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랐더니 따라 왔다! (마 4:18-22)
미국 선교사가 중국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던 중에 감자 농사하는 농부를 보았습니다. 가을에 감자를 캐고 나서 큰 감자는 상품 가치가 높기에 다 골라 팔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감자를 남겨서 다음 해 씨로 사용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미국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우리 미국에서 농사짓는 방법과 다릅니다. 미국은 작은 것은 먹고 큰 감자를 씨로 사용합니다.> 큰 감자를 남겨 씨로 사용하면 큰 감자가 나오고, 작은 감자를 씨로 사용하면 작은 감자가 나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현재를 위하여 미래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그런 이야기입니다. 미래를 위하여 오늘 모든 것을 포기한 네 제자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사역 준비를 30년간 하셨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 땅에 오신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실 때 제일 먼저 하신 일은 40일 금식기도였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이 두 번째 하신 일은 같이 일할 제자들을 모집하는 일이었습니다.
12 명 제자들을 모집하시는 중에 오늘 4명의 제자를 선택하시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12 명 제자를 부르시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1. 12 명중에 11명이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2. 신분이 모두 낮은 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3. 만난 그 날 예수님을 따라 오게 하셨습니다. 명단을 작성하시고 기도하고 연락하고 뜸을 드리며 제자로 삼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을 거닐고 계셨습니다.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를 만나셨습니다. 어부라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무조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랬더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두 명을 데리고 조금 더 걸으셨습니다. 시간이 더 늦어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야고보와 형에 요한 두 명이 고기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역시 예수님은 따라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결론도 똑같았습니다.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본문의 네 명은 그 날 그 시간 그 순간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따릅니까? 아무나 따르지 않습니다. 따를 만한 사람을 따릅니다. 따라도 별 볼 일이 없는 사람은 따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따라 다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가요?
1. 돈 있는 사람을 따릅니다.
사람들은 돈 없는 사람을 따르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야 따르게 됩니다. 고기는 미끼를 따르는 것처럼 사람들은 돈을 따릅니다.
정 주영이 이북에 소를 보냈습니다. 건설 자금도 엄청나게 보냈습니다. 금강산 관광으로 돈을 상상할 수도 없이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이북은 정 주영 장례에도 참석하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이북에서 조문커녕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돈도 없고 돈도 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을 따릅니다.
2. 권력 있는 사람을 따릅니다.
사람들은 권력이 있는 사람을 따릅니다. 한 자리 얻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출세하려면 높은 사람에게 눈도장을 찍어 두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관자리 하나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한식 목사님은 우리 교회에 토요일마다 와서 같이 기도한 지가 어느 덧 6년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에 출마하였다가 떨어진 후 늘 우리 교회에 와서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그 후 책을 한 권 냈습니다. <살아서 죽음을 맛보다>라는 책입니다.
그 책 서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면 수천명이 나를 따랐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에 떨어지고 빚더미에 앉게 되니 다 떠나가고 강 문호 목사 하나 남았다> 사람들은 권력이 있는 사람을 따라 갑니다.
3. 지식 있는 사람을 따릅니다.
사람들은 배울 것이 있는 훌륭한 스승을 따라 갑니다. 그 분을 따라 가면 많은 지식, 좋은 인격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교수가 있는 대학은 그 교수를 보고 학생들이 꾸역꾸역 몰리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교수를 스카우트하려고 대학들은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어거스틴에게는 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제자로 삼아 달라고 밀려들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제자가 되겠다고 몰려든 사람들을 모아 놓고 배추를 하나씩 주면서 밭에 거꾸로 심으라고 말했습니다. 다 바로 심었습니다. 어떻게 배추를 거꾸로 심느냐고 하면서 바로 심었습니다.
그러나 한 명만이 정말 어거스틴이 시키는 대로 배추를 거꾸로 심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그 사람 한 명을 제자로 뽑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내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내 제자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같이 돈이 있거나 권력이 있거나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을 따라 가고 싶어 합니다. 무엇이 있는 사람들 따르던지 공통점은 그 사람을 따라가면 무엇인가 건더기가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네 명,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돈도 없었습니다. 가난뱅이였습니다. 예수님은 권력도 없었습니다. 목수였습니다. 예수님은 지식이 있는 지 없는 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만난 즉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아직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이 네 명이 갑자기 왜 모든 재산을 다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가게 되었는지 본문은 한 한 마디도 설명하여 주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사로잡게 하였는지 전혀 본문만 가지고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총을 겨누면서 <안 따라 오면 죽이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무엇이 그들을 사로잡아 따라 오게 하였는지에 관심을 두고 본문을 연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눈길은 예수님을 따라 갔더니 무엇이 그들을 따라 오게 되었는지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따랐더니 따라 왔습니다. 무엇이 따라 왔습니까? 예수님을 잘 따라 다녔더니 무엇이 보상으로 주어졌습니까? 세 가지 큰 보상이 따라 왔습니다.
1. 생명을 걸만한 사명
적어도 오늘 본문의 네 명은 모두 어부였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고기잡이를 마치고 그물을 깁다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며 부르셨습니다. 이들은 그 후 그 말씀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모두가 복음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복음 증거에 미쳤습니다. 그리고 네 명 모두 순교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하였습니다. 안드레도 X 자로 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의 칼에 죽었습니다.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되어 요한 계시록을 쓰고 순교하였습니다.
죽기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사도로 사명을 감당하다가 모두 순교하였습니다. 모두 장렬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더니 사명이 따랐습니다.
미국 감리교 신문에 실린 작은 기사입니다. 뉴욕에 갑자기 영하 34도까지 내려가는 주일이 있었습니다. 그 날 뉴욕 교회에는 평소 반 정도밖에 교인들이 출석하지 못 하였습니다. 자동차가 얼어붙고 살인적인 추위로 몸이 약한 사람들은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날 88세 골디 슈리버라는 할머니는 자기가 늘 모시고 가서 예배드리는 100세 해밀턴 노인 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그를 차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가는 길에 94세 된 친구 할아버지 파크스 집에 둘러 그까지 태우고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렸습니다. 목사님이 감격 속에 염려하며 물었습니다. <할머니! 위험하지 않습니까?> 이 때 할머니가 대답하였습니다. <작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뿐이지요. 내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것뿐이지요. 그런데 아직도 생명을 건 충성은 못 하고 있지요> 이 짧은 기사는 많은 감리 교인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며 일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가 중국에 가서 관광을 하는 중에 이상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소와 아들이 같이하여 쟁기를 끌고 아버지가 뒤에서 쟁기를 붙들고 밭을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상하여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렇게 좋아서 복음 전파를 위하여 소 한 마리를 헌금으로 드리고 자기가 그 소 자리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이라고 아버지가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할 일을 발견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보람을 느낀 것입니다. 사명을 찾은 것은 제2의 생일이라고 칼 힐티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사명이 따릅니다.
2. 사명을 감당할만한 능력.
사명만 주어지고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면 그것을 <무능한 사명자>라고 말합니다. 오늘 날 한국에 목회자로 사명을 받았는데 목회자 사명을 감당할 능력이 주어지지 않아서 사명 감당은 커녕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목회자가 수만 명에 달합니다.
일 년 16번 정도 목회자 쎄미나를 하면서 수많은 목사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는 강원도 목사님 사모님 한 분이 생활고에 못 이겨서 자살하였습니다. 그 정도면 도움을 호소할 수도 있었는데 워낙 내성적이라 말도 못 하고 속으로 끙끙 앓다가 자살하였습니다.
이런 목회자 가정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40여 교회가 100만원씩을 냈습니다. 그리고 설악산 호텔을 2박 3일간 모두 빌렸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사모님들만 모아놓고 위로회를 가졌습니다. 그 때 주 강사를 나로 초청하였습니다. 그 곳에 가서 200여 명 사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얼마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명을 받았는데 사명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받지 못 하여 사명을 감당하지 못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내 동창 목사님 한 분도 상당히 뜨겁게 사명을 감당하였었습니다. 그러나 병들어 누웠습니다.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교인들은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왔다가는 부담스러워하니까 도로 갑니다. 치료비도 부족합니다.
지난 주간 우리 기도원에서 개 7마리를 기르던 것 중에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100만원 가지고 그 집에 가서 살짝 놓고 왔습니다. 사명과 능력.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따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네 제자에게는 사명도 주어지고 능력도 주어졌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다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리 지식도 없던 베드로가 하루에 3,000명을 회개시키는 능력 있는 설교를 하는 설교가가 되었습니다.
네 제자는 모두 큰 능력을 받아 크게 일하였던 제자의 본보기입니다. 네 제자 중에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제자 중에 제자가 되어 항상 예수님 옆에 붙어 다녔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더니 사명이 따르고 능력이 따랐습니다.
3. 최고의 명예
네 명이 예수님을 따랐더니 후에 최고의 명예가 그들을 따랐습니다. 솔로몬은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잠22;1)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고 하였는데 네 명의 제자는 지상 최대의 명예가 따랐습니다. 두 가지 면에서 큰 명예를 얻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천국 문 앞에 이들 이름이 기록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천국에는 하나님 보좌에 24 장로들이 보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국 문에는 야곱의 12 아들 이름과 예수님의 12 제자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성경은 증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 문,북편에 세 문,남편에 세 문,서편에 세 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계21;12-14)
나는 이 다음에 천국에 갈 사람이 100억 명이 될지 200억 명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수많은 이들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천국에 가는 이들은 모두 이들 이름을 통과하여 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천국 문에 아브라함의 이름이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모세 이름이 기록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이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더니 사명이 따랐고, 능력이 따랐고 명예가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것들이 따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중국 선교사로서 평생을 헌신한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그에게 하루는 한 청년이 와서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이제는 저는 예수를 믿고 세례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성경을 얼마나 알아야 하나요? 몇 년 정도 예수를 믿어야 그래서 괜찮은 기독교인이 될 수 있을 가요?>
이 때 테일러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촛불은 언제부터 빛을 발하는 가요?> <심지에 불을 붙인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 이런 대답을 듣고 테일러 선교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몰라도 됩니다. 신앙의 연조가 짧아도 괜찮습니다. 촛불이 심지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기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신앙생활이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교회에 발을 들여 놓고 하나님을 믿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빛은 발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부터 훌륭한 성도가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부터 일하기 시작하면 됩니다. 시작은 지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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