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물주와 조물주 창14:17~23, 사31:1~3
소돔 왕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조카 롯을 구출해서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포로로 잡혀 갔던 소돔성 백성들은 다 되돌려주고
거기서 얻은 전리품은 아브람 네가 가지라고 말합니다. 당연한 얘기죠.
그런데 뜻밖에도 아브라함은 소돔왕의 제안을 사양합니다.
자기와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청년들의 몫은 다 챙겨줬습니다.
그러나 자기 몫은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참 대단합니다.
자기는 '하나님 때문에 복 받았다 부자되었다 형통하였다'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소돔 왕 때문에 복 받았다, 부자 되었다' 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면서 소돔 왕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합니다. 참 대단한 자존심입니다.
저는 그런 마음이 참 부럽습니다.
그렇게 살기는 참 쉽지 않지만, 생각이 참 바릅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걸로만 먹고 살아야 돼!'
나는 그 마음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의 믿음이고 자존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싶겠습니까!
부자만 된다면, 잘 살게만 된다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길을 통해서라도 그런 길이 온다면
한 번 눈 딱 감고, 모른 척하고, 그 부자 되는 기회를 한 번 잡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죄악된 본성 아닙니까!
▲저는 반려견을 좋아해서 개를 많이 길었는데요.
옛날에는 집 지킴이 목적으로 집에 개를 길렀습니다.
그래서 도둑이 도둑질을 하려면 미리 며칠 전 쯤에 와서
동네 개들을 죽입니다.
독이 든 고깃덩어리를 뿌려주면 개들이 그걸 덥석 받아먹고 죽죠.
그러면 개가 없는 틈을 타서 도둑이 침입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좋은 개를 기르는 주인은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기 개를 훈련 시킵니다. 자기 친구들과 짜고는 금계랍이란 약(식물)이 있는데
그 약을 고기덩이에 잔뜩 발라서 친구들이 자기 개에게 던져주게 합니다.
그런데 개들이 처음엔 그 고깃덩어리를 덥석 받아 먹었는데
먹어보니까 아주 쓰거든요.
그런데 주인이 주는 고깃덩어리는 맛이 좋은데,
남이 주는 고깃덩어리는 먹으면 좋지 않다는 경험이 개에게 학습됩니다.
그래서 그 개가 학습이 되면 그 이후부터는
누가 뭘 줘도 개는 절대 아무거나 받아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둑으로부터 자기 생명을 지킵니다.
그런데 (새벽부터 이런 말씀 드리기에 죄송합니다만)
어쩌면 우리가 그런 반려견만도 못한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평생 성도로 살고. 또 교회 직분자로 살면서도
좋은 개는 그게 주인이 주는 건가/ 남이 주는 건가
그것을 구별해서 자기 생명을 지키는데
우리는 우리가 받는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세상이 주는 것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그 액수가 작으면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 먹어!' 하겠지만
만약 그 액수가 크면
그게 누가 주는 것인지 굳이 물어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알면 힘들잖아요. 그런 게 우리의 탐욕입니다.
▲제가 막 쉰살이 넘어갈 때 동안교회를 사임하고 높은뜻숭의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주위로 이상한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김동호 목사가 큰 물주를 잡았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어느 학교를 빌려서 갔었는데 그 학교 이사장님이 큰 부자였거든요.
그 분의 호의로 거기서 교회를 시작하게 된것은 맞는데
'돈도 한 백 억 받았다'는 헛소문이 돌게 된 것이지요.
별 거 아니지만 제가 당시 교회 홈페이지 글을 하나 써서 올렸습니다.
제가 그 글의 제목을 "큰 물주와 조물주" 이렇게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큰 물주를 잡았다고 말을 하는데, 사실입니다.
제가 1백 억 정도 받았을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저는 사실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보장받았습니다.
... 그런데 그 물주의 이름은, '큰 물주'가 아니라 '조물주'이십니다."
그때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아야 살지, 사람이 돈 좀 있다고, 힘(권세) 좀 있다고,
그걸 붙잡다 보면 그것은 썩은 동아줄을 붙잡는 것과 같아서 결국 승리하지 못 할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조물주를 믿는데
그까짓 큰 물주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런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은
결국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제 아들이 포항의 한동대에 진학 했습니다.
이 아들은 공부를 좀 잘하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명문대를 갈 수 있는 학생이 한동대를 간다며'
대학입시원서를 잘 써 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은 '아버지가 보니까 한동대가 참 좋더라'는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한동대에 입학했습니다.
첫 학기는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아주 학교를 만족스러워했습니다.
한동대는 아침 7시에 새벽기도가 있었는데 아들은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교수님들도 무척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인 저도 '아들을 한동대에 보내길 잘했다'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한 학기가 끝나고 방학 때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아버지인 제게 주섬주섬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재수하면 안 될까요?'
저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한 터라 순간 당황했습니다.
평소에 학교에 대해서 이것저것 불만을 말했더라면
'재수할지도 모르겠다' 예상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늘 학교를 자랑하고 학교생활을 좋아하고 교수님들을 존경하던 아들이
갑자기 재수를 하겠다니까 제가 깜짝 놀라서 왜 그러냐고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대학생이 되면서 사회생활 해보니까
'한국은 학연, 지연, 선배가 이끌어주는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동대에 가보니까, 다 좋은데, 선배가 없었습니다.
아들이 신설대학 3년 차로 입학했는데, 그러니 사회에 진출한 선배가 거의 없었죠.
그리고 아들도 서울에 와서 고등학교 동기들을 만나면
'너는 어디 갔냐?'
'나는 한동대 갔다!'
그러면 모르는 아이들은 입시에 실패해서 그냥 지방대에 간 줄로 압니다.
실제로 한동대 위상이 그렇지는 않은데, 그들은 모르니까요.
그래서 조금 아들 마음에 자존심이 상한 면도 있었나 봅니다.
그러니까 재수해서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에 가보겠다고
아버지인 제게 얘기를 꺼낸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버지인 제 의견을 물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네 인생이니까 네가 기도 하고 신중히 결정해라!
그래서 네가 기도하고 응답 받아서 결정하면 거기에 나도 따르겠다!'
저희는 목사 집안이지만 기도원 찾아다니면서 기도 하는 그런 것은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집에서 자기 방에서 혼자 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리 아들은 생전 가지도 않던 기도원에
자기가 수소문해서 한 곳을 정해서
사흘 정도 올라가서 기도 하겠다고 작정하고 배낭을 메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틀 만에 자기 나름대로 응답을 받았다며 내려왔습니다.
우리 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응답은 이사야 31:1~3절이었습니다.
사31: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 말씀에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며'라고 나옵니다.
애굽이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은 아닙니다만
그런데 우리 아들이 현재 다니던 학교에 대해서 약간 우려했던 점은
'선배를 잘 만나야 된다, SKY를 나와야 내 앞길이 환히 열리지'라는,
그런 마음이 약간 있었던 것이었죠.
그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입니다.
그렇지만 아들 마음에,
'도움을 받으러 하나님께 내려가야지, 내가 선배를 잘 만나서 그런 도움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야 되겠다!' 하는 응답을 받았던 것입니다.
제가 아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아빠는 네가 (SKY) 학교 득 보는 것 싫어! 네가 하나님 득만 봐야지!
하나님이 복을 주시면 장차 (ㅎㄷ) 학교가 네 득을 보게 될 거야!'
▲우리는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라고 찬송을 늘 부릅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라고 찬송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엉뚱한 데서 복을 너무 많이 찾고
사탄이 가짜로 우리에게 복을 준다고 유혹해도
그 고기 속에 독이 있는 줄도 모르고 덥석덥석 받아먹다가
패가망신하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브라함은 정말 믿음의 조상 답습니다.
'소돔 왕 너 때문에 부자 되었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으로 충분해! 잘 될 수 있어!'
'아브라함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고 나옵니다. 창13:2
그렇게 살아도 아브람은 가난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조금 가난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만 먹어야 건강하고 형통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상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진짜 복은 하나님만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면 억만금이 생겨도 외면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은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이 땅에서 우리가 사랑하고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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