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바른이해 〓/성경 편집과정 이해

성경 번역의 문화적 과제

by 【고동엽】 2022. 2. 23.
목록

성경 번역의 문화적 과제


고세진
(이스라엘 예루살렘대학성경고고학 교수)


1. 서론

대한성서공회의 주문(注文)은 “성경고고학의 연구 결과가 성경 본문 연구에 어떤 빛을 던져 주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성경 번역에 반영시켜야 하는지를” 논하라는 것인데 학문이 별로 깊지 못한 필자로서는 주제가 좀 크다고 생각되지만, 그 동안 성경 번역에 늘 관심이 많았기에 지면이 허락하는 데까지 이 주제를 다루어 보려고 한다.
성경고고학이 성경 본문 연구에 던지는 빛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의 본문을 조명(照明)하고 그 본문의 언어학적 연구에 보조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성경고고학의 어떤 자료가 성경 본문의 어떤 부분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고 또 크게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자기의 신학적 성향이나 학문적 경향에 따라서, 이러한 자료를 성경 본문을 부정하거나 증명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예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렇게 고고학 자료를 사용하는 것은 고고학의 오용(誤用)에 가까운 것이다. 왜냐하면 고고학 자료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므로 우리가 그것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서 고고학 자료는 대게 불완전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또 이곳 저곳에서 진행된 발굴 결과가 나오면서 보완되므로 섣불리 최종 결론을 내린다는 것이 위험천만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고고학을 포함한 어떤 학문이 무엇이라고 하더라고 흔들리지 않는 위치와 권위를 견지하고 있는 말씀이다. 우리가 성경고고학을 논하는 것은 이 말씀을 좀더 잘 이해하여 보자는 각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과 우리 사이에는 2,000년 이상의 시간적인 심연이 가로놓여 있을 뿐만 아니라, 피도 역사도 공유하지 않는 인종적 차이,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지리적 차이, 정치적 차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언어적 차이, 사상적 차이, 따위의 여러 가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들을 묵어서 간단하게 대별하자면 결국 고대 근동의 문화와 현대 한국의 문화라는 두 벽으로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화의 장(場)이 되는 근동과 한국이라는 지리적 상황이 각자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 한국에서 고대의 문서인 성경을 번역하는 번역자에게는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성경 번역은 고대 히브리 사람들의 언어, 풍습, 문학, 역사, 신학을 총망라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이 필요하며, 아울러 우리의 언어와 언어현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요구되는 종합적인 학문이며 예술이라 할 수 있다”(손석태 교수의 말. 민영진 1996 : 557).

물론 성경을 번역 또는 연구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으뜸으로 중요한 것은 성경의 언어를 터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원어들(히브리어나 헬라어 따위들)을 배우고 또 언어학(Linguistics)의 진수를 터득하였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이 안고 있는 한계 때문에 어떤 본문을 오역할 가능성은 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언어는 문화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만 따로 떼어서 다루는 것이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어떤 본문들은 언어적인 번역에서 그쳐서는 아니되며 두 번째 단계로 당시의 문화적 상황(언어를 배태하게 한 그 모든 배경)을 고려하여 봄으로써 그 일차적인 번역이 제대로 되었는지 검증하고 넘어 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제시하고 싶은 성경고고학과 그 주변 학문을 성경 번역에 사용하는 응용법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번역하는 사람은 이러한 자료들과 자주 접촉함으로써 자기가 다루고 있는 본문의 문화적 진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본문의 의미를 언어가 표면적으로 내포하는 것 이상으로 터득할 수 있다면 성경 번역의 과제를 과오없이 해 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근동고고학(또는 성경고고학)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근동의 지리적 상황에 갇혀서 화석이 되고 만 고대 문화의 잔재들을 파헤쳐서 그 감추어진 비밀의 암호를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고고학은 결국 문화탐구 학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문화를 이해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고고학 자료들 중에는 간접적으로 성경을 조명하는 것도 있고 직접적으로 어떤 성경 본문과 연결되는 것도 있다.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고고학은 지리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고 성경고고학의 가장 기본적인 시작은 지리적인 연구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문화의 기본 요소는 지리적 상황이며 또한 고고학의 무대는 지리와 지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고고학을 말할 때에는 자연히 지리학을 병행하게 된다. 그래서 성경지리학은 고고학의 바탕이 되기도 하고 주변 학문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고고학 연구를 넓게 보면 지리학 연구를 포함하게 된다.
그러면, 성경고고학이나 그 주변 학문들이 이루고 있는 연구결과를 성경 번역에 어떻게 반영하며 이용할 수 있는가를 필자는 두 가지의 예를 들어서 보여 드리려고 한다. 구약 성경에서 예를 하나 들어서 정확한 언어이해는 그 언어의 무대이었던 지리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분명해진다는 것을 살펴보겠는데, 성경고고학이란 구체적인 지리적 상황을 바탕에 깔고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이러한 예를 드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두 번째로 신약 성경에서 예를 하나 들겠는데 거기에서는 뜻이 모호한 어떤 낱말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지 그 기능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에 고고학 자료를 비롯하여 지리, 풍습, 따위의 문화적 자료들을 음미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민영진 박사의 최근 저서(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에도 다음에 논하려는 성경 본문들을 다룬 적이 있다는 암시가 없으니 일단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각 예문의 어떤 특정한 낱말을 어떻게 고고학적으로 이해하여야 하는가를 논하였지만, 그 예문 전체를 새롭게 번역한 문안은 제시하지 아니하였다. 그 이유는 그 예문들 속에는 넘어야 할 다른 문화적 과제들이 있으므로 그것들을 해결하지 않고 문장 전체를 번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오직 어떤 특정한 낱말과 그것의 “분위기”가 그 예문들이 번역되었을 때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논하기로 한다. 이 작은 논문에서는 개역 성경과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을 한글 성경번역본의 대표로 삼아 사용하였다.


2. 본론

2.1. 첫째 예 : 언어와 문화(지리)의 상관성 - 이빨 같은 절벽

사무엘상 14장은 연일 블레셋 군대에게 밀리면서 전쟁에서 지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의 진중에서 용감한 두 군인들이(요나단과 그의 부하) 기습작전을 감행하여 적진을 혼란시키고 이스라엘 군(軍)에게 전세(戰勢)를 만회할 틈을 제공하는 흥미진진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본문을 한글 성경으로 읽으면(어느 번역본으로 읽든지 간에), 결과는 요나단의 승리로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분간이 안된다. 이 본문의 일부를 한글 번역문들로 읽어 보자.
먼저 개역 성경을 읽어 보자.

사무엘상 14:4-5 요나단이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려 하는 어귀 사이 이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고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있는데 하나의 이름은 보세스요 하나의 이름은 세네라 한 바위는 북에서 믹마스 앞에 일어섰고 하나는 남에서 게바 앞에 일어섰더라. 14:13-14 요나단이 손발로 붙잡고 올라갔고 그 병기 든 자도 따랐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요나단 앞에서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따라가며 죽였으니 요나단과 그 병기 든 자가 반일경지단 안에서 처음으로 도륙한 자가 이십인 가량이라.

그런데 이 본문을 표준새번역(1993년판)으로 읽어 보면 다음과 같다.

사무엘상 14:4-5 요나단이 블레셋 군대의 전초부대로 들어 가려면 꼭 지나야 하는 길목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양쪽으로 험한 바위가 있었다. 한쪽 바위의 이름은 보세스이고, 다른 한쪽 바위의 이름은 세네이다. 바위 하나는 북쪽에서 거대한 기둥처럼 치솟아 올라 믹마스를 바라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남쪽에서 치솟아 올라 게바를 바라보고 있었다. 14:13-14 요나단이 손과 발로 기어올라갔고, 그의 무기를 든 병사도 그 뒤를 따라 올라갔다. 요나단이 블레셋 군인들을 쳐서 쓰러뜨렸고, 그의 무기를 든 병사도 그 뒤를 따라가면서, 닥치는 대로 쳐죽였다. 이렇게 요나단이 자기의 무기를 든 병사와 함께, 겨릿소 한 쌍이 반나절에 갈아엎을 만한 들판에서, 처음으로 쳐죽인 사람은 스무 명쯤 되었다. (이 본문의 고딕체와 띄어쓰기는 표준새번역 원문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 본문을 공동번역(1977년판)에도 “날카로운 돌기둥이 둘 있었다”(사무엘하 14:4)고 하며 요나단이 “손과 발로 기어올라갔다. 그의 무기 당번도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14:13)라고 번역되어 있다.
상황 전개를 이렇게 한국어 번역문들로 읽어 보면, 전투의 장면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정신을 가다듬고 몇 번 읽어 보고 나면, 전장(戰場)의 모습이 어설프게나마 다음과 같이 느껴진다. 즉, 넓은 평지의 북쪽에는 블레셋 군이 진을 치고 남쪽에는 요나단의 이스라엘 군이 진을 치고 있는데 각 진영 앞에는 하도 유명하여 이름까지 붙어 있는 큰 바위가 하나씩 서 있다. 이 바위들은 그 생김새가 기둥 같다. 그런데 기습작전을 벌이는 요나단과 그의 부하가 그 바위들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14:13) 블레셋 진영으로 쳐들어 간 것 같다. 이런 전투 상황을 영화로 찍어서 비쳐 본다면, 전혀 기습을 한 것 같지 않고 무슨 곡예 장기 자랑이나 희극(喜劇)을 연출한 것 같다. 도대체 기습을 하는 군인들이 높은 바위 위에는 왜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했겠는가? 적에게 노출되기 십상인데. 더구나 그것도 두 번씩이나……
이 원문에서 주목하여야 할 낱말들은 이 상황 전체인 14장 안에 나타나고 있는 두개의 동사와 한 개의 명사이다. 즉 “건너간다”(1, 4, 6, 8절)는 동사와 “올라 간다”(9, 10a, 19b, 12a, 12b, 13절)는 동사와 “바위”라고 번역이 되어 있는 “셴 하쎌라”(4, 5절)라는 명사이다. 한글 성경들을 보면 모두 이 말들이 어떻게 상황을 조성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도록 분명하게 번역이 되어 있지 않다.
이 두 동사들과 명사 하나가 사건의 현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낱말들은 한글 성경 번역문들에는 원문 이해에 걸림돌들처럼 나타나고 있다. 즉, 개역 성경에는 두 바위들이 일어서 있다고 했지만 왜 본문이 그 말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고, 요나단과 그의 부하가 “건너가고” 또 “손발로 붙잡고 올라가고” 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어딜 건너가고 무엇에 올라갔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표준새번역은 한 술 더 떠서 이 바위들이 “치솟아” 있다고 원문에 없는 말을 추가함으로써 그 뜻을 분명히 하려고 의역(意譯)을 했지만 결과는 오역이 되고 번역문의 내용은 여전히 모호하기만 하다.
여기에서 “셴 하쎌라”를 바위로 번역하고 만 것에 결정적으로 문제가 있다.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원문 석의를 하고 또 기존의 영문 번역본들이나 다른 나라 말로 된 번역 성경들을 참조했겠지만 그 결과는 오역이 되고 만 것이다. 번역자들은 “셴 하쎌라” 중에서 “하쎌라”와 연결되어 있는 “셴”을 어떻게 번역하느냐는 문제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 이유는 도대체 이 둘이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번역자들이 하였던 고민과 과정을 한번 더듬어 보자. “셴”은 “치아(齒牙)” 또는 이빨이라고 직역을 할 수 있고, “하쎌라”는 “그 바위”로 직역할 수 있다. 그러니 이 둘을 합치면 “그 바위 치아”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바위 치아”가 양쪽에 하나씩 있으니 무슨 뜻인가? 언어 분석은 여기에서 멎고 만다. 도대체 바위 치아가 양쪽에 하나씩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던 번역자들은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의역(意譯)하였다.

험한 바위(개역)
거대한 기둥처럼 치솟아 있는 바위(표준새번역)
날카로운 돌기동(공동번역)

만약에 어떤 번역자가 “양쪽에 하나씩 있는 바위 이빨들” 이라고 직역을 하고 나서 이는 마치 사람이나 짐승이 입을 벌리고 두 줄의 이빨을 드러낸 것과 같이 가파른 바위 절벽이 하늘을 향하여 수직으로 열려 있다는 것과 같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더라면, 이 본문의 오역 또는 넘겨짚은 의역으로 생긴 오역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셴 하쎌라”는 “(바위) 절벽” 또는 “낭떠러지”라고 번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양쪽에 절벽이 하나씩 있으니 결국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 지형은 하도 험하기에 사람들은 이 양쪽 절벽에 각각 하나씩 별명을 붙여 주었던 것이다.
이제는 왜 요나단이 적진을 향하여 “손발로 기어올라” 갔어야 했는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니까 요나단은 그의 졸병과 함께 적진 앞에 놓여 있는 깊은 계곡을 “건너가려고” 손발로 절벽을 기어 내려갔다가 다시 기어 “올라갔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이 “절벽” 또는 “낭떠러지”란 번역은 올바른 것인가? 이제 우리는 그 전장(戰場)의 지형을 답사할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의 군인들은 사라졌지만, 그 때의 그 “바위 치아들”은 지형의 일부이니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 사건의 현장에 가보자. 사진 1을 보면, 당장 “절벽” 또는 “낭떠러지”라는 번역이 잘 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진은 믹마스(북쪽 마을)와 게바(남쪽 마을)를 갈라놓는 골짜기이다. 이 골짜기 이름은 지금 아랍어로 “와디 수웨이니트”라고 하는데 동서로 흐르고 있다. 이 와디의 북쪽에는 고대의 믹마스 마을이 있었고 남쪽에는 게바가 있었다. 이 사진은 믹마스 쪽에서 남쪽을 보고 찍은 사진이다. 즉, 남쪽인 게바에서 북쪽인 믹마스로 건너오려면 이 절벽을 내려와야 했던 것이다.
사진 2는 남쪽에서 북쪽 절벽을 보고 찍은 것이다. 절벽의 하반부는 사진 밑으로 보이지 않고 절벽의 상반부만 보인다. 이제 골짜기(와디 수웨이니트)의 밑바닥에 내려온 요나단은 이번에는 절벽을 기어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믹마스 마을에 있었던 블레셋 진지로 쳐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지리적 상황을 알고 보면, 이 본문의 원어인 “셴 하쎌라”를 쓴 원저자(히브리 사람)의 표현이 우리에겐 어렵게 들려도 그와 그 시대 사람들에겐 적절하였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첫째로 성경 원문을 바로 석의하는 것이 중요하며 부차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상황의 무대가 되는 지역의 지리나 지형에 대한 지식이 성경 번역을 올바르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즉, “바위”라고 한글 성경들 속에 어물쩡 번역되어 히브리어 낱말 “셴 하쎌라”를 한글로 바로잡으려면 이렇게 두 단계(原語와 지리)를 거쳐서 “절벽” 또는 “낭떠러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즉, “셴 하쎌라”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의역을 한 것이 첫째 문제이다. 둘째는 번역자들은 이 사건이 벌어졌던 곳의 지리적 상황에 대하여는 기초적 지식도 없었다고 하는 것을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므로 성경 번역자가 번역하려는 본문의 현장 즉 지리적 상황에 대하여 어느 정도 지식을 습득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번역자는 일차적으로는 성경 원어에 능통하여야 되겠고 부차적으로는 성경지리학을 섭렵할 필요가 있겠다.

2.2. 둘째 예 : 언어와 문화(주거구조)의 상관성 - 사라진 여관

이번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번역해야 할 본문이 사건발생 당시의 언어, 역사, 지리(지정학적 위치), 고고학적 자료(풍습이나 경향성) 따위를 종합적으로 요구하게 되는 경우를 살펴보자. 이런 경우 번역자는 일차적으로 중요한 언어적 또는 언어적(言語的)인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다른 자료들 특히 고고학적 자료를 활용하여 자기 번역의 신빙성을 타진하여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마리아와 요셉에게 방을 내어 주지 않았던 “여관” 주인은 국제적으로 야단을 맞곤 한다. 그리고 짐승 우리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 설교하는 감상적(感傷的)인 설교가들도 있게 마련이다. 과연 예수님은 부모들이 여관에 들 수 없었기 때문에 마구간에서 태어난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몇 단계의 작업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작업은 언어(헬라어), 베들레헴의 지정학적 위치, 고고학적 자료를 다 참고하여야 하는 일이다.
누가복음은 그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이 본문을 한글 성경으로 읽어 보자. 먼저 개역을 읽어 보면 다음과 같다.

누가복음 2:4-7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이 본문이 표준새번역(1993년판)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다.

누가복음 2:4-7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본문의 고딕체와 띄어쓰기는 표준새번역 본문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 본문이 공동번역(1977년판)에도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라고 되어 있다.
이 본문은 사관(개역) 또는 여관(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에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들이 가축들이 있는 우리 안에서 기거하게 되었고 따라서 아기 예수는 거기에서 태어나 구유(가축의 먹이통)에 누이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한글 번역들은 올바른 것이며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의 상황을 바로 전하고 있는가?
여기에서 사관이라는 단어를 헬라어 원문에서 찾아보면 “카타뤼마”인데 이 낱말은 “묵어 가는 곳”, “음식 먹는 곳”, 또는 “손님 방(객실)” 따위로 이해되는 장소를 가리킨다. 이 낱말을 개역 성경은 “사관”으로 표준새번역과 공동번역은 “여관”으로 번역하여 놓고 있는 것이다. 사관이나 여관이란 한국말은 서로 바꾸어 쓸 수도 있는 말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실상은 제대로 된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이 말을 (아래에서 보듯이) 개역 성경이 다른 두 곳에서(막14:14, 눅22:11) “객실”이라고 번역한 것은 잘 한 일이며, 다른 번역들은 타당하지 않다. 애석하게도 개역 성경은 누가복음 2:7을 번역할 때에만 “사관”이라고 오역을 하고 말았다. 그러면 이 낱말(카타뤼마)을 좀더 추적하여 보자.
이 낱말(카타뤼마)은 마가복음 14:14와 누가복음 22:11에도 나온다. 즉, 마가복음 14:14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드실 유월절 만찬 장소가 “카타뤼마”인데 한글 개역 성경에는 “객실”로 번역하였고 공동번역은 그냥 “방”이라고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표준새번역을 보면 이 말을 “사랑방”이라고 하고 있다.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누가복음 22:11 역시 “카타뤼마”를 쓰고 있으며 개역 성경은 이 낱말을 “객실”이라고 하고 있으며 공동번역은 “방”, 표준새번역은 “그 방”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니까 개역 성경은 “카타뤼마”를 사관이라고 한번(눅2:7), 객실이라고 두 번(막14:14, 눅22:11) 번역하고 있다. 공동번역은 여관이라고 한번, “방”이라고 두 번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표준새번역은 “카타뤼마”를 여관(눅2:7), 사랑방(막14:14), 그리고 그 방(눅 22:11)이라고 다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표준새번역이 어떻게 할 바를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공동번역은 개역성경을 베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좀 전에 말한 바대로 여기에서 “객실”이라는 개역 성경의 번역이 제일 마음에 든다.
사관(舍館), 객실, 여관, 사랑방, 그 방, 방. 이 말들은 한국말에서는 무엇을 뜻하는가? 이게 문제이다. 즉 한글판을 읽는 사람이 어떤 문화적인 연상(聯想)을 할 것인가를 번역자는 물어야만 한다. 사관은 여행자가 묵는 곳일 수도 있고 어떤 기관의 손님 접대용 장소일 수 있다. 사관은 또 돈을 내고 묵는 곳일 수도 있고 무료로 묵어 갈 수도 있는 곳이다. 객실은 여관의 한 방일 수도 있고 여염집의 방일 수도 있다. 여관이라면 그야말로 여행자가 돈을 치르고 묵어 가는 곳이다. 사랑방은 여염집의 방인데 주인이 손님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이 곳에서 묵어 간다면 돈을 낼 생각은 안해도 좋을 것이다. 그 방이란 어떤 성격의 방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떤 특정한 방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다. 어떤 것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인가?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로 마가복음 14:15절에는 유월절 만찬을 할 장소를 다른 낱말인 “아나가이온”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을 개역과 표준새번역은 “다락방”이라고 하며, 공동번역은 “큰 이층방”이라고 하고 있다. 같은 이야기가 누가복음 22:12에서 반복되면서 “아나가이온”이 나오고 있는데, 개역과 표준새번역은 이 낱말을 역시 “다락방”이라고 번역하고 있으며 공동번역은 “이층의 큰 방” 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글 성경들에는 “아나가이온”이 “다락방” 또는 이층에 있는 방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유월절 만찬 장소를 찾는 사건 속에는(막14:14-15, 눅 22:11-12)에서는 예수님이 “카타뤼마”를 찾으니 어떤 사람이 “아나가이온”을 내 주게 된다는 이야기다. 즉 “카타뤼마 = 아나가이온”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다시금 음미하여 보면, “카타뤼마”는 형체가 아니라 어떤 질(質)을 의미하는 것 같다. 즉, 어떤 방이던 손님이 들면 객실이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나가이온”은 그런 손님을 모시는 특정한 장소로 지정되어 있는, 즉 일정하게 어떤 위치에 어떤 형체를 갖추고 있는 장소인 것 같다. 다시 말하자면, 손님이 오면 자동적으로 “아나가이온”에 들게 되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카타뤼마(객실)”가 될 “아나가이온”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이 두 낱말들이 예루살렘에 있었던 어떤 여관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여관이라면 누구나 쉽게 찾게 표식이 붙어 있던지 알려져 있었을 것이니 이렇게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남자를 따라 가서 어떤 집으로 들어가라”(막14:14, 눅22:11)라는 어려운 주문(注文)을 달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나가이온”을 “다락방”이라고 한 번역이 잘되었는가? 번역자는 다시 한국 독자가 일으킬 문화적 연상(聯想)을 생각하여 볼 필요가 있다. 다락방을 영어 성경들을 모두 upper room이라고 하고 있다. 한국 말에서 다락방이란 침실이나 거실에 붙어 있는 작은 공간으로써 이불이나 집기들을 두거나 하는 곳이며 사람이 들어 가서 활동하며 생활하게 설계된 곳은 아니다. 그러므로 “다락방”을 별로 잘 된 번역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차라리 공동번역이 말하고 있듯이 “이층에 있는 방”이 좀 설명적이긴 하지만 실체에 가까운 번역이라고 생각이 된다.
다락방이라고 번역되는 헬라어가 또 하나 있다. 사도행전 1:13에 보면 예수의 제자들이 다락(개역)에 또는 다락방(표준새번역)에 모였다고 한다. 이 말의 원어는 “휘페르온”인데 이것은 다락(방)이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2층에 있는 방 또는 2층(에 있는)집이라고 하는 것이 낫겠다. 왜냐하면 그 방에서는 사람이 120명 정도 모여서 집회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사도행전 1:15). 그런 장소를 다락 또는 다락방(개역과 표준새번역)이라고 번역한다면 오역이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층방”(공동번역)이 더 잘 된 번역이라고 생각이 된다.
헬라어에도 보편적으로 여관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헬라어에서 길손이 돈을 내고 묵어 가는 여관은 “판도케이온”이라고 한다. 이 말은 아무나 모두(판) 받아들인다(데코마이)는 어원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한글 개역 성경에는 “주막(酒幕)”으로 번역되어 있고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에는 여관(旅館)으로 되어 있다. 즉 누가복음 10:34절에 보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나 초죽음 된 사람을 “판도케이온”에 데리고 가서 보살펴 주는 것이 나와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의 “여관”이 개역 성경의 “주막”이라는 말보다 잘 된 번역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 이유는 주막이라는 곳은 술을 팔기도 하고 길손이 묵어 가게 방도 내주는 영업집인데 2,000년 전의 이스라엘 상황보다 19세기 조선의 산골길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에 있었던 것은 “판도케이온”이 아니라 “카타뤼마”이었다는 이야기다. 즉, 베들레헴에 있었던 것은 여관(또는 사관)이 아니라 객실이었다. 그러면 요셉과 마리아가 객실에 들어 가야 했는데 못 들어 갔기 때문에 가축 우리에서 태어났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객실과 가축 우리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 문제로 들어 가기 전에 우리는 위에 한 논의를 정리해 보자. 아래 도표는 위에서 이야기한 여러 낱말들을 정리한 것인데 참고로 영어 성경 두 가지(NIV와 NASB)의 번역들도 살펴보았다.

개역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NIV NASB
카타뤼마 눅 2:7 사관 여관 여관 the inn the inn
막 14:14 객실 방 사랑방 guest room guest room
눅 22:11 객실 방 그 방 guest room guest room
아나가이온 막 14:15 다락방 큰 이층방 다락방 upper room upper room
눅 22:12 다락방 이층의 큰 방 다락방 upper room upper room
판도케이온 눅 10:34-35 酒幕 여관 여관 an inn an inn
휘페르온 행 1:13 다락 이층방 다락방 upstairs to upper room the room

우리는 여기까지 언어의 단서들을 따라 왔으나 막다른 골목에 막히고 말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사건이 일어났던 그 곳, 그 때의 인습, 베들레헴의 지리학적 고찰(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그 당시 서민들의 가옥구조를 알려 주는 고고학적인 자료 따위를 이용하여 종합적으로 이 번역들을 검증하여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옛날에 베들레헴은 국제도로는 물론이고 모든 중요 간선도로에서 벗어나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물론 베들레헴은 지금도 산악 지방의 중앙 도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외진 곳이다.) 즉 여관이 있을 만한 곳이 못된다는 말이다. 페르시아 시대와 로마 시대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을 포함한 근동지역에는 대상로(隊商路)가 잘 발달하게 되었고 이 길들을 따라서 숙박업소들(caravansaries)이 많이 생겨났다. 그러나 베들레헴은 국제 도로도 아닌 중앙 산악 지방 도로에서도 동쪽으로 벗어나 있었고, 이 마을의 동쪽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가 버티고 있었으니 이 마을을 통과하여 다른 곳으로 갈 곳은 없었다. 베들레헴에 온 사람은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가서 중앙 산악 지방 도로(예루살렘과 헤브론을 연결하는 간선도로)를 만나야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었다. 2,0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러니 그 사정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이 마을에 특별한 볼일이 없이 그냥 지나가느라고 여기를 들어 왔던 사람들은 아주 희귀하였을 것이다. 실제로 베들레헴에서 옛날의 여관이 발굴되었다는 고고학 보고도 없다.

둘째로, 자기의 친척이 있는 연고지에 가서 여관에 들어 간다면, 친척과 무슨 문제가 있거나 아니면 그 친척집에 무슨 사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관습은 동서양이나 고금을 막론하고 해당이 된다. 더구나 가족 중심적인 고대 동양 사회의 일원이었던 요셉은 여관이 아니라(설령 그 근처에 일급 여관이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당연히 자기 친척집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 당시 마을들은 씨족 중심적으로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문의 식구가 방문을 오면 묵어 보낼 수 있는 집이 있었다. 그걸 “객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객실은 늘 비워 둘 수도 있겠고 손님이 없는 동안에는 그 마을의 씨족 식구들이 사용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를 만나러 왔을 때에 요셉 일가는 여관이 아니라 어떤 집에 있었다(마태 2:11). 이것을 여관 마구간에 있다가 셋 방을 얻어 들어갔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요셉과 마리아는 처음부터 “어떤 집”에 들어 갔던 것이다. 그 말을 설명한 아래의 세 번째 요점이 중요하다.

셋째로, 객실의 구조를 생각하여 보면 이렇다. 이것은 로마 시대의 팔레스타인 마을의 고고학적 자료를 알아야 될 것이다. 농촌이 아닌 곳에 있는 큰 집이라면 2층이 있는 석조가옥일 경우가 많았으니 그런 건물 안의 2층에 있는 한 방을 비워서 손님이 묵을 수 있도록 해 둔 객실이 있었다. 이렇게 여러 방 중에서 위층에 있는 방 하나를 객실(카타뤼마)로 썼다면 이는 윗방(아나가이온)이라고 하기에 적합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작은 건물 하나가 단칸방 자체로 되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客室(손님이 머무는 방)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客舍 또는 客住(손님이 머무는 집) 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독립된 객사인 경우를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그 당시(성지의 로마 시대)의 일반 가옥구조는 일단 들어 가면 일층은 가축들이 사는 곳이고 계단을 타고 조금 올라가면 단칸방에 사람이 생활하게 되어 있었다.
그 때에 가축들은 큰 재산이었으므로 늘 가까이서 보호할 수 있어야 했으므로 “아랫방”을 우리로 삼아서 길렀던 것이다. 물론 가축인 양이나 염소는 낮에는 밖에 내놓아 풀을 뜯게 하였으므로 가축이 항상 우리(또는 아랫방)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농촌에서는, 우릿간이 한국 농촌에서처럼 사람이 사는 집에서 떨어져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방 밑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림 1을 보면 이 구조가 이해된다. 이 그림은 독일학자 구스타브 달만(Gustaf Dalman)이 20세기 초에 베들레헴을 비롯한 산악 지방에 있던 민가(民家)를 연구할 결과를 가지고 단면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이것을 보면 서민 가옥구조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림 2 역시 20세기에 베들레헴이나 예루살렘 주변을 비롯한 산악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서민가옥을 도면화한 것이다. 그러면 이 그림들이 예수 당시의 서민가옥 구조도 대표할 수 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렇다.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고고학 자료를 집대성하여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가옥구조에 대한 책을 낸 바 있는 Y. Hirschfeld 교수는 베들레헴과 헤브론 사이에 있는 여러 마을들을 발굴하여 본 결과 현대 농촌 서민들의 가옥구조는 로마 시대나 비잔틴 시대의 가옥구조와 비슷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From the standpoint of building methods and materials, the traditional rural dwelling in the Hebron hills, as in other areas of the country that have not, until recently, been deeply affected by industrial technology, is the continuation of an ancient tradition”(Hirschfeld 1995:17).

마태복음 2:11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가 계신 “집”에 들어 갔었다고 한다. 예수께서 처음 태어나셨던 그 우릿간의 그 집에 그대로 계셨던 것이라면 아랫방인 우릿간에서 윗방인 거실로 옮기셨던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왜 그런 생각이 가능하냐 하면, 호적하러 왔던 사람들이 다 가고 나니 그 객사(客舍)가 비게 되었으므로 예수 일가가 독차지를 하게 되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카타뤼마를 여관으로 번역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관으로 번역을 해 버리면, 예수 일가가 여관에 들려고 했다가 못하고 가축 우릿간에 가 있다가 어떤 집으로 갔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헛돌게 된다. 그게 아니라 집 구조상으로 볼 때에 처음부터 어떤 집에 들어 가셔서 그냥 계시다가 동방박사들을 맞을 때까지 쭉 그 집에 계셨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물론 위에서 말한 가옥구조는 가난한 평민들의 집인데, 방이 여러 개 되는 큰 집들도 있었다. 그러나 2,000년 전 베들레헴의 경제와 살림살이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가난한 평민들의 집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기에 더 크거나 화려한 가옥들의 구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넷째로, 당시에 베들레헴에는 많은 손님들로 붐볐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위에서 말한 두 번째 요점을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생각하여 보기로 하자. 여기 저기서 요셉처럼 호적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으니 각자 자기 연고 씨족에게로 찾아갔을 것이다. 다윗 가문에도 들이닥친 사람들이 많아 이미 모든 객실들이 차버렸을 것이다. 어떤 길손들은 노독(路毒)으로 지쳐서 벌써 잠이 들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오랫만에 만난 친척들과 이야기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무슨 술판을 벌이거나 무슨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몇 곳에 있는 객실들이 단칸방으로 된 집들인데다가 이렇게들 어지러운 상황으로 만원(滿員)인데 요셉이 정혼한 임신녀와 들이닥쳤으니, 씨족 중에서 손님 방 배정과 접대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난감하였을 것이다. 이미 와서 윗방(객실)에 자리 잡고 죽치고 있는 사람들을 다 내보내고 요셉과 마리아를 들일 수도 없고 하여 그는 우선 우릿간 한 쪽에 새로운 짚을 깔고 요셉과 마리아를 모셨을 것이다. 아니면 객실이나 객사가 아니라, 어떤 집의 아랫방(즉 우릿간) 한 쪽을 다듬어서 요셉과 마리아를 모셨을 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복작대는 윗방보다는 차라리 아랫방인 우릿간이 어쩌면 임신한 약혼녀를 데리고 온 요셉에게는 더 한갓지고 마음이 편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태어난 것이다.
아랫방이 우릿간이었는데 예수님이 탄생하던 그 때에 짐승들이 거기에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비록 아기 예수가 구유에 놓였다고 하더라고 그것이 그 때에 가축들이 옆에 있었다는 증명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객실이 늘 비워 두던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손님이 왔을 때에만 비워서 내 주는 곳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후자의 경우이거나, 객실이 아닌 어떤 사람 친척집 아랫방(우릿간)에 들었었다면 거기에는 가축들(대개 양들과 염소들)이 있었을 것이다.

자, 이제 우리는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이라는 말을 “객사(客舍) 윗방에” 또는 “객실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원어 석의로 보던, 고고학적 자료로 보던, 이 말을 여관(旅館)으로 번역하는 것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아기 예수가 우릿간에서 태어났을 때에 친척들은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고 미안해 하기보다는 옥동자가 태어났다고 기뻐하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사람이 사는 윗방을 가축이 있던 아랫방과 다른 차원으로 차별대우하는 관념이 없었던 것이다. 우선 집 안에 들어서면 짐승들의 그 냄새 자체가 집 안 전체(윗방과 아랫방)를 하나의 세계로 묵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3. 결론:

지금 까지 우리는 성경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적 또는 원어적 연구는 고고학과 그 주변 학문들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크게는 어떤 번역의 타당성을 검증하거나 작게는 어떤 번역 작업에서 겪는 모호한 점을 조명하여 준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언어는 문화의 산물이며 동시에 언어 없이는 그 어떤 문화도 발전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언어의 기술자는 또한 그 언어를 배태시키고 그 언어의 영향을 받았던 그 문화를 깊이 이해함으로써 자기가 다루는 언어로 기록된 문장을 더욱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만족할 만한 번역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성경 번역자가 다루는 문서는 일반 문서, 즉 어떤 오역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영혼이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문서들과는 다르다. 성경 번역자가 이룩하여 놓은 번역문들이 성경으로 인쇄가 되면 그것은 설교의 기초가 되고 기도의 기둥이 되며 삶의 분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번역자의 책임은 막중한 것이다. 따라서 성경 번역자는 원문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일생을 걸어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번역자는 계속하여 발표되는 성경고고학(또는 근동고고학)의 연구결과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기록된 현장에서 출토되는 자료들은 성경 시대의 지리, 언어, 관습, 일상생활의 도구들, 국제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고방식 따위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하여 주기 때문이다. 성경 번역자는 이런 것들을 보조 자료로 하여 자기가 다루는 원어와 본문을 더 가치 있는 번역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사진 1. 요나단의 이스라엘 군과 블레셋 군이 서로 마주 보고 대치 하여 경계선이 되었던 골짜기 와디 수웨이니트. 이 사진은 믹마스 쪽에서 남쪽을 향하여 바라 본 것이다. 요나단은 이 절벽을 타고 골짜기의 밑으로 내려 왔던 것이다. 이 사진을 찍으려고 필자는 믹마스 쪽으로 돌아서 여러 시간을 걸어야 했다.

 

 

사진 2. 와디 수웨이니트 골짜기 밑에 내려갔던 요나단이 북쪽에 있는 믹마스에 가려고 올라갔던 절벽. 이 사진은 남쪽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절벽의 윗 부분만 이 사진에 담겼다.

 

 

그림 1. 20세기 초기에 있었던 산악 지방(팔레스타인) 서민가옥의 단면도. 이 단면도를 보면 아랫방과 윗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윗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아랫방은 바닥을 파서 지면(地面)의 위치보다 약간 낮게 되어 있다. 이 아랫방이 가축을 두는 곳이다.
ㄱ) 굴뚝 ㄴ, ㄷ) 상자 모양으로 된 곡식저장 통(흙으로 만든 것인데 한국 쌀통 비슷하여 위에서 곡식을 넣고 밑에 있는 구멍으로 필요한 양만큼 꺼낸다) ㄹ) 채광구 ㅁ) 다듬지 아니한 벤치(긴 의자 식으로 늘어놓은 둘 또는 바위를 대충 깎아서 긴 의자로 만들어 놓아서 앉게 한 자리) ㅁ) 계단. (이 그림은 Gustaf Dalman 1964:그림 72를 기본으로 하고 설명을 추가한 것이다.)

 

 

그림 2. 예루살렘 북쪽 라말라 근처에 있는 서민 가옥. 역시 윗방과 아랫방으로 나누어져 있다. ㄱ) 입구 ㄴ) 계단 ㄷ) 아랫방(가축 우리로 사용하며 동시에 농기구를 두는 곳) ㄹ) 거실(단칸방) ㅁ) 곡식 저장통(진흙으로 긴 상자 모양이 되게 만들었다. 위에서 곡식을 넣고 아래에 있는 구멍으로 필요한 양만큼 꺼낸다. 이 통이 방을 갈라놓는 칸막이 구실도 겸한다) ㅂ) 음식 보관장소 ㅅ) 불 때는 곳(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화로 구실을 함) ㅇ) 이부자리를 개어 놓는 곳(이 그림은 Suad Amiry and Vera Tamari 1989:22를 기본으로 하고 설명을 추가한 것이다.)

 

참고도서

공동번역 성서(외경포함). 서울: 대한성서공회. 1977.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서울: 대한성서공회. 1956(1960년 66판 발행).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서울: 대한성서공회. 1993년 초판본.
민영진.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1996.
The Greek New Testament edited by Kurt Aland, et. al. Second edition. United Bible Societies. 1966.
The Holy Bible(New International Version). Nashville: Holman Bible Publishers. 1986.
New American Standard Bible. Chicago: Moody Press. 1960.
Suad Amiry and Vera Tamari. The Palestinian Village Home. London: British Museum. 1989.
Gustaf Dalman. Arbeit und Sitte in Palastina. Vol. VII. Hildesheim: Georg Olms Verlagsbuchhandlung. 1964.
Yizhar Hirschfeld. The Palestinian Dwellings in the Roman and Byzantine Period. Jerusalem: Franciscan Printing Press. 1995.
L. Robert Kohls. Survival Kit for Overseas Living for Americans Planning to Live and Work Abroad. Chicago: Intercultural Press. 1979.


Abstract
The Korean Bible Society has asked the writer to expound on this theme: “What light does archaeological research (in the Middle East) shed on the study of Biblical texts, and how can one utilize it (archaeological research) in translating Biblical texts into a target language (more specifically, the Korean language)?”

The writer's basic assumption is that archaeology and its cognate sciences are not the final word on the meaning and translation of the text. Rather, they first of all play a supplementary role in linguistic and textual studies and in the illumination of the text. The translator of Biblical texts can always benefit from using such archaeological studies to the extent that they enable him/her to understand the text better and/or to examine linguistically ambiguous words, phrases, or expressions in an appropriate cultural context in order to verify the validity of the translation.

Two examples are given in order to illustrate the proposed process of using cultural elements or contexts can be understood through archaeological research, including geographical observations. The first text is from First Samuel 14:4-14. The second text is from Luke 2:4-7. The result is that a correct translation can be ensured first through textual and linguistic study and second by verification of archaeological, cultural, and historical data. (SeJin Koh. Associate professor of Near Eastern Archaeology, Jerusalem University College, Jerusalem, Israel)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