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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 (사 49:14-21)

by 【고동엽】 2022. 2. 4.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 (사 49:14-21)

 

●어느 가정에서 손 자랑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씩씩한 아들의 손이 최고라고 하는 이도 있었고, 딸의 하얀 손이 제일 곱다고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아기의 고사리 같은 손이 제일 귀엽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쭈굴쭈굴한 할머니의 손이 제일 고상하다고 하는 이도 있었고, 일하는 아버지의 손이 으뜸이라고 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마침내 온 가족이 투표를 한 결과 가장 아름다운 손으로 어머니의 손이 뽑혔답니다, 그 이유는 어머니의 손은 수많은 가사 일로 거칠고 못이 박혀있었지만 온 가족을 위한 사랑의 손이요 봉사의 손이요 섬김의 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은 사랑과 섬김과 봉사의 손입니다. 남을 섬기는 손이야말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손입니다. /할/
벌써 한해가 가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섬기고 봉사한 수고의 손길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도와 주셔서 오늘 여기까지 은혜롭게 잘 왔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상급은 하나님이 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어느 집사님이 목사님에게 "나는 목사님이 이해가 안 가요" 이 말을 몇 번 반복하니 분위기가 무거웠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뭐라고 했겠습니까? 목사님이 싱그시 여유 있게 미소를 지으면서 "집사님! 이 해가 안 가면 다음 해가 안 와요! 그러니 이해해" 그러자 모두들 웃었습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금방 좋아졌습니다.
어느 목사님 글을 보니 5-3=2는 '오해하다가 세 발자국만 물러서서 보면 이해하게 된다'고 해석을 했고, 2+2=4를 '이해하고 또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라고 해석한 것을 보았습니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할/ ◀제목소개!▶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자주 만나는 사람은 기억하게 되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자주 만나지 못하면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령 부모와 자식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무리 오래 만나지 못해도 잊어버리는 법은 없습니다. 특별히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을 생각하는 것은 더욱 간절하여서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떠나도 항상 그를 기억합니다. 왜?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섬기고 사랑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주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떠났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버리고 세상의 쾌락을 좇아 나간 것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우상으로 탐욕으로 죄악으로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저들을 기억하시고 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죄 속에 깊이 빠진 이스라엘을 깨닫고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에서 징계의 막대기로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가 70년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 포로생활은 저들에게 너무나도 긴 고통의 기간이었습니다. 그 고통의 기간 중에 이스라엘은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1년, 10년, 30년, 50년, 아니 70년이 다되도록 기도했건만 하나님은 응답이 없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잊어버리신 것이 아닌가 라고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저들을 항상 기억하고 계실 뿐 아니라 저들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계심을 알려 주고 계십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고,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긴 고난의 터널을 지나면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만난 생의 고통 가운데서 이렇게 부르짖고 있습니다. 파도처럼 연거푸 밀려오는 고난으로 인하여 절망하며 울부짖습니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하나님, 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나님은 나를 잊으셨나이까?"
이런 외침에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아니하실 때, 우리는 더욱 큰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다' 혹은 '하나님은 주무신다' 심지어는 '하나님은 죽었다'까지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에 우리는 영혼의 캄캄한 밤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고난에 있어서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나는 어두운 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난 1년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지내왔습니다. 실업자가 점점 늘어나 비공식 통계로는 8백만 명이라고 합니다. 경제 회복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전망은 그렇게 밝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실직자들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는데도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에게 침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잊으신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이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느니라"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어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주무시거나 졸지도 아니하십니다. 항상 우리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어찌 어머니가 자식을 잊겠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자식을 버리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벌써 하나님은 이런 세태가 온 줄 아시고, 어머니가 젖 먹는 어린 아기를 잊어버릴지언정,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고 계신다고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는 어머니와 자식 관계보다도 더 긴밀한 관계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관계를 올바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자식이 어버이 심정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정말로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요, 그래서 하나님은 한시도 잊지 않고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믿/
시121:4절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할/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필요한 때나 찾고, 저 멀리 계시는 분이요, 나와는 그렇게 가깝게 계신 분이라고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고 예배를 들여도, 왠지 멀리 느껴지고 우리의 손이 미치지 않는 저 높은 곳에 계신 분으로만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깝게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의식 속에는 가능하면 그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고자 하는 잠재의식이 우리 속에 작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돌아볼 때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할 때보다는 잊어버리고 살 때가 대부분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될 수만 있으면 하나님을 떠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네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다운 안식을 주시기 위해 먼저 죄의 문제를 청산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외아들을 아낌없이 내어 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사랑이요,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의 관계보다도 더한 것이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보다도 더한 것입니다. 이런 관계를 올바로 깨닫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믿/
그러므로 행여나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탕자가 돼지우리에서 굶어 죽게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 집을 생각했던 것처럼, 우리는 항상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고난을 당할 때야 비로소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에게 부르짖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에 통로입니다. 기도하면 우리 하나님이 만나주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아서 우리를 그 자리에서 흔들어 놓기만 하지 벗어나게 하지는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다시 기억해야 하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진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깊은 대화를 하십시다. 대화가 바로 기도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봅시다.
우리가 손바닥에 하나님을 새겨 그를 기억하여야 할텐데,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의 손바닥에 우리를 새겨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주시고 우리를 사신 것이기에 결코 잊을 수 없고, 놓칠 수 없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나를 기억하실 뿐 아니라, 나의 영광스러운 미래를 이미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멸망당하여 폐허가 된 예루살렘의 미래를 보여 줍니다. 백성들이 돌아올 것이며 그 땅이 좁아 넓히자고 할 때가 곧 이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영광스러운 미래를 보여 주셨습니다.
사65:18-19절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지금 이스라엘은 포로에 고통 중에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지만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독립과 해방을 미리 준비해 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으시고 여호와이레 준비해 놓으신 하나님은 우리들의 모든 필요를 예비해 놓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한해를 보내면서, 또 다시 한 해를 맞이하면서 신앙정리가 제대로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우리 주님은 산상 설교에서 "먹고 마시고 입는 의식주의 문제"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앞에 우리가 상상도 못할 영광스러운 미래를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먹고 마실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과 영광, 그리고 그 나라에서 얻을 의의 면류관과 영생, 이 모두가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것들입니다.
여러분! 한해를 보내면서, 또 다시 한 해를 맞이하면서 신앙정리가 제대로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이렇게 백성이 절망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절망과 낙심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무슨 의미입니까?

 

1. 하나님이 자기 소유를 주장하시는 말씀입니다. "너는 내 것이다" /할/

 

모든 성도는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성도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성도는 주인이 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으로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창2:7).
사43: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또한 7절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소유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창2:7,사43:1)
▶왜 우리가 주님의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지명하여 부르시고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사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내가 너를 사랑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서 조성할 때부터 너를 사랑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은 복되고 존귀한 자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이 말씀은 곧 나를 지으시고 자기 소유 삼으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여기에 성도의 존재 가치와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자기의 것임을 확실히 해 두기 위해서 기록으로 남겨 놓습니다. 그 가장 좋은 예가 등기제도입니다.
계20:15절 "누구든지 생명 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생명 책" 하나님 나라의 호적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름이 기록되어져 있는 "주의 기록하신 책"입니다(출32:32). 우리의 천국 시민권을 보장해 주는 천국의 등기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빌3:20).
이 생명 책에 여호와 하나님이 "너는 내 것이라"고 지명하여 부른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십니다. 어떤 복입니까?(시144:12-15)
시144:15절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이러한 백성'은 어떤 복을 받습니까?

①자녀들이 잘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12절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으며"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원문에는 '우리 아들들은 어렸을 때 잘 자란 나무 같으며'로 되어 있습니다.
아들을 장성한 나무에 비유했습니다. 열매를 얻고 재목으로도 쓸 수 있는 우수하고 단단한 거목에 비유했습니다. 아들은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서 장차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 거목입니다.
또한 딸은, 집중에서 가장 훌륭한 집은 왕이 사는 궁전인데 그 궁전에 있는, 실력과 노력과 정성을 다해서 다듬은 모퉁이 돌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딸은 품위가 있고 우아하고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아들과 딸에 대한 이러한 비유는 우리에게 자녀의 축복을 말해줍니다.
시112:1-2절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우리들 자신도 잘되어야겠지만, 우리들의 후손, 아들·딸들도 번창하고 잘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했으니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가정들을 건설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②물질의 축복입니다.
13-14절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바로 이것이 물질 축복의 말씀입니다. 경제적인 번영을 말합니다.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백곡은 모든 종류의 곡식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농사가 풍년이 되어서 수많은 종류의 곡식이 백 배의 결실을 맺고 창고마다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화폐의 최고의 가치는 곡식이요, 짐승입니다. 이 말을 지금 우리들의 형편으로 이야기하자면 통장에 예금이 가득하고 돈지갑이 묵직하다는 말입니다.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원문에는 '천이 되고 만이 되며'입니다. 천천과 만만은 천 배, 만 배입니다. 백 배가 아닙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중에서는 백 배가 제일 큰데, 그것보다 더 큰 천 배, 만 배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천 배, 만 배로 번성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살리십시오! 기도를 살리십시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을 해 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천 배, 만 배로 축복을 주십니다. /믿/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수소는 짐을 실어 나르는 동물입니다. 그러니까 농사가 잘되어 수소가 곡식을 많이 싣고 바쁘게 나르는 것을 말해 줍니다.
종합해 보면, 이 말씀은 여러분의 창고가 가득 넘치고 일하는 것마다 하나님께서 풍족하게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께서 영적인 축복을 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물질적인 축복, 재물의 축복도 허락해 주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R. A. 토레이 목사님은 하나님 앞에 축복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내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이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만 왔다갔다하고 일부분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뜻과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께 완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축복 받는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③삶의 질이 높아지고 평안의 축복이 옵니다.
14절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대적이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침략을 받지도 않고 전쟁도 없는 평화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십니다. 부강하게 하시고 담대하게 하셔서 감히 도전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에 패하고 가난하고 굶주리고 흉년이 닥치면 길거리에서 울고불고하는 슬픈 일이 많을 텐데,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적의 침노하는 일을 없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적들의 마음을 다스리사 침략할 마음이 사라지게 하십니다.
▶적을 방어하는 일도 없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일어나지 못하게 막으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피해를 입는 일도 없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눈동자 같이 품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의 사랑 확증입니다(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여인이 젖 먹는 자식을 잊지 못함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그가 택하신 자녀를 결코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은 악하여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잊어버릴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잊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말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변함 없이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는 은총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 이것은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이요, 날마다 기억하시는 사랑이요, 사랑하는 이를 품고 있는 변치 않는 사랑입니다.
이 영원한 사랑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였습니다. 택한 백성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사망을 이기는 부활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랑은 주고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는데 우리도 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가 수지 맞습니다.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잠8:21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함이니라"
시122:6-7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지어다"

 

3. 하나님의 절대 보호를 의미합니다.

 

요10:28절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백성을 멸망시킬 수가 없습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도를 그 손안에 두시고 지키시는 절대 안전 보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창조자의 손입니다. 생명의 손이요, 축복의 손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성경 곳곳에는 주의 손이 나를 붙들어주신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의 손이 나를 지키시고, 주의 손이 나를 건져내시고, 주의 손이 나를 높이시고, 주의 손이 나를 어루만진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철저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성도가 성도답게 살 수 있는 현주소는 하나님의 손바닥입니다. /할/
어떤 선전에 보면 '내 손안에 있소이다'라는 광고가 있는데 실로 성도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 있는 이스라엘을 어찌 바벨론이 빼앗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손에 새겨진 성도를 세상이, 사단이 어찌 멸망시킬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복된 사람들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우리의 이름을 지을 수가 있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우리를 멸망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놀라지 마십시오. 근심하지 마십시오.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겨진 성도는 강하고 담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32:10절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내가 너를 지키어 보호하려고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네가 보기에는 앗수르가 그 성벽을 무너트리고, 바벨론이 그 성벽을 훼파하여 버렸지만, 그러나 그 성벽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막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가 나의 방패가 되신다'고 했습니다.
시121:8절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출입'은 밖으로 나가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말하는데, 한 사람의 전 생활 영역에서의 모든 삶과 일들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출입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계획하는 모든 일들을 영원히 지키고 보호하시며 복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면, 가정에 들어와도 화목하고 평안하고 나가서 일하는 직장과 사업장에서도 형통하고 성공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고 축복과 은총을 주십니다.

 

4.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는 말씀은 곧 내가 너를 내 손에 붙잡고 사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직분을 주시면 감사하게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받은 직분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나다.
딤전1: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충성심을 보시고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두 기둥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우편의 기둥은 야긴입니다. 야긴의 뜻은 '저가 세우리라'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둥을 흔들리지 않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담임목사만 교회의 대표라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은 모두 다 성림교회의 야긴 기둥입니다.
▶좌편의 기둥은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란 '여호와의 능력으로 영원히 지켜 주시리라'는 뜻입니다. 보아스는 기둥에게 주시는 능력과 힘입니다.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에게 힘이 되는 것이 많습니다. 지식, 재물, 권력, 경험, 직장, 건강, 자녀가 출세하는 것도 힘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일시적입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변합니다.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능력이 되십니다. 힘의 근원입니다. 창조의 힘입니다. 통치의 힘입니다. 구속의 힘입니다. 심판의 힘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은 성령입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되리라"

 

▶교회 기둥의 기준 몇 가지만 생각해 보자!
①기둥 같은 일꾼은 믿음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능력이고 힘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②기둥 같은 일꾼은 영혼 구원을 기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천하보다 귀하게 보시는 영혼을 살린다는 것은 큰 일입니다.
③기둥은 곧아야 합니다. 집을 짓는데 꾸부러지고 비뚤어진 나무는 쓸데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기둥도 정직하고 신실해야 합니다.
시84:11절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④교회 기둥은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기둥은 죽은 나무여야 합니다.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나무가 아무리 튼튼하고 좋은 나무라 할지라도 서 있는 나무로는 기둥을 세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세상 정욕의 뿌리에서 베임을 당해야 하고, 세상일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결국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교만도, 이성도, 고집도, 아집도, 자랑들도 죽여야 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죽은 자가 영원히 삽니다. 주님도 십자가에 죽었기에 3일만에 부활하실 수 있었습니다. /할/
⑤교회 기둥은 하나님 말씀으로 견고해야 합니다.
계3:10절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말씀 앞에 바로 서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해서 하나님 안에 견고히 서십시오.
⑥기둥은 주춧돌에서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기둥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둥은 마음이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나가는 사람, 어디 가서나 마찬가집니다. 오늘 여기 모이신 모든 성도들은 우리 교회의 기둥이 될 재목들입니다. /믿/아멘!/

5. 결론적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①내가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롬3: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②내가 성도된 것도, 직분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엡3:7절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③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삼하7:29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딤전1:14절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④결과적으로 내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롬14: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한해를 보내면서! 또 한해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하나님을 잘 이해하고 그 사랑을 날마다 체험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2004년 12월 26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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