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이레
왕상 7:13-15, 21-22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그는 납달리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
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왕에게 와
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성경에 보면 여호와 이름과 연결되어 나오는 명칭들이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 닛시(Jehova - nissi)라는 명칭입니다. 이 말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호전적인 아말렉 군대와 싸워 이긴 모세가 르비딤에 전승 기념비를 세우고 그곳 이름을 “여호와 닛시”(출 17:15)라고 부름에서 연유된 명칭입니다. 또 “여호와 샬롬”(Jehovah-Shalom)이라는 명칭도 있습니다. “여호와는 평강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미디안군과 싸우라고 계시를 내렸습니다. 산지에서 농사를 짓던 기드온이 너무 당황해서 거절하다가 계시자를 시험하며 내가 바가지에 국물을 가져다 땅에 부을 것이니 한번 태워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그 국물을 다 태웠다고 했습니다. 그때 기드온이 너무 놀라서 “내가 감히 여호와를 시험했습니다”하고 두려워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걱정마라, 너는 죽지 않으리라”. 그때 기드온이 “여호와 샬롬(삿6:24)”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또 “여호와 이레”라는 말도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Jehova-jere)라는 말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라는 신명을 받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도착하여 이삭을 잡으려 할 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아이에게 손대지 말라, 내가 네 믿음을 보았느니라.” 그리고 뒤를 보니 하나님께서 대신 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준비된 양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한 말이 “여호와 이레(창22:14)”라는 말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셨다”라는 뜻입니다. 그때부터 모리아산은 “여호와 이레산”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생각밖에 일이 잘 될 때 우리는 “여호와 이레”라고 말합니다. 나는 상상도 못했는데 이미 여호와께서 다 준비하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호와 이레라는 말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와 이레”가 어떤 것인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고 부대시설을 서두르는 모습이 나옵니다. 건물은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교회는 크게 지었는데 화장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면 후속조치가 미흡한 것이 됩니다. 또 건물의 앞부분을 잘 처리하고도 보이지 않는 곳을 미흡하게 하면 후속조치가 미흡한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보이는 앞부분은 잘 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뒤편이나 후미진 곳은 마무리를 잘 안 합니다. 부실시공 일수록 그런 현상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새 건물인데도 비가 오면 물이 새고 틈이 갈라집니다. 그 점에서 솔로몬은 완벽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완료한 후에 후속조치를 취했습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히람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두로 왕 이름이 히람인데 그 백성 중 한사람인 히람이 또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납달리 지파인 유대여인이었고 아버지는 두로 사람인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히람이 혼혈인입니다. 이 히람이 현재 두로에 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놋으로 기구를 만드는 청동기술자입니다. 두로 왕 히람이 놋을 잘 다루는 기술자인 이 히람을 솔로몬 왕에게 추천했습니다. 솔로몬이 이 사람에게 부대시설을 맡겼습니다. 여기서 몇 가지 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술자나 실력자는 언제나 초야에 묻혀도 발굴된다는 것
금덩이는 아무리 땅속 깊이 묻혀 있어도 사람들은 땅을 파 헤치고 꺼냅니다. 금덩이는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그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 선전 안 해도 발굴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어느 면에서 능력이 있고 기술을 지니고 있으면 자기선전을 하지 안 해도 언젠가는 발굴되어 빛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목사의 경우도 꾸준히 자기향상을 도모하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부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인도 마찬가지 입니다. 실력자는 누구나 마찬가지로 발탁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너무 인간적으로 수단을 쓰고 빽을 동원하고 돈을 들고 다니는 것은 실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람이 실력이 없으면 늘 빽을 써야 하고 돈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실력을 갖추면 내가 나서지 않아도 빛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 히람이라는 사람도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저 이방땅 변방에서 초라하게 살아가던 어느 무명의 부족이었습니다. 거기다 유대 여인과 두로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놋을 다루는 청동기술 숙련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마침내 두로 왕의 추천으로 솔로몬에게 발탁되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준비하고 있으면 이렇게 발굴되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필요하신 일이면 하나님이 이렇게 예비해 두셨다가 내 보내십니다. 그런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여호와 이레”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히람이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데 참여하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이방 나라 왕이 추천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준비된 사람은 하나님은 언제나 이렇게 빛을 보게 해서 등용하십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이 예비해 두셨던 사람
이 일이 하나님을 위하여 꼭 필요한 일이라면 하나님은 필요한 재정도 사람도 예비해 두십니다. 이것이 내 일이라면 몰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하나님은 필요한 사람을 예비하시고 준비해 놓으셨다가 필요할 때 내 보내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여호와 이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종종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꼭 필요한 일을 할 때, 하나님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와서 돈을 내 놓으며 일을 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방법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부대시설을 하는데 놋을 다루는 숙련된 세공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나라에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그때 생각도 못했는데 두로왕 히람에게서 사람을 보낼 테니 활용해 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보니까 시골구석에 박혀있던 히람이라는 사람이 왔습니다. 솔로몬이 그렇게 찾던 놋을 다루는데 1인자인 사람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상상도 못했는데 하나님이 그를 예비해 두셨다가 오늘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이레”아닙니까. 이 사람이 얼마나 신비한 사람인가 하면 14절을 보면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놋을 다루는 장인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놋을 다루는 일을 그에게 전폭적으로 맡겼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감추어 숨어 있어도 세상이 발굴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히람이라는 사람이 일을 너무나 충실하게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마침내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가 한일이 몇 가지 있습니다.
기둥 두개를 세우는 일
본문 15절을 보면 히람이 놋으로 만든 두 기둥을 성전 앞 현관에 세웠다고 했습니다. 그 높이가 18규빗이라고 했으니까 (한 규빗은 약 45센티) 8m 10cm 되는 높은 기둥 둘을 성전 문 앞에 좌우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기둥 이름을 “야긴”(Jachin)이라 했고 왼쪽 기둥 이름을 “보아스”(Boaz)라고 명명했습니다. 이것을 히람이 세운 것입니다. 야긴이라는 뜻은 “저가 세우리라”는 뜻이고 보아스 라는 뜻은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갈등도 생기고 고민도 생길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때 발생한 일에 비해 내 힘이 부족해서 감당할 수 없을 때 능력의 불균형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해야 하겠는데 힘은 부족하고 그래서 고민이 생깁니다. 그때 고민하고 갈등하기 전에 한번 물어 보아야 합니다. “이 일이 정말 하나님께 꼭 필요하신 일인가”, 이 일이 하나님께 꼭 필요한 일 같으면 “반드시 하나님이 허락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야긴입니다.
우리들에게 이 야긴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초조하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일이라면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야긴입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는 일이면 괜히 나 혼자 동동거려도 안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때는 내가 동동거리지 않아도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그래서 야긴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도다”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이 일이 하나님께 절대 필요한 일이다”라고 생각될 때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는 능력이 있으니까” “하나님이 하실 것이니까”. 그래서 보아스입니다. “그에게는 능력이 있도다.” 이 무명의 사람, 시골 구석에 뭍혀있던 이 초라한 사람 히람이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오더니 이 두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과 보아스라고 지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런 뜻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무릎을 쳤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적소에 적기에 보내 주셨는가” 생각하면 신기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여호와 이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 놋인가
금으로 할 수도 있고 은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인데 왜 값싼 동으로 했습니까. 나무는 최고의 나무인 백향목을 레바논까지 가서 찍어다 사용했고 돌도 가장 좋은 돌을 떠다 했습니다. 그런데 기둥을 세울 때는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놋은 값이 나가지 않는 물질입니다. 오히려 서민 냄새가 나고 평범한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메달 가운데서도 동메달이 가장 값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놋의 쓰임새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성전안의 모든 기구는 놋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성전안의 제금, 나팔, 갑옷, 방패, 창, 대야 등 모두 금이 아니고 놋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존재도 금이 아니고 은도 아니고 동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놋이 보여주는 투박함처럼 인간의 삶에 직접 오셔서 눈물을 흘리시고 고통을 감내하시고 타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인간의 약함을 친히 체휼하시는 그 예수님의 성품이 마치 동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물을 드리기 전에 먼저 놋으로 만든 목욕장에 들어가서 몸을 씻고 들어갔습니다. 우리들이 예수께 나아가야만 정결하게 되듯이 제사장들도 놋바다에 들어가서 몸을 씻은 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히람이라는 사람이 성전 앞에 기둥을 세울 때 그 재료를 놋으로 했습니다.
성전 정문에
히람은 이 두 기둥을 성전 앞 좌우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두 기둥 이름을 야긴과 보아스라고 붙였습니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성전 앞에 서 있으면 큰 기둥 둘을 먼저 보게 될 것입니다. 모든 건물은 정문과 현관 부분이 얼굴입니다. 사람의 간판이 얼굴인 것처럼 얼굴이 번듯하게 생겼으면 보기에 좋듯이 모든 건물들도 현관이 얼굴입니다. 그 현관을 보면 그 건물의 품위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얼굴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굴을 가꾸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사람의 내면과 마음과 정신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의 문제입니다.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은 현관의 모습부터 봅니다. 그리고 그 건물의 내부도 중요하고 공간배치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얼굴을 본 다음에 할 일입니다.
우선은 앞부분이 중요합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 앞 얼굴에 큰 기둥 둘을 좌우에 배치한 성전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시원하게 생겼겠습니까. 장엄하고 엄숙하기까지 했을 것입니다. 현재 우리교회가 건축한지 40여년이 되었어도 그렇게 초라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현관 앞에 세워진 높은 기둥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보면 보기에도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그 의미
이 히람이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운 것은 큰 이유가 있습니다. 거기에 신앙적인 큰 문제가 들어 있습니다. 그 당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살면서 원주민 일곱 족속을 모두 소탕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원주민을 소탕하라고 하셨는데도 백성들은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이 원주민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서워했습니다. 그래서 순종하였고 종노릇도 잘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이 원주민들이 왕성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국들도 호시탐탐 이스라엘 백성을 노렸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불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내심 불안해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때 성전을 짓게 되었고 성전 앞에 이 두 기둥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우편에는 야긴 즉 “하나님이 세우리라”는 뜻으로 세웠습니다. 백성들이 그 기둥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신다”라는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왼쪽에 보아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라는 기둥을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무명의 사람에게 그런 깊은 지혜와 뜻이 나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히람은 백성들에게 제사장 못지않게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만들었고 두려움 속에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호소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사실 오늘도 우리에게 이 야긴과 보아스의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삶도 하나님이 세워주시고 하나님이 받쳐 주시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나의 삶도 하나님이 세워 주셔야 온당합니다. 그런 고백을 하면서 하나님께 나의 삶을 위탁하고 살아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신앙인들도 야긴과 보아스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면서 이런 생각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사람을 미리 준비해 두셨다고 이주 적절한 시간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일을 시켰더니 마침내 이런 기술을 발휘하고 아이디어를 창안해 내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두 기둥을 앞에 턱 세워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격려를 입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솔로몬은 성전건축을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대하게 백성들과 함께 봉헌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도 건축이 완성되기 까지 이런 놀라운 일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무명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체험하였듯이 여러분들도 그런 체험을 이번에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성전이 완성되어 기쁨으로 온 성도들이 봉헌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영광이 여러분들에게 주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새워 고민할 일 /마 6:25-34 (0) | 2022.01.19 |
---|---|
솔로몬의 성전 봉헌 /왕상 8:1-6, 10-11 (0) | 2022.01.19 |
솔로몬의 성전 /왕상 6:1-3, 9-10 (0) | 2022.01.19 |
다윗의 소망 /삼하 7:1-3 (0) | 2022.01.19 |
하늘이 주는 기쁨 (3) /빌립보서 4:8-9 (0) | 2022.01.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