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손을 높이 들자! (출 17:8-16)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어요! 헌신생활을 통해서 가까워질 수 있고, 봉사와 봉헌생활을 통해서 가까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빠른 방법은 기도를 통해서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의 가장 큰 무기요 자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모두다 기도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도 기도가 얼마나 중요했으면 산상수훈에서 8복을 말씀하신 뒤에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마6: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남편과 아내가 앉아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면 사랑과 이해가 깊어질 수 있듯이,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또 기도는 하나님께 내 마음을 내어놓고 상의하고, 호소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이 기도가 더욱 절실히 요구됩니다.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쌓여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고싶은 말도 많고, 호소하고 싶은 말도 많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쌓인 것들을 털어놓지 않으면 병이 되고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들이 기도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요, 또 이 말씀 속에는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기도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길을 가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출17장에는 두 가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에 마실 물이 없다는 이유로 모세를 원망하고 대들며 항변한 사건입니다.
2절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절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고 대들었습니다.
이 때 모세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4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모세는 묵묵히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서 부르짓었다는 말은, '눈물을 짜며, 땀을 짜며, 피를 짜며, 생명을 짜며'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기도 위에 응답이 있고, 역사가 따릅니다. 모세가 생명을 걸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6절 "너는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백성에게 마시게 하라"
■첫 번째 사건은 모세의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져 일단락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첫 번째 사건에서 몇 가지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①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에 길들여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걸핏하면 원망을 일삼았습니다. 물이 없다고 원망했고, 길이 험하다고 원망했고, 심지어 하나님이 매일 내려주신 '맛나'가지고는 영양실조에 걸린다며, 무화과며, 석류, 과일이 없다고 원망했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원망했습니다.
원망에 길들여지면 원망이 많아지고, 감사에 길들여지면 감사가 많아지는 법입니다. 긍정에 길들여지면 인생만사를 긍정적으로 관망하고 해석합니다 만은, 부정에 길들여지게 되면 모든 것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듣고, 보고, 말하게 됩니다.
그래서 습관이라는 것은 귀합니다. '로버트 슐러'목사님은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원망은 부정적인 입술의 고백이고,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래서는 아니 됩니다. 부정대신 긍정, 원망대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이 주는 의미는 원망대신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교훈입니다.
본문의 배경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지금 모세가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자기 마음대로 통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물이 없습니다. 로비딤은 호렙산 가까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곳은 사막지방입니다. 우리한번 상상해 보십시다! 광야에서 2백명이 넘는 회중이 물이 없어 목말라 쩔쩔매고 있다면 그 인도자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런데 여러분! 모세는 처음부터 물이 없는 광야인 것을 알고 떠났습니다. 모세는 호렙산 근방에서 40년 동안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막에 물이 없는 것이 정상이지요. 그런 물이 없는 곳으로 지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가 많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의 믿음을 한번 보아야 합니다. 물이 없는 곳으로 인도하면서도 하나님이 어떤 것이라도 해결해 주실 줄 믿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인도한 줄 믿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이 사막을 통해서 가도록 한 이유가 인간의 힘으로 해결 못할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해 주실 것을 전제로 하고 보내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그런 식으로 훈련시키고 인도하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자기 마음대로 르비딤에 장막을 쳤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고 따랐는데 물이 없는 곳으로 인도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신앙의 갈등을 느낍니다. 아니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하였는데 결과가 '마실 물이 없다니'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사는데 어려움이 온다고 원망하지 말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으로 더 큰 축복을 예비해 두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반석에서 생수를 내어 주셨습니다. /믿/
그러니까 원망대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르비딤 반석에서 생수가 터진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 생수의 강물이 넘쳐나게 될 줄 믿습니다. /할/
②모세와 다툰 사건은 하나님을 시험한 사건입니다.
2절 상반절에 "모세와 다투었다"고 했고, 2절 하반절에서는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에게 '왜?' 라며 덤비는 것은 하나님께 덤비는 것입니다. 모세를 반역하고 시험하는 것은 하나님께 반역하고 시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반역하면 되는 일이 없습니다. 또한 주의 종을 배신해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복 받는 비결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가르치는 자를 기쁘게 하십시오!
시37:4절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갈6:6절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히13:17절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③모세의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4절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이 고백은 하나님이 아니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기도는 내 계획과 내 방법과 내 힘이 전무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신앙행위입니다.
그러니깐 계획도 방법도 희망도 없는 백지 상태에서 하나님의 희망을 기다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통체로 맡기는 것이 신앙생활이요, 기도입니다.
벧전5:7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다 맡겨 버리라! 이 말씀을 꼭 붙잡아야 합니다. '다'라는 말은 '전부, 전체, 모조리, 남김 없이'의 뜻입니다. 그리고 '버리라'라는 말은 '남겨두지 말고, 미련을 가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모세처럼 통체로 맡기고 기도하면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나옵니다. /믿/
■이제 르비딤에서 두 번째 사건이 오늘 본문의 배경으로 아말렉과의 전쟁입니다.
8절 "때에 아말렉이 이르러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첫 번째 사건인 마실 물이 해결된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여기서 때가 중요합니다. '때에' 아말렉이 언제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까? 생수를 마시고 이제 좀 쉬어보자! 한 숨 돌리고 있을 때 공격해 왔습니다. '르비딤'은 '쉬는 곳'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깐 이스라엘이 쉬고 있는 동안에 아말렉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의 기도가 쉴 때 공격해 옵니다. 믿음이 쉬고, 봉사가 쉬면 사단은 여지없이 쳐들어옵니다.
■여기서 잠깐! 아말렉에 대해 알아봅시다. 아말렉이 누구인가?
창36:15-16절에 보면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에서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호전적인 민족입니다. '아말렉'이란 뜻은 '전쟁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신25:17-18절을 보면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족속이라고 말합니다.
아말렉은 영적으로 세상적이고, 육신적이고. 사탄적인 것을 상징합니다. 이 민족은 싸움을 해도 비겁하게 합니다. 이스라엘 진영 후미진 쪽을 습격해서 약하고 피곤한 자들을 먼저 치고 그 다음은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을 포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민족을 먼절 시키라고 사울 왕에게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민24:20절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본문의 배경을 한번 상고해 봅시다. 이스라엘 진영이 이제 갈증을 해결하고 쉬고 있는데 아주 싸움을 좋아하는 아말렉이 습격해 온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이제 부득불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전투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전투부대를 편성하여 출전시키고 자신은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싸우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여기서 산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성전을 상징합니다. 시121:1-2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른 노래입니다.
■9절의 보면 그 당시 배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이렇게 해서 전쟁이 시작됐는데 한참, 싸우다보니 이상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파축지세로 공격해 오던 철통과 같은 아말렉 군대가 이스라엘 앞에서 우수수 추풍낙엽에 날리는 낙엽처럼 뒹굴며 후퇴하고 맙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이 피곤해 손을 내리면, 이번에는 도망가던 아말렉 군대가 다시 뒤 돌아와 역습으로 공격해 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크게 패하게 됩니다.
정말 희한한 일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크게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고...
먼저 본문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한다는 영적인 의미는, 믿음의 승리의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전쟁에서 모세는 최신 무기를 동원한 것입니다. 최신 무기라 해도 총, 칼로 무장한 것이 아니고 총, 칼보다 더 무서운 기도의 무기입니다. 결국 모세는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계속 손을 올리고 기도함으로 이 전쟁을 이스라엘의 대 승리로 끝내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손은 귀합니다.
'두 손을 모아서 기도하는 유명한 그림'을 아마 보셨을 겁니다. 제목이 '기도하는 손'입니다. 종교개혁당시 독일의 유명한 화가 '알브레이트 듀러'라는 사람이 그린 그림인데, 그 그림의 사연이 있습니다. '듀러'는 본래 시골에서 태어났고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그림 공부가 하고 싶었는데 가난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 한 동네에 사는 친구가 같이 그림공부를 하자며 둘이서 고향을 떠나 도시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도시에 나온 이 두 소년은 먹고살기에도 급급해서 마음대로 그림공부를 할 수 없게 되자, 듀러의 친구가 이렇게 제안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둘 다 공부를 할 수 없으니 내가 너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서 너의 뒷바라지를 할테니까 네가 그 동안 열심히 미술 공부를 하고, 네가 어느 정도 되었을 때 네가 다시 일을 하고 내가 다시 미술공부를 하면 두 사람 다 제대로 미술 공부를 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일을 할 테니까 네가 먼저 공부를 해라. 이렇게 약속을 하고, 그래서 듀러는 친구의 그 수고와 희생 위에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듀러가 화가로서의 재능을 발휘해나가 드디어 인정받는 화가가 되었을 때, 그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친구를 찾았을 때, 그 친구는 듀러를 위해 일하다가 그만 손에 뼈마디가 굵어지고 섬세함을 다 잃어버려 도무지 그림을 그릴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듀러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 친구는 방안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그림을 그릴수가 없어요! 제몫까지 내 친구 듀러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축복해 주세요! 저는 평생 그 친구를 도우며 기도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듀러는 충격과 감동을 받고 그 자리에서 그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그림이 유명한 '기도하는 손'입니다. 본래 이 그림은 사도의 손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가 나중에 기도의 손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한 친구가 유명한 화가가 되기까지는 한 친구의 희생과 협력과 협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기도하는 손이야말로 정말로 귀한 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본문 속에 승리의 비결을 구체적으로 찾아봅시다!
①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섰습니다.
모세는 산꼭대기에 오라가면서 만원경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고, 전략용 컴퓨터를 가지고 올라간 것도 아닙니다. 또는 007에서 나오는 마지막 버튼을 정착한 가방을 들고 산으로 간 것도 아니고, 그는 오로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 지팡이는 애굽에서 열 가지 기적을 행한 지팡이요, 반석을 쳐서 생수를 터뜨린 지팡이며, 홍해를 갈라서 건너가게 한 지팡이입니다. 그러나 본래 그 지팡이는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칠 때 사용했던 별 가치 없던 지팡이였습니다.
그런 지팡이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기 시작하면서 지팡이의 이름과 용도가 달라졌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로 불리던 것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떼를 인도하던 지팡이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기적의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른 막대기보다 못한 내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혔을 때, 나도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쓸모 없다든지 별 볼일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자학하지 마십시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도구가 되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모두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기도의 산꼭대기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모세가 만난 하나님을 우리도 만나야 합니다. /할/
②손을 들면 이기도 내리면 졌습니다.
11절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우리가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모세의 손이 어떤 신통력이 있거나, 요술 손이기 때문에 이긴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모세가 손을 들었다고 하는 것은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했다는 소리입니다. 모세의 올린 손은 기도의 표상이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손입니다.
시28:2절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성도가 기도의 손을 높이 들면, 영이 이기고, 기도의 손을 내리면 육신의 소욕이 이깁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기도의 손을 높이 들자'입니다. 기도의 손을 높이 들면, 우리의 모든 영적인 삶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손이 내려오면, 막히고, 무너지고, 답답합니다. 믿으십니까?
■그럼, 손을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몇 가지로 생각해 봅시다.
첫째, 항복을 의미입니다.
권총을 겨누는 사람 앞에서 두 손을 번쩍 드는 것은 항복의 의사표시입니다. 적군도 두손들면 죽이지 않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항복해야 합니다. 내 고집과 욕심대로 살았던 것, 내 힘과 지식 믿고 살았던 것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러분! 손을 들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항복한다는 뜻으로 '천부여 의지 없어 손들고 옵니다' 찬송가사가 있듯이 죄인이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굴복하는 태도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절대로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믿/
둘째, 이제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저는 부족합니다. 오직 주께 맡기오니 책임져 주옵소서!" 베드로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당부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하나님께 맡길 때 역사 하십니다. 인간이 그 문제를 안고 있으면 절대로 함께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맡기면 그땐 그 문제가 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맡기지 않으면 언제나 내 문제로 남습니다.
셋째, 도움의 요청입니다.
두 손을 드는 것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조난 당한 사람이 무인도에서 손을 흔들며 소리지르는 것은 구조신호입니다.
넷째, 충성의 의미입니다.
서약씩 때 보면 손을 들고 서약합니다. 결혼식이나, 군에 입대 할 때 선서식도, 장교로 임명될 때 손을 들고 선서식을 합니다. 대통령 취임식 때도 손을 들고 서약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충성의 서약입니다. 앞으로 여집사 취임식 때도 이런 선서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도 서약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하겠다는 서약입니다. 충성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우리의 모든 직분도 하나님이 우리의 충성심을 보고 주신 것입니다. 딤전1:12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마25:23절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계2:10절 하반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다섯째, 승리의 확신입니다.
이긴 사람은 두 손을 들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만세를 부릅니다.
여섯째, 두손들고 기도하는 것은 축복의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 마지막 순서에 두손들고 축도로 끝납니다. 강복입니다. 주의 종이 축복하는 것은, 모세의 손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손과 같습니다.
■본문에서 모세가 올린 두 손은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하나님께 항복하기 위해 든 손입니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하기 위해 번쩍 든 손입니다. 그리고 기필코 승리하리라는 확신으로 올린 손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 당시 이스라엘과 똑 같은 위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당시 전쟁의 위기에 있었다면, 우리 나라는 경제의 위기에 쳐해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6.25 다음가는 위기를 맡고 있습니다.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까 백성들의 개인 생활도 어렵습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 살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IMF때보다 더 어렵다고 말합니다. 툭하면 파업이고, 요즘 왜 사람들을 납치해서 협박합니까? 현역 형사가 그런 일을 했습니다. 경찰도 이젠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노태우정권 초기현상과 똑같다고 진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드 때문에 벌어진 비극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앞으로 실업자들이 더 많이 나오고 불황까지 겹쳐 더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포기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오는 모세와 아론과 훌 처럼 하나님 앞에 두손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셔야 나라도 살고 개인도 살 수 있습니다. /믿/
11절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물론 아론에게도 손이 있고, 훌에게도 손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의 손과 아론의 손을 비교해 봐야 합니다.
모세의 손은 지도자의 손이요. 아론과 훌의 손은 섬기는 자의 손입니다. 학자들은 모세의 손을 큰손으로, 아론과 훌의 손을 작은 손으로 비유했다.
여기서 모세의 손은 교회 담임 목사의 손이요. 아론과 훌의 손은 목사를 돕는 성도들의 손으로 비유합니다. 주의 종의 손은 여러분을 축복하는 손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모세의 손도 귀한 손입니다 만은 모세를 도왔던 아론과 훌의 손이 더 귀한 손입니다.
12절을 보면, 여기 모세의 손은 능력의 손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피곤하면 내려지는 별 것 아닌 인간의 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손이 피곤해서 내려지면 이스라엘이 위기를 맡게 된 것입니다. 이때, 아론과 훌이 같이 합력하여 모세의 손을 받치고 있었기에 이스리엘이 대 승리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아론과 훌의 도움이 없었다면 모세 혼자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론과 훌의 손이 더욱 빛나게 됩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님이고 훌은 갈랩의 아들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훌은 모세의 누나인 미다안의 남편이라고 말합니다.
■아론과 훌의 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조명해 봅시다.
①섬기는 손입니다.
학자들은 이 손을 '돕는 손, 보조하는 손, 협조하는 손, 위하는 손'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서는 먼저 모세의 능력의 큰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론과 훌의 작은 손이 없었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아론과 훌의 섬기는 손이 있었기에 아말렉 전투에서 크게 이길 수 있었습니다.
주석가 '알버트 벵크'는 말하기를, '이때 모세만 있었다면 이스라엘에게는 대단히 불행스러운 날이었을 것이다. 아론과 훌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작은 손, 섬기는 손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손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목사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도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워 지는 것입니다.
②봉사하는 손입니다.
교회는 이런 봉사하는 손길로 통하여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러분! 우리의 손이 교회와 천국을 위해 사용된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우리모두 교회와 천국을 위해 쓰임 받는 아름다운 손이 됩시다.(할)
③교제하는 손입니다.
교회는 절대 친교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 한 몸 된 것은 서로의 교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손을 잡는 다는 것은 애정의 표시입니다. 여기서 또 손을 잡는다는 것은 협조와 이해입니다.
여러분! 손과 손을 마주잡는 교제는 참 아름답습니다. 친구가 손을 잡고, 부부가 손을 잡고, 성도가 손을 잡고 교제하는 모습을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교회는 이런 손이 많아야 합니다. 주의 종 혼자는 절대로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아론과 훌같은 성도들이 합력 하여 기도하고, 봉사하고, 충성할 때,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들은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또 하기도 합니다. '목사도 사람인데 뭐?'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목사도 사람인데 '제 까짓게 뭔데' 비꼬는 소리요, 또 하나는 이해하고 협조하는 말입니다. '주의 종도 사람이지요! 얼마나 피곤하고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이 말은 애정이 있는 말이요, 도와 드리려고 하는 뜻입니다. 말을 똑 같은데 액센트가 어디에 붙느냐, 끝에 무엇이 오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여러분! 관심 있는 말로, 애정있는 말로 '주의 종도 사람인데 내가 좀 도와 줘야지' 협조하고 섬기는 아론과 훌의 손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입니다. 르비딤의 전쟁에서 모세는 아론과 훌의 협력을 받아 두 손 높이 들고 기도 하다가 아마렉을 전멸하고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알고 그 곳에 제단을 쌓고 그 단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 라고 15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전쟁터에서 이스라엘을 항상 승리하시게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승리의 깃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고 따르는 자에게 언제나 승리의 깃발이 되어 주십니다.
시20:5절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여호와 닛시 승리의 비결은 첫째도 기도요. 둘째도 기도요. 셋째도 기도입니다. 우리모두 기도의 손을 높이 듭시다. 자신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우리는 몇 가지 이유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의 손을 들어야 합니다.
①우리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 고후4장에 있는 대로 우리 인간은 질그릇과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강해집니다.
②기도하면 모든 악의 세력은 물러갑니다. 아말렉도 물러갔습니다. 걱정과 염려, 미움, 어두움, 시험도 물러갑니다. 기도하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도 넘어섰습니다. 다윗도 넘어섰고, 모세도 넘어섰으며, 야곱도 넘어섰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하면 우리에게 오는 이 모든 적을 하나님이 물리쳐 주십니다. 여러분! 어떠한 문제 앞에서라도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의 손을 들면 넉넉히 감당할 줄로 믿습니다.
③기도는 만가지 일을 하게 합니다. 혼자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데 기도하면 만가지 손이 움직입니다. 기도는 만가지 손의 역사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창고를 여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④기도 안 하면 열매가 없습니다. 기도 안 하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할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자에게 그 길이 열려지고 형통하게 됩니다.
⑤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담는 그릇입니다.
⑥기도가 없으면 영적인 연약함이 옵니다. 기근이 옵니다. 예배에 싫증이 나고, 가정에도 권태가 옵니다. 좋은 것을 계속 좋게 누리지를 못합니다. 그 마음이 영적으로 연약해져 있습니다.
⑦마귀는 기도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기도를 못하게 훼방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줄인데 마귀는 이 줄을 끊으려고 사생결단을 합니다. 마귀가 이것을 끊어버리면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가장 큰 지혜요, 아이디어요, 실력이요, 지식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의 음성을 같이 듣겠습니다. 막9: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마21: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2003년 6월 22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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