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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효를 3000년 지나서 본다! (창 9;20-27)

by 【고동엽】 2022. 1. 8.

작은 효를 3000년 지나서 본다! (창 9;20-27)

 

 

비엔나에서는 죄수에게 일정기간 동안 청소부로 길거리 청소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수상이 창가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데 기이한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청년이 죄수에게 다가 가더니 때 묻은 까만 손에 입맞춤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습니다. 수상은 남자는 정치범이고 그 청년은 추종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웬만한 열렬한 팬이 아니면 죄수에게 길거리에서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 청년을 잡아 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수상은 앞에 끌려온 청년에게 무슨 관계인지 물었습니다. 청년이 대답하였습니다. <각하! 그 분은 우리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라고?> <네. 다 미워하고 다 따돌려도 내 아버지입니다. 나는 아버지 손이 얼었기에 입김으로 녹여 드린 것입니다>

수상은 얼마 후 국왕을 비롯한 장관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아버지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훌륭한 아들을 기른 이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조금 후 국왕의 답장이 전달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식을 훌륭히 기른 대가로 석방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버이 주일입니다. 일 년에 한 주는 부모님의 은덕을 기념하며 예배드리는 주일입니다. 어버이 주일을 기념하면서 노아 가정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인구가 번성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을 홍수로 덮어 모든 사람을 멸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사는 사람이 꼭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노아였습니다. 노아는 아담의 8대손입니다. 노아는 아들 셋이 있었습니다. 셈과 함과 야벳이었습니다. 세 아들이 모두 결혼하여 자부도 셋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가정은 모두 8식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산꼭대기위에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노아의 8식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산위에 배를 120년 동안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대로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방주에 들어가자 40일간 비가 쏟아져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방주에 들어간 노아 식구 8명과 방주에 들어가게 한 짐승과 생물 외에는 모두 죽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 5달 지나면서 물이 줄기 시작하였습니다. 7개월 지나고 나니 정상적인 땅이 되었습니다.

노아의 식구들은 1년 10일 동안 방주에서 살았습니다. 노아는 홍수 뒤에 350년을 더 살다가 950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홍수가 끝난 직 후 이야기입니다. 노아의 식구들이 방주에서 나와 보니 온 세상이 다 노아의 세상이었습니다. 모든 밭은 노아의 밭이었고, 모든 자연은 노아의 정원이었습니다.

노아는 포도 농사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홍수 후 기름진 땅에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가 무성하였습니다. 포도주가 많았습니다. 어느 날 노아는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시고 취하였습니다. 대낮에 벌거벗고 벌렁 누워 자는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모습을 제일 먼저 본 아들은 함이었습니다. 함은 아버지가 부끄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형 셈에게, 그리고 동생 야벳에게 흉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두 형제는 옷을 가지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하체를 보지 않고 덮어 드렸습니다.

나중에 노아는 이런 사실을 알았습니다.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였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자기 허물을 덮어준 두 아들을 이렇게 축복하였습니다. <셈의 하나님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은 아버지에게 불효하였습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에게 효도하였습니다. 아주 작은 불효 같고, 아주 작은 효도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3천년이 지나고 보니 불효자 함에게는 엄청난 저주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효자 셈과 야벳에게는 놀라운 축복이 나타났습니다.

가나안 후손에게 임한 저주 노아는 함을 향하여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25)

이상한 일입니다. 노아는 왜 함이 잘못하였는데 함의 아들인 가나안을 저주하였을 가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성을 발견하며 경탄하게 됩니다. 방주에서 나오자 말자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식구들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9;1)

하나님께서 축복한 아들 함을 노아가 감히 저주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인을 저주하지 못 하고 아들을 저주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을 저주한 결과는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함의 아들은 붉은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함은 보지 못 할 아버지의 발가벗은 붉은 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이 붉은 아프리카인이 되었습니다. 또 함의 후손들인 흑인들은 보기 싫은 흉측한 입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술 취하여 있을 때에 그 입술로 못 된 말을 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함은 꼽슬꼽슬한 머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술 취하고 방탕할 때에 머리를 이리저리 꼬면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 몸은 까맣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술 먹고 취하여 잘 때에 하얀 천으로 덮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자기가 저지른 벌만큼 함의 후손, 가나안자손들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함의 아들 가나안은 아버지 죄 때문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오늘까지도 그 저주가 그대로 흘러오고 있습니다. 함은 이때부터 비뚜로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나안도 이제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사람에게서 이탈된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함의 자손 가나안은 가나안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여호수아가 점령하고 보니 가나안 족속들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은 살리지 말고 모두를 죽이든가 종으로 삼아 그들의 문화를 배우지 말라고 강력하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가나안은 종의 종으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노아가 격노 속에서 저주하였기에 극심한 저주였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후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종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가나안의 자손을 더 저주를 받았습니다. 함의 자손은 벌거벗고 사는 족속들이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집트인들과 에티오피아인들은 언제나 벌거벗고 살았습니다. 벌거벗고 사는 것을 감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미국으로 끌려가서 종살이를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리빙스톤 때에 일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이 와서 노예사냥을 하여 간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배를 대고 전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구 배에 실고 갔습니다. 링컨이 노예 해방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미국의 흑인들은 종살이 하는 것과 마찬 기지입니다.

노아의 저주는 지금 그 효력을 발하고 있습니다. 셈에게 임한 축복 노아는 셈에게 이렇게 축복하였습니다. <셈의 하나님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셈의 하나님.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야벳의 하나님같이 보였습니다. 야벳의 후손인 영국, 독일, 덴마크, 스페인, 미국이 선교를 지배하고 온 세계를 선교 화 시켰습니다. 기독교 국가로서 가장 놀랍게 부흥하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쓰인 칼빈 주석은 <‘셈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지금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앞으로 일일지 모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구라파의 교회들은 저녁 3시쯤 되어 모두 병들고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그 때 그렇게 웅장하게 지었던 교회들은 모두 관광지가 되고 있습니다. 주일마다 텅 비고 있습니다. 휴가철이면 목사까지 휴가가고 아예 주일 예배도 드리지 않는 교회들이 수두룩합니다.

나는 독일에서 교회 밑에 나이트 클럽을 세주어 주일 밤에도 위에서는 예배를 드리고 밑에서는 술 먹고 춤추는 곳을 여러 군데 보았습니다. 야벳의 하나님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아시아에서 지금 부흥되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교회 가운데 4개가 우리나라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도 셈족입니다. 야벳에게 임한 축복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창대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됩니다.

오늘 날 세계 경제권을 이들이 쥐고 있습니다. 지금 야벳의 후손 미국 선교사는 줄고 있습니다. 셈의 후손인 한국이 세계 선교를 선도할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물질적으로 창대할지라도 결국은 셈의 영향권 안에 들어 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창대하다는 예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셈의 장막 안에 거하게 된다는 예언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주석가는 이제 자녀가 세 명 밖에 없으니 자녀를 더 갖고 싶은 욕망에 대낮에 옷을 벗고 아내에게 들어 간 것이라고 해석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정신없이 벗고 누워 자는 노아의 모습을 둘째 아들 함이 보았습니다. 나가서 자기 형제들에게 아버지 흉을 보았습니다. 미드라 쉬는 흉보는 내용을 연구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들아! 우리 조상 아담은 두 아들이 있었지!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지? 아담은 다른 아들을 얻고 싶어서 하와에게 들어 간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런데 아버지가 우리 세 아들 가지고 만족하지 않으니까 네 번째 아들을 낳고 싶어서 어머니에게 들어갔단다. 대낮에 벌거벗고 있단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옷을 가지고 뒤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하체를 덮어 드렸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노아가 이를 알고 함을 저주하였고 셈과 야벳을 축복하였습니다. 나중에 보니 노아가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먼저 미드라쉬 이야기를 해 봅니다.

셈이 먼저 옷을 가지고 벌거벗고 누워있는 아버지에게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야벳은 셈의 아이디어에 동참하고 따랐을 뿐입니다. 옷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접근하였던 그들에게는 옷의 축복도 주셨습니다.

셈의 자손에게는 옷을 덮어준 보상으로 탈맅(Tallit)을 선물로 주어 입게 하였습니다. 탈릿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도할 때 입는 기도의 복입니다. 어깨에 두르고 기도하는 옷입니다. 잘 때에는 잠옷을 입습니다.

수영할 때에는 수영복을 입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입는 옷이 탈맅입니다. 옷을 걸치게 한 축복으로 탈맅을 선물로 준 것입니다. 탈맅을 보상으로 주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무엇을 기도하든지 응답을 주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옷을 입고 다니셨습니다. 그래서 12 해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자가 옷자락을 만지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원어 성경에는 지치트를 만들었다고 하였는데 지치트는 탈렛 옷 밑에 붙이는 술입니다.

바로 탈렡을 만진 것입니다. 이런 옷은 셈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옷입니다. 옷을 가지고 와서 덮어 주었기에 독특한 옷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신 것입니다. 보상입니다. 그리고 기도를 늘 응답하여 주는 축복을 효자 셈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셈에게 더 큰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더 큰 축복은 무엇이입니까? 하나님은 <셈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축복이었습니다. 노아는 셈을 향하여 이렇게 축복하였습니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창9;26)

<셈의 하나님>이라고 축복한 축복은 놀라운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셈족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소유한 기업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는 나라가 부강하여졌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섬기는 교회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소유한 가정에는 큰 축복이 임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셈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가나안은 야벳의 종이 된다고 하였는데 오늘 날 가나안 후손 아프리카인은 야벳의 후손 미국인 영국인의 종이 되었습니다. 작은 효도, 작은 불효가 엄청난 갈림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입니까?

 

1. 허물을 덮어주는 용서가 효도입니다.

함은 혼자 축복받을 절호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아버지가 발가벗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함이 먼저 담요를 가지고 가서 덮어 주었더라면 아버지 노아가 주는 축복을 독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노아는 장점이 많은 아버지였습니다. 600년 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데 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홍수에 혼자 살아남을 정도로 철저한 의인이었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노아의 실수는 단 한번이었고 단 한 가지였습니다.

100가지 장점을 칭찬할 줄 모르고 한 가지 단점을 들어내는 함의 불효를 보고 하나님은 저주하셨습니다. 매튜 헨리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하여 주고 있습니다.

<누구나가 단점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습니다. 그런데 남의 단점만 이야기하면 함처럼 흑인이 되고 종이 되고 물질적 축복도 받지 못 합니다. 남의 단점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좋아 하는 이는 이 세상에 마귀밖에 없습니다. 함은 드러난 아버지 하체를 한번 더 드러나게 하였다. 그래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단점을 드러내는 것을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부모 단점을 용서하지 못 하고 드러내는 것이 불효입니다. 반대로 부모 잘못을 용서하고 이해하고 덮어주는 것이 효도입니다.

 

2. 편안하게 하여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들어냄으로 아버지를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실수를 덮어 드림으로 아버지를 편안하게 하여 드렸습니다. 이같이 부모를 편안하게 하여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비둘기에게는 3지의 예가 있고 까마귀에게는 반포의 효가 있다> 이런 중국 속담이 있습니다. 비둘기 새끼는 가지에 앉을 때에 항상 부모보다 세 가지 아래 앉는 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까마귀는 죽기까지 어미 새를 보살핀다는 말입니다.

부모를 편안하게 하여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어느 대학에 교수 이야기입니다. 나이가 많은 데도 항상 머리가 검어서 연세보다 항상 젊어 보이는 교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머리가 검은 머리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백발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머리가 그렇게 희어진 것을 보고 놀라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교수가 대답하였습니다.

<아버지 생전에는 자식으로서 흰 머리칼을 보이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 항상 염색을 하였지요.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 가셨으니 누구를 위하여 염색하겠습니까?>

연세 많으신 아버지를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하여 드리려는 효심을 가진 교수님이었습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이스라엘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랍비가 눈먼 어머니와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길이 울퉁불퉁하여 걷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랍비는 어머니가 발을 디딜 때마다 넘어지려고 하니까 움푹 파인 곳마다 자기 손을 넣어서 어머니가 편안하게 걷게 하였습니다. 어머니를 편안하게 하려는 효심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아 가정을 들여다보면서 우리는 작은 불효가 큰 저주가 됨을 보았습니다. 반대로 작은 효도가 큰 축복이 됨도 알았습니다. 작은 불효와 작은 효를 3,000년 지나 보니 엄청난 차이가 났습니다.

항상 부모의 허물을 덮어주고 편안하게 하여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성경을 읽는 데 이렇게 읽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공격하라. 이것이 옳으리라> 아버지가 듣다가 말했습니다. <아들아! 공격이 아니고 공경이란다.> <아빠! 공경은 무엇이고, 공격은 뭐야?> <공격은 받아 드리고 순종하는 것이고, 공격은 안 받아드리고 대드는 것이란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왜 할아버지에를 공격하지 않고 공격해?>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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