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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택하신 하나님! (대하 7:11-18)

by 【고동엽】 2022. 2. 4.

성전을 택하신 하나님! (대하 7:11-18)

 

인생은 짧다고들 말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실감이 납니다. 저는 지금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날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120세를 산 모세는 시90:10절에서 세월의 빠름을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허송 세월 할 시간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몰라서 그 귀한 세월을 허송하고 있습니다.
엡5:15-16절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에서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주신 중요한 기회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가지신 뜻과 계획과 목적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허송세월하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작가인 헤밍웨이는 "인생에는 목적이 없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물을 필요조차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살로 그의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인생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 인생의 목적이 없이 사는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에게 죽음보다 더 큰 비극은 삶의 목적 없이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 귀한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근본 원인은 첫째로,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며 둘째로, 내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현세와 내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본향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빌3:20절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고 했고, 히11:16절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현세는 짧지만, 내세는 영원합니다. 천국도 영원하고 지옥도 영원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삶은 짧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수도 있고 영원히 지옥 불에 들어가서 고통 당하며 살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고 하셨고, 갈6:7-9절에서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잘 심어야 합니다. 좋은 것을 심어야 합니다.

 ▶영국에 '플레밍'이라는 농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는데 가까운 곳에서 '사람 살려달라'는 소리를 듣고 가보니 한 소년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그 소년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주 근사한 마차 한대가 그 농부의 집 앞에 멈추더니 아주 우아한 옷을 입은 귀족이 마차에서 내려 플레밍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면서 "당신이 내 아들의 생명을 구해주었으므로 내가 당신에게 보답하고 싶으니 원하는 것 다 들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농부는 "나는 대가를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내가 해야할 일을 한 것 뿐 이다"고 하면서 거절을 했습니다. 그때 농부의 아들이 달려왔습니다.
귀족은 농부에게 "당신의 아들입니까?" 묻고는 "그럼 내가 당신의 아들을 데리고 가서 공부를 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합의 하에 농부의 아들을 데리고 가서 공부를 시켰는데 이 아들이 런던의 명문학교 '성모 마리아 의과대학'을 나와 졸업 후에 전 세계인이 기억하는 페니실린의 발명자 '알렉산더 플레밍'입니다.
후에 그 귀족의 아들이 폐렴을 앓게 되었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페렴은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플레밍이 발명한 페니실린으로 아들을 살리게 된 것입니다.
그 귀족의 이름은 '루돌프 처칠'이고 그 아들은 영국의 유명한 수상 '윈스턴 처칠' 경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저격을 당한 후 그의 동생들인 '로버트 케네디'와 '에드워드 케네디'가 불의의 사고로 일찍 죽고, 또 그 뒤에 케네디 대통령의 외아들도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하여 여러 날 만에 그 시체를 찾아 장례를 지냈으며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여사는 돈 많은 오나시스와 재혼하여 세계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평생 숨어살다가 생을 마쳤습니다.
왜 이렇게 한 가문에 비운이 끊이지 않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가 술 공장을 해서 그 당시 미국 사회를 술로 망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케네디가 대통령에 재직하고 있을 때 전통적인 개신교 국가인 미국에서 유일한 그리고 최초의 카톨릭 교인으로 대통령 된 그는 대통령이 되자 전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성경 공부를 하지 못하게 하고 주기도문 암송을 금지시킴으로 청소년을 급격히 타락시켰으며 나라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린 큰 죄악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식을 할 때 손을 얹고 서약하는 성경 구절인데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드린 기도입니다.
대하3:1절을 보면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성전을 모리아 산에 건축했다고 했습니다. 모리아 산은 창22장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 곳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독자를 하나님께 번제로 바쳤던 모리아 산 위에 성전을 건축했다는 것은 오묘한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하 6장은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마친 후 하나님께 드린 기도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고, 7장은 성전봉헌과 하나님의 응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 16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제목소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삶은 교회와 함께 시작되고 교회와 함께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에 나옴으로 예수 믿는 자가 되고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이 성장하며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하여 충성하다가 교회의 품안에서 그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우리의 생애 한 가운데 놓여있는 교회란 과연 어떠한 곳인가? 우리는 이것에 대하여 항상 질문해야 되고 또한 바르게 대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에밀 부르너'는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의 모든 신앙생활은 결정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한 바른 개념 즉, 바른 교회 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성전은 어떤 곳인가?

 

1.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지어진 곳입니다.

 

대하2:1절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하고", 대하2:4절에서도 "이제 내가 나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 짓는 목적이 분명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중요시했습니다. 그 이름을 생명처럼 귀히 여겼습니다. 그 이름을 높이며 사랑하며 자랑하고 그 이름에 모든 것을 집중시켰습니다.

 

2. 성전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대하2:4절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오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라"
본문 12절 "이곳을 택하여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제사, 즉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제사란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인간이 만납니다. 제사를 통하여 하나님과 인간은 만나게 됩니다.
출29:42절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여러분! 제사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 제사 속에는 인간이 자기 죄에 대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나는 죄인입니다, 하나님! 내 죄 대신 이 짐승의 피를 바칩니다"하는 자기 겸손과 죄의 고백이 있고 동시에 하나님이 죄인을 만나시는 희생적 은총이 들어있습니다.
이 제사의 결과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희생의 피로 죄 씻음을 받는 곳, 죄 사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곳, 그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죄 씻음을 받는 것이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일입니다. 성전에 나와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할 때 사죄의 은총이 주어지는 곳입니다. /할/
오늘도 하나님은 예배하는 백성들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복을 받습니다. 그분을 만나야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요4:23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3.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사56:7절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마21:13절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본문 15절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①언제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가(13)?

⑴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 하는 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가뭄이오면 흉년이 듭니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반 동안 가뭄이 든 때가 있었습니다.
약5:17-18절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농경 사회에서의 비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그 당시 아합왕은 부인 이세벨의 주도로 온통 바알 신상을 세워 백성들에게 '풍요로움을 주는 신'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헛된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알 신이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굳어 버린 저들에게 바알 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비가 오지 않아 농사에 실패함으로 바알 신이 헛된 것임을 보이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고 이 문제로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7절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그런데 또 간절히 기도하니 비기 왔다고 했습니다.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왕상18:41-45절에 나오는데 그가 다시 하나님 앞에 비 오기를 일곱 번이나 기도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않거나" 이 말씀 속에는 모든 '천재지변'에 대한 기도를 말합니다.

⑵메뚜기로 토산을 먹게 하는 때(메뚜기를 시켜 땅을 황폐케 하는 때)(13절), 기도하라고 합니다. 우리 형편으로 생각해 보면 '사업의 실패, 경제적 위기, 전쟁 나서 모든 것을 불태우거나, 직장으로부터 실직 당하는 경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⑶염병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 즉 '각종 질병이 돌고, 가정적으로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 때 기도할 때입니다.
위의 세 가지는 '가뭄과 병충해와 염병!'입니다. 이런 것들이 왜 생기는가? 이런 천재지변에 대해 사람들은 과학적인 원인을 가지고 대답을 합니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이 많이 일어나는데 그 말을 설명하는 단어 하나가 "엘리뇨 현상!"으로 다 설명합니다. 예측불허의 기상이변의 원인에 대하여 그 단어 하나로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문에서 "그 위에 더 높은 원인이 있다"고 하시고 그 원인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14절(상)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악한 길로부터 떠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와 경고, 그것이 천재지변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부가 서로 신앙스타일이 잘 맞지 않아 가끔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남편이 주일날 아침에 골프채를 싣더니 "나 오늘 골프 간다"는 겁니다.
화가 잔뜩 난 부인이 "맘대로 하세요" 하고 헤어져서 교회에 왔는데, 골프 치러 간 이 남편이 한참 재미있게 골프를 치고 있는데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이 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그만 둘 수가 없어서 "이 게임만 끝내자" 생각하고 있는데 그만 골프채에 벼락을 맞아 온 몸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병원에 달려 온 아내가 맨 처음 보고 한 말이 "교회 안 가더니 벼락 맞았구먼!" 그랬습니다.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남편에게 "얼마나 놀랐어요?"하고 위로했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입에서 "내가 교회 안 가고 골프 치러 갔다가 벌받았지" 이렇게 나왔을 텐데…. 안 할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을 가리켜 방정이라 합니다.
문제는 아내의 방정맞은 이 말이 내용적으로 틀린 말이냐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원인을 추구한다면 벼락은 '플라스 전기와 마이너스 전기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피뢰침 없는 들판에서 쇠 덩어리를 휘둘렀으니 맞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과학적인 분석입니다.
또한 심리적으로도 분석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찝찝했지, 불안했고." 그 마음이 사건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재수가 없어서"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왜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그 사람입니까? 여기에 대하여는 과학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돌이키게 하기 위한 사건이다." /할/ 이해가 가십니까?
▶성경 속의 가장 큰 재난은 노아의 홍수 사건입니다.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는 기상이변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것은 천재가 아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죄 속에 빠져 내가 이 인생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홍수를 보낸다"고 말씀합니다.
이게 어찌 천재입니까?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런 분석에 대하여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인간이란 과학적 원인을 찾고 심리적 원인으로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원인은 너에게 있다." 사실 깊은 의미에서 "천재지변"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고발장이라고 성경은 누누이, 곳곳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건이 저주냐 하고 물으면 우리는 신학적으로 이렇게 대답해야 합니다.
▶'진정한 저주란 잘못된 길로 가는 동안에 형통케 되는 것'입니다. 그는 돌이킬 기회가 없습니다. 회개와 반성의 기회를 갖질 못합니다.
잘못한 길을 갈 때에 중단되고 사건으로 막히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입니다. 하늘이 그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은 아직도 그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칼 바르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은 징계를 통해 구체화된다"고 했습니다.
재난을 통하여 죄악이 정지됩니다. 교만이 꺾입니다. 그리고 돌이켜 바른 자세를 갖게 됩니다. /할/

②기도하면 들으시는 하나님!(12/15)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했고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라고 했습니다. '나타나셨다', '듣고'는 동사입니다.
15절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리니" /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출3:7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듣고, 보고, 말씀하시고, 오시고, 가시고l, 일어나시고, 기뻐하시고, 슬퍼하시고, 동행하시고 일하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출20:4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아무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은 살아서 움직이고 역사하시는 분이신데 손으로 깍고 다듬고 부어서 만든 것들을 신이라고 섬기는 것은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천주교는 십계명 가운데서 이 계명을 빼버렸습니다. 이유는 그들은 성모상과 여러 성물들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③기도하면 고치시는 하나님!(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치리라"
이름은 그 사람의 실체, 인격, 존재를 상징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란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선택한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 백성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백성과 그들이 사는 땅을 고쳐 주신다는 것이 본문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고치십니다. 말라버린 대지를 적십니다. 땅으로 열매 맺게 합니다. 그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땅을 고친다는 말은 '땅만 고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친히 고쳐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할/
▶삶이 고침을 받습니다. ▶사업도 고쳐집니다. ▶인격도 고쳐집니다. ▶하나님은 환경도 고치십니다. ▶예컨대 경제활동, 정치활동, 사회활동 등을 다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이어령'씨의 칼럼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배고픈 것을 풀어주는 것이 경제, 귀 고픈 것을 풀어주는 것이 음악, 눈 고픈 것을 풀어주는 것이 미술, 마음 고픈 것을 정치나 경제가 풀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 존재인데 누가 무엇으로 영혼 고픈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영혼의 고독이나 아픔을 음악으로, 미술로, 밥으로 돈으로 풀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없습니다. 그런 것들로는 고픈 영혼을 채울 수도 달랠 수도 없습니다. 주의 얼굴을 바라보고,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께 기도할 때 영혼 고픔은 해결되는 것입니다. /믿/
▶김영진 시인의 시 가운데 "음악이 없어도 춤춘다"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 하반부에 글을 소개합니다.
"거친 물줄기를 거슬러/모천으로 돌아가는/연어의 처절한 투혼/죽음으로 큰 삶을 이루는/찬란한 개선이다/오 오 희망이 있으면/음악이 없어도 춤춘다/나뭇잎처럼/꽃잎처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희망이 있다면 음악이 없고, 문화가 없고, 문명이 없어도 춤 출 수 있습니다.
14절을 한번 더 읽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치리라"
여러분! 이 말씀을 믿고 하나님 성전에서 열심히 기도해서 삶의 문제를 고침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이 본문을 가지고 묵상하던 중, 2차 대전을 치르는 미국을 구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음을 알고,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미국을 승전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출15:26절에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여호와 라파'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치료자가 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9:12)" 고 하셨습니다.
▶상심한 마음을 치료하십니다. 시147:3절 "(여호와께서) 상심한 자를 고치시고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하나님은 슬픈 마음을 치료하십니다. 괴로운 마음을 치료하십니다. 억눌린 마음을 치료하십니다.
▶병든 육체를 치료하십니다. 마9:35절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반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자를 살린 사건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황폐한 영혼, 시든 영혼을 치료하십니다.
말4:2절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구약의 예표적인 말씀으로 "여호와의 날에는 의로운 해, 공의로운 태양이 역사 속에 떠오르게 됩니다. 이 태양은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이 광선에 쬐임을 받는 사람마다, 이 빛을 체험하는 사람마다, 이 빛을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어 놀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날은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빛 가운데로 나와 새로운 생명을 체험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는 마치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펄펄 뛰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감격과 구원의 기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치 어둠 속에 있던 송아지가 외양간을 박차고 나와서 태양 앞에서 뛰놀며 노래하는 신선한 감격을 보는 것입니다.
암에 걸린 분들은 방사선 치료를 하게 됩니다. 강력한 광선이 세균을 죽입니다. 그러나 이 치료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발하시는 이 광선은 우리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주고, 우리의 육신에 새로운 힘을 주고, 우리의 영혼에 영생으로 가득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마음의 질병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의로운 태양이 되시는 주님을 모시면 새로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가정에 문제가 있다면 주님을 모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문제가 있다면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삶에 문제가 있다면 모시어 들이시기 바랍니다. 의의 태양이 중요합니다. 태양을 잘 보지 않으면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루에 적어도 두 세시간 태양을 보면 모든 우울증이 사라집니다. 주님을 모신 자에게는 새로운 삶으로 충만하게 되는 은총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할/

④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기도의 자세도 중요합니다.

⑴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저지르는 악한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 여기서 악한 길은 '하나님을 거역한 죄요, 불순종의 죄'입니다.
사1:4절에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불순종하고 악한 길에 빠른 백성들을 향해서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악한 길에서 돌이킬 때에 하나님께서 그 땅을 고쳐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악한 길에서 떠난다는 것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회개란 죄와 불의와 불법의 현장으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다시 말하면 떠날 것은 떠나고, 버릴 것은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악한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한 촌 할아버지 서울 역 출구에서 그 많은 사람을 보자 "아, 이 많은 사람이 무얼 먹고사나?" 혼자말로 말하는 것을 그 옆을 지나가던 한 젊은이가 듣고는 말하기를 "속여먹고 산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오늘의 시대적 특징은 속이는 것입니다. 모두가 서로 속이고 속고 있습니다. 회개는 사람이 사람다워지는 첫 번째 길입니다.

⑵스스로 겸비하라!
미가6:8절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잠3:34절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인가? 거만한 사람, 교만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교만하고 거만한 자는 남이 자기를 비웃고 멸시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인용한 야고보는 약4:6절에서 "하나님이 교만한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였고 10절에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 이 말씀을 인용한 베드로는 벧전5:5절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절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갖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에 즐거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도대체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과대 평가하거나 스스로 높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할 일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은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교만은 기도를 막고, 은혜를 막고, 축복을 가로막아 버립니다. /할/

⑶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앉는다는 뜻입니다. 친밀한 사람끼리 마주 대하고 앉듯이, 맞대고 앉아서 이야기하듯이, 어린아이가 엄마의 얼굴을 보고 반가워 마구 뛰어 가듯이 하나님 앞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나가는 것입니다.
본래 얼굴이란 목 윗부분, 머리 앞부분, 이마, 턱, 두 귀의 둘레 안쪽을 말합니다. 몸은 옷으로 감싸서 잘 안보이지만 얼굴은 그대로 드러나 잘 보입니다.
사람은 각각 타고난 얼굴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성형 술의 발달로 얼마든지 다른 얼굴이나 예쁜 얼굴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관상쟁이는 헷갈릴 때가 많다고 합니다. 본래 타고난 얼굴이 진짜 관상인데 다 뜯어고쳤기 때문에 관상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 지옥에 갔습니다. 큰 간판이 걸려있더랍니다. 간판에는 '수리중'이라고 써있었습니다. 무슨 수리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 때문에 수리를 안 할 수 없게 됐다며 한국은 동네마다 '불가마, 찜질방, 사우나, 쑥탕'이 있어서 뜨거운데 익숙해 지옥에 오는 사람마다 "어 시원해 좋다, 화끈해 좋다"며 지옥을 마치 불가마인줄 알고 즐긴다는 겁니다. 그래서 10배정도 더 뜨겁게 만들기 위해 대폭 수리를 하고 있다고 하더랍니다.
또 어떤 사람이 천당엘 갔습니다. 천당 입구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대 혼잡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팀장으로 보이는 천사한테 "왜 이렇게 입구가 혼잡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팀장 대답이 "본래 생명 책에 기록되고 입력된 얼굴과 실물을 대조한 후 입장을 시켜야 되는데 생명 책에 입력된 사진과 실물이 영 달라서 대조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다."고 대답하더랍니다. 모조리 얼굴을 뜯어 고쳐 사진과 실물이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은 변함이 없습니다. 사람의 얼굴은 나이를 따라 변합니다. 기후 따라 변합니다. 감정 따라 변합니다. 분위기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은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얼굴이십니다.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는 파리 '르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신비한 듯한 모나리자의 미소는 지금까지 변치 않고 그대로입니다. 단 그 미소는 움직이지 못하는 죽은 미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얼굴은 나를 바라보시는 얼굴, 나를 사랑하시는 얼굴, 나에게 말씀하시는 얼굴입니다. 그 얼굴을 구하면 고침을 받습니다. ▶그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사모하고, 사랑하고,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싸우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눈빛은 독기가 서리고 무섭습니다. 강아지도 잘못을 저지르면 주인얼굴을 피합니다. 사랑과 사모의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자, 회개하고 깨끗한 심령으로 주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들이 복 받고 고침 받는 것입니다.
민6:24-26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결론입니다!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6절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할/
신11:12절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했고, 사43:5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라고 했고. 마28:20절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항상 함께!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경호원도 항상 함께 있진 못합니다. 부모도 형제도 그렇습니다. 한 몸이라는 부부도 항상 함께가 아닙니다. 때로 함께 때론 따로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영원히,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십니다.
시121:8절의 말씀으로 결론을 삼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아멘!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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