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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4-24)

by 【고동엽】 2022. 2. 7.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사 43:14-24)

 

인간이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⑴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짐승은 생각이 없습니다. 사고 능력은 인간만이 지닌 특성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⑵도구를 만드는 존재입니다. 아담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도구를 만들어왔습니다. 원시적 일용품을 만들고, 돌이나 나무나 철로 무기를 만들었던 인간의 두뇌는 이제 컴퓨터와 핵무기와 레이저 광선과 우주선과 유전공학을 만들어냈습니다.
⑶유희하는 존재입니다. 다시 말하면 삶 자체를 즐기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합니다. 또 레저 붐을 일으키고 환락을 즐깁니다. 이 환락은 도를 넘어 마약의 힘을 입어 무아지경에 빠지게 합니다.
⑷부정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즉 '아니요' 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에게는 '아니요'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용어로 '자유의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자유의지가 때와 장소를 분별치 못한다면 자신에게 큰 불행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⑸희망적인 존재입니다. 인간만이 내일을 생각하고 미래를 꿈꿉니다. 짐승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인간은 지금 이 시간에도 생각하고 도구를 만들고, 생을 즐기고, 자유를 구가하면서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세계에는 문제가 그칠 날이 없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만들면 만들어 낼수록 그 속에는 불안과 절망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인간들은 핵무기를 만들어냅니다. 중성자탄, 레이저광선, 컴퓨터 유전공학 등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이 도구들이 인간 자신에게 희망을 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불안을 안겨주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은 ⑹인간이란 신앙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할/ 다시 말하면 '인간은 믿음을 가져야 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많이 생각하고 많은 것을 만들어내고 기분 좋은 환락에 빠져 산다 할지라도 그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고독과 절망을 인간자체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하나님은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계21:5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고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할/ ◀제목소개!▶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되어 있는데 신구약 성경의 축소판입니다. 1-39장까지는 구약 적인 메시지로 심판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고, 40-66장까지는 신약 적인 메시지로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특히 40:1-2절을 보면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이제 심판은 끝났고 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말씀으로 시작하는데 오늘의 본문은 바로 예언의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18절과 19절을 보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이제 '너희는 절망의 역사를 잊어라, 과거를 잊어라. 왜냐하면 새로운 희망의 시기이기에 새 일을 시작하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 본문의 배경을 좀 생각해 보겠습니다.

 

때는 주전 586년 경 남 왕국 유다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고 수많은 포로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민족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스라엘민족도 나라가 망하고 성은 불타버렸고, 민족지도자들은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자 깊은 실의와 절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비운의 왕 시드기야는 자기 눈으로 왕자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고, 자신도 두 눈을 뽑힌 채 포로로 잡혀가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에 큰 소원을 품게 되었는데 그것은 하루빨리 원수의 나라 바벨론을 쳐부수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모두가 다 함께 모여 무너져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고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해방과 독립의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그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백성들의 마음속에도 희망과 신앙에 동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이스라엘의 독립은 가능한 것인가? 우리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일 이년이 아니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게 되자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 앞섰고, 희망적인 것보다는 절망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가 망하고 자기 동족들이 포로로 잡혀가던 그 날부터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물론 기도의 제목은 '해방과 자유와 독립을 주시옵소서!'입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게 되자 그들은 하던 기도를 중단하고 불신의 말들을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해야 소용없다. 들으실 기도 같으면 벌써 끝장이 났을 것이다. 누가 이 백성을 해방시키겠는가? 이제 우리도 마음을 고쳐먹고 바벨론 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 잘 듣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에게는 이제 희망도 사라지고, 꿈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이제 나타낼 것이라'고 하십니다. /할/

 

2. 당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위기가 온 원인이 무엇인가?

 

①그 당시 위기의 원인이 오늘날도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바로 알아야 합니다.
⑴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개인이나 민족이나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의 진노가 옵니다. 이것이 성경이 주는 교훈입니다.
⑵정치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 신을 섬기도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요당했습니다. 또 정치지도자들이 바른 정치를 하지 않고 썩은 정치, 즉 족벌정치로 인심이 뒤숭숭했습니다.
저는 이산(정종) 연속극을 인상 깊게 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상왕이 손자 정종에게 성군이 되라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떠오르는 해는 작은 틈새도 남기지 않고 비추고,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서는 나가지 않는다. 작은 틈새도 비추고 깊은 웅덩이도 채우는 어진 임금이 되어라' 얼마나 자상한 당부입니까? 우리 대통령도 이런 마음을 품고 정치하도록 우리 기도해야 합니다. /할/
그렇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정치가 작은 틈새는커녕 큰 틈새도 비추지 못했고, 웅덩이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정치가 흔들리면 민심이 떠났습니다. 민심이 흩어지면 힘이 약해지고 그러자 쉽게 바벨론에 함락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역사의 진통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②여러분 왜 인류가 고난을 당합니까?
⑴죄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는 돈이 있다고, 학문이 높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와 벌'속에서 보면 '내일 죽을지, 모래 죽을지 모를 노파를 죽이고 금시계 하나를 훔친 죄로 고민하는 청년의 모습'이 나옵니다.
'주홍 글씨'라는 작품에는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자신을 돌보아주던 성직자와 잘못되어 평생 간음했다고 하는 리본을 앞가슴에 달고 다녀야했던 여인'처럼 인간들은 인생들이 저지른 과거의 죄로 인하여 평생 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⑵병마 때문입니다. 죄의 문제는 우리에게 병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진단입니다. 옛날에는 열병, 폐병 같은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암으로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에이즈라고 하는 병으로 공포에 쌓여 있습니다.
⑶가난 때문입니다. 여러분, 전쟁을 통하여 인류가 죽음을 당한 숫자보다 굶어서 죽은 사람의 숫자가 더 많다는 보고를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도 저 아프리카 오지에서는 굶어서 죽는 숫자가 하루에 4만 명이 넘는답니다. 그 영혼들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영혼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축복해 주신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어 뚱뚱한 몸을 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는데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서는 굶어서 죽어 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한계의 체제입니다.
또 인류는 ⑷정치적인 소용돌이 때문에 고난을 받습니다. 학생혁명, 군사혁명, 정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현대인들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류는 수많은 역사의 변천을 거쳐왔습니다. 원시부족시대를 지나 군주가 다스리는 시대로 또 봉건주의 시대, 제국주의 시대, 이제는 자본주의 시대와 일부 사회주의 시대로 바뀌면서 끝없는 역사적 변천의 소용돌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러한 변천과 고난 속에서도 꼭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변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새 일을 행하시되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은 흘러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라는 '자연 발생설'을 말하고 어떤 학자는 '진화론'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학자는 인류역사를 '원으로 된 법칙에 의하여 그 원의 궤계를 빙빙 돌고 있다'고 합니다. 영원은 전생에서 금생으로, 금생에서 내생으로 한 궤도를 따라 윤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불교신앙이 바로 이런 윤회설을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믿지 않습니다. 우주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완성되기 위해 하나님은 계속 인간과 관계를 맺고 계십니다.
이것을 섭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은 계속해서 인류를 다스리시고 심판하시고 도와주시고 발전시키십니다. 이것은 신학적인 용어로 구속사적 역사라고 합니다.
또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새 일을 행하리라'고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은 일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새 일을 행하시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우주가 영원히 있을 것이라는 영속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종말론을 믿습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분명하게 믿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습니다. 성경 66권은 하나님의 예언하신 모든 일들이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다만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심판 부분만 지금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크게 눈을 떠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수많은 나라가 있다가 없어지고 수많은 지도자나 통치자들이 왔다가 갔습니다.


③단2장에 보면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역사의 섭리에 대하여 예언을 하셨습니다.
포악하기 짝이 없는 느브갓네살 왕이 꿈을 꿉니다. 그 꿈이란 누구도 해몽할 수 없는 예언적인 꿈이었습니다. 왕은 그의 권세로 이 꿈을 맞추지 못하면 다 죽여 버리겠다고 합니다. 다니엘은 '죽으면 죽으리라'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게도 그 꿈을 보여주시고 깨닫게 하소서!' 드디어 다니엘이 본 꿈은 괴상한 괴물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의 형상이긴 형상인데 큰 키에 육중함이 엄청난 괴물이었습니다.
머리는 금으로 되어 있었고, 가슴은 은으로, 배는 동으로, 다리는 철과 흙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발끝은 열 갈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환상을 본 다니엘은 그 꿈을 풀어 해석해 주었습니다.
⑴금 머리는 그 당시 역사의 최고를 자랑하던 바벨론을 말하는 것으로 바벨론의 역사는 금처럼 빛났음을 뜻합니다. 특히 느브갓네살 왕의 세도는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지나갈 것임을 예언했습니다.
⑵은 가슴은 '페르시아'를 말합니다. 고레스 왕의 엄청난 제국인 '페르시아 대국도 무너지리라'는 예언입니다.
⑶동으로 된 배는 알렉산더 대왕의 헬라제국을 말합니다.
⑷철로 된 다리는 세계를 말발굽으로 짓밟았던 로마를 얘기합니다. 그러나 로마도 시저왕도 물러갔습니다.
⑸철과 진흙의 두 다리는 자본주의 국가인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국가인 사회주의 체제를 말합니다. 지금 우리 세대를 말합니다.
⑹마지막 발바닥에 하늘에 뜬돌이 나타납니다. 하늘에 뜬 돌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모든 나라는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는 건설하신다는 것이 성경이 주는 역사관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행하십니다. 바벨론 제국도, 페르시아 대국도, 헬라제국도, 한 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제국도 다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시며 운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믿/ 성경의 모든 예언은 다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님이 재림만 남겨놓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에 눈을 떠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이 가장 귀한 신앙입니다. /아멘!/

 

3.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간 종살이하던 민족을 지도자 모세로 세워서 건져내셨습니다. 당시 하늘을 찌를 듯한 바로에게 열 가지의 재앙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길에서도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해주셨습니다.
그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지켜주셨던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지켜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철갑성 여리고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오늘날도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고 있는 우리들의 여리고성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려 주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산 같은 문제가 있다하더라도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할/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붙잡혀 쓰임을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체험한 하나님도, 베드로가 체험한 하나님도, 언제나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저와 여러분의 생활 속에 새 일을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새 일은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십니다. 저주를 축복으로, 약함을 강함으로, 질병을 건강으로 바꾸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그러므로 여러분!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소망과 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부정적인 눈으로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소망이 없고, 우울하고, 답답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세상을 보면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소망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리라' 말씀하시고, 그 일도 이루어주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의 사정이 여러 가지로 좋지 아니하고 어려운 여건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새 일이 되어 집니다. /아멘!/
불경기로 허덕이는 우리들의 사업장에 우리 주님이 오셔서 새 일을 행하시면 놀라운 축복이 임합니다. 늘 불화로 숨막히는 내 가정 속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임하시면 그곳에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라디오나 TV의 채널을 바꾸는 것으로 이 프로, 저 프로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어느 채널에다 맞추느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판가름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을 집어넣고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동기를 부여하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①우리의 마음의 채널을 하나님의 능력에 맞추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의 이해관계와 관심을 끄는 것들이 세상에 많이 있지만 항상 우리 마음의 초점은 하나님의 능력에 맞추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엎드려 기도하는 생활,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에 맞추는 생활입니다.
인간이 보는 것과 하나님이 보는 것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적인 생각과 세상의 상식적인 생각은 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뜻에 근거를 두고 그 능력과 그 지혜를 통해 인생을 끌고 나간다면 우리가 지금 사는 것보다 몇 십 배, 몇 백배 축복이 임하실 것입니다.
단순히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고 사는 방식은 사람들 보기에 단순하고 유치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무엇이든지 컴퓨터같이 계획하는 사람보다 유치하게 보이는 신앙의 사람들의 문제가 훨씬 더 잘 풀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뒤에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②우리의 마음의 채널을 하나님의 사랑에 맞추시기 바랍니다.
자기 전부를 다하여 정말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데 채널을 맞추십시다. 그 다음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내 인생의 최고의 본분으로 알고 내 이웃을 사랑합시다. /할/
여러분!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없어지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것을 영원히 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상급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③인간이 정신적, 신앙적으로 성숙하려면 사랑의 세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⑴에로스 단계를 거처야 합니다. 자기의 욕정대로 무엇을 받으려고 하는 곧, 사랑을 받기만 하려고 하는 단계인데 이것은 어린아이의 사랑의 욕구와 같습니다. 이 욕구는 원시적이고 생물학적입니다.
이 에로스사랑이 절대 필요합니다. 어린아이 때 이 사랑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욕구불만이 쌓이고 이상성격으로 바꿔질 수가 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가 사랑도 줄 줄 알게 됩니다. 태산이도, 예소도, 다니엘도 사랑으로 키우시기를 바랍니다.
⑵필레아 단계를 거처야 합니다. 이것은 형제애, 또는 친구와의 우정관계를 말합니다. 받기만 하려는 단계에서 조금 인격이 성숙되면 주려고 하는 것이 생기는데 받은 만큼 주려고 하는 주고받은 사랑입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이 단계입니다. 조건적 사랑이지만 세상 적인 레벨에서 배반 안하고 은혜 갚을 줄 알고 그 정도면 표준 이상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마5:46절 이하에서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오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고 했습니다.
⑶아가페 단계를 거처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랑이고, 무조건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④우리가 아가페 사랑의 채널에 맞춰야 합니다. 이 채널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⑴믿음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듯 나도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⑵미움을 수술해야 합니다. 그래야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⑶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내가 먼저 풀고 사과해야 합니다.
⑷나도 저 사람과 똑같이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채널에 사랑의 채널에 맞춰질 때 하나님의 새 일이 창조됩니다. /할/

 

4.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①내가 너희를 건져내리라는 약속입니다. 14절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너희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라고 소개하고 계십니다. 또 15절에서는 '너희의 거룩한 자, 이스라엘의 창조자, 너희의 왕'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불안과 걱정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는 너희 창조자다, 너희 왕이다. 너희의 구속자다. 내가 너희를 건져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 그들의 모든 문제의 해결이 다 들어 있습니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입니다. 무에서 이스라엘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바벨론으로부터 건져내시는 것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건져내시는데 하나님은 아무런 방해나 도전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믿/ 이 사실이 믿어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멘!/
사람들은 이 진리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서럽고, 방황하고, 절망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창조자이시며 왕이시며 구속자이십니다. 새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②16-17절을 주목합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당시의 기적을 회상해 보라고 하십니다. 쉽게 직역해 보면 '홍해 바다 가운데 다가 길을 내시고, 그 큰 물결 가운데 첩경을 내고 애굽의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들을 이끌어 내어서 그들을 일시에 멸하여 버리고 너희를 구원하신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 당시의 홍해바다의 기적을 회상시킨 것은 '그 기적으로 너희를 인도해낸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내가 다시 한 번 너희를 바벨론에서 구원해 내리라'는 확신에 찬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건져내신 하나님을 오늘날도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고 건져내십니다. 질병에서, 고난에서, 사업에서도 계속해서 건져주십니다. /믿/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을 체험했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의심하는 불 신병 환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의심은 금물입니다.
약1:6-7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불신에 빠진 죄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많습니다. 어떤 문제가 터지면 믿음으로 보지 아니하고 '잘 될까? 힘들겠는데! 어려워! 망했어! 포기해야 돼'하고 절망하고 염려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망이나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큰 무기는 바로 기도입니다.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사람들은 권력의 힘만 크게 생각합니다. 돈의 힘, 지식의 힘, 기술의 힘 등을 바라보고 기도의 힘을 과소평가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체험을 했던 많은 신앙 인들은 권력의 힘보다, 돈의 힘보다, 지식보다, 기술보다, 기도의 힘을 위에 놓고 바라봅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역사가 나타납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은 지금 이 시간에도 나타납니다. /믿/ 다만 문제는 힘있는 기도, 확신 있는 기도가 사라진 것뿐입니다.
우리 성림의 사랑하는 성도들은 모두다 기도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이끌어 내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③18절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쓰라리고 아팠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민족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을 바라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지난날을 살아오면서 아팠던 상처가 있다면, 그것이 나를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가지 못하게 붙들어 매고 있다면 우리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새로운 결단을 하므로 힘차게 미래를 향해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 놓아야 합니다. /아멘!/
▶성경에서 보면 시간을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적 시간으로 '그냥 지나가는 시간, 즉 그 날이 그 날이고, 그 날이 그 날인 날을 의미'하고, 또 하나는 '카이로스'적 시간으로 '어떤 사건이나 역사를 통하여 일어나는 시간, 즉 나에게 의미가 있고 하나님의 간섭이 잇는 그 시간'을 의미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이 말은 바로 '카이로스'적인 시간입니다.
신앙 인들은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앞날을 보는 것입니다. 나의 과거가 실패의 삶이었던 불신의 삶이었던 하나님 안에서는 과거는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지금 이 시간 앞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3:13-14절에서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너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뚝하면 애굽에서 살았던 일, 그러니까 세상 적으로 살았던 일을 기억하고 뚝하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세상 적인 생각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마음 판에 예수님을 품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④19절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라!'
여러분, 광야는 안식처가 없는 곳입니다. 인생은 광야와 같습니다. 광야는 길이 없고 광야에는 물이 없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길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했고, 물 때문에 탄식했습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길이 없고, 물이 없는 광야라면 한마디로 죽음이 지배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고 강물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예표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두 사람이 마시고 만족할 수 있는 조그마한 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마르지 않는 강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강물은 돈이 없어도 마실 수 있습니다. 특권층이 아니라도 마실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생수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셨습니다. 주님은 요7: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습니다. /할/

 

5.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가?(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기쁨을 받으며 사는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를 기쁘시게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사랑하심과 축복하심을 받으며 사는 존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랑하고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유교의 세계에서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문을 빛내고 군왕에게 충성하는데 둡니다. 공산주의 세계에서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국가와 수령님에게 충성하는데 둡니다. 21세기 현대 세계에서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아마 개인의 행복과 쾌락을 추구하는데 둘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에서는 사람의 가치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둡니다. 특히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를 삶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칼빈의 삶의 모토는 '하나님께만 영광을!'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산물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라고 묻고 대답하기를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고,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하여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으시고,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그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터놓고 얘기하면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만 그건 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고, 내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지었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수령님을 노래하는데 있지도 않고 연인을 노래하는데 있지도 않고 내 명성을 노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노래하며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게 하는데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예배)을 돌리는데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믿/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자손 대대로 전해준다는 전래동화가 있습니다. 인디언의 어느 추장이 나이가 들어 자기 아들에게 추장직을 물려줄 때가 되었습니다. 그 추장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데리고 사냥을 갔습니다. 추장은 내심 사냥에 가장 뛰어난 아들에게 추장직을 물려주려고 생각을 했습니다.
유능한 사냥꾼인 아버지가 먼저 커다란 나무 사이에 앉아 있는 독수리를 발견하고는 큰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무엇이 보이느냐?' 그 말에 큰아들은 '푸른 하늘과 울창한 숲이 보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실망한 추장이 둘째 아들에게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둘째 아들은 '커다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독수리가 보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둘째의 대답에도 만족을 못한 추장은 다시 막내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막내아들이 대답하기를 '커다란 독수리가 보이는데 두 날개 사이로 독수리의 가슴이 보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추장은 기쁨에 찬 소리로 '그러면 그곳을 쏴라' 하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독수리를 명중시킨 셋째 아들이 추장의 자리를 물려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버지의 뜻을 정확히 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한 복과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6.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내가 먼저 새 일을 행해야 합니다.

⑴성전 중심,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구약에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가 함께 할 때 엄청난 복이 임했습니다.
⑵말씀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시1:2-3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계1: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⑶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해지는 비결은 많은 기도를 통하여 나타납니다. 기도는 지금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는 지금도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⑷의무를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가 됩시다! 다시 말하면 공 예배를 중요시 여깁니다. 주일예배, 오후예배, 수요예배를 중요시 여깁니다. 공 예배를 참석하는 것이 성도의 의무입니다.
▶봉사에 힘쓰는 성도가 됩시다!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마땅히 온전한 십일조와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의무요 헌신과 봉사의 첫 번째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이요, 천국 건설의 첫 번째 방법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그러면 쌓을 곳이 없게 부어 주리라"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성경을 믿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성도가 됩시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믿는 자가 더했더라'고 했습니다.
2008년도에는 '한 사람이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에 노력해야 합니다. 또 전도한 사람을 1년 동안 잘 관리해서 알곡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전도 생활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새 일을 하나님이 시작하시기를 원한다면 먼저 내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새 일은 내 영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시51: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이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십니다. 여러분, 실패했어도 다시 한 번 도전합시다. 하나님의 능력에 손길에 붙잡히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과 동업자가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채널'에 다이얼을 맞춰야 합니다.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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