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다! (출 3;1-5)
졸라 목사님들 46분과 함께 성지순례는 아직까지도 잊지 못 하는 좋은 여행이었습니다. 시내산에 갔을 때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가시떨기 앞에서 가이드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다.>
거룩한 삶을 살아간 선지자들은 광야와 갚은 관계가 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하나님과 거룩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 신을 벗으라.>
거룩은 장소에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봅니다.
칼타코의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가 다르질링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앉아서 기도그리고 있었습니다. 삼류기차입니다.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사람들은 바글바글댔습니다. 술마시고 취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온통 시장바닥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테레사는 조용히 묵상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세미하게 들려 왔습니다.
<테레사야! 여기에서 5마일만 가면 50만명의 거지들이 길거리에서 나서 길거리에서 살다가 길거리에서 죽고 있다. 너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살아 있을 때에는 잠자리를 주고, 죽으면 무덤을 주거라.> 테레사는 조용히 수도원을 떠날 준비를 하였습니다. 1948년 8월 8일 그는 로레토 수녀복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등에 나무로 조그만 십자가를 달아 놓은 수녀복입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고 수도원을 떠나면서 일기를 남겼습니다.
<주님! 나는 오늘 밤 어디에서 잘 지 모르고 떠납니다. 주님!99 나는 내일 아침 무엇을 먹을 지 모르고 떠납니다. 주님이 떠나라고 하셔서 떠나니 지금부터 내 일생 주님이 책임져 주시옵소서!>
그리고 칼타코로 들어가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야곱을 보려고 합니다.
형 에서가 죽으려고 할 때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도망을 갑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창 28;10-11)
한 곳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곳 땅 바닥위에서 땅을 요삼아 하늘을 이불삼아 돌을 베게삼아 누웠습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사닥다리가 나타나더니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야곱은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창 28;19)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기차안이든지 광야 들판이든지 하나님과 관계가 되면 거룩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거룩입니까?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과 관계입니까?
1. 만남이 거룩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면 거룩하여 집니다. 거룩하여 지면 하나님과 관계가 이어집니다.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지정되어 있습니다. 아무 곳에서나 대통령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 곳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기차안도 됩니다.
광야도 괜찮습니다.
가시떨기 나무 앞에서도 좋습니다. 모세가 가시 떨기 앞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거룩은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곳이 거룩입니다.
고급 부폐 음식점이 있습니다. 아주 비싼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놓고 아주 비싸게 받는 고급 음식점입니다. 싱싱한 연어 회를 놓고 그 앞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먹을 만큼만 가지고 가십시오.>
조금 떨어진 곳에 더 비싼 요리 로브스터 요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장난으로 그 옆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마음껏 가지고 가십시오. 하나님은 연어를 지키시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연어앞에도 계시고 로브스터 앞에도 계십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서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거룩하여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에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입니다. 중대한 전쟁이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면서 전쟁을 치루면서 성경을 100독하였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과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드디어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전쟁터이든 숙소이든 관계없이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읽었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또 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때였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노르만디 상륙작전을 명령하기 전에 무릎을 꿇고 17시간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확신을 받았습니다. 상륙작전을 명령하였습니다, 승리하였습니다. 그 때 아이젠하워 장군이 지휘하였습니다. 코스비 목사님이 군목이었습니다. 나는 코스비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10명 가량이 한 시간 예배를 드리고 나를 안아 주셨습니다. 코스비 목사님이 나를 꼭 끼어 안고 오래동안 기도하여 주셨습니다.
전쟁터에서 코스비는 늘 기도하였습니다. 승리하였습니다. 17시간의 대통령의 기도와 군목의 기도는 큰 전쟁도 승리하게 하였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2. 버림이 거룩입니다.
하나님께서 40년간 이 곳 저 곳을 다니면서 양을 치던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그러면 모세는 그 곳에서 신고 다니던 신발을 벗었을 가요?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신었을 가요? 아니면 평생 모세는 40년 동안 신발을 신지 않고 살았을 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는 말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을 신는 때는 언제이고 신을 벗는 때는 언제일가요?
신을 신고 있다는 말은 갈 곳이 있다는 말입니다. 방향이 있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집안에서 신을 벗고 있다는 말은 갈 곳에 없습니다. 방향이 없고 목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과 목적과 방향을 버리라고 할 때 이런 말을 사용합니다.
<신발 벗어!>
유대인이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나 요즈음에 힘들어.> 상대방은 말합니다.
<신발벗고 하나님께 맡겨.> 신발벗는다는 말은 자기 생각과 자기 의지를 버림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80세에 신발을 벗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자기가 민족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도망쳤습니다. 광야에서 자기 의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네 생각대로 살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살아. 네 생각을 포기해. 신발벗어.> 나의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면 거룩의 관계가 생깁니다. 가시떨기 앞 땅떵어리가 거룩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는 상태가 거룩입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버클리 대학교 앞에 한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는 두 분 목사님이 함께 개척을 했습니다. 그 중 한 분 목사님이 보스턴을 복음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떠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동안 10가정이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지난 4년 동안 훈련시킨 가정들에게 보스턴으로 함께 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고 남을 사람은 남아서 다른 목사님과 일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열 가정 모두가 그 목사님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들 중 두 형제의 결단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한 형제는 버클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버클리 대학교의 조교수로 발탁되었습니다. 이는 큰 명예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아내 함께 기도하고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을 따라 보스톤으로 떠나서 일하겠습니다.> 또 다른 형제의 이름은 에드워드 강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변호사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드디어 합격하였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도 집에 가서 기도를 하고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을 따라 가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각 주마다 법률이 다릅니다. 다른 주로 가면 그 곳에 가서 다시 자격증 시험을 보아야 합니다. 대단히 어려운 시험입니다.
그러나 두 형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요청하신다는 그 확신 때문에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떠났습니다.
내려놓음이 거룩입니다.
모세도 다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애급으로 떠났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세상 모든 것을 내려 놓으면 거룩한 관계가 됩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내려 놓음의 관계입니다.
어느 교회 젊은 집사님이 담배를 끊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심하다가 여름휴가를 철원 기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고 담배를 끊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도 성령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도원에서도 숲속으로 몰래 들어가서 담배를 피우고 나오곤 하였습니다. 담배를 피우고는 자신의 모습이 그토록 처량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왕에 결심하고 올라왔으니 도중에 내려갈 수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데 이상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버려라. 내버려라.> 뭘 내버리라는 것일가 생각하며 주머니를 뒤져보았습니다. 바지 주머니에 담배와 라이터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담배와 라이터를 꺼내 유유히 흐르는 한탄 강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바위 위에 엎드려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그 후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날부터 담배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났습니다. 담배를 완전히 끊었습니다.
내려놓음이 거룩입니다.
모세는 가시떨기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 놓았습니다.
3. 헌신이 거룩입니다.
모세는 지금까지는 자기만을 위하여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애급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들 인도하여 내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시떨기 앞에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 하나였습니다.
모세는 거절하였습니다. 계속 거절하였습니다.
<도망가서 살던 내가 가서 말하면 듣지 아니할 것입니다.> <나는 입술이 둔합니다.>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출애급기 4장 14절에서 하나님은 노를 내시며 가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지원병이 아니라 차출병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강제적으로 차출하셨습니다. 모세는 강제적으로 헌신을 약속하였습니다. 가시떨기 앞에서였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만난 것처러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모세야! 홍해를 지금도 가를 수 있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모세가 기도하고 지팡이를 홍해에 내밀었습니다. 역시 갈라졌습니다.
<지금도 그 때 영력이 그대로 있구나! 놀랍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물으셨습니다.
<엘리야아! 지금도 갈멜산 기적처럼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할 수 있니?>
<해보겠습니다.> 엘리야가 기도하고 손을 하늘을 향하여 쳐들었습니다. 불이 하늘에서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놀랍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지금도 물위로 걸으실 수 있으세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한번 해보겠다.> 그리고 물위로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속으로 빠져 버렸습니다. 두 명이 물었습니다.
<예수님! 왜 그러십니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못자국으로 구멍이 나서 물이 샜다. 너희를 향하여 헌신한 증거다.> 예수님의 손발에 박혔던 못자국은 헌신입니다. 헌신은 거룩입니다.
우리 교회는 양화진 선교사 묘비 닦기를 두 번 실시하였습니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는 이 땅에 와서 생명을 바쳐 일한 분들의 묘지입니다.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첫 번 묻힌 분은 헤론이라는 의사입니다. 헤론은 테네시 의과대학이 생긴 이래로 가장 우수한 성적을 올린 수재였습니다. 대학의 교수회가 그를 교수로 남아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절하고 한국의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그는 한국의 선교사로 처음 임명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펜셀러, 언더우드보다 두 달 늦은 1885년 6월에 내한하였습니다. 그리고 알렌의 제중원에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알렌이 선교사직을 물러난 후에 그는 제중원 원장으로 일하면서 밤낮 없이 헌신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5년 뒤인 1890년 여름에 각종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다른 선교사들은 남한산성 휴양지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폭염 속에서도 서울까지의 먼 거리를 드나들면서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는 더위와 과로에 지쳐 결국 자신도 이질에 걸렸습니다. 3주간을 앓다가 7월 16일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젊은 아내와 두 딸을 남겨놓고 순교하였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그 무덤앞에 서니 숭고함과 거룩함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 들었습니다. 헌신이 거룩입니다. 우리는 헌신앞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헌신앞에서 거룩을 맛보게 됩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어떤 곳에서든지 하나님과 관계가 이루어진 곳이 거룩입니다.
어떻게 관계를 맺으면 거룩하여 지는 것일가요?
1. 하나님을 만나면 거룩한 관계가 됩니다.
2. 포기하면 거룩한 관계가 됩니다.
3. 헌신하면 거룩한 관계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최 세웅 목사님이 들려 준 이야기입니다. 1981년 3월 6일이었습니다. 최 목사님이 아는 병원에 들렀을 때 직접 본 이야기입니다.
50대 어느 남자가 신문지에 무엇인가 싸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두 뭉치였습니다. 그리고는 원장님 앞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숙이고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입니다.
4살 된 아들이 갑자기 목구멍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책망을 하였습니다.
<어쩌자고 이 지경까지 병원에 오지 않았습니까? 혹이 너무나 커졌습니다. 수술 불가능입니다. 데리고 가십시오. 집에 편안히 뉘워 두는 것이 편합니다.> 다른 병원에 갔더니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지금 이 병원으로 들어 와서 의사 선생님에게 아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마찬가지 결과였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죽어도 여기서 죽이겠습니다. 죽어도 좋으니 수술 한번만 해주세요.> 의사 선생님은 각서를 받고 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20일 만에 아들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병원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중에 아들을 업고 몰래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밥은 안 먹어도 술은 마셔야 하는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그 후 계속 술을 마시며 방탕하였습니다. 그 동안 아들은 잘 자라 군대에 갔습니다. 교회에 나가 믿음 좋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신문지에 싼 것을 그 때 펼쳐 보이는 데 아들이 군대생활을 잘 하여 지휘관으로부터 받은 상패였습니다.
어느 날 아들의 전도로 아버지도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모범적인 집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드릴 때였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날이 환하게 밝는 것도 모르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벼락치듯이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회개하라. 20년 전에 죄를 기억하느냐?>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잘못 하였습니다. 나는 도둑놈이었습니다. 사깃꾼이었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파렴치한이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는 하나님을 속였습니다. 의사선생님을 속였습니다. 내 양심을 속였습니다.>
그는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돈을 마련하여 신문지에 쌌습니다. 다른 신문지 뭉치가 돈이었습니다. 그는 돈 뭉치를 원장님에게 내놓으며 닭똥같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원장님!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떤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원장님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말했습니다.
<네가 의사 생활 수 십년에 당신같은 사람 처음 보았습니다. 당신 아들 제대하면 내게 데리고 오십시오. 내가 신학교 입학부터 졸업까지 책임지겠습니다. 그리고 좋은 목사가 되게 기도하겠습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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