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넘어 흥분으로! (행 3;1-10 )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다가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앉아 구걸하던 거지를 일으킨 이야기는 사도행전에서 최고로 유명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 이스라엘 전체에 하나뿐입니다. 온 국민이 모이는 국민 성전입니다. 그런데 그 문 앞에서 40년 동안 구걸하던 거지가 있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이 성전에서는 하루에 세 번 기도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침 9시, 12시 그리고 오후 3시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 기도회에 참석하려고 성전으로 올라갈 때였습니다.
거지가 언제나 그런 것처럼 구걸하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미국 달라스 신학교 세이프 학장은 이 거지에 대하여 세밀한 분석을 하였습니다. 이 거지는 이스라엘 거지 왕초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전국에서 가장 명거지 명당자리가 성전 문 앞입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최고 좋은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그토록 오래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예루살렘 거지 왕초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돈을 주려고 하였으나 돈이 없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은 거지 손목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앉은뱅이는 갑자기 발과 발목에 힘이 생기더니 일어나 걷고 또 뛰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기적을 주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는 영적 앉은뱅이가 아닙니까? 이제 그만 내가 앉아 있던 자리, 지금의 불평스러운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야 하는 데 그토록 오랫동안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앉은뱅이는 돈을 요구하였는데 기대이상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달걀이 껍질, 흰자위 그리고 노른자위로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 데 사람들도 영혼육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앉은뱅이는 영혼육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기대이상으로 받았습니다. 앉은뱅이가 뛰는 사람으로 육적으로 도저히 걸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 적은 평생을 두고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걸었습니다. 뛰었습니다. 구걸이 구제로 그리고 혼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기대이상이었습니다. 평생을 흥분 속에 살았을 것입니다. 구걸하던 사람이 구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상상도 못 하던 일입니다. 도저히 기대하지 못 하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40여년을 구걸하던 이가 이제는 구걸을 멈추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가 구제하였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보다 못 한 이들에게 구제하여야 합니다. 많이 하였는지 적게 하였는지는 몰라도 구제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제는 매일 밥 먹고 자는 것과 같이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철칙 교훈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제할 사람이 앞에 있으면 그 사람에게 감사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 때문에 축복을 주시기 때문에 축복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기뻐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제 받을 사람이 없다면 이 계명을 지킬 기회를 잃게 되고 축복을 잃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구제는 구제받는 사람의 수준에 맞게 구제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느헤미야 랍비에게 구제하여 달라고 한 거지가 왔습니다. 랍비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평소에 무엇을 먹었습니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기름진 고기와 오래 묵은 좋은 포도주를 마시고 살다가 사업이 안 되어 거지가 되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랍비가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합니다. 나와 함께 편두 콩을 먹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 거지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고 같이 편두 콩을 먹고 살다가 음식이 맞지 않아 죽었습니다.
이 때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 참 안 되었어. 느헤미야 랍비가 그 사람을 죽인거야. 그 사람 수준에 맞추어 구제하여 주어야 하는 데...>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 구제의 수준입니다.
그래서 힐렐 랍비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부자가 망하여 거지가 되었는데 구걸하러 왔습니다. 힐렐 랍비는 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부까지 인건비를 지불하면서 붙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부가 없어졌습니다. 그 유명한 힐렐 랍비가 그 집에 가서 3일간 마부노릇을 하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제가 생활화되어 있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집에 가면 어느 집에 가던지 쉽게 동전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동전함을 푸슈케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용돈을 아껴 푸슈케에 넣도록 가르칩니다. 그들은 푸슈케에 떨어지는 동전소리를 들을 때마다 누가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되며 하나님이 축복을 주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푸슈케는 가정뿐 아니라 회당, 그리고 유대인 학교마다 다 있습니다. 어느 회당이건 들어가면 어김없이 발견되는 것이 이 푸슈케입니다. 회당에 있는 것들은 청동으로 만들어져 동전을 넣을 때에 딸랑하는 금속성 소리가 나도록 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배드리기 전에 구제헌금을 드리고 예배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분 좋게 하여 드리고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고 축복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40년 된 앉은뱅이 거지는 구걸하던 이가 기대이상으로 구제하는 이가 되었을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기대이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땅의 사람에서 하늘의 사람으로 사도행전 4장 22절을 보면 나이가 40세쯤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절을 보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라고 하였습니다. 40년간 땅에만 붙어살던 이였습니다. 그러나 본문 9절을 보면 앉은뱅이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육의 사람이 영의 사람으로, 땅의 사람이 하늘의 사람으로, 앉아 살던 사람이 뛰면서 사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대 이상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단 한 번도 ‘걸을 수 있으리라, 뛸 수 있으리라’ 기대하여 본 적이 없습니다.
아예 앉은뱅이로 체념하고 살았던 이였습니다. 기대 이상의 역사를 맞이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기대이상의 삶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에게 내가 기대하였던 것을 넘어 놀라운 방향으로 생이 틀어지게 되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기대 이상의 삶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모세가 그렇습니다. 모세는 광야로 도망 와서 40년 간 살다보니까 80세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늙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단 한 번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인도하여 내리라고 기대한 적이 없습니다. 꿈에도 공상이라도 농담이라도 그렇게 기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시 떨기 불꽃 속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내 백성을 인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한 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못 합니다.> <입술이 둔합니다.> <능력이 없습니다.> 거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강권에 못 이겨 광야를 떠나 바로와 대결하였습니다.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이 기적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 만에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드온은 농사꾼이었습니다. 강대국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침범하면서 농사지으면 빼앗아 가고, 과일을 길러 놓으면 따가고 할 때였습니다. 농사꾼 기드온이 몰래 포도주를 짜는 틀 속에 들어가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큰 용사여>(삿6;6)라고 부르시며 나가서 미디안과 싸우는 대장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기드온도 한 마디로 거절하였습니다.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삿6;12)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기대를 걸면서 나가 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드온이 갑자기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사사가 되었습니다. 농사꾼이 민족적인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앉은뱅이도, 모세도, 기드온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대 이상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기대이상의 사람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면 기대 이상의 사람이 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가요? 오늘 성경 본문 중에 눈에 띄는 말씀이 네 단어가 있습니다. <1. 날마다/2. 성전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3. 기도시간에/4. 예수 이름으로>
1. 날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2)
이 앉은뱅이가 기대 이상의 축복을 받은 것은 40년을 <날마다>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꾸준하게 끈기 있게 한 가지 일에 전념하더니 기대이상의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팠던 결과입니다. 쟁기를 붙들고 뒤를 보지 않았던 보상이었습니다. 챔버린은 영국에서 장관직을 훌륭하게 한 유명한 정치가입니다. 그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구두닦이였습니다. 그가 장관이 되었을 때 신문기자들이 그렇게 된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구두를 닦으며 구두점에서 일할 때 결심하였습니다. 구두 업계에서 1등하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최고 구두점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 런던에 구두점을 차렸습니다. 나는 또 결심하였습니다. 런던에서 1등가는 구두점을 만들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던지 그 방면에 1등을 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관이 되었습니다. 나는 장관 중에 최고의 장관이 되겠다고 또 결심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목동생활 20년을 하더니 거부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드로 집에서 40년 양을 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앉은뱅이는 구걸하는 인생길을 40년을 날마다 변치 않고 하였습니다.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갔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일인자가 되겠다고 결심하십시오. 그리고 꾸준히 하십시오. 할 것입니다.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간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외국의 어느 자전거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날따라 많은 사람들이 경매장에 몰려들어 좋은 자전거를 싼값에 사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이 주 고객인 그 경매장 맨 앞자리에 한 소년이 5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손에 들고 앉아 있었습니다. 경매가 시작되자 소년은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5달러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곧 옆에서 <20달러>라고 외쳤고 자전거는 그 사람에게 낙찰되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계속 경매는 이어졌으나 소년은 빠짐없이 제일 먼저 <5달라요>하고 외쳤고 자전거는 20달러 혹은 그 이상의 가격에 팔려나갔습니다.
경매사가 안타까운 듯 소년에게 슬쩍 말했습니다. <꼬마야, 자전거를 사고 싶거든 20달러나 30달러쯤 값을 부르거라> 소년이 대답하였습니다. <아저씨, 제가 가진 돈이라곤 이것이 전부예요> <그 돈으론 자전거를 살 수 없지. 가서 부모님께 돈을 더 달라고 하려므나> <안돼요. 우리 아빤 실직 당했고, 엄만 아파서 돈을 보태 주실 수가 없어요.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꼭 자전거를 사 가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경매는 계속되었으나 소년은 계속 자전거를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기죽지 않고 계속 <5달러>를 외쳤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소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소년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 날의 마지막 자전거의 경매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 나온 자전거 중 가장 좋은 것 자전거의 경매이었습니다.
<자, 최종 경매에 들어갑니다. 이 제품을 사실 분은 값을 불러 주십시오.>하고 경매사가 경매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소년의 얼굴은 여전히 <5달러요>하고 제일 먼저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힘없고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순간 경매장 안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다른 값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5달러입니다. 더 없습니까? 다섯을 셀 동안 아무도 없으면 이 자전거는 어린 신사의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모두 팔짱을 끼고 긴장한 채 경매사와 소년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5… 4… 3… 2… 1. 와~아> 마침내 그 자전거는 소년에게 낙찰되었다는 경매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을 향해 열렬한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습니다.
그 소년의 소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어리석음 같았으나 그의 끈기 때문에 이루어졌습니다. 끈기가 있으면 기대를 넘어 흥분까지 갈 수 있습니다.
2. 성전 미문
기적을 넘어 흥분으로 간 두 번째 비결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눈에 띄는 단어가 또 있습니다. <성전 미문>이라는 단어입니다. 그가 날마다 구걸한 자리가 성전 미문이었기에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갔지 시장 바닥이었으면 이런 기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전철 안이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전 미문이었습니다. 어디에 있었는 지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놀아도 기적의 자리에서 놀아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나는 금이빨 7개가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우리 장로님 김 재곤 치과의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내가 죽기 전에 목사님 이빨을 다 수리하여 드리고 죽으렵니다.> 그래서 금이빨 7개를 수리하였습니다.
그 때 마지막 내게 주신 말씀을 나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님! 나는 의사이기에 놀아도 병원에서 놀았습니다. 언제 환자가 와도 맞을 준비를 하면서 놀았습니다. 학생은 놀아도 학교에서 놀아야 공부를 잘 합니다. 목사님은 놀아도 교회에서 노세요.> 이 말씀이 장로님이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이 앉은뱅이는 놀아도 성전 미문에서 놀았기에 그런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늘 교회 중심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지난 번 뉴질랜드에 가서 양소를 기르는 목장을 수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온 종일 소나 양이 놀아도 울타리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영역을 벗어나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이 앉은뱅이는 40년간 성전 미문을 벗어나지 않고 살았습니다. 이것이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간 비결이었습니다.
3. 기도
앉은뱅이의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간 비결이 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눈에 띄는 단어가 셋 있습니다. <날마다> <성전 미문> 그리고 <기도 시간에>입니다.
이 기적은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일어났습니다. 성전에 사람을 만나러 가다가 기적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상담하러 가다가 기적이 일어난 것 아닙니다. 기도하러 가는 시간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에 의하여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혼자 조용히 기도하러 가다가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둘이 합심하여 기도하려고 가다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너희와 함께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다>(막 11:17)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기도하는 데에는 기적이 따릅니다. 예수님이 <내 집은 친교 하는 집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집은 먹는 집이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집은 회의하는 집이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먹다가 성령 받았다는 사람 있습니까? 윷놀이 하다가 불 받았다는 사람 들어 보았습니까? 회의도중에 은사가 임하였다는 사람 있었습니까? 교회는 먹는 것도, 친교도 회의도 좋지만 본질은 기도입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앉은뱅이가 기대를 넘어 흥분으로 살게 된 비결은 기도시간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에 의하여 일어난 사건입니다.
영국의 쟌 윌턴이라는 사람은 26살 때까지 되는대로 인생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물결치는 대로 바람 부는 대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 것 조금 저 것 조금하며 방황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심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술 담배를 끊고 월급이 아주 작은 점원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교회에 나가서 설교를 듣는데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기라고 하여도 옮길 것이요>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아주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만 있다면 불가능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나에게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 있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그 다음부터는 겨자씨를 날마다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 작은 겨자씨를 보면서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많은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는 평생 동안 겨자씨를 주머니에 넣어 다녔습니다. 후에 유명한 실업가로 크게 성공을 하였습니다.
71세에 은퇴할 때에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작위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당신은 왜 항상 겨자씨를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닙니까?>라고 물었을 때, 윌턴은 <나는 좌절할 때마다 이 겨자씨를 내어보며 하나님이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다면 못하는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음을 상기시키며 ‘과연 나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는가?’ 반문하며 나를 돌이켜 보고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만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기도하면 됩니다.
4. 예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기대를 넘어 흥분스러운 생활을 하게 된 비결을 알려 주는 네 단어가 본문에 있습니다. 1. 날마다 2. 성전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3. 기도시간에 4. 예수 이름으로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붙들고 외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아무리 날마다 꾸준하고, 아무리 기도하고, 아무리 성전 미문이라도 예수 이름이 없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 이름이 핵심입니다. 어느 공장이 멋지게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천억 드렸어도 기계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알아보니 전기가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예수 이름은 능력입니다. 어느 분이 의미심장한 말을 하였습니다. <요즈음 교회들은 은과 금은 있는 데 예수 이름이 없다>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없어도 예수 이름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은과 금은 없어도 예수 이름이 있으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적 앉은뱅이가 아닙니다. 매일 그 타령은 아닙니까? 기대를 넘어 흥분스러운 일들이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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