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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성전 봉헌 /왕상 8:1-6, 10-11

by 【고동엽】 2022. 1. 19.

솔로몬의 성전 봉헌

 

왕상 8:1-6, 10-11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

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

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 함이었더라.

 

사람에게 목표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이 살아가는 사람과는 그 삶의 내용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길게는 인생 전체에 대한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살고 짧게는 오늘 하루의 계획과 일주일의 계획과 일년의 계획을 수립하여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계획된 삶을 살아가고 노력하는 삶은 바람직한 생활 태도입니다. 솔로몬에게는 왕이 되자마자 두 가지 큰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나는 일천 번제를 드리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일천번제는 성공적으로 이루었습니다. 그 일로 솔로몬은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하는 일도 마침내 다 뜻을 이루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이 마침내 완공되었습니다. 이 성전은 솔로몬 왕이 즉위 한지 4년 되던 해 시브월에 그러니까 기원 전 966년 2월에 기초석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7년 6개월 만인 기원 전 959년 불월인 8월에 성전건축이 필역되었습니다(왕상 6::38). 이것은 오래 걸린 것도 아닙니다. 에베소의 다이아나 신전은 200년 걸려 완공하였습니다. 애급의 피라미드는 20년 걸려 건축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마침내 7년 동안 부대공사까지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감격스러운 봉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왕상 8장은 봉헌식 하는 장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8장1-11절은 언약궤를 안치하는 내용입니다. 12-21절까지는 찬송하고 22-26절까지는 봉헌사를 하고 27-53절까지는 봉헌기도를 하고 54-61절 까지는 국민을 위한 왕의 축복기도 내용이고 62절에서는 봉헌 제사를 드리는 내용입니다. 이때가 초막절일 때이므로 초막절을 위한 잔치가 일주일간 이루어졌고 봉헌식을 위한 잔치가 또 1주일 동안 지켜졌습니다. 그래서 모두 14일간의 감격스러운 잔치를 배설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1-11절까지는 언약궤를 안치하는 내용입니다. 성전의 의미는 이 언약궤라고 하는 법궤가 있어야 합니다. 성전은 처음 광야생활 할 때는 회막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중에는 일반 막사와 구별하기 위해서 회막을 성막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영구 건물로 바꾸면서 성전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제1성전”이라고 부르고 “솔로몬 성전”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다가 포로로 잡혀 갈 때 이 성전이 부서지게 됩니다. 그리고 스룹바벨이 포로에서 돌아와 재건하여 다시 지은 것이 “제2성전”이라고 부르고 후에 또 다시 포로로 잡혀 가고 불타서 부서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성전을 헤롯이 다시 건축하여 예수님 당시까지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성전을 “제3성전” 또는 “헤롯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이 성전의 역사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에는 몇 가지 의미가 들어 있어야 우리는 그것을 비로소 성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지성소

 

열왕기상 8장21절을 보면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다”고 했습니다. 성전의 구조를 보면 전체 건물 중에 2/3는 성소이고 1/3은 지성소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 둘 사이에 휘장이 쳐져 있습니다. 성전은 이 두 공간이 있어야 성전입니다. 성소만 있으면 성전일 수가 없습니다. 지성소가 없으면 그 건물은 회당이나 일반 건물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성전은 지성소가 있어야 합니다. 지성소란 어떤 곳인가 하면 그곳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는 곳입니다.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7월 10일 날 속죄일 날 한번 들어갑니다. 들어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않고 반드시 손에 피를 들고 들어갑니다. 속죄의 피입니다. 그 때는 아무도 그곳을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철칙입니다.

이것을 오늘 현대교회에 적용한다면 교회란 반드시 지성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옛날 우리나라 집에는 권위공간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곳이 사랑방입니다. 안채에서 어린 아이들이 울다가도 “사랑방에 할아버지가 계시다”하면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그쳤습니다. 그리고 조심했습니다. “사랑방에 할아버지가 계시다”, “어흠” 기침소리만 들려도 온 집안이 조용했습니다. 그때는 사랑방이 권위공간이었습니다. 어느 집이든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공간이 있어야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공간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모든 주택이 개량되다 보니까 이 공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두 모여 함께 살다 보니까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별 사람이 아닙니다. TV 앞에서 아이들과 어른이 앉아서 채널 싸움하는 것을 보면 아이나 어른이나 똑 같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는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돈을 아버지가 벌고 쓰기는 어머니가 쓰게 되니까 실력행사는 어머니가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용돈을 타 가는 모습을 보고 자라납니다. 가장 큰 실력행사는 돈을 가지고 어머니가 합니다. 고로 아이들도 생존하려면 어머니에게 곱게 잘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용돈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보기에 아버지는 주가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아버지 앞에서 버릇없이 대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 아이들이 조심하는데 그 공간이 없으니까 아이들이 제멋대로 자라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어디엔가는 권위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도들이 교회에 오면 몸조심을 하게 됩니다. 이곳에 없으면 버릇이 없어집니다. 옛날 중세 시대에 교회를 건축할 때 신경을 많이 쓴 이유가 그래서 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엄숙한 분위기를 나타나도록 지었습니다. 그래야 몸조심하기 때문입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밖이나 안이나 환하고 마치 마을회관 같으면 자세변화가 일어나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를 지을 때는 건축에 신경을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공간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전에는 지성소가 있어야 합니다. 21절을 보면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지성소를 마련했다는 말입니다.

 

법궤

 

성전에 지성소가 있어도 그리고 그곳에 휘장이 쳐져있어도 그 안에 법궤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곳에 언약궤를 모셔졌으니까 그곳이 지성소인 것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법궤가 있는 곳이 성전인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 하나님이 계셔야 교회입니다. 신자가 많이 있어야 하지만 그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셔야 그곳이 교회이고 성전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교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은 아주 슬픈 사실입니다.

어떤 일본인이 세계 여행을 한 후 신문에 기고를 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오늘 구라파나 영국교회는 하나님이 이미 오래 전에 다녀가신 교회같이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구라파의 교회를 가보면 큰 교회인데도 안에는 텅 비어있고 썰렁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미국교회는 하나님이 얼마 전에 다녀가신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교회는 아직 온기는 약간 있는데 마치 구라파 교회처럼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동남아시아의 교회들을 가보면 지금 하나님이 거기에 와 계신 것 같이 뜨겁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오늘 유럽의 교회들은 하나님이 이미 오래전에 다녀가신 교회들 같이 한결같이 썰렁하고 텅텅 비어 있고 찬바람만 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에 지금 계셔야 그곳이 성전이고 교회입니다. 신자들이 아무리 많은 교회라 할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안 계시면 그곳은 성전도 교회도 아닙니다. 이것이 교회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교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예배보다 프로그램이 왕성합니다. 이것은 한결같은 현상입니다. 오늘 현대교회는 이 프로그램이 예배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 예배는 간단히 드리는 경향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행사에 온 마음을 다 기울입니다. 거기에 무슨 진정한 예배가 있겠습니까. 또 하나는 갈등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예배드려야 할 교회 안에서 온갖 갈등과 편이 갈라져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 교회 어디에 하나님이 계시겠습니까. 오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교회가 많습니다.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권위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교회에서 어떻게 갈등과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겠습니까. 교회 안에는 권위공간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법궤속의 성물

 

옛날 법궤 속에 3가지 성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십계명 돌비 두 개”입니다. 그 돌비는 하나님의 계명이 새겨져 있고 하나님의 계율과 법도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둘째는 “만나 한 호멜”이 담겨진 금 항아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먹이신 양식입니다. 세 번째는 “싹난 아론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세계의 제사장 나라를 삼으시겠다고 부르셨습니다. 아론의 마른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은 온 세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생명을 전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들어 있음을 암시한 것입니다. 시온성에 임시로 안치되어 있던 이 법궤가 마침내 솔로몬이 모리아 산상에 성전을 짓고 그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열왕기상 8장9절을 보면 그 법궤 속에 3대 성물 중 돌비 하나만 들어있었다고 했습니다. 두 가지는 이스라엘이 불레셋과 전쟁할 때 엘리 제사장이 법궤를 전쟁터까지 끌고 가서 마침내 불레셋에게 빼앗겨 굴러다니던 중에 내용물이 분실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돌비는 무거우니까 그때까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솔로몬 성전이 법궤를 모시긴 하였는데 1/3밖에 모시지 못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성전은 최상으로 완벽하게 건축해 놓았는데 그곳에 정작 중요한 법궤 안에 있어야 할 내용은 다 분실되어 버리고 내용물이 1/3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건축한 솔로몬 성전이 외형으로는 완벽하게 지어졌지만 내용으로 보면 완전한 성전이 못되는 것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빠졌으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반성할 일은 교회들이 이것을 다 구비하여야 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구비하여야 그곳이 비로소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3밖에 없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도 주전 586년에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다 60년 만에 돌아오긴 했는데 와서 성전을 재건도 했는데 그 때는 그 돌비조차도 없어져버린 성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헤롯 성전은 준공도 못했습니다. 그 안에 법궤도 없는 건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때는 그 성전 안이 온갖 가축시장으로 노름하는 그런 장소로 변해 버렸었습니다. 교회는 시설도 좋아야 하고 분위기도 좋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정말 필요한 지성소와 법궤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그런 물체가 없어진 대신 교회 안에는 진정한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는 진정 뜨겁고 간절한 기도와 찬양과 봉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이 하나님이 계신 성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봉헌 기도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하고 마침내 27-53절까지 봉헌기도를 합니다. 그 봉헌기도 내용이 8가지입니다. “이 성전에 와서 기도할 때 왕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27-30), 범죄자라 할지라도 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거든 그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31-32), 이 백성들이 죄를 지어 전쟁에서 패할지라도 와서 기도하거든 들으소서(33-34), 백성들이 범죄하여 날이 가물어 비가 오지 않거든 성전에 찾아와서 기도하거든 용서하시고 비를 내려 주소서(35-36),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백성들이 와서 기도하거든 들으소서(37-40),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거든 그들의 기도를 들으소서(41-45), 전쟁에 나가기 전 출전의 기도를 들으소서(44-45), 백성들이 죄를 지어 적국에게 잡혀 갔을 지라도 먼 곳에서 이 성전을 향하여 회개의 기도를 할 때 그들의 기도를 들으소서(46-53)” 등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어디서 기도하던지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달라고 한 나라의 왕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장면입니까. 한 나라의 왕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를 합니다. 이 백성을 축복하시고 이 백성들이 기도하면 그 기도를 응답하여 주시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솔로몬이 그렇게 기도하기를 마치고 일국의 왕이 또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을 기원했습니다. “이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만 하나님 이신 줄 알게 하라, 그리고 온전히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법도와 계명을 지키라“(왕상 8:60-61)고 축복하고 격려하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왕과 백성들이 모두 함께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내려왔습니다(9:3-). “내가 네 기도를 들었은즉 .... 내 이름과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 네 왕위를 견고하게 하리라”.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이 신속하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니 그날 얼마나 봉헌예배에 감사가 넘쳤고 은혜가 충만하였고 감격이 주어졌겠습니까. 그래서 그날 초막절 잔치를 7일간 하고 또 봉헌잔치를 7일가 더하여 모두 14일간의 잔치를 하게 됩니다. 본문을 보면 “하맛 어귀에서 애굽강까지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였다”고(왕상 8:65)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흩어져 살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모여 기쁨으로 봉헌식을 하고 잔치를 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위로는 왕과 방백들과 신하들과 아래로는 시골 마을 필부들까지 다 모여 성대하게 봉헌식을 가졌다는 말입니다. 그날 솔로몬은 봉헌사를 하였고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기도를 하였고 또 축사를 하였고 화목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소망과 희망과 감사와 영광이 충천했던 날입니까. 그러니까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날, 그 때를 오늘에 다시 재연해 보자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다음 우리교회가 성전건축을 위한 천일 기도회가 마쳐지는 날쯤 우리도 그렇게 봉헌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날 우리교회도 그런 심정을 가지고 봉헌의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좀 힘들지만 우리의 미래에는 그런 소망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힘써 성전을 건축하십시다. 그리고 그날 우리 모두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께 감격의 봉헌 예배를 드립시다. 그런 후에 우리 모두 이 교회를 중심해서 자자손손이 은혜를 입고 우리의 기도에 신속한 응답을 받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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