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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칠언(架上七言)의 진리! (눅 23:33-43)

by 【고동엽】 2022. 2. 3.

가상칠언(架上七言)의 진리! (눅 23:33-43)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생명을 말살하려는 죽음과 투쟁을 합니다. 잘 살아 봐야 7-8십을 살아가는데 한시도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종국에 가서는 죽음의 포로가 되어버리고 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주에서는 아무리 빠른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죽음에 지고 맙니다. 그 때문에 인간은 '케에르 케고르'가 말한 것처럼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죽음을 물리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세상 사람들의 죽음을 극복하고 살아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우리는 지난주간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주간의 주님의 스케줄을 보면, 주일에는 주께서 아직 아무도 태워 본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하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게 됩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야로 믿어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찬송하며 그를 영접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마21:1-11, 요12:12-19)
■월요일에는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아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 모의하기 시작합니다.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며 서기관과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의 간교한 질문들에 답변하시며 성전의 파괴와 대 환란, 종말의 징조들, 제자들의 박해받을 일과 재림 등을 예언하시며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 가롯유다가 유대인에게 예수님을 팔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이날입니다.(마26:1-5, 막14:1-11)
■목요일은 유월절 저녁입니다. 예수님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려고 제자들에게 준비할 것을 명하시고, 그 때에 서로 누가 터 크냐는 논쟁을 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며 서로 섬겨야 할 것을 친히 보여주셨고 배반자 유다를 지적하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세 번 예수를 부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모든 인류의 죄의 잔을 받으십니다.
가롯 유다가 무리와 함께 올라와 예수님을 체포하고, 그 밤에 대 제사장 가야바에게, 빌라도에게, 헤롯에게, 다시 빌라도에게 넘기어지게 됩니다. 이 때가 금요일 새벽쯤이라고 학자들은 밝히고 있습니다.(마26:47-56)
■금요일에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십니다. 유대인들의 요구로 바라바는 놓임을 받고 대신 예수는 사형선고를 받아 그날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고 아리마데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 지내게 되십니다.
■그리고 주일 새벽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또 갈릴리 바다 등에서 여러 제자에게 나타나 예언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언덕을 히브리어로는 골고다라고도 하고 라틴어로는 갈보리입니다. 골고다는 해골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이곳을 '골고다(해골)'라고 부르게 된 유래가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①이곳 지형이 두개골 형상과 같은 뾰족한 바위에서 지명의 유래가 있다고 말합니다.
②예로부터 죄수들의 사형 집행장으로 사용된 까닭에 해골들이 널려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해골들이 굴러 있는 무덤과 같다고 해서 골고다라고 불렀습니다.
③유대인의 전승에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신 아담의 무덤이 그곳에 있다고 하는 '오리겐'의 주장에 따라서 '인류의 조상적부터 무덤이었던 곳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골고다의 유래는 어느 것이 정확한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해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십자가에 달려 계셨습니다.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3마디 말씀을 하셨고, 오후 3시가 가까웠을 때 마지막 4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목소개!

 

1. (눅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용서의 종교입니다.

아주 옛날에는 돈 많은 사람이나 세도가 당당한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자기가 맞을 매를 종이나 매 품팔이를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신 맞게 하고 그 삯을 주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그 죄의 삯은 곤장이었는데, 죄는 자기가 짓고 곤장은 가난하고 낮은 백성들로 맞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는 인간이 지었지만, 그 죄 값을 에수님의 십자가로 대신했습니다.

①예수님에게는 속죄권(사죄의 능력)이 있습니다.
마9:2절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에게 명하시기를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즉시 나음을 받고 돌아간 것을 보게 됩니다.
마26:28절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엡1:7절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고전1:18절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②원수들의 죄까지도 용서하신 사랑입니다.
주님의 이 용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판결을 내린 빌라도와 당시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와, 은 30에 스승을 팔아먹은 가룟 유다의 죄까지도 다 용서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들의 죄를 다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은 의인들입니다.

③이제 우리도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선생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주님은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마18:21-22).
바울은 골3:13-14절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고 가르쳤습니다.

 

2. (눅23:43)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기독교는 천국가는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 좌편과 우편에는 각각 한사람씩의 강도가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들은 큰 죄를 범하여 당시에 최고형인 십자가형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달린 행악자 중 하나가 예수님을 비방하여 말하기를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이 정말 구원자라면 당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요!" 하면서 비꼬듯 말했습니다.
그때에 우편 강도는 그 사람을 꾸짖으며 말하기를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당연한 값을 당하는 것이지만 이 분이 행하시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면서 다시 예수님을 향하여 간구하기를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요청했습니다.
우편 강도는 자기의 죄를 명확히 알았습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자기 죄에 자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죄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이 강도는 신관이 확실합니다.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느냐?" 구원에 확신도 있었습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그때 예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이 강도는 예수님과 함께 최초로 낙원에 간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강도는 누구를 가르칩니까? 이 강도는 바로 우리이고, 나입니다. '내가 언제 강도 짓을 했느냐?'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은 죄가 강도가 지은 죄 보다 더 크고 더러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인생들이 다 강도와 같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도라도 다 같지 않습니다. 한 강도는 회개해서 구원을 얻었고, 한 강도는 예수를 부인하다가 지옥 음부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요, 천국 가는 종교요 영생의 나라에 가는 종교입니다.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 기독교는 효의 종교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높이 달려 있습니다. 그 아래에서 울고있는 여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죽기까지 따르겠다던 제자들은 보이지 않고 유일하게 어린 요한이 있을 뿐입니다.
역시 여자들은! 아니 어머니는 용감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위대합니다. 그 곁에 있는 여인들은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서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부터 여성도들이 큰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도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회 여전도회에서 파송을 하고 그들의 소유로 선교사와 한국의 교회들을 섬겼던 사실을 우리 한국 교회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친과 사랑하는 제자들이 곁에 선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리고는 그 제자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시니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서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셨다고 했습니다.
요한은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언덕에 자기의 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요한은 마리아를 11년 동안 모시었다가 마리아가 평안히 세상을 떠난 후에야 온 세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떠났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여자여!" 라고 하셨는데 흔히 우리는 왜 예수님은 그의 어머니를 존칭어를 쓰지 않고 "여자여!" 라고 했는지 우리 문화권에서 보면 이상합니다.
요2:절에서도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그러나 원어의 뜻은 최대의 존경어로 귀부인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지 않는 불효 막심한 자들이라고 비난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모르는 말씀입니다. 돌아가신 분에게 진수성찬을 차려서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으므로, 살아 계실 때 잘 공경하라는 종교입니다.
사실 우리 기독교처럼 실질적인 효도를 강조하는 종교는 없습니다. 십계명 중에 인간에게 주신 가장 첫 번째 계명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입니다(출20:12).
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장수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하는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때가 육시 우리의 시간으로 12시, 정오가 될 때,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 즉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는데, 제 구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를 지르시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를 해석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의 이 큰 고통은 육신적인 고통이기보다는 영혼의 고통이요,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버림당하는 고통의 절규입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버림받는 일이란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내 속에 있는 죄로 인한 이런 절규가 있어야 하고, 죽어 가는 생명을 바라보며 불쌍히 여기는 절규가 있어야 하고, 사명을 바로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영혼의 안타가운 절규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자신을 죽일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격이 새로워지고, 영적인 능력이 임합니다.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우리들에게 요구하고 계십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절규는 사실은 우리를 위한 절규였습니다. 우리 대신 부르짖은 절규였습니다. 내가 버림을 받아 비명을 질러야 하는 나의 비명을 대신 주님이 지르신 비명입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하는데 주님이 나대신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이 버리심을 받음으로 우리가 찾음이 되었고 주님이 끊어짐을 당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에 되었습니다.
루터는 이 사실을 묵상하면서 "어째서? 어째서?"라고 부르짖다가 "나 때문에, 나 때문에"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그 사실이 너무나 놀라와서 그는 벼락에 맞은 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고 고백했습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달을 때 우리는 벼락에 맞는 듯한 충격도 받게 됩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기도 때문에 우리는 찾음이 되었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되었습니다.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목마름에 종교입니다.

①목마른 인생을 위하여 주님이 대신 목말라 주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인생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다 목마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마다의 갈증을 이기지 못해서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며, 자신의 갈증을 해결할 샘을 파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돈의 샘을 파고, 어떤 사람은 권력의 샘을 파고, 어떤 이는 지식과 명성의 샘을 팝니다. 또 어떤 이는 쾌락의 샘을 파고, 어떤 이는 유행의 샘을 파고 있지만, 그러나 세상에서 주는 물은 그 어떤 것으로도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맛보았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하면서 인생의 목마름을 탄식했습니다.
렘2:13절 "내 백성이 두 가지를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인생의 갈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떠난 것이 절대적인 갈증의 원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갈증을 느끼고 있는 인간에게 근본적인 갈증의 해소를 위하여, 대신 목말라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목마르다!" 하고 외치신 이 순간은 참 생명의 물줄기를 터뜨려는 순간입니다. 자기의 몸을 터뜨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줄기를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말씀하셨습니다.
사55:1절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말씀했습니다.

②목마른 인생은 예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요4장에 보면, 몹시도 목마른 사마리아 여인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다섯 명의 남자와 살아봤지만 참 만족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인생의 목마름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여인은 우물에서 주님을 만남으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생명의 샘을 발견했습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기쁨을 찾은 것입니다.
암8:11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아모스는 외쳤습니다.
요4:14절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내가 목마르다"는 주님의 목마름을 토로한 말씀이지만, 사실은 우리 인생들의 목마름을 대신한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마름을 대신 당하셨고, 그 대신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부어 주셨습니다.

 

6. 완성의 종교입니다. "다 이루었다!"(요19:30)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이 왔다가 갔지만 누구하나도 "나는 다 이루었다"라고 승리의 개가를 부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후회하며 아쉬움을 남기면서 이슬처럼 사라질 뿐입니다.
'나폴레옹'도 '세인트 헤르나'섬에 유배에서 "나는 칼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으나 망했고, 예수는 칼 한번 쓰지 않고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였다. 나는 실패자요 예수는 영원한 승리자라는 고백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완성했다. 끝이 났다. 마무리 지었다. 마쳤다'란 어원입니다. 이는 모든 것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완성이요(롬13:10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의 완성이요, 구원의 완성이요, 모든 것의 완성입니다.
우리네 인생은 100년을 살아도 "다 이루었다" 는 완성자가 없지만, 주님은 짧은 생애를 사시면서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이기신 십자가의 길을 우리가 믿음으로 가기만 하면 우리 모두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요16:33절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골2:15절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요일5:4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우리의 믿음이니라"
나는 할 수 없고, 나는 다 이룰 수 없어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이룰 수가 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축복을 채워 주시고, 병든 사람에게는 건강으로 채워 주시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성공으로 채워 주십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 채워 주시고, 무능한 사람에게는 능력으로 채워 주시며, 절망한 자에게는 소망으로 채워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고 담대히 외쳤습니다.

 

7. 의탁하는 종교입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신 후에 운명하셨습니다. 주님도 모든 것을 마치시고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이 뜻은 '아버지의 마음대로 내 영혼을 주장 하십시요'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 바로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 네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믿음이고 겸손입니다.
고전15:57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자기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 드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스데반을 대신해서 드린 말씀이었고, 야고보를 대신해서 드린 말씀이었고, 베드로를 대신해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미리 주님이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 때문에 우리도 세상을 떠날 때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도 박윤선 목사님도 세상을 떠날 때 이 말씀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아멘!/ (2003년 4월 9일 수요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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