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주일설교 1부 _ 요한복음 12장 36-43절
(하나님 영광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인간의 영광)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
9박 10일 동안 체코프라하로부터 파리까지 종교개혁 탐방 대학원생들을 인솔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기도덕분에 머리털하나 손상당하지 않고 건강한 몸으로 잘 돌아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인터넷이 너무 느리고 힘들어서 메일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유럽에서는 와이파이가 무료가 아닙니다. 한 시간에 5유로를 써야 하는데 그러더라도 인터넷이 너무 느리게 갑니다. 조만간 제가 여러분께 짧은 글을 올리겠습니다. 대학원 인솔교수였기 때문에 성숙한 사람들을 따라가서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시차는 7시간이 났지만 전혀 시차적응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자마자 순복음교회 철야기도회를 참석했습니다. 이영훈 목사님이 <주간동아>에 이런 인터뷰를 했습니다. 부의 편중이 나라를 망친다, 재벌의 부의 편중이 나라를 망친다는 모토로 인터뷰를 했는데, 이영훈 목사님의 사회의식이 대단합니다. 이분은 남북문제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북한에게 지원하는 것을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도주의적 지원은 확장된 개념으로 사용해야 하고 포괄적으로 무조건 북한에 지원돼야 한다, 이런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대화를 해보면 굉장히 우리랑 입장이 같습니다. 가장 큰 교회에 그런 후계자가 들어서서 그 교회 리더십으로 섬기겠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희망이 아직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담임목사를 계승하는 과정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깨어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순복음교회에 갔는데 이영훈 목사의 그런 설교를 듣고도 사람들이 아멘을 다 합니다. 옛날 그 반대에도 아멘을 했고, 우리 한국교회는 담임목사님이 누구인가에 따라 어떻게 인도하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1억 원의 헌금을 숭실대에 했습니다. 바로 결단을 하고, 결국 1억 받으러 간 겁니다. 우리가 명성교회에 갔다 오면 5천만 원이 그 다음 주에 옵니다. 소망교회에 한 번 가면 5천만 원이 와요. 총장 이하 교무위원 전원을 데리고 교목실장이 가면 굉장히 부담을 느껴요. 이 사람 돈 받으러 오는 구나, 우리가 조폭인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아침 일찍부터 채플을 인도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유럽기독교 문명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분투의 기록임과 동시에 종교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을 둘 다 쥐고 있는 부리더, 영적제후들의 각축장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마틴 루터 종교개혁을 보면 마틴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기 전에 마틴루터가 속해 있던 작센주의 선제후, 신성로마황제를 뽑는 7명의 간접 투표단 중의 한 명이 선제후입니다. electer입니다. 그 electer가 북독일의 작센주, 뒤링겐 주의 일종의 군수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은 프랑스 일부,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전체 프로이센 전체를 차지한 나라입니다. 사실상 본부는 독일에 있었지만 신성로마제국 황제는 오스트리아 사람이 되기도 하고 스페인 사람이 되기도 하고 독일 사람이 되기도 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나라는 황제가 통치했지만 황제가 실권이 없고 지방제후들이 실권을 가졌습니다. 지방제후들은 군수급 지방 도지사급 지방 지도자였는데 병력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전, 마틴 루터가 있던 비텐베르크가 있었던 작센주에 선제후가 이미 벌써, 마틴 루터의 종교적 저항을 정당화할만한 준비를 다 하고 있었습니다. 면죄부판매가 작센주의 농민들의 세수를 누출시키는, 농민들의 제정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치적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면죄부판매를 훨씬 먼저 정치인들, 선제후 또는 제후들이 문제의식을 가졌습니다. 북독일의 7주, 시말칼덴 동맹이라고 말합니다. 시말칼덴 지역이라고 하는 그 지역이 전부 지금 동독지역이었습니다. 그 모든 지역이 전부 다 면죄부 때문에 심각한 재정유출을 경험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틴 루터가 나온 겁니다. 마틴 루터는 이미 면죄부에 대한 광범위한 민중저항과 제후들의 정치적 저항에 대한 후발적 응답으로서 면죄부 논쟁을 벌인 겁니다. 마틴 루터가 면죄부 논쟁을 벌여서 교황 레오 10세 파문장을 받고 불태우는 똑같은 시간에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와 6명의 파리 명문대학생들이 예수회를 결성합니다. 마틴 루터에게 저주를 퍼붓고 마틴 루터로부터 비난 받았던 그 교황이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와 그의 친구들에게 안수를 하고 예수회를 만들어서 개신교에 잃어버린 영토를 해외에다 개척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독일의 산돼지 한 마리가 주님의 포도원을 다 유린하자 신실한 주님의 종 7명을 선택하여 전 세계에 눈을 돌려 가톨릭 영토를 넓혔다고 좋아합니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와 6명의 예수회 회원들은 마틴 루터보다 더 경건하고 더 공부를 많이 하고 더 엘리트였습니다. 그런데 로마교황청의 무서운 모순을 하나도 눈치 채지 못합니다. 너무나 순복하고 순명하고 잘못된 지도자의 안수를 받으면서 교회의 아들딸로 자기를 자임합니다. 그것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칼빈이 1559년 제네바에서 <기독교강요>를 썼던 그 해에 예수회가 번창합니다. 칼빈과 루터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와 프랜시스 사비에르는 일생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합니다. 프랜시스 사비에르는 산둥반도에 들렀고 일본 기타큐슈까지 왔던 사람입니다. 한국만 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명종 때입니다. 임꺽정 직전, 이런 서구교회 역사를 보면 인간의 영광과 하나님 영광을 동시에 다투는 제후들 호걸들의 각축장이었음을 알 수 있고, 그런 엄청난 각축의 와중에 인물들이 굉장히 많이 배출됐습니다. 서구교회사는 어떻게 이렇게 기념비적인 인물들이 많고 기념비적 역사적 인물들이 많은가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너무나 음양으로 영향을 많이 끼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영향을 끼치지 못하면 역사는 적막강산, 공동묘지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 말씀이 만일 불꽃처럼 우리 양심을 불태운다면 이런 상황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이 불꽃처럼 불태우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시대 백주에 너무나 선악, 정사진의를 왜곡하는 악의 세력, 어둠의 세력들이 지배할 때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이 상황은 하나님 말씀이 살아 있을 때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유럽은 너무나 놀랍게도 한순간도 저항과 분투가 그친 적이 없습니다. 매우 조용하게 지나간 유럽의 역사는 없습니다. 그걸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할 때는 위대한 음악가도 위대한 조각가도 위대한 판화가도 위대한 작가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또한 각축과 투쟁도 일어난다는 것,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어떤 상황일까요? 우리 하나님 말씀이 우리 양심을 불처럼 밝혀준다면 아마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방식대로 한 데 모여서 구국기도회를 할 것입니다.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에서 아주 오래 전에 통일되기 10년 전부터 10명의 젊은이가 모여 기도했습니다. 마지막 통일되기 직전까지는 100만 명까지 불어났습니다. 10명의 젊은이가 100만 명까지 불어난 것이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입니다. 우리가 하나의 대의명분을 가지고, 우리 민족의 통일과 화해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왜곡된 정치구조, 말할 수 없는 어둠의 세력들의 활개 치는 역사, 다시 한번 새로운 역사로 이끌 수 있는 영적지도력, 정치적 지도력, 청년의 지도력이 마땅히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봅니다. 대안학교 고등학생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물론 교사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가 범보수세력의 지배아래 있으면서 이제 정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천연기념물처럼 희귀해지는 시간에 도입했습니다. 정의를 외치고 아모스처럼 성문과 광장에서 외치는 사람들은 이제 천연기념물보다 더 희귀한 멸종 직전의 species 종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대이스라엘의 예언자적 전승에 입각한 행동을 합니다. 고대이스라엘 예언자적 전승은 예루살렘 성이라는 종교권력자의 자기만족적인 확신과 편견을 무수하게 두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성은 위치가 독특하게 폐쇄적일 정도로 우뚝 솟아 있는 등선에 있습니다. 좌우가 자연스럽게 해자처럼 깊은 계곡이 예루살렘을 두르고 있습니다. 깊은 계곡 위에 우뚝 솟은 것이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400미터 300미터 직사각형, 가장 긴 길이가 400미터, 가장 짧은 길이가 280미터, 거의 직사각형에 입각한 거대한 성전에서 종교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예루살렘 제사장들은 그 당시 로마제국 관내에서 가장 큰 성전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이 성전은 로마제국의 판테온 그리스 어떤 신전보다 규모가 2-3배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이나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시타르게이트, 보통 마르둑 성전보다 더 큽니다. 제일 큰 성전의 지배자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의 종교당국자들입니다. 이들은 지상의 가장 큰 성전의 관리자로써 오래 누적된 전승과 구원사의 전통의 관리자로써 자기들과 아무 상관없는 성자들과 예언자들의 수호자로 자임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3장에 예언자들의 무덤을 관리하면서 돈을 받는 바리새인들을 비난하는 말이 나오죠? 예수님 당시의 예언자 스가랴의 무덤이 바로 예루살렘 기드론 몰렉,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있습니다. 지금도 가면 스가랴 예언자의 무덤이 있습니다. 문제는 정몽준이라는 사람과 삼성 이건희 회장이 전태일의 무덤을 꾸며 놓고 기리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겁니다. 만일에 정몽준 씨와 이건희 씨가 전태일의 무덤과 동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절하면서 전태일의 가치를 무자격적으로 계승하면 금방 문제가 되겠죠? 전태일과 정몽준은 너무 다른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정몽준이 전태일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면 너무 놀라겠죠? 바로 예수님이 보실 때 예루살렘 종교권력자들은 예언자들의 무덤을 관리하면서 예언자들의 전승 상속자로 자임하는 모습이 너무나 말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런 흑백논리를 구사합니다. 사람이 흑백논리를 구사할 때는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언어에는 Yes와 No 만 있습니다. 예수님의 언어 안에는 어떤 흑백논리가 있느냐? 빛과 어둠, 중간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빛 어둠 딱 두 가지만 나옵니다. 왜 이렇게 나눌 수 있느냐? 빛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면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종교적 폐쇄적인 자기만족적 공동체, 구원전승을 관리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장식했던 예언자들의 무덤을 관리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있는 지상대리자로 자임한다면 그건 하나님이 주시는 초월적인 메시지를 받아들일 귀 눈이 없는 겁니다. 이사야 당시에 정확하게 이스라엘 유다의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이사야가 정확하게 하나님의 초월적인 메시지를 받아서 히스기야의 궁중과 아하스의 궁정에 아무리 외쳐도 그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문서를 구축하며 이집트와 계속 동맹을 추구했습니다. 이사야는 자기 몰래 이루어지는 이집트와 친선동맹 군사동맹을 통하여 앗수르 제국과 한판 전쟁을 불사하려고 하는 무서운 음모를 알아차리고 계속 다그치고 깨우칩니다. 그런데 이사야 당시에도 하나님의 역사를 그렇게 보고도, 이사야 당시 BC 738-705년 사이 약 30년 동안 앗수르가 시리아부터 19개 정도의 나라를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러면 무슨 생각을 해야 합니까? 19개 왕국이 초토화됐다면 그다음 차례가 누구입니까? 시리아 하맛, 이사야 10장에 나오는 숱한 나라들이 초토화됐습니다. 그다음 유다의 북쪽에 있는 북이스라엘도 초토화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역사를 감지한다면 누구차례입니까? 무얼 보아야 합니까? 유다의 운명이 이들과 같다고 봐야겠죠?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우리는 다를 것이다, 이사야가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한 말이 하나님의 역사적 동선을 보고도 터득하지 못하고 엄청난 멸망의 소식, 숱한 19개의 왕국이 초토화됐다는 말을 듣고도 자기 왕국은 안전을 보장한다고 믿는 이 마음이 영적 완매 상태, 영적 무지몽매 상태란 말이죠. 이런 이사야의 시대와 지금 똑같다는 겁니다. 지금 죽음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왔다고 로마제국의 큰 독수리가 예루살렘 주변을 날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이 썩은 시체가 될 날이 금방 임박했다는 말입니다. 시체가 되자마자 예루살렘을 뜯어먹을 겁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주변에 거대한 독수리가 시체를 향하여 정조준하며 날고 있습니다. 죽음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있다는 말이 바로 그겁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종교권력당국자들이 어둠이라고 말함으로써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예수님 자신을 영접하면 예루살렘 종교당국자들과 유다군중의 마음은 적개심의 뿌리가 로마제국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일반 백성의 영적 부패 도덕적 부패가 가장 먼저 척결해야 할 적입니다. 로마제국에 대한 미운감정, 적개심에 정조준된 이 민중의 마음을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 거룩함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먼저 기억하여 회개시키려는 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자마자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로마에 대한 미운 마음, 지주에 대한 미운 마음, 적개심보다는 지주들에게 종노릇할 수밖에 없는 민중의 고달픈 인생살이, 탐욕적인 인생살이, 이웃을 압제하려는 내 마음, 내가 지주의 소작인으로 살면서 다른 소작인을 학대했던, 내가 만 데나리온 빚진 자로써 백 데나리온 빚진 동포를 못살게 굴었던 내 마음을 회개하게 됩니다.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끼리 서로 사이좋게 살면 로마제국이 아무리 쉴 틈을 주지 않고 질식할 것 같은 통치권을 행세하지만 예루살렘 안에서는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살만한 공동체가 자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압제적인 통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더 강력한 로마제국이 아니라 자생하는 사랑공동체, 자생하는 우정공동체, 자생하는 친밀공동체야 말로 로마제국의 대안질서라고 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로마제국을 물리적으로 쫓아내는 것이 해방이 아니라 로마 제국적 가치에 물들지 않고 로마제국과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구원이라고 본 겁니다. 여러분 이해가 되죠? 그런데 예루살렘 종교당국자들은 하나님을 로마제국보다 더 높은 전제명령, 전제군주, 무서운 명령을 남발하여 그 명령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하나님으로 이해했습니다. 누가 배제합니까? 로마제국 통치에 협조하지 않으면 배제하는 로마제국의 군주와 하나님을 거의 비슷하게 본 겁니다. 로마제국의 압제자를 대신하는 총독빌라도와 예루살렘 종교당국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총독들입니다. 어떤 점에서? 영육간의 압제적인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둘 다 성전세를 거두고 속주세를 거둔다는 점에서, 둘 다 무자비하다는 점에서, 둘 다 완악하다는 점에서, 둘 다 지상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마음 속에서, 로마제국은 자기가 지상 권력의 정점에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늘에서 오는 메시지를 들을 귀가 없었습니다. 마치 지금 미국이 그렇듯이, 중국과 미국이 더 이상 초월적인 하나님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도자가 없습니다. 전부 다 멸망 직전에 있는 느부갓네살과 같습니다. 오바마, 시진핑, 다 하나님의 역사의 동선을 포착할만한 영적안목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 주변 누구도 다니엘과 같은 참모가 없습니다. 멸망은 시간문제입니다. 절대로 우리는 그런 제국의 위세 앞에 눌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그런 대제국의 권력정치와 정반대로 작은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우애로, 이 세상이 사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는 것을 개발하여 살아가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혁명이고 로마제국에 대한 효과적인 보이콧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화염병을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서늘하고 조용하게 확신에 넘치고 평화롭게 보이콧하는 겁니다. 세상 방식을, 그런데 보이콧하려면 축제적 영이 있어야 하고 축제적 영이 있으려면 공동체가 돼야 하고 동아리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지지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거대한 세상 방식으로 살지 않는 방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종교당국자들은 로마제국의 쌍생아입니다. 압제적인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세금을 걷는다는 점에서, 명령에 따르지 않는 자들에 대해서는 배제와 죽음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로마제국과 정신적 쌍생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과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을 똑같이 권력남용자라고 보신 겁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둠의 언어가 지배할 때는 숨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둠과 폭력의 활무대가 있을 때 자신을 은닉하셔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을 은닉하게 만드는 것은 로마제국 같은 폭력적인 집단과 예루살렘 종교당국자와 같은 폭력적이고 압제적인 세계관의 소유자가 세상의 권력을 쥘 때 우리 하나님은 은닉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을만한 표적을 주셨지만 믿지 않을 때 은닉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을만할 때 빛이 있을 때 믿으셔야 합니다. 빛이 있을 때 빛을 붙들지 않으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은닉하십니다. 이 언어 하나하나가 너무나 우리 신앙생활을 설명을 잘합니다. 빛이 있을 동안에 어둠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 빛을 꽉 파악하여 잡지 아니하면 우리 주님은 숨으셔서 자신을 은닉하시고 자신의 동선을 감추심으로 하나님 현존의 증거를 우리에게서 철수시킴으로 우리가 하나님 없는 자처럼 살게 내버려 두십니다. 절박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빛을 비추실 때 우리는 빛을 믿어야 하고 빛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빛입니까? 말씀의 빛이 감동으로 우리 마음을 파노라마 칠 때 우리에게 신령한 교제권이 형성돼서, 믿음을 격려하는 신령한 교제권이 우리에게 작동할 때, 내가 개인적으로 기도응답을 자주 받을 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내 일상생활 속에서 확연하게 경험할 때 빛이 있는 것입니다. 빛이 있는 동안에 빛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생애가 빛이 있는 동안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주 나쁜 교회를 7년 다니면 7년 내내 빛이 없는 암굴, 동굴에, 암전된 암실에 내팽개친 것입니다. 우리가 이단단체에 7년 동안 빠지면 영원히 10년 20년 신앙을 갖지 못합니다. 여러분 빛이 있는 동안 빛을 거절하면 나중에는 빛을 선택하고 싶어도 빛을 선택하고 회개할 능력을 근원적으로 박탈당한다, 이것이 이사야 6장 10절입니다. 회개하여 고침을 당할 가능성이 원천 봉쇄됩니다. 내가 지금 회개하면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의 기회를 거절하고 누적적으로 반복적으로 배척하면 회개할 수 있는 찬스가 근원적으로 박탈됩니다.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여러분 지금 깨달아질 때 빛을 잡으셔야 합니다. 지금 성경 읽을 때 감동 올 때가 빛이 있는 동안입니다. 빛이 있는 동안에 빛을 잡아야 주님이 숨으시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숨는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인간의 폭력적 언어, 압제적 언어, 무시무시한 완악함, 인간의 연약함에 도취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무관심한 무시무시한 무관심과 냉정함에 숨으십니다. 41-42절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얼마 전 새누리당의 하태경이라는 사람이 <경향신문>에 글을 썼습니다. 경향신문에 그 사람 기사가 실렸습니다. 하태경은 독실한 신자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 자기 비판적인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태경은 새누리당에서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새누리당에서 쫓겨나면 예배당으로 와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산헤드린의 논리를 스스로 비판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영남권력 카르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신라시대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라시대 드라마가 많은 이유는 이유가 있습니다. 백제 드라마는 60회 이내에 끝나고, 신라는 100회까지 갑니다. 지금도 <태종 무열왕> 최수종이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그 지루한 것이 아직도 하고 있고, 몇 달 전에 수염 없던 놈이 몇 달 후에 수염이 나 있습니다. 1분도 봐줄 수 없는 그 드라마, 한 때는 <선덕여왕>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누가 나올까요? 이렇게 지루하고 이렇게 산문적이고 이렇게 감흥이 없는 드라마, 그런 역사에 빠져서 정신을 잃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 예수님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해석학적 토양이 너무나 황폐해져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남 권력자들은 군부 검찰 국정원 법조 경찰을 다 장악했습니다. 호남 사람은 실제로 내부 고발자가 돼 버립니다. 호남은 들어가자마자 본능적으로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양심 역할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학비리 사립학교가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사학개정법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만일 이사회 족벌사학에 외부이사가 한 명만 있어도 모든 것이 폭로가 됩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막은 겁니다. 왜 족벌이 나쁜 겁니까? 족벌이 만일 아니라면 비자금이 형성되기 매우 힘듭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까지 설득해서 비자금을 쓰려면 외부에서 온 사람은 언제든지 내부고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부고발자가 될 만한 사람이 한 사람만 회사 조직, 최고이사회 의사결정권에 들어와 있어도 나쁜 짓을 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우리끼리 하면, 우리가 남이가 하면 지금 한국의 족벌 가족은 어떤 죄악도 용납해주는 무제한적인 타락의 온상이 가족입니다. 가족주의, 족벌, 이것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왜? 정의보다 가족적인 친분과 사악한 동물적 이기심이 앞서는 것이 가족 족벌입니다. 지금 이영훈 목사도 엄청난 족벌세력 때문에 힘듭니다. 타당한 주의 종이 엄청난 족벌의 위협세력으로부터 건짐받아야 합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부산 영남 카르텔이 한국을 계속 지배하고 있고 끊임없이 지배하는데 충청도 사람이 부산 영남 권력카르텔에 너무 달라붙어 있습니다. 지금은 나제연합동맹 세력이 구축돼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 유일하게 늙은 김종필 씨를 살살 꼬여서 총리 시키면서 유일하게 30만 표 이겨서 당선된 겁니다. 앞으로 호남에선 절대 나오기 힘듭니다. 나제동맹이 이루어지면 선거 해보나 마나입니다. 우리 모두다 대구로 이사를 가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광주사람이 전부 대구로 이사 가서 선거 판도를 바꾸는게 제일 빠릅니다. 광주는 텅 비어 놓고 광주 사람이 전부 다 부산 대구로 이사 가야 합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우리 모두다 새누리당에 들어가는 겁니다. 민주당이 없어지고 새누리당 안에 들어가서 당을 개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말은 너무나 어리석고 유치한 생각임에도 지금 부산 영남카르텔이 관료조직의 40%, 국가 권력기관의 반 이상을 장악하기 때문에 누구도 이 근처에 가면 끼질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모든 권력기관에 하나회가 존재합니다. 하나회가 재판도 언론도 다 장악했습니다. 인간의 영광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예루살렘의 권력자들과 똑같습니다. 지금 교수들 사이에는 삼성을 비판하면 엄청나게 예언자 대접을 받습니다. 저는 <기독교 사상>에 온건하게 삼성비판을 한 번 썼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김회권 교수로 말할 것 같으면 삼성에 대해서 본격적인 비판을 한 사람으로써, 이렇게 소개하는 것을 보고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본격적인 것도 아니고 너무 간단한 글을 썼습니다. 어떻게 삼성을 감히 비판할 수 있는 용기가 어디서 생겨났느냐고 합니다. 나는 평소에 이렇게 산다, 용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제가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삼성전자 이인용 사장 이런 사람들 다 알고 지냅니다. 제가 설교하자마자 삼성의 사외 이사를 하고 있는 법대교수가, 실장님 왜 그렇게 기업을 미워하십니까? 항상 묻습니다. 제 설교를 잘 들어보십시오, 기업을 미워하는지 기업의 불의를 미워하는지, 저는 기업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불의를 예언자적 관점에서 비판한 겁니다, 그러면 삼성이나 대기업주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아첨하는 설교를 좋아할까요? 영혼을 깨우는 설교를 좋아할까요? 영혼을 깨우면서 정말 천국으로 인도하는 설교를 더 좋아합니다. 다만 제가 그들에게 설교할 chance가 없는 겁니다. 큰 교회가 아니라서, 데리고만 오세요. 설교 하겠습니다. 불러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인간의 영광에 사로잡혔다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작아도 인간의 영광에 사로잡혔을 때는 영광이죠. 삼성에 들어가는 사람은 삼성 입사시험, 각 대학에서 멘토 선배단에 바로 들어갑니다. 삼성 입사하는 방법에 대해서 삼성 SAT 시험, 전부 각 대학에서 바로 접촉해야 할 일 순위 선배가 됩니다. 삼성에 들어간 사람은 간증을 합니다. 제가 이렇게 해서 삼성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이렇게 면접을 봤습니다, 그러면 바로 아이들이 따라 적습니다. 삼성에 들어가면 월급을 훨씬 많이 줍니다. 당신은 노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선제적으로 주는 급료를 먹고 판단력을 마비시키십시오, 삼성에 속했을 때 자부심이 굉장히 높습니다. 회사 하나에만 제대로 취직해도 영광이 나옵니다. 다른 판검사는 없습니까? 무시무시한 영광이 있습니다. 높은 회장님 아들? 동문도 의미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우리가 동문이었지만 지금 중소기업 하는 동문과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은 회장님 아들은 완전히 다릅니다. 잡는 위치가 다릅니다. 제가 정말 오랜만에 이십 몇 년 만에 동문회에 갔습니다. 큰 무기 만드는 공장, 우리나라 총알 만드는 무기 회사 사장이 떡 하나 앉아 있고 그 밑에 알랑방구 끼면서 회장님 했던 친구, 다 동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미 동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부시와 친하기 때문에 늘 부시 동생 데려다가 신라호텔에 돈 5만원 내고 밥 먹으러 오라고 늘 연락합니다. 내용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거기 가보면 내가 볼 때는 참 같잖은데 그 사람 중심으로 신한은행 지점장, 외환은행 지점장, 창원지검 부장판사부터 그 사람 밑으로 줄을 쫙 서 있는데 속이 상해서 못 옵니다. 물론 제가 그 친구가 무기 만드는 총알 만드는 아이만 아니면 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총알 만드는 아이입니다. 총알을 만들고 파괴적인 무기를 만드는 아이와 우정을 나눌 수 없는 겁니다. 그건 분명히 옳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영광이 우리가 쉽게 무시할만한 같잖은 게 아닙니다. 대단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그것이 커 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한 번 비췸 받은 사람은 인간의 영광을 덜 사랑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인간의 영광을 미워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의 비췸을 경험하는 사람이 되어야 내적 자유가 생기고 대담함이 생긴다는 사실을 영접해야 합니다. 여러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극복해야 하지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우린 초월해야 하지 절대로 미워하는 감정을 가지고는 누구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는 감화시킬 의무가 있고, 초월하여 극복하여 하나님 영광이라는 열린 창, 초월의 창, 하나님 저편으로 서는 영광의 계시를 보여줄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가향교회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영광을 더 사랑하여 인간의 영광을 극복하며, 인간의 영광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인간의 영광 없다고 주눅 들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에 넘치는 비췸을 경험하고 내적 자유 담대한 자유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간절히 바랍니다. 꼭 사셔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 말씀에 충만하면 약 60년간은 약에 도취된 기분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으면 근거 없는 이상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일단 대담함이 생기고 도도한 아름다움이 생깁니다. 도도한 아름다움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루터가 이런 말을 했죠. 내가 인용한 성서의 말씀에 붙잡혀 있으며 내 양심은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사로잡혔습니다, 나는 내가 가르쳤던 어떠한 가르침도 철회할 마음도 없고 철회할 수도 없습니다, 내 양심이 옳지 않다고 하는 일을 내가 하는 것은 옳지도 않으면 또한 안전한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 저는 제가 한 말 이상 다른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가르쳤던 말이 성서로부터 틀렸다는 판정을 받을 때까지 나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황제 앞에서 1521년에 마틴 루터가 한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 영광에 사로잡혔던 종교개혁자들처럼 인간의 영광에 도취된 이 세상에서 영광의 계시를 비추는 역할, 빛의 자녀들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빛이 있을 때 빛을 믿어 빛의 아들들 빛의 자녀들 빛의 딸들이 되어서 인간의 영광에 도취되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도 없는데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도 경험하지 못했는데 이 세상의 인간의 영광도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주눅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엄청난 직업적 성공을 하지 못하고 권력을 얻고 인맥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영광의 광채에 눈이 부셔서 빛의 자녀들로 살 수 있는 내적 자유와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축도)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나라가 하도 시국이 어수선하고 정의가 실종되고 정사진의가 왜곡된 가운데 진행되지만 아버지 이 로마제국 같은 세상 한복판에 자생하는 사랑공동체 대안공동체 우애공동체 탄생하게 하셔서 이 세상의 교회들이 기초공동체가 되게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최정은 자매님과 정혜영 자매님과 임지영 자매님이 여름에 출산을 앞두고 있습니다. 순산을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하여 애쓰는 아들딸들에게 아이의 출생과 도래를 기다리면서 앙망할 때 우리 모두에게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올 만큼 순산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해외출타중인 아들딸이 있습니다. 군무에 가 있는 아들딸들 있습니다. 지켜주시옵소서. 우리 가향의 아들딸들이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는 영적 낙락장송 되게 도와주소서. 연약하여 병상중인 주님의 아들딸들 있습니다. 하나님 지켜주시기 원합니다. 민지 자매 아버님, 정아 자매 어머님, 특별히 연로한 노쇠한 몸 가운데 생명의 세포를 소생시켜 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주님 연약하여 아플 때도 주님을 찬미하게 하시고 영광의 빛이 없고 주님이 은닉된 어둠 한복판에서도 빛을 향해 소리치게 하여 주소서.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성령의 위로하심과 교통하심과 계시하심의 역사가 주님이 숨어 보이지 않는 한복판에서도 주님을 향해서 소리치기로 다짐하는 가향의 아들딸들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계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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