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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론1

by 【고동엽】 2022. 2. 24.

가정에서의 조직신학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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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일 예수님이 오시지 아니하셨다면

 

기독론을 공부할 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다. 만일 예수님이 안오셨으면 무슨 일이 없었을 뻔 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 대답은 분명하다. 곧 성탄절이 없었을 것이다.

성탄절이 없었다면 무슨 일이 또 없었을 뻔 했을까?

 

1. 구원의 감격이 없었을 것이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바울은 딤전 1:12-15에서 예수님 때문에 받은 복은 첫째 구원이요, 둘째 직분이요, 셋째는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직능이라고 했다.

이것이 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다.

 

2. 신약 성경이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20:30-31).

요한복음에는 일곱 가지 예수님의 기적을 기록함으로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행동으로 보여 주셨다.

이런 놀라운 신약 성경의 기록은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3.신약교회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물론 구약에도 광야 교회가 있다(7:3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땅끝까지 증거하게 된 신약 교회는 예수님이 오시지 아니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은 이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땅 끝까지 증거하는 신약 교회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다.

 

4.풍성한 생명의 공급이 없었을 것이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10).

진정한 생명 운동은 예수님이 오시므로 일어나게 되었다.

풍성한 생명은 어떤 생명일까? 스펄존은 세 가지로 말했다.

힘이 없는 어린 아이의 생명이 아니라 힘을 쓰는 장년의 생명이며, 병든 생명이 아니라 건강한 생명이며, 옥에 갇힌 자유 없는 생명이 아니라 자유롭게 다니며 활동할 수 있는 생명 그것이 바로 풍성한 생명이라고 했다.

참으로 풍성한 생명(10:10)과 큰 일 할 수 있는 믿음(14:12),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는 많은 열매맺는 비결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므로 가능한 것이다(15:8).

 

5.참된 섬김의 본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참으로 섬김이 무엇임을 배우게 된다.

섬김의 동기는 사랑이요, 섬김의 재료는 자기 목숨이요, 섬김의 목적은 인간 구원인 것이다. 섬김의 방법은 자기 목숨을 주는데 있다.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다.

기독론 공부에서 예수님은 어떤 신분을 가지고 섬기시는가를 우리는 배우게 될 것이다.

 

6.임종하는 자에게 누가 소망을 줄 수 있을까

십자가의 한 강도가 회개했을 때 예수님은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다(23:43).

내세의 소망을 예수님 외에 누가 보내 줄 수 있겠는가? 예수님 오시므로 말미암아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6)는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가정에서의 조직신학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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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계는 예수님을 대망했는가 ?

 

예수님이 오실 수 밖에 없도록 세계는 예수님의 초청을 대망하고 있었는가? 대망하고 있었다.

 

1. 구약성경에서

구약 성경을 크게 나누면 모세 오경, 역사서, 시가서, 예언서로 나눌 수 있다.

모세 오경은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초림을 대망하고 있고, 역사서는 왕으로서의 예수님의 초림을 대망하고 있으며, 예언서는 선지자로서의 예수님의 초림을 대망하고 있다.

그리고 시가서는 이 모든 직분을 가지신 메시야의 초림을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5복음서라고 불리우는 이사야서에는 예수님의 처녀 탄생(7:14), 그의 십자가의 고난의 사역(53:5)이 예언되어 있으며, 그의 전생애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복음을 증거하실 일을 예언하고 있다(61:1-2).

그런 예언 사역으로서만 아니라 구약의 예표의 성취로서도 예수님은 오셔야만 했다. 최초의 인류가 범죄했고, 그들이 입은 나뭇잎 옷 대신 가죽 옷을 입게 될 때에는 반드시 짐승의 피가 흘렀을 것이요, 죄없는 짐승이 사람의 죄 때문에 대신 죽었을 것이니 이 예표야말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초림을 예표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3:21, 1:39).

 

2. 사상의 세계에서도

서양 철학을 말하려면 플라톤 철학을 빼놓을 수 없다.

플라톤은 인간의 마음은 동물원과 같다고 했다. 온갖 짐승 같은 극렬한 성격이 내재하고 있음을 실토한 것이 아닐까?

이런 부패하고 타락한 인간은 자기 자신이 구원할 수 없으니 메시야는 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는 천사가 되고 싶어하는 고상한 이성의 욕구가 있는가 하면 또한 동물이 되려 하는 정욕의 부분이 자기 안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니-버의 말대로 인간을 천사라 하기에는 너무나 추한 점이 있고, 사람을 동물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고상한 점이 있다고 했다.

바울은 아덴에서 에피큐리안과 스토익 철학자들을 만났는데 저들의 철학 역시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고통 없는 마음을 추구했으나 누가 그것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가?

예수님 외에는 없는 것인가?

 

3. 종교의 세계에서도

성벽 없는 민족은 있어도 종교 없는 민족은 없다고 푸르타크는 말했다.

종교는 자기를 초월한 어떤 세력의 존재를 믿고 삶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상 숭배자들은 진정한 행복을 맛보지 못한다.

파스칼의 말대로 하나님을 찾지도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랑도 못받는 어리석고 불행한 인간이 있고, 하나님을 이성적 방법으로 찾으나 만나지 못하는 지혜로우나 불행한 인생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지혜로우면서도 행복한 인생이 있다고 했으니 우상숭배자들은 이런 지혜와 행복을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이요, 예수님 앞에서만 진정한 만족을 누릴 수 있다.

 

4. 정치의 세계에서도

정치의 세계에서도 예수님의 초림을 열망하고 있다. 복음을 널리 전할 수 있도록 유대인의 회당이 세계 도처에 산재하고 있으며, 헬라어는 문학적인 세계 용어가 되어 사용되고 있었으며, 알렉산더 대왕은 헬라의 동방을 통일했고, 시저는 라틴서방을 통일했으므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고, 주둔하고 있는 군대로 말미암아 질서와 안녕이 유지되고 있었다.

이럴 때 동방 박사가 본 별처럼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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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님은 누구신가 ?

 

예수님만큼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없다.

그는 어떤 분이며, 무슨 일을 하신 분인가?

J.M.프라이스가 쓴 <선생 예수>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교육, 봉사의 결과가 끼친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인격 향상

그는 간음하는 여자를 정죄하기를 거절하고, 우물가에서 타락한 여자에게 가장 위대한 교훈 중의 하나를 가르쳤다. 그는 겸손의 모범으로 어린이를 한 복판에 세우고, 어린이를 오지 못하게 막는 사람들을 책망하였다. 사물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첫째로 놓았다.

 

2. 변화된 생활

중생도 그의 과업의 중심에 있었다.

어거스틴, 파리 대학교의 에벨라드, 루터, 고메니우스, 모라비안 교육, 웨스레, 무디, 가가와와 같은 변화된 사람들을 이야기하기에는 공간이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내재하시는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과시하였다.

 

3. 개혁의 자극

여성 해방, 어린이의 존중, 얼굴 빛깔에 차별 없는 인권 등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감화로 인한 것이다. 브라이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제 연맹 헌장이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한 글을 쓸 종이 만한 가치도 없는 것이다

 

4. 제도의 향상

존 와나메아카, 마샬 훨드, 제임스 크래포드와 같은 사업가들은 그들의 감화력을 주님의 가르침과 정신에서 유도하였던 것이다.

 

5. 문학에의 침투

한 저자는 예수에 관한 재료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였는데 그의 생활 부면과 사업이 들어 있는 5,000권의 책과 기사를 발견하였다.

또한 신학, 윤리학, 일반역사, 교육학사, 심리학, 사회학과 그 밖의 다른 사상 분야의 저자들도 그의 가르침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6. 예술의 영향

특히 음악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바하, 하이든, 헨델의 가장 훌륭한 오라트리오와 같은 것.

 

7. 박애주의의 감화

국내와 국외에 있는 병원과 간호원, 기숙사, 고아원과 양로원, 그리스도인의 학교와 대학은 주님에 의해 생긴 박애 정신에서 유래한다.

 

8. 봉사에의 자극

그의 감화로 안일과 평안과 이기적인 획득을 잊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자하는 정신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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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 ?

 

역사적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말한 사람들이 있다.

 

1. 신실성을 부인하는 사람들

에비온파(주후 107년경)는 말하기를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일 뿐이며 세레받으실 때 성령이 강림하여 메시야의 자격을 얻으시며,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 성령이 그로부터 떠났다고 주장했다.

예수는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으나 그리스도는 본질상 영적이어서 무감각하게 남아계셨다고 하였다.

 

2. 인성을 부인하는 사람들

그노시스주의자들의 주장인데 이들은 물질은 악하다고 보기 때문에 예수는 이 악한 육신을 입고 오실 수 없고 다만 사람으로 보여진 것 뿐이고 참으로 육신을 입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3. 완전한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들

아리안파(주후325년 정죄됨)의 주장은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하나님이시나 그 자신에서 하나님은 아니시며, 그는 시간 안에서 발생되지 않으셨으나 영원에서 발생되었다고 한다.

저들은 요 5:19, 14:28, 2:7, 1:15을 가지고 주장한다.

 

4. 인성의 완전성 부인

이 주장은 주후 381년 정죄받은 아폴리 내리안의 주장으로 사람은 신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수께서는 영의 자리에 로고스가 들어가셨다고 한다.

 

5. 두 성품의 분리 시도

네스트리안파(주후 431년 감독직에서 파면된 사람)의 주장은 예수께는 인성과 신성이 있으나 그 성의 진정한 유기적 연합을 부정하고 도덕적인 것으로 보았다.

 

6. 한 성만 긍정

유티키안파(주후 451년 정죄됨)는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 흡수된 것으로 보았다.

 

7. 정통 교리

주후 451년 칼세톤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인격을 정의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품위에 인성과 신성의 두 성이 있으니 각 성은 완전하고 원만하며 두 성이 유기적으로 또는 나눌 수 없이 연합되어 있으나 오히려 그것들이 제 삼성을 형성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면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찾아보자.

1)예수님의 신성의 증명

(1) 구약에서: 2:6-12; 45:6-7; 110:1, 9:6, 23:6, 7:13, 5:2

(2)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서 : 11:27; 21:37-38; 22:41-46; 24:36; 28:19 예수님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셨다. 그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자주 말씀하셨다(3:13, 5:17-18, 19-27, 6:37-40, 8:34-36, 10:17,18,30,36, 12:44-45, 14:9).

(3) 사도들의 증언에서

누가의 주장: 하나님의 아들(1:32,35).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1:23),

성부의 음성:“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3:17).

태초부터 계신 말씀(1:1).

베드로의 신앙고백:“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16:16).

도마의 고백:“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니다”(20:28).

바울의 고백:“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1:4).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되심을 전파함(9:20).

(4)예수 그리스도의 명칭들을 볼 때

예수라는 말은 구약의 여호수아라는 말과 같은데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뜻하는 것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구주라는 뜻이다.

-주는 신성을 의미한다(고전 12:3).

하나님과 임마누엘 등 하나님이란 이름을 예수님에게 직접적으로 사용하기는 10회 이상(1:1,18,20:28, 요일5:20, 1:8, 벧후1:1, 20:28, 9:5, 살후1:12, 2:13, 18:26, 딤전 3:16 ).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역사시간 전에 이미 계셨던 분으로 말씀하심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선재 상태에까지 끌어 돌아가셨다.

하나님의 독생자(1:14, 18, 3:16, 18, 요일4:9)-독특한 발생이나 출생을 의미한다.

인자- 예수님 자신이 자주 사용하신 인자라는 말은 다니엘 7:13인자같은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왕을 상징하는 것이다.

(5)그리스도의 선재

8:58에 보면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선재를 잘 표시한 말씀이다. 그의 존재는 베들레헴에서 나실 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땅에 오신 것이다.

(6) 예수님의 생애의 자취

예수님은 자기의 생애 중에서 자기는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구주로, 교회의 한 회원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로, 신앙의 모본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애원자가 아니라 기도를 받으시는 분으로, 사람들의 스승만이 아니라 그들의 주권적인 주로 나타내셨다.

(7) 예수님의 이적들

이적은 자연의 세계에 나타난 초자연이다. 예수님의 이적들은 그의 신서을 증명하여 백성들의 믿음을 일으켰다(2:21, 5:15, 1:45, 9:30-33, 20, 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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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이름은 바로 그의 인격이요, 또한 활동이요, 그 인격의 계시다.

예수님의 이름의 특징은 무엇인가?

 

1. 오직 예수만이 죄인의 구주라는 뜻이 있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

그가라는 말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 분은 구주요 또 다른 사람중에 구주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태양이 하나이듯 인류의 구주는 한 분 예수님뿐이시다.

왜냐하면 그 분만이 하나님이 정하신 세상 죄를 지고 가실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다. 성령받은 사도들의 설교의 핵심은 오직 예수님만이 인류의 구주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10:43).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13:39).

 

2.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예수님

자기 백성이라는 말은 택함받은 백성을 의미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매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10:27).

그러나 내 양이 아닌 부류도 있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10:26).

이렇게 볼 때 인류는 두 갈래로 나눠짐을 보게 된다.

또 복음을 전파하면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본다.

바울이 설교할 때 두 종류의 청중을 만나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13:45).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13:48).

이것을 볼 때 구원받지 못할 자와 구원받을 자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린도에서 전도하는 바울을 격려하실 때 이 성 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셨다(18:10).

예수께서 세상에 오실 때 자기를 영접하는 자도 있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음을 요한은 증거하였다(1:11-12).

이것을 볼 때 하나님의 이중예정 곧 선택과 유기의 교리가 진리임을 보게 된다.

 

3. 저희 죄에서 구원하심

이 말씀은 죄에서의 구원이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문제임을 알게 한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바울같은 죄인의 괴수도 구원받았으니 다른 죄인들도 구원의 소망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순히 죄에서의 구원(from sin)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for)서 구원하시는 것이다.

곧 인생관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 되는 것이다(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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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주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시라 할 수 없다고 했다(고전12:3). 예수님을 주라 고백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것이다.

그런데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했다(7:21-27).

그러므로 모순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모순되지 않는다.

참으로 성령으로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사람은 주님과 세 가지로 바른 관계를 맺는다.

 

1. 예수님은 내 소유의 주가 되심

마가복음 11:1-11을 보면 예수께서 나귀를 타시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베다니 맞은편에 있는 나귀 새끼를 풀어서 끌고 오라고 하셨다. 주인이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고 하라 하셨다.

나귀 새끼의 주인공도 예수님이시다. 즉 우리의 소유권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 바로 제자되는 길이요, 구원받은 자의 열매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33).

자기 재물이 자기 것인줄 생각하고 향락에 투자하려 할 때 하나님은 그 인생을 어리석은 자라고 하셨다(12:13-21).

 

2. 예수님은 나의 선생이 되심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13:14).

예수님은 우리의 선생이시다.

우리는 그의 인격과 그의 교훈을 배우는 학생이요 제자들이다.

주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다(Learn of me, Learn from me)(11:29).

잘 배우는 사람만이 잘 가르치게 된다. 예수님은 어떤 선생일까?

행동으로 본을 보이신 선생이시다.

교훈과 생활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외식자가 아니다. 그의 교훈의 내용은 속죄의 의미를 지닌 발을 씻기는 일이요 사랑과 겸손과 섬김의 내용이었다.

오늘날 가르치는 사람은 많으나 행동으로 본을 보이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때 우리는 그의 발 아래 앉아 말씀을 듣던 마리아처럼(10:30) 배우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3.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심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0:28).

주와 하나님을 동격으로 말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도마로 하여금 새로운 신앙고백을 하게 했다.

과연 예수님의 부활은 그의 신성을 행동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4).

또한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가 그의 행하신 기적에도 나타났다고 했다(20:30-31).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7가지 기적이 기록되어 그가 과연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준다.

1) 물이 포도주되는 질적 변화의 기적(2:11).

2) 멀리 온 왕의 신하의 아들을 말씀으로 고쳐주시는 공간을 초월하는 그의 기적(4:46-53).

3) 38년 동안 병든자를 말씀으로 즉시 고쳐주시는 시간을 초월하시는 그의 능력의 기적(5:1-9).

4) 양적 변화의 기적(6:1-15).

5) 자연법을 초월하는 기적(6:16-21).

6) 어떤 불행도 극복하는 능력의 기적(9:1-41).

7) 죽음에 대한 생명의 기적(11:43-44).

 

 

 

 

 

 

 

 

 

 

가정에서의 조직신학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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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자라는 뜻은 무엇인가

 

예수님이외의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인자라고 부른 사람은 순교자 스데반뿐이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7:55-56).

그 외에는 예수님 자신이 자기를 말할 때 인자라고 하셨다.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16:13). 과연 인자는 누구인가? 인자의 뜻은 무엇인가?

 

1. 사람의 아들로서의 예수님

예수님을 사람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신적인 면이 많고 또 예수님을 하나님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도 많다.

그는 목수의 아들로 알려졌고, 그는 제자들과 함께 동거 동락하셨다.

과연 예수님은 시공간에 활동하신 역사적 실존이다. 그는 과연 인자다. 사람의 아들이다. 배고픔을 느끼고, 피곤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마음 괴로워하셨다.

매를 맞을 때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치느냐라고 하셨다(18:22-23).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친근성을 가지게 된다.

 

2. 고난의 사람으로서의 예수님

예수님의 명성이 날 때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게 되었다. 예수님은 자기의 기적, 명성, 화려한 환영, 모여드는 대중, 이런 것에 눈이 쏠리어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궁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8:20). 그의 고독, 고통, 그는 십자가를 각오하지 않고는 이 길을 걸을 수 없다고 하셨다.

오늘날 신학교에 진학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 주의할 것은 각오 없이 나서는 일과 또 하나는 따르는 기회를 상실하는 위험이다(8:21-22).

제자들이 주님을 따를 때 즉시 따랐다(4:18-22). 결과를 따지지 않고 주님을 따랐다.

예수님은 저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16:24-26).

 

3. 영광의 예수님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16:27).

다니엘 7:13의 인자는 신적 권능을 가지신 메시야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유의 주로서 세상에 다시 오실 영광과 능력과 존귀를 입으신 메시야요, 재림주시다.

초림의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말구유에 나셨으나 재림의 주님은 철장으로 질그릇 깨뜨리듯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시게 된다.

인자로서의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재림주로 오실 때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다(16:27).

바울도 이 진리를 믿었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동안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썼다(고후5:1-10).

누가복음 23:39-43을 보면 이 세상에서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본다.

1) 끝까지 자기 죄를 회개치 않고 살다가 죽는 사람

2) 처음에는 구원에 관심이 없었으나 곧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구원받는 사람

3) 예수님처럼 사죄의 복음을 증거하며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다가 면류관 받은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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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인가

 

1.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신가

그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다음과 같은 사실이 증명한다.

1) 구약의 증언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3:15).

2) 족보가 있음

1:1-17, 3:23-38

3) 신체와 영혼을 가지심

이것이 내 몸이니라”(26:26).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

4) 성장이 있음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2:52).

5) 인간적 경험을 가지심

배고픔, 목마름, 피곤하심, 주무심, 사랑, 긍휼, 노하심, 우려, 공포, 민망, 우심, 기도하심이 있다.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4:2, 8:24, 9:36,14:23, 3:5, 22:44, 4:6, 11:35, 12:27, 15:11, 19:28,30, 5:7).

그는 죽음을 체험하기도 하셨다(22:44, 19:30,34).

6) 인간적 유한성

백부장의 신앙을 기이히 여기셨고(7:9), 세계의 끝나는 때를 알지 못하셨다(24:36).

 

2. 그가 사람이시라면 죄는 없는가

1) 성령으로 잉태하심으로 원죄를 가지지 않으심(1:15).

2) 범죄 불가능

그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셨으므로 범죄하실 수 없다.

3) 죄의식과 사죄 의식이 없음.

예수님은 자기의 죄를 의식하거나 유죄를 느끼는 말씀을 하시지 않으심. 도리어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길 기도하셨다(23:34).

4) 무죄의 솔직한 증언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고후5:21).

5) 이성적 인간성 실현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3:5).

 

3. 왜 예수님은 하나님이 되시며 사람이 되셔야 하는가

예수님은 왜 완전한 사람이 되셔야 하는가?

1) 형벌을 담당하시기 위해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12:27).

2) 시험받는 자를 도우시기 위해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2:17-18).

3) 죄의 대속에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7:26).

왜 신성이 필요한가?

1) 무한한 가치의 제사 드림과 완전한 순종을 위해서

2) 하나님의 진노의 구속적 대처를 위해서

3) 사역의 과실과 적용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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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예수님은 언제부터 계셨는가

 

예수님의 육신은 물론 마리아의 몸을 빌어 잉태되시고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심으로 시작되었으나 그러나 그는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하나님이시다.

여기에 대하여 세 가지로 공부하고자 한다.

 

1.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1:1).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1:15).

예수님은 곧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다. 영원 전부터 계셔서 무슨 일을 하셨을까? 2위 하나님으로서 영원한 작정과 구원얻은 자들의 선택이 그 안에서 되었고, 구속의 언약에서 머리와 보증으로서 일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2. 창조에 참여하심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자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3).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으니”(1:10).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8: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자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1:16:1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측과 온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1:26).

이 본문에서 우리라는 말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한다.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주, 보전주, 목표 또는 창조의 도모가 되신 것을 알 수 있다.

 

3. 구약 계시에 활동하심

예수님은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로 역사하셨다. 예를 들면

1) 하갈에게 나타나 돌아가라 권고하심(19:7-14).

2) 모리아산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의 아들을 죽이지 못하게 하심(22:11-18).

3) 광야 가시덤불 화염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심(3:2-5).

4) 이스라엘의 전진 때 앞서 행하심(14:19, 23:20, 32:34).

5) 반석은 그리스도를 상징함(고전10:4).

6) 발람의 가는 길을 막는 천사로서(22:25-35).

7) 기드온에게 나타나 그를 사사로 부르심(6:11-27).

8) 엘리야에게 나타나 여호와의 사자 등으로 활동하심(왕상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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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공생애를 위한 예수님의 준비

 

공생애를 위해 예수님은 어떤 준비를 하셨는가?

누가복음 3:23을 보면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 연령은 30세이다.

지금은 장로가 되려면 30세 이상된 연령의 남자로서 세례받은지 5년이 지난 무흠한 교인이라야 된다.

요셉도 30세에 총리가 되고, 다윗도 30세에 왕이 되었다.

30세의 나이가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그만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3년을 위해 30년을 준비하셨다. 준비하실 필요 없는 예수님이신데도 그토록 준비하신 것을 보니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설교의 준비보다 설교자의 준비가 더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의 준비 내용이 무엇일까?

 

1. 성령으로 잉태되심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1:18). 예수님의 육신은 성령으로 시작되었다. 그래야 죄없는 육신을 가지시고 인류 구원의 성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주님의 일을 하는 첫 단계는 성령으로 육신이 잉태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중생하는 것이다. 새로운 영의 시작이 있어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와는 상관이 없다(3:3).

예수님께서는 중생할 필요 없는 영혼을 가지셨지만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이기에(2:1)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많은 성도들이 중생과 성화를 혼동하여 중생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중생한 사람은 산소망(벧전1:3-4), 믿음의 시련(6-7), 예수 사랑의 열매도 있지만(1:8-9) 또한 인격적인 변화도 있다.

1) 지적 변화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3:10).

중생한 자는 인식의 내용이 달라진다. 자기를 보는 눈, 예수님을 보는 눈, 교회를 보는 눈, 성경을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파스칼은 말하기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도, 자기도, 삶도, 죽음의 의미도 새롭게 본다고 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하던 바울이 자기를 죄인의 괴수로 보는 것이 과연 중생자의 열매가 아닐까(3:6, 딤전1:15)?

2) 감정의 변화

곧 예수를 보지 못했으나 사랑하는 것이다(벧전1:8-9).

찬송가 가사와 같이 이전 보다 더 사랑하게 되며,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다는 고백이 있게 된다.

3) 의지의 변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자기의 소원이 달라진다. 자기 고집대로 하던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자기의 소원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생은 지,,의 곧, 머리, 가슴, , 발 전체에 영향을 주어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고후5:17).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중생에 대한 주제로 대화하다가 마침내 그 자신이 중생한 자가 되고 말았다.

그는 예수님을 위해 변호했고(7:50-51) 그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갈 때 빈손으로 가지 않고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근쯤 가지고 갔다(19:39).

중생은 신비로운 성령님의 사역이나 예수님이 공생애를 위해 성령으로 잉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으로 중생하여 하나님 나라 일꾼이 되어야만 한다.

세례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보도는 우리에게 놀라운 충격을 주는 것이다(1:15).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성령 없는 영혼은 죽은 것이다.

 

2. 자라나심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또한 출생하신 후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자라나셨다.

곧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셨다(2:52).

우리 중생한 생명들은 성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

출생은 단회적이나 성장은 점진적이고 계속적이듯이 중생은 일회적인 사건이나 성도의 성화는 계속적이며, 짐진적인 것이어야 한다.

우리도 자라야 한다. 세 가지가 자라야 한다.

1) 지혜가 자라야 한다.

예수님의 지혜는 자랐다.

2:41-47에 보면 그는 듣고 묻고 대답했다. 곧 학습을 통해 지혜가 자라갔다. 듣는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또 묻기도 했다. 질문이 없는 사람은 두 종류의 사람이다. 다 아는 사람이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대답을 하셨는데 그 지혜에 사람들이 감탄했다. 그리고 보면 예수님은 가정에서 벌써 성경 공부를 잘 하신 것이 틀림이 없다.

성경에는 지혜얻는 길에 대하여 몇 가지로 교훈하고 있다.

(1) 기도를 통해서(1:5-6)

(2) 관찰을 통해서(6:6-9)

(3) 성경 애독을 통해서(딤후3:15)

(4) 참 지혜있는 사람은 성결의 열매가 있다(3:17-18).

2) 키가 자랐다

곧 건강을 의미한다.

건강, 믿음, 좋은 친구는 돈 없이 누리는 행복이라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다.

건강의 비결은 무엇일까?

(1) 그는 목수의 아들로 일했다.

(2) 그는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다(5:14).

성결한 삶은 건강의 첩경이다. 죄는 많은 육체적 질병을 초래한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절하므로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해지고, 지혜는 10배나 더 뛰어나는 복을 받았다(1:8,15,20).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5:14).

이 말씀은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는 현대인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다.

(3) 사명이 있을 때

디모데 후서 4:17을 보면 주님은 바울 곁에 서서 자기를 강건케 하신다고 했다.

왜냐하면 자기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도록 하시는 주님의 섭리가 계시기 때문이다.

사명이 있는 동안 죽는 법이 없고 사명이 있는 동안 쓰러지는 법이 없다.

어떤 위기를 만나도 사명이 있는 사람은 살게 되는 것이다.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27:24-25).

3)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심

곧 영성의 성장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사랑받는 비결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믿는 믿음때문이다(2:49). 12세의 소년 예수님의 신앙 고백이다. 성전을 내 아버지 집이라고 하셨다. 자기의 위치는 내 아버지 집에 있는 것 곧 내 아버지의 일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말씀한 것이 26회나 언급되어 있다.

또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눅2:50-51과 같이 부모 순종에 있었다.

오늘날처럼 인간 윤리가 땅에 떨어진 때가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가정에서 본을 보이셨다.

 

3. 사단의 시험을 이기심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지혜와 키가 자라가시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져 가셨다.

그리고 또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이기신 것이다.

4:1-11에는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이 사단의 시험을 이기시는 감격적인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1)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이기심

사단은 육신을 지극히 사랑하도록 했다. 육신은 매우 귀한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은 하나님의 외적 신형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직접 흙으로 사람의 육신을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직접 동작에 의해 지음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은 귀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혼의 귀중성도 강조하셨다. 왜냐하면 영혼도 하나님의 창조의 일부분이며, 영혼도 인격적 신형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므로 인간이 생령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을 위해서는 돌로서라도 떡을 만들어 먹어야 하겠지만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예수님은 강조하셨다.

밥을 매일 3그릇, 주일 5그릇, 일주일 23그릇 먹으면 일년에 1189그릇의 밥을 먹게 된다.

이와 같이 성경을 하루 3, 주일5, 일주일 23장을 체례대로 계속 읽으면 일년에 1189장으로 된 신구약 성경을 일독하게 된다.

성도들이여 육신과 밥만 강조하는 마귀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고 성경도 사랑하자.

어떤 분은 B.B.S.S.를 강조했다. 성경 없이는 조반도 없다(No Bible No Breakfast)성경 읽지 않고는 자지 않는다(No Scripture No Sleep).

2) 뛰어 내리라는 시험을 이기심

마귀는 예수님을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다. 그러면 천사가 예수님의 발을 받들어 상하지 않도록 기적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

기적도 대단히 중요하다. 기적은 하나님의 특별 섭리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시고 뛰어내리지 않으셨다.

곧 자연법칙도 귀히 여기셨다.

자연법칙도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하나님의 보통 섭리의 내용이다.

우리는 치우쳐서는 안된다.

성경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육신의 건강을 소홀히 하거나 자연 법칙을 전혀 무시하고 그저 기적만 노리는 것도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다.

시편127편을 보면 성공적인 삶에는 신적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가 다 포함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세우는 자의 수고도 있어야 하나 집을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있어야 된다.

3) 절하라는 시험을 이기심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주겠노라고 했다. 이것은 거짓말이다.

마귀나 예수님께 줄 수 있는 영광이 어디 있는가? 헛된 허영심을 자극하여 범죄케 하려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를 섬기라고 하시면서 마귀 시험을 이기셨다.

절하라변절을 요구하는 마귀 시험을 이겨야 한다. 명예, 이성, 물질 문제로 변절해서는 안된다.

고난도 귀하고 영광도 귀하다.

영광 없는 고난, 고난 없는 영광, 둘 다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고난이 있는 영광, 영광이 있는 고난이 다 귀한 것이다.

이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은 이제는 세상의 참 빛과 큰 빛으로 나타나시게 되었다(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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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예수님은 얼마만큼 낮아지졌는가(1)

 

예수님의 신분에는 낮아지신 신분이 있고, 높아지시는 신분이 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에는 육신을 입고 땅에 내려오심과 율법을 지키심과 고난을 받으심과 죽으심과 장사지낸바 되심과 지옥에까지 내려가시는 듯한 수난을 당하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의 높아지심에는 그의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과 다시 영광스러운 몸으로 세상에 오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오늘은 예수께서 낮아지심의 첫 단계인 그의 성육신의 사실부터 생각해 보자.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다음 세 가지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뜻을 지닌다.

 

1. 구원 역사의 중심이 됨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으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딤전3:16).

구약역사는 이 사실을 바라다보며, 신약의 역사는 이 사실을 뒤돌아 보는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처녀 탄생은 역사의 전환점이요, 사랑의 최고점이요, 경배의 초점이라는 말이 있다.

 

2. 모든 교리에 밀접한 관계를 지님

만일 예수님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요, 그가 하나님으로서 죽지 않으셨다면 그의 죽음은 별효력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만일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의 전생애의 이야기는 하나의 신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요, 그가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예배하는 일은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생은 단순하 신화가 아닌 사실이며, 그에게 예배하지 않는 것은 성부에게 불순종하는 것이 된다.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5:23).

 

3. 성경에 명확한 증인들이 있음

1) 구약에는 성육신에 대한 예언들이 있다(7:14, 9:6, 23:6, 5:2).

2) 구약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계시며 자신을 알리신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성막과 성전 제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진리를 예표하고 있다(25:8,29:45).

3) 신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많이 말씀하고 있다(1:4, 고후 8:9, 2:6-8, 딤전3:16, 2:14).

4) 성육신의 진리는 성령의 증거하시는 진리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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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예수님은 얼마만큼 낮아지졌는가(2)

 

우리는 앞에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의 첫 단계로써 그가 처녀의 몸에서 잉태하시고, 탄생하신 것을 생각하였다.

오늘은 두번째로 그가 율법을 지키신 일에서 그의 낮아지심을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면서도 율법 아래 나시고 율법을 지키셨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4:4).

율법 아래 났다는 것은 주님이 율법을 지키신 것이니 곧 할례받으시며, 하나님께 드림이 되며,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 등이다(2:21,22,27).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신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보다 우리를 위해 대신 지키신 것이다. 그의 낮아지심의 세번째 단계는 그가 고난을 받으심이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신 것만이 아니라 고난을 받으신 일생을 사셨다.

그의 생의 고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일생토록 고난을 받으셨다.

그는 말구유 탄생에서부터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갈수록 더욱 큰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2) 전인적으로 고난을 받으셨다.

즉 육체적으로만 고난받으신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도 큰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고민하고 슬퍼하셨으며(26:38, 12:27), 심한 통곡과 눈물이 있었으며(5:7), 소리질러 부르짖기도 하셨다(27:46).

3) 특별한 수난이다.

즉 예수님은 순결하고 거룩하신 분으로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그 고난의 열도가 더한 것이다.

4) 시험도 받으셨다.

에수님은 여러 번 시험을 받기도 하셨다. 마태복음 4:1-11에 보면 사단의 공격을 받았으나 승리하셨다.

5) 우연히가 아니라 반드시 받을 수난이다.

예수님의 수난은 우연히 또는 우발적이거나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받으실 고난이다. ‘must’란 말을 주님 자신이 사용하셨다(9:22, 17:2,5, 24:7,26).

주님의 고난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바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2:23).

6)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처럼 대우받고 죽으신 것이다.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게 탈치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53:12).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5:21).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27:46).

이 모든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우리 인류들이 받아야 할 죄에 대한 수치와 저주와 고통을 대신 받으신 것으로 말하고 있다.

 

 

 

 

 

 

 

 

 

 

 

 

 

 

 

 

 

 

가정에서의 조직신학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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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예수님은 얼마만큼 낮아지졌는가(3)

 

예수님은 우리를 높이시기 위해 자기는 낮아지셨다. 어떻게 낮아지셨는가?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죄는 없지만 우리와 같은 육체를 입으시고 세상에 오셨다.

2. 율법의 주가 되시는 분이 우리가 못 지키는 율법을 지키시기 위해 율법에 복종하여 사셨다.

3.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인데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일평생 고난을 받으시되 특별히 십자가에 죽으시는 고난을 받으셨다. 십자가의 고난은 수치와 저주를 동시에 받는 죽음이었다.

4. 예수님은 장사지낸 바 되사 무덤에 묻히셨다.

이것은 이사야 53장에도 예언되었던 사실이다.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53:12).

예수님은 죽으시되 자기 무덤이 없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눕게 되셨다. 마태복음 27:57-61에 보면 아리마대 요셉은 누구인가?

 

1. 부자였다

잘못된 부자는 자기의 부를 가지고 교만을 부리거나 그 돈을 죄짓는데 사용할 수 있으나, 진정한 부자는 자기의 부를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바로 쓰며, 주님을 위해서도 바로 쓸 줄을 안다.

사람이 하나님께 속하면 그 재물도 하나님께 속하게 된다는 말이다.

 

2. 그도 예수님의 제자라고 했다

제자는 스승을 배우는 사람이다. 그는 예수님을 배운 사람이지만 그러나 숨어서 예수님을 배운 사람인 것 같다. 자기를 나타내지 않은 것 같다. 그렇지만 십자가 사건을 목격한 후에는 가지의 태도를 바꾸어 용기있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빌라도에게 나타나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다.

십자가의 사건은 그것을 바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각오를 가지게 했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는 참된 용기가 필요하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4:31).

담대히라는 말이 사도행전에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4:13, 9:27,29, 13:46, 14:3, 18:26, 19:8, 28:31).

 

3. 자기 무덤에 예수님을 안장했다

60절에 보면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문에 놓고 갔다고 하였으니 요셉의 새 무덤 속에 예수님은 누워계셨다.

예수님은 자기의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자기 목숨 하나만을 가지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큰 일을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보다 귀한 것은 구원이라고 칼빈은 말했다.

 

 

 

 

 

 

 

 

 

 

 

 

 

 

 

 

 

 

 

 

 

 

 

 

가정에서의 조직신학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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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1. 낮아지심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낮아지신 것을 생각했다. 오늘은 그 마지막으로 예수께서 죽으신 후 낮아지심에 대하여 생각하고자 한다.

웨스트민스터 대 요리 문답 50에는 이런 질문이 있고 또 대답이 있다.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후 그의 낮아지심은 장사됨과 죽은 후의 상태를 계속하시고 제 삼일까지 사망의 권세 아래 계시는 것으로 구성되었으니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그가 지옥으로 내려가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것이 무슨 뜻인가? 예수님께서 죽음의 상태의 가장 깊은 비하에 들어가 그 권세 아래 거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예수님의 높아지심

예수님의 높아지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1) 그리스도의 부활

2) 그리스도의 승천

3) 하나님의 우편에 계심

4) 그리스도의 재림

예수님의 높아지심의 첫 단계는 사망 권세를 이기신 그의 부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3. 부활의 신학

예수님의 부활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1) 증명적 가치를 지님

즉 그가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한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1:4).

2) 전도적 가치를 지님

초대교회 설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두었다(4:25).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1-4).

3) 영적 가치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의 성화의 기준이요,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6:4).

4) 종말론적 가치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들의 장래 부활의 보증이요, 또 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고전15:20-21).

부활한 우리의 몸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을 닮게 된 것이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3:21).

그러므로 신령한 몸이 된다.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고전15:44).

 

가정에서의 조직신학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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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예수님의 높아지심에 대하여(1)

 

예수님의 높아지심은 그의 부활하심에서 시작된다. 지난번 우리는 부활의 신학에 대하여 공부하였다. 오늘은 계속해서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코자 한다.

다음 증명은 [국제 표준성경 백과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

 

1. 예수님의 생애(The life of Jesus)

훌륭하게 시작한 생애가 나쁘게 끝난다는 것은 실망을 주는 것이다.

일반 소설에도 끝이 잘 되기를 요구한다. 하물며 예수님의 생애이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2:19-21).

 

2. 빈 무덤(The empty tomb)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20:6-7).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간 뒤 베드로가 7주간 후에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에 대해서 그렇게 힘있게 설교할 수 있으며, 관헌들이 그 사실을 폭로했다면 베드로는 영원히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지 않는가?

 

3. 제자들의 변화(Transformation of the diciples)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제자들은 소망을 잃고 실망으로 가득찼으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다음에 저들의 태도는 달라진 것이다.

 

4. 초대 교회의 존재(Existence of the primitive church)

초대 교회는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1) 초대 교회는 설교를 통해 사람들이 모였다.

(2) 그 설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초대 교회는 예수님을 경배했다(2:41). 제사장의 무리들도 그에게 복종하였다(6:7). 이같은 사실의 유일한 설명은 부활은 하나님이 일으키신 사건이라는 것이다.

 

5. 사도 바울의 증거(The witness of st.Paul)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부활의 사실을 강력하게 증거하였다. 그 사건은 성경 예언의 성취요(고전15:3-4), 자연의 사건에도 유추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15:36,38).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표본이요, 보증이 되는 것이다.

 

6. 복음서에 기록됨(The Gospel record)

복음서가 기록되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있었다. 이제 그 믿은 바 사실을 복음서 제자들은 기록하였다.

한국 교회는 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생명력있게 전진해야 한다.

그를 높이고, 그를 증거하고, 그를 더욱 사랑해야 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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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예수님의 높아지심에 대하여(1)

 

7. 예수님의 부활은 주일이 있게 하였다

 

1) 예수께서 부활하신 저녁에 제자들은 예배드리기 위해 모였다.

이날 곧 안식 후 첫 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0:19-27).

 

2) 주의 제자들 곧 120명은 안식일 이튿날인 오순절(23:15,16, 16:9) 곧 주간의 첫날에 다같이 한 곳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면서 성령이 크게 강림하시는 은혜를 받았다.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1-4).

 

3) 드로아 교회는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러 모였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20:7).

 

4)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받았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16:1-2).

 

5)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계시를 받았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1:10).

 

6) 소요리 문답은 이같이 말한다(59문답).

세상 시작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하시기까지는 하나님이 7일중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명하셨고, 그 후로부터 세상 끝날에 이르기까지는 7일 중에 첫날로 명하셨으니 그리스도인의 안식일이다.”

 

7) 예수님을 섬기던 여인들은 안식 후 첫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 이 생명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시작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16:1-2).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16:9-10).

주일은 승리와 축복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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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예수님의 높아지심에 대하여(2)

 

예수님의 높아지심에 대하여 몇 가지를 계속 생각하고자 한다.

 

1. 그의 부활하심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 신학의 네 가지 내용과 부활의 7가지 사실에 대하여 공부했다.

 

2. 그의 승천하심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9-11).

지금 20세기에 사는 우리들은 안방에 앉아서 텔레비젼을 통해 달나라에 사람들이 가는 모습을 보고 있다. 저들이 대기권 밖에서 선유하는 것도 보고 있다. 저들이 달 나라에서 암석을 채취해서 오는 것을 보고 있다.

과학의 힘이 이렇게 크다고 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능력이야말로 얼마나 더 위대하겠는가? 왜 이렇게 예수님은 높아지게 되는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8-11).

곧 예수님의 높아지심은 그의 겸비의 보상이요, 그의 순종의 보상이요, 그의 속죄의 완성으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면 높임을 받을 때가 오는 것이다(벧전5:5-6).

 

3.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4-25).

예수님은 하나님의 우편 곧 권능의 자리에 계신다. 거기서 무엇을 하시는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대제사장의 일을 하신다.

그가 죽으시고, 살아나시고,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시므로 우리를 정죄할 자가 결코 없다(8:34).

그가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하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사실이요, 용기를 가지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신 다음 아버지깨로부터 성령을 받아 보내주심으로 세계 복음화의 놀라운 일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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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예수님의 높아지심에 대하여(2)

 

4. 다시 오심이다

 

1)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견해

이미 오셨다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성령으로 오셨다든지 우리의 생활에 임재하신다는 말은 다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은 반드시 우리 눈으로 보이는 몸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다.

 

2) 예수님은 왜 오시는가

예수님은 심판주로 오신다. 예수께서 오실 때에 세 가지 형태가 있음을 본다.

(1) 신랑으로 오실 예수님(25:1-13)

성도는 신부로서 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기름 준비된 신부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며, 기름 준비 안된 처녀는 슬피 울게 될 것이다.

회개하고 예수 믿음으로 성령 충만해야 한다. 에베소서 5:18의 말씀대로 술취하여 방탕하지 말고 오직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2) 주인으로 오심(25:14-30)

예수님은 주인으로 오시고 우리는 그 앞에 종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 있는가 하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있다.

나는 어떠한 종으로 주인되신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인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재능, 재물을 낭비하지 말고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사용해야 할 것이다.

게으른 종은 무익한 종이며, 있는 것도 빼앗기고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이다.

(3) 왕으로 오심(25:31-46)

우리는 그 앞에 백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백성도 두 종류로 나누어 지게 된다.

이웃을 참으로 사랑하나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는 사람들

이웃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주린 자에게 참 양식이며, 목마른 자에게 그의 피는 음료가 되며, 나그네 된 자에게 친구가 되어 주시며, 벗은 자에게 의의 옷이 되어 주시며, 병든 자에게 의원이 되어 주시며, 옥에 갇힌 자에게 참 자유를 주시는 분이시다.

이웃을 사랑하나 물질로만 사랑하고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

45절에 보면 이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3) 예수님은 언제 오시는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가 오신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정확한 일자는 모르나 그 징조들은 반드시 있다.

계절의 변화에는 여러 가지 징조가 따르듯이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도 여러 가지 징조가 있다. 그 시일을 알리지 아니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깨어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가복음 13:33-37까지는 깨어 있으라하는 말이 네 번이나 나오는 것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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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예수님은 어떤 중보자신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된 세계에 가교를 놓기 위해서는 중보자가 필요하다.

이 중보의 사역은 말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속죄의 행위를 하는 분이어야 중보의 일을 통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일은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다.

왜 그럴까?

 

1. 예수님은 참 사람이시기 때문에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죄인 대신에 율법에 순종, 의를 행하는 일, 고난받고 죽는 일, 인간의 연약에 동참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천사가 되어서는 안되고 범죄한 인간과 같은 실존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한 자가 되셨다(2:14).

 

2. 예수님은 죄 없는 사람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죄인과 꼭같은 죄가 있다고 하면 중보자의 사역을 결단코 감당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음 세 가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 그는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결단코 나갈 수 없으며,

2) 죄를 속하는 흠 없는 제물이 될 수 없으며,

3) 자기 백성에게 성결과 영생의 원천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람인 동시에 죄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중보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4:15).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7:26).

 

3.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중보자의 일은 신성을 제외한 인성만의 일도 아니요, 인성을 제외한 신성만의 일도 아니다.

신성과 인성이 함께 하신 그리스도의 일이다.

1) 만일 예수님이 인성으로만 중보사역을 하신다면 복음의 모든 영광, 능력, 충족성은 다 떠나가고 만다.

2) 예수님이 그의 신성으로 중보 사역을 감당치 않으신다면 한번의 제사로 어찌 영원한 효과를 내는 속죄 사역을 이룰 수 있을까?

3) 그가 신성으로 일하지 않으시면 어찌 사단의 권세를 파멸하시고 그의 포로된 죄인들을 구출할 수 있으며,

4) 또한 그 백성에게 영적으로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될 수 있으랴.

5) 전지전능하셔야만 구속의 계획을 완성하시며 만민 위에 심판주와 교회의 머리로서 활동할 수가 있다.

6) 그러므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중보자는 죄 없는 분만이 아니라 하늘보다 놓이 되신 자였다(7:26).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신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2:5-6).

그러므로 카톨릭에서 예수님 외에 제사와 성도, 천사, 성모 마리아를 중보자로 삼는 것은 예수님의 중보 사역의 완전성을 깍아내리는 행위에 불과하다.

예수님 외에는 진정한 중보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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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예수님의 세 가지 직분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직분이 있다.

 

1. 선지자의 직분

선지자의 직분은 하나님의 뜻을 사람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1-2을 보면 하나님은 구약시대에 선지자들을 세우시고 진리의 그림자와 부분을 선포하셨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진리의 실체와 전부를 선포하셨다. 예수님이 선지자직을 수행하시는 네 가지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성육신 전의 활동

구약시대에도 예수님은 잠언8:1에 나오는 인격적인 지혜로 활동하셔서 양심, 과학, 철학, 예술, 문명의 자연적 활동에도 참여하시며 조명하셨다(1:9).

2) 성육신의 활동

예수님은 성육신 후에 교훈과 기적으로 그의 선지자 직무를 수행하셨다.

그의 활동 중에는 특별히 자기 자신의 인격과 사역을 사람들이 바로 알기 원하셨으며 하나님 나라의 기원, 성질, 발전, 최종 성취들을 말씀하셨다.

3) 승천 후의 활동

승천 후에 예수님은 땅위에 세워두신 그의 종들의 전도와 성령의 계몽적 강화를 통하여 선지자의 직무를 수행하신다.

4) 천국에서의 계시

무한하신 성부의 역사를 천상에서도 최종 계시를 주심으로 선지자 사역을 계속하신다. 그러므로 천국 가서도 믿음, 소망, 사랑은 필요하다.

 

2. 제사장의 직분

예수님은 두 가지 방면에서 제사장의 사명을 수행하신다.

1) 제사 제물이 되심으로

구약의 제물은 죄있는 사람의 죄를 속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려질 때 제주의 안수를 받았다. 안수는 직권(34:9), 능력(9:18), 죄의 이전을 의미하는 것인데(16:4-22) 예수님은 우리의 죄와 죄책을 감당하신 분이다.

또 그 피를 흘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우고 또는 사함을 받게 하신 것이다.

2) 대신 기도 드림으로

예수님은 영속적으로 권위를 가지시고 유효한 기도를 지금도 하나님께 드리고 계신다(7:24-25). 그 기도의 내용은 무엇일까? 칭의의 과실이 그들에게 계속 적용될 것과(4:14-16) 하나님을 위한 그들의 봉사가 열납되도록(벧전2:5). 마침내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도록(벧전1:3-4) 기도하실 것이다. 아멘.

 

3. 왕의 직분

왕으로 탄생하신 예수님은 세 가지 영역에서 그의 왕권을 수행하실 것이다.

1) 영적 왕국

곧 구원받은 신자들의 마음과 생활에 그의 왕권이 미칠 것이며 그것은 말씀과 성령으로 수행하신다.

이것은 교회의 모임, 정치, 보호, 완성에서도 나타나게 된다(1:33).

2) 우주 위의 왕권

예수님은 우주의 왕으로서 일하시는데 개인들, 사회 단체들, 민족들의 모든 사건들을 섭리하시되 자기의 보혈로 구속하신 백성의 성장, 정화, 최종 완전을 도와줄 것이다(고전15:24-28).

3) 영광의 왕국

그의 영적 왕국과 우주적 왕국의 완성으로서 영원히 계속할 영광의 왕국에서 왕노릇하실 것이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21: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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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십자가 사건의 기록의 특징은 무엇인가?

 

영국 해군의 루프(밧줄)는 한가운데 붉은 줄이 있다고 한다.

어디를 절단해도 붉은 줄이 보인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성경은 창세기에서 부터계시록까지 예수님의 피가 흐르고 있다.

성경 어디를 펴더라도 예수님의 피가 있다. 구스 내시에게 이사야 53장을 해석할 때 빌립은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증거했다(8:35).

이것이 개혁주의 성경해석의 원리다. 우리는 성경 어디든지 예수와 복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성경의 중요 진리인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기록의 특징은 무엇인가?

 

1. 미리 예언된 사건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26:54)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예언한 구절은 어디일까?

물론 최초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창세기 3:15-16에도 예언되어 있지만 주전 800년 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이사야 53:5-7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의 죽으심은

1) 우리의 허물과 죄때문이다(5).

2)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6).

3) 예수님 자신이 자원적 희생 제물이 되셔서 말없이 죽음의 길을 걷게 되셨다(7).

그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바른 지식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게 된 것을 동시에 예언하고 있다(11).

 

2. 자세한 사실 보도

4복음은 예수님의 33년의 생애를 보도하는 책이다. 그런데 누가복음만 제외하고는 예수님의 30년간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저자들이 거의 침묵을 지킨다.

그리고 3년간의 공생애에 대해서 약간 언급한 후 십자가에 죽으시는 한 주간의 고난 주간의 예수님의 언행에 대해서는 너무나 방대한 분량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예를 들면,

1) 마태복음에서는 28장 중 4분의 1이 되는 7장을,

2) 마가복음에서는 16장 중 3분의 1이 되는 5장을,

3) 누가복음에서는 24장 중 5분의 1이 되는 5장을,

4) 요한복음에서는 21장 중 거의 2분의 1이 되는 9장을,

5) 4 복음이 모두 89장인데 그 중에 4분의 1이 되는 26장이 한 주간의 고난의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왜 그렇게 했을까?

칼빈은 말하기를 십자가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고, 바빙크는 십자가 외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고 했다.

 

3. 바울의 설명 계시

바울 서신이나 공동 서신은 예수님의 언행에 대한 사실 보도 보다 설명 계시가 더 많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했는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20).

즉 십자가의 예수님은

1) 우리 믿음의 핵심이요,

2) 사랑의 영감이요,

3) 소망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 십자가의 사건을 눈 앞에 밝히 보도록 역사적인 사건으로 분명하게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가르침으로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길로 되돌아감을 방지하려 했다(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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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예수님은 왜 죽으셨나?

 

이 한 가지 질문에 대해 잘못된 여러 가지 대답을 들을 수 있다.

 

1. 도덕적으로 감화를 주기 위해 죽으셨다는 견해

이 주장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며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형벌로 고난받으신 사실을 강조하기 보다는 단순히 예수님의 죽으심은 놀라운 자기 희생의 사랑을 나타낸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죄 없는 예수님이 자기를 희생하신 그 사실을 보고 죄인들은 감동을 받아 죄를 회개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참된 회개와 성화의 생활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를 이해할 때만 생기는 사실을 모르는데서 일어난 잘못된 주장이다.

 

2. 모범을 보이신 죽음이라는 견해

예수님의 죽음은 죄를 위한 대속의 죽음이 아니라 자기가 주장하는 진리가 진실함을 입증하기 위하여 죽었다는 주장이다. 즉 순교설이다.

이 주장은 비성경적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있는 인생을 대신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기 보다 자기 주장을 피로 인치기까지 나타낸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죽음을 보지 못한 구약의 성도들이나 어린이들의 구원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 주장은 예수님의 죽음보다 삶에 더 치중하므로 4복음에 강조된 수난과 죽음의 의미를 약화시킨다. 또 자기의 죄를 위해 예수님은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자 외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모방함으로 구원얻는 자는 결코 있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자기 제자들의 탈출의 권유를 뿌리치고 악법이라도 국법을 지킨다는 고결한 정신을 보인다고 해도 죄를 회개하고 구원얻는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우리의 모범자가 되시기 전에 구주가 되신 것이다(5:31).

 

3. 변사설 설명

예수님의 죽음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관념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기 때문에 죽음에 굴복한 것이고 그가 갈릴리의 춘풍속에 대망을 품어 활동했으나 자기 제자의 배신에 의해 죽은 것 뿐이라고 본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의 죽음이 우발적으로 된 사고가 아니라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인 것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9:32)

 

4.사단 배상설

이 이론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배상물로 사단에게 헌납한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사단은 그리스도의 헌납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속죄의 대속물은 사단에게 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상된 공의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님께 드려짐이 마땅치 않는가?

사단은 죄인에 대한 법적 청구권을 가지지 못하였으니 죄인의 해방을 위하여 보상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 외에도 요점 재현설, 신비설, 점진적으로 죄가 근절된다는 이론, 만족설, 정치설, 대신 통화설 등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즉음은 우리 죄를 대신하셨다는 대속론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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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예수님은 꼭 죽으셔야만 했는가?

 

예수님은 꼭 죽으셔야만 했는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잘못된 대답들이 있다.

 

1. 하나님의 성품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견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자기 백성의 죄를 용서하심에 있어서 대속의 죽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견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랑도 있지만 또한 거룩과 공의의 성품이 있으시기 때문에 조에 대한 죄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속의 죽음이 필요했다. 다시 말하면 죄있는 자를 대신하여 죄 없는 자를 벌하심은 그의 공의의 손상일 것이요, 그가 자기의 진노를 풀기 위해서 사람의 피 흘림을 요구하심은 가혹한 것이며, 무자비한 행동이어서 그의 사랑에 손상을 끼치는 것이요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기전에 보상을 요구하심은 그의 용서의 은혜에 손상일 것으로 본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원하여 죄인 대신 죽으셨으니 하나님의 공의롭지 못함이 나타나지 않는다. 또 하나님은 자신이 선물을 준비하셨고,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주심으로 그의 무한한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증명하셨다.

 

2. 성경에 그런 진리가 없다는 견해

특히 4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죄인을 대신하시는 죽음이라는 진리를 말하는 대속론이 없다고 말한다.

만일 성경에 그런 진리가 없었다고 하면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는 다 파괴될 것이다. 4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죽음이 죄인들을 대신한다는 구절들이 있다

1) 하나님의 어린양

이튼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

2)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3) 대속물이 되심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20:28).

4) 선한 목자의 개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

5) 좋은 친구의 조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3).

6) 성찬식에서의 말씀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

 

3. 실천상 해로우며 행위보다 믿음만을 강조케 하는 잘못을 범하게 한다고 보는 견해

예수님의 대속의 진리를 믿는 것은 도덕상의 자기 향상의 노력을 약화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조악상을 더 철저히 깨달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더욱 성화의 삶을 사모하게 만드는 교리이다. 또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교리는 성도의 행위에 대한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듯 하나 성경은 도리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7). 아브라함의 믿음도 라합의 믿음도 다 행함이 있는 믿음들이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심에는 선한 행위를 기대하심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도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이 외에는 대속론은 무리요, 법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고, 능동적 순종은 예수 자신만을 위해 필요하다는 견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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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 죽으셨나?

 

사람이 죽음의 고통을 받는데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

 

1.자기의 죄 때문에 고통받음

성경은 자기의 죄 때문에 고통받지 말라고 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벧전4:15). 성경에는 자기 죄 때문에 자신이 고난받는 사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도 그런 고난을 체험하였다. 51편은 그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2.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음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벧전3:1) 성경에는 선을 행하였기 때문에 고난받는 많은 성도들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세상은 천국이 아니기 때문에 선을 행한다고 바로상급을 받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상급이 있을 것이므로 낙심치 말라고 격려한다.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2:20)

 

3. 우리 위한 예수님의 고난이 있음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자신의 죄 때문이거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 받으신 것이다.

우리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성질은 대리적 속죄라고 한다.

이것을 세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 제사장의 직분이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임.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5:1)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므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셨다.

그는 온 백성을 대표하며(28:9-29), 그가 죄를 지으면 온 백성이 죄를 짓는 것으로 간주되었다(4:3). 그는 속죄제로 산 양에게 안수하고 온 백성의 죄를 고백하셨다(16:15-21).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며, 자신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필요는 없고 오직 윌 죄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셨다.

2) 제사 제물이 대리적 성격을 지님.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자기를 대신하여 죽게 될 제물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하였다. 만일 그 사람이 죄가 없다면 제물에 손을 얹고 안수 할 픽요가 없다.(1:4).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악성을 이전받는 것이 아니라 조에 대한 죄책을 이전 받는 것을 의미한다.

3) 예수님 자신의 고백

마태복음 20:28, 마가복음 10:45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신다고 하였다.

또한 신약 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우리를 인하여’ ‘위하여’ ‘대신하여 라고 고백한 곳이 많다.

1)인하여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3)

2)위하여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3)대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윌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 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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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예수님의 세 가지 직분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왔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에는 육신을 입으신 것과 율법을 지키시며 고난을 받으시며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셨다가 지옥의 고통을 맛보신 일이 있다.

예수님의 높아지심에는 그의 부활, 승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과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금부터는 예수님의 세 가지 직분을 공부하고자 한다.

1. 선지자로서의 예수님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14:24). 예수님의 지상 생활의 중요 부분은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 선포하시는 선지자의 일이셨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말씀 중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셨다. 특히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셨다. 특히 마태복음 13자의 비유에서 하나님 나라의 성질 그것에인도하는 길, 그곳에 포함된 혜택들, 그것의 점진적인 발저, 그것의 최종 성취를 말씀하셨다.

2.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

예수님을 제사장으로 말씀하신 곳은 히브리서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4:14).

예수님이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실 때 두가지 방면에서 하신다.

1)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윌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예수님의 피는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가?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얻으리라”(6:7, 4:20-31).

2)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위해 기도하심.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5).

예수님의 기도는 영속적인 것이며, 권위를 지닌 것이며, 유효성을 지니고 있다.

 

3. 왕으로서의 예수님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의 백성들이다.

1)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앋릉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1:13-14).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4:43).

3)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11).

4)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4:17).

이 나라는 구원받은 자 곧 온 교회를 포함하며,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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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예수님의 속죄의 성질에 대하여

 

4복음이 전부 89장인데 그 중 4분의 1 이상이 되는 26장이 예수님의 수난에 대하여 보고하고 있음을 볼 때 그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사실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1. 왜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셔야 하는가?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이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워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53:10).

왜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고난받기를 워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으 공의와 사랑 때문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고 그의 공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위롭다 하려 하심이니라”(3-25-26).

 

2. 예수님의 속죄의 성질은 어떠한가

예수님이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것은,

1)우리 대신 죽으심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2)구원의 능력을 지님이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 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2:14).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벧전 1:18).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12:31).

3)완전한 구속이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9:12).

 

3. 예수님은 누구를 위해 죽으셨는가

예수님의 속죄의 공효는 모든 인류에게 미칠 수 있으니 실제 적용받는 대상은 예정받은 백성들에게 제한되는 것이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10:26-27).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1:21).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8:33).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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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반복되어야 하는가?

 

예수님이 두 번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가? 그의 속죄 사역은 최종적인 것이 아닐까? 그의 속죄 사역에 보족함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여러 가지 대답이 있다.

 

1. 로마 가톨릭의 태도

세례받은 신자는 세례 이전의 원죄와 본죄의 죄책은 제거함을 받는다.

그러나 세계받은 이 후의 범죄는 고해,고행,혹은 내세의 연옥의 고초를 받아 해결된다고 본다.

 

2. 알미니안파의 주장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그 자체로 완전하나 그것이 내게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그 진리를 선택하느냐 안하느냐의 자유의지에 달린 것으로 본다.

 

3. 성경의 주장

1)예수님의 죽으심은 성도들의 정죄를 제거하지만 고난은 죄책을 없애기보다는 훈련으로 본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으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8)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12:5-11).

2)예수님의 보혈은 모든 죄로부터 정결케 하여 단한 번의 제사로 우리는 그 안에서 완전의 길을 걷게 된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2:10)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10:12-14)

그러므로 속죄를 나타내는 영어 Atanerentat one moment로 해석해서 단 한번의 속죄로 영원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7)

스펄존은 말하기를 예수님의 피 한 방울은 하늘에 있는 모든 천사들의 죄를 용서하고도 남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3)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 편에서는 믿음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 믿음도 자기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믿어서 구원얻는 그 믿음도 받아서 믿는 것임으로 구원 얻음에 있어서 인간편에서 아무런 공로가 있을 수 없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7-10).

4)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완전한 칭의와 영생에 나아갈 권리의 근거인 의를 조성하심에 온전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칭의의 사역에 있어서 인간적인 어떤 만족의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신 구속주의 영광을 가리우는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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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왜 예수님은 속죄 제물이 되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15:34)라고 절규하셨다.

예수님이 그와 같이 절규하는 고통을 받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들이 하나님께 그런 고통받는 자리에 있어야 될 것이다. 또 이 기도는 속죄의 깊이를 말해주는 것이라고도 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맛보아야만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가?

 

1.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 때문에

죄 있는 자를 벌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시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면며 진노를 발하신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18).

즉 경건치 않음은 1계명에서 4계명까지의 범죄요 불의는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를 의미한다. 불의의 뿌리는 경건치 않음에서 비롯된다. 하나님의 진노는 저들을 버리시는 일에도 나타난다.(1:24,26,28)

그러므로 죄인을 대신하여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세우신 것은 하나님 자신의 의로움도 나타내시며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였다. (4:25-26).

 

2.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KAL기 폭파의 주범인 김현의가 TV 방송국에서 아나운서와 대담하는 내용은 이러했다.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 믿습니다.”

성경을 좋아 하십니까? 특별히 어느 책을 좋아 하십니까?”

잠언을 좋아합니다.”

성경 한 구절을 외울 수 있습니까?”

.”

그는 성경 한 구절을 암송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위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5:9)

그렇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이요,최후의 표현이요,최선의 표현인 것이다.

그이상 더 죙인을 사랑하신다는 증표를 보일 길이 없는 것이다.

경건치 않고 (5:9), 죄인이며(5:9),연약하고(5:9),원수된(5:10).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사도는 외쳤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10)

 

3. 다른 길이 없음

요한 복음 3:16에 보면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으니 이 예수님이 아니면 멸망받는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베드로는 다른 이름으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4:12) 또 예수님 자신도 자기 자신을 길이요,진리요,생명이라고 하셨으니 곧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생명인 것이다. 하나님게서 그렇게 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길되신 예수님 없이는 진정한 전진이 없고, 진리이신 예수님 외에는 앎이 없고, 생명이신 예수님 외에는 참된 삶이 없다.

 

4. 고난으로 구원의 주를 온전케 하심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고난을 통해 구원을 성취하며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이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정하신 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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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해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속죄의 죽으심은 죄에 대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으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 되었느니라”(3:2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은 무엇인가?

박윤선 목사는 고통,,죽음에서의 구속이 있다고 했다.

예수안에서만 죄에서의 구속이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구속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1:7).

그의 피로 말미암아 얻는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보다 피로써 그 백성을 구속하시는 일이 더욱 귀하다.

죄에서의 구속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핑크는 몇 가지로 말하였다.

 

1. 죄의 세력에서부터의 구속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죄는 이론이 아니고 지식이 아니며 하나의 힘이다. 이 힘을 파괴하는 것이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시다.

성령님은 죄에서 구속받은 성도들로 하여금 성화의 길을 걷게 하신다.

 

2. 죄의 습관에서의 구속

 

연약해서 짓는죄, 알지 못해서 짓는 죄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죄를 짓는 자리에서의 구속이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6:15).

그럴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게 만든다. 용서받을 것을 전제하고 범죄하는 죄는 짐짓 죄를 짓는 것이므로 용서받을 길이 없다(6:1-6). 아버지의 용서를 받은 집 떠난 탕자가 또다시 아버지가 용서할줄 알고 두번째 집을 떠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느니라

 

3. 죄의 정죄에서의 구속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로마서 8장에는 신자에게 없는 것은 정죄함이 없고,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없는 삶은 누리게 된다(8:35-39).

정죄함이 없는 것뿐이지 시험,고통,눈물이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죄가 없어 정죄함이 없는 것이 아니다. 율법,양심,사단은 우리의 죄를 고발하여 하나님의 정죄를 받도록 힘쓰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8:33). 그리스도께서 우리 위해 죽으시고 살아나시고 지금도 대언 기도해주시는 공로 때문에 정죄를 받지 않는다(8:34). 성령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연결시키니 그 무엇이 이 사랑의 줄을 끊으리요?

 

4. 죄인의 신분에서의 구속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이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6:17-18).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진노으 자식에서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의 변화가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죄에서의 구속인가?

그리고 구속받은 성도의 집단인 천국에는 죄의 지배가 완전히 사라진 곳이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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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예수님의 죽으심이 율법에 대하여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마가복음 10:45에 보면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어떤 유익을 죄인들에게 끼치셨는가?

첫번째로 율법과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곧 율법에서의 구속이다.

이 말은 율법 자체에서의 구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도덕적 율법은 하나님의 도덕적 의지의 표현으로써 그 자체가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기 때문이다(7:12).

특별히 1-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 5-10계명은 이웃 사랑의 계명이니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른다. 율법 자체는 인간의 범죄를 예방하는 높은 계단의 난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율법에서의 구속이란 무슨 뜻인가?

 

1. 율법의 저주에서의 구속이다.

율법의 요구를 끝까지 또 온전히 지키지 못하면 저주 아래 있게 된다(3:13).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지키지 못한다. 한 부자 청년의 고백대로 어려서부터 계명을 지켰다 할지라도 그것은 외면적이요, 중심에서는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이웃 사랑의 표로써 자기 소유를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했다(19:16-22).

그러므로 예수님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니라”(4:13).

 

2. 의식적 율법에서의 구속.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제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3:23-24).

도덕적 율법, 의식적 율법, 법정적 율법 중 의식적 율법은 구약시대에서 오실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예표하는 것이었으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림자가 실제화되었으므로 의식적 율법의 사명은 끝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 시대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이나 구별없이 직접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얻는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3-5).

 

3. 행위의 율법에서의 구속.

사람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

1) 유대인의 고집

로마서 10:1-4을 보면 유대인은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 행위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한다. 행위의 율법을 고집하고 있다.

2) 예수님의 행위

로마서 5:19을 보면 우리가 지키지 못하는 율법을 예수께서 대신 지키셨다. 곧 그는 율법의 마침이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3)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성도는 전 인격의 변화를 받아 구원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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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예수님의 죽으심이 사단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예수님의 죽으심은 사단의 세계에도 영향을 끼친다. 곧 사단에 대한 승리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사단을 이기는 길은 무엇인가?

 

1. 사단의 존재를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간첩은 자기가 절대로 간첩이라 하지 않는다.

자기의 실체를 감추면서 무서운 공격을 한다. 사단도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할 때 자기의 정체를 노출 시키는 법이 없다.

사단의 존재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첫째 공작 목표다.

그러므로 사단을 이기는 길은 사단의 존재와 활동이 있음을 알야한다. 사단이 없는 때가 있는가? 그 놈은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존재한다.

사단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도 있는가?

에덴 동산에도 있었고 사람이 없는 광야에도 예수님께 접근하여 그를 시험하였다. 사단의 시험에서 면제된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도 사단의 시험을 받았고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 놓겠다는 베드로에게도 사단이 역사하였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

 

2. 사단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믿어야 됨

예수님이 하신 일 중에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일들이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사단을 이기려면 이 믿음을 가져야 한다.

1)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쪼겨 나리라”(12:31).

2) 십자가로 승리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2:15).

3) 사망의 공포에서의 승리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2:14-15).

4) 예수님이 오신 목적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3. 사단과 더불어 싸워야 됨

이미 예수님은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마귀의 머리를 깨뜨렸으나 그러나 그는 아직도 세력을 내어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사단의 존재를 알고 예수님의 승리를 믿는 성도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여 저를 대적해야 한다(6:1-17).

사단을 이기려면 사단의 전술 전략을 미리 알아야 하는데 그 방법은 무엇인가?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심으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119:98).

원수도 지혜로우나 성경을 사랑하면 원수보다 지혜로움을 얻게된다.

사랑은 거짓의 아비요(8:44), 사단은 성도의 교제를 방해하며(살전 2:18). 사단은 제자들을 유혹하며(32:31-32), 사단은 가라지를 심는 일을 한다(13:27-28). 그는 참소하는 자다(12:10). 이 사단을 이긴 비결이 무엇인가?

1) 어린 양의 피(12:11). 2) 증거하는 말(12:11).

3)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결과이다(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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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께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자기 희생의 사역이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으나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제사장이시면서도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리신 것이다.

그 속죄 사역은 하나님 편에, 하나님께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하였을까?

 

1.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심

 

죄는 하나님께 불쾌감을 일으킨 일이지만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죄가 일으킨 하나님의 불쾌를 멈추는 일이다.

예수님이 죄의 형벌을 대신 받아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심으로 우리는 어떤 유익을 얻게 되는가.

곧 정죄와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받게 하신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함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1-2).

여기서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 우리의 이상은 죄를 범치 않고 사는 것이다.

2) 우리의 현실은 죄를 짓게 될 때가 있다.

3) 우리의 이 범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우리를 위해 속죄제물이 되신 예수님이시라는 진리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계시는 동안 우리는 절망할 수가 없다.

 

2. 하나님과의 화목을 초래함

 

우리는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고 또 하나님은 우리를 멀리하셨다.

예수님의 대속으 죽음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사이를 가깝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하시며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속의 열매를 누리게 하신다. 인간끼리의 화목의 행위도 예배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마태복음 5:23-24에 보면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주님의 교훈이 있다.

여기서 화목의 의미는 조화, 이해, 평화의 곤계들을 회복함을 의미한다.

성경이 말하는 화목의 진리는 고린도 후서 5:18-21에 잘 요약되어 있다.

1) 화목케 하는 행위에는 인간으 개입이 없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5:19).

2) 화목은 계속적인 일이 아니라 과거에 성취하신 것이다(5:18,19,21).

3) 이 화목은 인간의 노력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열매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21).

4) 이 화목의 메세지를 우리에게 주셨다.

화목케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19).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메세지를 전하는 일이다(20).

그러므로 속죄가 하나님께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1: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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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예수님의 죽음은 영광스런 일을 일으켰는가

 

세상에서 가장 큰일은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이다. 이 죽음으로 인해 어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는가?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그 성도들을 사랑하시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예수님 자신에게 어떤 영광스러운 일들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자기 영화를 위한 담대한 기도

 

요한복음 17장의 예수님의 기도는 지금까지 드려진 기도 가운데 가장 위대한 기도라고 한다.

그 이유는 기도하는 사람의 인격이 그만큼 위대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예수님은 이 기도문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실 때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5)라고 하셨다.

이런 담대한 기도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인격도 인격이지만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다(17: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 하셨다(19:30).

벤틸 박사는 이 말은 하나님께 대한 보고라고 했다.

이 얼마나 담대한 기도인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예수님은 자기를 영화롭게 해주시기를 기도하셨다. 이 기도는 과연 응답되었는가?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2:9).

 

2. 새로운 시작

 

예수님의 죽으심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다. 사람은 죽음으로 자기 일들이 끝나지만 예수님의 죽으심은 새로운 놀라운 일을 시작하셨다. 곧 성령의 새 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 하시더라”(7:38-39).

그러나 부화,승천,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고 영광을 얻으신 다음에는 어떻게 되셨는가?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드드는 이것을 부어주셨느니라”(2:33). 성령의 새 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의 은사로서 교회를 봉사케 되며, 성령의 역사로써 회개 신앙 운동이 일어나며, 성령의 충만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복음의 전파가 힘있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께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는 일을 위해 훈련받은 제자들을 성령으로 무장시켜 파송하심으로 1884년 알렌 의사를 통해, 188545일 언더우드, 아펜셀라 선교사를 통해 정식으로 복음이 한국에까지 오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15:29).’

 

3. 영광스러운 미래의 전개

 

지금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대망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기회이기 때문이다(8:19-21).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은 줄을 안다(요일 3:2).

그리하여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벧후 3:12-13). 그러므로 이 신앙을 가진 우리는 그의 깨끗하심 같이 자기를 깨끗케 하기를 힘써야 한다(요일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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