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웃을 지옥으로 보내지 맙시다! (막 16:15-18)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실 때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분부하신 말씀이 오늘 읽은 본문말씀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두루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정죄(심판)를 받으리라"
부모님의 유언도 의미가 큽니다. 그렇게 불효했던 청개구리도 마지막 부모의 유언대로 했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유언은 선교하라는 유언입니다. 선교가 무엇입니까? 예수 생명운동, 즉 전도입니다.
예수 생명 운동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이 피를 흘리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레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엡2:1절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죄의 값은 죽음입니다. 그 죽음의 부채를 대신 갚으려면 생명이 필요합니다. 생명은 바로 피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지 않으시면 우리의 죽음의 문제, 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 피 문제를 잘 설명하는 사건이 유월절입니다. 열 번째 재앙이 내렸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의 피를 발랐습니다. 애굽 사람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똑똑하고 도덕적이고 선해서 장자의 죽임을 면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양의 피 때문에 살았습니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다는 이유로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세례식이 있습니다.
1. 세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믿고 세례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자들은 정죄함을 받으리라"
①세례는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얼을 것이요" 그 순서는 믿음이 먼저이고 세례가 그 다음입니다. 만약 믿지 않는다면 세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습니다. 마28:19-20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②'죄를 씻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세례를 받음으로 죄를 씻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죄를 사함 받는 비결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제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살겠다는 서약입니다.
③새롭게 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 받기 위해서 요단강물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물 속에서 나오는 것은 다시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천국백성답게 살기 위해서 죄에 대해선 날마다 죽는 생활을 하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육신의 '혈기, 교만, 욕심, 불의'한 모든 자신의 정욕은 날마다 죽는 생활에 힘쓰고, 이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본받아 주님 말씀대로 새롭게 사는 인생을 출발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습니다. 바울의 이 말은 육신이 죽으면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사신다는 뜻입니다.
④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는 '인 친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하여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백성이라 인 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할례의식을 통해서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하신 언약처럼 세례 받는다는 것은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표시이자 구원받았다는 표시입니다. 바울은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살았습니다. 이제부터 내 뜻대로 살려고 하지말고 주님 뜻을 찾아 주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을 잘 지키고 예배를 드리는 데 힘써야 합니다. ▶십일조 생활을 하면 물질에 축복을 받습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오늘 주님의 명령이신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할/
2. 전도는 예수님의 명령이고 유언이고 부탁의 말씀입니다.
①전도라는 말의 유래는?
전도라는 말은 '유앙겔로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주로 전쟁에서 아군이 승리했을 때 승전보를 가리켜 '유앙겔로스'라고 부릅니다.
BC 450년 경, 그리이스 군대는 '에게' 해협에서 당시 세계 최강 페르시아 군대를 맞아 치열한 해전을 벌였는데, 열세를 면치 못한 그리이스 군대가 뜻밖에 승리를 거두게 되자 전쟁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아테네 시민들에게 용감한 군인 하나가 42Km 거리인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를 단숨에 달려와 승전보를 전했습니다.
바로 이 승전보를 가리켜 '유앙겔로스'라고 합니다. 이것이 영어로 발전하면서 '에반젤리즘'(evangelism) 즉 '전도'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페르시아 군대를 철퇴시켰다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수도 아테네를 향하여 달려올 때 그 군인의 가슴은 어떠했겠습니까? ▶전도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아 사망선고를 받아 지옥형벌을 면할 수 없는 우리 인생들에게 이 공포에서 해방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면 이보다 더 큰 복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복음은 승전보입니다(롬8:1-2). 그러므로 속히 전해야 합니다. 신나게 달려가서 전해야 합니다. 특히 초등학교 시절 이런 경험들이 많습니다.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상장을 받았을 때, 우리는 줄곧 넘어지면서도 신나게 집으로 달려와서 부모님에게 기쁜 소식을 숨을 몰아쉬면서 알려드리고 보여 드렸습니다. 전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②전도는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람 살리는 일만큼 보람된 것이 없고 더 급한 것은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왜 의사를 소중히 여깁니까? 오래 전에 '허준'이 방송드라마 사상 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였습니까? 왜 의사에게는 봉급을 많이 줍니까? 사람이 하는 일 중에 가장 위대한 일, 즉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사람을 살릴 때 어떻게 합니까?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섭게 서두릅니다. '환자를 살릴 수 있다, 살려내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일을 합니다.
전도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사람은 영혼이 살아나면 모든 부분이 뒤따라 살아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서2절)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생각해보면 전도하는 일은 의사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대한 일입니다. 영혼이 죽어버리면 육체는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③전도는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전도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고 신나 하십니다. 전도 받아 믿게 되고 구원받는 모습도 기뻐하시지만 그 영혼들을 위해 전도하는 성도들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서울 오류동에 유신고등학교를 세운 박창원장로님은 평생 '전도는 죽는 날까지, 봉사는 영원히!' 이것을 신조로 하여 평생 전도하는 기쁨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롬10:15절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을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자의 발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한 발이기 때문입니다.
④전도의 상급이 가장 큽니다.
세상에는 상의 종류도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주는 상, 사람이 만들어서 주는 상은 그 즐거움이 잠깐 뿐입니다. 이제부터 사람들이 주는 상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을 바라봅시다. 단12:3절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⑤전도는 교회 부흥과 교회 성장의 지름길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성장(부흥)하는 교회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 한 가지는 그 교회마다 '전도왕'이 꼭 한 두 사람 있다는 것입니다. 성림교회도 이런 사람이 나올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전도용사'가 됩시다. '전도 왕'이 됩시다. 요즘은 무엇이든지 한 가지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이 주목을 받습니다. /할/
⑥전도는 우리가 선택할 과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순종해야 될 필수 과목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심정을 항상 마음에 갖고 있어야 됩니다. ▶고전9:16절에서 바울은 자기의 심정을 아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사도 바울도 부득불 복음을 전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득불'이란 하기 싫은 데도 억지로 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심정입니다.
⑦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 노력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하나님께서 영생주기로 작정된 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할 사람은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만 믿습니다(행13:48). 전도는 영생주기로 작정한 백성들을 찾는 작업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정하시고 나는 인도하고, 하나님은 심고 나는 거두는 것이다."
전도는 두 가지 원리를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와 보라'고 말하고 다음에는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와 보라'는 말은 '교회에 와 보라, 예배에 와 보라' 즉 이 말은 '예배드리는 광경을 보라. 목사님을 보라. 우리 교회 인테리어를 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로 오라는 말은 교회를 보라는 뜻이 아니고 '여기 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듣는 중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로 오라. 예배에 오라는 초청을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안드레는 형 베드로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을 뿐만 아니라 벳세다에서 수많은 군중이 허기졌을 때 어린 아이를 예수님에게 데리고 가서 오천 명이 먹는 기적을 낳게 했습니다. 안드레는 자기가 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3. 본문에서 복음 전도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①복음 선교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여기 '온 천하'는 모든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창13:14). 예수님의 최후 명령 중에는 더 구체적입니다.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 끝까지"입니다. 전 세계, 전 지역을 복음 선교무대로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②복음 선교는 초 인종적 세계화 운동입니다. '만민에게' '만민'은 '온 백성'(눅2:10)을 뜻하고, '모든 족속'(마28:19)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는 '만민의 구주'요 '온 세상의 구주'로 오신 것입니다.
③복음 선교는 궁극적으로 세계복음화 운동입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복음'의 세계화를 명령하고 계십니다. 이 운동은 어떤 영웅호걸들이 와서 꿈꾸었던 그런 운동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나타났던 군왕들의 세계화는 정치적이요, 경제적이요, 이데올로기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결코 '복음의 세계화'운동이 아니었습니다.
④복음 선교가 마감되는 날, 지구의 종말이 옵니다(마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렇다면 예수 복음화 운동은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입니다. 복음전파가 끝나는 날은 이 세상에서의 낮과 밤, 곧 시간의 기능이 끝나는 때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만물의 마지막이라고 합니다(벧전4:7).
주님은 이 운동이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1).
⑤이 운동은 예수 생명운동입니다.
이 운동이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고, 죄인에게 믿음을 주어 구원(영생)을 얻게 하는 운동입니다.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1:16-17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런데 전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닳고닳아서 순순히 듣고 따르지를 않습니다. 전도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전도할 시기가 따로 있습니다.
4. 인생들에게 언제 전도해야 하는가? 그 시기를 알아보자!
①전도는 "사람이 어렸을 때가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 수 있는 때입니다. 이 때는 마치 백지와 같은 시기이기 때문에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면 그리는 대로 모양이 나타나는 그런 때입니다. 그래서 교육 중에서도 어린이 교육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유대인의 랍비 교육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치부 때는 교육하기에 따라서 100 % 유대인을 만들 수 있다. 초등학교 때에는 50%를. 중 고등학생 때는 10%를. 대학생 때에는 5%를 만들 수 있는데 사람이 일단 어른이 된 후에는 아무리 교육을 해도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전도는 때를 놓치면 그만큼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최상의 전도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그때 한번 신앙으로 교육 시켜 놓으면 평생 좋은 신앙 인으로 살아가게 할 수 있습니다.
②"청년의 시기가 좋다"는 것입니다.
청년의 때는 세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것이 '지성과 감성과 친구'입니다. 청년의 때는 이지적이고 비판적인 지성이 한창 피어오를 때입니다. 그래서 청년들을 보면 합리적이고 이론적입니다. 번뜩이는 지성과 재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는 감성도 뜨겁게 끓어오를 때입니다. 이 때는 감성이 풍성하고 눈물이 있고 뜨거운 가슴이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감동하고 쉽게 분노하고 쉽게 눈물을 흘립니다. 그만큼 감성이 풍부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감성이 풍성하면 그만큼 신앙의 길에 들어서기가 쉽습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신앙을 가져도 아주 깊이 있게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청년의 때는 또 친구가 많은 때입니다. 이 때는 친구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소외감 때문에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때 아주 좋은 친구가 옆에서 신앙의 길로 안내를 해 주면 얼마든지 신앙의 길에 들어설 수가 있는 때입니다. 지성이 있고 풍부한 감성이 있기 때문에 신앙을 갖게 해 줄 수가 있습니다.
③전도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어른 전도"입니다.
왜냐하면 때가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린 시절을 지나고 청년시절을 지나게 되면 세상에서 때가 묻고 인생이 찌들어서 고집스러워지고 편견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서 나쁜 습관과 편견들이 깊이 배어들어서 전도를 하면 순순히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어른 전도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렵게 전하지 말고, 유창하게 전하지 안 해도 "당신 예수 믿어야 살 어! 안 믿으면 지옥 가" 이렇게만 전해도 됩니다.
누구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니고 당신을 위해서 예수 믿으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가장 순수하고 원색적인 전도방법입니다.
▶우리나라 선교초기에 최 권능 목사님의 본명은 최봉석인데 늦게 사명을 받아 전도를 다니는데 능력이 많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을 최권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분의 전도방법이 아주 단순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것이 그분의 전도방법입니다. 언뜻 들으면 아주 유치한 것 같은데 이 전도방법이 참 잘 먹혔습니다.
하루는 전도를 나갔다가 소를 끌고 가는 농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목사님이 가만히 농부 곁으로 가서 갑자기 큰 소리로 "예수 천당 불신지옥" 하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농부도 놀랬지만 소가 더 놀래서 뒷발질하면서 뛰는 바람에 그만 이 농부가 소에 걷어 차여서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이 농부가 병원에 누워서 생각하니까 어처구니도 없고 지금 농사 일로 바쁘기는 한데 병원에 누워있자니 속이 상해서 그 예수쟁이 목사를 굉장히 원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날 밤부터 잠을 자려고 눈만 감으면 귓전에서 '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말이 자꾸만 들려왔습니다. 할 수 없어서 그 농부가 목사님에게 고쳐달라고 사정을 하니 그 병은 예수만 믿으면 저절로 고쳐지는 병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농부가 할 수 없어서 손들고 예수를 믿어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5. 우리가 지옥을 잘 알아야 전도를 힘있게 할 수 있습니다(계20:10-15).
불신자는 천국보다 지옥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천국은 없어도 지옥은 있는 것처럼 여기는 심정도 참으로 이상한 현상입니다.
느낌이 주는 지식은 과학적인 것을 초월하여 정확할 때도 있습니다. 불신자들이 지옥에 대해 컴컴하고 무서운 곳, 더러운 곳, 심판의 장소 등으로 알고 있는 것은 성경 적입니다.
지옥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게힌놈(힌놈의 골짜기)인데, 이곳은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아하스 왕 이후 우상에게 아이를 불태워 바친 곳이기도 합니다(수18:16). 신약에는 헬라어로 게엔나로 표기합니다.
①지옥은 어떤 곳인가? 성경에 나타난 지옥의 모습을 알아보자!
⑴전체가 불입니다.
불 못이라고 합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하는 곳입니다. 불은 심판을 상징하고 저주를 뜻합니다. 구약 시대 때 큰 범죄인에게는 불로 태우는 심판을 하셨습니다.
계20:14절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막9:49절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⑵어두운 곳입니다.
지상에서 밝은 생활을 하지 않고 죄스러운 어두운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지옥은 어두운 곳입니다. 천국은 밤이 없다고 했으나 지옥은 낮이 없습니다. 빛은 생명과 은총의 상징이며 어두움은 사단의 정신이고 죄의 상징입니다. 생각이 어두운 자들의 곳이므로 빛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8:12절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⑶세세토록 고통스러운 곳입니다.
영원한 고통입니다. 끝없이 고통과 괴로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곳입니다. 기간이 없는 지옥의 고통을 상상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계14:11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⑷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입니다.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이를 갈게 됩니다. 엄청난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서 이를 갑니다. 이 세상에서 향락을 즐기며 살았던 것이 꿈같이 지나고 그곳에서는 세세토록 울며 괴로운 절규만이 있을 뿐입니다.
마13:50절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⑸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입니다.
막9:48절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⑹하나님이 없는 곳입니다.
예수 없는 천국보다 예수와 함께 하는 지옥을 택한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님이 없는 곳은 언제나 지옥의 세력이며 지옥의 그 현장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살후1:9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②누가 그 지옥을 갑니까?
⑴예수 믿지 않는 자가 가는 곳입니다
계21:8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⑵회개치 않는 자가 가는 곳입니다. 계2:21절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 하는도다"
⑶거짓된 선지자와 거짓된 이적 가들이 가는 곳입니다. 마7:22절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⑷사단 원수 마귀가 가는 곳입니다.
계20:10절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마25:41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사람들은 아주 용기 있는 척하며 복음 전도자에게 가끔 '당신이나 천당 가라! 나는 지옥에 간다'고 합니다. 말이 씨가 되어 지옥 갈 겁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예수님 저주하며 우습게 한말... 이 죄를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한 말이 씨가 되어 그 후손들이 얼마나 역사에 비참하게 죽었습니까?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이 무너질 때 불 타 죽거나 포로 당하거나 도망간 사람, 2차 대전 때 히틀러에게 6백만이 살해되거나 한 이 모든 것이 심판입니다.
아무리 용기가 있어도 예수는 믿어야 합니다. 용기 있을 일이 따로 있지 지옥을 자신 있게 가겠다는 말은 헛된 말이요, 헛된 용기입니다.
마10:28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 성경적 사실을 듣든 아니 듣든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성경 적으로 알려줘야 합니다. 내세에 대한 사실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 심판 날 그런 말을 못 들었다는 변명을 할 수 없게 해야 합니다. 만약에 이 사실을 전하지 아니하면 주님 앞에 우리가 책망을 받습니다.
우리에게 내세의 지식을 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사실 앞에 보다 더 수준 높은 성도들이 되기 위해 좀더 성경과 가까이 하고 좀더 주님 가까이 하기 위해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 전도자에게는 이런 능력, 이런 권세를 주셨습니다(17-18).
여러분! 사람을 만나면 자국이 남습니다. 어느 학교를 다녀도 뭔가 자국이 남습니다. 여행을 다녀와도 자국이 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자국이 없겠습니까?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믿음의 자국이 남습니다. 이것이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라!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입을 하나님의 입으로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손을, 우리의 발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요14:12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주님의 말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무에게나 이런 표적과 이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믿는 자들에게만 나타납니다. 그러면 믿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래도 잘 믿던 못 믿던 주 앞에 나온 우리들입니다. /할/ 세상에는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 하나님에 대해 듣는 자가 있고, 하나님을 믿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믿어야 할 대상입니다.
하나님을 많이 알아서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마17:20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①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라!
여러분! 믿는 자들에게 표적이 따르는데 이 표적은 우리의 권세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권세가 어떤 권세입니까?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악한 영들도 두려워 떠는 권세입니다. ▶죽음을 정복하는 권세입니다. ▶멸하고 세우시는 권세입니다.
이 권세 앞에 무수한 병자가 고침을 받고, 무수한 죄인이 구원을 받고, 나라가 달라지고, 역사가 달라지고, 사람이 변하고, 믿는 자가 살길을 얻는 그런 권세입니다.
②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의 원어의 뜻은 '파괴자, 분리자'입니다. 죄가 쫓아오면 개인이 파괴되고, 가정이 파괴되고, 국가가 파괴됩니다. 죄는 사단이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됩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고, 평화가 오게 합니다.
귀신은 악한 영입니다. 악한 영에 걸리면 끔직한 사건을 일으킵니다. 세상이 왜 이처럼 악하고 끔직 해 집니까? 악한 영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사람은 귀신이 아닙니다. 악한 영이 그 사람을 지배하면 악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이 귀신의 정체를 내 쫓아야 합니다. 이것은 아시는 대로 대통령이 악한 영을 물리칠 수 없고, 서울대학이, 안기부가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악한 영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만이 악한 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왜? 주님이 우리들에게 이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악한 영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결박하시기를 바랍니다.
③새 방언을 말하며: 여기서 새 방언은 신학적으로 볼 때 우리의 언어가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부정적인 입술이 아니라 창조적인 입술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사랑합니다!' '이해합니다. 용서합니다!'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 새 방언입니다.
④뱀을 집으며: 집어낸다는 말은 제거하고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요일3:8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멸한다"라는 말씀은 "힘을 제거하여 무력하게 한다." 또는 "무장을 해제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사단 마귀의 힘을 제거하여 무력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창3:15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 진 것입니다. 때문에 사단은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무장해제 받았는데 어떻게 싸울 수 있습니까?
마28:18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땅에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세를 교회에 주셨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행사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⑤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성경에는 독에 대하여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눈에 독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눈이 비들기 눈처럼 은혜롭기를 바랍니다. 독한 눈을 피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적극적인 의미는 내 눈을 독하게 갖지 마라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입이 독하다고 하고, 셋째로는 우리의 얼굴에 독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남의 독한 눈과 입술과 얼굴도 문제지만 먼저 내 눈과 입술과 얼굴에서 독을 빼내야 합니다.
⑥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믿음의 손은 약손입니다. 믿음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믿음의 손은 사랑의 손입니다. 믿음의 손은 기적의 손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이루신 사건들입니다. 그 때는 예수님이 직접 일하셨습니다. 직접 병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시고! 복음을 가르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이 모든 사역을 제자들에게, 주의 자녀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에게 이런 능력도 주십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는 능력이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여러분! 우리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그 권세를 이 지상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지신 그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우리는 그 권세가지고 이 땅에서 주님이 하신 일을 해야 합니다.
▶두레 마을의 김진홍 목사님은 원래 철학을 전공하고 지방대학에서 철학개론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한 영문과 학생이 질문을 하기를 "교수님 진리가 무엇입니까?" 그는 당시 기독교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기독교 신앙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강사초년생으로 말할 수 있는 진리가 없어 '칸트의 이론'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자 "교수님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런 것말고 내가 그것 위해 살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진리가 있나요?"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나도 그런 진리를 몰라 찾고 있다" 그러자 학생이 하는 말이 "교수님 그렇다면 문제가 보통이 아닙니다. 철학은 진리를 찾는 학문이라 전제하고 강의를 시작했는데 교수님이 진리를 모르면 왜 가르칩니까?"
돌아와 자기의 철학 서적들을 뒤져보니 거기서 자기가 그것 위해 살다 죽을 진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진리를 찾아 나서기로 했답니다.
그 해 여름 대학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아이스케키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여러 인생의 체험을 통하여 인생의 의미를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 후 2년 세월을 방황을 하면서 보험회사 세일즈도 하고 화장품 회사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12월 어느 저녁 선교단체 선배를 만나게 되어서 엡1:7절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복음을 깨닫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말씀을 읽는데 그 영혼 속에서 뭔가 번쩍하는 것입니다. 두 번 읽을 때는 영혼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영혼의 폭풍을 경험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그리스도 안이라는 단어에서 그는 길을 찾았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겠다고 철학 안에서, 자신 속에서, 인생 체험 안에서 찾아 헤매고 다녀도 어디서 찾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미신이라고 팽 겨 쳐버렸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게 된 것입니다.
▶어떤 권사님 간증입니다. 그에게는 아들 넷이 있었는데 세 아들은 예수님을 믿고 막내아들 하나만 안 믿었습니다. 권사님 연세가 60이 되어 자녀들이 어머니 환갑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권사님이 말하기를 "나는 잔치 안 헐란다. 지옥 갈 자식한테 절 받을 마음이 없다" ▶어머니의 태도가 너무나 단호하니까 자식들이 겁이 났습니다. 그렇다고 회갑잔치를 안 해드리면 평생에 불효가 될 것 같아서 형들이 동생을 책망했습니다. "야! 네가 어머니에게 불효하니까 이런 일이 생겼다. 너 때문에 회갑잔치 못하면 평생 네가 어떻게 얼굴 들고 살겠느냐?"
막내아들은 이 말을 듣고 "그러면 나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어머니에게 "어머니! 막내가 믿는다고 하니 잔치하십시다!" 그래도 어머니는 믿어지지 않아서 "안 된다. 네가 성경 가지고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 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못 한다" 그래서 결국 그 아들이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환갑잔치를 하려고 하는 데 어머니가 또 말씀하셨습니다.
"얘들아! 네 어머니 회갑잔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 하나님 앞에 웃으면서 가게 해주어라. 네 어머니에게 꼭 효도하고 싶다면 내가 하나님께 칭찬 듣는 어머니 되게 해라. 너희들 생활이 다 넉넉하니 한 사람 앞에 얼마씩 내서 나를 위해 교회를 하나 세워다오. 내가 하나님 앞에 기쁘게 갈 수 있도록 교회 하나 세워다오"
아들들은 어머니 말씀을 기쁘게 받아 드렸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잔치도 했습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이 복을 받았겠습니까? 못 받았겠습니까?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할/
▶예수가 생명이고 축복이고 기적입니다. 우리가 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 전도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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