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협의회와 종교다원주의(최덕성 교수)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한국에서 총회를 개최할 계획이 알려지면서, 한국교회가 이 대회를 환영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두고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한국지부격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회원교회들은 이를 환영하는 반면에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충실하려고 입장을 가진 교회들은 환영하지 않는다. 일간지들은 이를 환영하면서 기독교가 타종교, 이웃종교에 대해서도 상호존중과 대화를 하는 기회가 될 것을 기대하는 반면에, 이 단체의 신학에 대하 우려를 표명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총회를 어디서 개최하든 그것은 그 단체의 선택사항이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그 총회의 한국 개최를 환영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선택해야 할 과제이다. 교회연합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만약 세계교회협의회 한국 총회가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고 결국은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에 걸린 것 같이 죽어가는 교회가 되도록 작용한다면, 이를 환영해야 할 까닭이 있는가? 세계교회협의회를 구성하는 유럽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교회들이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단체의 지도자들이 ‘진리는 타종교와의 대화(dialogue) 속에서 발견된다,’ ‘성령의 구원 역사는 이웃종교에도 발견된다’는 따위의 진리에 대한 상대주의, 포용주의를 천명하고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대한 불일치를 보이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필자의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2005, 본문과현장사이, 도서출판 영문총판)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역사와 성격 그리고 교회연합일치운동의 실체를 분석한다. 세계교회협의회 한국 총회 개최를 환영하든, 아니하든 간에, 이 단체가 어떤 신학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래의 글은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 제6장 “세계교회협의회와 종교다원주의”를 옮긴 것이다. 각주와 관련 사진들은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글은 홈페이지 reformanda.co.kr에 사진과 함께 게재되어 있다. 그리고 홈페이지 리포르만다에 게재된 “에큐메니칼운동과 죽어가는 교회” 등 관련 논문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세계교회협의회와 종교다원주의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는 기독교―
1. 사도적 신앙을 고백하는가?
세계교회협의회는 장대한 규모와 매혹적인 프로그램들을 가진 에큐메니칼 단체이다. 2005년 1월 현재 그리스정교회와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교회를 포함하여 342개의 교단과 단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프로테스탄트교회의 가시적(可視的) 일치와 친교를 목적으로 삼고, 성만찬을 중심으로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1를 표방한다.
뉴델리 총회(1961, 제2차)가 채택한 세계교회협의회 헌장은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일치의 기초라고 말한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성서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원자로 고백하고, 한 하나님, 곧 성부·성자·성령의 영광을 위한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 싶어 하는 교회들의 친교(코이노니아)이다”2고 한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는 “하나의 사도적 신앙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떡을 떼고, 공동의 기도에 참여하고, 인류에 대한 증거와 봉사에 참여하고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면서, 성령으로 하나의 충만한 연합과 친교를 가지는 데 있다”3고 한다.
“성서에 따라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며 구원자다”고 하는 위 문구는 매우 훌륭해 보인다. 그러나 기독교의 최소한의 신앙고백도 하지 않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기독교 에큐메니칼 단체의 신앙고백 문구로는 지나치게 간단하다. 로마가톨릭교회로 하여금 이와 비슷한 것을 표명하라고 하면 훨씬 더 구체적인 고백문을 제시할 것이다. “성서에 따라”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에 대한 서술이 아니다.4 세계교회협의회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에 대한 높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 용어를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개념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구원자이다”는 서술도 유서 깊은 기독교와 다른, 자유주의 기독교가 말하는 기독론·신론·구원론을 깔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산하 신앙과 직제위원회는 1990년에 ‘하나의 신앙고백’(Confessing One Faith)5을 채택했다.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의 신앙’을 언급하며 각 교회와 지역교회가 이러한 신앙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문건은 ‘에큐메니칼’ 시각으로 해석된 신학, 특히 교회관을 담고 있다. 1993년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위원회 제5차 대회는 개 교회와 지역교회의 다양성과 연속성을 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히13:8) 하나님과 구주로 고백할 수 없거나, 성경이 선포하고 사도 공동체가 설교한 구원과 인간의 궁극적 운명에 대해 함께 고백할 수 없는 다양성은 부당하다”6고 서술한다. 교회의 통일성은 경전인 성경의 복음진리(갈2:5,14)와 훗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안에 제시된 부연된 가르침들 위에 근거해 있다. 이 통일성과 이에 대한 가르침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아니고,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양성의 기초이다. 성서는 다양한 메시지와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이 성서가 기록된 상황들이 다양하고, 이 성서에 대한 접근방법과 해석방법이 다양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고백문은 액면 그대로 보면 복음주의자들도 환영할 만하다. 세계교회협의회가 사도적 신앙과 성경에 기초한 단체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 동일한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신학적 개념을 부여한다. (2) 문건은 문건일 뿐 회원교회·회원단체·구성원들에 대한 규제 기능을 갖고 있지 않다. (3) 이 단체의 방향과 흐름은 위 문건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4) 이 단체의 교리 선언문들은 자체의 실질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5) 이 단체가 신앙고백 중심의 기구가 아니므로 상반된 신학을 가진 회원단체나 개인을 규제하지 않는다. 그렇게 할 의사도 없다. 기독교 신앙의 근본 사항들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자, 종교혼합주의자, 종교다원주의자들을 포용한다. (6) 오히려 그런 류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이 단체를 이끌고 있다. (7) 성경의 권위와 기독교의 중추 교리를 공적으로 분명하게 고백하지 않고서도 여전히 이 단체의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세계교회협의회가 ‘사도적 신앙’(One Apostolic Faith)과 삼위일체 하나님 그리고 그리스도를 언급하는 문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 성경적이고 교리적으로 건전한 에큐메니칼 단체로 보는 것은 오판이다.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이형기 교수(역사신학)는 세계교회협의회의 고백문건들과 박형룡 박사의 정통신학을 견주면서 상호 일치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초대교회의 에큐메니칼 공의회 운동과 세계교회협의회 중심의 에큐메니칼 운동을 동일선상에 두고 전자와 후자를 등등한 관점에서 평가한다.7 초대교회의 니케아공의회, 콘스탄티노플공의회, 칼케돈공의회와 같은 에큐메니칼 총회를 세계교회협의회 총회들과 동등한 위치에 둔다.
그러나 고대교회의 에큐메니칼 총회와 세계교회협의회는 그 지향점이 같지 않다. 전자는 ‘교리’ 중심의 총회였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신앙과 교리를 굳게 다지고 이단을 철저하게 배격했다. 주후 500년 전까지 개최된 에큐메니칼 공의회는 연합 단체의 총회가 아니라 ‘교회’의 총회였다. 교리 작성과 이단 정죄를 중요한 과제로 삼았다. 말씀·진리·교리에 마음을 열고 이단에 등을 돌린 총회였다.
그러나 세계교회협의회는 교리·신조·진리 중심의 단체가 아니다. 교제·성찬 중심의 단체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등지고 종교다원주의에는 마음을 열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90년에 ‘기독교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공식 선언했다. 유서 깊은 기독교가 고백하고 천명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유일성을 포기했다. 종교다원주의를 공식 표방한 것은 이 단체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것이다.
2. 바아르선언문(1990)
세계교회협의회 종교간대화위원회[살아있는 신앙인들과의 대화 분과]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범위를 전 세계 종교 간의 대화로 확대시키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71년에 ‘타종교의 신앙인들과 이데올로기들과 대화를 위한 소분과’를 만들었고, 1979년에는 ‘대화지침’(Guideline on Dialogue, 1979)을 내놓았다. 그 뒤로 이 단체는 심화되는 종교 간의 대화 경향을 주목하면서, 1988년에 프로테스탄트교회,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신학자 21명을 초청하여 연구를 하도록 했다. 이들은 3년 동안 스위스 마을 바아르에서 ‘내 이웃의 신앙과 나의 신앙: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신학적 발견들’이란 주제로 연구했다. ‘바아르선언문’(Baar Statement, 1990)은 그 결과를 종합한 것으로 종교다원주의를 분명하게 표방하고 있다.8 이 선언문은 로마가톨릭교회의 바티칸공의회가 1965년에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내용을 담아 반포한 ‘비그리스도에 관한 선언’과 ‘종교자유에 관한 선언’과 맞먹는 획기적인 것이다.
이 선언문의 핵심은 하나님의 임재가 모든 나라와 백성 가운데 항상 존재하듯이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타종교에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만물 가운데 임재하여 활동하며, 그는 모든 나라와 민족의 하나님이므로, 그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 또한 전 인류와 종교들을 포용한다고 선언한다. (다음과 같다)
인간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들 가운데 임재하여 활동하시는 하나님께 응답해 왔으며, 그 만남을 고유한 방식으로 증언해 오고 있다. 이 증언들 속에 구원·완전성·깨달음·인도·휴식·해방을 추구하고 발견한 신앙적인 역정(歷程)이 메아리치고 있다.
생략
세계교회협의회는 ‘사도적 신앙’(One Apostolic Faith)을 고백하고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의 친교’로 시작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이 단체는 점차 세속화 되어 지금은 ‘타종교에도 성령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있다’고 말한다. 이 단체가 종교다원주의를 ‘고백’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사도적 신앙’을 부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 단체의 고백문건은 문건일 뿐 그것이 구성원들과 회원교회들의 믿는 바를 규제하지 않으며, 시작할 때 내세운 고백문건과 현재 이 단체가 실제로 믿고 고백하고 지향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다.
[최덕성, <에큐메니칼운동과 종교다원주의>, 131-154쪽에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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