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의 힘! 연합의 아름다움! (막 2:1-12)
우리들 주변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친구들 중에는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친구들도 있고,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해를 주는 나쁜 친구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믿음도 있었겠지만 순전히 친구들의 믿음과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중풍병을 깨끗이 고침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본문에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여러 지역을 다니시며 복음을 전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셔서 베드로의 집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러자 그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려고 모여들었습니다.
베드로의 집은 사람들로 꽉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밖에까지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그때 네 명의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인 채 예수님께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의 지붕을 뜯고 중풍병자의 침상을 예수님께로 달아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네 친구가 뜻을 모아 중풍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 친구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우정을 보셨습니다. 믿음도 보셨습니다. 한 마음으로 연합을 이루어 친구를 돕는 그 우정을 보시고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할/ ◀제목소개!▶
성경은 연합을 참 귀하게 다루십니다. 시133:1절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여기 '연합'은 '하나됨, 함께, 똑같이, 모두 동시에, 모두 함께'라는 의미로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가 약 140회나 나왔습니다.
연합과 동거는 비슷한 말이지만 용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연합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만 동거는 부부와 같은 특수한 관계에 사용되는 말입니다. 곧 신령한 공동체인 교회와 성도에게 쓰여진 단어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된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과 성도의 사이를 부부의 관계로 비유했습니다(고후11:2).
세상에서 부부의 사랑은 이성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에 근거하지만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인 '아가페'에 근거합니다.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부요케 해 주고 그 사랑을 깨닫는 자로 하여금 감격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도 그 사랑을 실천하게 됩니다.
요일4: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할/
교회는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본받아 서로 먼저 희생하는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고 아름다운 동거가 됩니다. /아멘!/
①오늘 주제가 연합입니다. 먼저 몇 가지를 생각해 보겟습니다.
⑴연합은 힘입니다. 연합은 아름답습니다.
▶아프리카 어느 지방에 작은 개미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 개미들이 떼를 지어 행진하게 되었는데, 그 행진 대열의 길이가 10여 리나 되었습니다. 모든 짐승들이 이 움직임을 보고는 무서워 떨며 그 앞에서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짐승 중에 제일 큰 코끼리는 숲으로 달아났고, 겁이 없는 밀림의 맹수 사자조차 그 광경을 보고는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습니다. 숲으로 피한 코끼리가 말하기를 '작은 개미를 어찌 무서워 하겠는가마는, 저 개미들이 떼를 지은 곳에 들어갔다가는 수만 마리가 몸에 붙어 살을 뜯어먹을 것이고 영락없이 여러 마리의 밥이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아프리카에서 가장 무서운 것들 중의 하나는 개미라고 합니다. 이 작은 개미의 힘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되는 연합에 있습니다. 미미한 벌레라도 힘을 연합하여 하나가 되면 자연히 강해지는데 믿는 성도들이 함께 연합한다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믿/
⑵연합은 마음과 뜻이 같아야 합니다.
▶릴레이 경주는 고대 그리스의 고린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네 명이 한 팀이 되어 달렸다고 하는데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바통이 지금같이 나무 막대가 아니라 봉화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빨리만 달린다고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봉화의 불이 꺼지지 않게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불이 꺼지는 실수는 다음 주자에게 넘겨줄 때 많이 한다고 합니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봉화 바통을 넘겨주는 주자와 받으면서 달리기를 시작하는 주자의 호흡이 잘 맞고 속도와 리듬이 일치해야 빨리 인계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팀웍입니다. 일치와 연합이 잘 이루어져야 합니다. /할/
⑶연합은 마음이 변하면 금이 갑니다.
▶'남자의 마음'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신혼 초에 사랑하는 아내가 아플 때는 '어서 옷 입어 병원에 가야지'
1년 후에 아프다고 전화하면 '여보, 지난 번 간 병원 알지? 택시 타고 다녀와 오늘 빨리 갈게'
2년 후 아프다고 전화하면 '집엔 약도 없어? 약 먹고 누워서 쉬라고 또 몸살이 난 모양이구먼'
5년 후 몸이 불편하다고 전화하면 '도대체 뭘 한다고 당신은 맨 날 아프다는 거야? 나 원 참, 원래 당신은 좀 약한 체질이었던 것 같아.'
10년 후 전화도 못하고 누워 있는 아내를 본 남편 왈 '아무리 몸이 좀 아파도 집안은 정리해 놓고 있어야지. 나 원 참, 이러니 밖에서 되는 일이 있겠어!' 이런 남편은 연합과 동행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⑷연합은 소통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남쪽 지역 출신 장교가 있는 부대에 서울 지역 출신 신참 사병들이 배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곧 전쟁이 났습니다. 적에게서 폭탄이 날아오자 장교가 '수구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출신 신참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망설이다가 그만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장교 다음부터는 '엎드려'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시 배속된 서울 신참들을 데리고 전투에 참여했는데, 폭탄이 날아왔습니다. '폭탄이다. 엎드려' 서울 출신 신참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장교는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폭탄이 다시 날아왔습니다. 급한 마음에 장교는 '아까멘키로'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서울 신참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전부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합은 소통이 되어야 합니다. /할/
⑸연합은 나도 살고 너도 사는 아름다움입니다.
▶1970년대 후반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해바라기와 나팔꽃' 이야기를 어느 목사님이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담장 아래 어느 꽃밭에 해바라기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두 형제는 자기들의 이상인 해님을 향해 뻗어가며 서로 누구의 키가 더 크게 자랄 것인지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때론 담장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 서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제의 발 밑에 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기댈 곳을 찾아 이 두 형제 사이를 기웃거리던 나팔꽃이었습니다. 나팔꽃이 먼저 작은 해바라기에게 부탁을 합니다.
'작은 해바라기님! 저는 혼자서는 설 수 없는 존재랍니다. 저는 누군가를 의지하고 자라야만 꽃을 피울 수 있답니다. 해바라기 님께서 저의 기댈 곳이 되어 주신다면 저의 가장 아름다운 꽃을 당신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들은 작은 해바라기는 버럭 신경질을 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라고! 나는 너처럼 거추장스러운 존재는 딱 질색이야! 나는 누군가가 내 몸에 와 닿는 것조차 싫어. 그런데 너는 나를 칭칭 감고 올라가서 나를 꽁꽁 묶을 것 아니니? 나는 저기 하늘에 보이는 해님을 향해 커 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단 말이야. 그러니 다른 데나 가서 알아보라고'
작은 해바라기의 가시 돋친 말에 나팔꽃은 잔뜩 주눅이 들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나팔꽃은 큰 해바라기에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무척이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런데 큰 해바라기는 발치에 있는 나팔꽃에게 빙긋이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큰 해바라기의 그 환한 미소에 힘을 얻은 나팔꽃은 용기를 내서 부탁합니다.
'큰 해바라기님, 저는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는 존재랍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자라서 꽃을 피울 수 있답니다. 좀 거추장스럽더라도 큰 해바라기 님께서 저의 기댈 곳이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큰 해바라기 님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저는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여 드릴 수가 있습니다'
큰 해바라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팔꽃 아가씨! 걱정 마세요. 제가 아가씨의 버팀대가 되어 드릴게요. 사실 해님을 바라보며 남보다 더 크게 자라려고 경쟁하듯 달려온 나의 삶은 각박하기만 했답니다. 아가씨와 함께 저기 하늘의 해님을 향하여 더불어 여행을 하고 싶군요. 어서 아가씨의 여린줄기를 제 몸에 기대세요. 제 몸에 약간 거칠은 솜털이 박혀 있긴 하지만, 조심조심 타고 올라오신다면 못 오를 리 없을 거예요'
큰 해바라기의 기꺼운 허락을 받은 나팔꽃은 기쁨에 겨워 해바라기의 몸을 힘껏 감싸 안으며 자라 올랐습니다. 마침내 나팔꽃은 연분홍 나팔꽃을 가득 피웠고 바깥세상의 아름다움도 구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팔꽃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큰 해바라기는 더욱 아름답고 우아해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 쳤습니다. 비바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쓸어 갈 것처럼 거세게 몰아쳤습니다. 밤새도록 불던 비바람이 잔잔해지고 드디어 아침해가 돋았습니다. 나팔꽃은 부랴부랴 꽃을 피워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나팔꽃은 작은 해바라기의 모습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작은 해바라기가 목이 꺾인 채로 흔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밤의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목이 부러진 것입니다. 그러나 더 많은 바람을 맞은 큰 해바라기는 상처하나 없이 든든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 거센 비바람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큰 해바라기를 꽁꽁 감싸고 있는 나팔꽃 덩굴이 보호했던 것입니다. 아침의 따사로운 해님을 향해 큰 해바라기와 나팔꽃은 함께 행복했답니다. /할/ 연합은 서로 사는 비결입니다. /아멘!/
②본문으로 가겠습니다.
⑴중풍병자는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중풍은 뇌혈관이 막혀서 오는 뇌경색과 뇌혈관이 터져서 오는 뇌출혈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중풍의 원인은 대체로 고혈압이나 당뇨, 심장병 등을 가지신 분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질병이란 우리의 몸만 아픈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 아프게 만듭니다. 우리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아마 중풍 병자는 매일매일 수없이 '나는 버려진 존재야. 내 인생은 끝이야' 이렇게 자기를 비하했을 것입니다.
이 중풍 병은 온 가족도 괴롭습니다. 혼자서는 거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의료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풍 병자의 가장 큰 장애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을 포기합니다.
질병 중에 가장 무서운 병은 마음의 병입니다.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스스로 더 이상의 가능성을 열어놓지 않고 자신을 닫아버립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부터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다고 스스로를 포기합니다.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가? /할/
어떤 분이 이 중풍으로 쓰러져서 현대 아산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을 때 목사님이 심방을 갔습니다. 그 환자는 목사님을 보더니 엉엉 울면서 90%는 가망이 없다며 울며 기도해달라고 하면서 회개하더랍니다. 집사인데 '내가 오늘날까지 담배를 피웠다'고 하면서 막 회개를 하더랍니다. 아마도 그게 마음에 걸렸나 봅니다. 담배도 중풍하고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아직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면 오늘 담배 재떨이를 날려 버리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담배를 피우면 대접을 못 받습니다. 앞으로 식당마다 다 금연구역이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집에서도 못 피우고 밖에 나와 한 쪽 구석에 가서 쪼그리고 피우는 걸 보면 불쌍해서 못 봅니다. 여러분, 그거 빨리 때려치우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끊을 수가 있습니다. /아멘!/
⑵중풍병자에게는 친구가 있었습니다(3).
여러분, 우리 인생 길에서 친구가 필요합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가 있어야 그 인생길이 행복합니다. 한사람의 친구가 주는 참된 위로는 주위의 백 명의 사람이 퍼붓는 비난과 조롱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독일의 시인이었던 '에센 바흐'라는 사람이 이렇게 멋있는 말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벗은 천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힘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한사람의 멋진 친구가 있으면 백 명이, 천 명의 사람이 나를 향해서 조롱하고 나를 불행에 빠트린다고 해도 훨씬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멘!/ 중풍병자에게는 바로 이렇게 그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 자신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옆의 사람이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를 살리기 위해서 연합하여 노력했습니다. /할/
⑶이 친구들이 예수님께서 집에 계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1).
세상에는 소문이 아주 많습니다. 좋은 소문도 있고 나쁜 소문도 있습니다. 죽이는 소문도 있고, 살리는 소문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은 살리는 소문입니다. 이 소문을 들어야 삽니다. 구원의 소문입니다. 회복의 소문입니다. 은혜의 소문입니다. 축복의 소문입니다. 기적의 소문입니다. /할/
오늘 이 자리가 예수님의 생명의 소문을 듣는 자리입니다. /아멘!/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기 위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영적인 경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일 성수하여 교회에 나와서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항상 교회 중심으로, 성전 중심으로, 성경중심으로 살아야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야 우리의 영혼이 살 수 있습니다. /아멘!/
⑷이 친구들이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연합의 힘을 모았습니다(4).
그들의 생각이 적중했습니다. 좋은 생각을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멘!/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문제(장애)는 언제 어디서나 있습니다.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여 주님 앞으로 나아가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용신할 수 없다는 말은 발 디딜 틈이 없이 수많은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다는 말씀입니다.
중풍병자를 들 것에 든 친구들이 예수님께서 계시는 집에 많은 사람들 때문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데리고 갈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지붕을 걷어내고 사다리로 올라가서 예수님 바로 앞으로 내려놓는 방법을 생각해내게 됩니다. 팔레스타인의 지붕은 짚이나 나무 잎으로 덮어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걷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붕까지는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를 걸어놓았습니다.
이 친구들은 지붕을 걷어내고 친구를 내려놓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는데 이 방법은 아주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쉬운 방법이라도 생각해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생각해내지 않으면 오늘따라 왜 이리도 사람들이 많은 거야 하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해내면 불평 불만할 이유가 없습니다. 생각해낸 대로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내려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 생각을 누가 주었습니까? 주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믿/
▶우리는 솔로몬의 지혜를 생각합니다. 어느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자기가 아이의 엄마라고 주장하면서 재판해 달라고 합니다. 오늘날처럼 피나 머리카락 등을 통해서 유전자 확인을 하여 친자확인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습니다.
갓난아기 때는 뚜렷하게 아빠를 닮았는지, 엄마를 닮았는지, 아니면 옆집 아저씨를 닮았는지 모릅니다. 어렴풋하게 엄마 닮았구나. 아빠 닮았구나. 친가 닮았구나. 외가 닮았구나 하는 정도이지 정확하게 누구를 닮았다고 정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이 여인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저렇게 보면 저 여인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애매한 시간을 흘러 지나가고 있을 때 솔로몬이 생각해낸 것은 어미의 모성애를 건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미의 친 엄마면 아이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아이의 친모가 아니면 아이가 죽어도 괜찮다 하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신하에게 칼을 가져다가 반쪽으로 갈라서 나눠주라고 합니다. 그럴 때 아이의 친모는 아이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차라리 내가 아이를 포기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의 친모가 아닌 여인은 아이를 죽여서 자기 아이도 되지 않게 하고, 저 여인의 아이도 되지 않게 해 달라고 합니다.
답은 나왔습니다. 아이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여인이 아이의 친모입니다. 이 방법도 그리 어려운 방법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내지 않으면 어려운 방법이고, 생각해내면 아주 쉬운 방법입니다.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보고 싶어도 예수님을 볼 수 없었던 한 사람이 있습니다. 삭개오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꼭 보고 싶은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길가에 있는 뽕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뽕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해낸 것은 오직 삭개오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이들은 뽕나무에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뽕나무에라도 올라가서 지나가시는 주님의 얼굴이라도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 때문에 삭개오의 행복이 시작되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좋은 생각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생각을 지혜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은 은혜입니다. /아멘!/
⑸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5).
본문에 '믿음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복수로 되어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네 명의 믿음, 아니 중풍병자까지 합친 총제적인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이 보이는 것입니까? 믿음은 추상 명상입니다. 그런데 보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보셨을까요? 그들의 연합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간절함을 보셨습니다. 그들의 사랑을 보셨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사랑의 헌신을 보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감동하셨습니다.
세상을 사는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물론 중요한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 삶에 있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 박사는 '과학의 근거는 믿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우주선도, 그 어느 것도 믿음이 없이는 탈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이 과학의 기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믿음은 과학의 기초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정의 안정을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문화의 뿌리는 바로 믿음입니다. 한 국가의 발전과 번영도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믿음만 있으면 국가적인 위기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국민이 똘똘 뭉쳐서 힘을 합치면 어려운 난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시인 '에머슨'은 '인간은 믿도록 태어났다. 나무가 과일을 맺듯이 인간은 믿음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서도 믿음을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신구약 말씀을 보면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32,500가지나 됩니다. /할/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믿음은,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가능성을 믿는 것이 무슨 믿음입니까? 그냥 믿고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불가능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1등이 1등 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1등은 공부하면 그냥 1등이 됩니다. 그러나 꼴찌가 1등이 되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부자가 부자 되는 것이 뭐 어렵습니까? 부자는 부자가 됩니다. 돈이 돈을 벌어줍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가난할 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부자 되게 하옵소서. 성공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환경과 여건이 좋지 않고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 나도 행복하게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불가능에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능력 주시면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하고 안 될 것도 믿고, 못할 것도 믿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아멘!/
⑹믿음은 축복이 따르게 됩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5)
여러분,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 바로 죄입니다. 이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을 치료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믿고 죄 사함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믿/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실려온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씀으로 그의 영혼의 병과 아울러 육신의 병까지 치유하셨습니다. 먼저 죄사함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육신의 치료입니다. /할/
구약 시대에는 인간의 질병이 치유되려면 항상 먼저 죄 사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시103:3절에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총 중 가장 큰 것은 죄에 대한 용서입니다. 사죄의 은총이 가장 큰 은총입니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꼭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이유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큰 진리요 기본이요 중심입니다. 이것이 흔들려버리면 신앙생활 할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죄의 문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며 피 흘리신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결코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멘!/
'무디' 목사님은 '죄의 소리는 크다. 그러나 용서의 소리는 더 크다'라고 했습니다. 병의 소리도 크지만, 치료의 소리는 더 큽니다. 불행의 소리도 크지만, 행복의 소리는 더 큽니다. 실패의 소리도 납니다. 그러나 성공의 소리는 더 큽니다. 패배의 소리도 납니다. 그러나 승리의 소리는 더 큽니다. 저주의 소리보다도 축복의 소리가 더 큽니다. 하나님께서 이전보다 나중을 더 크게 축복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할/
⑺예수님의 사역에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무리들도 있습니다(6-7).
사실상 서기관들이 그곳에 나타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 그리스도를 책잡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군중들 틈에 끼어 자리를 잡고 앉아 예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대한대로 예수께서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시자, 그들은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들이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사죄를 선언하신 것은 '참람하도다', 즉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유대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인간 예수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메시야,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 본체가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사죄를 선언하신 것은 그가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본체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서기관들의 마음 중심을 아시는 예수께서 질문하십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사죄의 선언과 완전한 치유의 기적 중 어느 것이 쉽겠느냐? 이 질문에 어느 것도 더 쉽다고 답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모두가 똑같이 불가능한 일이며, 하나님에게는 똑같이 쉬운 일입니다.
아마도 서기관들에게는 어느 누구도 죄 사함의 성취를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죄 사함에 관한 말이 더 쉽게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 걸어가라'는 것은 실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더 어렵게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느 쪽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말씀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죄 사함을 선택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제 모든 사람이 그가 실제로 죄를 사하는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치유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할/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기 위해서' 사죄를 선언하시고 이어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 중풍병자가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침구를 걷어 가지고 걸어 나갔습니다. /할/
⑻예수님은 서기관들의 마음을 다 아셨습니다(8).
'예수께서 곧 중심을 아시고' 우리의 믿음을 보신 주님은 우리의 생각도 다 아십니다. 말한다고 해서 알고,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라 말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에 생각을 가졌다면 그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아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교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아십니다.
여러분이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목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분은 전지전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죄가 있다면 자복하고 통회해야 합니다. 불 신앙의 마음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의 머리칼까지도 다 세시고 아시는 그분께 내 인생을 맡기고 의지해야 합니다. /믿/아멘!/
⑼우리에게도 '죄 사함의 권세'를 주셨습니다(요20:21-22).
부활하신 예수께서 이 죄 사함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두려워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는 죄 사함의 권세, 오직 하나님만의 권세가 제자들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인간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신의 죄가 사함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뿐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희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 사함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되고 그렇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죄가 그대로 머물러 사망 권세 아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주어진 복음 전파의 사명이 곧 죄 사함의 권세와 같은 것입니다. 사도들만이 아니라 예수 믿는 누구든지 복음을 증거할 때, 그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게 되지만, 복음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죄가 그대로 남아 끝내는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막16:16절에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그래서 전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할/
⑽네 친구의 연합은 결국 그를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11-12).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할/
▶사람들은 중풍병자가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낫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중풍병자가 지붕을 뚫고 들어와서 문으로 나갔습니다. 처음 보는 일입니다. ▶중풍병자는 누워서 들어 왔다가 걸어서 나갔습니다. 처음 보는 일입니다. ▶중풍병자는 하나님을 모르고 들어 왔다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갔습니다. 처음 보는 일입니다. ▶중풍병자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들어 왔다가 더 놀라게 하며 나갔습니다. 처음 보는 일입니다./할/
③본문에서 우리가 찾을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지붕 뜯기 전도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할/ '네 명씩' 조를 짜서 연합을 이룹시다. 이들이 하나님이 맺어 주신 영혼 구원의 동지들입니다.
⑴전도는 믿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에 중풍병 자를 네 사람이 메고 주님 앞에 내려놓은 것은 전도의 협력의 모델입니다.
우선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저들은 다 같이 주님께 병자를 데리고 가면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전도에는 믿음으로 하나 되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 네 사람의 믿음이 하나 하나 한 믿음으로 뭉쳐졌습니다. 만일 이 네 사람 중에 어느 한사람이라도 다른 믿음을 가졌거나, 다른 마음을 먹었다면 이 사람은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영원히 고침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 되는 믿음, 합심하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얻어야 할 귀한 신앙의 자세는 연합하는 일입니다. /아멘!/
⑵그뿐 아니라 이들은 병자에 대한 '동정심'과 '사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중풍병 자처럼 자기 스스로 주님 앞에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세상의 잘못된 지식으로 풍 맞은 사람들도 있고, 세상 재물과 권력의 풍 맞은 사람들도 있고, 세상 향락과 일락의 발신 불수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세상의 단편적 지식으로 영적 불구자들이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안다고 하는 세상의 지식으로 영적 불구자들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메고 오려면 그들에 대한 영적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저들을 보는 마음이 같아야 합니다. 연합과 협력이란 '힘을 합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전도는 이렇게 마음을 함께 하는 연합하는 마음과 협동심이 있어야 합니다. /할/
⑶전도에는 함께 짐을 메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육신의 한 생명도 잉태하여 탄생시키기까지 10달 동안의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가야 하듯이 한 영혼을 구원시키는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만, 생각으로만이 아닌 직접 짐을 함께 지는 행동의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사람들은 함께 침상을 메고 왔습니다. 오는 동안 땀으로 온 몸이 젖었을 것입니다. 더더욱 사람들이 운집한 것을 뚫지 못하여 지붕으로 올라가 구멍을 내어 거기에서 환자를 달아 내려보냈다는 사실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남의 집에 천장을 구멍을 낸다는 것은 주인에 대한 손해 배상을 각오했을 것입니다. 멀쩡한 남의 집에 구멍을 내려면 그만큼 용기도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에는 기도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찾아 나서야 합니다.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그들을 주께로 인도하려면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이 짐을 메고 와야 합니다. 물질로, 시간으로, 몸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한 영혼이 구원 얻게 된다면 그 수고와 희생은 값진 진주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단12:3절에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할/
⑷전도에는 난관이 있게 마련이고, 또한 그것을 함께 극복해야 합니다.
전도가 한 생명을 살리는 운동이라면, 그렇게 쉽게만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오늘 네 친구들을 보십시오! 환자를 메고 오는 것도 힘들었지만, 우선 사람들에게 막혀 버렸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전도에 방해물은 사람입니다. 전도하는 일에 제일 큰 방해는 물질도 아니고, 자연 환경도 아니라, 사람들의 박해, 비난, 조롱, 그런 것들 때문에 전도에 좌절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한 생명을 인도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지옥 갈 영혼을 건져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생명을 살리는 전도는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고 나면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으시고 함께 연합을 이루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⑸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미국 매릴렌드 주에 살고 있는 '데이빗'이란 농부가 있었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산에 갔다가 금빛 나는 돌을 발견했답니다. 가만히 보니까 금맥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땅을 팔고 돈을 구해서 그 산을 샀답니다. 그리고 채굴하는 기계를 사서 채굴했는데, 처음에는 꽤 많은 금이 나오기 시작했답니다. 빚도 갚고 돈을 벌겠다 했더니, 그만 금맥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금맥이 좀 내려가다가 끝나버린 것입니다. 파고 또 파도 금이 안 나와서 채굴기계와 광산을 고물상에게 다 팔고 떠났답니다.
고물상 아저씨가 사고 보니 채굴 기계가 쓸모 없었답니다. '이왕 산 것 밑져야 본전이니까 나도 한번 채굴이나 해볼까?'해서 채굴기사를 구해서 채굴을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부터 딱 1m를 파고 들어갔더니 금맥이 터진 것입니다. 엄청난 금이 매장돼 있어 갑자기 떼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데이빗이란 사람은 가슴을 치며 눈물 흘리며 후회했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의 구호가 '1m'가 됐답니다. 그 1m만 더 팠으면 팔자를 고쳤는데, 1m에 한이 맺혀서 그가 '1m철학'을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할 일이 없어서 보험업을 하게 됐는데, 보험을 하다가 장애에 부딪히고, 잘 안 되고 어려우면 그는 늘 '1m'를 생각했습니다. '한 번 더 도전해 보자, 한 번 더 나가보자, 한 번 더 해봐야지' 이래서 '1m'를 더 나가니까 무엇이든지 되더랍니다. 그는 보험업계의 큰 인물이 되고, 연봉이 백만 달러가 넘는 보험업자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까? '1m'만 더 파보시길 바랍니다. 한 걸음만 더 나가 보시길 바랍니다. 그곳에 반드시 길이 있을 것입니다. 갈6:9절에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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