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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시험! (마 4:5-7)

by 【고동엽】 2022. 1. 27.

믿음의 시험! (마 4:5-7)

 


우리 신앙인들이 가장 잘 걸리기 쉬운 시험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배고픔에서 오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찾아오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윤리적으로 찾아오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신앙적으로 찾아옵니다. 이 시험은 아주 현실적인 시험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걸려 들기 쉬운 그런 시험입니다.
그런가 하면 미듬의 시험이라는 것이 또 있습니다. 이 믿음의 시험은 배고픔에서 오는 시험보다 더 교묘하게 찾아오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은 특별히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시험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믿음의 시험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본문을 보면 사탄이 먹는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지만 실패하고 다시 예수님을 높은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높은 꼭대기 위에 예수님을 세워 놓고 사탄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뛰어내리라. 네가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천서를 보내서 네 발이 상하지 않도록 너를 보호하리라.'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네가 만일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서 뛰어내려 보라.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너를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을 것이다.' 하고 유혹하는 제안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뛰어내려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만일 그 말에 예수님이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다면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사탄이 말한 것처럼 천사들이 와서 뛰어내리는 예수님의 발을 사뿐히 받아서 안전하게 땅에 내려놓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곳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감탄을 하면서 과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어 주고 박수를 보내 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말대로 하면 예수님은 사탄의 교묘한 시험에 그만 걸려 드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만일 여기서 예수님이 사탄의 말을 거절한다면 사탄은 분명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탄의 말을 따라야 합니까, 아니면 거절해야 합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험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이 경우와 흡사한 경우에 처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다가 어느 날 높은 낭떠러지 위에 서서 아래를 쳐다보는데 문득 이상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번 뛰어내려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뛰어내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저를 지목했습니다. 너는 예수를 믿으니까 뛰어내려도 괜찮을 거라고 합니다. 그당시 동네에서 교회에 다니는 아이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서 이상 야릇한 만용 같은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이때 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자.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자. 그러면 이 아이들이 내 모습을 보고 교회에 나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는 '믿음으로'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습니다.
저는 그렇게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좀 봐 주실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위험한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진한 마음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때 다친 허리가 지금까지도 영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 이 같은 유혹을 받을 때가 참 많습니다. 몇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 한 가족이 이웃 사람들과 신앙 토론을 하다가 이 믿음의 시험에 걸렸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자꾸만 무엇인가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믿는 사람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자 하고는 농약을 마셨습니다.


마가복음 16:18을 보면 '믿는 사람에게는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는 말을 이 사람이 글자 그대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자 하는 마음에서 독약을 마신 것이 그만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자면 믿음의 시험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웠습니다. 그 성전은 물론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그 성전 아래는 기드론 골짜기가 있는데 그 골짜기까지의 높이가 자그만치 750m나 되는 낭떠러지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사가 와서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사뿐히 받아 줄 것인데, 만일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감동할 것이냐 그겁니다. 그러면 당장 너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따를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설득력 있는 유혹입니까?
독약을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동네 사람들이 금방 예수를 믿을 것인데, 그러면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고 나는 뭔가 보여 줘서 좋고 일석 이조 아닙니까? 그래서 독약을 마신 것입니다. 이것을 믿음의 시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초월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신비함이나 기적만 일어나야 그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은 대부분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고 전개되고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 대다수 신앙인들은 신앙 생활을 하면서 흔히 범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꾸만 평범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섭리를 무시하고,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들이 있기 때문에 이같은 믿음의 시험이 자꾸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몇 해 전에 어느 집을 심방 갔는데 아들이 병들어 누워 있습니다. 부모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예배를 드리며 간절히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다 끝났는데도 그 어머니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어디 용한 목사님 없습니까?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진정한 기도 속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은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적같이 나타나 고쳐 주는 것만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 한은 교묘하게 찾아오는 이 믿음의 시험을 이겨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믿음의 시험에 가장 쉽게 걸리기 쉬운 경우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병들었을 때 나타나고 또 하나는 무슨 일을 시작할 때 나타납니다.

우리들이 살다 보면 질병에 걸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처치 방법이 되겠습니까? 그때는 몇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병이 나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성경는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무지하게 일해서 병나게 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힘 주실 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여러분들에게 권고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시험 들기 꼭 좋은 생각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약을 먹지 않고 고치는 것이 믿음 있는 사람의 태도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병이 낫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유의 능력은 그렇게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약을 먹지 않고 참습니다. 또 그것을 믿음이라고 자위를 합니다. 그 결과 어떤 경우는 병이 자연 치료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만 되다면 시험이고 뭐고 아무것도 있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혹 믿음으로 고친다고 하다가 병이 오히려 약화되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고치지도 못하고 병세만 악화되면 실망을 하게 되고 마침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지경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의 시험인 것입니다. 약 한 봉지면 쉽게 고쳐질 병인데도 믿음으로 고친다고 해서 시기를 놓치고 병세가 악화가 되어서 고생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목사님은 감기가 걸렸는데 기도해서 고치지 않고 약을 먹었다고 교회에서 문제가 되어서 결국 교회를 사임하신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약을 먹으면 믿음이 없다고 하고 안 먹으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됩니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서양 선교사님의 부인은 평생 약을 먹지 않기로 서약을 하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약을 먹지 않고 살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죽는 것도 하나님의 뜻인데 생명을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 놓고 살자고 다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삶을 살되 책임감 있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생을 경건하게 살고, 음식을 탐하지 않고, 정도를 이탈하지 않고 성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가 병들어서 어느 날 하나님이 부르시면 죽는다 하는 각오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신앙적인 확실한 신념에서 살아간다면 말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적어도 그런 사람은 살고 죽는 문제로 인해서 스스로 시험이 되거나 고민하는 일은 없습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믿음이 기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해보았더니 회복이 불가능한 병으로 진단이 났습니다. 치료를 하면 몇 달은 더 살 수 있고, 항암제를 쓰면 고통은 당하고 괴로울지라도 몇 달 혹은 1년 정도 생명이 근근이 연장될 수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때 본인이 확고한 신앙적인 신념에서 그렇게 몇 달 더 살기 위해서 구차하게 사느니 비록 몇 개월 살지 못할지라도 그 동안만이라도 하나님께 못하한 믿음이 생활로 살고, 또 기도 생활로 살아가다가 깨끗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겠다는 각오로 일절을 마다하고 고요히 살아가겠다면 저는 그것이 제 부모라 할지라도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은 내가 다름 아닌 신앙인이기 때문에 한 순간이라도 구차하게 살려 하지 않고 때를 알고 준비하면서 살아가다가 하나님께서 살려 주시면 더 살고 불러 가신다면 기쁨으로 가겠다는 각오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결단을 내리는 것도 괜찮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런 태도 속에는 믿음의 시험 따위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에게는 신앙 생활을 하되 올바른 신앙관이 먼저 세워져야 합니다. 신앙관이 올바로 세워지기만 하면 그 뒤에는 건전하 생활이 뒷받침되고, 건전한 신앙이 육성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관이 잘못 세워지면 신앙 생활에 질서가 흔들립니다. 그리고 신앙이 신비주의로 빠지게 되고 극단으로 치우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이 가장 많이 걸리기 쉬운 시험이 바로 이 병들었을 때 나타나기 쉽습니다.

 

3. 그런가 하면 우리들이 또 시험에 걸리기 쉬운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일을 시작하려 할 때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아주 쉽게 나오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시작하자'는 말입니다. 이 말 속에는 다분히 시험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믿음을 말할 때는 대부분 '질서나 법칙이나 상식'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일을 벌려 놓고 보면 어떻게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들이 무슨 일을 할 때는 믿음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하고 믿고 일을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렇다고 우리들이 터무니없는 일을 하면서도 무조건 하나님이 어떻게 해주시겠지 하는 그런 식의 일을 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상식과 질서와 책임을 강조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믿음과 만용을 혼동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먹기만 하면 아무것이나 먹어도 배탈도 나지 않게 하시고 체하지도 않게 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믿음만 있으면 차를 험하게 몰고 다녀도 사고도 나지 않고 안전하게 하시는 그런 하나님은 더더욱 아니십니다.
사람이 매일같이 기도만 하고 앉아 있다고 해서 매일같이 먹을 것을 날라다 주시는 그런 하나님도 아니십니다. 사람이 부실 건물을 지었는데도 그 집 주인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너지지도 않게 떠받쳐 주고 계시는 그런 하나님도 아니십니다. 더더구나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게 한다고 농약을 마셔도 아무 일도 없게 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이것은 모두 오해들을 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질서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만들어 놓으신 자연의 법칙이나 질서를 무시하면서까지 섭리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도 그 법칙을 무시하지 않으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 손오공이나 타잔처럼 어느 날 갑자기 건장한 청년으로 하늘로부터 뚝 떨어뜨리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자신이 만들어 놓으신 생리적인 자연 법칙을 그대로 적용해서 우리들과 똑같이 잉태하는 과정을 거쳐서 어린아이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생활에도 이 상식과 질서와 자연의 법칙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4. 그래서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기적만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 오셔서 조용하면서도 자상하게 일하시고, 섭리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시는 그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고 느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신앙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모두가 유익하고 모두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언제나 말씀대로 살면 후유증이 없습니다. 실패가 없습니다. 시험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 생활을 하는 데도 이 같은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시험에서 헤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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