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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보다 5000배 받다! (행 3;1-10)

by 【고동엽】 2022. 1. 20.

기대보다 5000배 받다! (행 3;1-10)



카나다 집회 중에 집사님 한 분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카나다에 이민 와서 버섯 농장을 경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나 잘 되는 지 돈을 삼태기로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40억을 주고 딸에게 30억을 주었습니다. 헌금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거품을 물고 신나게 이야기하는 데 부러웠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기대보다 더 잘 된다면 얼마나 신날 가요?

베드로부터 봅니다.
베드로는 평생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근근히 살아가는 어부였습니다. 맑고 찬 호수 물이기에 밤에 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낮이면 다 보여 고기들이 도망치기 때문입니다.
저녁에 고기 잡이 나간 베드로는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기대는 배 한 가득 고기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망입니다. 단 한 마리도 잡지 못 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피곤이 더욱 겹치는 것같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순종하였습니다.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두 배 가득 채웠습니다. 기대는 한 배였는 데 현실은 두 배였습니다.
기대보다 잘 되는 생을 살아가는 삶은 행복한 삶입니다.

또 있습니다.
5000명이 벳세다 광야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저들이 허기져서 돌아가지 못 할 것을 아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먹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세 가지 핑계를 댔습니다.
<빈들입니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200 데나리온도 부족합니다.> 모두가 허기를 때우기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5000명이 다 배불리 먹고 12 광주리가 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삶은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기대 이상의 열매를 거두는 삶은 신나는 생애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앉아 구걸하던 거지를 일으킨 이야기는 사도행전에서 최고로 유명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 전체에 하나뿐입니다. 온 국민이 모이는 국민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 문앞에서 40년 동안 구걸하던 거지가 있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이 성전에서는 하루에 세 번 기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침 9시, 12시 그리고 오후 3시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성전으로 올라갈 때였습니다.
거지가 언제나 그런 것처럼 구걸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미국 달라스 신학교 세이프 학장은 이 거지에 대하여 세밀한 분석을 하였습니다. 이 거지는 이스라엘 거지 왕초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국에서 가장 명거지 명당자리가 성전 문앞입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최고 좋은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그토록 오래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예루살렘 거지 왕초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돈을 주려고 하였으나 돈이 없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은 거지 손목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앉은뱅이는 갑자기 발과 발목에 힘이 생기더니 일어나 걷고 또 뛰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기적을 주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앉은뱅이는 기대이상 받았습니다.
앉은뱅이는 돈을 요구하였는데 기대이상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달걀이 껍질, 흰자위 그리고 노른자위로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 데 사람들도 영혼육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앉은뱅이는 영혼육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대이상으로 받았습니다.

앉은 뱅이가 뛰는 사람으로
육적으로 도저히 걸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 적은 평생을 두고 한번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걸었습니다. 뛰었습니다.

구걸이 구제로
그리고 혼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기대이상이었습니다. 평생을 흥분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구걸하던 사람이 구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상상도 못 하던 일입니다. 도저히 기대하지 못 하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40여년을 구걸하던 이가 이제는 구걸을 멈추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가 구제하였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보다 못 한 이들에게 구제하여야 합니다. 많이 하였는지 적게 하였는지는 몰라도 구제하였습니다. 구제를 연구하는 민족입니다. 심지어 구제받는 사람도 구제하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제는 매일 밥 먹고 자는 것과 같이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철칙 교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제할 사람이 앞에 있으면 그 사람에게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 때문에 축복을 주시기 때문에 축복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기뻐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땅의 사람에서 하늘의 사람으로
사도행전 4장 22절을 보면 나이가 40세쯤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라고 하였습니다. 40년간 땅에만 붙어 살던 이였습니다. 그러나 본문 9절을 보면 앉은뱅이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땅의 사람이 하늘의 사람으로, 앉아 살던 사람이 뛰면서 사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대 이상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단 한번도 걸을 수 있으리라, 뛸 수 있으리라 기대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아예 앉은뱅이로 체념하고 살았던 이였습니다. 기대 이상의 역사를 맞이 하였습니다.
하나님앞에서 기대이상의 삶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에게 내가 기대하였던 것을 넘어 놀라운 방향으로 생이 틀어지게 되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기대 이상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시간이 되어 성전으로 기도하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성전으로 들어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그 시간에 앉은뱅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고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앉은뱅이를 만난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메고 오자 말자 만난 것입니다. 오늘 날로 말하면 앵벌이 무리들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온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아직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도만 하려고 하여 대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은 것이 아니라 뛰었습니다. 앉은 뱅이 한 명만 구원하고 싶었는 데 5000명이 구원받았습니다. 기대보다 5000배를 받았습니다. 하루에 5000명이 예수믿는 믿기 어려운 기대한 것 이상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기대 이상을 거둔 사람들입니다. 앉은뱅이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베드로도 기대이상이었습니다. 우리 온 성도님들도 모두 기대 이상의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기대 이상의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오늘의 주인공 앉은뱅이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보려고 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중에 눈에 띄는 말씀이 네 단어가 있습니다.

1. 날마다
2. 성전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3. 기도시간에
4. 예수 이름으로

1. 날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2)

이 앉은뱅이가 기대 이상의 축복을 받은 것은 40년을 <날마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꾸준하게 끈기있게 한 가지 일에 전념하더니 기대이상의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팠던 결과입니다. 쟁기를 붙들고 뒤를 보지 않았던 보상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여도 날마다 꾸준히 하여야 합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세계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세를 물어 보니 87세였습니다.
<할아버지! 87세인데 어떻게 잔병하나도 없이 그렇게 건강하게 세계 여행을 하세요?>
할아버지 대답은 간단하였습니다.
<날마다 일십백천만해!>
무슨 말이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날마다 하루에 한가지씩 좋은 일을 합니다. 거리 청소를 한다든지 지나는 마차를 밀어 준다든지 여하간 하루에 한 가지씩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좋은 사람을 10명씩 만납니다. 그리고 하루에 아무리 바빠도 글자를 100자씩은 씁니다. 그리고 하루에 글자를 1000자 이상 읽습니다. 독서를 한다는 말입니다.
날마다 꾸준히 하면 기적이 있습니다.
용기는 시작하게 하고, 끈기는 계속하게 하고, 믿음은 완성하게 합니다.
끈기가 있으면 기대를 넘어 흥분까지 갈 수 있습니다.

2. 성전 미문
기적을 넘어 흥분으로 간 두 번째 비결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눈에 띄는 단어가 또 있습니다. <성전 미문>이라는 단어입니다. 그가 날마다 구걸한 자리가 성전 미문이었기에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갔지 시장 바닥이었으면 이런 기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전철안이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전 미문이었습니다. 어디에 있었는 지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놀아도 기적의 자리에서 놀아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한나도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집에서 17년만에 아들을 낳는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하나님의 집에서 일어납니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 가서 양소를 기르는 목장을 수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온 종일 소양이 놀아도 울타리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영역을 벗어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이 앉은뱅이는 40년간 성전 미문을 벗어나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간 비결이었습니다.

3. 기도
앉은뱅이이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간 비결이 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에 띄는 단어가 셋 있습니다.
<날마다>
<성전 미문>
그리고 <기도 시간에>입니다. 이 기적은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일어났습니다. 성전에 사람을 만나러 가다가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상담하러 가다가 기적이 일어난 것 아닙니다. 기도하러 가는 시간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에 의하여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혼자 조용히 기도하러 가다가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둘이 합심하여 기도려고 가다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다>(막 11:17)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기도하는 데에는 기적이 따릅니다. 예수님이 <내 집은 친교하는 집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집은 먹는 집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E집은 회의하는 집이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먹다가 성령받았다는 사람있습니까? 윷놀이 하다가 불받았다는 사람들어 보았습니가? 회의도중에 은사가 임하였다는 사람 있었습니까? 교회는 먹는 것도, 친교도 회의도 좋지만 본질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앉은뱅이가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살게 된 비결은 기도시간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에 의하여 일어난 사건입니다.

4. 예수 이름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붙들고 외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아무리 날마다 꾸준하고,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성전 미문이라도 예수 이름이 없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이 핵심입니다.
어느 공장이 멋지게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수 천억 드렸어도 기계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알아 보니 전기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이름은 능력입니다.
어느 분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요즈음 교회들은 은과 금은 있는 데 예수 이름이 없다>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없어도 예수 이름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은과 금은 없어도 예수 이름이 있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오토바이를 애인과 둘이 타고 달리다가 속도 위반으로 경찰에 잡혔습니다.
<오토바이를 그렇게 달리면 위험하지 않습니가? 속도 위반으로 딱지를 떼야 겠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달려도 안전합니다.> 경찰은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 주님이 같이 타고 계십니다.>
<셋이 탔다는 말입니까?>
경찰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정원 초과 딱지 하나 더 떼겠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은 언제나 안전합니다.

사실상 오늘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교회 부흥을 위하여 주님께 기도하는 데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부흥을 구하지 말고 부흥을 주시는 하나님을 구하라.>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됩니다. 청주에서 목회하시는 차 재용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대학교 교수가 정년 은퇴를 하였습니다.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시골에 집을 마련하였습니다. 경치가 좋은 곳에 별장같이 노년을 지내려고 마련한 집입니다. 정성껏 지었습니다. 입주한 첫 날이었습니다. 기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거실 천장에 이상한 못이 하나 박혀 있었습니다. 의자를 놓고 올라가 장도리로 있는 힘을 다하여 못을 잡아 당겼습니다. 못이 쑥 빠지면서 의자가 넘어져 뇌진탕으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앉은뱅이가 기대를 넘어 흥분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 비결을 알려 주는 네 단어가 본문에 있습니다.
1. 날마다
2. 성전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3. 기도시간에
4. 예수 이름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적 앉은뱅이가 아닙니다. 매일 그 타령은 아닙니까? 기대를 넘어 흥분스러운 일들이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기대 이상의 삶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모세가 그렇습니다.
모세는 광야로 도망와서 40년 간 살다보니까 80세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늙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단 한번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리라고 기대한 적이 없습니다. 꿈에도 공상이라도 농담이라도 그렇게 기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시 떨기 불꽃속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내 백성을 인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한 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못 합니다> <입술이 둔합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거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강권에 못 이겨 광야를 떠나 바로와 대결하였습니다.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이 기적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만에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드온은 농사꾼이었습니다. 강대국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침범하면서 농사지으면 빼앗아 가고, 과일을 길러 놓으면 따가고 할 때였습니다. 농사꾼 기드온이 몰래 포도주를 짜는 틀속에 들어가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큰 용사여>(삿6;6)라고 부르시며 나가서 미디안과 싸우는 대장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도 한 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삿6;12)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기대를 걸면서 나가 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드온이 갑자기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사사가 되었습니다. 농사꾼이 민족적인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앉은뱅이도, 모세도, 기드온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대 이상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기대이상의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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