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달윤목사 ㆍ
本能的 良心과 慣習的 良心
양심은 본능적 양심과 관습적 양심이 있다.
어떤 학자는 성경을 세 가지로 말하는 분도 있다. 자연성경, 양심성경, 계시성경. 하나님은 이세가지 계시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필자가 얼마 전 자위는 생리적 욕구를 해소하기위한 순리이며 죄가 아니라고 글을 올렸는데 어떤 분이 댓글을 달았는데 “자위행위는 양심이 죄라고 하는데 죄가 아니라고 하는 당신이 하나님인가고” 빗대며 반문하였다. .
여러분이 잘 아시다 시피 본능적 양심은 창조주가 주신 인류 보편적 절대적 양심입니다.
“예컨대 살인은 죄다. 불효는 죄다” 양심이 증거 합니다.
慣習的 良心은 세계 각국의 전통과 문화에 따라 가각 다르다. 그것은 관습에 의한 상대적 양심인 것입니다.
한국인은 오래도록 도덕의 표준으로 지켜온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삼종지도(三從之道) 칠거지 죄악(七去之惡)이 있었는데 당시 관습의 진리였고 어기면 죄악으로 알고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 그것은 관습의 양심인데 거의 패기 되었습니다. 지금도 칠거지 죄를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정신 이상자이다.
여인이 아기를 갖지 못하는 것이 죄악이여서 내어 쫓을 수 있고 임신 못하면 악한 여인이라고 하였다. 당시 여인들은 그것을 큰 죄악으로 알았고 양심에 가책을 받았다. 그 양심이 옳은 양심인가?
전쟁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아프카니스탄 여인들은 눈만 내어놓고 검은 보자가를 쓰는데 그것을 쓰지 않으면 간음하는 여인으로 본다.
여호와 증인은 수혈이 죄이기 때문에 자식이 죽어가는 데도 수혈을 반대한다.
이런 실 예를 다 들 수 없다. 그런 것은 전부 관습적 상대적인 양심에 속한다. 관습적 양심은 국가마다 다르다. 엄격한 의미에서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관습적 상대적 양심은 다양하며 언제나 변하는 것이다.
“칠거지죄” 얼마나 미개하고 원시적인 양심인가? 성경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 때에 얼마나 무자비한 여성의 인권유린이며 죄악인가?
자위행위는 죄라고 외치신 그런 분은 이조500년의 성을 죄악시 또는 말하는 것조차도 금기시, 음담패설로만 생각하고 듣고 본 관습에 젖어있는 21세기 복고주의 신봉자라 여겨진다.
이런 분은 TV보는 것도 죄악인고로. TV보지 말아야 한다. 왜? 우리의 과거문화는 가슴을 내어놓고 반나체로 춤을 추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용납 할 수 없는 음란 죄악에 속한다. 그런 분에게 그것을 보는 대는 양심에 가책이 없는 가고 묻고 싶다.
사진 전시관에도 가면 안 된다. 사진 전시관에는 나체 사진이 있으니까.
옛날에 개화초기에 서울 한양교회에서 파마하고 성가대에 앉았다가 쫓겨났다. 어느 교회신식 목사는 교회 의자를 만들어 앉게 했다가 쫓겨났다. 불경죄라고. 당시 미개한 사람들에겐 양심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다. 담배 술 먹으면 죄라고 치리했다. 당시 교회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것이 당시 양심이다. 지금도 술 담배하면 죄인 줄로 알고 양심에 가책 받는 성도가 있다. 지금은 술 먹고 담배 피운다고 치리하는 교회는 없다. 이상의 것들은 다 관습 양심에 속한다. 관습양심은 시간이지나면 시대에 유물로 남는다.
자유 하여야 할 청소년들에게 죄가 아닌 것을 죄로 교육하여 양심을 구속하는 것은 창조원리에 위배되는 교육이다. 목사가 그런 식으로 청소년을 교육한다면 청소년들을 정죄하는 것이 된다. 그런 주장자는 성경과 창조원리에 입각하여 자위행위가 죄란 논문을 발표 할 수 있어야한다.
본능적 욕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식욕은 본능적인 것이다. 식욕을 위하여 농사를 짓든지 돈을 벌어 쌀을 사든지 해서 밥을 지어 먹어야 한다. 그래야 식욕본능의 욕구가 채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배가 고프다고 남의 집에 들어가 훔쳐 먹는 것은 죄악이다.
자위행위는 대소변과 같은 生理的인 배설 욕구의 행위이다. 그 불타는 성욕을 결혼 할 때 까지 자기혼자 스스로 전립선에 가득 찬 정액을 배설하는 것을 죄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18세기 한국 관습의 양심이다. 목사들은 죄가 아님을 청년들에게 알려 죄의식에서 해방시켜야한다.
보수신학과 신앙의 교육도 문제이다.
필자가 잘 아는 이화여대를 나오고 유창한 영어실력이 있어 미국을 가서 웨스터 민스터 신학을 졸업하였다. 교회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두 딸과 생활고에 너무 시달리다가 노스웨스트 항공사에 시험을 보았는데 합격하였다. 대우가 많은 직급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자기는 주일성수는 율법대로 지켜야 한다는 기계적인 교육을 받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는데 항공사에는 교대 근무를 하여야하는데 주일이 걸리는 것이다.
항공은 동서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서 주일출반 비행기는 미국에 주일도착. 항공직원은 주일 담담 자는 출근하여 일을 하여야한다. 자기 신앙양심에는 허락되지 않아 항공사에 말하고 양해를 구했으나 받아드려지지 안차 그 어려운 처지에 그 좋은 직장을 어떻게 하여야되느냐 고민을 하다 의논하여 왔다.
필자도 그런 경험 있다. 고학시절 목욕탕 집 아들 친구가 나의 딱한 사정을 보다 자기 아버지에게 말하여 나를 돕는 의미에서 주일날 교회 갖다 와서는 불을 때면(톱밥) 숙식 등록금 문제 해결되는 데가 있었으나 당시 나의 양심이 허락되지 않아 가지 않고 먹고 죽을 고생을 하고 그때 얻은 위장병으로 지금도 앓고 있으며 간신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율법적 야심이었고 복음적 양심은 아니었다. 지금생각하면 잘못된 처신이었다고 생각하며 후회한다. 예수님도 일요일에 병자를 고처주시고 바리새인들에게 비난을 받으셨다.
엄격한 의미에서 오늘성도들은 율법대로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 주일날 밥을 지어먹으면 안 되고 타를 타고 먼 거리 가는 것도 여행을 떠는 것도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일이 겹칠 땐 아침 새벽 예배를 드리고 가던지 아니면 일찍 혼자 예배드리고 나가서 근무하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행기가 도착했는데 누가 행정 처리를 하여야 하나? 불신자만 항공사에 근무하여야하나? 전쟁터에서 적이 총을 소며 처 들어 오는데 주일이니 총을 놓고 앉아 있어야하나? 그렇게 살지 말라고 타 일렀다. 그러나 그는 양심에 가책을 받아 입사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 다 상황윤리에 속한다.
그리하여 그는 너무너무 고생하고 病들고 어렵게 한 평생을 살았으며 미국에는 빈민을 위하여 1주에 한번 식 무료로 주는 빵과 우유를 주는 모양인데 그것을 갖다 연명한다며 필자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물론 힘대로 도왔다.
연락을 하고 지났는데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글을 보신다면 연락을 주셨으면.
여러분! 보수적인 그의 삶과 양심을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전 세계 비행기를 주일은 전부 정지 시켜야 합니까?
북에서 월남 할 때 목사가 목사의 신분을 속이고 월남하며 배가 고파 밤에 남의 집에 들어가 밥을 훔쳐 먹고 월남하였다는 간증을 들었다. 그는 분명 신분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였고 도적질을 하였다. 필자의 글을 죄악시 한분께서 그 목사의 양심을 정죄 할 수 있습니까? 범죄 하였다고 말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대답하여 보세요. 그것이 상황 윤리에 속하는 것이다.
신앙에는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가 있다.
절대적 진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은 절대 불변의 진리이다.
상대적 진리는 사회학적인 것이며 윤리도덕에 속한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 얼마든지 변하는 것이고 변하여야한다.
모든 사람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상투를 자를 때 자살한 양심도 있었다.
딸을 학교에 보내는 것을 악으로 알고 보내지 않은 양심도 있었다. 목사부인이 짧은 치마 저고리 청바지를 입으면 안 된다는 양심도 있었다. 이상의 것들이 수 십년 전만 하여도 용납 될 수 없는 양심이었다.
이란에서는 개종자를 사형시킨다. 목사 한 사람이 벌써 사형 당했고 지금도 사형 날자를 감옥에서 기다리는 목사가 있다. 이런 것에 양심은 관습에 의한 상대적 양심이다.
상대적 양심으로 절대적 양심을 죄악시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무지한 양심의 소치이다. 자위행위를 양심적으로 죄라고 하는 것은 관습적 양심이다.
자기혼자는 그 양심을 지킬지라도 타인을 정죄하여서는 아니 된다.
良心을 말할 때에는 絶對的 양심과 慣習的 양심을 구별 할 줄 알고 말하여야한다.
목사들은 죄 아닌 것을 죄라고 가르친다면 그 가르침이 죄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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