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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내 편으로 모시는 삶! (시 118:1-10)

by 【고동엽】 2022. 2. 11.

여호와를 내 편으로 모시는 삶! (시 118:1-10)

 

어제 영국 런던에서 세계올림픽 개막식이 화려하게 펼쳐졌습니다. 우리 한국 선수들은 100번째로 당당하게 그 모습을 들어냈습니다. 드디어 올림픽의 계절이 온 것입니다.
국민들의 응원도 대단합니다. 축구예선도 무승부로 비겼지만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잘 했습니다. 왜 국민들이 '대한민국'을 외치며 그들을 응원합니까? 그들이 우리편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한국선수들이 대단한 선전을 했습니다. 한국은 역대 가장 많은 메달을 받았고, 예상했던 목표를 훨씬 뛰어넘어 동계 올림픽의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그대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여자 3000미터 쇼트트랙 계주경기였습니다. 한국은 이 분야에 독보적인 존재로 지금까지 계속 금메달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도 기대에 저버리지 않고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달렸고, 1위로 골인했습니다.
하지만 심판은 우리 선수의 진로방해 반칙을 선언했고, 급기야 실격처리를 하면서 금메달이 날아갔습니다. 선수들은 억울하다며 통곡했고, 코치도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온 국민도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그때 경기의 주심은 호주의 '제임스 휴이시'라는 사람입니다. 특히 그 심판은 2002년 대회 당시 우리 선수의 금메달을 빼앗아 미국선수에게 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더욱 억울해 하고, 국민들은 당시의 아픔을 다시 떠올리며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호주대사관을 폭발시키겠다는 협박문자가 접수되어 경찰이 진화에 나섰습니다. 올림픽에서 심판의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에 아무리 항의해도 회복되기는 않았습니다.
그런 아쉬운 면도 있었지만 그 때 가장 감동적인 경기는 역시 피겨스케이트의 김연아 선수였습니다. 그의 연기는 정말 환상적이었고, 거의 완벽했습니다. 김연아의 경기는 시간당 시청률로 최대를 기록했고, 서울시내 차량이 아주 한가했다고 했고, 주식매매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경기는 온 국민을 잠시나마 텔레비전 앞으로 모으게 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든 일손을 멈추고 숨죽이며 그의 경기를 시청했습니다. 이처럼 국민적 관심 속에 드디어 금메달이 확정되자 온 국민은 환호를 외치고, 박수를 치며, 모두 얼싸안고 감격하고 또 기뻐했습니다. 선수도 감독도 국민들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는 김연아의 금메달에 이처럼 열광했을까요? 왜 우리는 호주심판의 판정에 분통을 터트리고, 날아간 금메달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같은 편, 우리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상대선수가 잘해도 우리선수들에게 더 마음에 가고, 격려하고, 응원하고, 함께 울고 웃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내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할 중요한 것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이 내편, 우리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아멘!/
본문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내 편이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6절과 7절에서 반복하여 '여호와는 내편이시라, 여호와는 내 편이 되사' 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할/
하나님은 다윗의 편이었고, 다윗은 하나님께 속해있었습니다. 바로 그 믿음으로 내 편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나와 함께 하시고, 이끄셨는가를 고백합니다. 그 가운데 먼저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여기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내 편이 되셔서 나를 돕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이제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고관, 높은 사람도 의지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피하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다윗이 발견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언제나 함께 하셨고, 그의 편에서 도와주셨습니다.
특히 다윗을 대적하는 자에게서 도와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기를 대적하는 자의 보응을 본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에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그를 보존해 주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다윗 편에 있었고, 다윗을 지키셨고 도와주셨습니다.
시121:1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할/ 여기서 말하는 '도움, 돕는 자'를 히브리어로 '에제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에제르의 하나님, 나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하면 나를 도울까? 힘을 줄까? 바르게 살게 할까? 깨닫게 할까? 선을 행하게 할까? 성공하게 할까?' 바로 그것을 생각하며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내 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고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도우시는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할 수 없는 일이나,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어떤 경우든지 우리는 내 편이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답답하고 괴로울 때, 막막하고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제목 소개!▶

 

①본문은 다윗이 기록한 찬양 시입니다.
시113-118은 '할렐시'라고 부릅니다. '할렐시'라는 말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로서 유대인들은 중요한 절기 또는 일상적으로 아침 번제를 드릴 때 암송하며 부르는 시를 말합니다.
동틀 녘에 아침 번제를 드리고 나서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모든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기도를 합니다. 이 때 이 찬송 시를 읽으면서 축복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할렐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능력을 찬송하는 시입니다. 속박과 재난과 위협으로부터 구원하심을 감사하면서 약속된 메시야를 통하여 구원의 완성될 것을 기대하는 시입니다.
더욱 시118편은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고 필사적으로 추격해 오던 사울이 죽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한 후에 쓴 시입니다.
시118편은 확실하게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설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탈무드에서 다윗의 시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가장 잘 아는 민족은 유대인입니다. 그들이 시118편을 다윗 왕의 시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확실하다는 증거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으로 인하여 날마다 죽음의 위협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셔서 비로소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감사 시입니다. /할/
▶본 시118편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좋아하던 시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시(詩)입니다. 진실로 이 시는 여러 차례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시입니다. 이 시는 황제도, 군왕들도, 지혜자도, 모사도, 성자들도 나를 도우려 하지 않았을 때 많은 고통으로부터 나를 건져 주었던 시입니다.'
시118편은 루터에게만 아니라 고통을 당하는 모든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선 자를 도우시는 능력에 대하여 노래하는 시입니다.
본문의 저자인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편이시라' 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기에 하나님께서 해결하여 주실 줄로 믿고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편이라는 고백은 '나도 하나님 편에 서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낸 표현입니다. 이 고백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삶의 문제를 푸는 열쇠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멘!/ 바울은 '예수 안'에 있는가? '예수 밖에 있는가?'를 중요하게 보았습니다. 우리도 이 신앙의 위치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멘!/
누군가를 미워하는 자리에 서 있다면 그 자리를 박차고 사랑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면 용서하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잠자는 신앙이라면 속히 깨어 충성하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신앙이 하나님 편에 서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편이 되시어 승리하는 자리에 이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라고 믿는 인생은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있다고 믿는 인생도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다윗처럼 신앙고백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나도 하나님의 편에 서겠습니다' 이런 고백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할/
▶백년에 한번 들어볼까 말까한 유명한 흑인 성악가 '마리안 앤더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23개국에서 명예학위를 받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 케네디 대통령 취임 시에 미국 국가를 독창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58년에는 아이젠하워가 유엔대표로 지명했습니다. 63년에는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 상패'를 받았습니다.
그런 그가 40년 간 성악활동을 하고 은퇴할 때 고백하기를 '나는 보잘 것 없는 노예밖에 될 수 없는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시고 나와 함께 하셨으므로 오늘까지 영광을 한 몸에 받으며 지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내 모든 명예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마리안 앤더슨'의 이 말은 그 당시 미국 모든 시민에게 감명을 주고도 남았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내편이 되시면 그 사람은 출신 신분이나, 배경이나, 지식의 상관없이 풍성한 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구약 성경 중에서 가장 복된 삶을 살아간 사람을 꼽으라면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양치는 목동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대왕이 되었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다윗 편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 중에서 가장 복된 삶을 누린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를 들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가난한 어부였습니다. 배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 수제자로써 가장 추앙을 받는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 까닭은 예수님님께서 베드로 편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내편이시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다윗은 6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라고 했습니다. 또한 7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편에 계시는데 나를 해할 자가 어디에 있겠느냐는 물음입니다. 또 그가 본문 10-13절에서 고백하기를 '열방이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저희가 벌과 같이 나를 에워쌌으나 가시덤불의 불같이 소멸되었나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 네가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편 되시면 그 누구도, 그 어떠한 것도 나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할/

②우리가 '여호와를 내 편으로 모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⑴여호와께 감사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의 편이 되십니다(1).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감사하는 사람 편에 역사 하십니다.
시50: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
감사는 감사절기에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아이작 윌튼'이란 사람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두 곳이다. 한 곳은 천국이요. 다른 한 곳은 겸손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실망보다는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어떤 분은 너무 실망을 잘합니다. 실패하면 금방 실망합니다. 그러나 실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실패를 잘 극복하면 우리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실패 때문에 우리가 겸손한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큰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실패했다고 실망하지 말고, 그 실패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불평보다는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불평은 어떤 환경도 지옥을 만듭니다. 반대로 감사는 어떤 환경도 천국을 만듭니다. 불평하는 말은 듣는 사람의 기쁨을 빼앗고, 그 영혼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감사하고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 한 마디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고, 영혼을 생동감 있게 만듭니다.
㈂달라는 기도보다 감사를 기도합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도는 감사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의 기도를 보면 감사보다는 간구가 많습니다. 항상 '하나님, 주세요'라고만 합니다. 초신 자 때에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 잘 주십니다. 그러나 신앙 년조가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간구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어린아이는 감사할 줄은 모르고 그저 떼만 쓰면서 달라고 합니다. 그래도 부모는 그것을 받아줍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항상 달라고 졸라만 댄다면 주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고 오히려 야단을 치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받은 것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항상 무엇인가를 해달라고 간구만 하는 성도를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에는 네 가지가 있습니다.
㈀말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고백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몸으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나의 손과 발과 입과 눈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물질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보물 있는 곳에 마음 있으므로 물질로 주님을 섬깁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마음이 가야 몸도 물질도 관심도 가게 됩니다. 이런 감사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우리는 사도 바울을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고, 신약성경을 13권이나 기록한 사람입니다. 이 바울사도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아 매를 맞고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옥 속에서도 감사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바울을 얽어맨 쇠사슬이 끊어지고 굳게 닫쳤던 옥문은 열렸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곳에 우리들을 얽어매고 있는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사실입니다. /믿/아멘!/
구약에 다니엘이라는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선지자란,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다니엘서는 다니엘 선지자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입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때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갔습니다. 포로가운데 남달리 영특했던 다니엘은 바벨론 국왕의 총애를 받아 훗날 나라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매사에 민첩한 다니엘을 남달리 신임하여 나라의 수석 총리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들은 다니엘을 시기한 나머지 음모를 꾸며 다니엘을 해치고자 했습니다. 그리하여 끝내 다니엘을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 넣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단6: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기도한 죄로 사자굴속에 던짐을 받았을 때 천사가 나타나 사자의 입을 막았습니다. 간신들의 음모임을 뒤늦게 알게 된 왕은 간신들을 사자 굴에 던지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굶주린 사자들이 달려들어 간신들의 발이 땅에 닫기도 전에 뼈까지 부숴 삼키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여러분, 범사에 감사의 조건을 찾는 것이 삶의 지혜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파멸로 이끄는 사탄의 미혹입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삶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감사로 사람들의 심령을 시험하십니다. 감사함은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는 인격의 한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복의 문화이고, 유럽은 감사의 문화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의 문화라는 말은 끝없이 복을 받기만 바라는 마음을 가리키므로 여기에는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문화에는 매사에 감사합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곳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할/
어떻게 감사해야 하나요? 골2:7절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에 굳게 선 사람은 감사합니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감사가 나오기도 하고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감사가 없음은 받은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표현이며,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과 감사는 정비례합니다. 믿는 만큼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는 만큼 그의 믿음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믿음은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입니다. 우리 모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왜 감사하라고 하셨습니까?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사랑의 실제적인 베품을 말합니다. 성경의 총 주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역사 속에 사람들에게 임할 때에 인자로 나타나십니다.
인자란 말은 '헤세드'란 말입니다. 은혜라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궁무진한 사랑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지만 그 사랑이 내게 임하고 경험되고 나의 사랑으로 누려져야 그것이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믿/
그러므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이 말씀 속에 숨어있는 복음의 뜻은 항상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한 때 놓쳐도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기회는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서는 삶을 살아갈 때 누리는 축복이고 은혜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⑵여호와를 경외하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편이 되십니다(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마음으로 공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인이므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존귀하신 하나님이시므로 이 하나님 앞에 몸과 마음을 조심하며 공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자이신 하나님께 최선의 예의를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예배의 행위로 우리가 하나님께 최선의 예의를 갖추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예의바른 사람을 좋아합니다. 버릇없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사랑하시며 그 사람 편에 계십니다.
여기 경외란 한 마디로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섬기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잘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은 단순히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가운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아멘!/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경외했던 사람이 누구인가? 아브라함입니다. 창22:12절에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언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이제야'에서 나타나는 때는 언제입니까? 내 아들인데 어떤 아들입니까? 독자입니다. 몇 살에 낳았습니까? 100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생명은 이삭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자기 생명을 대신하는 자기 분신, 하나님의 언약으로 받은 아들, 이것을 하나님 앞에 아낌없이 드리는 것을 보니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주었습니까? 정말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어린양을 여호와 이레로 준비 해 두셨다가 주셨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고 우리의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귀중하고 값진 것을 주 앞에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갖 것을 주시기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여호와 이레의 복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할/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것'이고, '모든 악에서 떠나는 것'이고, '겸손한 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시작이요. 인생의 근본'입니다(잠1:7). /할/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 대해 약속하신 복이 너무나 많습니다.
시34:7-10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주십니다.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할/
여기 '여호와를 찾는 자'란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여기 '젊은 사자'란 힘이 제일 센 사자입니다. 숲 속에 왕은 사자입니다. 그런데 젊은 사자는 왕 중에 왕입니다. 그런 힘이 센 사자라도 먹이를 구하지 못 하여 굶주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궁핍함이 없습니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된 우리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기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최상의 선물'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만이 모든 인생의 필요를 채우시는 분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시23:1절에서도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찬양했습니다. 맛을 본 자만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시37:25절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다윗의 고백입니다. /할/
▶시112:1-3절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기독교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독일의 시인, 괴테는 '기독교의 정신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신앙과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의 바탕 위에서 기독교는 발전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멘!/
시115:12-13절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여기서 복은 무엇을 말합니까? 복은 히브리어로 '바라크'인데, '축복하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 축복은 '성공하는 것, 번창하는 것'을 말합니다. '장수하는 것'을 말합니다. '풍부한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성공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풍요롭고 번창하기를 원하십니다. 장수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복에는 이와 같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복을 '이스라엘 집에도, 아론의 집에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2-3).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 복을 주시고, 가정과 집마다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특히 아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 제사장, 하나님의 일꾼에게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대소 무론'하고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자에게나 작은 자에게나 복을 주십니다. 부한 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복을 주십니다. 높은 자에게나 낮은 자에게나 복을 주십니다. 늙은 자에게나 젊은 자에게나 복을 주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멘!/


▶'존 트랩'이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7가지 주의사항'을 발표했습니다.
㈀복 자체보다 복을 주시는 분을 생각하라!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고 왜 주시는지를 생각하라!
㈂복을 받은 후에는 은혜를 잊지 말라! 이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도, 신앙생활 하는데도 아주 필요한 자세입니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좋든 싫든 우리나라에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이 나라의 은혜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은혜는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스승의 은혜, 이웃의 은혜, 친구들의 은혜도 있습니다. 이런 은혜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이 시대는 이 정신이 가장 모호해지고 흐려진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은혜를 모릅니다. 많은 은혜를 입었는데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 은혜가 한두 가지입니까. 그래서 복을 받은 후에는 은혜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복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시험이 온다는 것을 잊지 말라!
㈄복을 받은 후에는 교만해지기 쉬운 함정이 있음을 두려워하라!
실패한 사람에게는 교만할 여유도 없습니다. 생긴 것이 좀 모자라는 사람은 교만해질 용기도 없습니다. 가진 것이 부족한 사람은 자랑할 내용도 없습니다. 교만은 성공한 사람에게 오고 은혜 입은 사람에게 옵니다. 성공한 사람에게 오고 가진 사람에게 옵니다. 그래서 복을 받은 후에는 교만해지기 쉬우니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복을 받은 후에는 더 겸손해야 주어진 복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복을 받은 사람의 사명은 더욱 무겁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당연한 말입니다. 배운 사람은 역할이 더 커집니다. 가진 사람은 사명이 더 커집니다. 먼저 믿은 사람은 더 할 일이 많아집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할/

 

⑶하나님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의 편이 되십니다(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고통은 여호와께 부르짖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다윗은 고통을 안고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을 여호와 앞에 토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부르짖음으로 두려움은 치유됩니다. 고통 중에 부르짖으라고 했습니다.
▶한 가정에 큰 재난이 왔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큰 위기에 처했습니다.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성한 사람은 그 집에 부인 혼자 뿐입니다. 그런데 부인이 큰 충격을 받으니까 기도가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하고 불러놓고는 그 다음은 말이 이어지지 않습니다. 너무 충격적인 상황이 자기 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저 '하나님, 하나님...'하고 밤새도록 하나님만 불렀습니다.
그런데 수천 번 하나님을 불렀는데 마음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응답을 주신 것입니다. '네가 부른 하나님이 너와 함께 있느니라' 그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 내가 가장 소망적인 사람이구나, 내가 부르는 그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신다'라는 것을 하나님이 알려주셨습니다.
그 음성을 받은 순간 두려움이 물러가고 하나님 앞에 기도가 흘러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내 편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5세기의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였던 '크리소스토무스'는 '기도는 축복의 어머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누구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병원의 유명한 소아신경외과 의사 '벤 카슨'은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는 기도에 대해 '기도는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정서적,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최상의 능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입니다. '벤 카슨'은 '기도의 능력이 그를 놀라게 한다'고 했습니다. 기도의 능력을 한번 맛본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장금옥씨의 간증입니다. 어느 날 건강하게 직장생활을 잘 하고 있던 그의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강남성모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뇌 안에서 핏줄이 터져 온 머리에 피가 덮였기 때문에 의학적인 방법으로는 살 가망이 없다며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그는 38년 동안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열심히 부처를 섬기던 불자였습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절로 달려가 스님을 만났습니다.
'스님, 절에서 하라는 대로 다 섬겼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많은 형제들 중에서 왜 우리만 이렇게 되는 일이 없습니까?'하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조상을 달래야 한다며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비용 150만 원을 주고 제사를 잘 지내달라고 부탁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며칠 후 다시 절에 들어가는데 절 문을 넘는 순간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왜 속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스님을 만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이제부터 예수님 믿고 교회 나갈 거예요'라고 말하고 절을 나왔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절에서 사용하던 염주와 고액의 부적들을 모두 불살라버리고, 목사님을 모셔다가 남편을 위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위해 40일 동안 아침금식을 작정하고 날마다 남편에게 성경을 읽어주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강한 빛이 몇 분 동안 남편의 머리 속을 비취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남편은 점차 회복이 되어 중 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었고, 뇌 촬영할 때마다 조금씩 차도를 보이더니 40일 작정 아침금식이 끝났을 때는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답니다. /할/
병원에서도 포기한 남편이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건강을 되찾아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퇴원한 후 집에 있는데 절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스님, 스님도 예수님을 믿으세요'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스님이 '미쳤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답니다. 그는 죽어 가는 남편을 살려 주신 하나님 앞에 충성을 다짐하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할/

▶기도하면 두려움이 물러갑니다(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현대의 정서적인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기쁨이 없다'고 진단을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렇게 진정한 보람과 기쁨을 모르는 현대인들은 숨어있는 두려움이 많다고도 합니다.
저 잘사는 나라 미국은 일년에 수면제가 700억 알이 팔린다고 합니다. 하루에 2억 알이 팔린다는 통계입니다. 그만큼 두려움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에 있는 일반적인 두려움은 네 가지라고 말합니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잃어버리고 두려워하고 또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잃어버릴까봐 또 불안해하고 그러니까 이미 잃어버린 사람도 불안해하고 가진 자도 불안해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으로 인한 불안입니다. 내가 혹 병이 걸리지 않을까? 내가 혹 어려움에 처하지 않을까? 라는 두려움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은 지금 두려움 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두려워합니까? 자가진단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염려하는가? 무엇 때문에 불안해하는가? 자가진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첫 번째 주신 메시지는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주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해결하는 두 번째 메시지가 주어졌는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이 두 마디 말씀은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를 보고하시는 메시지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시3:5-6절도 한번 보십시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은 반역자들에게 쫓겨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밤이 되면 평안히 잠을 잤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위로하시고 붙들어주심을 믿었기 때문에 전혀 두렵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멘!/ 다윗은 천만인이 둘러치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수많은 적군이 원수가 그에게 달라붙어도 그는 두려워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큰 문제, 큰 사고, 큰 사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생겼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놀라지 않습니다.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겁내지 않습니다. 담대하고 용감하게 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편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믿/아멘!/
시23: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 죽음의 골짜기, 죽을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두려움은 있을 수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아무리 들어오려고 해도 들어올 수 없지만, 빛이 없으면 어두움이 들어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두려움과 공포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 그 마음속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믿/

⑷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6-10).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고백입니다. 여호와의 전능하십니다. 우리는 못하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편이 되면 여호와의 전능하심을 우리가 함께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패배자이지만 여호와는 승리자입니다. 그 승리자가 내 편이 되시면 우리도 승리자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됩니다. /할/
▶2차대전의 일화 가운데 독일이 노르웨이를 폭격할 때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한 목사님이 교회에 있다가 독일 전투기가 도시를 폭격을 하자 가족이 걱정이 되어 집으로 귀가를 하는 중에 너무 폭격이 심해서 집에까지 못 가고 도중이 어느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피신을 하면서 밤새도록 그 집의 주인과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런데 그 집 어린 소녀가 소파에서 편안히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튿날 목사님이 그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지난밤에 너는 두렵지 않았니? 우리는 폭격 때문에 잠을 못 잤단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편안히 잠을 자니?'
이 소녀가 생긋 웃으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안 주무시고 지켜주시는데 나까지 안 잘 필요 없잖아요' /할/ 이런 신앙이 귀합니다. 이 소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여호와의 지키심을 믿으면서 잠을 잤다는 신앙간증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내 편이심을 의지하지 않으면 그 분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호와는 겸손히 그를 붙잡는 자에게 능력이 되십니다. 방패가 되십니다. 이것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품안에서 여호와가 내 편이심을 믿는 자에게 불안과 두려움이 극복될 수밖에 없음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할/

▶여호와를 내 편으로 모시는 삶 속에 오늘도 기적을 일어나고 있습니다. /믿/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편에 계시므로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 편에 계시므로 홍해를 가르고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 편에 계시므로 태양을 멈추고 적군을 물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편에 계시므로 골리앗을 죽이고 나라를 위기에서 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 편에 계시므로 굶주린 사자의 입을 막고 살아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 편에 계시므로 앗수르 군사 18만 5천명을 단숨에 물리치고 승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편에 계시므로 주님의 능력으로 바다 위를 걸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편에 계시면 세상의 어떠한 역경도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내게 어찌할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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