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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δεδομένα 18,185편 ◑/κενός χώρος

찬양하는 사람들

by 【고동엽】 2022. 1. 17.

대하 20:20~26

1872년 프랑스 호화여객선 드 아브르호가 뉴욕을 떠나 영국으로 항해하던 중 바다 가운데서 영국의 철선과 충돌하여 침몰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선객 중에는 당시 시카고의 사업가요, 변호사인 스팻포드의 부인이 네 딸과 함께 여행길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의 순간이 엄습해 옵니다. 스펫포드 여사는 두려움과 혼란의 와중에서 네 딸과 함께 무릎을 꿇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네 자녀의 생명을 구해주소서. 그러나 당신의 뜻이거든 기꺼이 죽을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잠시 후 선체는 완전히 침몰하였고 네 자녀도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스펫포드 여사는 표류하던 중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그녀는 곧 시카고에 있는 남편에게 '홀로 구조됨' 이란 전보를 보냈습니다. 비보를 접한 스펫포드는 즉시 영국행 여객선에 승선했습니다. 얼마 후 선장이 그를 불러 지금 자녀들이 탔던 배가 침몰한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검푸른 파도가 일렁이는 비극적인 현장을 목도하면서 스펫포드는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어찌하여 나의 사랑하는 네 아이를 데려갔습니까? 나를 버리신 것입니까?". 그러나 그의 확실한 신앙은 가슴이 터질듯한 아픔을 정복케 하였습니다. 비통한 아버지의 심정이 밤새도록 하나님을 향해 시로 읊어진 내용이 찬송가 470장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성경은 이사야 43장 21절을 통해 하나님께 돌릴 수 있는 영광은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 즉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은 찬송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찬송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끝없이 우리에게 탐욕스러운 마음을 주어 불평케 합니다. 마음과 입술을 강퍅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하도록 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누가 참 그리스도인입니까?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좋을 때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스펫포드와 같이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은 위기를 앞에 둔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백성들이 기도와 찬송을 통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모압과 암몬, 에돔 세 나라의 연합군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이스라엘을 쫓아 버리려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쳐들어 왔습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은 머리를 땅에 대고 백성들은 몸을 굽혀 하나님께 경배하면서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찬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찬양하는 사람들을 군대보다 앞세웠을 때 유다에게 하나님은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승리하는 사람들은 찬양하는 사람들입니다. 찬양하는 사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첫째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입니다

1967년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과 전쟁이 터졌을 세계의 언론들은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망할 것이라고 예측하였습니다. 군사력이나 인구의 숫자 그리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경제력에 있어 석유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아랍 연합국에 비해 비교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쟁 초 이스라엘은 "우리는 공개할 수 없는 최신 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무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 것이다" 라고 전 세계 앞에 기염을 토했습니다. 세계 군사 전문가들과 미국의 정보당국은 극비리에 그 정체를 밝히기 위해 나섰지만 어느 정보기관도 그 최신 병기의 실체를 밝히지 못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이스라엘이 밝힌 최신 무기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함이 그들의 최신 무기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무기를 믿고 용감히 싸웠고 결국 6일 만에 거대한 아랍 연합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본문 20절에서 여호사밧 왕은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칼이나 창이나 방패로 무장하지 말고 하나님으로 무장하라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싸우라는 것입니다. 성서학자 매튜헨리는 그들의 무장을 가리켜 믿음의 갑옷을 입었노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한 가지를 맡기면 한 가지를 맡아 주시지만 모든 것을 맡기면 모든 것을 맡아 주십니다. 전폭적으로 신뢰하면 전폭적으로 견고해지나 부분적으로 신뢰하면 부분적인 견고함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신뢰하라는 것은 야하시엘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는 뜻입니다. 선지자를 신뢰하면 형통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과 유다 민족의 무기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강력한 무기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승리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무역센터인 쌍둥이 빌딩이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에 의해서 무너졌을 때입니다. 세계가 깜짝 놀라는 위기를 당했을 때, 미국은 신앙으로 뭉치는 저력을 전 세계에 보여 주었습니다. 미국의 교회마다 집회열이 일어났습니다. 찬송이 힘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약한 찬송을 부른 게 아니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영광 영광 할렐루야 곧 승리하리라" 를 전 국민이 일어서서 손을 높이 들고 찬송하며 마음을 모았습니다. 미국 전 방송은 대형교회들의 기도회와 찬양집회를 중계하였습니다. 미국은 테러 때문에 혼돈하고 불안하기보다 오히려 신앙으로 뭉치게 되었습니다. 결국 미국은 하나님의 승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본문 21절에 "백성으로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의 노래하는 자를 택하였다는 말은 성가대를 의미합니다. 거룩한 예복을 입었다는 것은 가운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전쟁터에 나가며 군복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칼을 든 것이 아닙니다. 가운을 입고 찬양했습니다. 그리하여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어 이기게 하셨고 나중에는 적군끼리 죽이고 죽는 대 살육전이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전쟁터에서의 유다 백성들이 큰 소리로 부른 찬양은 믿음의 찬양이었습니다. 감사의 찬양이었습니다. 승리의 찬양이었습니다. 열심히 찬송할 때 적군은 패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찬송 가운데 거하십니다. 시편 22편 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고 하였습니다. 메튜 헨리는 하나님은 성도들이 진심으로 찬양할 때 그들의 일을 도우신다고 하였습니다. 찬송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반드시 나타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살다보면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군사력이나 전략적인 면에서 유다는 연합군을 감히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방법대로 찬송할 때 하나님의 승리를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승리하는 교회에 찬송이 살아 있습니다. 찬송이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찬송하는 성도는 생각지 못했던 승리와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송축하는 사람들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찬양사역자인 밥 소르기 목사가 찬양집회 도중에 성대를 다쳤습니다. 이후에 목소리를 잃어버려 전혀 찬양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말하기도 힘들게 되었습니다. 찬양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에게는 마치 사형선고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소르기 목사는 말합니다. "저는 제 목소리가 이렇게 되기 전에는 정말 우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저는 밤마다 울었습니다. 울면서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제가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입니까?' 제 평생에 그렇게 강렬하게 하나님을 추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큰 불행 속에서 그는 수많은 꺾임을 경험했지만 거기서 일어섰을 때에 도리어 더 큰 축복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잃은 이후에 찬양을 보다 넓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좁은 의미의 찬양이 아니라 삶 전체로 드리는 찬양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 후에 그는 이전보다도 훨씬 더 많은 지역에서 연약한 목소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난 중에서 찬송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고난에서 나오는 찬송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문 26절을 보니 "제4일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고 했습니다. 유다 민족이 모여 찬송했던 브라가 골짜기는 지금의 와디베 라이쿠트 골짜기입니다. 본래 브라가 골짜기의 뜻은 '송축의 골짜기' 입니다. '송축' 이란 말은 '경사를 기리고 축하한다' 는 뜻입니다. 유다 민족이 그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를 감사하고 축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브라가 골짜기는 축하의 골짜기요, 감사의 골짜기입니다. 만일 그들이 찬양으로 싸우지 않았더라면 브라가 골짜기는 참패와 수치의 골짜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님을 송축하는 찬양이 있다면 어떠한 악도, 사단의 세력도 결코 우리를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찬양은 절망도 걱정도 불안도 격동도 울분을 가져오는 실체인 마귀를 물리치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모나코 국가는 국립교향악단의 숫자가 85명이며 군인의 숫자는 82명이라고 합니다. 군인의 수보다 교향악단원의 수가 더 많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찬양하는 성도가 많아지기 원합니다. 회의 시간보다, 잡담하며 한담하는 시간보다 찬양의 시간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기 원합니다. 입에서 찬송이 떠나지 않는 사람은 마음에 승리감이 넘칩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소망이 넘칩니다.

임명받은 성가대와 성도들은 이제 찬송을 부를 때 뜨겁게 부르시기 바랍니다.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찬양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회복케 하며 가능케 하는 찬양을 드림으로 천국 가는 그 날까지 항상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광일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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