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의 신앙의 인격! (몬 1:4-7)
오늘 본문으로 읽은 빌레몬서는 바울의 서신 중 하나인데 아주 짧은 성경입니다. 바울 사도가 선교 말기에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 편지입니다.
본문에 나오고 있는 빌레몬이라는 사람은 원래 '골로새' 사람으로 부자이었고, 인품이 좋은데다 온화한 성품이었습니다. 그는 사회 지도급인사였을 뿐만 아니라 종들을 거느릴 만큼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들 중에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오네시모'라는 종도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빌레몬은 원만한 인격을 고루 갖춘 사람으로 아주 점잖은 신사였습니다. 그는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집회를 하게 되었을 때 그 집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에 돌아와서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모셔다가 자기 집에서 골로새 교회를 개척하고 온 식구가 협력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동역자'(1절)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돈벌이를 위한 동역자는 친구나 형제일지라도 때때로 불편한 관계로 끝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위한 동역자는 예수의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복음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한 동역자의 관계입니다. /믿/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고 복음을 위해서 하나가 된 존재들입니다. /아멘!/
빌레몬의 부인은 2절에 나오는 대로 '압비아'이고 '아킵보'는 빌레몬의 아들이라고 학자들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아킵보를 소개하기를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라고 한 것을 보면 목사님으로서 골로새 교회를 섬겼던 분이 틀림이 없습니다. 골로새 교회의 초대 목회자는 '에바브라'입니다. 그가 지금은 로마에 있습니다. 에바브라가 로마로 가고 나서는 빌레몬의 아들인 아킵보가 대를 이어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빌레몬의 주제는 '사랑을 실천하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형제로 사랑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 빌레몬서의 주제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로마 감옥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서 많은 사람을 전도했습니다. 그 중에 빌레몬의 집에서 종으로 있었다가 감옥에 들어온 '오네시모'에게도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집에서 있을 때 마음을 악하게 품고 돈을 훔쳐서 도망을 갔습니다. 돈을 훔쳐서 당시 세계의 수도라고 불리는 로마에 가서 숨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도둑 심보가 도져서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잡혀 감옥에 들어왔는데 마침 사도바울이 있는 그 감옥으로 들어왔다가 바울 사도의 전도를 받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된 사람입니다.
당시 도망치는 종들은 대부분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을 치게 마련입니다. 주인의 자녀를 죽이거나, 주인의 재물을 훔치거나, 때로는 주인집의 여인들을 성폭행을 하고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네시모의 경우는 어떤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도망한 종이 잡히면 꼼짝없이 죽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그가 드디어 형을 마치고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어 나가는 오네시모를 향하여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다른 곳으로 가지말고 주인에게로 돌아갈 것'을 말하고는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편지를 직접 써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친필로 썼다고 했습니다.
이 편지에 바울이 뭐라고 썼는가 하면 '오네시모가 가거든 전날에 지은 죄를 용서해 줄 것과 전에는 당신의 종이었으나 이제는 종으로 대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 대우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즉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라는 편지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주되 자발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빌레몬을 가리켜서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 곧 나와 디모데는 너를 사랑한다. 너를 믿는다.' 이러한 뜻입니다. 그리고 '동역자'라고 한 것은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동역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러니 이제 너도 오네시모를 종처럼 취급하지 말고, 그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동역자로 받아주기를 바란다.'는 그런 뜻이 내포된 말입니다.
우리는 빌레몬서를 살펴보면서 내가 용서해 주어야 할 나의 오네시모는 누구인지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 자신의 행복과 나 자신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나의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할/
1. '오네시모'를 알아보자!
▶바울은 오네시모를 선대해 주도록 부탁하면서 세 가지로 그의 변화된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무익한 존재에서 유익한 존재로 변화된 사람입니다(11).
바울은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유익한, 유용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유익한 존재였던 오네시모가 죄를 짓고 도망침으로 오히려 무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과는 정반대의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유익한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타락과 죄로 말미암아 무익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바울 사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다시 유익한 존재,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고후5: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할/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유익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의 모습으로 살면 무익한 존재로 남아 있게 됩니다. /믿/
②복음의 동역자가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12).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물론 오네시모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법적으로는 빌레몬의 종(노예)입니다. 빌레몬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용서를 받기 위해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내 심복이라'고 했습니다. 마음 심(心)자, 배 복(腹)자입니다. '오네시모가 나의 심장과 같이 나의 내장과 같이 나를 충성스럽게 잘 섬기고 있는 것처럼, 이제는 너에게도 심복이 되어서 충성스럽게 잘 섬길 것이다!'라고 칭찬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 '심복'이라는 말은 '내장 또는 심장'이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의 정확한 번역은 '그는 곧 나의 심장이다.'는 말입니다. 즉 '자신의 심장을 돌려보낸다'는 말씀입니다. ▶심복이란 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의 애정과 나의 정열과 나의 마음을 그대로 실어 보내는 것, 그가 곧 내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심복이요 바울은 곧 그리스도의 심복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심복입니다. 예수님의 심복으로 이 자리에 보냄을 받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심복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⑴주인의 뜻을 바르게 헤아리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의 심복은 대통령의 눈빛만 보아도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복은 예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⑵주인의 뜻을 깨달았으면 어떤 위험이나 고통이 수반되어도 그대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군(軍)에서 지휘관의 심복은 지휘관을 위해 자기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는 자여야 합니다.
⑶심복은 자신의 소유를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소유는 모두 주인을 위해 있는 것이요 주인의 뜻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복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지를 언제나 살펴야 합니다.
③이제는 종에서 사랑 받는 형제가 되었다고 합니다(16).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게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 '형제'란 예수의 피로 한 형제 자매된 사이를 표현한 것으로 같은 복음의 동역자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앞으로 전개될 신비한 사역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큰 애정과 사랑으로 그를 빌레몬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참으로 미천한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잘못된 것이나 빚진 것이 있으면 자신이 갚겠다고 말합니다(18절). 그러니 그를 자신의 심복으로 믿고 자신의 형제로 받아 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무익한 사람이 아니라 유익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추천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를 향한 사도 바울의 애정과 구속적인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그를(오네시모) 변화 시켰을까요?
①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바울은 노예였던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했고 오네시모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복음입니다. /할/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존 케디'라는 선교사는 식인종이 사는 작은 섬으로 복음을 들고 갔습니다. 그는 생명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예수의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고 그들의 말을 배워 성경을 번역하고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가 사역을 마치고 죽고 난 후 사람들은 그의 기념비를 세웠는데 그의 기념비에 사람들은 이렇게 썼습니다.
"1848년에 그가 이곳에 처음 상륙하였을 때에는 이곳에 그리스도인이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1872년에는 여기에 식인종이 한 명도 없다." 즉 그는 섬사람 모두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 것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식인종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노예 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비싼 값에 노예들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동정'이나 '사랑'이란 단어는 그의 사전에는 없었습니다. 주위에서는 그를 '냉혈인간'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마음속에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죄악 된 삶을 정리하고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평생 동안 권위의 상징인 목사의 예복을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항상 노예 복을 입고 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노예들을 팔아먹은 죄인이었던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맙기 때문에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노예 복을 입는다.'고 했습니다.
이 목사의 이름은 'John 뉴턴'입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지은 목사입니다. 1절은 이렇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의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주의 긍휼를 덧입고 감사한 것입니다. 복음은 사람의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목표를 수정하게 합니다. /할/
②예수의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9-10).
바울이 이 사랑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사랑은 거칠고 완악하며 불순종하던 오네시모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그는 주인의 집에서 탈출한 노예, 고집 세고, 거칠고, 불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만나서 그의 사랑에 마음이 녹았습니다. 훈훈한 남풍은 꽁꽁 언 대지를 녹이고 용광로의 뜨거운 열은 철을 녹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녹여낼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바울의 사랑은 오네시모의 사람의 마음을 녹였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가 변화되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북방 정책을 소위 '햇볕정책'이라고 합니다. 꽁꽁 언 북한 땅의 형제들을 향해 욕을 먹으면서도, 쌀을 주고, 비료를 주고, 소를 주었습니다. 뒤통수를 맞아도 또 주고 또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랑한다고 구애작전을 했습니다. 간첩선이 내려오고 서해에서 교전이 벌어질 때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김 대통령이 북한을 너무 짝사랑하고 있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햇볕에 얼었던 북녘의 형제들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일의 마음도 녹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남북 간의 관계를 보면 상상도 못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정부가 햇빛정책을 이어받아 꾸준히 노력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정치인들의 깊은 뜻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책이 성경 적이라는 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욕먹으면서도 베풀고 손해 볼 줄 알면서 주었더니 결국 그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빌레몬서야 말로 바울 사도가 한 영혼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오네시모는 사람이 보기엔 보잘 것 없는 존재였습니다. 남의 집 종으로 공부도 못했을 것이고, 물질도 없는 사람이었고, 거기다 도둑질까지 하다가 감옥에 들어왔으니 정말 막가파인생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바울은 그를 구원시키고 나서 너무 감사해서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잘 부탁한다고 간곡한 편지를 친필로 써서 보낸 것입니다.
2. 빌레몬의 신앙과 그의 인격을 알아보자!
이 편지를 받은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친형제로 돌보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돌보았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골4:9절에 보면 오네시모가 계속해서 사도 바울의 동역자가 되어서 그를 돕고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빌레몬이 용서해 준 결과입니다. 빌레몬은 은혜가 충만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본성이 온화한데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더 은혜가 충만해져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보고 천국을 보는 것과 같은 평온함을 얻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동안 여러 가지 갈등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파벌이 심하고 은사 자들이 많아 문제를 일으킨 교회입니다. 바울은 속이 상할 때마다 빌레몬을 찾아가서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가서 빌레몬의 그 화평한 얼굴과 은혜가 충만해 있는 얼굴만 봐도 위로가 되고 격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 7절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고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빌레몬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그런 신앙의 인격을 가져야 합니다. 빌레몬은 그 이름의 뜻대로 '사랑을 간직한 자'로 살았습니다. 빌레몬은 한 마디로 은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얼굴만 보아도 은혜가 되고, 위로가 되고, 천국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기도하며, 봉사하며 살아가던 빌레몬의 얼굴에 평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성스러움이 풍기고 경건한 모습이 만들어지듯이 우리들의 얼굴에서도 이 같은 모습이 나와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얼굴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얼굴은 추천장과 같은 것이고 마음은 신용장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먼저 얼굴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합니다. 얼굴은 내면의 세계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나의 내면의 상태가 건강하면 얼굴의 모습도 좋아집니다. 사람이 배가 부르면 얼굴에 만족함이 나타나듯이 나의 심령에 은혜가 가득하고 감사함이 가득 담겨 있다면 나의 얼굴에는 만족함과 기쁨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얼굴은 내면을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속이 병들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별의 별 방법을 다해서 가꾸어도 밖으로 나타나는 병색은 감출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 속에 불만이 가득 들어있으면 그 얼굴에서는 어두움과 짜증스러움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오래 살게 되면 그 얼굴은 어두워지고 맙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사람이 나이 40이 되면 자기의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나이 40이 되기 전에 얼굴은 부모가 준 얼굴 그대로라고 합니다. 타고난 얼굴의 나이 40까지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나이 40이 넘으면 부모가 준 얼굴은 남지 않고 자신이 살아온 모습대로 얼굴이 새롭게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의 참모 하나가 사람 하나를 써 달라고 추천을 했습니다. 링컨은 그 사람을 만나서 얼굴을 보더니 한마디로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 얼굴에 진실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얼굴에 진실성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활이 진실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생활이 진실하지 않으니까 그의 얼굴에 진실성이 있는 모습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링컨이 사람의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TV에 나오는 강도나 살인범이나 사기꾼이나 흉악범들에 얼굴을 유심히 보십시오, 그 얼굴에 진실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뉘우치거나 회개하는 빛이 전혀 없습니다. 그들의 얼굴엔 잔인함만 나타날 뿐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들이 삶에 진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탐욕스럽게 살면 그 순전하고 깨끗하던 얼굴은 없어지고 탐욕이 가득 베인 추한 얼굴로 변해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사람이 심술과 시기와 욕심으로 얼룩진 생활을 하게 되면 그 얼굴은 심술과 살의가 들어차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이 살아간 그대로 만들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이란 그림을 그리는데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시로, 큰 교회로, 수도원으로 예수님을 닮은 얼굴을 찾아보려고 돌아다녔지만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빈치가 시골 조그만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성가대 석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청년 하나의 얼굴이 얼마나 은혜롭고 아름다웠던지 '아! 바로 저 청년의 얼굴이 예수님의 얼굴이구나!'하고 열심히 그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 청년을 모델 삼아 예수님의 얼굴을 다 그린 다빈치는 이번에는 가룟유다의 얼굴을 그려야하는데 그 얼굴이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찾아다녔습니다. 술집으로 형무소로 깡패 소굴로 3년 동안 찾아 다녀 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지쳐서 길을 가고 있는데 길에 어떤 사람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있었는데, 그 얼굴이 자기가 찾던 그 가룟유다의 얼굴을 닮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그리고 있는데 그때 주정뱅이가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얼굴을 그리고 있는 다빈치에게 '왜 내 얼굴을 그리느냐?'고 화를 냅니다.
그래서 다빈치가 '당신의 얼굴이 꼭 가룟유다와 같다고 생각되어 그린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 사람이 대성통곡을 하면서 '3년 전에는 내 얼굴이 예수님 닮았다고 열심히 그려가더니 내가 좀 방탕하고 주정뱅이가 되고 나니까 내 얼굴이 가룟유다 같다고 하니 내 인생이 한심하다'고 하면서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얼굴을 타고났어도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얼굴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사람이 좀 못생긴 얼굴로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품위 있는 얼굴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믿어집니까/할/
빌레몬이 그런 경우입니다. 사람의 내면의 세계를 밝게 하고, 마음과 생활 속에 성스러움과 경건함을 품고, 은혜를 간직한 채 살아가게 되면 화평함의 얼굴이 만들어지고 평화를 간직한 얼굴이 창조된다는 말입니다.
이 얼굴은 성형 수술을 해서 만들어지는 얼굴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솜씨로 얼굴을 뜯어고치고 수술을 잘 해도 깊은 곳에서 풍겨 나오는 그 풍요로움과 만족스러움의 분위기만큼은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 생활을 하고 경건한 마음과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이 본문의 교훈입니다. 빌레몬의 얼굴이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얼굴입니다. 기도로 만들어졌고, 경건한 생활 속에서 만들어진 얼굴입니다.
그 얼굴이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 얼굴입니다. 그래서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람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그 얼굴이 사도바울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평안을 주었던 얼굴이었습니다. 이 얼굴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믿/
▶우리 신앙인들은 먼저 얼굴을 바꾸어야합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그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서 얼굴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 인들은 묵상을 하고 기도생활을 하고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기도하고 은혜 속에 살면 우리의 얼굴이 은혜롭게 빛이 납니다. /아멘!/
▶그 다음 우리의 모습을 바꾸어야 합니다. 사람이 오래 살게 되면 자신의 모습이 만들어집니다. 학교 선생님은 '내가 선생님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미 그의 모습에서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경찰로 잔뼈가 굵은 사람은 보십시오, 경찰관의 모습이 나옵니다. 장로님은 '나는 장로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의 모습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장로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창녀는 '나는 창녀가 아닙니다.'라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자신이 창녀인 것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의 모습과 걸음걸이와 자태 속에서 이미 음란이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창녀는 아무리 고상한 옷을 입혀 놓아도 그가 지닌 모습에서 고상함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왜? 그 사람의 내면세계가 음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여성들 가운데는 착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싼 옷을 입으면 고상하고 멋이 있는 줄 알고, 비싼 옷을 입습니다. 그러나 고상함과 품위는 만들어지는 것이지 입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의 모습은 만들어야 하고 가꾸어야 합니다. 내면의 세계를 먼저 가꾸고 다듬어야 합니다. 거룩함을 품고, 깨끗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게 되면 아무 것이나 걸치고 다닌다 해도 그 모습에서 고상함이 풍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신앙 인들이 외모에 너무 치장을 하면서도 내면의 치장에 소홀히 한다면 신앙의 인격은 사라집니다. 먼저 내면의 세계를 가꾸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2:5절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의 마음입니다.
롬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심령을 채웁시다. 그리하면 우리의 겉모습도 고상하고 경건함이 흐르는 모습으로 바꾸어질 것입니다.
본문의 빌레몬이 그렇게 하여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가꾼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신앙 안에서 경건의 정신을 품고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품고 살아갔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모습에서 거룩함이 풍기고, 경건함과 고상함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고 바울이 극찬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신앙의 인격을 잘 가꾸어 나갑시다. 누가 봐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우리 안에서 비춰지게 살아갑시다. '아!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구나!' 하는 소리를 듣고 살아갑시다. /할/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의 정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몸에 품고,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의 몸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은 본문의 빌레몬이 잘 이루어 냈습니다.
그의 모습에서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새겨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의 얼굴을 보고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빌레몬은 '사랑을 간직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그의 이름의 뜻대로 당대의 부자였음에도 불고하고 노예들과 언제나 함께 똑같이 땀을 흘리며 동고동락을 했습니다. 이런 빌레몬의 모습을 보고 바울이 감격하고 편지를 쓴 것이 '빌레몬'서입니다.
①빌레몬은 바울사도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잡은 성도였습니다(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여기서 우리는 바울 사도의 위대한 신앙 인격을 봅니다. 그는 항상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는 삼중고의 장애자입니다. 보지를 못했습니다. 듣지도 못했습니다.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과 역경에 쓰러지지 않고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그는 건강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대학에 들어가서 당당히 우등생으로 졸업했습니다. 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는 8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그가 노년에 이르렀을 때 한 신문기자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통 속에서 일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따금씩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신 적은 없습니까?"
그때 헬렌 켈러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하나님을 원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자기의 삶을 다 살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 참으로 나의 인생은 아름다웠다." 여러분! 우리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바울은 빌레몬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기도할 때마다 빌레몬을 기억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빌레몬과 같이 누군가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복 받은 사람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은 사도의 기도는 더욱 더 큰 축복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기름부음을 받은 주의 종에게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능이 있고, 축복 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신앙의 인격이 제대로 된 빌레몬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본문에 보니 항상 기도했다고 합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그 사람을 생각하기만 해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빌레몬처럼 주의 종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종의 기도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노아가 함과 셈과 야벳을 놓고 기도했는데, 노아가 기도한대로 함을 저주를 받았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였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기름진 복이 야곱의 생애에 넘쳤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의 축복을 받았고, 하나님의 선지자가 된 것입니다.
엘리는 사실 무능력한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그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아무리 보잘것없는 주의 종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대적하거나 비방하지 말고 주의 종의 입을 통해 감사와 축복 기도를 많이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
②빌레몬의 신앙의 인격은 무엇인가?(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⑴사랑과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됩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을 믿으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요, 사랑의 대상입니다. 빌레몬은 예수를 잘 믿었고 그리고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있고, 성도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무튼 빌레몬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또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는 빌레몬의 뜨거운 믿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그의 행실과 신앙의 행동을 바울이 계속들은 것입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기쁨으로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빌레몬은 당시 재벌이었고, 상전으로서 많은 노예들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형제자매로 여기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런 빌레몬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기도하면서 그가 '오네시모를 용서하리라' 믿는 마음으로 오네시모를 그에게 돌려보내면서 사랑으로 용서해 달라는 편지를 쓴 것입니다.
오늘 빌레몬의 신앙의 위대한 인격은 뭐니 뭐니 해도 그가 '사랑과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사랑은 성도들을 향한 것이고,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것입니다 만은 '믿음과 사랑'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이 있으면 믿음의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곧 믿음이고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곧 믿음의 행위입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어야 믿음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고, 내 안에 사랑이 있어야 사랑을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사랑이 있었고, 믿음이 있었기에 그의 신앙의 인격이 좋았던 것입니다. '에머슨'은 '믿음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히11:6절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무기입니다. 요일5:4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할/
⑵그는 섬김의 도리를 잘 했습니다(5).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그에게는 믿음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그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 있으면 친구가 되어주고 먼저 가서 인사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같이 짐을 나누어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 주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따뜻한 마음으로 이제는 너의 종 오네시모도 영접해 주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바울은 빌레몬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⑶그는 믿음의 바른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빌레몬의 삶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실천해야 할 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 기독교인은 저렇게 살아야 되는구나! 저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선이구나!' 빌레몬의 삶을 통해서 성도들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영접해 주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성도들은 '아, 저것이 기독교의 사랑이구나! 저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용서의 정신이구나!'라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⑷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사는 존재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해 줌으로 우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예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6절의 문자적인 뜻은 '오네시모를 사랑하는 데는 물질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온전한 선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⑸우리의 '오네시모'는 누구인가? 용서하는 자가 됩시다. 주님은 하루에도 '일곱 번 뿐만 아니고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는 용서의 신학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용서라는 원어에는 세 가지의 깊은 뜻이 있다고 합니다.
㈀'참으라'입니다. 속상하다고 해서 화풀이한다면 그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참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누가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 뺨을 돌려대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을 주고,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가줄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수 있는 용서의 첫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용서는 참는데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잊으라'입니다. 나의 오네시모가 나에게 섭섭한 일을 하고 손해를 끼쳤다 할지라도 과감히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영원히'입니다. 영원토록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내 기억 속에서 말끔히 잊어버려야 합니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빌레몬은 아주 귀한 신앙의 인격자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선을 실천함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얼굴을 보아도 은혜가 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한 시대를 열어 가십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형제에게 기쁨을 끼칠 뿐 아니라 환난 당한 형제를 위로하는 생활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빌레몬처럼 이웃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는 마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할/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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