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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망증 환자가 성공한다. (사 43;18-21)

by 【고동엽】 2022. 1. 23.

건망증 환자가 성공한다. (사 43;18-21)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사 43;18-21)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점점 건망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건망증에 대한 유모어가 많이 있습니다.

 

건망증이 심한 할머니가 택시를 타고 갈 곳을 기사에게 말했습니다. 조금 후 기사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어디에 간다고 그랬지요?>

택시 기사가 물었습니다.

<할머니! 언제 타셨어요?>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유모어를 하는 것을 자기도 사용하려고 적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적어 두었는 지를 잊었습니다.

 

이것이 건망증입니다..

1. 계단에서 굴렀습니다. 홀홀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내가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지, 내려가고 있었는지 도통 생각이 안난다.>

2. 회사에 가려고 집을 나서다가 잊은 것이 있어서 도로 집으로 왔습니다.

<내가 뭘 가지러 왔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3.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여보세여...,누구시죠?>

4. 자장면 먹었습니다. 다 먹고 나니 자장면 그릇안에 한 입만 베어 먹은 단무지가 7,8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5. 회사 가려고 나서다가 집에 되돌아왔습니다.

<오늘 토요일이지? 나 오늘 회사 안가는 날인데...,>

 

어제 일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은 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남의 잘못을 두고 두고 기억하는 사람도 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붕어의 기억력은 15초라고 합니다.

그래서 낚시꾼들은 낚시를 즐길 수 있습니다. 미끼를 물려고 하다고 혼나고 15초만 지나면 다시 물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물리고 맙니다.

건망증이 가장 심한 것은 물고기입니다.

 

그러나 건망증이 나쁘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과거를 잊을 수록 좋다고 성경은 권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것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빨리 잊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 과거를 기억하여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739 BC부터 680 BC에 활동하였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의 이스라엘은 극심한 혼란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북쪽에는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이 파죽지세로 영토를 확장하며 밑으로 남하 정책을 쓰며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남쪽에는 애급의 샤바코 왕이 이스라엘을 지나 앗수르까지 점령하려고 전쟁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북쪽 앗수르와 남쪽 애급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친 애급파와 친 앗수르파, 반 애급파와 반 앗수르파가 온통 나라를 어지럽게 하였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의지하고 애급을 따르고 앗수르와 왕래하고 있었습니다.

혼란과 어지러움,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는 혼탁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 17-21)

 

이제 하나님께서는 새 일을 행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을 기억하지 말고 기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은 어제 일을 마음에 깊이 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심각하게 과거에 매이지 말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옛적 일이 무엇입니까? 기억하지 말라고 하는 옛날 일이 무엇입니까?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서 그들로 일시에 엎드러져 일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애급 군대가 홍해까지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내셨습니다. 그리고 홍해에 애급 군대를 모두 죽게 하셨습니다. 홍해를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200만명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살리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일을 이제는 더 이상 기억하지 말하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과거에 놀라운 일이 있어도 기억하지 말고 미래를 보라고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제 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잊어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고 역사를 회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미래를 보기 위하여 과거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동차 운전을 할 때 백밀러로 뒤를 보면서 운전합니다. 그런데 백밀러를 보는 것은 과거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가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볼 때가 있는 데 이는 내일로 나가기 위할 때에만 옛적 일을 보아야 합니다.

 

링컨이 부통령 선거에서 낙선하였습니다.

낙선하던 날 링컨은 말끔하게 이발을 하였습니다.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깨끗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음식점에 나가서 가장 좋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 어제 일을 기억지 말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합니다. 우리에게 건망증 환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건망증 환자가 성공합니다.

과거를 잊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여도 소용없습니다. 바꿀 수가 없습니다. 과거는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2. 내일이 기적의 작업장이기 때문입니다.

옛적 일을 기억하지 말하고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옛적 일은 잊어 버리고 내일을 바라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일은 기적의 작업장입니다. 그렇기에 지나간 어제를 보지 말고 내일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위하여 건망증 환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건축을 한 건축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건축한 건축물중에 가장 자랑할 만한 건물은 어느 건물입니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건축할 건물이 가장 자랑할만한 건물이 될 것입니다.>

 

어느 미술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그린 그림중에 가장 자랑할 만한 그림을 보여 주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다음에 그릴 그림이 가장 보여줄 만한 그림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일이 기적의 작업장입니다. 하나님은 내일 두 가지 새 일을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1) 광야에 길을 내을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광야는 본래 길이 없는 곳입니다. 광야에 갇히게 되면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나침반도 없고 방향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야를 가야 하는 사람들은 비둘기 한 마리를 끈에 매어 품에 안고 걸었습니다. 방향을 잃으면 비둘기를 날립니다. 비둘기는 본능적으로 자기 집쪽을 향하여 날랐습니다. 그래서 비둘기를 날려 보면 방향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느 길로 가야 할 지 모르는 광야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애급을 따라야 할 지, 앗수르를 믿어야 할지 우상을 섬겨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기에 당시 상황을 광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광야입니까? 길이 없는 것이 광야입니다.

무엇이 광야입니까? 길을 모르는 것이 광야입니다.

혹시 지금까지 광야 길을 걸어 오지 않으셨습니까? 가도가도 끝이 없고 해도해도 표시가 없고 도저히 어떻게 해야할 지 해답이 나오지 않는 광야를 걸어 오늘 이 곳까지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소망을 가지십시오.

오늘 아침 소망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광야에 길을 낼 것이라.>

 

최근 베스트 셀러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을 읽어 보면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어떻게 로마가 1,000년 넘게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강한 군사력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만일 군사력때문이라면 1,000년을 강한 군사력을 유지할 수 없다. 제도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아무리 탁월한 군사력이라 할 지라도 100년, 200년이면 시들고 만다. 그러면 무엇때문인가?

바로 길 때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게 길을 만들었다. 모든 길을 로마로 통하게 하니 로마가 핵심이 된 것이다.>

그렇습니다.

길이 좋으면 핵심이 됩니다.

길을 모르면 방황하게 되고 더디 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세계를 돌면서 가장 길을 잘 가르쳐 주는 민족은 브라질 민족인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제일 길을 잘못 가르쳐 주는 민족이 우리 민족입니다.

얼마 전 아내와 브라질 상파울로에 갔을 때였습니다. 목사님이 저녁을 대접한다면서 식당을 찾는 데 헤메는 것이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데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처마밑에 사람들이 비를 피라고 서있었습니다. 한 명에게 창문을 조금 열고 목사님이 차안에서 식당을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비를 쪼르륵 맞으면서 길을 친절히 상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동안 온 몸이 순식간에 비로 젖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웃기만 하였습니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가는 데 또 목사님이 헤메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쫓아 오더니 따라 오라며 앞장 서서 뛰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우산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길을 잘 가르쳐주고 손가락질하고는 없어졌습니다.

나는 놀라서 감탄을 하였더니 브라질 사람들은 다 저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 운전하던 목사님이 10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만에 귀국하니 어리벙벙하였습니다. 영등포 역에서 버스정류장에서 노점을 하는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수유리가는 버스 어디에서 타요?>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눈깔이 없어? 보면 되쟎아.>

그는 조국에 대하여 정이 떨어져 빨리 브라질로 돌아오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후에 들었습니다.

성경에서 길을 제일 잘 가르쳐 주시는 분은 어느 분일까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그래서 길을 가장 잘 가르쳐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느 중이 <아는 이에게 길을 물어 봐>라는 책을 썼습니다. 길은 아는 이에게 물어야 합니다.

니고데모는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길을 몰랐습니다. 그는 국회위원이었습니다. 밤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가서 그 길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면서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불치병을 고치는 길을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의사보다도 정확하게 그 길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당한 12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새 일이란 광야에 길을 내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나가는 이들에게 새 길이 열릴 것입니다.

 

(2) 사막에 강의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19)

 

사막에 강을 내겠다는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1) 기적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막은 물 한 방울이 없어서 사막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곳에 강을 내시겠다는 것은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사막에 강이 생기면 더 이상 사막이 아닙니다. 강이 있는 사막은 사막이 아니라 옥토입니다.

(2) 사막에 강을 내시겠다는 말씀은 생명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물이 없고 햇빛만 내리는 사막에 강이 생기면 생명체가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까지도 하나님을 존경하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믿고 기대하고 힘차게 살아야 합니다.

광야에 길을 내면 더 이상 광야가 아닙니다.

사막에 강을 내면 더 이상 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적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는 지난 주간 인천 연수 중앙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함 영태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저의 아버지 목사가 기른 장로님이십니다. 그래서 나를 극진히 아껴 주시는 장로님이십니다. 인천에서 목축을 하시는 장로님이십니다.

소 한 마리에 안심은 8근에서 10근 정도가 나온다고 합니다. 소 한 마리를 잡아서 안심을 모두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목축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경험이 없어서 소들이 자꾸만 죽어 갔습니다. 그러던 중에 도화 교회를 짓게 되었습니다. 장로님은 소들을 팔아서 교회를 지었습니다. 이왕 죽을 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축을 마쳤습니다.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가 새끼를 낳을 때마가 암 송아지만 낳는 것이었습니다. 암송아지와 숫송아지 차이는 엄청났습니다. 10년 동안 계속 하여 암송아지만 낳았습니다. 숫 송아지를 단 한번 낳았는 데 그것도 쌍둥이를 낳아서 가격은 거의 같았습니다. 금장 소가 40마리가 되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사막같은 곳에 상을 주시고, 광야같은 곳에 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깨서는 그렇게 큰 일을 하시려고 옛적 일을 잊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를 잊는 건망증 환자가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님도 건망증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사 38;17-18)

 

시편 기자도 말했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103;12)

 

하나님만 건망증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도 건망방증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고 예수님을 닮아 가려고 애쓰면서 건망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3-15)

 

도말한다는 말은 원어로 보면 엑살레이프사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페인트 칠한다는 뜻입니다. 문질러 닦아 낸다, 끍어서 없앤다는 뜻입니다.

요한도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1요1;8-10)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이미 도말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 지은 죄를 일단 회개하였으면 잊어 버리고 다시는 그 죄 때문에 아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이 잊으신다고 하셨으니 우리도 잊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신다고 하셨으니 나도 나를 용서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오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빌 3:13-14)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리고>

 

그렇습니다.

옛적 일을 빨리 잊어 버리는 사람이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어제가 아니라 내일입니다. 우리 모두 어제 일을 잊어 버리고 내일로 전진하여야 합니다. 내일 광야에 길이 날 것입니다.

내일 사막에 강이 흐르게 될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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