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에 나타난 성도의 권세와 자세 계12:10~11
◑성도의 권세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12:11
이 구절에 나타난 성도의 권세는 2가지다.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이다.
성도는, 이 2가지 영적 권세를 사용해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다.
그래서 마귀가 쫓겨난 내용이, 직전구절인 10절에 나온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이 변수다.
어린양의 피는, 성도는 누구나 갖고 있다. (수학적으로 말하면 상수常數다.)
성도는 참소하는 자, 마귀를 쫓아내야 하는데,
그 무기가 2가지인데, 1가지는 기본적으로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어린양의 피다.
그래서 우리는 늘 보혈찬송을 부르고,
보혈의 피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드린다.
진심어린 회개 기도를 드리고, 그 기도가 상달되었을 때,
우리 죄를 통해 참소하고 역사하는 마귀는, 더 이상 정죄의 권세를 잃게 된다.
문제는,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이다. (수학적으로 이게 변수變數다.)
그냥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 ‘증거’는 전도의 말을 뜻한다. 목회자에게는 설교가 되겠다.
전도하고, 하나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는 성도에게는.. 마귀가 떠나게 되어있다.
정죄하는 마귀가 결코 그를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에베소서에는, 말씀을 ‘말씀의 검’이라고 설명한다.
설교가, 영적 전쟁에서, 마귀를 공격하는 훌륭한 무기가 되는 셈이다.
다른 무기는, 사실 없다.
예수님의 피 흘리신 그 자체가, 능력이긴 하지만,
그 능력이 곧바로 내게 효력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증거witness 하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을 때 그렇다.
어린양의 피가 내게 정말 능력으로 (마귀와 한 판 전쟁에서) 그 효력이 나타나려면,
그 피는, 자기의 증거 하는 말과 더불어, 사탄을 이기게 된다.
어린양의 피가 ‘의의 흉배’를 내게 준다면,
증거 하는 말은 ‘말씀의 검’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주의 사역으로 섬기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실족할 때가 있다.
낙심할 때도 있다. 사역을 중단할 위기에 처할 때도 있다.
그러나 중단해서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증거 하는 말’이다.
특히 사역자가 ‘증거 하는 말’을 중단할 경우,
그야말로 마귀의 밥이 되는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다.
물론 어떤 일정 기간의 휴식을 가질 수는 있지만,
반드시 ‘증거 하는 말’을 계속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자기가 마귀에게 맞아 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증거하는 일은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12:11
이 말씀과 같이,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결코 호락호락 하지 않다.
말씀 증거를 통해서, 마귀를 이기고 승리를 쟁취하는 길은,
먼저 자기 목숨을 거는.. 위험 천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마귀에게 질 수는 없으니까, 내게 가장 소중한 목숨이라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표현을 쓰면 안 좋지만, 말씀 증거는 목숨을 건 도박인 것이다. 결코 쉽지 않다는 뜻)
◑성도의 자세 -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함
▲다 죽이는 환경 속에서, 마귀를 이기고 사는 자는?
계13장에, 666이 나온다.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는데,
어떠한 자든지, 그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이 표를 받지 않으면, 몇 명이든지 다 죽게 한다. 계13:15~16
누가 도대체 이 표를 받지 않고,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표를 받지 않으면, 다 죽인다는데...
(여기서 666의 실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음. 다른 각도로 보는 것임)
그런데 과연 누가 이 표를 받지 않고, 도리어 마귀를 무찌르고, 승리할 것인가?
직전 계12장과 연관해서 해석하자면,
그들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로 인하여 이기는 자들이다.① 12:11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자들이다.② 12:11
▲오늘날 너무 쉬워진 구원
21세기 오늘날에, 구원에 관한 이해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오늘날의 현대 말세의 전도지에 나오는 구원은, 너무나 쉽다.
거의 입술의 고백으로만, 즉시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어있다.
이것이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구원이 거기서 다 끝나버리면.. 그것은 구원 못 받는다.
옛날에 베드로는, ‘주님 이렇게 구원이 어렵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이까?’ 했는데,
그런데 오늘날의 전도지를 보면,
‘구원이 이렇게 쉽다면,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하겠나이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물론 구원 받는 것이 꼭 어렵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가 ‘구원’에 대해, 성경의 일면만 보고, 그것을 믿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 때는, 거의가 그냥 면죄부를 사는 편리한 길을 택했다.
전 유럽 대부분이 면죄부 앞에 저항하지 않았다.
아무도 구원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면죄부를 산 것이다.
자기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확신한 자가, 면죄부로 겁을 준다고, 그것을 사겠는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다 구덩이에 빠지듯이, 면죄부를 팔고 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던 루터부터, 면죄부를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즘 개신교를 통해 받는 구원은, 당시의 ‘면죄부’보다 더 쉬운 것 같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면죄부보다 더 쉬운, 값싼 구원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 나머지 삶은, 성공, 축복.. 이런 현세적 관심에 집중한다.
(구원에 대한 말씀을 보면, 지금이 말세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온 땅을 미혹하게 하는 자가, 구원을 미혹하고 있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일치한다. 다르지 않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Lord으로 따르는 자만 구원받는다.
구원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사람들이 얻는 것이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구원의 조건이다.
꼭 본문 계12:11절이 아니더라도, 계시록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는 자’들이란 표현을 쓴다.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목숨을 걸만큼의 대가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계13장에, 마귀가 말세에 666이란 표를 나눠주는데,
이 표를 받지 않기 위해서(구원 받기 위해서)는
발버둥 치면서, 죽기까지 자기생명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 요한복음에도 나오고, (마16:24절 등 다른 공관복음에도 나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16:24~25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12:24
이런 말씀은, 예수님 말씀 중에, 성경에 가장 반복적으로 강조된 말씀이다.
그 내용은, ‘구원은, 자기 목숨을 미워하면/잃으면 찾으리라’이다.
구원자 되시는 예수를 진정으로 따르고자 하는 마음도 없는데,
그저 몇 분 만에 ‘예수를 영접했다’고 구원받는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그게 잘못 되었다는 게 아니라,
구원 받은 이후에는,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섬기고 따르는.. 삶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구원은, 구원자를 사랑하게 되고, 구원하시는 예수가 기쁘고,
그 분과 함께 동행 하는 삶이 구원이다.
믿음+회개-행위=구원이 아닐라,
믿음+회개=구원+행위(순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이나 요한계시록에 공통적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삶을 기록하고 있는데,
‘자기 목숨을 미워하면 구원 얻는 것’이다. - 요12:24 (또는 자기 목숨을 잃으면, 마16:24)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계12:11 - 요한계시록
(이들은 계13장에서, 666표를 받지 않으려고, 또한 자기 목숨을 거는 싸움을 한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자
어떠한 사람이 666표를 받지 않는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자이다.
간접적으로 이렇게 볼 수 있다. 666표를 받지 않는 사람의 특징이
-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복음서에서 말하는,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잃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으로 구원받는 사람이다.
자기를 사랑하면서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 이것은 모순이다.
그가 오래도록 계속 이렇게 산다면, 이것은 구원 받지 못한 증거가 된다.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중에도 예수를 따르는 것이 - 구원이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그 문제에서 해결 받는 것 자체가 구원은 아니다.
구원은, 어떠한 어려운 문제 속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것이 구원이다.
여러분, 지금 어떤 문제를 안고 계신가?
그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하기 이전에,
그 문제 가운데서도, 그 문제를 안고서라도, 예수를 굳세게 좇으시기 바란다.
예수를 좇는 것이 구원받은 자이지, 문제 해결 받는 것은... 나중의 문제다.
여러분, 어떤 형편에서든지, 구원자를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 드린다.
오늘날의 교회는, 십자가가 너무 약하다.
그래서 두렵다.
우리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나의 죽음을 대신 죽으셨다면,
우리들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될 줄로 믿는다.
(자기 목숨을 버려서 나를 구원하셨는데, 나는 내 목숨이 아깝다고 감싸고 돌 것인가?)
자기를 부인할 때,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자존심이다.
자기를 부인한 사람은, 자존심을 버린 사람이다.
바꾸어 말해서, 아직 자존심이 센 사람은, 자기 구원을 의심해 볼 필요도 있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다. 적그리스도가 미혹의 역사를 강하게 나타내서 그런지,
(가장 중요한) 구원에 대한 말씀이 혼탁하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이 마지막 때인줄 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구원에 진리가 회복되길 축원 드린다.
우리는, 이미 믿어서 구원 받았으니, 이제 축복 받고, 성공하자... 가 아니라,
이미 믿어서 구원 받았지만, 남은 생애 동안, 그 구원을 완성하고,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야 한디... 이다.
그 분은, 자기를 따르는 양을 알아보신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속지 않고, 우리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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