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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목회자(가나다순)

설교자·강단은 거룩한 권위를 갖고 있나

by 【고동엽】 2022. 2. 16.

설교자·강단은 거룩한 권위를 갖고 있나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 신학대학원장·조직신학)

우리는 예배당에 들어 설 때마다 사뭇 다른 마음의 자세를 가진다. 예배당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행해지기 때문이다. 예배당 내부구조의 일부는 보통 설교를 위한 강단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런데 강단은 주로 설교자나 예배순서를 맡은 특정한 사람만 사용하는 곳이어서, 일반 평신도로서는 좀처럼 강단에 접근할 기회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강단이나 설교자는 특별히 거룩하게 여겨지고, 신성시되는 일이 있다. 그래서 심지어는 청소를 하는 경우에도, 강단에서 반드시 신발을 벗지 않거나 정장을 갖추어 입지 않으면 큰 불경죄를 범하는 것으로 여기는가 하면, 설교자를 마치 하나님처럼 여기는 일까지 생겨나기도 한다.



설교자나 강단은 과연 거룩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 거룩한 권위란 어떤 뜻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1. 거룩의 의미
국어사전에서는 거룩을 ‘성스럽고 위대하고 훌륭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구별된 것 또는 구별된 상태’를 가리켜서 거룩하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과 관련된 구별이란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다른 세속적인 것들과 구별된 경우이다. 우리는 이것을 존재론적 의미의 거룩이라고 부른다. 둘째는 어떤 행동이나 생각이 죄와 구별되는 경우이다. 우리는 이것을 윤리적 의미의 거룩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분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은 존재론적으로 볼 때 모든 피조물들과 구별되어 계시는 분이실 뿐만 아니라(사 57:15), 생각이나 활동에서도 죄와는 전혀 상관도 없이 구별되어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사 5:16). 성경은 사람이나 피조물에 대해서도 거룩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명령하기도 한다(레 11:45). 사람이나 피조물이 세속적인 사람들이나 피조물들과 구별되어 하나님과 연관될 때에는, 그 구별된 사람이나 피조물이 존재론적 의미에서 거룩하다고 말할 수 있다. 성도, 성물, 성구, 성전, 성직, 성가, 성일 등에 붙은 거룩의 의미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윤리적인 의미에서는 죄와 구별된 상태나 생각이나 행동, 즉 하나님의 뜻에 합한 상태, 생각,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거룩하다고 한다.



2. 설교자와 거룩한 권위
설교자는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대언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을 때에는, 설교자 개인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마땅히 설교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동안에는, 그 설교자가 비록 어린 아이나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여겨야 한다. 만일 설교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된다.



초대 교회의 성자 어거스틴은 어린 아이의 말을 통해 들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심하여, 후에는 위대한 성품을 가진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사도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인간적인 가족이나 친구 관계를 떠나,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설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 만일 그들이 집안 사촌 동생이나 허물 많은 친구의 말로만 들어 넘겼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그들에게 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설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깨달음과 감동을 주시려고 사용하시는 효과적인 전달수단이다. 설교를 통해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한 권위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설교를 ‘말씀의 선포’라고도 한다. 선포란 권위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설교에는 질문이나 반론이 있을 수 없다.



설교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 경우를 말한다.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관계없는 말을 할 때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릇되게 전하는 경우에는, 이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항상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바르게 전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설교를 듣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만을 옳게 분별하여(딤후 2:15),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아멘으로 설교를 받아야 한다.



설교자는 설교를 하는 순간만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생활 속에 적용하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설교자는 삶의 현장에서 순간순간 부딪치는 문제들에서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일반 평신도들보다 더 많은 임상적인 지혜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설교자는 자기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설교를 듣는 각 사람들의 생활과 신앙의 수준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에 온 정성을 다 기울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자가 강단에서 하는 설교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여 일러주는 진지한 충고와 권면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능력 있는 설교를 하는 사람이라도 역시 유한하고 허물이 없을 수 없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설교자 개인을 천사나 하나님처럼 여겨 떠받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거룩한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신격화시키는 우상숭배의 위험에 빠지는 것임과 동시에, 그 설교자의 허물을 발견하게 될 때에는 크게 실망한 나머지 자신의 신앙에 큰 손해를 입힐 수도 있는 함정을 파는 것이다.



3. 강단과 거룩한 권위
예배당의 강단은 설교를 위해 구별해 놓은 장소이다. 그러므로 예배당의 강단은 강의나 교육을 위한 교단이나 제사를 위한 제단과 확실하게 구별이 된다. 설교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에 감동을 받도록 권면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설교는 주로 말로서 행해지지만, 때에 따라서는 동작이나 영상 등으로도 설교가 행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설교를 위한 강단은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기에 편하도록 위치나 높이를 조절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의도가 지나쳐서 인위적인 권위주의적 인상을 풍기는 구조나 장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설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형식으로 행해지는 설교이든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엄격하게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지 않는 설교는 사실상 설교라고 할 수 없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의 의미에서 볼 때, 거룩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당이나 구별된 말씀인 성경을 전하는 강단은 분명히 거룩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구약시대의 성전에서는 이러한 사상이 매우 강조되었다. 지금의 예배당이나 강단에 비교되는 성전이나 지성소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도록 엄격하게 구별되어 있었고, 이를 어기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다(레 16:2). 그러나 지금의 예배당이나 강단이 가지는 거룩한 권위는 구약에서와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예배당이나 강단이 거룩하다는 것은 그 재료나 공간 자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예배당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위해 구별해 놓은 장소이고, 강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구별해 놓은 공간이기 때문에 거룩한 곳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당이나 강단에서는 결코 세속적인 것과 똑같은 일들이 행해져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을 향해 구별된 일들만이 행해야 한다. 말을 해도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말과 구별된 하나님의 말씀을 해야 하고, 노래를 해도 세속적인 것과 구별된 거룩한 노래를 불러야 한다. 만일 이러한 조건들이 파괴된다면, 그 예배당이나 강단은 더 이상 거룩한 곳이 될 수 없는 공회당이나 공연무대에 불과한 공간이 되고 만다.



이 사실은 우리가 야외 공간을 예배나 설교를 위한 장소로 사용했을 때 더욱 분명하게 느껴 볼 수 있다. 성도들이 예배를 위해 모인 일정한 공간은 비록 야외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곳이 본래 어떤 곳이었는가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그 시간만큼은 거룩한 장소로 구별이 된다. 그래서 산(요 6:3), 강가(행 16:13), 외딴 섬(계 1:8), 사자굴(단 6:22), 다락방(행 1:13), 감옥(행 16:24,25) 등을 막론하고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하셨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고 성도들이 흩어진 이후에는 잠시 전에 가졌던 거룩한 장소로서의 의미는 다 사라지고, 그곳은 이전과 동일한 공간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특정한 장소나 공간을 지나치게 신성시 하는 것은 피조물을 하나님 대신으로 삼는 잘못된 길에 빠지기가 쉽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영구적으로 구별하여 바쳐진 예배당이나 강단은 그곳이 하나님께 영구적으로 구별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임시적으로 구별하여 사용했던 야외 공간의 경우와는 달리, 어느 정도의 성별 의식을 가지고 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신기하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였던 야외 공간을 대할 때의 우리의 자세와 별다르게 특별한 하나님의 임재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봉헌된 예배당을 대할 때의 우리의 자세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특정 공간을 신격화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사람이나 피조물의 거룩한 권위는 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설교자나 예배당이나 강단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연관이 되어있을 때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권위 때문에 설교자나 강단 또한 상당한 수준의 거룩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신격화에 이르지 않는 범위 안에서 마땅히 그 거룩한 권위에 어울리는 적절한 예를 갖추고, 설교자나 예배당이나 강단을 대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는 거룩한 권위는 단지 위선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들의 관계 가운데서 위선이 아닌 거룩한 권위나 그 권위에 대한 존경이 내면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묻어나도록 정성을 다해야 한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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