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다(골로새서 3:9–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장식품이 아니라 생명의 옷이며, 그 옷은 단지 겉모양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존재의 결을 바꾸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라는 이름의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그 옷은 세월을 따라 닳고, 상처를 따라 얼룩지며, 욕심을 따라 늘어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복음의 빛 아래에서 우리에게 한 가지 명령을 전합니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 말은 단순히 도덕적 권면의 한 줄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새 창조의 실재를 붙들고, 그 실재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는 하늘의 부르심입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는 ‘벗는다’와 ‘입는다’라는 표현이 지닌 영적 무게를 느껴야 합니다. 옛사람은 단지 과거의 나쁜 습관 몇 가지가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자기 욕망을 주인으로 삼고, 자기 의를 갑옷처럼 두르는 타락한 정체성의 총합입니다. 옛사람은 언제나 ‘나’를 중심에 두고, 다른 사람을 내 욕망의 도구로 만들거나, 내 자존심의 무대로 만들거나, 내 두려움의 희생양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옛사람은 말로는 진실을 말하는 듯하면서도 관계 속에 거짓의 씨앗을 흩뿌립니다. 왜냐하면 옛사람의 거짓은 단지 사실을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는 나의 참모습을 숨기고, 사람들 앞에서 꾸며낸 나를 세우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라고 할 때, 그 거짓의 반대편에는 단지 ‘사실’이 아니라 ‘새사람의 진실한 존재 방식’이 있습니다. 새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새롭게 지으신 사람이며, 그 새사람의 중심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는 순간, 더 이상 거짓이 안전장치가 될 수 없고, 속임이 생존전략이 될 수 없으며, 위선이 경건의 옷이 될 수 없습니다. 새사람은 진리 안에서 숨 쉬는 사람입니다. 그 진리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 죄인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과, 그 피로 내가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사실과, 이제 성령께서 내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진리를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남을 속이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속이던 오랜 습관을 벗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벗겨짐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옷이 입혀집니다.
골로새서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의 충만과 구속의 은혜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 위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위의 것을 찾으라”는 권면으로 삶의 방향을 들어 올립니다. 이어서 그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말하며, 죄의 행실을 단호히 끊어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그는 그 단호함을 단지 행위의 교정으로 끝내지 않고, 정체성의 교체로 이어갑니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었다는 말은, 죄와 싸우는 우리의 성화가 ‘자기개선 프로젝트’가 아니라 ‘새 창조의 열매’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개혁주의 신학의 깊은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새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새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실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변화는 자력갱생이 아니라 은혜의 결과이고, 행위의 변화는 공로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다만 그 열매는 결코 가짜일 수 없습니다. 참 은혜는 반드시 삶을 새롭게 하며, 참 믿음은 반드시 새사람의 옷자락을 흔들어 이 세상에 드러나게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새사람을 설명할 때 아주 중요한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새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는 자니.” 여기에서 우리는 성화의 방향을 봅니다. 새사람의 목표는 단지 ‘착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해 그 형상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를 새 창조의 길로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새사람은 결국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닮는다는 것은 말투의 품격만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를 증명하려는 삶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높이려는 열망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려는 기쁨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바울은 특히 “지식에까지 새롭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지식이 단지 머리의 정보가 아니라 삶의 구조를 결정하는 영적 토대임을 보여 줍니다. 죄는 우리를 무지하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무지는 단지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는 상태, 곧 하나님을 중심에서 밀어내는 지식의 왜곡입니다. 반면 새사람의 지식은 하나님 중심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내가 누구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고난이 무엇인지, 성공이 무엇인지, 죽음 이후가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복음 안에서 새로 정렬됩니다. 그래서 새사람은 같은 현실을 보아도 다른 결론을 내립니다. 옛사람은 상처를 보면 원망을 배웁니다. 새사람은 상처 속에서도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빚으시는지 묻습니다. 옛사람은 실패를 보면 자기를 저주하거나 남을 탓합니다. 새사람은 실패 속에서도 주님의 손길을 찾으며, 자신을 낮추고 다시 은혜를 구합니다. 옛사람은 관계를 보면 유불리를 계산합니다. 새사람은 관계를 보면 사랑과 섬김을 계산합니다. 이런 변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합니다. 새사람은 점점 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향해 자라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었는가?” 이 질문은 우리를 절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복음으로 다시 데려가기 위해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아직도 화가 납니다. 아직도 질투가 있습니다. 아직도 마음이 더럽습니다. 저는 새사람이 아닌가요?” 사랑하는 성도님, 새사람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죄의 유혹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새사람이 된다는 것은 죄와의 관계가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옛사람은 죄를 편안히 품습니다. 새사람은 죄를 미워합니다. 옛사람은 죄를 합리화합니다. 새사람은 죄를 애통해합니다. 옛사람은 죄를 숨기고 싶어합니다. 새사람은 죄를 빛 가운데로 끌어내어 십자가 앞에서 죽이길 원합니다. 이 차이가 성도의 진짜 표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존재 때문에 성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고, 또한 죄와 타협하며 성도를 자처해서도 안 됩니다. 복음은 우리를 용서할 뿐 아니라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는 명령이 왜 여기서 등장하는지도 묵상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새사람의 옷을 함께 입은 사람들이 모인 몸입니다. 그런데 그 몸 안에서 거짓이 자라면, 공동체의 혈관 속에 독이 퍼집니다. 거짓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신뢰가 무너지면 사랑이 숨을 쉬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거짓말은 단지 개인의 도덕적 문제를 넘어, 새사람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옛사람의 행위라고 말입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의 거짓은 더욱 미묘합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말로 포장되지만, 속에는 자기 의와 비교의 독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진짜 괜찮아서가 아니라, 내 약함을 들키기 싫어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사랑의 약속이 아니라, 더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아서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의 그림자까지도 주님 앞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새사람은 빛의 사람이며, 빛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어 치유로 이끄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예화를 드리겠습니다. 어떤 성도님이 오래된 외투를 늘 입고 다니셨습니다. 그 외투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안감이 다 헤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바람을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말했습니다. “이 옷이 제 몸에 가장 익숙합니다. 새 옷을 입으면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결국 어느 날 혹독한 추위에 그 외투를 걸쳤지만 바람이 그대로 파고들어 몸이 떨렸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따뜻한 새 코트를 건넸습니다. 그분은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새 코트를 입는 순간, 어색함보다 따뜻함이 더 크게 느껴졌고, 불편함보다 보호가 더 확실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의 옷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분노의 옷, 비교의 옷, 정죄의 옷, 숨김의 옷, 자기연민의 옷, 허영의 옷은 오래 입어 몸에 배어 있습니다. 그래서 벗는 것이 낯설고, 새 옷이 어색합니다. 그러나 그 옷은 결국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영혼을 얼게 하고 공동체를 차갑게 만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더 따뜻한 옷, 더 참된 옷, 십자가의 은혜로 짜여진 새 옷을 주십니다. 처음엔 어색해도, 그 옷은 생명을 살리고 사랑을 지키며 진리를 품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삶을 실제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먼저 우리는 ‘벗었다’는 복음의 선언을 붙들어야 합니다. 바울은 “벗어버리고 입었으니”라고 말합니다. 이는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말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고, 새 생명으로 살아난 자입니다. 그러므로 성화는 이미 주어진 새 정체성을 ‘확인’하며 살아내는 과정입니다. 나는 여전히 죄의 유혹을 받지만, 죄가 더 이상 나의 주인이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연약하지만, 연약함이 나의 최종 정체성이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며, 새사람의 옷을 이미 입은 자입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우리는 죄와 싸우다 지치거나, 혹은 싸움을 포기하고 체념합니다. 그러나 복음의 확신은 우리에게 싸울 힘을 줍니다. 이미 승리하신 주님의 승리에 참여하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그 행위’를 함께 벗어야 합니다. 바울은 옛사람만이 아니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옛사람은 정체성이고, 옛사람의 행위는 습관과 패턴입니다. 어떤 성도는 신분은 바뀌었는데 습관은 그대로여서 계속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체적으로 죄의 경로를 끊어야 합니다. 거짓이 입술에서 나오는 길목이 어디인지 살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두려움인지, 인정받고 싶은 욕망인지, 혹은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게으름인지 정직하게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회개는 단지 “미안합니다”가 아니라 “돌이켜 다른 길로 가겠습니다”라는 결단이어야 합니다. 거짓을 버리려면 진실을 연습해야 하고, 진실을 연습하려면 하나님 앞에서부터 정직해져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내 죄를 숨기지 않을 때, 사람 앞에서도 점점 더 숨김이 줄어듭니다. 십자가가 나의 수치를 덮는다는 확신이 깊어질수록, 나는 가면을 벗을 용기를 얻습니다.
또한 새사람은 “지식에까지” 새롭게 된다고 했으니, 우리는 말씀으로 지성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여기서 지성은 단지 성경 지식의 양이 아니라, 복음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말씀을 통해 사고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말씀이 내 감정을 판단하고, 말씀이 내 욕망을 다스리고, 말씀이 내 목표를 수정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이루시는 갱신의 길입니다. 주일 설교 한 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매일의 말씀 묵상과 기도 속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내면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재구성하십니다. 물이 바위를 깎듯이, 말씀이 마음을 깎고, 기도가 생각을 다듬고, 공동체의 권면이 삶을 세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는 명령이 보여주듯, 변화는 홀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나를 보게 됩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성도의 한 마디가 거울이 되어 내가 입고 있던 옛 옷의 냄새를 깨닫게 합니다. 그때 우리는 변명하거나 방어하기보다, 은혜의 손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통해 내 옷을 갈아입히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권면은 항상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결코 진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새사람의 공동체는 부드럽되 흐리지 않고, 따뜻하되 타협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사랑과 성령의 거룩함이 함께 숨 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일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입는 일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이시며, 우리의 새 옷이십니다. 그분이 입혀주신 옷은 은혜로 짜여져 있고, 진리로 단단하며, 사랑으로 빛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거짓을 벗어버립시다. 가면을 내려놓읍시다. 자기 의의 외투를 벗어버리고, 회개의 옷을 입읍시다. 주님께서 주시는 새사람의 옷을 입고, 하나님을 닮아가며, 복음의 진실을 공동체 안에 심읍시다. 그리고 넘어질 때마다 다시 십자가로 돌아갑시다. 새사람의 삶은 넘어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넘어져도 은혜로 다시 일어나는 삶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끝까지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날까지, 우리는 옛 옷을 벗는 손을 멈추지 말고, 새 옷을 입는 기쁨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이미 새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새사람답게 살아갑시다. 우리의 말이 진실로 빛나고, 우리의 관계가 사랑으로 깊어지고, 우리의 내면이 말씀으로 새로워져, 세상이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설교요약
골로새서 3:9–10은 성도의 변화가 단순한 도덕 개선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은” 새 창조의 실재임을 선포합니다. 바울은 공동체 안에서 거짓을 금하며, 새사람이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는 존재임을 밝힙니다. 성화는 은혜의 열매로서 구체적 행위(거짓·숨김·위선)를 벗고, 복음적 진리로 사고와 욕망이 재정렬되는 과정이며, 공동체 안에서 더욱 선명히 드러납니다.
묵상 포인트
- 내가 붙들고 있는 “익숙한 옛 옷”(분노, 비교, 숨김, 자기의, 정죄, 자기연민)은 무엇입니까?
- “거짓”이 내 관계 속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형태는 무엇입니까? (사실 왜곡, 과장, 침묵으로 숨기기, 경건한 포장, 책임 회피)
- 새사람의 “지식”은 내 삶의 해석을 어떻게 바꾸고 있습니까? (고난·성공·관계·미래)
- 공동체 안에서 진실을 말하기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할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 넘어졌을 때 내가 돌아갈 곳은 자기정죄입니까, 십자가입니까?
강해
본문은 두 가지 축으로 전개됩니다. 첫째, 윤리 명령(서로 거짓말하지 말라)은 단순 규범이 아니라 정체성 선언(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었음)의 결과입니다. 둘째, 새사람의 성격은 “하나님의 형상 회복”과 “지식에까지” 새로워짐으로 규정됩니다. 이는 성화가 외적 행위 교정에 그치지 않고, 내적 인식 체계(가치·해석·동기)가 복음 중심으로 재구조화되는 과정임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개인 경건과 공동체 윤리를 동시에 겨냥하며, 거짓이 공동체를 파괴하는 옛사람의 행위임을 드러냅니다.
주석
-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공동체적 금지입니다. 죄는 개인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관계망을 통해 확산됩니다. 거짓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신뢰 붕괴는 사랑의 실천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 “옛사람과 그 행위”: 옛사람은 아담 안에 속한 타락한 정체성, 그 행위는 그 정체성이 낳는 삶의 패턴(언어·관계·욕망의 습관)입니다.
- “새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된 새 인격(새 인류)에 속한 존재 방식입니다.
- “형상을 따라”: 창조 질서의 회복이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닮는 성화의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 “지식에까지 새롭게”: 인지적 차원의 갱신(마음의 틀, 세계관, 가치의 재정렬)까지 포함합니다. 성령의 사역은 정보 축적이 아니라, 복음으로 해석하는 능력의 회복을 지향합니다.
(헬라어-신약) 원어 주석
- “ψεύδεσθε”(pseúdesthe, 거짓말하다/속이다): 단회적 행위만이 아니라 지속적 습관을 포함할 수 있는 명령형 맥락에서 공동체 윤리를 지시합니다.
- “ἀπεκδυσάμενοι”(apekdysámenoi, 벗어버리다): ‘완전히 벗어 던지다’의 뉘앙스를 가질 수 있는 표현으로, 옛 정체성과의 단절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 “ἐνδυσάμενοι”(endysámenoi, 입다): ‘옷 입다’는 이미지로 새 정체성의 부여와 착용을 표현합니다.
- “ἀνακαινούμενον”(anakainoumenon, 새롭게 되다): 진행적 갱신의 뉘앙스를 담아, 이미-아직의 성화 과정을 시사합니다.
- “ἐπίγνωσιν”(epígnōsin, 지식): 단순 정보가 아니라 관계적·실천적 인식(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깊이를 포함합니다.
- “εἰκόνα”(eikóna, 형상): 창조의 형상 개념과 연관되며, 신약에서 그리스도론적 완성(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상 회복)으로 향합니다.
(히브리어-구약) 원어 연결 주석
본 구절 자체는 신약 헬라어 본문이지만, “형상”(εἰκών)은 창세기 1:26–27의 “צֶלֶם”(tselem, 형상)·“דְּמוּת”(demut, 모양/유사)을 신학적으로 연상시킵니다. 죄로 훼손된 형상의 회복은 단지 윤리적 선행의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께로 향하는 존재 방향의 회복입니다. 새사람의 갱신은 결국 창조 언약적 목적(하나님 영광의 반사체로 사는 삶)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금언
- “은혜는 죄를 덮을 뿐 아니라, 죄의 옷을 벗겨 새 옷을 입히십니다.”
- “거짓은 관계를 지키는 방패가 아니라, 공동체를 찢는 칼입니다.”
- “새사람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입니다.”
- “성화는 자기개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새 창조의 열매입니다.”
신학적 정리
- 칭의와 성화의 질서: 새사람의 삶은 ‘의로워지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의 열매’입니다(칭의가 토대, 성화가 열매).
- 그리스도와의 연합: 옛사람의 죽음과 새사람의 삶은 연합의 결과이며,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새 정체성을 부여받았습니다.
- 이미-아직: “입었다”는 결정적 사건이지만, “새롭게 됨”은 진행 과정입니다. 확정과 진행이 함께 존재합니다.
- 형상 회복의 그리스도론: 형상 회복은 윤리주의로 완성되지 않고, 참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닮는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주제별 정리
- 거짓 vs 진실: 진실은 단지 사실의 정확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과 공동체적 신뢰의 토대입니다.
- 정체성 vs 습관: 옛사람(정체성)과 옛 행위(습관)는 함께 벗어야 하며, 새사람(정체성)과 새 삶(실천)은 함께 자라야 합니다.
- 지식의 갱신: 말씀과 성령을 통해 세계관과 욕망이 재정렬될 때 행동도 지속적으로 바뀝니다.
목회적 정리
- 성도는 “왜 이렇게 아직도 죄가 있나”로 자기를 끝내지 말고, “죄를 미워하며 싸우는가”로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 공동체 안의 거짓(위선, 과장, 책임 회피, 침묵으로 숨김)은 교회의 건강을 급속히 무너뜨리므로, 회개와 진실한 대화의 문화를 세워야 합니다.
- 회개는 감정적 후회가 아니라, 죄의 경로를 끊고 다른 길로 가는 실제적 전환입니다.
성도들의 결단 및 적용
- 이번 주 한 가지 ‘거짓의 습관’을 특정하여, 그 뿌리(두려움/인정욕/회피/자기의)를 기록하고 기도로 드리겠습니다.
- “사실을 말하기”를 넘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기”를 매일 실천하겠습니다(기도 시간에 숨김 없이 고백).
- 말씀을 읽을 때 “내 생각의 틀을 바꾸는 한 문장”을 붙들고, 하루의 해석을 복음으로 다시 정렬하겠습니다.
- 공동체 안에서 신뢰를 세우는 말을 선택하겠습니다(과장·뒷말·모호한 포장 대신, 사랑 안의 진실).
- 넘어질 때 자기정죄로 숨지 않고, 십자가로 나아가 다시 새 옷을 입는 은혜를 구하겠습니다.
Full Source : Artificial Intelligence
'◑δεδομένα ◑ > mmxxvi.'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변화(요한일서 3:14). (0) | 2026.01.16 |
|---|---|
| 주님의 손에서 새로워지는 심령(에스겔 36:26). (0) | 2026.01.16 |
| 성령의 역사로 변화되는 인생 (고린도후서 3:18) (0) | 2026.01.16 |
| 복음이 일으키는 삶의 전환(골로새서 1:6). (0) | 2026.01.16 |
|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이루는 변화(로마서 12:2). (0) | 2026.0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