 뿌리며 “내가 내게 세례를 주노라”하고 혼자 세례를 베푸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178.소련 지하교인의 안수


  소련의 지하교회의 어떤 성직자들은 정부의 부당한 요구를 승낙할 수가 없어서 다시 말하면 공인된 교회에서 정식으로 안수를 받을 때에 정부로부터 부과되는 여러 요구를 승낙할 수 없어서 이미 순교한 주교의 무덤에 가서 그 무덤의 비석 위에 손을 얹고 신조에 대한 고백을 한 후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한 가지 더 한다고 합니다.“나는 매질과 투옥과 고문과 비난과 십자가와 불행과 환난과 세계의 모든 고난을 달게 받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 구주와 거룩한 사도. 교회가 감수할 것들입니다. 따라서 나도 비록 무가치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나 이 모든 고난을 죽는 날까지 감수할 것을 서약합니다”이런 고백 후에 스스로 순교한 주교의 무덤 앞에서 안수를 받는 것입니다.

 

 
 




179.중공 팡 첸 목사의 일화
 
현재 중공에는 공인된 교회는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소위 문화혁명 후에는 난타나게 모이는 교회의 형태는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중공 내에의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는 기독교인 수가 약 4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그중 팡 첸 이라고 하는 목사의 일화가 어떻게 새어 나왔습니다. 이 목사가 오래 수감 중에 있다가 한 번은 심문을 받기 위해 심문(審問)관(官)실에 나갔다고 합니다. 나가보니까 방구석에 누더기가 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누더기가 아니고 사람이었습니다. 나이 많은 여인인데 자세히 보니 수년 전 함께 체포당했던 자신의 어머니였습니다. 옥고를 겪다 못해 백발이 되고 모습도 변해서 겨우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모양의 어머니를 옆에 놓고 심문을 하던 자가 나중에“열 가지 계명을 아는 데로 좀 가르쳐 주시요” 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광 첸 목사는 이런 자에게 계명 가르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고 생각하다가 공산당에게 계명을 가르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열 가지 계명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차례로 내려가다가 다섯째 계명에 이르렀습니다.“부모를 공경하라”심문관은 여기서 목사의 말을 멈추게 하더니“당신 이 다섯째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까?”“아 물론 잘 지켜야지요”목사가 대답하자 심문관은 옆에 쓰러져 있는 목사의 노모를 내려다보더니 말했습니다.“당신이 지금 내게 당신의 동지들에게 대한 비밀을 일려주기만 하면 당신의 어머니는 즉시 석방될 것이오. 어떻게 하겠소?”목사는 한참 생각하다가 누워있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어떻게 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누운 채였지만 정색을 하고 대답했습니다.“내가 네가 어렸을 때부터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교회를 사랑하라고 가르쳐 온 것을 잘 알지 않느냐? 내가 당하는 고생은 조금도 염려 말고 주님과 그의 자녀, 너희 형제들에게 끝까지 신의를 지켜라. 만약 네가 너의 신앙동지를 배반한다고 하면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그 후에 이 아들과 어머니는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옥에서 세상을 떠났음이 분명합니다.

 

 
 




180.철의 장막 배후의 지하교회
 
마지막으로 북한에서 1969년에 있었던 일이 역시 책에 실려 있습니다. 북한에는 공인된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하교회가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또 북한 노동자에게는 휴일이라고 하는 것이 도무지 없다고 합니다. 그저 정월 초하루부터 섣달 그믐날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 심지어 그네들의 혁명기념일 따위의 날에도 기념식만 올리고 생산 증가라는 명목 아래 일을 한다고 합니다. 다만 병들게 되면 그 때는 집에서 치료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약 4만 명이 일하는 어떤 탄광에서 매 일요일이면 약 천 2백 명의 환자가 발생되었다고 합니다. 평일에도 물론 환자가 있지마는 일요일마다 환자 수가 더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당들은 조사에 나셨습니다. 그 결과 물론 환자들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몇 사람씩 모여서 어느 집에서 혹은 어느 산골짜기에서 예배하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찬송을 부를 수가 없어서 조용히 읽기만 하였고 또 성경을 읽고 몇 마디 한 후 기도도 조용히 한 다음 해어질 때에도 일제히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흔적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나씩 가만히 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산당들이 이것을 찾아내어 이 때문에 45명이 처형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38선 이북에, 철의 장막 배후에 지하교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킵니다. 지금 이 시간도 북한과 철의 장막 배후에는 갇힌 신도들도 많고 학대를 받는 이들도 많은데 이들은 다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리스도께서 이들과 같이 고난을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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