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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삼백 용사!(삿7:1-8)

by 【고동엽】 2022. 2. 6.

기드온의 삼백 용사!(삿7:1-8)

 

사사기는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이스라엘 왕국 건설에 일등 공신인 사무엘 시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약 300년 간의 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인도할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런 대로 말씀에 순종하는 것 같았는데 그들이 떠나자 백성들은 우상에 빠지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의 길로 치닫게 되자 하나님은 징계의 방편으로 주변국 이방 나라들을 들어 이스라엘을 압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마다 백성들이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그 시대마다 사사를 세워 그들을 구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사사를 세워 구원해 놓으면 잠시는 신실하게 사는 것 같다가도 사사가 죽으면 다시 타락하고 범죄하고 배신하는 것을 반복하였는데 사사가 모두 13명인데 300년의 세월을 그런 반복의 세월로 보내었습니다.
사사는 '재판관, 심판관, 심사원'이란 뜻입니다. 6-8장까지는 제5대 사사인 기드온이 미디안과 싸움을 다루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바락, 삼손, 입다'와 함께 4대 사사로 존경을 받은 큰 용사였습니다. 그가 40년을 사사로 이스라엘을 치리 하였습니다. ◀제목소개!▶

 

1. 본문의 배경을 먼저 알아보자!(6장)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기드온'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거의가 자 '큰 용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용맹의 상징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기드온도 처음부터 큰 용사로 쓰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기드온이라는 이름의 뜻은 '나무 베는 사람'입니다. 그도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드온은 용사였기 때문에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용사가 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기드온이 용사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했기 때문에 용사가 된 것입니다. /아멘!/ 우리들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 '큰 용사'로 쓰임 받게 됩니다. /믿/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기드온을 불러서 용사로 세우십니다. ▶6:1절을 보면 기드온이 등장할 무렵의 이스라엘의 상황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에 부치셨습니다. 불순종의 결과는 미디안의 횡포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게서 모든 것을 다 약탈해갔습니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동굴에 숨어서 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기드온의 모습을 한번 보자!
삿6:11절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이게 무슨 말입니까? 미디안 사람들 손에 7년 동안이나 매어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기드온이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라 미디안 사람들이 볼까봐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 몰래 숨어서 밀을 타작했다는 말입니다.
정상적으로 밀 타작은 바람이 잘 부는 산이나 높은 지대에서 하는 것입니다. 도리깨로 쳐서 밀 껍질과 알곡을 분리시키고 채에 담아 공중에 던져 가벼운 껍질은 바람에 날려가 버리고 무거운 알곡만 밑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산이나 높은 지대에서 그렇게 하면 멀리서도 금방 미디안 사람들이 알아보고 달려와 뺏어 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포도주 짜는 틀 속에 들어가 힘들게 밀을 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도 가만히 보면 형편없는 졸장부였습니다. 미디안에게 억눌린 이스라엘을 위해 보탬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그저 자기 먹을 것이나 몰래 챙기는 그런 졸장부입니다. 그런데 그런 졸장부를 큰 용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만나게 됩니다. 사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믿/
이스라엘이 그렇게 고난을 당하자 백성들은 하나님께 구원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6). 이 7년 동안에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죽음의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에다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고 피난하여 살면서 여호와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6:6-7).
사람들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C. S '루이스'는 '고난은 하나님의 확성기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고통을 당하니까 하나님을 향한 눈이 열렸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거듭되는 이스라엘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언제나 용서하시고 받아주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외면 한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두 번만 같은 잘못을 해도 세 번째는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횟수와 상관없이 용서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횟수를 뛰어넘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이 몰래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을 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러자 기드온은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우리의 현실이 이렇게도 비참합니까? 우리 열조들은 애굽에서 그 여호와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중에 그 여호와의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지금 우리는 미디안의 손에서 죽음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라며,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선택받은 이 민족이 이렇게 죽게 되었는데 왜 주께서 외면하고 계시냐는 항변입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너는 이(내가 주는)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6:14)고 하십니다. 기가 막힌 기드온은 "나의 집은 므낫세지파 중에서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라고 고백하자, 여호와의 사자는 다시 말하기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때 기드온은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여"(6:17)달라고 합니다.
이는 그가 받은 사명이 너무 크고 중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에게 '주되신 표징' 곧 '기적, 표적, 증거'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왔다'는 것입니다. 지금 기드온이 '그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할/
그 여호와의 사자는 ⑴스스로 자원하여 오셨습니다. ⑵갑자기, 예고 없이 오셨습니다. ⑶기드온을 찾아 오셨습니다. ⑷이스라엘 구원의 메시지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⑸그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을 나라를 건지는 구국의 사사로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격려하고(12), 여호와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심을 알려주고, 그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소명되었음을 알려 주고(14), 그 구국의 소명을 위하여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와 함께 한다는 임마누엘을 약속하고, 확실한 승리를 보장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할/ 우리도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야 합니다. 기드온이 만난 그 분의 정체는 '여호와의 사자'입니다(6:11-12).
▶기드온을 만나러 오신 '여호와의 사자'는 구약 여러 시대에 여러 모양으로 자기를 나타내신 성육신 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아브라함에게 ▶얍복강가의 야곱에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발람에게 ▶여호수아에게 ▶로뎀나무 아래 있던 엘리야에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있던 다윗에게 ▶풀무불 속에 있던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도 나타났습니다. 그 분을 만난 사람마다 엄청난 하나님의 구속사의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지금 기드온이 그 분을 만난 것입니다.

 

2. 기드온에게 주신 표징은 무엇인가?(삿6:17-24)

 

기드온이 여호와의 사자의 방문을 받은 그 자체가 은혜이고 영광이고 축복입니다. 그럼에도 기드온은 자기를 찾아와 구국의 소명과 사명을 주신 분에게 더 큰 은혜를 받고 싶었습니다. 확신이 따르는 확증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여 달라"고 하자 여호와의 사자는 그의 요구대로 주되신 표징을 보여 확증을 주었습니다.

①'여호와 샬롬'의 표징을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그 여호와의 사자에게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자 여호와의 사자는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고 했습니다.
그 길로 달려간 기드온은 염소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삶은 고기를 소쿠리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있는 여호와의 사자에게로 가지고 와서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고 하자 기드온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바로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고 했습니다.
▶불이 반석에서 나왔습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지팡이로 반석에서 물을 내었습니다(민20:11). 갈멜산의 엘리야 제단에 하늘로부터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핥아 버렸던 적도 있습니다(왕상18:38).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초자연적 자기 응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불이 반석에서 나와 제물들을 사른 이 기막힌 현장을 친히 목격한 기드온은 그때서야 자기를 찾아오시고 자기에게 구국의 소명을 주신 분이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기는 사람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보았으니 자신의 죄 때문에 죽게 되었다고 슬퍼하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이때 기드온은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 샬롬'이라고 불렀습니다. '평강의 하나님, 평화의 하나님, 안전의 하나님'을 뜻하는 말입니다.

②바알의 신상을 다 무너뜨린 기드온!(6:25-32).
제단의 불을 통하여 '여호와 샬롬'을 체험했던 그 밤에 다시 여호와께서 기드온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르기를 "네 아비의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25-26)고 명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상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보다 다른 그 어떤 것을 더 사랑하면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면 그 아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는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직장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우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공부가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명예가 우상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실제적으로 돌이나 나무 혹은 산이나 바다를 섬기기도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경고를 주십니다. '왜?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사랑해서 다른 길로 가느냐?'고 경고를 하십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디안을 통해 어려움을 주시는 것은, 곧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라도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 잘못된 백성들의 우상을 먼저 큰 용사의 길로 가는 기드온에게 부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미디안을 부수기에 앞서서 그 우상을 쳐부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를 우리는 잘 들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 최봉석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으로 더 알려진 분입니다. 그분은 많은 능력을 행하면서 70교회 이상을 개척하신 목사님이신데 이 목사님은 '예수 천당'으로 유명합니다. 이 분은 참 전도를 잘했다고 하는데, 어느 날 학교 교장 선생님을 만나서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장 선생님이 좀 머릿속에 들을 것이 있다고 은근히 따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주 어려운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천둥과 번개는 누가 치십니까?" 그러자 최권능 목사님이 "그야 우리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러자 교장은 "왜 그 좋지 않은 천둥과 번개를 하나님이 치십니까?" 그래서 목사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바로 살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이 교장 선생님이 옳거니 하고는 "그러면 사람이 잘못했으면 사람에게 벼락을 칠 것이지 왜 나무에게 칩니까?" 라고 묻습니다.
최권능 목사님이 말문이 탁 막힙니다. 그러자 최 목사님 주특기가 나옵니다. 목사의 주특기가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앞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에게 말합니다.
"선생님,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공부 가르치다가 아이들이 떠들면 탁자를 탁 치지요? 왜 칩니까? 왜 잘못도 없는 탁자를 칩니까? 아이들을 직접 때리지요?" "그게 다 경고입니다. 아이들에게 떠들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그러자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고 죄악의 잘못된 길로 갈 때 직접 우리에게 벼락을 치지 않고 나무에다 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그 교장 선생님이 감탄을 하고 예수를 믿고 후에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큰 용사가 되는 첫 번째 길은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께로 오는 길입니다.
기드온은 즉시 그 날 밤에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대로 자기 동네의 성읍에 가득 찬 바알과 아세라의 목상을 찍어버렸습니다. 그리고 7년 된 두 번째 소를 잡아 번제를 드렸습니다.
날이 밝은 아침에 동네는 야단이 났습니다. 지난 밤 동안에 저들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의 목상이 모두 다 절단이 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것이 기드온의 소행인 줄 알게 되자 분노한 동리 사람들은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에게 몰려와서 외치기를 "네 아들을 불러내라. 그를 죽여야 한다"고 합니다. 이때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저들에게 "당신들이 바알을 위하여 쟁론(변호)하느냐? 만약에 바알이 참신이면 바알과 아세라 신을 훼파한 사람을 바알 신이 죽일 것이 아니냐?"며 자기 아들을 변호했습니다.
기드온이 이러한 영적 갱신작업을 통하여 기드온의 아버지가 변화를 받았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는 바알 신앙과 아세라 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던 사람이었는데 그 아버지가 변화되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회개하고 변화되면서 그 아버지로부터 지지를 받게 된 것입니다. /할/
▶그 결과 기드온은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그 새로운 이름이 '여룹바알'입니다. '바알과 직접 싸운다'는 뜻입니다. '바알과 기드온이 직접 싸운다'라는 이름이 주어진 것입니다. 얼마나 귀한 이름입니까? 이것이 기드온에게 우상을 타파하고 제단 쌓는 기드온에게 주어진 새로운 이름입니다.
졸장부에 불과했던 기드온이 우상을 타파하고 제단을 쌓으므로 너무나 아름다운 이름의 표징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때로 '도전하는 일'입니다. 엄두도 못 내던 일, 넘보지도 못하던 일에 도전하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에 의지하여 도전하는 일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③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임했습니다(6:33-34).
34절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33절 '때에'라고 했습니다. 기드온이 여호와 샬롬을 체험하고 여룹바알의 체험을 했을 때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강림'이란 말은 ⑴성령의 선제공격을 뜻합니다. 성령께서 기드온에게 밀어닥치고, 밀어붙였음을 뜻합니다. ⑵옷 입혀 주었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무장을 뜻합니다. ⑶감싸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는 성령의 장 중에 완전히 사로잡혔음을 뜻합니다. /할/

④여호와의 신이 임한 기드온에게 몇 가지 일어났습니다(삿6:34-35).
⑴나팔 부는 힘을 얻었습니다. 군인 소집의 힘이 생겼습니다.
⑵백성들이 그에게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붙여 주신 것입니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이고 므낫세 지파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아셀과 스블론과 납달리 사람도 모두 모였습니다.
⑶기드온을 따르고 영접(환영)했습니다. 지도자로 추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주신 표징입니다. 은혜 체험입니다. 바로 부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성령 체험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체험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⑤다시 한 번 구한 이슬의 표징!(6:36-40).
▶그것은 양털의 이적입니다.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게 해주시옵소서. 그리하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그 결과 주님은 그대로 응답해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양털에만 내린 이슬을 짰을 때, 물이 그릇에 가득할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은 다시 주님께 이번에는 타작마당에는 이슬이 내리고, 양털만 마르는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주님은 그대로 응답했습니다. 땅은 이슬로 젖어있었고, 양털은 말라 있었습니다. ▶양털의 복음 적인 표징이 무엇인가? 양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의 상징입니다.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예표입니다.

 

3. 오늘 본문의 기드온의 삼백 용사에 대하여 알아보자!(7:1-8)

 

기드온은 하나님만 믿고 나가서 군사를 모집하려고 나팔을 불었습니다. 32,000명이 싸우러 나가겠다고 모여들었습니다. 32,000명이 모레산 밑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제 기드온은 모여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을 향하여 그 반대편에 진을 쳤습니다. 이제 전쟁이 시작될 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인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 줄이라고 명령하십니다. 2절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
▶8:10절을 보면 미디안 사람들, 아말렉 사람들과 동방에서 온 군대의 숫자가 13만 5천이라고 말합니다. 메뚜기 떼 같이 많고, 그 약대는 바다의 모래알 같이 많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군대가 쳐들어왔으면, 이스라엘 사람들도 많은 군대가 나가서 같이 전쟁을 해야 할 텐데, 이스라엘의 모여온 사람들은 3만 2천명에 불과한 숫자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군대의 숫자를 더 늘려야 될 판인데, 오히려 하나님은 숫자가 너무 많다고 줄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 몇 가지 작업을 했습니다. 하나는 전쟁을 겁내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겁이 많아 돌아간 사람이 2만 2천명이었습니다.
이제 남은 군인은 1만 명이 되었습니다. 겁쟁이는 아무리 그 숫자가 많아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용감하게 전투에 임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게 하므로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러나 적의 13만 대군과 싸우는데, 1만 명의 군대로 전투를 한다는 것은 상식 밖으로 무리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군대 숫자가 아직도 많다고 말씀하시면서 숫자를 더 줄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번에는 물가로 가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며 물을 마시는 사람은 조심성이 없는 사람이니 돌려보내고, 손으로 물을 떠 마시는 사람이 자격이 있으니 그 사람만 전쟁에 데리고 나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러고 나니 결국 3백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전쟁에 나가겠다고 모여온 3만 2천 명 중에서 1%에도 못 미치는 적은 숫자만 군인으로 용사로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때론 전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과 대치한 미디안의 군대는 13만 5천 명입니다. 이들과 싸우기 위한 이스라엘 군대는 300명입니다. 13만 5천 대 300! 이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이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300명의 용사만 뽑았을까요?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사55:8-9절의 말씀처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함과 같습니다.

▶선택받은 300용사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①하나님은 사람의 착각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어떠한 일의 승패가 자신에 의해서라고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만약에 이스라엘이 3만 여명의 군인으로 13만 여명의 미디안 군대를 쳐부쉈다면, 이 착각은 극에 달할 것입니다. 자신들이 강하여 4배가 넘는 군대를 쳐부쉈다고 자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걸 용납하시지 않습니다. 2절에 그 이유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도저히 그렇다고는 믿을 수 없는 숫자, 그게 바로 300명입니다. 300명으로 13만 여명을 이겼다고 하면 그 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삼상14:6절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왜냐하면 나라의 흥망성쇠가 하나님께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삼상17:47절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우리는 세상에서 영적 전쟁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 힘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②일을 두려워하는 자는 제외됩니다(3).
이 말씀은 이미 율법에도 있는 말씀입니다. 신20:8절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나님의 일은 강함으로 담대함으로 해야 합니다. 연약한 자는 할 수가 없습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명하신 것은 강함과 담대함을 요구하셨습니다.
수1:6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7절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두려움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한 사람이 두려움에 떨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됩니다. 차라리 보내라고 하십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습니다. 일을 만들고 열심히 일하는 자는 승리합니다. 일이 두려워서, 문제 생기는 것이 두려워서, 실패가 두려워서 성취하지 못하는 자는 시작에서 그만두게 하십니다.

③두려움에 떨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첫 번째로 돌려보낸 사람들이 바로 두려워 떠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려움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에 두려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사람들이 두려워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남에게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창26장). 기드온에게도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사람이 두려워서 몰래 포도주 틀에서 밀 타작을 했습니다. 300명의 용사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들 역시 사람입니다.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면서도 사명을 위해서 곧 그 두려움을 이겼다는 점입니다. /할/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믿/

④하나님은 깨어 있는 자를 쓰십니다(5-7).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다 쓰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깨어있어야 합니다. 5-7절에서 남은 자들 중에서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한 부류는 물을 손바닥에 놓고 핥는 사람들이고, ▶한 부류는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자들입니다.
경계를 늦추지 않은 군인들과 경계를 잊은 군인들의 모습으로 구분됩니다. 군인은 적의 침입을 경계하는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집중하며 경계하는 자들이 선택되었습니다. 사명을 잊지 않는 사람이 용사입니다. 9700명은 물만 보았습니다. 당장 목이 마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300명 용사는 물을 마시며 적을 보았습니다. 사명이 적을 물리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만 구별하고 나니 300명이었습니다. 300명에는 이런 하나님의 철학이 담겨져 있습니다. 눅21:36절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⑤소수(적은 수)가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눅12:32절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교인은 많아도 성도는 소수입니다. 성도는 많아도 일꾼은 소수입니다. 마찬가지로 애국자, 충성 자는 소수입니다. 그러나 그 소수가 역사를 움직입니다.
8절에 보면, 3만 2천 명 중에 겨우 300명만이 택함을 받아 주의 군대가 됩니다. 그들이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소수에 의해 성취됨을 보여줍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한 정탐꾼 중에도 긍정적인 보고를 한 하나님의 사람은 겨우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잠16: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결과를 바라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 택함 받은 300명의 용사입니다. 우리 성림의 온 성도가 바로 이런 용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⑥300명의 용사가 기드온의 정예용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을 부르면서 '큰 용사'라고 부르셨습니다. 큰 용사를 따르는 사람들도 용사입니다. 깡패를 따르면 결국 이들도 깡패입니다. 공산당을 따르는 이들은 결국은 공산당들입니다. 생명을 걸고 미디안과 싸우겠다고 지원한 이들은 용사들이었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때에 프러시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전한 군인들은 모두 죽음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전쟁을 기피합니다. 그 때 빅토리아 여왕은 자기 아들을 앞장 세웠습니다. 모두 만류했습니다. "앞으로 여왕 님을 받들어야 하고 앞으로 나라를 위하여 큰일을 할 사람이니 만일을 위하여 전쟁에 나가지 않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때 빅토리아 여왕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 누구인들 자기 아들을 총알이 나라오는 전쟁터에 앞장세우고 싶어하겠는가? 그러나 전쟁터에 가기를 기피하니 내 아들부터 앞장 세워야지." 왕자도 대단합니다. 어머니의 명을 받들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장렬하게 싸우겠다고 전쟁터에서 앞장섰습니다. 이것이 영국을 감동시켰습니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큰 용사 앞에 작은 용사입니다. 전쟁에 이겼습니다. 이것이 용사입니다.
마치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하니까 이삭은 아버지에게 자기를 죽이라고 순종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입니다. 둘 다 훌륭합니다. 이것이 용사입니다.

 

4. 기드온의 전략도 특이합니다.

 

기드온은 그 날 밤으로 기습공격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적은 군사력으로 많은 군사력을 제압하려면 기습공격 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공격하는 방법이 너무 가관입니다. 기드온은 3백 명 군사를 백 명씩 3부대로 나누어서 세 방면으로 적을 포위하여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무기가 이상했습니다. 칼과 창을 들고 싸운 것이 아니라 '나팔을 들고, 항아리 속에 횃불'을 감추고 나아갔습니다. 사람을 죽일만한 무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공격해 나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지시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작전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나팔을 불면서,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높이 들면서 함성을 질렀습니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함성을 질렀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적은 숫자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고, 하나님께서 승리케 하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함성을 지르면서 적을 향해 공격해 들어갔습니다.
잠자던 적의 군대가 놀라서 깼습니다. 항아리 깨지는 소리, 나팔소리, 횃불이 빛을 비추며 달려오는 것, 함성 소리를 듣고는 대군이 기습해 쳐들어오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심리전에 말려들었습니다. 적 진내에 공포가 휩쓸었습니다. 전쟁 공황이 일어난 것입니다. 적 진내에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들이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서로 싸워서 죽이고, 도망가느라고 바빴습니다.
▶적진 속에서 일어난 혼란을 두고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2). 하나님께서 개입하셨다는 말씀이요, 하나님께서 적군들의 눈과 귀를 막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당황하게 만들어 그들이 서로 싸우고 도망치게 된 것입니다.

①나팔로 무장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나팔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수단이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요즈음처럼 앰프도 없는 시대에 200만 명을 이동시키는 데는 나팔을 신호로 정하여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민10:2절 "은 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그러므로 나팔은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이는 하나님의 복음 선포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도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할/ 쉽게 말하면 전도입니다.

②횃불로 무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할 때 제사제물을 준비하여 쪼개어 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제물사이로 횃불로 지나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15:17절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기드온의 용사들에게 횃불로 무장시키시는 하나님은 그 횃불 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하나님 임재에 대한 믿음의 표현으로 횃불을 준비하게 한 것입니다.
신약의 횃불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고후1:22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성도가 원수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다른 것 없고 성령의 불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아멘!/

③빈 항아리로 무장했습니다. 빈 항아리는 횃불을 숨기는데 사용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질그릇으로 비유합니다. 성령은 깨끗하게 비어있는 육체 속에 임합니다.

5. 승리의 기적은 언제 나타났는가?

 

①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갔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들이 무장한 것은 사실 적을 공격하고 적을 죽이는데 필요한 무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도리어 적진 앞에 장애물과 같은 것을 손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횃불과 나팔과 빈 항아리가 무기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시에 의한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전혀 이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에 무장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할/
②나팔을 불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③항아리를 깨뜨릴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육신적인 것이 다 깨뜨려져야 우리 속에 있는 순수한 믿음과 순수한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감추었던 비밀이 드러나게 되고 감추었던 능력이 나타나다. 고후4:7절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질그릇 속에 보화가 들어 있습니다. 이 보화는 하나님의 생명이고 성령입니다. 질그릇이 깨지지 않는 한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성령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옥합이 깨 저야 향유가 쏟아져 나온 것처럼 우리 자아가 깨짐으로 내 속에 들어있는 생명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자아가 깨지지 않고는 성령이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도 '성령으로 말씀으로 기도로 싸우는 것'입니다.

④주의 종을 따르며 순종하면 역사가 나타납니다.
삿7:17절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하되 내가 그 진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라" 기드온은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하라'고 말합니다. 축복의 비결도, 응답의 비결도 주의 종에 말에 순종할 때 일어납니다. /믿/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300명의 용사를 찾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드온의 정예용사들을 뽑고 계십니다. 오늘날 세상을 변화시킬 성도들은 기드온의 300용사 같은 숨은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기드온의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300명의 정예용사가 되어서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성림의 귀한 정예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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