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의 자세
제직의 헌신적 자세
1. 희생을 각오하는 마음의 자세(롬12:1-2)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오,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5:13)하였으니 제직은 예수의 희생 정신을 본받아 소금처럼 녹아져 다른 이를 유익하게 하여야 한다. 제직은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기는 희생과 사랑의 정신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직책이다.(요11:11).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라는 정신으로 예수를 위해 아낌없는 헌신자가 되어야 한다. 몸과 마음과 물질과 시간 그리고 온갖 정성을 다해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것이 믿음이요 희생이다. 수고는 내가 먼저 하고 영광은 주께로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그마한 희생도 인색하고서는 교회가 성장할 수 없다.
1) 최선을 다하는 자세(행23:1)
바울은 공회에서 신문을 받을 때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행23:1) 고 고백하였으니,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한 전도자이다. 양심에 거리낌 없이 일하는 일꾼이 참된 일꾼이요 최선을 다하는 일꾼이다.
예수의 두 아들 비유가 있다. (마21:28-31). 잘 믿노라고 자부하는 유대인이 맏아들이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맏아들에 해당하기 때문에 문제가 크다는 것이다. 무거운 것을 묶어 남의 어깨에 메우고 자기들을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게 하지 않으면서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마23:4-5)이기 때문에 희생업는 외식주의를 신랄히 비판하여 "화가 있으라"고 일곱 차례나 지적하였다 (마23:13-15). 그러므로 희생없는 헌신은 외식이요, 외식은 양심을 속이는 일이다.
교회의 제직은 존귀 영광 모든 권세를 홀로 주께 돌리고, 멸시 천대 십자가만 붙잡는 희생정신으로 오로지 교회만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2) 먼저 그의 나라를 위하는 자세(마6:33)
무슨 일이나 먼저 할 일과 다음에 할 일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마6:33) 먼저 그의 나라를 위하는 생활을 하려면 믿는 마음 즉 확신을 가져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하였으니 교회의 일꾼은 먼저 하나님을 앞세워야 한다.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길을 걸어도 일을 해도 항상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생각하여야 한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살았다.자기 주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면서 살았다. 어떻게 보면 자아도 주체성도 목적도 꿈도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브라함은 먼저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복의 기관이 된 것이다. 제직은 항상 나보다 교회를 그리고 하나님을 더 생각하여야 진정 바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2. 가정에서의 헌신적 자세(눅19:9)
가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요 축복이다. 가정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사회가 모여 나를 이룩하는 것이며, 크리스챤의 가정이 모여 교회를 이루고, 그 교회가 곧 천국이 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크리스챤의 가정들은 하나님을 모신 가정이 되어야 하고 특별히 제직들은 가정에서 희생정신을 발휘하여야 한다.
크리스챤의 가정은 예배와 기도를 드리는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사랑하며 개인 신앙의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는 개인 구원만 아니라 가정의 구원을 중요시하여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임했다"(눅19:9)고 했다. 교회의 제직은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고백한 한 개인인 동시에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 자기 가족 전부가 그리스도를 중심한 생활을 하도록 힘쓸 책임이 있다.
1) 신앙을 중심한 가정 생활
크리스챤의 가정은 하나님 중심으로 "이 집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신앙에서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크리스챤의 가정은 부부 관계와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그리스도를 중심한 신앙 원리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가정이란 육신의 요람이요, 정신의 안식처이다. 가정의 불화로 만사를 망쳐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따사로와야 하고 애정과 행복이 넘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정 예배는 중요하다. 서양 주택은 파이여 플레이스(Fire Place)가 중심이요, 일본 가정은 도꾜노 마가 중심이 되어 있다. 그러나 크리스챤 가정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제단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크리스챤 가정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가정마다 예배 드리는 생활이 되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림으로 감사하는 생활도 배우고 서로 양보하며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담력도 얻게 된다. 가정 제단에 불이 꺼지지 안도록 힘써야 한다.
2) 모범적인 가정생활
교회의 일군인 제직이 교회에서는 칭찬받으면서도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교회에서 훌륭한 제직이 가정에서도 훌륭한 제직이 되려면 모범적인 생활을 하여야 한다.
참된 행복은 희망과 괘락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맡은바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는 데 있다. 땀과 희생을 요구하는 일일수록 몸소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힘드는 일을 나의 의무로 알고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제직된 사람이 가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솔선 수범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이 은연중 높아질 것이며 사랑과 기쁨이 가득찬 가정이 될 것이다.
믿지 않는 자의 아내된 제직들은 베드로의 교훈을 명심하여야 한다.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벧전3:1-6) 하셨다. 그러므로 제직인 아내의 행위가 믿지 않는 남편에게 본이되어야 한다. 교회 직분을 맡기 전보다 더 겸손하고 더 순복하고 더 착하고 깨끗하며 진실되고 경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3. 교회에서의 헌신적 자세(행2:43-47)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의 집단이다. 교회는 신자가 하나님과 신비적 교제를 가지고 신자들간에도 사랑의 친교를 가지고 은혜를 나누며 믿음을 지켜 나아가는 곳이다.
성경에는 교회를 "그리스도으 몸"(엡1:23)라고 하였는데, 교회는 신자들이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적 관계를 맺고 있는 유기적 산 조직체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선택받은 직원들은 교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할 책임이 있다.
1) 힘써 모이는 생활
교회의 특징은 힘써 모이는 데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5)고 했다. 제직이 교회를 위한 헌신적 자세는 우선 집회 때마다 열심히 참석함으로써 작은 등불의 사명을 다하여야 한다.
예배 시간보다 일찍 출석하여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 예배를 위한 집회만이 아니라 부흥회나 수련회 같은 특수 집회는 물론 제직회에도 열심히 참석하는 것이 훌륭한 헌신의 생활이다.
기독교는 본질상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이기를 강조한다.신자들이 모일 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기 때문에 초대 교회 때부터 모이기를 열심하였고(마18:20,행2:46-47)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고 하였다. 모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마18:20). 그러므로 교회의 모임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요 설교를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따라서 모일 때는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는 지를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전14:12-40). 그러므로 모임에서는 자기에게 유익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못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제직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도록 힘써야 한다.
2) 선교를 위한 생활
주예수를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 교회는 예배와 교육을 통해 내적으로 제직들이 제자로서 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뜨거운 선교적 사명도 외면해서는 안된다. 선교적 사명은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기 때문에 선교를 위한 생활은 크리스챤 공동체의 꼭 지켜야 할 일이다.
교회는 모이는 기능만 아니라 흩어져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여야 한다. 교회가 병들고 허약한 자와 위로와 도움을 바라는 대중을 위해 그들의 상처를 고쳐주는 봉사적 기능을 다하여야 한다. 이러한 책임을 제직들이 주도적으로 역할할 때 선교적 사명을 다할 수 있다. 지원 선교사가 된 제직들이 지역사회에 흩어져 복음의 빛을 비추어 줄 때 교회에 무관심한 주민들이라도 자기들의 삶의 요구를 교회에서 찾으려고 할 것이다.
교회는 지역 사회의 핵(center)이 되어 개인의 문제나 지역의 문제가 교회에서는 논의되고 교회에서 해결될 때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다할 수 있다.그런데 이러한 책임을 제직들이 감당할 때 선교는 보다 효과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제직들은 선교의 책임을 위해 뜨거운 가슴과 불타는 심정으로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하여야 한다. 이해 관계나 경제 제일주의의 풍토를 벗어나 헌신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제직의 헌금적 자세
헌금은 감사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대해 전체 생활을 드리는 감사의 표로서 예배를 통하여 바치는 제물이다. 헌금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인 동시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는 신앙 고백의 실제적인 행위이다. 헌금은 주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드리는 것이다.
헌금은 신앙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이 감사의 마음을 물질로 나타내는 것이 헌금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아까와하거나 마지 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신앙의 표현이다(고후9:7).
헌금은 헌신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교회와 사회와 하나님게 대하여 어떤 의무를 다하기 위한 실천 행위의 하나이다. 헌금만이 헌신의 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헌금은 헌신을 나타내는데 매우 구체적인 방법이 된다. 헌금은 보답의 표현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 받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예배의 일부로서 드리는 예배행위이다. 그러므로 헌금은 예배의일부로서 드리는 예배 행위이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일에 참여하는 정신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이다. 제직은 각종 소득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정신으로 헌금해야 한다.
1. 헌금의 원리(잠3:9)
1) 헌금의 성격적 원리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고 그 보답으로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렸고 (창14:20), 야곱은 벧엘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약속하였다.(창28:22).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서 봉헌자와 레위인이 함게 먹으며 즐거워 하였으니(신14:22-29) 친교를 위한 봉헌이었다. 매 3년마다 소산의 십일조를 드려 레위인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먹어 배부르게 하라 (신26:12) 하였으니 헌금은 구제 사업과 사회 복지를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주어서 그들이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았으니(민18:21,6-28) 헌금은 성직자의 보수로 사용되었고, 성전 관리와 종교 행사의 운영과 관리를 위해 헌물되었다(느10:32-39).
예언자 시대에도 헌금과 헌물을 하였고 (암4:4,말3:8-10). 예수 시대에도 헌금하였고 (막12:17,눅21:1-4, 눅12:21) 초대 교회에서도 구제와 봉사를 위해 헌금했다.(고후8:1-5,
9:1-15,행24:17,롬15:26-27).
2) 헌금에 대한 바울의 교훈
①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각각 마음에 정한 대로 하고 아까와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 하는 일이 없도록 하시요,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고후
9:6-7) 하였으니 헌금은 자발적으로 전 수입과 헌금 액수와의 비율을 신앙에 의해서 정하여야 한다. 헌금은 그 자유로운 경제를 솜씨있게 관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고후9:7,11,13)
헌금은 자신의 소득의 일부를 바쳐서 헌신을 구체화하는데 의의가 있다. "하나님은 바쳐진 헌금의 액수보다 돈궤에 남겨진 금액을 보고 계신다"는 말이 있다. 두 렙돈을 바침으로 생활비가 제로가 된 가난한 과부를 예수님은 "이 가난한 과부는 누구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 사람들은 다 자기들의 넉넉한 데서 돈을 넣었으나 이 여인은 구차한 데서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다." (눅21:1-4)고 하셨다.
② 헌금은 규칙적으로 계획적으로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전16:2,고후8:6,9:5) 헌금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다"(고후9:7) 다른 선한 일과 같이 헌금도 각자가 자기의 기준에서 규율 있게 해야 한다.
헌금은 예산과 계획에 맞추어서 바쳐야 한다. 성소의 성막을 만들기 위해 가져온 헌금품이 남았을 때에 그것이 중지되어졌다.(출36:5-7). 반대로 예산액이 부족하면 추가가 재촉되어졌다.(대하36:5-7). 예산 초과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초과는 주님의 축복의 표시이다.(대하31:10). 그러나 여러가지 모금에 즈음하여 이 만한 예산이면 자기의 "가져온 예물"과 "수입"이면 어느 정도의 필요한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계획성이 필요하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격려를 잊지 않아야 한다. (고후9:6) 인색함이 없는 후한 헌금이 되어야 한다. 많은 추수를 기대하는 사람은 파종에 인색해서는 안됨을 기억하여야 한다.
2. 헌금의 표준
어느 종교 의식이든 공통적인 것은 노래와 춤과 헌물이다. 신앙심이 있는 사람은 자기가 믿는 대상 앞에 보은과 감사의 생각을 물질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하겠는가?
1) 구약의 시대의 십일조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 중심의 민족으로 저들의 전수입의 십일조를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쳤다. 아브라함은 연합군을 격파하고 전승하였을 때 축복해 주는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그 얻은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주었다(창14:1-20).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하다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창28:22)고 약속하였다.
레위기에는 땅의 십분의 일 곧 곡식이나 나무 과실의 십분의 일이나 가축의 십 분의 일을 곧 곡식이나 나무 과식의 십분의 일이나 가축의 십분의 일도 여호와의 것 (례20:30-32)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구약에 보면 그 규정이 일정하지 않아 일년 수확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 (신12:6-19,14:22-27)와 3년 마다 레위인과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위해 드리는 십일조 (신14:28-29, 26:12-15)가 있었다.
말라기는 구약 최후의 선지자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십일조와 헌금을 드리지 않는 것은 도적질하는 것이라 (말3:8)고 지적하였다.
2) 신약의 시대의 헌금
예수께서는 단 두번의 십일조를 언급하셨는데, 하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서이고 (눅18:12) 또 다른 하나는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에 대한 질책에서이다. (마23:23). 십일조에 대한 예수의 의도를 두고 학자들 간에는 의견이 있으나 "마땅히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가난한 과부의 소유를 다바친 연보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신 사실(눅21:4)을 기억하여야 한다.
바울은 기독교 공동체의 헌금 행위를 강조하면서 교회와 교회 활동을 지원뿐 만 아니라 멀리 있는 가난한 교회도 후원해야 한다고 하였다.(고후8:1-5,9:12-13). 복음 전파를 위해서도 가져 올 것을 주장하면서 기뻐 바치는 헌금을 칭송하고 있다 (고후9:7).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금전적 보조 받기를 거절했다. (행 18:3,고후11:7-10, 고전 9:18) 그러면서도 그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생활하는 것이 기독교 교인들의 정당한 권리(고전9:14)라고 주장하였다 (고전 9:7).
성경학자들은 교회가 다음 몇 가지 계획을 발전시킬 만한 근거가 신약 성경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얻은대로 수입에 비례하는 내는 헌금.
둘째, 정규적으로 주일 헌금.
세째, 처음 작정한 대로 헌금 하기.
네째, 즐거이 하는 헌금.
다섯째, 타인의 곤궁을 돌보려는 의무감에서 하는 헌금.
여섯째,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온 마음을 다 바치는 헌금.
이상의 여러 가지 조건과 얻은대로 저축했다가 바치는 헌금을 충족시키는 것이 바로 십일조이다.
3) 십일조 헌금의 필요성
소득의 십분의 일을 헌금하라고 강조해야 할 필요성이 몇가지가 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청지기라는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자기 삶을 그리스도에게 바쳤다는 것이다.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이라면 그 지도와 안애를 받아야 한다.
둘째, 십일조는 성경적 근거가 있을 뿐 아니라 청지기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금할 의무가 있다.
세째, 그리스도인들이 헌금하는 습관을 조직적으로 들이지 않을 때에는 청지기 직분에 심각한 위험을 던져 준다. 교인을 돌보아야 할 교회로서는 교인을 주 안에서 성장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
십일조 헌금을 역설하면서 주의 하여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받기 위해 낸다는 사상이다 축복은 어떤 보상은 아니다.
둘째, 금전의 십일조만이 제일이 아니다. 청지기는 십일조를 냄으로 책임을 다 한 것이 아니다. 재능과 시간과 노력도 바쳐야 한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는 (눅12:48).
3. 헌금의 관리(요12:5-6)
바울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고 하였으니, 교회 헌금을 맡은 관리자가 불충성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가롯유다는 돈을 맡아 자기 유익을 위해 사용한 불의한 청지기이었다.
1)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한다.
교회의 재정을 맡아 다스리는 관리자이면 경제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싸게 먹이는 것이라든지 싼 물건으로 고집하는 깍쟁이 근성이 아니고 이상을 어느 정도 달성하는가에 관계된다.
주인이신 하나님께 결산보고가 되도록 돈을 사용하는 것이 경제적인 것이다. 주인의 달란트를 받아 땅을 파고 감추어 둔 종은 한 푼도 쓰지 않았으나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을 받았다 (마25:26). 어리석은 부자는 많은 소출을 저축만 하고 사용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으나 경제적이라고 하지 않고 "어리석은 자"라고 했다. (눅 12:20).
교회에서 재정을 맡은 관리자가 경쟁만을 생각하는 것은 버려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여야 한다(딤전6:17). 재정을 올바르게 사용하여 즐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는가? "교회라는 곳은 비용을 들이는 곳이다"고 어떤 신학자가 말했다. 교회는 어떻게 돈을 적게 들여서 운영할까가 아니고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훌륭하게 경비를 사용할까를 생각하여야 한다.
2) 교인의 뜻대로 사용되어야 한다.
교회의 재정은 교인들의 결의 기관인 공동의회에서 결정된다. 그러면 교회의 재정은 교인 총의인 공동의회에서 결의한 예산안에 따라 사용되어야 한다. 헌금자의 뜻에 반하여 그 이외의 용도에 관리자가 임으로 지출되어서는 안된다. 즉 예산안을 대폭으로 수정함에는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갱정예산이 결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정된 헌금은 용도에만 사용되어야 한다.
재정부원이나 회계는 자신이 헌금을 충실히 하여야 한다. 다른 교인들이 정성으로 드린 헌금을 취급하는 관리자가 헌금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 헌금을 취급할 자격이 없다.
교역자의 생활비는 사례금이나 구호가 아니다. 교역자는 그것을 받을 권리를 가지며(고전9:1-14) 따라서 교회와 신자들은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다.(갈6:6) 인색함이 없이 드려야 풍성한 축복을 받는다(왕하4:9-10).
3) 헌금은 분명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바울은 관리자로서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또 헌금자가 안심하고 헌금을 위탁하도록 하기 위해 여려 가지 배려를 했다. 고린도 교회 대외 봉사비를 모금하기 위해 디도와 다른 한 사람을 추가해서 파견했다.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앞에서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고후8:20-21)고 했다.
예루살렘 교회에 송금할 때도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게 가리라"(고전16:4-6) 고 신중한 한 절 안디옥 교회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구제금을 "바나바와 사울의 손에 맡겨서"보내었다.(행11:30) 이렇게 충실한 관리가 보증됨으로 안심하고 헌금을 내게 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교회의 재정은 지출할 경우 될 수 있는 한 영수증을 받아야 한다. 물품 구입 등은 가능하면 두 사람이 맡아야 한다. 매달 제직회에 보고하며 연말에는 반드시 감사를 받아야 한다.
제직의 정신적 자세
(1) 주인의 정신으로 일하는 자세 (벧전5:2)
교회의 신령상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교회의 조직 주인은 세례교인들이다. 세례교인이 공동의회의 회원이 되어 교회의 일을 의결하고 처리한다. 한 나라의 주권은 국민이 있듯이 교회에는 세례교인이 주인이다. 교회의 행정상 주인은 목사이다.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나 국민들이 투표하여 세운 대통령이 그 나라를 대표하여 나라의 통치권을 행사한다. 이와 같 이 목사는 세례교인이 모인 공동의회에서 투표받아 그 교회의 목사가 되어 그 교회의 행정을 맡아 일한다. 제직들은 세례교인 중에서 선택받아 교회를 봉사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제직은 주인의 정신으로 일하여야 한다.
주인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
1) 책임질 줄 아는 정신이다. 주인이란 일의 책임을 맡은 자이다. 주인은 일이 괴로우나 즐거우나 감당할 책임이 있다. 일이 잘 되어도 주인의 책임이요 일이 잘 안되어도 주인의 책임이다. 교회의 주인된 제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기쁜 마음으로 일하되 맡은 자들을 지배하려 들지 말고 양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벧전5:23).
2) 일을 위해 일하는 정신이다. 주인이란 삯을 위해 일하는 자기 아니라 일을 위해 일하는 자이다. 주인과 종의 차이가 무엇인가? 종은 삯을 위해 일하지만 주인은 일을 위해 일한다. 종은 억지로 할 수 없어 일하지만 주인은 기쁜 마음으로 일한다. 제직은 칭찬이나 대접을 기대하고 일하는 자가 아니라 맡은 일이 잘되기 위해 일하는 자이다. 제직은 제일의 관심은 보수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에 있다. 그러나 제직들도 베드로처럼"우리가 무엇을 얻겠습니까?"(마19:27)의
질문을 하게 된다. 교회를 섬기는 즐거움,이웃을 봉사하는 즐거움은 일을 위해 일하는 제직들이 받는 보수이다. 모세는 미디안 들에서 인생의 황금기인 40년간을 하루같이 양떼를 치되 삯도 없이 충성을 했다. 모세가 광야에서 충성했으므로 하나님의 집에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히3:5). 제직은 삯을 위해 일하는 청지기가 아니라 주를 위해 일하는 청지기이다.
(2) 봉사정신으로 일하는 자세 (벧전4:10)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하였으니 제직은 봉사의 정신으로 일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신다. 어떤 제직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제직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다. 각자가 받은 달란트를 어떤 정신으로 사용하느냐가 보다 중요한 문제이다.
1) 봉사는 보상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칭찬을 받을 때만 충성하거나 보상이 있을 때만 열심히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다. 이러한 사람은 일이 축복이거나 기쁨이 되기보다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짐이 된다. 사람이 보상만을 위해 일하게 되면 품꾼에 불과하다. 일이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므로 축복이 고역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보상에 얽매이지 말고 봉사정신으로 일해야 한다.
2) 봉사는 의무에 매여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의무에만 매여 일하는 사람도 일의 기쁨이나 보람을 맛보기란 어렵다. 의무나 책임이 나쁠 것은 없으나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 순전히 의무감 때문에 한다면 일이 딱딱해지고 분위기가 굳어진다. 그러나 맡은 일이 하나님의 축복이요 제직으로서 봉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알고 봉사정신으로 일할 때 기쁨이 넘치게 된다.
3) 봉사는 주께 하듯 하는 생활이다 (엡6:7). 하나님은 경외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맡은 일을 할 때 주께하듯 하는 것이 봉사이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일이니 영광으로 알고 일하고,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니 정성을 다해 일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신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일일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고 도리어 즐거운 봉사가 된다.
제직이 봉사 정신으로 일하려면 첫째, 협동 정신이 있어야 한다. 교인 사이에 서나 제직 사이에 서로 양보하고 양해하는 협동정신이 없이는 교회에서 봉사할 수가 없다. 나와 조금 다르지만 서로 양보하고 협조할 줄 알아야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같이 봉사할 수 있다. 교회나 세계를 위한 봉사에는 꼭 같은 원리에서 움직이는 것이다. 둘째로, 오래참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어떤 좋은 일을 해도 난관이 반드시 있다. 이러한 난관이 있을 때 어떤 태도를 가지고 극복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봉사 생활이 좌우된다. 백번 찍어도 넘어 가지 않는 정신으로 끝까지 나아가는 자가 성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쁘세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나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살전 4:1) 하였으니 일을 당해도 참고 견대어 성공하기까지 더욱 힘써야 한다.
(3) 모범의 정신으로 일하는 자세 (딤전4:12)
일꾼이 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모범이 되려면 더욱 어려운 일이다. 모범이 되는 일꾼이란 구경꾼처럼 방관자도 아니요, 말꾼처럼 말만 하는 자도 아니요, 싸움꾼처럼 불평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1)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모범되는 일꾼이다. 교회 일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고 일의 방법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일하 는 일꾼이 모범이 되는 일꾼이다. 사람들은 독주하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급하다고 하나님보다 앞서도 안되고 피곤하다고 하나님보다 뒤져도 안된다. 일마다. 걸음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 모범이 되는 일꾼이다.
2) 그 직책이 휘방하지 않도록 힘쓰는 일꾼이 모범이 되는 일꾼이다. 일을 하다 보면 실수하기도 쉽고 남에게 오해를 받게도 된다. 그러나 제직 은 그 직책이 휘방하지 않도록 무슨 일이나 아무에게든지 거리낌이 없이 힘써야 한다. 바울이 이 직책이 훼바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이든지 아무에게든지 거리끼지 않았다"(고후6:3) 고 했다. 섣불리 잘한답시고 마구 돌아다니며 할 것 못할 것 함부로 손댈 것도 아니요, 잘한다고 하는 일이 도리어 하나님의 일꾼은 되기도 어렵고 된다고 하더라도 일하기가 어렵고, 일한다고 하더라도 모범이 되기는 더욱 어렵다.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너무 쉽게 생각지 말고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항상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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