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가 제자의 삶을 보여주어야 제자가 태어난다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을 맡은 자라고 해서 그만큼 개성이 바뀐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아집과 고집으로 고착되어 섞이기가 힘든인격을 보기 때문입니다.
목사라고 해서 특이한 개성이 하루 아침에 변화되질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기질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다루심이 많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견적이 많이 나오는 자들입니다. 인간의 각질이 참으로 두껍기 때문입니다.
양파껍질 벗듯이 벗어져야 합니다. 끊임없이 벗어져야 하고 내속에 주님이 보여져야 합니다.
교회가 힘든 문제의 소용돌이 치는 이유 중에 목회자가 가진 강한 개성과 기질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직분자들이 특이한 개성파들로 구성되었다면 목회자가 목회하기에 많은 걸림돌이 될 것이 뻔한 일입니다. 게다가 성도들이 변화받지 못한 채 개인의 특이한 기질들의 개성파들이 판을 친다면 교회가 세상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공동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작금에 대형교회에서 부자 세습이니 물량주의니 개인주의로 목회 현장에 자행되고 있는 세속주의가 육적인 특이한 개성을 지닌 채 주의 몸을 구성하고 있기에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교회가 온전한 주님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지금이 위기인 것 같습니다. 성직자들이 타락하고 교회가 세속화 될때는 그 사회의 윤리과 도덕은 완전히 땅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는 채 육의 본성을 가지고 주 예수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양의 탈를 쓴 늑대들이라고 말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 같습니다. 교회의 위기요 목회자의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필자는 제자훈련을 통하여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 스스로 내 자신을 주님의 제자로 온전케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주님의 다루심을 받고 있습니다. 필자 자신의 특이한 기질과 생각이 주님의 마인드로 변화되어 주님을 닮아보려해도 늘 주님께 송구스런 마음을 가지고 주앞에 서고 있습니다. 필자에게도 많은 쳔연적인 기질과 특이한 성품이 제자훈련 사역안에서 주님으로부터 다루심을 받아 조금씩 다듬어지고 있음을 날므대로 누리는 축복이요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제자사역을 하면서 터득되는 것이 제자훈련 전 과정을 다 이수한다고 개성이 다 바뀌는 것은 아닌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기질과 개성이 어떻게 처리되고 변화되는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행하는 데 시건이 요청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프로그램을 실시하였다고 해서 영성이 깊어지고 특이한 개인의 기질이 하루 아침에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생각의 변화를 통하여 가치를 바꾸어 놓아야 합니다.
필자도 수년동안 주님으로부터 제자로 거듭나기 위하여 스스로 몸부림쳤음에도 불국하고 아직도 나에게 남아있는 특이한 개성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대하는 자세와 자녀들을 대하는 아버지로서의 태도와 성도들을 대하는 목회자로서의 삶의 자세에서 아직도 나의 특이한 기질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주님의 성품으로 교체가 덜 된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내 자신이 주님안에서 주의 형상을 이루기 위하여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방회나 노회에서 늘 체험되는 것 중에 하나가 목회자들의 특이한 개성을 보는 것입니다. 어떤분은 매우 법적입니다. 교단의 헌법을 다 쪽꿰고 앉아서 이러쿵 저러쿵 비판을 합니다. 어떤 분은 정치적으로 임원자리를 놓고 선후배를 따지며 열을 올립니다. 어떤분은 명함에 많은 이력을 가지고 기를 죽이는 그런 개성도 어떤 분은 총회 때마다 마이크를 잡고 자기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혈압을 높이는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모두가 은혜의 영성이 아닌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전형적인 표현인 것입니다. 목회자의 모임이나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면 우리의 속사람이 많이 침체되는 이유도 우리 속에 개성이 온전히 주님의 인격으로 동화되지 못한 육신에 속한 성도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처한 목회 현장인것입니다. 보고 배운 것이 그것 뿐입니다.
주님을 영으로 살아내는 선배들을 못만난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교리가 교단 신학이 가르쳐 주지않습니다. 목회의 현장에서 홀로 주님과 씨름하면서 터득하면 은혜이고 그렇지 못하면 기존틀을 베껴 나가는 길밖에 다른 방안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천편일률적으로 많은 강의와 세미나를 통하여 공급받는 이론들로 모두가 복제양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 어떤 분은 말을 함부로 내 뱉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직선적이고 바른 말을 하는 급한 성격때문이라고 변명합니다. 또는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듣고는 자신은 불의를 보고 못참는 성격이니까 가서 따져야 한다고 하면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하여 핏대를 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분이 나뻐서 혹은 아무개가 꼴보기 싫어서 등등 우리 자신의 특이한 개성이 생활중에 그대로 투사가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당신안에 당신만의 개성이라고 주장하는 기질은 없는지 체크를 해 보도록 합시다.
이 부분이 주님으로부터 훈련되어져야 합니다. 제자훈련 바로 이 부분을 놓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먼저 목회자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27년을 목회자로 부흥사로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소위 신령하다는 목사도 세상에 저런 목사가 있나 싶을 정도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교단과 한국교회에 큰 영적인 공항 상태로 몰고간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 목회자가 한국교회가 스스로를 반추해 보야야 합니다.
나름대로 한국교회의 표상이라고 성장의 모델이라고 보아왔던 교회,나대로 명설교가로 이름을 날리던 목회자와 교회가 보여준 육적인 생각과 그들의 거듭나지 못한 속셈들 보면서 아니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실감이 나면서도 이 땅에 주의 형상을 닮은 진정한 교회모델과 주님의 성품을 살아내는 초대교회의 사도와 같은 주님의 사람들이 흔하지가 않다는 데 교회의 위기라고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앞에 교회의 성장 모델, 바람직한 목회자상, 이것이 아니구나 어떤 이력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큰 교회의 목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속사람이 얼마나 주님을 닮았느냐 얼마나 주님의 제자로 훈련되어 주님의 임재 가운데 서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구나를 생각합니다. 허세 부리지 맙시다. 더이상 자신에게 속지 맙시다, 우리속에 모든 우상화의 위험을 다 제거하고 주님의 온전한 지성소가 되기 위한 훈련을 스스로 주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때입니다.
교회도 살고 목회자 자신도 살아남기 위하여 뼈를 깍는 경건의 훈련을 시행할 때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미끼로 옛뱀인 사단이 목회자를 넘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결국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부서지지 않는 옛사람과 약함 떄문에 마귀의 덫에 걸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 대상에서 예외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마귀의 공격 목표인 개인이 갖는 이 특이성을 어떻게 훈련하여 영적인 주님의 제자로 주앞에 설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 보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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