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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받아야 할 안디옥 교회! (행 11:19-30)

by 【고동엽】 2022. 2. 10.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안디옥 교회! (행 11:19-30)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1-12장으로 '예루살렘을 근거로 한 유대인들을 상대로 하여 복음을 전했는데, 전도의 중심인물은 베드로'이고, 또 하나는 13-28장으로써 '안디옥 교회를 근거로 한 이방인 상대의 복음 사역으로써 전도 중심의 인물은 바울'입니다.
행1:8절의 주의 지상명령에 따라 1-12장까지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의 전도'였으며 13장부터 28장까지는 '땅 끝까지의 전도로서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복음이 로마에까지 들어가는 4차 전도여행까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전도여행의 중심지는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안디옥이란 지명이 사도행전에서 두 곳이나 나오는데 하나는 '수리아 안디옥'이고, 다른 하나는 '비시디아 안디옥'입니다.
본래 안디옥은 시리아의 수도였고 무역의 중심지이며, 군사적 요충지로서 당시 로마 시대 세계 삼대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대개 고대에서 3대 도시를 치면 '로마, 안디옥, 알렉산드리아'를 칩니다. 안디옥은 그 당시 세계에서 지중해 연안의 가장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정복자 알렉산더가 이곳을 평정한 다음에 마게도냐, 이집트, 바벨론, 저 페르시아와 그리고 인도까지 통치하는 전략의 요충지로 삼고 안디옥을 발전 시켰습니다.
당시 인구는 50만으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유명한 도시였고, 너무 아름다운 도시여서 이 안디옥을 가리켜서 '아시아의 눈, 동쪽의 여왕, 황금의 도시 안디옥'이라고 불리리 만치 무역과 산업과 문화가 교차되어 있는 유명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술의 도시요, 실크로드가 포함되어있는 도시요, 헬레니즘과 로마의 문화가 함께 있고 세계 문화가 교차되는 곳이요. 시리아인, 로마인, 유태인 세계 여러 나라 백성들이 모여 사는 자유 도시이었다고 합니다.
최초로 가로등을 밤새도록 켜고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도시는 전부 대리석으로 포장을 하리만큼 부유한 도시로 돈이 가장 숭배를 받고 스포츠가 발달되고 향락 문화가 판을 치며 아폴로 신상 등 다양한 신을 섬기는 그런 도시였습니다. 여기에 세워진 안디옥교회는 이방교회의 어머니역할을 한 교회입니다. /할/


▶안디옥교회가 지향하는 정신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⑴선교정신입니다. 안디옥교회의 선교 열정은 안디옥에서만 끝나지 않고 널리 아시아에서 지중해를 거쳐 구라파(유럽)에 이르기까지입니다.
⑵협동정신입니다.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⑶구제정신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사람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⑷봉사정신입니다. 봉사는 자비와 긍휼의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⑸기도정신입니다. 기도로 무장하지 않고서는 위의 '선교정신, 협동정신, 구제정신, 봉사정신'으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모든 것을 연결해 주고 하나로 묶는 능력입니다. /할/
안디옥교회는 아주 이상적인 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많은 일꾼들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협동이 잘되는 교회였습니다. 우리 참 행복한 교회도 안디옥교회를 닮아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멘!/
어느 시대나 본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에는 위인들이 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위인전을 많이 읽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위인들을 본을 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받는다'라는 말을 '본뜬다'는 말입니다. 그 본을 오늘은 모델이라고 하고 멘토라고도 합니다. 교회도 본 받을 만한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안디옥교회입니다. /할/ ◀제목 소개!▶


지금 세계는 '교회가 교회되게 하라'는 운동이 한참입니다. 이는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교회는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까? 보통 예루살렘교회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사실 예루살렘교회는 훌륭한 교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⑴인류역사상 가장 양적으로 급성장한 교회입니다. 120명으로 시작된 교회가 하루사이에 3천, 5천씩 불어나게 되었습니다(행2:41).
⑵인류역사상 가장 훌륭한 목회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들었던 제자들, 주의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한 눈에 보았던 제자들이 목회 하는 교회가 바로 예루살렘교회입니다.
⑶인류역사상 100% 유무상통이 진심으로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는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전도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전도에만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프로그램에 전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믿/ 그런데 예루살렘교회가 이 명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자신들끼리만 떡을 떼었습니다. 자신들끼리만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전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만히 있다고 하나님도 가만히 계시는 분은 아니십니다. 가지 않으면 보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안가면 밀려 내려가도 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교회에 환란과 핍박을 주면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흩어진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교회들이 많았는데 오늘 본문의 안디옥 교회가 그렇게 탄생한 교회입니다. '할/
▶그럼 안디옥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①환난 중에 세워진 교회입니다(19).
여기 '스데반의 일'은 유대교를 통한 초대교회의 환란과 핍박을 의미합니다. 스데반은 복음의 불씨입니다. 예루살렘에 불어닥친 환란은 복음을 이방으로 전하는 불씨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인하여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8:5).
초대교회는 환란을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 환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감옥이라는 자루 속에 집어넣어서 후일에 애굽에 총리가 되게 했습니다. 다윗도 양치는 목동으로 훈련시켜 이스라엘에 양을 치는 큰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환란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임한 고통에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환란의 바람이 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태풍이 거저 부는 것 같으나 하나님은 광풍으로 인하여 하늘의 대기를 이동시키고, 대지를 깨끗이 소제하고, 바다를 뒤흔들어서 바닷물이 썩지 않게 합니다. /할/
초대교회는 스데반의 환란을 통하여 이방의 수리아까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일으킨 파장은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잔디에 붙은 불과 같이, 개울에 흐르는 물과 같이 계속해서 복음이 세계로 번져 나아가고 있습니다.
본문 19절은 안디옥교회의 설립자들이 다 스데반 일로 환난과 핍박을 당한 자들이 세웠습니다. 그러니까 환난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는 교인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에서 피난 온 성도들입니다.
일곱 집사 중 한사람인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할 때, 초대교회에 큰 환난이 닥쳤을 때, 그때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고향을 버리고, 재산을 버리고, 멀리 안디옥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안디옥으로만 온 것이 아니라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시아, 유럽, 베니게, 구브로, 로마까지 건너갔습니다.
안디옥에 온 성도들은 그곳에서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잃어버린 것으로 인하여 시험에 들지 않고, 오히려 새 생명의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람을 탄 돛단배가 더 힘차게 나아가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욱 믿음이 살아나고 능력 있게 됩니다. 조그마한 시험을 만나도 낙심하고, 좌절하고, 그것을 크게 확대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비록 큰 고통과 환난을 당해도 더욱 푯대를 향하여 신앙으로 계속 전진해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은 강합니다. 믿음만이 힘이 됩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확실히 믿는 믿음만 있다면 그 사람은 꼭 승리하게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넉넉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할/
▶알렉산더 대왕에게 이웃나라 왕이 사냥개 한 마리를 선물했습니다. 알렉산더는 그 사냥개를 데리고 사냥을 나갔는데 마침 토끼가 지나는 것을 보고 '가서 잡아라.'고 명령을 했으나 사냥개는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그 뒤 며칠이 지나 다시 그 사냥개를 데리고 산에 갔는데 이번에는 사슴이 뛰어갑니다. 그래서 '가서 잡아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번에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왕은 '이 개는 아무 쓸모도 없는 개로구나' 생각하고 단 칼에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 그 사냥개를 선물한 이웃 왕을 만났습니다.
'폐하! 사냥개가 사냥을 잘 하지요?' '아닙니다. 토끼도 못 잡고, 사슴도 못 잡았습니다. 그래서 죽여 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이웃 왕이 '아니 폐하! 내가 보낸 사냥개는 토끼나 사슴을 잡는 사냥개가 아니라 곰을 잡고, 사자를 잡고, 호랑이를 잡는 사냥개입니다.' 그러니까 그 개는 큰 맹수들을 잡도록 훈련시킨 개이기 때문에 토끼나 사슴을 잡으라고 하니 그냥 처다 보기만 한 것뿐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내가 어떻게 토끼 따위를 잡습니까? 저건 똥개도 잡을 수 있는데 내가 왜 시시한 사슴을 쫓아갑니까?' 하면서 안 잡은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토끼를 보고 벌벌 떠는 그런 성도가 아니라 적어도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사자를 넘어뜨리는 믿음의 성도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성도가 어떠한 환난과 핍박도 다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할/아멘!/

 

②안디옥 교회는 '오직 예수'만 전했는데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20-21).
아직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을 때,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그 장벽을 넘어 헬라인에게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실 이방인에게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교회는 바로 안디옥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들로만 등록된 교회였지만 이제 안디옥 교회는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포문을 연 것입니다. /할/
여기 '구브로'는 지중해 동쪽의 적은 섬으로 구약에는 깃딤(민24:24)이라고 부르는 곳이요, 바나바가 이 성 출신이며, 그곳에는 이미 유대인의 회당이 지어져 있었습니다. 후에 바울이 바나바와 함께 그곳에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13:4-12).
'구레네'는 북 아프리카에 있는 리비아의 중심도시로써 헬라문화권에 속한 도시였습니다. 눅23장을 보면 이곳은 주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갔던 시몬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언급한 구브로나 구레네 몇 사람은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하여 선교활동을 한 자들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 수다한 사람이 주께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수다한'사람이란 말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상당한 숫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안디옥 교회의 두 가지 특색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⑴오직 주님만 전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오직 주가 그리스도인 것을 전하는 곳입니다. 진짜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믿/
하나님은 이 땅에 교회를 허락하신 것은 오직 주님만 전하라고 세운 것이고, 목사를 세운 것도 오직 주님만 전하라고 세운 것입니다. 저도 우리 행복한 제단에서 오직 주님만, 오직 주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똑같은 동역자들이요, 사명자들입니다. /믿/
⑵주의 손이 함께 한 교회였습니다. 교회부흥은 인간적으로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행정을 잘 한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가 설교를 잘 한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행정도, 설교도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큰 것은 주의 손이 함께 하실 때만이 교회가 부흥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안디옥 교회는 주의 손이 함께 하시므로 '수다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할/
▶여러분, 만사가 주님의 장 중에 있습니다. '주님의 손은 어떠한 손'인가?
⑴권능의 손입니다. 신6:21절에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건져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명하여 불렀습니다. 사43:1절에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⑵긍휼의 손입니다. 눅15장에 탕자가 돌아올 때 입을 맞추고 얼싸 안아 주신 손입니다. 요8장에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에게 '나도 이제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이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했습니다.
⑶치료의 손입니다. 마8:3절에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주님은 문둥병 같은 추하고 더럽고 버림받은 자에게 가까이 가서 어루만지면서 고쳐 주셨습니다.
⑷복 주시는 손입니다. 요6:11절에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손입니다. /할/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시127: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과 늘 함께 했습니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바울과 그와 함께 했던 동역자들이 가는 곳마다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믿/

 

③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22-23).
안디옥 교회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수다한 무리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교회에서 교역자 한 사람을 파송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헬라파 유대인으로써 헬라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서 많은 사람이 주께 돌아온 것과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은혜가 충만해야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어느 제단에 들어가면 영적으로 오는 감이 있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와서 보니 하나님의 임재하신 교회로서 은혜가 충만한 것을 피부로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할/
고기가 물 속에서 살고, 새들이 공중에서 나는 것처럼, 성도는 은혜를 먹고삽니다. 바나바는 은혜를 식별할 줄 아는 사람이요, 교회가 잘 되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이 기뻐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그들에게 한 가지 권면을 했습니다.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여기 '굳은'이란 말은 '흔들림이 없는' 이란 말로 사실 초 신자들은 조그만 일에도 시험을 받아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굳센 믿음으로 주께 꼭 붙어서 떨어지지 말고 믿음이 견고해지기를 원했습니다.
목회자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굳센 믿음에 서서 주님과 절대로 떨어지지 말기를 주의 종들은 기도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아멘!/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본 사람이요, 안디옥 성도들을 믿음으로 권면한 사람입니다. 원래 바나바의 이름의 뜻이 '권위자'입니다. 권위자란 말은 '위로의 아들'이란 말입니다(행4:36). 이렇게 신앙의 선배들을 권면하고 위로해 주는 잡니다. /할/

 

④바나바는 어떤 사람인가?(24)
⑴'바나바'는 착한 사람입니다. 눅23:50절에 예수님을 장례한 아리마대 요셉도 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바나바는 권위자, 위로자입니다. 누구라도 접근하기 쉬운 사람입니다. 그는 부드럽고, 온유하고, 착한 사람입니다. 성품도 아주 좋습니다.
여기서 착한 사람이란 말은 본바탕이 착한 사람이며, 도덕적인 품성이 선함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태어난 때부터 선천적으로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참으로 귀한 덕목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게 된 것은 범사를 선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선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이기면 자신도 살고, 상대방도 살리게 됩니다. /아멘!/
⑵'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였습니다. 이 말은 오늘날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사모해야 할 말입니다. 믿음 충만, 성령 충만하면 모든 것이 충만합니다.
⑶'바나바'는 성도들을 잘 관리하는 목회자였습니다.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기본적으로 전도가 되고 있는 교회입니다 만은 인도하는 바나바가 성도들을 잘 관리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바나바는 목회자로서 상당히 능력 있는 종이었습니다. 나중에 선교사로 힘씁니다만 선교사가 되기 전에 목회에 이미 성공한 분입니다.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외국에 가서도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믿/

 

⑤바나바와 사울을 통해서 팀 목회가 잘 이루어진 교회입니다(25-26).
바나바는 앞을 멀리 볼 줄 아는 목회자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커지니까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 개종한 사울을 찾아 다소로 간 것입니다.
다소는 사울의 고향이었습니다. 행9:26절 이하를 보면 사울이 회개 한 후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사도들과 교제하고자 했으나 사도들이 받아들이지 않자 이 바나바가 가서 사울을 이해시켰습니다. 이제 핍박자 사울이 아니라 회개한 사울임을 소개함으로 사도들의 오해가 풀렸고, 그 뒤 사울이 다소 고향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사울과 같이 동역하면 하나님의 교회가 더 든든해지겠다고 생각하고 사울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바나바가 사울을 발굴해 낸 사람입니다. 만약 바나바가 없었더라면 사울이야 말로 초야에 그대로 묻힐 뻔했던 그런 인생입니다.
바나바는 그릇이 큰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큰 교회를 아무 욕심 없이 후배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지금 현대에 목회자들에게 이런 모습을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대목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키우는 지도자였습니다. 세상이나 교회나 지도자들을 많이 양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가 든든합니다. /할/
바나바와 사울은 아주 콤비가 척척 맞았습니다. 그들이 안디옥 교회에서 일년 간 성경공부를 가르쳤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잘 권면해서 데리고 와서 동역한 것입니다.
권면을 잘 들어서 훌륭한 사람이 된 인생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장로교의 대부 '칼빈'같은 분은 '파렐'이란 목사님의 권면을 잘 받아드려서 큰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파리 대학 총장의 취임식을 하는데 '파렐'목사님이 총장이 되고 그 총장 취임사를 '칼빈'이 썼습니다.
파렐 목사가 당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칼빈에게 취임사를 부탁한 것입니다. 그런데 칼빈이 써준 취임사에는 완전복음만을 써 주었습니다. 당시 천주교회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는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란 이런 것이다. 파리 대학은 앞으로 복음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써 주었고, 그대로 선포했으므로 천주교의 아성인 그곳이 발칵 뒤집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썼는지 알아보라고 해서 칼빈을 체포하라는 명이 떨어지자 제네바로 가서 숨어있는데 파렐목사님이 찾아와서 같이 일하자고 부탁한 것입니다. 칼빈은 아직 어리고 학문도 더 해야 하고, 성경공부도 더 해야 한다고 사양하자, 파렐목사가 '당신이 학문을 그렇게 귀하게 여긴다면 학문과 함께 망할 것'이라고 충고함으로 항복하고 그와 함께 일하면서 종교개혁의 기초로 세웠다는 것입니다. /할/

 

⑥안디옥 교회에서 최초로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행13:2절에서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 당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서 그들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성령의 지시는 안디옥 교회의 형편에 비추어 볼 때 너무나 엄청난 지시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세워진지 불과 2,3년밖에 안 되는 어린 개척 교회였습니다. 선교가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교회의 두 기둥과 같은 지도자를 뽑아서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성령님의 지시는 너무나 지나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달랐습니다. 비록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성령님의 지시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그들은 금식기도를 계속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기 위해서 금식기도에 들어간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님의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고 두 사람에게 안수한 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그러니까 안디옥교회는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최대관심은 오직 선교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소원도 역시 전도입니다. 지금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소원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이 예정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다 구원시키는 일입니다. 마24:14절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할/
그렇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선교센터였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고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안디옥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한 것입니다. /아멘!/
⑴교회는 4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며 교인이 아닙니다. 둘째, 선교하는 공동체입니다. 복음을 세계에 전파해야 합니다. 셋째, 교육하는 공동체입니다. 넷째, 봉사하는 공동체입니다. /할/
어떻게 보면 사도행전의 역사는 안디옥교회에서부터 분기점을 이루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은 교회들이 이 안디옥 교회가 귀하고 훌륭하다 하여 교회의 이름을 안디옥 교회라고 붙여서 방방곳곳에 세우고 있습니다. 서울에도 수 십 개요,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등지에 많이 있습니다. 특히 전주 안디옥교회는 우리나라에서 세계선교를 제일 많이 하는 교회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⑵행13:9절에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그러니까 여기서 처음으로 사울이 바울로 개명되어 나옵니다. 그의 변화된 모습을 우리는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큰 자'라는 뜻이고, 바울은 '작은 자'란 뜻입니다. 고전15:9절에서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울이 바울로 개명된 것을 학문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사울이 회개한 다음 바울로 바꿨다고 하지만 본래부터 바울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합니다. 사울은 유대식 이름이고, 바울은 로마식 이름이랍니다.
당시 유대인들 중에는 유대식 이름이외에 로마식 이름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특히 사울은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22:28)을 가졌던 사람으로 보아 틀림이 없습니다. 사울이 이방 선교 차 이곳에 와서 느끼게 된 것은 로마식 이름보다는 유대식 이름이 자연스러울 것 같아 그렇게 했을 것이란 학설이 유력합니다. /할/

 

⑦안디옥교회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란 증거를 얻었습니다(26).
여기에 나오는 '비로소'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전과는 현격하게 다른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는 세상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를 추종하는 사람들 또는 누구누구에게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세상사람들은 안디옥 교회의 교인들이 예수를 따라가고 예수에 소속된 사람들이라고 느꼈다는 말씀입니다. /할/
그 당시 안디옥 사람들은 남의 별명 짓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한 예로 수염을 기른 '율리안 황제'가 그곳을 방문했을 때 황제에게 '염소'라는 별명을 지어 준 일도 있답니다.
그 당시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별명이 있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갈릴리 사람들이 많으니까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가리켜 '갈릴리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나사렛 당'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나사렛에서 자라나셨고 거기서 사셨기 때문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나사렛 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의 제자들, 형제들' 이런 명칭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명칭은 안디옥 교회에서 받은 것입니다.
사실 그 당시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은 반은 욕과 조롱이 섞인 투로 예수를 믿는 자들을 경멸하여서 부른 별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성도들의 생각과 말과 표정과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시작했고, 세상에 유익을 주는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아멘!/
내가 사관학교를 견학했다고 군인이 되는 것 아닙니다. 의과대학에 잠시 다녀왔다고 해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과대학에 갔다 왔다고 해서 판검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드나들었다고 해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권사라는 이름이나. 집사라는 이름이나, 목사라는 이름은 있으나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3:1절에 보면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 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책망하시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신앙의 행함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스도인이란 라틴어에서 나온 말로 '무엇 무엇에 속해 있다.'는 뜻의 합성어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 속에 있는 사람, 예수로 꽉 차 있는 사람, 예수 밖에 모르는 사람, 예수님의 소유가 된 사람, 예수님만 높이는 사람, 예수님만 자랑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할/ 그리스도인은 입만 열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사람들이요, 자나깨나 예수 그리스도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아멘!/
▶슈바이처 박사 같은 사람은 음악박사에, 철학박사에, 의학박사에 박사학위가 세 개나 있어 유럽의 유명한 대학들이 서로 교수로 초빙하고자 안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모든 것을 사양하고 아프리카 밀림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수고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곳에 병원을 짓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병원을 운영하기에 돈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슈바이처는 유럽으로 돈을 모으러 떠났습니다. 슈바이처는 파이프 오르간을 직접 제작, 연주하리만큼 음악에 있어 천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파이프 오르간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연주해 주기도 해서 돈을 모읍니다. 조금이라도 돈을 많이 모으려고 밤이면 삼류여관에 들어가 때묻은 이부자락 뒤집어쓰고 한쪽 구석에서 꾸부리고 잡니다. 그리고는 아침이면 툴툴 털고 일어나 삼 등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합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궁상맞게 그러느냐? 그렇게 많이 버는 돈 중 조금만 편하게 쓰면 어떠냐?' 그 때 슈바이처는 말하기를 '그 돈 중 한 푼도 날 위해 쓸 돈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 열차라도 삼 등 칸을 타지말고 일등 칸을 타고 편하게 여행하라고 하니까 '사 등 칸이 없어서 삼 등 칸을 탄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게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할/
▶여기서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몇 가지로 각인해야 합니다.
⑴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마16:24절애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⑵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입니다. 소속이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입니다.
⑶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자연인은 인간의 본능이나 이성에 따라 살지만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사는 자입니다. 고전12:3절내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고 할 수 없느니라'
⑷회개하는 자입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불 신앙입니다. 요16:9절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요일1:9절 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⑸그리스도 안에 사는 자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산다는 말이요, 철저히 그리스도의 지배를 받고 산다는 것입니다. /아멘!/

 

⑧예언자가 나온 교회입니다(27-28).
안디옥 교회가 소문나자 예루살렘교회에서 선지자들이 찾아갔습니다. 감독하러 간 것이 아니라 얼마나 교회를 잘 섬기는지 보러간 것입니다.
여기서 '선지자'란 구약의 선지자를 하나님이 대표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는 큰 권위를 가진 존귀한 직분입니다 만은, 그러나 초대교회의 선지자 직분은 서열이 있어서 사도 다음에 직책(고전12:28)입니다.
또 '아가보'라는 사람이 성령으로 말하여 '흉년이 들것을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은 실제로 로마 제 4대 황제인 '줄리 우리안' 때에 이루어졌습니다.
창41장을 보면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흉년을 예언했습니다. 왜 이런 예언을 주십니까? ⑴자연과 만물은 하나님이 주장하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⑵회개를 추구하기 위하여, ⑶미리 알고 그것을 이길 준비하라고, ⑷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할/


⑨선교하며 구제하는 교회입니다(29-30).
안디옥교회는 구제하는 교회였습니다. 자신들이 떠났던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으로 말미암아 가난해지고 어려워졌습니다.
AD44-48년 로마 제 4대 황제 때, 역사가들이 기록할 정도로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때에 안디옥교회에서는 모 교회에 돈을 보내어 물질적으로 정성을 다해 구제한 것입니다.
구제를 할 때 바나바와 사울이 직접 챙겨서 신앙이 좋은 장로님에게 보낸 것입니다. 당시 안디옥도 어려웠습니다. 모두가 어려웠습니다. 쓰고 남은 것 도와주는 것은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나 쓸 것 못쓰고 도와주는 것이 참으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아멘!/

 

▶구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6:1-4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⑴'사람에게 보이려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나타내고 알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현대는 자기 PR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보라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구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아멘!/
⑵외식하는 자같이 나팔을 불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선을 행하는 유혹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조그마한 구제를 하면서 나팔을 불지 않습니까? 아무개는 가정이 아주 형편없이 어려웠는데 내가 도와주어서 살게 되었다고 은연중에 자기를 자랑을 합니다.
⑶성실함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롬12:8절에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할 것이니라' /아멘!/ 아무렇게나 대강, 대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의식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체면만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⑷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신15:10절에 '너는 반드시 그에게 구제할 것이요 구제할 때에는 아끼는 마음을 품지 말 것이니라 이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범사와 네 손으로 하는바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할/ 봉사할 때도, 헌금할 때도, 구제할 때도 우리 마음속에 '아 이거 아까운데' 하는 마음을 갖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즐겨내는 자,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는 자는 기뻐하십니다. /아멘!/
⑸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모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네 것이 아닌 것처럼 주라!'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할/
⑹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하나님은 언제나 은밀하게 계시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분이시며, 그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잊어도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시며 우리의 속마음을 감찰하시고 계십니다. /믿/ 은밀한 중에 봉사하시는 손길, 구제하는 손길, 하나님이 보시고 갚아주십니다. /아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제 안디옥교회에서부터 사도행전의 역사는 선교하는 역사로 바꾸어지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안디옥교회처럼 열심을 내어 선교할 수 있는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소원인줄 믿습니다.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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