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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넘어서 /행 8:1-6

by 【고동엽】 2022. 1. 10.

벽을 넘어서

 

 

행 8:1-6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기독교 역사에는 3기의 시대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시대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 성령강림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이 세상에 교회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교회시대가 열리자마자 이 세상에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 예수님의 제자 12명의 시작으로 곧 70명의 제자로, 120명의 제자로, 그것이 3천으로 다시 5천명으로 그 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을 하게 되고 마침내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사마리아로 로마로 유럽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를 교회시대라고 부릅니다.

 

그러다가 제 2기 은혜시대로 들어갑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시대였습니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복음이 오늘은 이 땅에까지 선교사들의 발걸음이 옮겨와 마침내 우리들까지 복음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을 가리켜서 은혜의 시대이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은혜시대의 마지막 때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복음의 끝이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 3기가 추수기 입니다. 마지막 남은 자들을 추수하는 때라는 말입니다. 이제는 믿을만한 사람들은 다 믿고 있습니다. 이제는 예수를 몰라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를 모르는 사람은 아주 오지에 살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복음을 알면서도 마음이 강퍅해서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지막 남은 사람들을 전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에서 파송 받아 세계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이 20,0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선교사들이 가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형태도 여러 가지 일 수 있습니다.

 

 

 

전통적 선교

 

 

 

이 전통적 선교방법은 사람이 직접 가서 전하는 형태입니다. 직접 가서 복음을 전하려면 고생이 많습니다. 우선 생명의 위협이 있습니다. 특히 모슬렘 지역에는 숫한 위협이 있고 밤에 와서 집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일도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선교하던 어느 선교사는 밤에 길을 가는데 괴한의 칼침을 맞았습니다.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는 선교사들은 북한의 위협이 대단합니다. 지금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 탈북자들을 돕고 있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그중 김동식 목사의 경우는 중국 연길시에서 탈북자들을 돕고 보호해 주는 선교사역을 하다가 북한에 의해서 납치되어 4년이 지난 오늘까지 생사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 선교사가 납치당할 때 직장암 2기로 인공항문을 써야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약을 먹고 환부에 발라주어야 하는데 납치된 후 가족들이 그 약을 북한에 반입시켜 주려고 애를 썼지만 북한은 끝내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선교사는 북한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런 위협을 느끼며 선교하는 선교사들이 많습니다.

 

또 환경의 열악함도 문제입니다. 네팔이라는 나라는 산악지대입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대단히 춥습니다. 네팔에서 선교하던 어느 선교사는 부부가 밤에 전도를 나간 사이 아이들이 집에서 추우니까 난로 불에 의지해 있다가 화재가 발생해서 아이 둘이 한꺼번에 불에 타 죽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금 선교사들이 각 나라에서 이렇게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또 풍토병도 문제입니다. 주진국 선교사의 경우는 말라리아 병에 18번이나 걸리고 19번째 병에 걸렸을 때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또 교육의 열악함도 문제입니다. 특히 불교나 모슬렘국가에서는 아이들이 불교와 모슬렘의 예배의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리고 식생활도 문제입니다. 우간다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님은 얼마나 고생하느냐고 물으니까 지금 선교하고 있는 지역은 너무나 만족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에서는 물이 없으니까 음식을 오줌으로 버무려 먹는다고 합니다. 그런 부족에 가서 선교했다면 그것을 먹어야 하는데 그런 음식을 먹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부족은 선교사가 추장의 아들이 병들어서 기도해 고쳐주었는데 추장이 너무 고마워서 환대한다는 것이 오늘밤 여러 아내 중 한사람을 골라 잠을 자라고 하더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 부족의 전통적인 환대 방법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표정을 보니까 그런 곳에 가서 선교하면 좋겠다. 하는 표정들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죄라고 거절하니까 호의를 무시했다고 죽이려 하더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까스로 이해시켜 무사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문제입니다. 모두들 나이가 들면 노후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 선교사들은 노후준비라는 말은 사치스러운 일입니다. 아무 준비가 없습니다. 말 그대로 그날그날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조건들이 모두 장벽입니다. 이 장벽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이런 장벽을 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런 선교사들에 의해서 이 지구상에 복음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통적 선교방식입니다.

 

 

 

후원자도 또 다른 선교사

 

 

 

전쟁은 전장에 나가서 싸우는 군인만 전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후방에서 물자를 공급해 주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 전쟁 참여자일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보급물자를 원활하게 전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쟁작전 중에서 보급로를 차단하는 작전이 가장 큰 작전입니다. 군인이 전장에서 잘 싸우도록 보급물자를 원활하게 보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교사들은 현장에 나가서 싸우는 군인이라면 여러분은 후방에서 물자를 공급해 주는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헌금이 없이는 선교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유능한 선교사라 할지라도 후방에서 원활한 기도와 물질의 보급이 없이는 선교가 불가능합니다.

 

어느 아들이 전장에 소집되어 갔습니다. 전장을 향해 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매일 밤 9시면 널 위해서 이 어머니가 눈물로 기도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 어머니는 매일 밤 9시만 되면 아들의 안전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전투는 치열했습니다. 한밤중에 전투가 벌어져 참호 속에 숨어 총격을 주고받는 중에 한 병사가 적의 총을 맞고 참호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때 누구도 부상당한 동료를 구하러 뛰어나갈 생각을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병사가 자꾸만 시계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젊은이가 뛰어나가 부상당한 병사를 끌고 참호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중대장이 물었습니다. “왜 시계를 자꾸만 보았는가” “예 9시가 되면 어머니가 나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시간입니다, 어머니의 기도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어떤 보급보다도 큰 물자의 보급입니다. 적지에 가 있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안전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기도로 후원하는 것이 가장 큰 후원입니다. 거기다 물질적 후원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후방에 있는 분들이 기도로 후원하는 것과 물질로 헌금하는 것은 전쟁 물자를 보급하는 일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헌금하십시오. 여러분들이 한번 외식하는 것이 한 선교사에게는 한 달 선교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점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선한 삶이 최상의 선교라는 점

 

 

 

선교하면 반드시 다른 나라에 나가서 선교하는 것만 선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선교는 오늘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예수를 알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선교일 수 있습니다. 때로 보면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살맛이 나고 행복함이 주어지고 감동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직장에서 일터에서 삶의 터전에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삶이 선교사의 삶입니다. 그 삶이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한 삶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를 주는 삶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삶이 얼마나 좋은 전도요 선교입니까.

 

어떤 사람이 이 나라가 싫어서 이민을 가려고 했습니다. 도무지 이 나라에 거짓이 많고 불의가 많고 무책임하고 사기가 많고 모두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모습들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민을 가려고 수속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주차장에 세워 놓았던 차를 누가 받아버렸습니다. 차가 심하게 찌그러졌습니다. 그런데 차 유리에 쪽지가 있었습니다. “운전이 서툴러 차에 흠집을 내었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전화번호를 적어놓았으니 연락주시면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이 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너무나 고마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민 가려던 계획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 시대, 책임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한 사람의 책임 있는 삶이 또 한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 감동이 이 사회를 고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시대를 선교사는 선교의 삶입니다. 모두 이 시대를 책임 있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벽을 넘는 책임 있는 삶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몫을 발견해서 그 일을 통해서 삶을 아름답게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가는 것도 최상의 선교의 삶입니다. 오늘은 겉치레, 체면, 전통, 가문의 체통을 너무 따집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고유한 삶의 몫, 내용, 사명, 은사들을 사장시키고 재미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의사의 자녀는 꼭 의사가 되라, 그리고 의사와 결혼해라, 재벌의 자녀는 반드시 재벌과 결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사회의 전통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그것이 너무나 싫은데 부모들은 강요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자녀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정략결혼이 성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삶에 행복이 없고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엊그제 어느 신문기사를 보니까 바로 그런 점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38세난 노종헌이라는 분은 외조부가 의사이고 아버지가 잘 나가는 의사였습니다. 그러면 그 집안의 등식은 아들은 당연히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는 의대에서 공부를 마치면 당연히 아버지의 병원을 이어받아 순조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이 가정의 뜻을 따라 당연히 모 대학 의대에 가서 공부해서 인턴을 지나 본과 졸업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길은 내 길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일은 내가 밤새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국가 자격시험을 치러야 하는 전날 의사가 되는 길을 포기했습니다. 가족들이 만류했지만 이 길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요리학교에 들어가 요리공부를 하고 돌아와 지금은 일류호텔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이 분이 음식을 만드는 일에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그 삶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지 모른다고 고백합니다. 손님들이 음식을 남기면 그 음식을 먹어가면서 왜 남겼을까, 맛이 없는가, 무엇이 부족한가를 연구하고 더 좋은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합니다. 그 삶이 자기에게 주어진 소명의 삶입니다. 그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몫입니다. 그러기에 그 삶에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행복함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서 인간의 값이 나타나고 뜻이 나타나고 보람이 주어지고 즐거움과 감동의 삶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 엊그제 감동스런 스토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새해 벽두 1월 2일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있는 탄광에서 폭발이 일어나 87M 아래 갱 속에 있던 광부 1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12명의 광부 중 한사람인 마틴 톨러 주니어라는 51세난 사람의 이야기가 화제였습니다. 이 사람은 갱 속에서 질식돼 죽어가면서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지금 아빠는 별로 고통스럽지 않단다, 잠에 빠져들고 있을 뿐이다, 너희들을 사랑한다, 모두에게 하늘나라에서 만나자고 전해주렴“. 그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평소처럼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 놓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 X인들의 모습 가운데서 가장 감동스런 모습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그렇게 죽어가는 모습입니다. 그때 유감없이 의연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이 세상에 남겨주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이 그 차원을 넘지 못하면 감동은커녕 추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벽을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 벽을 넘지 못해서 불화하고 추하게 살고 편을 가르고 내 것만 챙기느라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한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지요 고적지인 예루살렘을 주저하지 않으시고 파괴하셨습니다. 왜 예루살렘을 파괴하셨는가 하면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입니다. 예루살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폐쇄적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해서 더 나아갈 줄도 모르고 할 일을 찾아 움직이지도 않았고 복음을 더 멀리 전하려는 생각도 없이 안주하고 있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환란을 통해서 강제로 그들을 분산시켰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전국으로, 전 지역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 것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많은 병자가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더라.” 선교의 삶은 하나님의 제일의 관심사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렇게 강제로 하게 하십니다. 매를 때리니까 앉아 있다가 모두 흩어졌습니다. 예루살렘에 환란이 오니까 전국으로 사마리아로 흩어져 도망간 사람들이 가서 복음을 전파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믿었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매 맞기 전에 이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지역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그런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명을 깨닫지 못하면 매를 맞습니다. 이 벽을 넘어야 합니다. 이 벽을 넘지 않으면 하나님이 강제로 넘게 만드십니다.

 

옛날 평양에 부흥이 일어날 때 사람들이 평양을 중심으로 모이고 밖으로 나가려 하질 않았습니다.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 복음을 퍼지게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평양을 중심으로 살고 안주하려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강제로 김일성을 통해서 퍼지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평양 사람들이 부산까지 거제도 까지 내려가 전도하게 되어 오늘 한국이 짧은 기간에 전국이 복음화가 되게 된 것입니다. 사명 중에서도 가장 신성하고 가장 큰 사명이 전도하는 사명입니다. 우리는 나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못하면 기도로 물질로 후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지역에서 향기 나는 삶으로 예수의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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