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습관은 인생을 성공자로 만듭니다! (눅 22:39-46)
여러분, 신앙생활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배우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 기도하는 사람, 충성하는 사람들을 배우며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⑴처음도 좋고 나중도 좋은 사람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사람입니다. 누구인가?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등장부터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끝가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신앙의 인격을 배워야 합니다.
⑵처음도 나쁘고 나중까지 나쁜 사람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못 살게 굴기 시작하며 등장한 바로는 홍해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 왔다가 홍해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⑶처음은 좋았다가 나중에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솔로몬입니다.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그가 왕으로 출발합니다. 성전을 지어 받치며 하나님 중심으로 잘 살아가는가 싶더니 어느 날 갑자기 교만이 들어 하나님을 떠나 이방 여자 첩을 1,000명이나 둡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 우상을 섬깁니다. 그의 결국은 나라가 쪼개지게 하는 원인제공자가 되었습니다.
⑷그러나 처음에는 나쁜 짓만 하다가 나중에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죽이고 핍박하는 일을 서슴지 않던 그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난 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업적을 남기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마지막은 로마에서 작열하게 순교함으로 막을 내립니다. 신앙은 신앙이 좋은 사람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고 빌4:9절에서 말했습니다. 더 정확히 번역하면 '너희는 배우고 받고 듣고 또한 내 안에서 본 그것들을 행하라'입니다. 바울은 범사에 모범적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빌3:17절에서도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어떤 청년이 하룻밤 철야기도를 하고 나서 무디(Moody)를 찾아와서 '선생님 제 얼굴에 광채가 나지 않습니까? 지난밤에 철야기도를 했거든요'라고 말하니까 무디가 대답하기를 '모세는 40일을 금식하고서 빛나는 자신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는데 자네는 겨우 하룻밤 철야한 것 가지고 으스대려고 하나?'라고 책망했다고 합니다. /할/
오늘 본문 39절을 보세요! 예수님은 좋은 습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라"
▶본문의 배경은 공관복음(마26:36-46/막14:32-42/눅22:39-46)에 다 나오는 사건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생애의 마지막 주간인 목요일 밤중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하루 앞둔 저녁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시는 주님의 모습은 깊은 고뇌에 잠겨 있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십자가의 형벌에 대한 예지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서 철저히 버림받아야 한다는 외로움에서 오는 고뇌는 예수님의 온몸을 고통과 슬픔으로 젖어들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으로 향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가셨습니까? 기도하기 위해서 가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풍랑까지도 잔잔케 하시는 능력이 있었던 분이십니다. 그런 능력의 주님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할/ ◀제목 소개!▶
사람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90% 이상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을 따라 살아간다고 합니다. 좋은 습관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많은 유익을 주지만, 나쁜 습관은 자신은 물론 남에게 많은 해를 끼치게 됩니다.
사실 좋지 못한 습관 때문에 망하고 그 습관 때문에 실패하고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며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쁜 습관은 하루 속히 고치든지 버리고 좋은 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월이 가면 갈수록 점점 굳어져서 좀처럼 고치기도 어렵고 버리기도 쉽지 않습니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합니다. 50이 넘어 아들을 낳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부부가 시간만 있으면 늦둥이와 함께 노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아빠는 아들 이름을 부르면서 '영식아 엄마 한 대 탁 때리고 와라'고 하니 아들이 뒤뚱거리면서 엄마에게 가서 한 대 탁 때립니다. 맞은 엄마는 '아야'하며 넘어지는 시늉을 합니다. 그걸 보고 아빠는 '잘했어! 아이고 내 새끼!'하고 손뼉을 칩니다.
이번에는 엄마차례입니다. '영식아 아빠 한 대 탁 때리고 오면 이것 줄게' 아빠에게 가서 탁 때립니다. 아빠는 '아야’하고 죽는시늉을 합니다. 엄마는 '아이고 착한 내 아들, 과자 먹어라'하고 줍니다. 아이가 커갑니다. 손이 매섭습니다. 나중에는 아들에게 수없이 맞다가, 맞다가 두부부가 병들어 죽었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어떤 유명한 스승이 제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산에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세 그루의 나무를 보여주며 뽑으라고 명했습니다. 이들은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무는 쉽게 뽑았습니다. 심은 지 1년쯤 된 나무는 힘들게 뽑았습니다. 그러나 심은 지 오래된 나무는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도무지 뽑히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똑같은 나무라도 심은 지 얼마나 되었는가에 따라 쉽게 뽑힐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스승은 제자들에게 '어떤 습관이든지 오래되면 그만큼 뽑아내기가 어려운 법이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습관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습관은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좋은 습관은 우리를 성공과 축복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쁜 습관은 성공의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축복된 삶을 어그러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떤 걸인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주변의 지저분한 물건들을 모아 불에 태우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길거리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동냥 깡통을 무릎 앞에 놓고 졸고 있는데 누가 천 원짜리 한 장을 놓고 갔습니다.
그 돈으로 재미 삼아 복권을 샀는데 1억 원에 당첨되었습니다. 거지 신세를 면하게 된 그는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하루 동안 복권을 동냥 깡통 밑에 밥풀로 붙여 소중히 보관했습니다. 현금으로 바꾸러 가는 날 아침, 습관대로 일어나 주변 물건을 모아 불에 태웠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동냥 깡통이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권이 붙은 깡통을 훨훨 타는 불 속에 던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거지 신세 면하게 됐다.' 그 거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도 여전히 거지로 살고 있습니다.
▶어떤 가정의 어린이가 길거리에서 작은 못을 하나 주워오자 할머니는 그 애가 자라나 살림꾼이 되겠다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 어린이는 길거리에 무엇이든지 떨어져 있는 것은 다 주어다 집에 쌓기 시작하더니 결국 고물수집상을 하더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피아노 조율사는 음을 조율할 때 한 개의 음, 중간C음만 눌러봅니다. 조율사는 이 하나의 음을 확실하게 잡음으로써 수많은 다른 음들을 자동적으로 정확하게 조율합니다. 인간의 잘못된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나 약점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약점 하나를 바로 잡으면 삶 전체에 변화가 옵니다. 게으른 사람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이 한 가지 변화가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것입니다. '중간C음'을 찾아 삶을 조율하는 지혜를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심으면 인생을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좋은 습관은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면 자동적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자연히 좋은 성적을 얻고 무난히 대학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믿/
▶우리는 예수님의 좋은 습관을 배워야 합니다. 습관이라는 말은 헬라어의 의미상 '종교적인 규례, 율법적인 전통'을 의미합니다. 습관이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을 이끌어갔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문화는 전부 '습관 문화'입니다. 전 세계를 움직이는 석학들이 많이 배출된 것도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거룩한 습관' 때문입니다. 그 습관의 힘과 거룩한 신앙생활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민족을 창출해 낸 것'입니다. /할/
눅2:41-42절을 보면 예수님의 어린 시절의 습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여기 '전례'라는 말과 '습관'이라는 말은 똑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될 때 절기의 습관을 좇아 예루살렘에 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관습적으로 절기에 참여하는 것을 따라 예수님도 절기를 지키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드리는 습관입니다.
눅4:16절에 보면 '규례'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여기 '규례'라는 말도 '습관'이라는 똑같은 단어를 썼습니다. 예수님은 습관에 따라서 안식일 날 회당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습관에 따라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읽은 것이 아니고 성경을 읽는 것이 습관화되었습니다.
막10:1절에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여기 '전례대로'라는 말도 습관이라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을 습관을 따라서 가르치셨습니다. 뭘 가르쳤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다른 말로 말하면 전도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셨습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이 습관화되었습니다.
▶로키산맥 서쪽 기슭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주 큰 세코이아 나무가 있습니다. 무려 2천년 된 이 나무는,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을 거니실 때부터 자라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당시에도 세코이아 나무는 이미 커다란 나무였다고 합니다. 독립 전쟁 당시에는 망대로 사용되기도 했고, 2천년 동안 산불, 홍수, 폭풍, 가뭄 등을 잘 견뎌 냈습니다. 앞으로도 몇 세기는 너끈히 살 수 있으리라고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세코이아 나무에 조그만 풍뎅이 한 마리가 알을 깠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수십 수백 마리가 되자, 또 이듬해 수천 수만 마리로 불어나자 사람들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풍뎅이들이 껍질을 망치고 나무 속까지 파고 들어가 결국 세코이아 나무는 견디다 못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세코이아 나무를 쓰러뜨린 것은 폭풍우가 아닙니다. 산불이나 홍수, 가뭄을 견디지 못해 쓰러진 것이 아닙니다. 그 거대한 나무는 풍뎅이 한 마리에 의해 쓰러졌습니다. 별 것 아니라 생각되는 것들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습관 하나가 우리의 인생을 쓰러뜨립니다. 그것이 나쁜 음악일 수도 있습니다. 음란 비디오일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음란사이트나 전자오락일 수도 있습니다. 나쁜 친구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지금 당장 우리를 망쳐 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주님과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좋은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아멘!/
1.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①우리도 예수님의 기도의 습관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습관은 아무리 바쁜 일과 속에서도 기도에 우선순위를 두셨습니다. 막1:35절에 '새벽에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예수님은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이 삶의 습관이셨습니다.
성도의 제일 좋은 습관은 새벽을 깨우는 것입니다. /믿/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함께 출발하는 것이 멋지지 않습니까?
'새벽 형 인간이 세상에서도 성공한다'는 책이 한때 베스트셀러였습니다. 누워서 새벽을 맞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깨어서 새벽을 맞이하는 사람, 틀림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새벽을 깨우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새벽에 잠들어 있는 사람은 새벽의 아름다움과 새벽에 임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알지 못합니다.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홍해를 가르시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새벽이슬과 함께 생명의 만나가 하늘에서 내렸습니다. 새벽에 난공불락의 성 여리고를 무너뜨리셨습니다. 새벽에 앗수르 산 헤립의 군대 십 팔만 오천 명을 산송장으로 만드셨습니다. 새벽에 예수님은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할/아멘!/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46:5절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또 시57:8절에서 다윗은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자는 하늘의 보고를 열 수 있는 '마스터 키'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아침 이슬과 함께 내리는 하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새벽을 깨우는 거룩한 습관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예수님은 그 습관을 따라 감란산으로 기도하러 가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마태복음에서는 겟세마네 동산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기드론 골짜기 넘어 감람나무가 우거진 감람산 기슭에 있으며 예루살렘 동쪽 벽으로부터 약 1.2Km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본래의 산 이름은 감람산 즉 '올리브 산'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산의 서쪽 중턱을 겟세마네 동산이라고 합니다. 감람산의 남쪽 능선을 따라가면 '범죄자의 산' 또는 '멸망 산'이라는 산이 나오는데 여기까지 감람산이라고 부릅니다. 어찌하여 이런 험한 이름이 주어졌는가 하면 솔로몬 왕이 이곳에 우상의 전각을 짓게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감람나무 동산은 중동의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쉼터로, 또는 묵상하는 장소로 매우 귀중히 여겨졌습니다. 감람나무는 가지가 많은 나무로 천천히 6m정도 자라며, 5-6백년을 사는 나무입니다. 만약 밑동이를 쳐내면 그곳에서 5개정도의 새싹이 나오는 번식력 또한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고대 중동 사람들에게 감람나무는 부의 상징이었고, 미(美), 힘, 신적인 축복, 번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시52:8절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이 겟세마네란 지명은 아람어 명칭으로 '기름 짜는 틀'이란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감람나무 열매를 틀에 넣어서 기름을 많이 짠 곳입니다. 예수님도 이 곳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을 짜고, 피를 짜고' 기도하신 곳입니다. 그러니까 땀이 변하여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노동입니다. 힘이 듭니다. 땀을 쏟고 피를 쏟고 눈물을 쏟고 생명을 쏟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능력이요, 축복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하면 영력이 임합니다. 기도하면 응답이 분명히 있습니다. 주님이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요14: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응답)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장면을 다시 살펴보면 예수님은 '무릎을 꿇고(눅22:41), 땅에 엎드리어(막14:35), 얼굴을 땅에 대시고(마26:39), 간절히 기도하시기를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마26:44)'하셨습니다. 우리도 이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의 습관은 은사가 아닙니다. 습관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습관은 행동의 반복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습관은 강력한 의지를 길러줍니다. 습관이 되어 있으면, 내가 그 습관에 쫓아 그 일을 하는데 강력한 의지를 발휘합니다.
나쁜 습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쁜 일인데도 왜 끌려가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나쁜 습관 안에 강력한 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습관을 깨트리지 아니하면 나쁜 것을 고치지 못합니다. 나쁜 것은 습관부터 깨트려야 고쳐질 수 있습니다. /아멘!/
좋은 습관은 좋은 인격을 만듭니다. 우리가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인격이 형성됩니다. 좋은 습관 중에 가장 귀중한 습관은 기도의 습관입니다. 예수님은 그 기도의 습관으로 우리 앞에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습관은 행동이 반복되어야 됩니다. 결심만 가지고는 습관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한두 번 해 가지고 습관이 안 됩니다. 지속적으로 행동이 반복되고, 이 반복됨이 과정을 이루어야 습관이 형성됩니다. /믿/
②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깊은 뜻은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에는 기도가 가장 실제적인 구제의 수단'이라는 교훈입니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교회도, 국가도, 곤경에 빠졌을 때 가장 실제적인 구제의 수단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하나님 앞에 내가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전쟁터에 나가서도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시간이 되면 언제나 천막 문에 흰 수건을 걸어놓고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 누구도 그의 기도 시간에는 만날 수 없다고 합니다. '기도 절대 우선, 누구도 침해 할 수 없는 기도시간'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만나 주시고 큰 힘과 능력과 지혜와 용기와 승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지금은 우리 모두 기도할 때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 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아도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갖는 통로입니다. 여러분,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른 관계입니다. 남편과 아내와의 바른 관계입니다. 부자와 자식간의 바른 관계입니다. 선생과 학생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교인과 목사와의 바른 관계입니다. 정치인들과 국민들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관계가 중요합니다. 이 관계가 바르지 않을 때 사고가 납니다. 소리가 나고 무력이 행사되고 급기야는 깨어지고 맙니다. 이 관계가 진실하게 잘 유지될 때 우리는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이 관계는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신앙인의 가장 큰 적은 기도를 가로막는 세력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마지막 기도의 교훈을 우리에게 귀한 진리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을 바꾸면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든다는 말입니다. 내 영혼이 깨어서 기도하지 않고 잠자면 시험에 듭니다.
유두고가 설교를 들을 때 잠을 자다가 회당 2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삼손이 드릴라의 무릎을 베고 깊은 잠에 빠질 때 머리털을 깎이고 힘을 상실하여 붙잡혀 갔습니다.
'D.L 무디'가 말한 대로 '새가 머리위로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으나 머리에 집을 짓는 것은 막을 수 있듯이' 우리에게 시험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시험에 들어서는 안 됩니다. 시험이라는 것은 받으면 들지만 받지 않으면 시험 들지 않습니다. 시험이 와도 NO THANK 하면 절대로 시험이 들지 않습니다. 내가 그것을 받으니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할/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내 영혼이 건강해야 합니다. 내 영혼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영혼의 호흡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내 영혼이 강건하고 믿음이 강하여 집니다.
▶우리가 어느 면에서 깨어 있어야 하는가?
⑴영적인 것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영적인 면에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사탄에게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벧전5:8-9절에서 말한 것처럼 깨어 있지 않으면 언제 마귀에게 삼켜 질지 모릅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다가 졸아서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경우 얼마동안 졸았습니까? 물으면 깜박 졸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87%이라는 것입니다. 깜박 졸았다는 말은 깜박 정신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그 깜박이라는 순간이 중요합니다. 깜박하는 순간에 사고가 터지고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깜박 정신을 잃은 그 순간에 마귀에게 속아넘어가고 사고가 터지고 이단에 넘어가서 패가망신할 수 있습니다.
⑵사람에 대해서도, 이단에 대해서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24:24절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表蹟)과 기사(奇事)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오늘도 수많은 이단들이 나를 미혹하게 하고 나를 속여서 잘 못된 길로 빠지게 합니다. 주의 종이라고 다 믿으면 안 됩니다. 삯군이 많습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삯군이 더 거룩한 것 같고 신령한 것 같고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가운데서 깨어서 분별 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⑶세상에 대해서도 깨어 있어야 합니다. 롬13:11-12절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악한 세상입니다. 세상에 대한 분별력이 없이 살다가는 망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⑷재림에 대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24:42-43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우리 더욱 분별해야 하는 것은 주의 재림입니다. 주의 재림을 이야기하실 때마다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 똑 같이 졸았지만 기름 준비하고 깨어 있는 자만이 혼인 잔치에 들어갔습니다.
뜻 있는 사람은 지금 '말세 지말'이라고 합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경고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깨어서 우리가 살아가야 합니다. /할/
③기도의 자세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겸손한 기도입니다. 항복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항복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무릎 꿇고 기도하다가 능력 받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다니엘입니다. 단6장에 보면 다니엘이 바벨론 왕국의 국무총리로 있던 어느 날 그를 시기한 정적들의 음모로 굶주린 사자 굴에 던져졌는데 그 이유는 다니엘을 제거하려는 정적들이 황제 이외의 그 어떤 신에게 절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진다는 긴급법령을 만들어 공포했는데 그 덫에 걸린 것입니다.
단6:10절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리고 난 후 사자 굴에 던져졌는데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23절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 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그의 믿음과 용기를 보시고 하나님이 사자 굴에서 끌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니엘의 기도의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⑴'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이 기도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의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가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런 기도가 기적을 만듭니다. /할/
⑵'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기도는 지정된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있는 그 곳이 바로 기도하는 자리입니다.
⑶'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이는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기도의 전당입니다.
⑷'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의 습관화입니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도 습관을 쫓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⑸'하루 세 번 씩'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다윗도 저녁과 아침과 정오 이렇게 세 번 기도하였음을 시55:16-17절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⑹'무릎을 꿇고' 피눈물나는 기도요, 부르짖는 기도요, 겸손의 기도입니다.
⑺'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기도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입니다. 대통령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까요? 대통령이 내 사정을 들어 준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요? 그런데 기도는 만 왕의 왕 되신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기회요, 하나님이 우리의 내 하소연을 들어 주시는 기회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있는 한 교회 뜰에 '소왈슨'이라는 사람이 만든 '예수 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상 밑에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성구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어느 여행객이 그 예수 상이 하도 유명하다는 말에 일부러 와 보았다고 합니다. 와서 그 동상을 직접 보았더니 유명하기는커녕 허무하리 만치 아무것도 아니더랍니다. 그래서 이 분이 안내자에게 물기를 '이것이 뭐가 그리 유명하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안내자가 말하기를 '선생님, 그렇게 뻣뻣하게 서서 보면 이 조각상이 주는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 동상은 가까이 가서 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올려다보아야 인자하신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그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은 그 인자하신 주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자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아멘!/
④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예수의 보혈의 공로로 인류의 구원'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금 주님은 그 뜻대로 이루어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기도를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여기 세 번은 숫자적 세 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한 의미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졌습니다. 기도할 때 하늘로부터 사자가 나타나 예수님을 도왔습니다. 이 기도는 천사가 돕는 기도였습니다. 천사가 돕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기도였습니다.
43절 '사자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예수께 힘을 돕더라' 여기 사자는 천사들입니다. 이 천사들은 하늘로부터 왔습니다. 땅의 군대가 아닙니다. 땅의 능력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늘나라의 능력이 땅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에게 나타나서 돕더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이 합니다. 기도는 땅에서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은 하늘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주의 사자를 통하여,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도와주는 역사로 일어납니다. 기도는 이렇게 사람이 하고 땅에서 하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하늘의 능력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축복이 우리의 기도 생활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기도는 무엇인가? '주여,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의 기도는 '전부 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겟세마네의 예수님의 기도는 나의 뜻은 처음부터 포기되고 '주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 기도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할/
⑤기도는 목숨걸고 해야 합니다.
44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의 생명은 간절성입니다. 기도가 분량으로도 중요합니다. 한 시간 기도한다는 것, 혹은 밤을 새워 기도한다는 것, 혹은 금식을 하며 많은 시간을 들여서 하는 기도는 그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가치는 그 기도에 담긴 간절함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를 5분을 하든, 10분을 하든, 한 시간을 하든 기도의 생명은 간절성에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이 간절함을 담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멘!/
어떤 목사님은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은 간이 저릴 정도로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겠습니까? 이런 기도는 간절함을 넘어 결사적인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눈물을 짜며, 땀을 짜며, 피를 짜며, 생명을 짜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이런 기도는 응답이 있습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아멘!/
그렇습니다. 기도가 능력이고 응답이고 축복입니다. 새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 것으로 인하여 날 수 있습니다. 배는 돛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항해합니다. 기차는 화통이 무거워도 그것으로 질주합니다. 비행기는 날개가 무거워도 그것으로 날아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피곤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달릴 수가 있습니다. /믿습니까?/
2. 우리도 좋은 습관을 만들어서 축복의 주인공들이 됩시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습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습관을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못하든지 우리는 대부분의 삶을 습관에 따라 살아갑니다. 언어습관, 먹는 습관, 입는 습관, 자는 습관, 운전습관 등등 우리의 삶은 온통 습관들의 연속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고 말합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안됩니다. 나쁨 습관은 버려야 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변화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도 모르게 습관화된 행동을 따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육은 좋은 습관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부모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①주일을 바르게 성수하는 습관이 좋은 습관입니다. 구약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몇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⑴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날로 생각했습니다. 창2장에 '일곱째 날을 복 주사'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므로 복된 날이고 주님을 예배하기 때문에 복된 날이며 영의 양식을 공급받고 심령을 윤택하게 하는 날이기 때문에 복된 날입니다.
⑵안식일은 거룩한 날입니다. 안식일에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주신 은혜를 묵상하며 말씀을 명상하는 날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은혜를 묵상하기에 너무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이 날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 중에 '하라'고 하신 말씀과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묵상하고 반성하는 날입니다.
⑶출31:14절에 안식일을 '성일'이라 '즐거운 날'이라 '존귀한 날'이라 했습니다. 사58:13절에 '여호와의 성일은 존귀한 날'이라고 했습니다. 왜 존귀한 날인지 아십니까? 존귀한 분께 예배드리러 가는 날이니 존귀한 날입니다.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약속해 놓았다면 그 날을 얼마나 기다립니까?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허락하신 성일이므로 어찌 존귀한 날이 아니겠습니까? 이 날은 복 받는 날입니다. 이 말씀에 큰 궁정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②바른 예배의 습관입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의 록펠러는 주일이 되면 반드시 본 교회로 돌아와 자기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언제나 남들보다 일찍 나와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고,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고 축복하셔서 세계적인 거부가 되어 큰 일을 많이 했습니다.
예배시간에는 세상의 모든 염려와 관심거리들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에게만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의 '하워드 장군'이 서부 해안지구 사령관으로 임명을 받자 그의 친구들이 수요일 저녁에 그의 영전을 축하하는 환송만찬회를 열기로 하고 여러 곳에 초대장을 보냈고 대통령도 축하전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들은 하워드 장군을 깜짝 놀라게 해주기 위해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맨 마지막으로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장군은 '미안하게 됐네. 사실은 수요일 밤에 선약이 있네' '하지만 이 사람아, 이 날은 저명한 인사들이 참석하기로 했으니 다른 약속을 취소할 수 없겠나' '수요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기로 하나님과 약속했다네. 세상에 이보다 중요한 약속이 어디 있겠나'라며 거절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친구들은 만찬을 하루 연기하여 목요일 저녁에 개최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독실한 신앙심에 감동을 받아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배시간에 가져서는 안 되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설교를 시작할 때 조는 습관입니다. 유두고는 졸다가 2층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지각하는 습관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각하는 사람을 VIP근성이라고 꼬집었습니다. 항상 주인공은 뒤에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사람들과의 약속도 잘 지켜야 합니다. 높은 사람과 만나기로 해 놓고 늦게 가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하물며 전능하신 그 하나님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바로 예배시간인데 그 시간을 늦어서 되겠습니까? 지금 책망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습관을 고치자는 것입니다. /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나쁜 습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고칠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섬김이고 헌신입니다. 특별히 시간의 헌신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간 헌신이 무엇입니까? 시간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시간 지키지 않는 영웅을 보았는가?' 잘 나가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우리 모두 잘못된 습관은 고치고 좋은 습관을 가져 성공하고 축복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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