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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감사하며 살자! (살전 5:16-18)

by 【고동엽】 2022. 2. 12.

범사에 감사하며 살자! (살전 5:16-18)

 

오늘은 추수감사절로 예배를 드립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감사의 분량은 곧 행복의 분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할/
▶어느 부인은 남편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늘 술시중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더구나 술이 만취되어 들어오는 날이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곤 해서 그 시중들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습니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남편이 어지럽혀 놓은 것들을 다 정리하고 나서 잠든 남편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 신세타령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는 언제까지 이 모양으로 살아야 합니까?' 슬피 울며 탄식하면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성령이 감동하사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하셨지...'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감사할 일은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지만 좌우지간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도하다가 스스로 마음이 감동되어 '그래도 과부 신세보다야 낫지 않은가? 지금은 저 꼴이지만, 언젠가는 사람이 될는지도 모르지. 고주망태가 되어서도 제 집 찾아오는 것 하나는 신통하다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니 감사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더랍니다.
토요일은 특히 술을 많이 마셔서 주일날은 꼼짝 못하고 누워서 집을 보면서 아내보고 교회 나가라고 하니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이렇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웃고 있는데, 남편이 눈을 떴습니다.
밤중에 혼자 앉아 실실 웃고 있는 아내를 보자 남편이 놀라서 묻습니다. '왜 웃는 거요?' '당신하고 사는 것이 너무 고마워서 그래요'
그 부인은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을 하나하나 이야기합니다. 남편이 다 듣더니 '나도 예수 믿어줄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그 부인의 간증은 이렇습니다. '내가 10년을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시던 하나님께서 한 번의 감사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할/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너무나 지극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세 가지만 들어주마'
이 사람은 무척 기뻐하면서 무슨 소원을 아뢸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마도 자기 아내가 퍽 싫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첫 번째 소원으로 '지금 마누라를 데려가시고 새 마누라를 얻게 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진짜 소원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내를 데려가셨습니다. 장례식 날 문상객은 참 많이도 왔습니다.
그 문상객들은 한결같이 '아이고, 그 좋은 분이 돌아가셨군요'하며 '남들 몰래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참 좋은 일 많이 하셨는데, 그렇게 착하고 복된 분이 돌아가셨군요'라고 이구동성으로 죽은 아내를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문상객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면서 자기 아내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고, 그런 사람이 죽어서 되겠나' 싶어 두 번째 소원으로 하나님께 '제 마누라를 다시 살려 주십시오'라고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두 번째 소원까지 사용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으니 무엇을 구할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하나 남은 소원을 투자할 만큼 귀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아예 하나님께 여쭈어보기로 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무엇이 가장 필요한 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라' /할/
▶어떤 처녀가 반지를 잃어버리고 집에 와서 분노한 모습으로 불평을 합니다. 그 처녀는 반지 한 개를 잃어버림으로써 행복과 자존심, 생활까지 다 잃은 듯 끊임없이 원망을 쏟아놓았습니다.
이런 딸을 본 어머니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 상황이 반전되었답니다. '얘야, 손가락을 안 잃어버린 것을 감사해라. 네 손가락은 그대로 있잖니. 손가락마저 잃어버렸으면 어떡할 뻔했니? 반지야 다시 살 수 있지만 손가락은 살 수 있겠니?' /할/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그만큼 풍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감사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감사하는 사람은 축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지만,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은 축복의 문을 닫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사랑도 없고, 소망도 없고, 발전도 없고, 더 나아가서 성장도 없습니다. /믿/

 

①지금 우리들이 드리는 추수 감사절은 두 가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추수감사절로 유대인들의 추수기를 기준해서 지켰습니다.
출23:14절에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유대인들은 이 명령에 따라서 일 년에 삼대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유월절'로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킨 절기로 해방절기입니다.
두 번째 절기가 '맥추절'인데 이날은 오순절이라고도 하고 칠칠절이라고도 하는 절기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절기가 바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수장절'로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은 것을 창고에 들이고 가을의 들판에 초막을 짓고 일주일 동안 생활하며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 간 초막을 짓고 생활하던 것을 기념하며 지키던 초막절 절기로 우리가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23:17절에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니라' 여기서 말하는 '너희 모든 남자'란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에 포함되는 20세 이상 되는 모든 남자를 가리키는데, 이스라엘 남자 중 20세 이상 된 사람은 일 년에 세 차례, 즉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에는 의무적으로 성전으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했습니다. /할/

 

㉡또 하나는 미국에서 시작된 청교도 추수감사절 예배가 역사적 배경입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을 설명하려면 1500년대 영국교회의 역사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 당시 스페인과 영국은 그 국력에 있어 양대 산맥이라 할 만큼 쌍벽을 이루었는데 그 당시 세상은 두 나라의 침략 역사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의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23개국 언어가 스페인어 하나로 통하는 이유는 그 시절의 수백 년 동안 아메리카를 침략해서 식민지를 삼았기 때문에 생긴 문화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계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들이 거의 40여 개국이나 됩니다. 영국이 온 세계를 지배했던 역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스페인어와 영어만 가지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불편이 없을 만큼 이 두 나라 언어가 세계로 확산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상대를 너무나 잘 알았던 두 나라는 전쟁의 충돌을 막는 것이 두 나라가 살길이라는 정치적 판단 하에 '우리 두 나라가 사이좋게 살면 세계는 우리 두 나라의 것이 될 것 아니냐?'라고 해서 왕실끼리 정략적 결혼을 했습니다.
스페인의 공주 캐더린과 영국 왕실의 헨리 7세의 큰아들 '아더' 왕자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결혼한 지 6개월만에 영국의 아더 왕자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죽은 대로 처리를 했으면 될 터인데 그의 동생인 헨리 8세가 형수를 데리고 살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왕실과 교회가 마찰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최강대국의 왕자가 무슨 여자가 없어서 죽은 형의 아내 부인인 형수를 데리고 살아야 되느냐? 기독교 국가가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이렇게 교회가 들고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헨리 8세는 캐더린과 살아 6명의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그런데 5명의 아들이 다 죽고 메리라고 하는 딸 한 명만 살았습니다.
이런 불행한 일이 왕실에서 계속 일어나니 이때부터 헨리는 이성을 잃고 잔인해져 자기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이때 교회가 엄청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가 부인도 6명을 얻었는데 그 중에 둘째 부인 앤블렌과 다섯째 부인 캐더린 하워드를 공공연히 사형시켰습니다.
이렇게 잔인하게 이성을 잃으니 기독교 국가에서 그 지도자를 좋게 보겠습니까? '이거, 나라 다 망했다!' 그런 여론 속에 갑자기 헨리 8세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들 중 유일하게 살았던 에드워드가 왕위에 올랐는데 또 금방 죽었습니다. 헨리 8세의 후손들 가운데는 오직 메리라고 하는 딸 한 명만 남았습니다. 그 딸밖에 없으니 여왕으로 나라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메리는 37살에 왕위에 올랐는데 왕실과 영국 교회간의 마찰을 어려서부터 계속 보면서 자라왔고, 더군다나 영국 교회가 메리 여왕을 어떻게 취급했느냐 하면 '너는 사생아다. 정식으로 결혼해서 낳은 자녀가 아닌 사생아다. 너희 아버지가 형수를 데리고 사생아를 낳았을 뿐이다.'라고 자기를 그렇게 취급했으니 이 메리 여왕이 얼마나 영국 교회에 원한이 쌓여 있겠습니까? 여왕이 되자 아버지 헨리보다도 훨씬 더 잔인하게, '피의 메리'란 말을 들을 만큼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그 당시 영국 교회의 최고의 지도자인 크랜머, 래티머, 리들리, 후퍼 감독들이 이 때 다 화형을 당해 죽었습니다. 모두 불태워 죽인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계속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망명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마침내 1620년 남자 78명, 여자 24명, 합해서 102명이 '스피드웰호'라는 배를 타고 신대륙 아메리카로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배가 항해를 하는 도중 고장이 납니다. 더 이상 그 배를 탈 수 없는 것을 알고 배를 바꿔 탔는데 그것이 '메이플라워호'입니다. 이 사람들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신앙을 위해서 나아갔던 땅 아메리카에 도착했습니다.
원래는 북 버지니아에 그들의 삶의 터전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는 이미 영국의 왕권이 거기까지 미쳐서 그곳에서도 바로 신앙 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겠다는 것을 먼저 감지합니다. 그래서 허드슨 강 유역, 그러니까 오늘의 뉴저지 지역에 자리를 펴려고 했습니다. 지명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는데 선장이 거기의 항구사정이 여의치 않으니까 이 사람들을 속이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서 '플리머스'라는 장소에 배를 정박하고 사람들을 내려줍니다.
이들은 아메리카의 지형을 모르니까 '여기가 허드슨 강이 있는 뉴저지 지역이겠거니' 생각하고 내렸습니다. 그 때가 1620년 12월 26일 청교도 102 명이 '플리머스' 해변에 상륙하자 이런 감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여러 가지를 감사 드립니다. 첫째로 180 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시속 2마일로 117일간 무사히 항해하였음을 감사 드립니다. 둘째로 항해 중 두 명이 죽었지만 한 생명이 배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 드립니다.
셋째로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져 못 쓰게 되었지만 배가 파선하지 않은 것을 감사 드립니다. 넷째로 큰 파도로 여자들이 바다에 빠진 적이 두 번 있었지만 모두 무사하게 구출된 것을 감사 드립니다. 다섯째로 신대륙에 도착한 후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을 못 하다가 한 달만에 프리머스에 안착하게 된 것을 감사 드립니다.
여섯째로 3개월 동안 항해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음을 감사 드립니다.> 이것이 청교도들의 첫 감사기도였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면서 반수 이상이 풍토병과 영양결핍으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인디언들에게 옥수수 씨를 얻어다 심고 경작해서 석달 먹을 양식을 수확해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렸는데 그것이 유래가 되었습니다.
감사제를 드리고 난 후 이들이 그 다음에 한 것이 있었습니다. 가장 처음 한 것이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한번 잘 믿어보려고 여기까지 왔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자.' 그래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키우자' 라고 해서 학교를 세웠는데 오늘날 그 정신이 소위 미국의 명문대학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가서야 자기 집을 짓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 후 1789년 초대 미국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 승리와 헌법제정을 축하해서, 11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이날 전 미국인들은 교회에 모여 하나님이 베푸신 크신 은혜를 감사하며, 서로의 축복과 감사를 기원했습니다.
그리고 1863년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링컨 대통령은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국민에게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우리들의 조상들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준 가장 위대한 신앙 유산을 만대에 계승하기 위해 이 날을 국가 축제일로 정합니다.' 그리고 '모든 미국인들은 이 날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은혜를 알고 감사하자'고 외쳤습니다. /할/
▶우리 한국교회는 1921년부터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런 절기를 지킬 때, 잔치하며 즐겁게 지키라고 명했습니다.
⑴절기에 연락하라! 신16:14절에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며 잔치를 배설하라고 했습니다.
⑵온전히 즐거워하라! 신16:1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여기 '네 모든 물산'이라는 말은 한 해 동안 얻은 '수확물, 소득, 수입'을 말합니다. '네 손을 댄 모든 일'이라는 말은 '내가 하는 모든 것, 사업과 직업 모든 활동 범위'를 가리킵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을 복을 주기겠다는 약속입니다. 즉 우리들이 움직일 때마다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할/
더 나아가서 '복 주신 것'이 아니라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 즉 앞으로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 복 받을 것을 믿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즉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감사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할/
▶감사는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우물가에서 두 머슴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머슴 하나가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내가 아무리 물통에 물을 잔뜩 길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금방 다 써 버리고 또 길어야 할 텐데'하고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세상만사가 억울하고 공평치 못하다고 생각되어 원망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불평을 듣던 다른 머슴이 대답을 했습니다. '야, 그것은 네가 잘못 생각한 것 아니냐? 내가 물통에 물을 꽉꽉 길어 가면 집안 식구들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냐? 너도 마음을 고쳐먹으면 즐겁고 기쁠 터인데 늘 불평만 하니까 문제가 있는 것 아니니?' 그렇습니다.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같은 머슴 신세지만 빈 통으로 왔다가 채워 가지고 가는 것을 불평할 수도 있고, 물을 채워 가지고 가면서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죽도록 일만 한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고, 일할 것이 많다고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쪽을 택하느냐? 감사하고 기쁜 쪽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기쁠 수도 있고, 슬플 수도 있는 것이 세상만사입니다. /믿/
저는 목양교회 이규환목사님의 말씀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부 목사님들의 목회는 '야곱의 머숨론'을 말씀하시며 '야곱의 정신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 외삼촌 라반에 집에 가서 열심히 일을 해서 양떼를 늘렸더니 그에게도 하나님이 많은 양떼를 물려주신 것처럼 열심(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목회를 축복해 주신다는 권면이었습니다. /할/

 

㉣신앙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⑴받는 단계가 있습니다.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고, 축복을 받고, 이 단계는 받기 위해 달라고 말합니다. '주시옵소서!'라는 기도가 주종을 이루는 단계입니다.
⑵감사의 단계입니다. 받는 것을 깨닫고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감사하고 받은바 은혜와 축복이 감사해서 '주님 감사합니다.' 기도와 찬송을 드리게 됩니다.
⑶드리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감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단계입니다. 감사하기 때문에 생명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재물을 드리고 재능을 드리고 이 단계야말로 헌신의 단계이며 성숙한 성도의 단계입니다. 천국 백성들의 구호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아멘, 감사합니다.' /믿/아멘!/

 

②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뜻 세 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여기 보면 '항상'이라는 부사에 악센트가 주어져 있습니다. 기쁨을 '카이로'라고 하는데, 그 뜻은 '유쾌하다, 은은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폭죽 터지듯 잠깐 기쁘다가 불꽃 사라지듯 꺼져버리는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은은하게 항상, 오랫동안 계속되는 것이 참 기쁨입니다.
그런데 기뻐하되 '항상, 언제나'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즉 기쁠 때만 기뻐하지 말고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기뻐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그리 쉬운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떤 면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종교적인 언어입니다. 신앙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아이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의미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일 때도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예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되기 전날 밤에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눕니다. 내일 새벽이면 예수님은 체포됩니다. 그리고 내일 오후에는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을 미리 알고 계십니다. 자기를 팔 제자 가롯 유다가 그곳에 와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감정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다에게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이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지금 심정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만찬을 마치고는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올라가십니다. 그 길은 결코 유쾌한 길이 아닙니다. 기분이 좋은 그런 등산도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 마26:30절에 보면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고 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서 찬미한 것이 아닙니다. 그 찬미와 그 기뻐함이 바로 종교적인 힘이고, 신비한 능력입니다. /할/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찬미했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도했습니다. 스데반 같은 이는 순교를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종교적인 삶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⑴기쁨의 원천은 어디인가?
빌4:4절에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기 '주안에서'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 밖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출세한 기쁨, 성공한 기쁨, 인기 누리는 기쁨, 돈 벌고 잘 사는 기쁨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으면 365일이 기쁩니다. 일생이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성공해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실패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하고 잘 살아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병들고 못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예수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여러분, '항상 기뻐하는 사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멘!/

⑵성도가 누리는 기쁨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구원받은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눅10:20절에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고, 합3:18절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롬14: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말씀 속에서 위로와 기쁨이 큽니다.
렘15:16절에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라고 했고, 고전13:6절에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할/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에 기쁘고 즐겁습니다.
시63:7절에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거이 부르리이다' 또 시46:1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우리는 근심 중에서라도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적인 것들 때문에 영적인 기쁨을 상실해서는 안됩니다. 기쁨으로 살아도 우리의 인생은 짧기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기 혼자 세상 짐을 다 지고 가는 것처럼 근심과 염려의 얼굴을 가지며 살아야 합니까?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할/

 

②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냥 기도하라고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쉬지 말고'라는 말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 말씀 같습니다. 눅18장에는 '항상 기도하라'고 했고, 엡6장에는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기도가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은 숨쉬는 것입니다.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멈출 수 없는 것이 바로 호흡입니다. 기도가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산소를 들여 마셔야만 살 수 있듯이 영적 생명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을 들여 마셔야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안 하면 죄가 됩니다.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알았던 사무엘은 삼상12:23절에서 '결단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는데 있습니다. 그럼 밤낮 예배당에서 기도만 하며 살란 말입니까? 그럼 언제 가정생활하며 언제 사회생활을 합니까? 이런 의미의 쉬지 말고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기도에는 '부르짖는 기도와 마음속으로 하는 기도와 생활 속에 기도와 삶 자체의 기도'가 있습니다. 여기 '쉬지 말고'는 24시간을 입으로 기도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부단히 의지하라는 것이요, 항상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라는 의미요, 기도하는 정신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믿/아멘!/
▶기도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지름길이요, 통로입니다. 사55: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할/

 

③범사에 감사하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범사'란 말이 묘한 말씀입니다.
범사라는 말은 '모든 경우에, 어떤 경우든지'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유익이 주어졌을 때는 물론이고, 손해를 보았을 때도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구원받은 백성으로 믿음의 감사를 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해야 합니다. 받고 나서 감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깨달음과 자족하는 감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믿음에서 나오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감사는 감사 중의 감사이고, 최고의 성숙한 신앙 의식에서 주어지는 감사입니다.

믿음의 감사는 받아서 하는 감사가 아니고 빼앗기고도 하는 감사입니다. 또 믿음의 감사는 건강해서 하는 감사가 아니고 병들고 나서도 하는 감사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감사는 오래 살고 장수해서 하는 감사가 아니고 일찍 죽으면서도 하는 감사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감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감사가 아닙니다. 감사의 격이 다릅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이것이 믿음의 감사입니다.
욥이 하루아침에 10남매를 잃었습니다. 집이 무너져서 한꺼번에 10남매가 죽은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전 재산을 잃어버립니다. 동방의 부자였던 욥이 소유하고 있던 많은 양과 소와 약대들을 갈대아 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모두 빼앗아 갔습니다. 그는 또 아내까지 잃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몸에 병까지 들었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부스럼이 돋아서 기왓장으로 긁어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기적일 뿐입니다.
그런 가운데도 그는 욥1:21절에서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이것이 환난 중에 나오는 믿음의 감사입니다. 그래서 이 감사를 믿음의 감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명령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말씀은 어떠한 경우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평안하든지 고난스럽든지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범사의 생활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감사할 만한 조건을 찾아내어 감사하는 사람만이 신앙 인답게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적인 감사는 찰나적인 것이요, 순간적인 것이요,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의 감사는 차원이 높은 그런 감사입니다. /믿/

㉠감사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⑴말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고백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⑵몸으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나의 손과 발과 입과 눈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⑶물질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보물 있는 곳에 마음 있으므로 물질로 주님을 섬깁니다.
⑷마음으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마음이 가야 몸도 물질도 관심도 가게 됩니다. 이런 감사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감사의 또 다른 의미가 무엇인가?
⑴감사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까지는 믿음이 아닙니다. 종은 칠 때까지는 쇠붙이에 불과하지 종은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드러날 때만 사랑입니다. 복은 감사할 때까지는 복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사는 믿는 자에게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대답입니다.
주님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감사하십시오. 감사하지 않으면 믿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할/
⑵감사는 그 분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시103:2절에 '너희는 여호와의 은택을 잊지말지어다'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우리 민족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감사해야될 민족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이만큼 사는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 건설에 있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만큼 잘 살게된 것은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한국의 교회 부흥과 경제 부흥이 함께 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회 부흥이 끝나니까 경제 발전이 멈추고 계속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냥 보면 안됩니다. 우리들은 역사 밑에서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의 그 손길을 봐야 됩니다. /아멘!/
⑶감사는 '축복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시100;4절에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기서 '그 문'은 하나님께서 계신 그 궁정의 문입니다. 승리가 있고 응답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요10;9절에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기 문은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집의 문'을 말합니다. 구원을 얻는 문이요,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는 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되는 문입니다. 능력이 되는 문입니다. /할/
그 곳엔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 문안으로 들어가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고, 또 그것을 받아서 먹고 마실 수 있는 그런 문입니다. 그런데 그 문에 들어가는 조건이 감사하므로 그 문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감사의 키를 사용 않고는 그 문을 열 수 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거룩한 전에 올라오실 때 여러분의 가슴에 얼마만큼의 감사가 채워져 있습니까? 여기까지 이르도록 우리의 가정을 지키시고 나의 걸음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오늘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가슴에 진실한 감사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계시는 궁정의 문이 열리고 주님의 축복의 손에 잡히느냐 하는 것입니다.
⑷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싹틉니까? 원망과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들은 감사의 싹을 자르는 요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 안에서 산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낙심하며 삽니다. 믿음이 떨어진 징조입니다. 믿음으로 삽시다.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망, 불평은 마귀가 기뻐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는 믿음을 키우십시다! /할/
⑸감사의 조건은 '찾아 만드는 사람의 것'입니다.
저절로 내 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를 바라고 있으면 내 안에 있는 감사는 점점 가난해지고 결국엔 아무 것도 감사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감사는 감사할 조건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뜻도 그런 것입니다. 범사란 모든 일을 다 말하는 것인데, 눈물 날 일에 어떻게 감사하고, 가슴 아픈 일에 어찌 감사할 마음이 생겨나겠습니까? 그러나 그럴지라도 '실패한 그 자리에서 감사할 일을 더듬어 찾으라'는 말씀이요,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눈물방울이 감사가 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디서든지 감사의 조건을 찾아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할/
⑹모르고 사는 감사도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면 그처럼 괴롭고, 슬프고, 답답하고, 불안스러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우선 내가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언제 몇 월 며칠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또 우리는 내일을 모르고 삽니다. 이것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내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살기에 오늘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만일 내일 일을 다 알고 산다면 매일 매일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몸에 무슨 병이 있는지 모르고 살기에 지금도 잘 먹고 잘 지냅니다. 알고 보면 불안해서 살 수 없습니다. 모르고 사는 즐거움!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또 역사의 종말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감사요 행복입니다. 만일 그 날과 그 시를 알고 있다면 지금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또 주님이 언제 오실 지 모르고 있는 것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래야 항상 긴장하고 깨어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우리들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빌4:6-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늘 본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절의 결론은 시50:23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 (추수감사절 예배 설교/재 정리한 원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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