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전 목사 성령론(백주현 목사)
들어가는 말 김홍전 박사의 책과 그의 가르침들은 개혁주의의 진수라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그의 책은 거의 60년대와 70년대 개혁주의의 부재의 시대에 강설된 그러한 강론들이다. 70년대는 오순절 주의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그렇다고 장로교에 개혁주의적인 신학이 바르게 서있다고 보기 어려운 때에 개혁주의 적인 강설들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연구의 주 재료가 된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은 1982년에 강설된 설교들이다. 그의 성령에 대한 이해는 독특한 어떤 것을 나타내기 보다는 성경적 이해를 가지고 강설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책의 구성을 보면 이렇게 나타난다. 제1강으로 보혜사인 성신 2강은 성신의 내주 그리고 3강은 선신의 일반적인 역사와 특별한 역사 그리고 4강은 성신의 가르침과 신자의 장성 그리고 5강은 성신의 유기적인 역사 그리고 6강은 성신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의 예 1.2.3으로 1에서는 베드로의 예이고 다음은 사도바울을 2와 3강을 통하여 강설한다. 이를 보다 시피 성령의 중생이나 성령 세례의 의미보다는 성령의 신격과 내주와 그의 보혜사의 사역들을 통하여 성도들의 일상적인 삶에 지도하시는 성령하나님의 모습을 보도록 한다. 1. 보혜사인 성신의 사역들 그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법을 알고 살아가는 것, 즉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 생활을 하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힘주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이 바로 성신이라고 말한다.1) 그리고 그는 성령의 또 한 가지의 사역으로 성부의 창조와 작정과 섭리 그리고 성자의 구속을 말하면서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적용하는 분으로 성신”2)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김홍전 박사는 성령에 대하여 성신으로 읽으려 노력한다. 그는 “성신 이란 말은 하나님의 인격을 구체적으로 표시할 때는 신(神)이라는 말이 영(靈)이라는 말보다는 더 근접한 말이 되는 까닭에 그렇게 쓰이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신으로서 하시는 영적인 역사에 중점을 두지 않고 삼위(三位)의 한 위로서의 인격적인 존재를 중시하기에 그렇게 쓴다3)”고 성신의 인격성을 염두에 두며 그것에 따라 김홍전 박사는 성신이라는 말로 주로 사용한다. 그는 보혜사이신 성신을 강설하면서 성신이 보혜사이신 것으로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바울의 예를 따라 예수님의 영(행16:7)이라고도 혹은 요한복음을 통해서 보해사(요16:7-8)라고 정의한다. 그는 보혜사 (파라클레이토스(paravklhto")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하시는 것처럼 하시된 훨씬 광범위하게 훨씬 미묘한 데까지 하신 것이다. 육신을 입고 활동하시지 않고 온전히 신으로 하시니까 사람의 속에까지 다 미쳐서 일을 하시는 것이다.4)라고 하며 성령의 보혜사로서의 사역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요14:16절을 통해서 예수님이 은혜를 지키시는 분이지만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올 때에 그 많은 사람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훨씬 능력 있게 다 돌아보실 그 보혜사가 그들에게로 오실 것이요 그분은 모든 임무를 남김없이 행하실 것5) 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성신께서 그 역할로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또 주장해 주시고 힘주신다는 것입니다.6) 그는 “우리 안에 한번 와 계신 성신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고 잘못한다고 해서 다시 떠나가시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은혜시대에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신 도리입니다. 구약에서 다윗이 ‘주여, 나에게서 성신을 거두지 마소서’(시51:11)하고 기도했을 때에는 인격자이신 성신님의 내재의 문제를 논한 것이 아닙니다. ‘성신의 능력으로 감화되어 있는 사실을 나에게서 빼앗아 가시면 아주 무능하고 저능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내게 무슨 은사가 있어서 어떻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리겠습니까? 죄를 많이 지었더라도 나를 이 자리에 두신 이상 그 일을 할수 있게 성신을 거두지 맙소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함부로 신약에 붙여서는 안된다7) 고 그는 말한다. 그는 성령의 구약적인 임재와 신약의 내주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신약의 내주는 취소됨이 없는 내주이지만 구약에서는 범죄함으로 성령이 떠나시거나 사역이 끝나는 경우 떠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성신은 떠나지 않지만 성신을 소멸치 말라(살전5:19)는 말씀대로 우리가 성신을 소멸하면 내주는 하실지라도 근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신을 근심케 하지 말라(엡4:30)8)을 말해준다. 보혜사이신 “성신은 은혜를 보존하시기 위해서 보혜사로서 한번 중생의 새로운 생명을 주시면서 그 시간에 믿는 자 안에 와 계시면 그 다음부터는 영구히 우리 안에 거시는 것입니다.9) 김박사는 성령을 보혜사로서 거룩한 삼위 하나님이시고 또한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 성도들에게 보혜사로서의 사역을 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필역하고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다. 성령에 대한 이해는 가장 크게 보혜사로서 사역을 이해라고 있는 것이다. 2. 성(신)세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논쟁에 휩싸이면서 주장하는 바가 아니라 간단하게 그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그는“예수가 성신으로 사람 속에 세례를 주사 새로운 생명이 그에게서 바르게 활동하게 힘주시고, 동시에 성신께서 확인을 하시고 인 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완전한 인봉을 해서 아무것도 다시 그 사람들을 빼앗아 갈 수 없게 보장을 하시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과 실질, 그 모든 특권이 그에게 임하는 것을 이제 확증해 놓는 것이다”1) 라고 말합니다. 김 박사는 성령의 세례는 예수가 주시는 것이고 중생과 인침과 보증의 차원에서 이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성신의 세례가 거룩한 교회의 형성에 있어서 확실하게 증거해 주시는 일을 하시기 위하여 세례를 주신다는 사실도 있고 거기에 더불어 충만도 있다2)고 말한다. 그런데 성신의 세례와 성신의 충만을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한 증거로 (고전3:1-2)3)이들은 성신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신이 충만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는 본다. 그리고 성신의 세례가 “제2의 은혜, 제3의 은혜하면서 딴 소리를 자꾸하는데 이런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비치하시고 받게 하시는 은혜를 제 맘대로 나누어 가지고서 차별을 만드는 잘못된 짓입니다.4)그래서 성신의 세례는 능력이나 은혜로 보지 않고 오직 중생과 내주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3. 성신의 역사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의 분명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 신약에서는 구약에서보다 훨씬 더 성삼위 하나님의 거룩하신 역사나 양상에 대하여 밝히 알 수 있도록 가르치셔서 우리가 그 경영하시는 내용을 믿고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 예로 성자 예수님께서 특색 있게 하신 일은 구속의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구속에 필요한 일들을 완성하시고 구속이라는 은혜의 사실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부께서 현저하게 우리에게 보이신 일은 크신 작정 하에 창조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신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개개인이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령한 몸을 성화해 가는 일을 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드님이 이미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시고 비치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여러 가지 은혜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주셔서 실제로 그런 은혜를 누리고 살수있도록 역사합니다.5) 그리고 성령은 독특한 한 인격(person), 즉 품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아버지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아드님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성신님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그 특색 있는 구체적인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6) 성신의 일반적인 역사를 논하기 전에 먼저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먼저 분명하게 논증을 하는 것은 성령이 어떤 능력으로 전락하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꼬집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1) 성신의 일반적인 역사 김 박사는 성신의 일반적인 사역으로 먼저 “성신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쌓아 놓으신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해 주시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7) 더불어 성신은 은혜를 내려 주시고 보존하게 하시고 발전하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8)그리고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저촉을 빨리 받지 않도록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법칙과 경륜하에서 유지하시고, 흑암가운데서 파멸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신다.9) 이러한 것들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일반적인 사역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박사는 일반 사역의 목표는 “이 세상을 무제한 유지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곧 성신님의 특별한 역사의 대상이 되는 자들의 복리와 보존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성신께서 그 주위에 늘 역사 하”10)는 것입니다. 즉 일반적인 역사의 이유도 그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에 대한 이해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성신의 특별한 역사 성령의 특별한 사역으로 김 박사는 “성신은 우리를 성화시키시고 향상시키시고 결실 하도록 힘주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역사가 성신의 적극적인 역사입니다. 이런 역사는 그리스도의 일과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3-14) 이렇게 하나1)라고 말을 한며 믿는 자들이 살아가며 하는 일이 바로 성령의 도우심임을 말을 합니다. 그럼으로 성신께서 하나님의 재창조된 새로운 생명체들 위에 역사하는 특별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는 특별한 성령의 사역을 중생과 성도안에서의 내주라고 보고 있다. 특별한 역사는 디도서 3장 5절에서 7절을 통하여 중생의 성령의 사역이 특별한 사역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전6:19-19절의 말씀인“말씀과 고전10:31의 말씀을 통해서 성신님이 우리안에 거하시사 우리 몸의 움직임 자체로도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하나님을 증시하는 것이고 적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하게 하신다2)는 것으로 성령의 특별사역을 정의하고 있다. 성신의 특별한 사역으로 성신이 성도안에 내주하시면 충만하여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사 열매를 맺게하는 것이다. ⑴ 성신의 충만 그의 성신의 충만에 관하여서 성령의 특별한 사역으로서 성신이 성도 안에 내주하시면서 역사하는데 “인치셨다 해서 거룩한 교회의 형성에 있어서 확실하게 증거해 주시는 일을 하시고, 세례를 주신다는 사실도 있고, 또한 충만이라는 사실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김 박사는 성령 충만에 관하여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5:18-19)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리의 의사로 저해되는 일이 없이 성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 안에서 충만히 역사하시도록 하라는 것인데 이런 역사는 우리의 의식을 박탈해 버리고 당신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가 입신한 사람같이 딴소리를 한다든지 갑자기 기상천외한 생각을 한다든지 하는 양상으로 나타는 것이 아니다. 성신께서는 유기적인 역사를 한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 즉 나의 지적인 작용이나 정의적인 작용에 성신이 함께 작용해서 나타난다. 결국 내가 노력하고 내가 찾고 내가 논리하고 내가 결론을 얻고 내가 행동하고 나아가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아주 정상적으로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성신 충만을 마치 사람의 의식을 박탈해 버리고 무슨 신통력이 들어와서 야단을 내는 것같이 생각하고 무슨 입신한 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3)고 그는 말을 한다. 성령충만이라는 것이 우리의 건전한 지성과 감성과 의지와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일상생활속에서의 내주와 인도하심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더불어 김홍전 박사는 계속하여 말하기를“성신 충만이란 어떤 특수한 종교 귀족에게만 임하는 독특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성신께서 당신의 의사대로 어떤 사람에게 갑자기 어떤 특별한 능력, 소위 요즘 말하는 카리스마를 주셔서 일을 하시려고 할 때는 보통 사람 이상의 어떤 독특한 현상이 드러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충만이라 할 때는 그런 카리스마가 먼저 뛰쳐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품성 즉 그의 도덕적인 성격이 그리스도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이 먼저입니다. 또한 “성신 충만이 무식하던 사람이 갑자기 유식해진다든지 모르던 것을 무부통지(無不通知) 한다든지 그렇게 금방 변해서 이상하게 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기의 그릇안에서 이루어 지는 일입니다”4)라고 말한다. 즉 성령의 충만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격과 지식과 능력을 통하여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고 더불어 은사적인 부분으로 은사적인 부분들은 특별한 경우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일반적인 것에 비중을 놓고 보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에 관하여 은사적인 부분에 치우치는 당시의 현상에서 그것을 어떤 특수한 것으로 이해하면서 일반적인 인도와 가르침에 중심을 놓지만 이 부분에서 잘못 이해하여서 은사적인 것이 특수한 것이고 이 특수한 것이 특수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특수한 것보다 일반적인 것에 더 큰 비중을 놓고 있다는 것을 알자. 그래서 그는 “충만이라는 말은 그릇에 물을 가득히 부었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우리의 그릇이 작으면 작은 대로 가득히 차는 것이지 작은 그릇이 갑자기 세 배 네 배를 용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지혜의 분량이 있어서 그만큼 충만하게 되고 성신님의 감화가운데서 정상적으로 더욱 자라게 됩니다. 다섯 살 먹은 사람이 갑자기 한 25세나 된 청년과 같이 되어 버린 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성한 정도에 따라서 그가 어린아이면 어린아이 짓도 하는 것이고 연약하면 연약한 만큼만 감당하는 것입니다. 충만하다 해서 갑자기 신통력이 불고 초인이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충만한 까닭에 정상적으로 자꾸 먹고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신께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르치시는 역사를 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손을 잡고 인도하시는 역사를 하십니다. 또 우리 속에 있는 영을 감화시켜서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을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서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해 주시고 나아가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유기적인 역사인 까닭에 성신님이 간구하시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성신의 간구와 더불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의 방도로서 참으로 능력있고 충분한 효과를 내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안에 충만하시사 찬송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5) 김박사는 성령의 충만이 곧 성화가 아님을 알 수 있고 성령의 충만으로 내주함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인도하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개혁주의적인 이해로 보혜사로서의 성령의 사역에 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⑵ 성신의 내주 그렇다면 김박에게 있어서 성신의 사역에서 성신의 특별사역으로 성령의 내주에 큰 비중을 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을 주 내용을 이루게 된 것 같다. 먼저 성신의 내주의 근거에 대한 이해에서 그는“성신의 내주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부활하시사 승천하신 다음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저희에게 보내시겠다고 몇 번이나 그 보혜사에 관해 약속을 하셨습니다.6) 또 구속의 성취로 성령을 보내신다고 보고 있다. 구속의 사역이 성령의 내주의 근거가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또한 성신께서는 한번 오시면 우리 안에 영원히 내주하사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려고 끊임없이 사역을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또 하나의 도리는 우리가 얼마든지 성신을 저항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성신의 하시는 일을 막고 방해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선의 의욕으로, 자기 이상으로 그렇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잘못해서 정욕 때문에 죄를 짓고 성신을 근심케 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기에게 감화하시고 유기적으로 사역하시는 성신의 감화와 가르침에 대하여 생각을 집중해서, 이것이 성신이 나에게 비추시는 도리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당연한 도리이다. 하고 깨달아 가야 할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런 가르침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대하고 오히려 종교적인 열정에 휩싸여서 자기가 생각하는 종교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자꾸 밀어 대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마음이 온유하고 언제든지 순종하는 태도가 아니라 언제든지 자기의 주장 하나가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소멸하는 행위이다”7) 고 그는 말한다. 성신의 내주는 약속된 것이며 또한 인격적인 관계의 내주됨을 설명한다. 그러한 논리에 따라 그는 “내 생각에는 그것이 성신의 뜻 같고 하나님의 뜻 같지만 내가 성신님의 조명과 인도를 받아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성신을 거스리는 일을 하기에 꼭 적당하다는 것이다”8)라고 말한다. 그럼으로 김박사는 성신의 내주는 하나님앞에서 정당하게 믿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해나가려면 성령이 주장하여 주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옛 사람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럼으로 성신의 내주, 성신의 가르침, 성신의 인도, 성신의 증거 혹은 성신 충만의 여러가지 역사를 절대로 기이한 것9)으로 성신의 내주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함에 그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하지 이상한 것으로 이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김박사는 성령의 내주를 생각할 때 내주와 가르침과 인도와 증거, 충만 등 여러 가지 역사를 절대 기이한 종교 현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가장 정상적인 신자 생활에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신의 문제에 대하여 무슨 제2의 은혜, 제3의 은혜 하면서 딴소리를 자꾸만 하는데 이런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비치하시고 받게 하시는 은혜를 제 맘대로 나누어 가지고서 차별을 만드는 것10)은 잘못된 짓이라고 꼬집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성신께서 우리 안에 와 계시다 하는 사실에 늘 주의해야 합니다.11)그리고 그는 와 계신 성신은 얼마동안 계시다가 나가시는 법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신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과 또 신자에게 어떠한 역사를 하시고 특별히 충만하셨을 때의 역사는 어떠하다는 것과 이 세상에 대해서는 어떤 역사를 하시는가? 에 대해서 잘 보여 준다12)고 말하면서 성령을 통한 가르침이 새로운 시각과 생각들을 주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성신의 내주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생명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확신하고 살지, 그것이 과연 그러한가? 의심하고 물러서는 법이 없습니다. 성경은 성신께서 그 안에 내주하신다고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 선생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성신의 전 인줄 모르느냐”고하고 두 번 말씀했습니다.(고전3:16, 6:19) 이러한 하나님 말씀의 약속이나 명확한 선언에 대해서 의심을 붙이지 않고 믿는 것13)이 중요하고 중생한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이 거하는 것과 그것을 아는 것은 말씀을 확신함으로 알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성령으로 중생한 사람들은 새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살지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분으로 성령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이고 그것에 관하여 내용이 바로 성령의 내주이다. 그는 중생한 사람이 새로운 생명에 의해서 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될 때에 그는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적인 사명을 각성하고 사는 생활을 지향하여 나간다. 그 결과 인간의 여러 가지 불완전과 연약함이 있을 지라도 그의 인격이 차츰 고귀하게 변화해 갑니다. 이런 점이 믿지 않는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만약 그가 매일매일 변화하고 성장해서 더 나은 인간성이 발휘되는 모습을 보이지 아니한다면 새로운 생명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는 것이다. 가도하고 찬송 부르고 예배당에 다니는 이런 종교적인 행사로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 그를 비 기독교인이라고 하지 않을 테지만 그것만으로는 새로운 생명이 정상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14) 새롭게 중생한 새 사람에게는 성신이 내주하고 내주함으로 그리스도적인 품성들이 들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서 성령의 내주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적인 변화에 그 목적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김박사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⑶ 성신의 내주의 목적: 그러면 성령의 내주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첫째로 신비적인 결합을 통해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개인 혼자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없기에 공동체를 만들어 교회를 통하여 정당하게 구현되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엡2:10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존재들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로 참조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멋대로 살길이 없는 것입니다. “네가 예수를 믿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네 멋대로 사는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1)즉 이것을 할 수 성령이 내주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 번째 목적은 신자의 성숙과 사명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자가 이러한 성숙을 위하여 전부 드리고 성신님의 인도를 받아 나갈 때 지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두 단계로 나눈다. 첫째는 그가 어떤 일정한 지점까지 장성해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2) 그리고 다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해야 하는 데 이 부분에서 교회가 전투의 교회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이루어 나감에 있어서 말씀을 통한 훈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말한다. 그래서 김 박사는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반드시 성령의 내주와 그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① 성령의 열매 성령의 내주는 그 결과들이 나타나는 데 그 결과로 김 박사는 어떤 사람이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 도도히 애기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성의 장성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깨달을 바탕이 되어 있지 않다.3) 곧 내용을 외우고 어느 정도는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도리를 깨달으려면 그 사람이 성신님의 조명을 받아야 하고 성신님이 주장하시는 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의 풍성에서 자연히 성신의 열매가 나오는 것이다.4) 그래서 성신의 내주로 인하여 성품적인 변화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주하심으로 신자가 만사에 자기의 전적 무능력을 깨달아 알게 한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의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성신을 통해 중생한 사람은 새로운 생명에 의해서 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될 때에 그는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적인 사명을 각성하고 사는 생활을 지향하고 나가게 합니다. 그 결과 인간의 여러 가지 불완전함과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그의 인격이 차츰 차츰 고귀하게 변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② 성신의 가르침과 인도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 인도에 대하여 그는 요한복음 16:13의 말씀으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다” 여기서 인도( oJdhgevw 호데게오)는 안내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고 지적해서 끌고 가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니라”(롬8:14) 그리고 “너희가 만일 성신의 인도하시 바가 되면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갈5:18)에서 말씀에 있는 인도라는 말과 다릅니다. 여기 쓰는 아고( a[gw아고)라는 말은 꼭 붙들고 다른 데로 가지 못하게 끌고 계호해 주시면서 가신다라는 의미이다. 요한복음의 인도라는 말은 영어로 lead라는 말로 번역을 했지만 그 말의 주된 개념은 이것이다. 저것이다. 가르쳐 주다.5)는 말로 이해하면서 성령이 가르치고 인도하시는데 그 내주의 목적을 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이 보혜사로서 인도하는 것은 즉 가르치시는 것이다. ③ 성신의 가르침과 신자의 장성 그는 가르침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의 일생을 정당히 살아가면서 낭비를 하지 않고 열매를 맺는 생활 곧 사명을 완수하는 생활을 하게 하시려는데 있습니다.6) 그러면서 그는 이 성신의 특별한 사역 속에서 또 한 가지를 말하는데 바로 그 사람이 죄에 물들거나 압도당하지 않도록 늘 막아주시는 일, 그를 길러 주시는 일, 일생 그의 할 일을 가르치시며 거룩한 지혜를 주시면서 인도해 나가시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역사를 하실 때에는 유기적으로 역사한다. 즉 사람들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충만한 은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역사하는 것이다.7) 라고 말합니다. 그럼으로 그는 이러한 이해 속에서 성도가 주님의 도를 받아먹고 바로 자라나가는 것이 곧 성신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반드시 자신의 내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바깥에서도 온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에는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8) 고 말을 한다. 4. 방언에 대한 고찰 김 박사는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나타난 3가지 현상들에게 대하여 세 번째로 방언에 관하여 말을 한다. 그는 “여기서 방언은 각 나라 방언으로 이야기 한 것이고 말을 말하는 것이다.1) 그러나 오늘날은 성신을 받았다고 말하며 자기도 모르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하고 성신을 받아서 쓴 신령한 글씨라 해서 연필로 끼적끼적해 놓고 그 소리를 하는 일2)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지금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성신이 충만해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한 결과 듣는 사람들이 듣고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았다.”3) 그러면서 김 박사는 “그 방언 자체로 무슨 의사 전달하고 사상을 전달하는 데 유효하게 쓰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성신께서 이 사람들에게 역사하셔서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케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놀라움을 일으켜서 사람들이 베드로의 연설을 듣기에 필요한 마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 사람들에게 무슨 특이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신 것일 뿐”4)이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성신의 능력의 충만한 역사라는 것이 사람이 입신의 상태에 빠져 들어가는 것같이 생각하고 초연한 도덕적 존재가 되는 것같이 오해하는 데”5) 그러한 것이 아니라 말한다. 그는 이러한 것에 대하여 계시 시대에는 기적이 많이 필요했지만 시대가 지나서 많은 역사적 사실이 증거로 서서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오늘날에는 기적을 특별히 요구할 것이 아니다.6)이런 부분보다 김 박사는 성신의 충만한 것은 “그들의 사상이 순결한데로 향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가 그들을 지배해서 그들이 만난(萬難)을 배제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전진해 나가는 것”7)이다. 라고 말한다. 즉 성신의 강림과 충만은 외적인 은사들이 아니라 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말 이렇듯 김홍전 박사의 성령에 대한 이해는 성령의 중생의 특별한 사역과 그리고 내주와 충만이라는 카테고리에 초점을 맞추며 강론한다. 이것을 강론하는 이유가 당시에 오순절 교회 뿐만 아니라 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이 성령에 대한 이해를 인격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보혜사로서의 지도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빈약한 지식에 반하여 참된 성령의 오심의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자 한 듯하다. 은사주의 혹은 신비적인 것에 관심이 빠진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참 성도들의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이다. 80년대 성장비결주의와 은사주의 운동이 극성을 부리는 때에 이렇듯 중요한 성령의 이해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개혁주의 적인 노선을 따라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성도들을 인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세태에 휘감기지 않고 오직 중요한 개혁주의 사상을 따라 신앙생활하면서 교회의 목회를 이루어진 것에 참으로 놀랍고 그러한 교회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이것은 그러한 개혁주의 적인 사상으로 사역을 해도 시간을 오래 걸리지만 참 근실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 박사는 논쟁적인 관점에서 서술하지 않은 점에서 성도들이 이 성신의 가르침과 인도하신을 읽고 자신의 신앙에 교훈을 삼으면 참으로 미혹되지 않는 신앙으로 굳게 세워시는 것에 목적을 놓고 있다. 먼저 이렇게 간 사람이 있다면 우리도 그러한 사상들과 신학을 가지고 가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참고도서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신, 김홍전, 성약출판사 예수님의 행적 3, 김홍전, 성약. 중생자의 생활, 김홍전, 성약. 교회에 대하여 3,4 김홍전 , 성약 내 증인이 되리라. 김홍전, 성약
들어가는 말 김홍전 박사의 책과 그의 가르침들은 개혁주의의 진수라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그의 책은 거의 60년대와 70년대 개혁주의의 부재의 시대에 강설된 그러한 강론들이다. 70년대는 오순절 주의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고 그렇다고 장로교에 개혁주의적인 신학이 바르게 서있다고 보기 어려운 때에 개혁주의 적인 강설들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연구의 주 재료가 된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은 1982년에 강설된 설교들이다. 그의 성령에 대한 이해는 독특한 어떤 것을 나타내기 보다는 성경적 이해를 가지고 강설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책의 구성을 보면 이렇게 나타난다. 제1강으로 보혜사인 성신 2강은 성신의 내주 그리고 3강은 선신의 일반적인 역사와 특별한 역사 그리고 4강은 성신의 가르침과 신자의 장성 그리고 5강은 성신의 유기적인 역사 그리고 6강은 성신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의 예 1.2.3으로 1에서는 베드로의 예이고 다음은 사도바울을 2와 3강을 통하여 강설한다. 이를 보다 시피 성령의 중생이나 성령 세례의 의미보다는 성령의 신격과 내주와 그의 보혜사의 사역들을 통하여 성도들의 일상적인 삶에 지도하시는 성령하나님의 모습을 보도록 한다. 1. 보혜사인 성신의 사역들 그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법을 알고 살아가는 것, 즉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 생활을 하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하심과 보호하심과 힘주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이 바로 성신이라고 말한다.1) 그리고 그는 성령의 또 한 가지의 사역으로 성부의 창조와 작정과 섭리 그리고 성자의 구속을 말하면서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적용하는 분으로 성신”2)으로 말한다. 그러면서 김홍전 박사는 성령에 대하여 성신으로 읽으려 노력한다. 그는 “성신 이란 말은 하나님의 인격을 구체적으로 표시할 때는 신(神)이라는 말이 영(靈)이라는 말보다는 더 근접한 말이 되는 까닭에 그렇게 쓰이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신으로서 하시는 영적인 역사에 중점을 두지 않고 삼위(三位)의 한 위로서의 인격적인 존재를 중시하기에 그렇게 쓴다3)”고 성신의 인격성을 염두에 두며 그것에 따라 김홍전 박사는 성신이라는 말로 주로 사용한다. 그는 보혜사이신 성신을 강설하면서 성신이 보혜사이신 것으로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바울의 예를 따라 예수님의 영(행16:7)이라고도 혹은 요한복음을 통해서 보해사(요16:7-8)라고 정의한다. 그는 보혜사 (파라클레이토스(paravklhto")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대신해서 예수님이 하시는 것처럼 하시된 훨씬 광범위하게 훨씬 미묘한 데까지 하신 것이다. 육신을 입고 활동하시지 않고 온전히 신으로 하시니까 사람의 속에까지 다 미쳐서 일을 하시는 것이다.4)라고 하며 성령의 보혜사로서의 사역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요14:16절을 통해서 예수님이 은혜를 지키시는 분이지만 예수님이 떠나가신 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올 때에 그 많은 사람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훨씬 능력 있게 다 돌아보실 그 보혜사가 그들에게로 오실 것이요 그분은 모든 임무를 남김없이 행하실 것5) 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성신께서 그 역할로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또 주장해 주시고 힘주신다는 것입니다.6) 그는 “우리 안에 한번 와 계신 성신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고 잘못한다고 해서 다시 떠나가시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은혜시대에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신 도리입니다. 구약에서 다윗이 ‘주여, 나에게서 성신을 거두지 마소서’(시51:11)하고 기도했을 때에는 인격자이신 성신님의 내재의 문제를 논한 것이 아닙니다. ‘성신의 능력으로 감화되어 있는 사실을 나에게서 빼앗아 가시면 아주 무능하고 저능한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내게 무슨 은사가 있어서 어떻게 하나님을 찬송하고 공경하고 백성을 다스리겠습니까? 죄를 많이 지었더라도 나를 이 자리에 두신 이상 그 일을 할수 있게 성신을 거두지 맙소서” 하는 말입니다. 그런 말을 함부로 신약에 붙여서는 안된다7) 고 그는 말한다. 그는 성령의 구약적인 임재와 신약의 내주와 차이가 있다고 한다. 신약의 내주는 취소됨이 없는 내주이지만 구약에서는 범죄함으로 성령이 떠나시거나 사역이 끝나는 경우 떠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성신은 떠나지 않지만 성신을 소멸치 말라(살전5:19)는 말씀대로 우리가 성신을 소멸하면 내주는 하실지라도 근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신을 근심케 하지 말라(엡4:30)8)을 말해준다. 보혜사이신 “성신은 은혜를 보존하시기 위해서 보혜사로서 한번 중생의 새로운 생명을 주시면서 그 시간에 믿는 자 안에 와 계시면 그 다음부터는 영구히 우리 안에 거시는 것입니다.9) 김박사는 성령을 보혜사로서 거룩한 삼위 하나님이시고 또한 예수님의 사역을 이어 성도들에게 보혜사로서의 사역을 하시는 분으로 이해하고 필역하고 성도들을 가르치고 있다. 성령에 대한 이해는 가장 크게 보혜사로서 사역을 이해라고 있는 것이다. 2. 성(신)세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성령의 세례에 대하여 논쟁에 휩싸이면서 주장하는 바가 아니라 간단하게 그는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그는“예수가 성신으로 사람 속에 세례를 주사 새로운 생명이 그에게서 바르게 활동하게 힘주시고, 동시에 성신께서 확인을 하시고 인 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완전한 인봉을 해서 아무것도 다시 그 사람들을 빼앗아 갈 수 없게 보장을 하시는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과 실질, 그 모든 특권이 그에게 임하는 것을 이제 확증해 놓는 것이다”1) 라고 말합니다. 김 박사는 성령의 세례는 예수가 주시는 것이고 중생과 인침과 보증의 차원에서 이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성신의 세례가 거룩한 교회의 형성에 있어서 확실하게 증거해 주시는 일을 하시기 위하여 세례를 주신다는 사실도 있고 거기에 더불어 충만도 있다2)고 말한다. 그런데 성신의 세례와 성신의 충만을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한 증거로 (고전3:1-2)3)이들은 성신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신이 충만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는 본다. 그리고 성신의 세례가 “제2의 은혜, 제3의 은혜하면서 딴 소리를 자꾸하는데 이런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비치하시고 받게 하시는 은혜를 제 맘대로 나누어 가지고서 차별을 만드는 잘못된 짓입니다.4)그래서 성신의 세례는 능력이나 은혜로 보지 않고 오직 중생과 내주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3. 성신의 역사 성삼위 하나님의 역사의 분명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 신약에서는 구약에서보다 훨씬 더 성삼위 하나님의 거룩하신 역사나 양상에 대하여 밝히 알 수 있도록 가르치셔서 우리가 그 경영하시는 내용을 믿고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 예로 성자 예수님께서 특색 있게 하신 일은 구속의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법에 의해서 구속에 필요한 일들을 완성하시고 구속이라는 은혜의 사실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부께서 현저하게 우리에게 보이신 일은 크신 작정 하에 창조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신께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개개인이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령한 몸을 성화해 가는 일을 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드님이 이미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시고 비치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여러 가지 은혜들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주셔서 실제로 그런 은혜를 누리고 살수있도록 역사합니다.5) 그리고 성령은 독특한 한 인격(person), 즉 품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아버지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아드님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성신님도 하나의 인격으로서 그 특색 있는 구체적인 사실들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6) 성신의 일반적인 역사를 논하기 전에 먼저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먼저 분명하게 논증을 하는 것은 성령이 어떤 능력으로 전락하고 있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을 꼬집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1) 성신의 일반적인 역사 김 박사는 성신의 일반적인 사역으로 먼저 “성신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쌓아 놓으신 공로를 우리에게 적용해 주시는 일을 한다고 말한다.7) 더불어 성신은 은혜를 내려 주시고 보존하게 하시고 발전하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8)그리고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저촉을 빨리 받지 않도록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법칙과 경륜하에서 유지하시고, 흑암가운데서 파멸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신다.9) 이러한 것들이 바로 성령 하나님의 일반적인 사역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 박사는 일반 사역의 목표는 “이 세상을 무제한 유지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곧 성신님의 특별한 역사의 대상이 되는 자들의 복리와 보존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성신께서 그 주위에 늘 역사 하”10)는 것입니다. 즉 일반적인 역사의 이유도 그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에 대한 이해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성신의 특별한 역사 성령의 특별한 사역으로 김 박사는 “성신은 우리를 성화시키시고 향상시키시고 결실 하도록 힘주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역사가 성신의 적극적인 역사입니다. 이런 역사는 그리스도의 일과 하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관계없이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16:13-14) 이렇게 하나1)라고 말을 한며 믿는 자들이 살아가며 하는 일이 바로 성령의 도우심임을 말을 합니다. 그럼으로 성신께서 하나님의 재창조된 새로운 생명체들 위에 역사하는 특별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는 특별한 성령의 사역을 중생과 성도안에서의 내주라고 보고 있다. 특별한 역사는 디도서 3장 5절에서 7절을 통하여 중생의 성령의 사역이 특별한 사역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전6:19-19절의 말씀인“말씀과 고전10:31의 말씀을 통해서 성신님이 우리안에 거하시사 우리 몸의 움직임 자체로도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하나님을 증시하는 것이고 적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을 하게 하신다2)는 것으로 성령의 특별사역을 정의하고 있다. 성신의 특별한 사역으로 성신이 성도안에 내주하시면 충만하여서 가르치시고 인도하사 열매를 맺게하는 것이다. ⑴ 성신의 충만 그의 성신의 충만에 관하여서 성령의 특별한 사역으로서 성신이 성도 안에 내주하시면서 역사하는데 “인치셨다 해서 거룩한 교회의 형성에 있어서 확실하게 증거해 주시는 일을 하시고, 세례를 주신다는 사실도 있고, 또한 충만이라는 사실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김 박사는 성령 충만에 관하여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5:18-19)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리의 의사로 저해되는 일이 없이 성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우리 안에서 충만히 역사하시도록 하라는 것인데 이런 역사는 우리의 의식을 박탈해 버리고 당신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가 입신한 사람같이 딴소리를 한다든지 갑자기 기상천외한 생각을 한다든지 하는 양상으로 나타는 것이 아니다. 성신께서는 유기적인 역사를 한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 즉 나의 지적인 작용이나 정의적인 작용에 성신이 함께 작용해서 나타난다. 결국 내가 노력하고 내가 찾고 내가 논리하고 내가 결론을 얻고 내가 행동하고 나아가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아주 정상적으로 움직임이다. 그러므로 성신 충만을 마치 사람의 의식을 박탈해 버리고 무슨 신통력이 들어와서 야단을 내는 것같이 생각하고 무슨 입신한 것같이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3)고 그는 말을 한다. 성령충만이라는 것이 우리의 건전한 지성과 감성과 의지와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일상생활속에서의 내주와 인도하심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더불어 김홍전 박사는 계속하여 말하기를“성신 충만이란 어떤 특수한 종교 귀족에게만 임하는 독특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성신께서 당신의 의사대로 어떤 사람에게 갑자기 어떤 특별한 능력, 소위 요즘 말하는 카리스마를 주셔서 일을 하시려고 할 때는 보통 사람 이상의 어떤 독특한 현상이 드러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충만이라 할 때는 그런 카리스마가 먼저 뛰쳐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품성 즉 그의 도덕적인 성격이 그리스도적인 것으로 바뀌는 것이 먼저입니다. 또한 “성신 충만이 무식하던 사람이 갑자기 유식해진다든지 모르던 것을 무부통지(無不通知) 한다든지 그렇게 금방 변해서 이상하게 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자기의 그릇안에서 이루어 지는 일입니다”4)라고 말한다. 즉 성령의 충만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격과 지식과 능력을 통하여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고 더불어 은사적인 부분으로 은사적인 부분들은 특별한 경우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일반적인 것에 비중을 놓고 보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에 관하여 은사적인 부분에 치우치는 당시의 현상에서 그것을 어떤 특수한 것으로 이해하면서 일반적인 인도와 가르침에 중심을 놓지만 이 부분에서 잘못 이해하여서 은사적인 것이 특수한 것이고 이 특수한 것이 특수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이해를 해야 할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특수한 것보다 일반적인 것에 더 큰 비중을 놓고 있다는 것을 알자. 그래서 그는 “충만이라는 말은 그릇에 물을 가득히 부었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우리의 그릇이 작으면 작은 대로 가득히 차는 것이지 작은 그릇이 갑자기 세 배 네 배를 용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지혜의 분량이 있어서 그만큼 충만하게 되고 성신님의 감화가운데서 정상적으로 더욱 자라게 됩니다. 다섯 살 먹은 사람이 갑자기 한 25세나 된 청년과 같이 되어 버린 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장성한 정도에 따라서 그가 어린아이면 어린아이 짓도 하는 것이고 연약하면 연약한 만큼만 감당하는 것입니다. 충만하다 해서 갑자기 신통력이 불고 초인이 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충만한 까닭에 정상적으로 자꾸 먹고 자라나야 합니다. 그래서 성신께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먼저 가르치시는 역사를 하십니다. 그 다음에는 손을 잡고 인도하시는 역사를 하십니다. 또 우리 속에 있는 영을 감화시켜서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을 확증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서 친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해 주시고 나아가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십니다. 유기적인 역사인 까닭에 성신님이 간구하시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입니다. 성신의 간구와 더불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의 방도로서 참으로 능력있고 충분한 효과를 내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안에 충만하시사 찬송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5) 김박사는 성령의 충만이 곧 성화가 아님을 알 수 있고 성령의 충만으로 내주함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인도하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 개혁주의적인 이해로 보혜사로서의 성령의 사역에 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⑵ 성신의 내주 그렇다면 김박에게 있어서 성신의 사역에서 성신의 특별사역으로 성령의 내주에 큰 비중을 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책에는 성령의 내주와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을 주 내용을 이루게 된 것 같다. 먼저 성신의 내주의 근거에 대한 이해에서 그는“성신의 내주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부활하시사 승천하신 다음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저희에게 보내시겠다고 몇 번이나 그 보혜사에 관해 약속을 하셨습니다.6) 또 구속의 성취로 성령을 보내신다고 보고 있다. 구속의 사역이 성령의 내주의 근거가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또한 성신께서는 한번 오시면 우리 안에 영원히 내주하사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려고 끊임없이 사역을 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또 하나의 도리는 우리가 얼마든지 성신을 저항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성신의 하시는 일을 막고 방해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선의 의욕으로, 자기 이상으로 그렇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잘못해서 정욕 때문에 죄를 짓고 성신을 근심케 하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자기에게 감화하시고 유기적으로 사역하시는 성신의 감화와 가르침에 대하여 생각을 집중해서, 이것이 성신이 나에게 비추시는 도리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당연한 도리이다. 하고 깨달아 가야 할 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런 가르침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대하고 오히려 종교적인 열정에 휩싸여서 자기가 생각하는 종교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자꾸 밀어 대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마음이 온유하고 언제든지 순종하는 태도가 아니라 언제든지 자기의 주장 하나가 마음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소멸하는 행위이다”7) 고 그는 말한다. 성신의 내주는 약속된 것이며 또한 인격적인 관계의 내주됨을 설명한다. 그러한 논리에 따라 그는 “내 생각에는 그것이 성신의 뜻 같고 하나님의 뜻 같지만 내가 성신님의 조명과 인도를 받아서 얻은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성신을 거스리는 일을 하기에 꼭 적당하다는 것이다”8)라고 말한다. 그럼으로 김박사는 성신의 내주는 하나님앞에서 정당하게 믿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해나가려면 성령이 주장하여 주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옛 사람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럼으로 성신의 내주, 성신의 가르침, 성신의 인도, 성신의 증거 혹은 성신 충만의 여러가지 역사를 절대로 기이한 것9)으로 성신의 내주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함에 그 목적을 이루는 것으로 이해하지 이상한 것으로 이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김박사는 성령의 내주를 생각할 때 내주와 가르침과 인도와 증거, 충만 등 여러 가지 역사를 절대 기이한 종교 현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가장 정상적인 신자 생활에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신의 문제에 대하여 무슨 제2의 은혜, 제3의 은혜 하면서 딴소리를 자꾸만 하는데 이런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비치하시고 받게 하시는 은혜를 제 맘대로 나누어 가지고서 차별을 만드는 것10)은 잘못된 짓이라고 꼬집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성신께서 우리 안에 와 계시다 하는 사실에 늘 주의해야 합니다.11)그리고 그는 와 계신 성신은 얼마동안 계시다가 나가시는 법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신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과 또 신자에게 어떠한 역사를 하시고 특별히 충만하셨을 때의 역사는 어떠하다는 것과 이 세상에 대해서는 어떤 역사를 하시는가? 에 대해서 잘 보여 준다12)고 말하면서 성령을 통한 가르침이 새로운 시각과 생각들을 주신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성신의 내주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생명을 받은 사람들에게만 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확신하고 살지, 그것이 과연 그러한가? 의심하고 물러서는 법이 없습니다. 성경은 성신께서 그 안에 내주하신다고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 선생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성신의 전 인줄 모르느냐”고하고 두 번 말씀했습니다.(고전3:16, 6:19) 이러한 하나님 말씀의 약속이나 명확한 선언에 대해서 의심을 붙이지 않고 믿는 것13)이 중요하고 중생한 사람들의 마음에 성령이 거하는 것과 그것을 아는 것은 말씀을 확신함으로 알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성령으로 중생한 사람들은 새 사람이 되고 어떻게 살지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분으로 성령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이고 그것에 관하여 내용이 바로 성령의 내주이다. 그는 중생한 사람이 새로운 생명에 의해서 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될 때에 그는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적인 사명을 각성하고 사는 생활을 지향하여 나간다. 그 결과 인간의 여러 가지 불완전과 연약함이 있을 지라도 그의 인격이 차츰 고귀하게 변화해 갑니다. 이런 점이 믿지 않는 사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만약 그가 매일매일 변화하고 성장해서 더 나은 인간성이 발휘되는 모습을 보이지 아니한다면 새로운 생명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는 것이다. 가도하고 찬송 부르고 예배당에 다니는 이런 종교적인 행사로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다. 그를 비 기독교인이라고 하지 않을 테지만 그것만으로는 새로운 생명이 정상적으로 역사하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14) 새롭게 중생한 새 사람에게는 성신이 내주하고 내주함으로 그리스도적인 품성들이 들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에서 성령의 내주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인격적인 변화에 그 목적이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김박사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⑶ 성신의 내주의 목적: 그러면 성령의 내주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첫째로 신비적인 결합을 통해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낸 것이다. 개인 혼자 하나님의 뜻대로 살수 없기에 공동체를 만들어 교회를 통하여 정당하게 구현되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음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엡2:10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존재들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로 참조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멋대로 살길이 없는 것입니다. “네가 예수를 믿고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고 네 멋대로 사는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1)즉 이것을 할 수 성령이 내주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 번째 목적은 신자의 성숙과 사명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신자가 이러한 성숙을 위하여 전부 드리고 성신님의 인도를 받아 나갈 때 지나가야 하는데 그것을 두 단계로 나눈다. 첫째는 그가 어떤 일정한 지점까지 장성해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2) 그리고 다음으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해야 하는 데 이 부분에서 교회가 전투의 교회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이루어 나감에 있어서 말씀을 통한 훈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말한다. 그래서 김 박사는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반드시 성령의 내주와 그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① 성령의 열매 성령의 내주는 그 결과들이 나타나는 데 그 결과로 김 박사는 어떤 사람이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 도도히 애기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성의 장성이 없으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깨달을 바탕이 되어 있지 않다.3) 곧 내용을 외우고 어느 정도는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거룩한 도리를 깨달으려면 그 사람이 성신님의 조명을 받아야 하고 성신님이 주장하시는 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의 풍성에서 자연히 성신의 열매가 나오는 것이다.4) 그래서 성신의 내주로 인하여 성품적인 변화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주하심으로 신자가 만사에 자기의 전적 무능력을 깨달아 알게 한다.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께만 의지하게 만든다. 그리고 성신을 통해 중생한 사람은 새로운 생명에 의해서 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될 때에 그는 그리스도적인 품성을 드러내고 그리스도적인 사명을 각성하고 사는 생활을 지향하고 나가게 합니다. 그 결과 인간의 여러 가지 불완전함과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그의 인격이 차츰 차츰 고귀하게 변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② 성신의 가르침과 인도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 인도에 대하여 그는 요한복음 16:13의 말씀으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다” 여기서 인도( oJdhgevw 호데게오)는 안내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고 지적해서 끌고 가신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니라”(롬8:14) 그리고 “너희가 만일 성신의 인도하시 바가 되면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갈5:18)에서 말씀에 있는 인도라는 말과 다릅니다. 여기 쓰는 아고( a[gw아고)라는 말은 꼭 붙들고 다른 데로 가지 못하게 끌고 계호해 주시면서 가신다라는 의미이다. 요한복음의 인도라는 말은 영어로 lead라는 말로 번역을 했지만 그 말의 주된 개념은 이것이다. 저것이다. 가르쳐 주다.5)는 말로 이해하면서 성령이 가르치고 인도하시는데 그 내주의 목적을 두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이 보혜사로서 인도하는 것은 즉 가르치시는 것이다. ③ 성신의 가르침과 신자의 장성 그는 가르침의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의 일생을 정당히 살아가면서 낭비를 하지 않고 열매를 맺는 생활 곧 사명을 완수하는 생활을 하게 하시려는데 있습니다.6) 그러면서 그는 이 성신의 특별한 사역 속에서 또 한 가지를 말하는데 바로 그 사람이 죄에 물들거나 압도당하지 않도록 늘 막아주시는 일, 그를 길러 주시는 일, 일생 그의 할 일을 가르치시며 거룩한 지혜를 주시면서 인도해 나가시는 일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역사를 하실 때에는 유기적으로 역사한다. 즉 사람들의 마음을 무시하지 않고 충만한 은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역사하는 것이다.7) 라고 말합니다. 그럼으로 그는 이러한 이해 속에서 성도가 주님의 도를 받아먹고 바로 자라나가는 것이 곧 성신님의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반드시 자신의 내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바깥에서도 온다고 말한다. 이러한 것에는 반드시 성경을 통해서 이루어진다8) 고 말을 한다. 4. 방언에 대한 고찰 김 박사는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나타난 3가지 현상들에게 대하여 세 번째로 방언에 관하여 말을 한다. 그는 “여기서 방언은 각 나라 방언으로 이야기 한 것이고 말을 말하는 것이다.1) 그러나 오늘날은 성신을 받았다고 말하며 자기도 모르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하고 성신을 받아서 쓴 신령한 글씨라 해서 연필로 끼적끼적해 놓고 그 소리를 하는 일2)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다. 지금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성신이 충만해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한 결과 듣는 사람들이 듣고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았다.”3) 그러면서 김 박사는 “그 방언 자체로 무슨 의사 전달하고 사상을 전달하는 데 유효하게 쓰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성신께서 이 사람들에게 역사하셔서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케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놀라움을 일으켜서 사람들이 베드로의 연설을 듣기에 필요한 마음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 사람들에게 무슨 특이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신 것일 뿐”4)이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성신의 능력의 충만한 역사라는 것이 사람이 입신의 상태에 빠져 들어가는 것같이 생각하고 초연한 도덕적 존재가 되는 것같이 오해하는 데”5) 그러한 것이 아니라 말한다. 그는 이러한 것에 대하여 계시 시대에는 기적이 많이 필요했지만 시대가 지나서 많은 역사적 사실이 증거로 서서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오늘날에는 기적을 특별히 요구할 것이 아니다.6)이런 부분보다 김 박사는 성신의 충만한 것은 “그들의 사상이 순결한데로 향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계시가 그들을 지배해서 그들이 만난(萬難)을 배제하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전진해 나가는 것”7)이다. 라고 말한다. 즉 성신의 강림과 충만은 외적인 은사들이 아니라 내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나가는 말 이렇듯 김홍전 박사의 성령에 대한 이해는 성령의 중생의 특별한 사역과 그리고 내주와 충만이라는 카테고리에 초점을 맞추며 강론한다. 이것을 강론하는 이유가 당시에 오순절 교회 뿐만 아니라 많은 교회들과 성도들이 성령에 대한 이해를 인격의 하나님으로 그리고 보혜사로서의 지도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빈약한 지식에 반하여 참된 성령의 오심의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주고자 한 듯하다. 은사주의 혹은 신비적인 것에 관심이 빠진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참 성도들의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성령의 인도와 가르침이다. 80년대 성장비결주의와 은사주의 운동이 극성을 부리는 때에 이렇듯 중요한 성령의 이해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그는 개혁주의 적인 노선을 따라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성도들을 인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리고 세태에 휘감기지 않고 오직 중요한 개혁주의 사상을 따라 신앙생활하면서 교회의 목회를 이루어진 것에 참으로 놀랍고 그러한 교회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이것은 그러한 개혁주의 적인 사상으로 사역을 해도 시간을 오래 걸리지만 참 근실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 박사는 논쟁적인 관점에서 서술하지 않은 점에서 성도들이 이 성신의 가르침과 인도하신을 읽고 자신의 신앙에 교훈을 삼으면 참으로 미혹되지 않는 신앙으로 굳게 세워시는 것에 목적을 놓고 있다. 먼저 이렇게 간 사람이 있다면 우리도 그러한 사상들과 신학을 가지고 가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참고도서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신, 김홍전, 성약출판사 예수님의 행적 3, 김홍전, 성약. 중생자의 생활, 김홍전, 성약. 교회에 대하여 3,4 김홍전 , 성약 내 증인이 되리라. 김홍전, 성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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