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지성소의 신앙을 갖자! (히 10:19-39)

by 【고동엽】 2022. 2. 7.

지성소의 신앙을 갖자! (히 10:19-39)

 

'어리석은 소년 한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스라는 소년이 집을 떠나 외지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해서 주인으로부터 금 덩어리 하나를 삯으로 받게 됩니다. 소년은 집으로 가는 도중 어떤 사람이 말 한 필을 끌고 가는 것을 보고 그것이 갖고 싶어 금 덩어리를 말과 바꿉니다. 얼마를 가다가 말을 거위 한 마리와 바꾸고, 다시 얼마를 가다가 거위를 고양이 한 마리와 바꿉니다. 다시 얼마를 가다가 고양이를 숫돌과 바꿉니다. 나중에 개울을 건너다가 그것까지 물에 던져 버리고 빈손으로 집으로 가면서 그는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잃어버린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단지 귀찮은 것을 버렸기 때문에 홀가분하다고만 생각했지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는가?'에 대해서는 전연 생각을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현대 사람들이 소중한 것을 이렇게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는 가족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족관계를 내팽개쳐 버리고 돈을 벌겠다고,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고 가족을 쉽게 버리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그 하나님을 잃어버리고도 무엇이 소중한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인생들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다 고장 난 인생들입니다. 고장 난 자동차는 정비공을 만나야 하듯이 고장 난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삽니다.
죄로 고장 난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아담은 가죽옷을 입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아벨은 제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은 돌 제단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모세 이후에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 모세를 통하여 계시하신 성막을 짓게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항상 성막을 중심으로 살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항상 성막성전 위에 머무르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소망과 축복을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것을 알고 늘 성전을 가까이 하고 성전을 사랑했고, 성전을 바라보면서 늘 소망가운데 믿음으로 살아가게 했습니다.

 

▶성막성전은 3개의 단계로 이루어 졌습니다.
⑴제물을 준비하는 성전 뜰(마당)이 있고, ⑵떡 상과 금 촛대와 분향 단이 있고 성소가 있습니다. ⑶법궤와 속죄소가 있는 지성소가 있습니다.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휘장(쉽게 표현하면 커튼)으로 가리어 경계를 그었습니다.
그래서 광야교회 성전은 대체로 세 가지 단계로 분류합니다. 제일 안에는 지성소, 그 다음에는 성소, 그 다음에는 마당(뜰)입니다. 마당에는 유대인의 뜰이 있고, 여인이나 이방인의 뜰이 있습니다.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유대인들이 들어가는 구역이 있고, 여인들이 들어가는 구역이 있으며, 이방인들이 들어가는 구역이 있습니다. 마당까지는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소 안에는 제사장만 들어가고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도 1년에 단 한 번 대 속죄일 날에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제일 중요한 곳입니까? 한 마디로 지성소입니다. 지성소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왜 지성소가 중요한 것인가?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는데 법궤 안에는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십계명 두 돌 판과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와 그리고 만나 항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성소의 법궤는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 역사상 가장 귀중한 보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세계의 중심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입니다.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입니다.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입니다.> 그렇습니다. 법궤는 주님의 모습인데 예수님은 법궤처럼 역사의 중심에 서 계신 분이십니다.
지성소 안에 법궤는 하나님 만나는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죄인 된 인간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을 만나게 하는 중보자입니다. 예수 십자가 없이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법궤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피를 뿌리며 만났습니다. 예수 피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믿/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출25:22절에 보면 하나님은 지성소에서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 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곳이 바로 지성소입니다. 지성소까지 나아가는 것이 제일 큰 축복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왜 지성소까지 못 갑니까? 그것은 인간이 범 죄 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못 들어가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밖에는 절대로 다른 사람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을 긋고 커튼을 친 것입니다. 여기서 커튼은 휘장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왕이 함부로 성전 안에 들어갔다가 하나님 앞에서 문둥병이 걸린 경우가 있습니다. 제일 귀한 곳은 지성소입니다. 그런데 지성소에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번 대 속죄일인 7월10일 하루만 백성들의 죄를 가지고 짐승의 피를 뿌리며 대속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절대 피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빨래를 짜보아라. 물이 나올 것이다. 성경을 짜보아라. 피가 나올 것이다. 구약을 짜보아라. 짐승 피가 나올 것이다. 신약을 짜보아라. 예수 피가 나올 것이다. 성경에서 피를 보지 못 하면 영적 장님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막은 그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할/
또 성소는 거룩한 곳이기에 제사장이라도 다니다가 짐승의 죽은 시체라도 본 것이 있으면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철저하게 요구하셨습니다. 대제사장도 매일 목욕을 해야 하고 들어갈 때마다 손을 씻어야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제사장의 몸에 조그마한 흠이 있어도 그 안에 들어갈 수 없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완전한 자만이 지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지성소에 휘장이 갈라지고 이제 우리가 그 지성소 앞에 나가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19-2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다'는 말씀입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 휘장이 굳게 쳐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은 휘장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 몸을 찢어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27:51절에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순간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쫙 찢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휘장을 지나 하나님 앞에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앞에까지 나갈 수 있는 지성소의 길을 열어주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의 축복은 지성소 안에 있고, 하나님의 은혜도 지성소에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있는 곳은 백악관입니다. 우리나라는 청와대입니다. 백악관에 가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크게 실망을 했다고 합니다. 왜 실망했는가?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의 규모가 너무 작더랍니다.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고,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대통령이 있는 곳이 어떻게 이렇게 허술할까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러나 집이 커서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권력으로 다스리기 때문에 집이 적어도 그 안에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세계의 모든 정치, 경제가 거기에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구약의 성막이 왜 귀한지 아십니까? 오늘 우리가 앉아 예배드리는 성전이 왜 귀한지 아십니까? 건물이 좋아서입니까? 아닙니다. 세상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믿/
오늘 이 자리가 지성소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오늘 이 자리입니다. /믿어지면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할/
▶시리아에 '오펠로'라는 사람은 세상에 사는 동안 높은 왕을 한 번 모시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가장 절대자, 말 한마디면 온 나라가 다 그대로 복종하는 왕을 가까이서 모시는 것이 늘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오펠로가 시리아 왕의 신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왕을 가까이 하고 충성을 다했습니다. 왕은 그 나라의 신이요, 절대자입니다. 그런데 왕을 가까이하면 할수록 왕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이 불안해하고, 긴장하고, 잠을 못 자고, 염려를 합니다. 하루는 그 왕을 모시고 길을 가는데 그 왕이 마귀에게 눌려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오펠로는 '내가 모시고 있는 왕보다는 마귀가 더 강하구나' 생각하며 즉시 그 자리를 떠나서 악마를 섬기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사탄에게 사로잡혀 악령이 충만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교회 옆에 지나게 되었는데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발걸음이 움직여지지 않고 벌벌 떠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온통 불안과 긴장에 사로잡혀 옛날 왕이 사탄을 보고 두려워하듯이 십자가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고 사탄보다 더 능력 있고 힘있는 것이 십자가요, 교회란 것을 깨닫고 사탄의 길을 벗어나서 교회에 들어가서 충성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었다는 예화가 있습니다. /아멘!/
사탄의 길을 따르는 자는 불안합니다. 길이 막힙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 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의 교회에 나오면 여러분의 삶은 지성소의 삶, 주님을 만나는 삶이 되어 영광의 왕이요, 만 왕의 왕이신 절대자인 예수님과 늘 동행하며 형통한 길을 가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성소까지 나올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지성소에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지성소에서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뜰만 밟는 성도가 있고, 성전 문지방만 밟는 성도가 있고, 지성소 깊은 곳까지 나오는 성도가 있다고 합니다. 성전 뜰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짐승소리만 요란합니다. 지성소에 나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성소에 나가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성소를 지나야합니다. 성소에는 '떡 상이 있고, 금 촛대가 있고, 금향로'가 있습니다. 떡 상은 말씀에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함이요, 금 촛대는 성령의 충만함을 의미함이요, 금향로는 성도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 말씀으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기도로 무장합시다. 지성소에서 기도하십시오, 응답이 분명히 있습니다. /할/

▶1970년 4월 11일 날 '아폴로 13호'가 발사되었습니다. 그러나 30마일을 벗어나면서부터 사고가 났습니다. 기계 고장이 생긴 것입니다. 연료 탱크의 고장으로 궤도에서 벗어났습니다. 돌아올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아폴로 호와 그 안에 탄 사람들의 생명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이 궤도를 수정해 보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허사였습니다. 그때 미국 대통령 '닉슨'은 온 국민들에게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기도의 날을 정해서 24시간 동안 온 국민이 기도합니다. 대통령도 직무를 보지 않고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기도합니다. 백악관의 직원들도, 모든 관공서, 초, 중, 고 대학교 학생들도 모두가 기도했습니다. 반기를 꽂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던 미8군도 기도했습니다. 미국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던 역사 속에 살아왔던 민족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런 기도가 '지성소의 기도'입니다. 성전 뜰에 머물러 있는 기도는 응답이 없습니다. 지성소에 나와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해 보세요, 지성소의 기도는 하나님이 분명 들어주십니다.
'아폴로 13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우주선은 대서양에 떨어졌습니다. 우주선에 탔던 사람들도 무사히 귀환했습니다. 그때 그 우주선에 누가 들어 간지 아십니까?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목사님이 들어가서 아폴로에 탄 우주 비행사와 함께 기도하는 장면이 온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정말 미국은 멋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성소 안에 들어가면 가까이 계십니다. 그곳에 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복을 받습니다.

▶또 '지성소의 기도'를 하다가 영감을 받은 음악가가 있습니다. 여러분, 음악이 울려 퍼지면 영국 여왕도 일어나 경의를 표했다는 곡이 있습니다. 어떤 곡입니까? 바로 '헨델'이 작곡한 '메시아' 중 42번인 '할렐루야'가 그 곡이랍니다.
헨델은 근세기에 가장 뛰어난 작곡가로서 그가 만든 곡마다 사람들의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를 시기한 사람들이 그의 곡이 발표되는 공연장마다 깡패들을 보내 공연장을 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리곤 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그는 반신불구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이름 모를 한 그리스도인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왔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버림받은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능의 주님은 온 세상의 왕이 되어 지금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힘내십시오!' 이 한 통의 격려 편지가 헨델의 몸과 마음에 놀라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다시 힘을 얻은 헨델은 2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묵상기도에 몰두했습니다. 24일째 되는 날 하인이 그의 방에 들어갔다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헨델을 보았습니다.
헨델은 잠시 후에 악보를 들고 '내 앞에 하늘이 열렸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뵈었다.'고 외쳤습니다. 바로 그 날 헨델은 영원불멸의 명작 '메시야'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한 무명인의 신앙인이 보낸 격려의 편지가 절망과 좌절로 죽어 가던 헨델을 일으켜 세워 영원불멸의 명작 메시아를 탄생시킨 것입니다. /할/ 지성소 기도는 놀라운 영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할/

 

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지성소의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까?

 

본문 25절을 한 번 크게 읽겠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행2:46절에 보면 초대교회는 날마다 교회에 나왔다고 했습니다.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학생은 학교를 매일 가야 합니다. 우리도 온전한 신앙을 가지려면 교회에 잘 나와야 합니다. 모여야 뭐가 되도 됩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도 성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여야 복을 받습니다.

 

①왜 오늘 날 사람들이 모이기를 싫어합니까?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⑴세상이 너무 분주해서 그렇습니다. 이 시대의 특성이 그렇습니다. 웬일인지 분주합니다. 별로 하는 일이 없는데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분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주일날 교회에 나와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도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습니다. 왔다가도 예배가 끝나기가 무섭게 가야합니다. 이렇게 생활이 번잡하고 분주하면 신앙생활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선 정신적인 여유가 없습니다.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삶의 현장에서 일의 우선순위가 분명하게 정해져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할/
분주하게 살아가다가도 예배드리는 날이 되면 모든 것을 다 놓아두고 먼저 하나님 전으로 달려 나와 나의 신앙을 고백하고 구원받음에 대한 감사와 바로 살지 못함에 대한 회개와 우리들의 삶 속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계명으로 정하셨습니다. 구약의 다윗은 예배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산 자입니다.
시73: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여기서 다시 눈을 뜹니다. 더러워진 마음을 씻어서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안경을 닦듯이 흐려진 마음을 닦아서 새로운 마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 때에야 비로소 '그 결국을 알았나이다.' 이제야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면 우리가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예배드리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래야 하나님을 바로 알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⑵형식주의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형식주의 때문에 망한 나라입니다. 대충대충 건설하다가 오래 전에 성수대교가 무너졌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적이 있다면 그것은 형식주의입니다. 이 형식주의는 신앙 인들에게서 진지한 마음을 빼앗아 갑니다. 눈물도, 순수함도 빼앗아 갑니다.
주일날 예배드리러 나왔는데도 마음에 감격이 없고, 그냥 그저 의무적으로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배는 내 마음과 정성과 뜻을 모아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입니다. 형식주의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좀 먹게 하고 모이기를 싫어합니다.
⑶안일주의 때문입니다. 신앙이 이렇게 형식화되면 곧 바로 안일함에 빠지게 됩니다. 주일이 돌아와도 전혀 준비가 없습니다. 오히려 토요일 날은 밤늦게까지 놀거나 TV를 보다가 늦게 잠을 잡니다.
그러니까 주일날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예배 시간이 가까워오면 고민이 많아집니다. '교회를 가야 되냐? 아니면 계속 잠을 자야하냐? 이것이 문제로다'입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교회에 가야지!'하고 일어나려고 하면 몸이 천근만근입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용기를 내어 일어나면 시간은 이미 지나가고 있고 허둥대며 교회에 와 보면 예배는 중간쯤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안일주의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사라지고 맙니다.
사실 예배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드려야 할 소중한 시간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받은 것에 감사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헌신 중에 가장 큰 헌신은 예배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된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
⑷지식으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신앙이 후퇴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라디오를 켜고, TV를 켜고 컴퓨터를 켜면 기독교 방송, 극동방송에서 유명한 목사님들의 설교가 쏟아집니다. 그래서 지식적으론 굉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신앙은 아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머리로, 생각으로, 지식으로 가는 신앙은 구원의 힘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가슴의 종교입니다. 머리의 종교가 아니라 가슴으로 믿는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체험하는 종교입니다. 체험하는 신앙은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식으로 믿는 신앙은 힘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대예배에도 오후 찬양예배에도 수요예배, 금요예배, 정기 예배 때마다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지성소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②그러면 왜 모여야 합니까?
⑴교회란 그 중심이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란 '히'어로 '카함'인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 앞에 모여 있는 회중'이란 뜻입니다. 또 '헬'어로는 '에클레시아'인데 '불러냄을 받은 거룩한 무리'란 뜻으로 '집회'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교회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모인 '단체, 집합체,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여기 본문의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쫓지 말라는 말씀 중에 '모인다'는 말의 원어의 뜻은 '마치 암탉이 그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하나님의 품안에 모으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품에 안아 양육하고 보호하시기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믿/
그래서 교회란 마치 사람의 심장과 같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각각 가정과 세상에서 살다가 교회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능력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성도들의 믿음을 키워 나가는 신앙 양성소이며 소망을 굳게 다져주는 믿음의 공사장입니다.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인내력을 공급해 주는 보급소이며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무장하는 보급 창고입니다.
환난 날에는 안전한 도피성이요 구원의 방주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 하는 잔치 집입니다. 우리 영혼이 상쾌하게 심호흡을 할 수 있도록 새 영을 불어넣어 주는 공해 없는 신령한 동산이 바로 우리 성림교회입니다. /할/
또 하나님의 교회는 참 생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강이 흘러가는 곳입니다. 우리의 어떤 문제도 풀 수 있는 열쇠를 가진 축복의 창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야말로 만병통치약을 공급해 주시는 신령한 약방이요, 만병의 의원이신 예수님께서 치료의 광선을 발하는 신령한 병원과 같습니다.
이런 신령한 교회에 모여서 은혜를 받고 능력을 받아서 다시 가정과 직장과 세상으로 나가서 빛을 발하고 소금의 짠맛을 내는 것이 성도의 본분입니다. /믿/
⑵성도의 모임 속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18:20절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래요! 우리가 개인적으로 예배드리거나 기도할 때도 주님은 함께 계시지만 두세 명 이상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예배드리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할 때에 주님은 더욱 힘있게 임재하십니다. /할/
⑶모여야 뜨거워지고, 모여야 뭐가 되도 됩니다. ▶미국의 'D. L 무디' 목사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성도가 열심히 출석하더니 어느 날부터 열심히 식어지고 교회를 빠지기 시작합니다. 무디 목사님은 그 성도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그 성도는 벽난로를 쬐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기도한 후에 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집게로 벽난로에서 시뻘겋게 달구어진 불덩어리를 하나 꺼내 놓았습니다. 그러자 그 덩어리는 불이 꺼지면서 다 죽은 숯 덩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묵시적으로 그의 식어버린 신앙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성도는 목사님의 이런 모습을 이상히 보고 있다가 크게 깨닫고 고백했습니다. '목사님 잘 알았습니다. 다음 삼일 밤 기도회 때부터 열심히 나가겠습니다.' /할/ 깨닫는 성도가 복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시뻘건 숯 덩이도 따로 떼어놓으면 꺼져 새까만 숯이 되고 맙니다. 믿음이 아무리 좋던 성도라도 교회를 자주 빠지면 신앙의 불이 약해지다가 마침내는 불이 꺼진 병든 성도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자라도 열심히 참석하면 서로가 뜨거워지고 믿음이 날로 성장합니다. 여러분, 믿음이 세상을 이기고 믿음이 역사를 일으킵니다. /믿/
⑷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가장 영광을 돌리는 방법도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시간이요, 우리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보답으로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지성소의 신앙은 예배를 통하여 얻어집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 앞에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토리' 박사는 주장하기를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들의 본분이요, 의무이며, 나아가서는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만일에 그대가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면 그대는 마땅히 그에게 예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 행위는 오직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인 우리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 행위는 우리 사람들만이 하나님께 부여받은 특권이라는 말입니다.
▶예배란 히브리어 낱말은 '샤하'인데 그 의미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⑴'섬긴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의미입니다. ⑵'절한다.'는 뜻인데 즉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의미입니다. ⑶'엎드린다.'는 뜻인데 즉 '하나님께 복종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절정에 오릅니다(자랍니다). 태어난 아기가 모유를 먹으면서 성장하듯 구원받은 성도의 모유는 하나님의 말씀(성경)입니다.
벧전2:2절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성경)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에 하려 함이라" 또 롬10: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아멘!/

 

2. 이제 지성소의 신앙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본적인 것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35절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상을 얻느니라' 또 38절입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본문 두 절에서 두 가지 명령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버리지 말라'와 '물러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옛날 어느 집에서 박 씨를 심었습니다. 박 넝쿨이 뻗더니 지붕 위에 박이 열려 커 가는데 날이 다르게 커져갑니다. 어느 날 함지박 만하게 크고 함지박 만한 것이 장독 만하게 커졌습니다.
박은 계속해서 커지더니 쌀뒤주만큼이나 켜졌습니다. 나중에는 나루터에 매어 놓은 배만큼 크더라는 것입니다. 당황한 주인은 이 박을 어디에 쓸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고민 때문에 얼굴이 수척해지기 시작하더니 피골이 상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할 수 없이 이 고을의 소문난 도사를 찾아가 계속 커져만 가는 박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그 도사는 간단하게 말합니다. '아따 이 사람 흐르는 강물 위에 띄워 보내면 될 걸 그래!' 박 주인은 무릎을 치고 돌아와 그 날로 흘러가는 강물에 박을 띄워 보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이규태 씨의 한국 에세이집에 나오는 한 토막입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근심, 고민, 걱정 따위들은 흘러가는 강물에 박을 띄워 보내듯 잊어버리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해서 될 것이 있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포기해도 될 것이 있는가하면 포기해도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잊어도 될 것이 있고, 안될 것이 있습니다. 물러서야 될 것이 있고, 안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버려야 할 것과 버려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이며 물러서야 할 것이 무엇이며 물러서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①담대함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35). 여기 '담대하다'는 말은 '겁이 없고 용기가 많다'는 말로써 '확신'이라는 말입니다. 확신을 가진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없으면 작은 일에도 두렵고 걱정스럽고 떨리기 마련입니다. 확신이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 조건 가운데 던져 질지라도 자신의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 '담대하다'의 반대말은 '비굴하다, 겁내다'입니다. 그러니까 '담대 하라'는 말은 '비굴하거나 겁내지 말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⑴히브리서 기자는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32절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여기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그리스도인이 된 후'를 말합니다. 그리고 '고난의 큰 싸움에 참여 한 것'은 '믿는 이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 대하여 당당히 대항하며 목숨조차 기꺼이 내어놓았던 용기 있는 신앙의 행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짐승의 가죽을 쓰고 사냥개에게 물어 뜯김을 당하고,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인 원형 경기장에서 사나운 맹수와 싸우다 죽임을 당하고, 또는 기름에 흠뻑 젖은 인간 횃불이 되어 죽어가면서도! 이런 말할 수 없는 모욕거리와 구경거리가 되면서도 그리스도를 배반치 아니하고 신앙을 지킨 역사 속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담대한 용기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⑵그리고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또 있습니다. 33절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무슨 말입니까? 요즘도 그렇습니다. 뜨는 사람들! 권세와 힘이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비난받는 사람들! 죄인 취급받는 사람들을 가까이 하려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왜 없습니까? 그들과 사귀려면 희생과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예수 믿는 것이 항상 위험의 표적이 되었으며, 그런 이들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도 동일한 취급을 받는 시대인데도 그들과 영적인 교제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자기에게 불이익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다 순교하고 핍박을 받는 자들과 함께 고난을 나누려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내 신앙에 회의가 일어나고, 침체되고, 게을러 질 적에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신앙의 선배들을 생각하고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담대함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배짱이 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는 말은 '확신을 버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확신을 가진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확신이 없으면 작은 일에도 두렵고 걱정스럽고 떨리기 마련입니다. 확신이 있는 사람은 어느 곳에 던져질지라도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마련입니다. 이런 믿음이 지성소의 믿음입니다.

 

3.우리가 담대함을 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주안에 있으면 담대합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심령을 노크하고 계십니다. 계3:20절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
②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신앙을 가질 때 담대해집니다. 비 오고 바람 불고, 폭풍이 이는 밤에도 태양은 여전히 찬란히 빛나고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여러 가지 시련과 환난의 바람이 불어와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사41: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③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 가야 합니다. 31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하나님의 손은 잘못했을 때는 무서운 손입니다. 매를 때리는 손입니다. 그러나 넘어졌을 때는 일으켜 세워주시고, 위험한 일을 당할 대는 막아주시고 지켜주시는 손입니다.
믿는 사람은 잡을수록 감격스럽고 따뜻한 것이 하나님의 손입니다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형벌과 심판을 내리는 손입니다. 바로 그 손에 내가 있다는 것을 믿을 때 담력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손 밖에 있으면 두렵고 떨립니다. 내가 불안한 이유, 떨리고 겁나는 이유, 괴로운 이유, 초조한 이유 모두가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손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믿/ 오늘 주제로 말하면 지성소 밖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④담대함을 가진 신앙, 확신이 있는 신앙은 큰상을 바라봅니다(35). 상은 기분 좋은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상도 축복입니다. 학생들은 상하나 바라보고 열심히 매진합니다. 운동선수들도 상하나 바라보고 열심을 냅니다.
본문이 말하는 큰상은 주님이 주시는 상입니다. 면장이 주는 상보다는 도지사가 주는 상이 큽니다. 도지사보다 총리가, 총리보다는 대통령이 주는 상이 더 큽니다. 그보다 더 큰 상은 우리 주님이 주시는 상입니다.
누가 이 상을 받습니까? 담대함을 버리지 않고 신앙의 경주를 계속한 사람, 지성소의 신앙을 가진 자가 받습니다. 이상은 노벨상보다, 헴플턴 상보다 더 크고 위대한 상입니다.
⑤이 상을 받으려면 인내해야 합니다. 36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고, 히12:1절 끝에 보면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라'고 명하셨습니다.
⑥지성소의 신앙은 절대로 물러서면 안 됩니다. 39절 그리고 38절 중반에 보면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물러간다.'함은 '신앙의 퇴보, 영혼의 침체, 구원의 포기'를 말합니다.
▶물러서면 ⑴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신앙이 갈팡질팡하는 사람, 믿음이 기우뚱거리는 사람, 변덕스러운 사람은 목사가 보아도 기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담대히 환난도 시련도 조건도 환경도 이기면서 믿음을 지켜 가는 성도를 보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의 신앙 절대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물러서면 죽습니다.
▶물러서면 ⑵침륜에 빠집니다. '침륜'이란 '재산이나 명예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올라가지 못하고 내리막길로 치닫는 것이 침륜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건강이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직책이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사업이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물러서면 침륜에 빠진다고 말했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지성소 신앙은 뭐니 뭐니 해도 모이기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하고, 우리의 믿음의 담대함, 믿음의 확신을 절대로 버려서는 아니 됩니다. 믿음은 우리를 온전케 하신 예수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지성소의 신앙은 오늘도 기적을 일으킵니다. 주님이 함께 하면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믿으시면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