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훈을 가르치라 딛2장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같은 '목회서신'으로서 그 주제가 똑같습니다.
'바른 교훈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3장처럼, 디도서 1장에서도 '교회 지도자의 자격'을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 이어지는 디도서 2장 (본문)에서는, 그들에게 '바른 설교를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딛2장의 전체 내용은 한 마디로 '바른 교훈을 가르치라'는 2:1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목회서신에 자꾸 '바른 교훈'이 반복해서 나오니까, (솔직히 조금 귀찮지만) 안 찾아 볼 수 없어서,
한 번 전부 다 찾아보았습니다.
처음엔 목회서신에 5번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글을 다 쓸 무렵에 1번을 더 찾아서, 총 6번 나오네요.
◑적용 “ 바른 교훈과 일치하는 것을 가르치시오” :1
“그러나 그대는 바른 교훈과 일치하는 것을 가르치시오.” :1 (현대인)
‘바른 교훈’이란?
‘바른 교훈’은, ‘올바른 방향의 설교’를 뜻합니다.
‘바른 교훈’은 신약성경에 총 5+1회 나오며, 모두 목회서신에만 나옵니다.
그 5+1번의 용례를 살펴 봄으로써, ‘바른 교훈’에 관한 바울의 메시지를 추적해 보겠습니다.
1) ‘바른 교훈’은 경건한 생활에 관해 가르칩니다.
딤전1:10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sound teaching, 후기아노 디다스칼리아
그래서 바른교훈은, 음행, 남색, 인신매매, 거짓말, 거짓맹세 등 (십계명의 5~9계명) 계명을 가르칩니다.
물론 율법주의가 아니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변화되고 경건한 생활’을 가르칩니다.
이렇게 바른 교훈은 ‘경건에 관한 도’를 가르칩니다.
성경의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마22:38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요14:23~24
위 두 말씀을 종합하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명을 가르치는 것이 ‘바른 교훈’입니다. 무조건 ‘믿으라’고만 설교해서는 안 됩니다.
2) 바른 교훈을 가르치지 않으면, 변론과 언쟁에 빠지게 됩니다.
딤전6:3 ‘누구든지 다른 교훈(헤테로디다스칼레오)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sound words, 후기아노 로고스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위 구절 딤전6:3에서, ‘바른 말’은 곧 ‘바른 교훈’인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가 이런 설교의 방향성을 놓치거나
성도가 성경을 읽을 때, 이런 ‘바른 교훈’의 방향성을 분별하지 못하면
위 딤전6:4절에, 교만, 변론, 언쟁, 투기, 분쟁.. 이런 결과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모여서 늘 교리 다툼 하고, 다른 주제 (정치, 페미니즘, 유행사조)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3) 일부 신자들은 ‘바른 교훈’ 듣기를 싫어하고, 자기 귀에 듣기 좋은 설교를 따릅니다.
딤후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sound teaching, 후기아노 디다스칼리아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오늘날에도 특정 정치 성향을 ‘위주로’ 설교하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설교자 자기 정치 색깔이 그래서이기도 하지만, 가만히 보면 ‘회중들이 좋아하고 따르는’ 것을 보고서
그런 특정 정치 노선을 자주 설교하는 것은 ‘다른 교훈’이고, ‘바른 교훈’이 아닙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다른 복음’을 말하고,
디모데서에서는 ‘다른 교훈’을 말했습니다. 둘은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나 혹은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8,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1:9
바울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며, 아주 심하게 경고했습니다.
경건에 관한 교훈이 아닌,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도, 그렇게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복음은 ‘비밀’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받은 자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은혜로 깨닫기만 하면 복음은 쉬운데, 은혜를 못 받으면 철학박사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 다른 교훈’을 가르치게 되고, ‘바른 교훈’이 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듣는 회중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자기 귀를 시원하게 긁어줄
‘다른 교훈’을 자꾸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4:3
4) 바른 교훈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래 구절에 ‘거슬러 말한다’고 했죠.
딛1:9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sound teaching, 후기아노 디다스칼리아
그래서 복음전파자들, 설교자들은 ‘진리를 위한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딤전1:7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벌써 초대교회 때부터, 복음을 수호하기 위한 싸움이 극렬했음을 서신서 곳곳에서 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는 ‘유대교, 유대주의’와 싸워야 했고,
갈라디아 교회에서도 ‘유대주의적 기독교, 율법주의’와 싸워야 했고,
에베소, 그레데 교회에서는 헬라문화에서 발생한 ‘영지주의 이단’과 또한 '신화와 족보'를 전하는
거짓교사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딤전1:4, 4:7
5) 바른 교훈, 바른 복음을 가르치십시오!
딛2:1 (본문)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sound teaching, 후기아노 디다스칼리아
‘그러나 그대는 바른 교훈과 일치하는 것을 가르치시오.’ 라는 뜻입니다. *현대인의 성경
개역성경에는 '데'('그러나')가 생략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사용되어 있습니다.
이는 본장이 앞장에서 진술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바른 교훈을 전하라는 명령을 기록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너는’ - 디도를 가리키는 강조적인 어구로서 (*헬라어 인칭대명사 ‘수’가 문장 앞에 나옴, 보통은 생략하나)
디도가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바른 교훈으로
그레데인들에게 모범을 보임으로 그레데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함을 암시합니다.
가장 큰 전쟁은 교회 안에서 일어납니다.
교회 바깥에서의 전쟁도 안 중요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 바깥의 전쟁이 교회가 맞서야 하는 가장 주된 전쟁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면하는 가장 큰 전쟁은 참 복음과 복음의 진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즉 복음이, 정치 이념이나 페미니즘, 상대주의, 시대사조와 뒤섞이는 것을 보호, 수호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지금 세상 모든 나라의 교회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디모데처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딤후1:7
우리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이런 공격들에 맞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앞서가신 성도들이 전해준 신앙을 수호하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힘쓰는 것,
이것이 선한 싸움입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딤전1:18, 6:12, 딤후4:7
우리의 가장 큰 전쟁은
바로 교회 안에 있으며, 복음의 진리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6) 그런데 '바른 교훈'이 한 군데 더 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위 구절의 '교훈'이 '디다스칼리아', 같은 헬라어입니다.
위 구절은 문맥상 '바른 교훈'이란 뜻이죠. '바른'이 생략된 거죠.
우리는 성경 66권을 다 가르치고, 각 장을 다 가르쳐야 합니다. *신구약 모두 1189장
거기엔 모두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기가 골고루 다 들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복음'을 그저, 요3:16절 같은 구절을 '마음으로 믿는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것은 전체 복음의 1%도 안 되는 것입니다.
복음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 이 모든 것이 성경이요, 복음이요, 66권 1189장이요,
성경 전체가 복음입니다. 구약은 예언된 복음, 신약은 성취된 복음입니다!
우리는 전체 복음의 1%만 가르쳤다가는, 장차 하나님앞에서 큰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성경 66권 1189장 모두가 다 '복음'임을
꼭 기억하고, 다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바른 교훈을 가르치려고 하다 보면, '지루한 설교'를 각오해야 합니다.
복음은 영생의 도리이고, 이 주제는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는 경제이야기, 성공담, 성공적인 인관관계의 지혜.. 이런 현세적인 주제이죠.
본문 딛2:13절에도 '복스러운 소망 blessed hope'이 나오는데, 이는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뜻합니다.
당장 내 코가 석자이고, 눈코 뜰 새 없이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논하면,
허황된 뜬 구름 잡는 설교처럼 회중의 귀에는 "지루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회중의 필요와는 극과극인 동문서답, 마이동풍 같은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오늘 내일 하게 되면,
그제야 '목숨 걸고 먹고 살던 일' 이야말로 허황된 이야기였고,
지루하게만 들리던 '복된 소망'(딛2:13)이야말로, 참 복음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 이런 주제가 듣기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설교를 재미있게 하려고 하고, 설교를 재미있게만 듣고, 혹은 현실에 도움되는 설교를 들으려고 하다가는
성경에 나오는 '다른 교훈' 또는 '다른 복음'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므로 '바른 교훈'을 따르려면 '지루한 설교'를 각오해야 합니다. 전혀 비현실적인 영생을 논해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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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별 해석
1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딤전3장과 같이 남녀노소 와 종이 디도서에도 나옵니다.
모두 5대상이죠. 늙은 여자, 늙은 남자, 젊은 여자, 젊은 남자, 종
개역성경에는 '데'('그러나')가 생략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사용되어 있다.
이는 본장이 앞장에서 진술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바른 교훈을 전하라는 명령을 기록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너는’ - 디도를 가리키는 강조적인 어구로서 디도가 거짓 교사들과는 달리 바른 교훈으로
그레데인들에게 모범을 보임으로 그레데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함을 암시한다.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바른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의 가르침'을 의미한다(1:9).
2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노년기의 남자에 대한 양육의 내용이다.
‘절제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네팔리우스'를 혹자는 '술 취하지 않는'으로 해석하여
노년기에 있는 남자들이 범하기 쉬운 '술 취함'에 대한 권고로 본다.
그러나 혹자는 '네팔리우스'가 단순히 '술 취하지 말라'는 권고가 아니라
생각이나 언행의 절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네팔리우스'는 두 견해 중 어느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의 절제'를 의미한다. 흔히 노인은 생의 종막(終幕)이 다가오고 있다는 허탈감에 젖어
언행 심사를 되는대로 방치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믿음 안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특별히 절제의 미덕이 요구된다.
‘경건하며’ - '셈누스'는 '위엄이나 품위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곳에서는 '단정하고’
로 번역되어 있다(딤전3:8, 11).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을 감찰하고 계심을 알며(롬 8:27)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게 된다(히 11:13-16).
‘근신하며’ - 이에 해당하는 '소프로나스'는 '신중한' 혹은 '분별력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일에 사려깊고 성숙한 생각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다.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 - 본절에 나타난 늙은 남자가 갖추어야 할 세가지 덕목인
'믿음', '사랑', '인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여기서 '소망'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절에 열거된 덕목은
본질적으로 고전 13:13에 기록된 덕목과 일맥 상통한다.
한편 '온전케 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기아이논타스'는 '건전한', '바른'이란 의미로
1장에서 언급한 '거짓 교사들의 교훈'과 정반대임을 나타낸다.
늙은 남자들의 삶 속에서 그 덕목들이 드러나려면 그 바탕에
건전한 기독교의 가르침 즉 '바른 교훈'이 있어야 한다.
3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본절은 노년기 여자들이 가져야 할 삶의 방향이다.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고대에는 포도주가 유일한 음료수였기에(Scott) 술에 취하기 쉬웠다.
술에 취한 그들은 쉽사리 다른 사람을 중상 모략하거나 험담하기 일쑤였다.
특별히 본절의 '종이 되지 말며'라는 표현은 당시 그레데의 많은 늙은 여자들이 술에 취해
좋지 않은 언행을 습관적으로 보였음을 시사한다.
4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본문은 신앙인에게 가정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한 것으로 신앙의 이름 아래
가사(家事)가 방치되어서는 안 되며,
가족도 역시 적극적인 사랑의 대상임을 가르치는 기독교의 특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 '저들'은 앞절에서 언급한 '늙은 여자들'을 의미한다.
늙은 여자들은 딸이나 며느리 같은 젊은 여자들이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바른 교훈과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행동으로 가르치는 것이 마땅하다.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들에게 충고하고 가르쳐서 그녀들로 하여금
남편을 사랑하여 남편과 함께 가정을 사랑의 공동체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순전하며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그나스'는 '순결한'이란 의미로
가정에서 젊은 여자들이 지켜야 할 덕목이다(딤전 5:2, 22).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 복음이 전파된 후 그 속에 내포된 여자의 자유에 대한 사상
으로 인해 초대 교회에서는 점차 여자의 해방에 대한 주장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러한 풍조는 여자의 단정함과 정절을 대단히 중시하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 심한 마찰을 빚게 되었고
어느 정도 교회 사역에 장애가 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도에게 여자가 남편에게 복종하도록 양육하라고 권고한다.
이러한 권고는 본절 이외에 바울 서신의 여러 구절에서 여러 차례 강조되고 있다.
(롬 7:2, 고전7:4, 14:34,35, 엡 5:22-24,33, 골 3:18, 딤전 2:11-15).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본문은 이제까지 젊은 여자들에게 왜 이러한 여러 덕목들을 이야기했는가에 대한 이유를 말해준다.
복음이 전파된 후 교회 내에서 여자의 지위 향상과 해방에 대한 치우친 주장들로 인해서
교회는 어려움을 당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젊은 여자들이 일련의 덕목들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하게 전파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6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 '권면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레이'는
1절에서 언급한 '말하여'(랄레이)보다 강한 의미로
젊은 남자들을 보다 엄격하고 강하게 훈련시켜야 함을 시사한다.
강하게 훈련시켜야 하는 덕목 중 첫번째는 '근신하라'이다.
이는 '신중하게 자기 통제를 잘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이 첫번째로 이 권면을 하는 것은 당시 이교 세계의 타락상,
특히 성도덕의 문란(고전 5:1, 6:16)이 젊은 남자들을 죄 가운데로 빠뜨리기 쉬웠기 때문이다.
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바울은 디도에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앙육해야하는 여러 덕목들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양육의 방법으로서 행위와 가르침이 일치하는 교사가 될 것을 권면한다.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바울은 디도에게 모든 면에 본을 보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디도가 본을 보여야 할 대상은 '젊은 남자'뿐 아니라 교훈을 전한 모든 사람이다.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부패치 아니함'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 이다.
1) 이것은 '교훈의 내용'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2) 이것은 '교훈을 전하는 동기'가 순수함을 가리킨다.
위의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부패치 아니함'은 왜곡된 교리를 전한 거짓 교사들의 동기가
'더러운 이'(1:11)를 취하려는 불순한 데 있었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 '책망할 것이 없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카타그노스톤'은 신약성경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로서 법적인 용어이다.
이는 재판관이 고소할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을 나타낸다.
바울은 디도에게 적대자들이 책잡을 수 없도록 하라고 권고한다.
한편 '바른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곤 휘기에'는 디도가 교훈을 전할 때 사용하는 언어조차도
'건전하게'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대적하는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여스 에난티아스'는 문자적으로 '반대편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는 이교도는 물론 교회 내에 존재하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
한편 '우리를 악하다' 말하는 대적자들의 반대가 단순히 디도 개인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디도와 바울을 포함한 모든 사도들을 향한 반대임을 의미한다.
나아가 이 반대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대항하는 것이다.
9 종들은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슬러 말하지 말며
10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사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인과 종의 구별이 있을수 없다(골 3:11). 그럼에도 바울이
이러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사회 관습과 무리하게 충돌함으로써
복음 전파에 차질을 빚게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떼어 먹지 말고’
당시 종들의 경우 대다수가 주인이 운영하는 상업을 맡아 하였기에
떼 먹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바울은 이것에 대해 금지명령을 하면서
금전에 있어서도 주인을 잘 섬기라고 권면한다.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 개역성경에는 '파산'('모든')이 생략되어있다.
이는 종들이 '매사에' 혹은 '모든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편 '다하게 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데이크뉘메누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종이 상전에게 모든 일에 선하게 충성함으로써 상전에 대한 충성을 입증하는 것을 시사한다.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우리를 양육하시되’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택한 자녀들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영생의 소망을 이루는 날까지 바르게 살아가도록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훈련시키고(train) 가르치신다(teach).
이 훈련과 가르침은 성도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까지 계속된다(엡 4:13, 15).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본절은 헬라어 '히나'('위하여')로 시작한다.
이는 본절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양육하는 두 가지 측면을 제시하는 목적절임을 시사한다.
첫째로, 부정적인 측면이다. 그것은 경건치 않은 것과 세상 정욕을 말한다.
'경건치 않은 것'은 불신앙적인 요소이며,
'세상 정욕'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세상적인 욕망'으로서
세상의 쾌락과 악독과 다툼, 소유욕 등을 의미한다(3:3, 요일 2:16).
둘째는, 긍정적인 측면이다. 이것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근신함. 이것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내면의 욕망을 제어하고 신중해야 함을 의미한다. 2)의로움. 이것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공정하게, 그리고 진리에 입각하여 행동해야 함을 나타낸다.
3)경건함.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해야 하는 삶을 의미한다.
한편 본절의 '이 세상에 살고'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여 양육하시는 현장이
천국이 아니라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임을 강조한다.
기독교의 윤리는 세상과 분리된 환경 속에서 성취되야 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시키는 실천 도장이다.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본절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기다리는 것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는, 복스러운 소망, 영생에 대한 소망(골 1:5)이다.
복스러운 소망은, 재림에 대한 소망이다.
둘째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실 것, 즉 주의 재림이다(행 1:11, 히 9:28).
이와 같은 성도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것이므로(히 6:17-19)
지복성(계 21:4,23)과 영원성을 갖는다(벧전 1:4).
한편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그리스도’
이처럼 '예수'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약성경에서
'예수의 신성'을 묘사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고 있다(10절, 1:2,4, 3:4, 요 1:1-18, 행 20:28).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본절에서 우리를 구속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현현(顯現)을 고대하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15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바울은 항상 진리의 복음을 전하고 잘못된 길로 나간 신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책망해야 할 교역자의 임무를 디도에게 말한다.
특히 이러한 임무는 '하나님의 권위'로 행해져야 함을 강조한다.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 이 명령은 디모데에게도 주어졌다(딤전 4:12).
그러나 디모데에게 주어진 명령은 '연소(年少)함 때문에'라는 이유가 붙어 있다.
물론 본절에서의 명령도 디도가 젊기 때문에 주어졌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디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보다 확신을 가지고 임하라는 권면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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