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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잠언 21장 7-15절)

by 【고동엽】 2022. 1. 1.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잠언 21장 7-15절)
< 정당하게 성공해야 합니다 >

며칠 전 김연아 선수 경기장면을 보았습니다. 김연아 선수가 홈 텃세의 불의한 판정으로 은메달에 머물렀습니다. 옛날에는 이런 상황을 보면 분노가 일었지만 이번에는 마음이 편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오히려 마음껏 비웃어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많은 세계인들이 손가락질을 했고 다수의 피겨 전문가들도 비난과 야유를 보냈습니다. 불의한 승리는 크게 보면 패배가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하나같이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소치 올림픽이 아니라 수치 내림픽이다. 소치는 소매치기의 준말이다. 러시아는 쓰레기 국가다.” 어떤 사람들은 저주까지 했습니다. “러시아를 영원히 저주할 거다. 러시아는 죗값을 치를 거다.” 우승한 어린 선수도 겉으로는 좋아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찜찜했겠습니까?

반면에 김연아 선수는 담담했습니다. 불의한 판정에도 미소로 넘기는 여유를 보였습니다. 등수는 아무 의미가 없고 마지막 고별 무대를 잘 치르고 즐기러 나온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얼마나 품격이 있습니까? 경기도 아름답게 했지만 경기 전과 경기 후의 모습도 아름다웠습니다. 불의하게 살면 승리해도 부끄럽고 추한 삶이 되고 정의롭게 살면 승리하지 못해도 떳떳하고 아름다운 삶이 됩니다.

요새 가장 많이 쓰는 유행어 중의 하나가 “당근이지!”란 말입니다. “당연하지!”란 뜻입니다. “당연하지!”란 말은 영어로 “Of course!”라고 하는데 원 뜻은 “제 코스 안에 속했다.”는 말입니다. 제 코스 안에 속해야 맘도 편하고 삶도 즐거워집니다. 문제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착하게 사는 사람이 잘 살아야 당연한데 못되게 사는 사람이 잘 살 때가 많습니다. 그처럼 당연함이 무너지면 삶이 황당해집니다.

해방 후 친일파들이 재빨리 변신해 자유당 정부의 요직을 독차지해서 그 후손들이 사회의 상층부를 이뤘습니다. 반면에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은 설 땅을 잃고 그 후손들은 가난을 대물림 받아 살고 있습니다. 당연하지 않은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법적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입찰에 나서도 은밀하게 뒷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계약을 따내고 밤새워 공부해도 장학금은 커닝하는 사람들이 받는다면 얼마나 불의하고 부당한 일입니까?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당하게 성공해서 행복할까요? 그런 성공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부당하게 얻는 성공과 이득은 결국 자신의 영혼을 묶습니다. 떳떳함이 없으면 자유도 없습니다. 불의하게 성공하면 결국 하나님이 손을 보심으로 의를 이뤄내십니다. 그러므로 부당한 모습에 질렸다고 의의 길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보상이 없고 부당한 피해를 입어도 의의 최종승리를 믿고 정당하게 성공하고 정당하게 승리하려고 해야 합니다.

<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영혼이 떳떳하지 않으면 아무리 성공해도 인생이 즐겁지 않습니다. 영혼의 자유를 누리고 인생을 즐겁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정의롭게 행하십시오

힘과 폭력을 앞세워 정의를 외면하는 악인은 결국 소멸됩니다(7절). 그러므로 늘 정의롭게 살려고 해야 합니다. 요새는 정의를 사회적인 정의의 측면로만 지나치게 부각시킵니다. 그러나 참된 정의는 먼저 자기를 깨끗하게 가꾸려는 것입니다. 불의한 자의 길은 구부러지지만 깨끗하고 정의로운 자의 길은 곧게 됩니다(8절). 결국 불의한 죄인은 패망하지만 정의를 행하는 의인은 즐거운 인생이 펼쳐집니다(15절).

불의는 분노를 부릅니다. 특히 강자의 불의는 더욱 대중의 분노를 부릅니다. 그래서 불의한 힘은 언젠가 무섭게 무너집니다. 교회도 너무 힘과 화려함을 추구하지 말고 건축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큰 건물을 채우려면 얼마나 많은 무리수를 둬야 합니까? 그래서 계산적인 교회성장 이론과 세미나가 창궐하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초대형 교회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 한국 사람들의 성격상 무섭게 돌아설 때가 옵니다. 그래서 힘이 있을 때 더 나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결국 정의와 불의를 이렇게도 정의할 수 있습니다. 즉 “정의는 힘을 나누려는 것이고 불의는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면 단기간의 승리는 얻는 것 같아도 언젠가 고난의 밀물이 무섭게 들이닥치면 참담하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역전패 혹은 최후의 패배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부산외대 사건을 보십시오. 일부 사람들이 너무 눈이 많이 와서 행사를 취소하자고 하니까 대학 책임자가 “뭘 그런 일로 마음 약하게 포기하느냐?”고 하면서 행사를 밀어붙였습니다. 그런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밀어붙여서 일을 성취한 경험도 많았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밀어붙이다가 한번 사고가 나면 그때는 대형 참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대체로 좋은 사고방식이지만 요즘은 앞뒤를 살피고 배려하는 사고방식이 더 요구되는 때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기 긍정은 괜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내세우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자기 권력욕 성취를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는 이데올로기로 오용될 가능성도 큽니다. 그래서 참된 리더는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동시에 남을 배려하는 사고방식도 갖춰야 합니다. 조금 늦게 되더라도 기다려주면서 밀어붙여야 할 때도 무조건 밀어붙이지 말고 지혜롭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그처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참된 정의를 가진 사람이 결국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을 얻습니다.

2. 마음을 곱게 쓰십시오

본문 9-10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좋은 집보다 좋은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특히 남의 재앙을 고소하게 생각하는 악한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에 김연아 선수 응원할 때 다른 선수는 한번 넘어졌으면 하는 솔직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으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인생 전체를 그런 마음으로 살면 안 됩니다.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는 안 될 때가 많지만 ‘마음 상태대로’는 펼쳐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복된 인생이 되려면 마음을 곱게 써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60세 된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들어가면 건강의 복이 임한다는 베데스다 연못가를 수시로 찾으면서 복을 노렸습니다. 어느 날 새벽에 산책을 나왔는데 물이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까 연못가 주변에서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다 잠자던 병자들 중에는 아무도 그 장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신나서 즉시 연못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말했습니다. “노인! 소원을 말해보시오.”

그 노인은 인생 최대의 복의 기회를 맞아서 머리를 급히 굴렸습니다. 그런데 같이 사는 아내가 동갑인데 나이가 들어서 아주 젊은 여성과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천사님! 저보다 30살 적은 여성과 살게 해주세요.” 그 소원을 듣고 천사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곧 그 60세 노인이 90세 노인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마음을 나쁘게 쓰면 나쁜 일이 생기고 마음을 곱게 쓰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좋은 믿음은 좋은 마음을 낳고 결국 좋은 인생을 낳습니다.

3. 교훈을 잘 받으십시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하리라.” 이 구절은 몇 가지 복선적인 메시지가 담긴 잠언입니다. 첫째, 거만하면 결국 벌을 받고 패망한다는 메시지입니다. 둘째, 참된 지혜는 교훈을 잘 받는 것이란 메시지입니다. 셋째, 참된 지식은 삶의 경험을 통해 얻어낸 교훈이란 메시지입니다. 그처럼 삶의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낼 줄 알고 특별히 말씀을 잘 받을 줄 알면 지혜와 지식이 넘치게 되면서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능력도 커집니다.

성도는 삶의 교훈과 말씀을 잘 받아 선하게 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단점이 있고 스스로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에 계속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바르고 합당한 충고와 지적이란 전제 하에 충고와 지적을 잘 받고 소화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합당한 충고와 지적을 듣고 화를 내거나 부당한 합리화나 변명에 급급하면 성숙해질 수 없고 인생의 시련도 그만큼 많아집니다.

평소에 사랑과 애정이 많고 위로도 잘하는 사람이 어렵게 쓴 소리를 해주면 감사하게 받으십시오. 위로를 잘하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 쓴 소리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기 성품과는 맞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애정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하고 정확히 상황을 파악한 상태에서 때를 잘 맞춰서 지혜롭고 예의 바르게 쓴 소리를 하면 고마워하면서 자신을 변화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평안을 얻고 인간관계에서도 화평을 이루는 능력이 커지면서 점차 기쁘고 즐거운 인생이 펼쳐집니다.

4. 약자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악인의 집을 자세히 보시며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십니다(12절). 또한 귀를 막고 가난한 자가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에 사람도 그 소리를 듣지 않고 하나님도 듣지 않으십니다(13절). 그러므로 기도 응답을 원하면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서 “기도해 달라! 안수해 달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 간절히 기도하면서 동시에 약자를 찾아서 그의 소리를 들어주고 그를 살펴주려고 해야 합니다.

성도는 개인적인 복만 추구하면 안 됩니다. 자기만 즐거우면 참된 즐거움이 되지 못합니다. 우연히 금메달을 따거나 불의하게 금메달을 따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우습게보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집회에 가서 로또가 맞아서 복을 받았다는 식의 간증은 듣지 마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은 그런 간증을 듣고 같은 기복주의자가 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간증을 들으면 비웃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능력 이상의 은혜로 기적 같은 축복과 성공을 주시면 그때는 더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때는 두 손 흔들고 시상대에서 뽐내지 말고 행동과 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의 승리가 남의 아픔을 전제로 주어진 부당한 승리라면 더 겸손해야 합니다. 승리했을 때 겸손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진짜 승리자입니다.

성도는 강자가 독식하는 사회가 아닌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를 만드는 초석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 울고 있으면 마음 아프게 여기며 누구를 비판하기보다는 먼저 나눔의 삶을 새롭고 굳게 다짐해야 합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야 나도 행복해지고 남을 즐겁게 해야 나도 즐거워집니다. 약자에게 힘을 주려고 시간과 물질을 쓰면 신기하게도 자기 내면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살면서 성공도 하고 힘도 기르십시오. 그리고 그 성공과 힘을 약자들을 살피는데 사용하려는 영혼의 강자가 되십시오. 그때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도 넘치게 될 것입니다.

5. 은밀하게 선물을 줄 때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이 구절에서 뇌물로 번역된 히브리어 ‘쇼하드’는 선물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높은 사람에게 주는 선물은 마치 뇌물처럼 보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드리면 그것은 뇌물이 아닌 선물입니다. 그처럼 선물을 줄 때는 광고하고 계산하며 주지 말고 은밀하고 순수하게 주려고 해야 합니다. 계산이 없는 은밀한 선물은 하나님의 진노와 사람의 분노를 그치게 하는 최상의 덕 중의 하나입니다.

가끔 온라인 새벽기도 성도 중에 저의 개인 형편까지 살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학기 되었을 때, 이사할 때, 생일 때, 명절 때 살펴주는 행동을 합니다. 심지어는 결혼기념일까지 살펴주어서 그분들을 통해 “오늘이 결혼기념일이었구나!”하는 것을 알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지 그 사려 깊음에 깜짝 놀랍니다.

얼마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한 온라인 새벽기도 회원이 다른 일로 전화했다가 물었습니다. “은혜와 한나는 잘 있나요?” 제가 물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의 두 딸 이름을 아나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저의 글 중에 언급된 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속 저희 가족들을 위해 이름까지 불러가며 기도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사려 깊음은 천성이기도 하지만 배움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는 기를 수 있습니다.

일전에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평신도라면 그렇게 사려 깊게 헌신할 수 있을까요? 잘 못했을 것 같아요.” 그때 아내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런 매너는 없잖아요?” 저는 이제까지 아내의 생일, 결혼기념일, 화이트데이 등에 꽃 하나, 케이크 하나 사준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매너 없는 남편입니까? 아내가 저의 중심과 진실을 다른 면을 통해 확신하니까 불평이 없는 것이지 사실 불평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믿음’과 ‘매너’는 다른 차원인 것 같습니다. 또한 ‘잘 나누는 것’과 ‘사려 깊게 챙겨주는 것’도 다른 차원인 것 같습니다. 성도는 ‘잘 나누고 선교하는 마인드’도 갖춰야 하지만 ‘사려 깊게 챙겨주는 매너’도 갖춰야 합니다. 고맙고 감사한 사람과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필요를 그가 얘기하기 전에 미리 파악하고 소리 없이 은밀하게 채워주는 마음과 매너를 가진다면 그 관계가 얼마나 진실해지고 깊어지겠습니까?

왜 부부가 다 믿음이 좋은데 둘 사이에 균열이 생깁니까? 그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매너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남성은 자신은 무뚝뚝해서 마음과는 달리 가끔 매너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면서 어떻게 매너를 길러야 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매너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소리 없이 은밀하게 챙겨주는 것’이 매너입니다. 생일 등에 장미꽃 한 아름 안겨주는 겉 매너는 없어도 소리 없이 책임감을 가지고 잘 챙겨주면 최고의 매너남이 될 수 있습니다.

< 은밀하게 선을 행하십시오 >

은밀하게 선행을 하고 은밀하게 나눠주십시오. 부유한 형제가 고생하는 형제를 도와주면 누가 제일 좋아합니까? 부모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고생하는 자녀에게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최고의 효도 중의 하나가 어려운 형제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처럼 최고의 천국 봉사 중의 하나도 나누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복은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쓰고 잘 나누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어려운 사람에게 직접 주시지 않고 우리의 나눔을 통해 주실 때가 많습니까? 그러면서 우리도 복 받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결국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과 어려운 이웃의 것을 도적질하는 셈이 됩니다. 왜 최선을 다해 인물이 되어야 합니까?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뜻과 선교비전을 멋지게 이뤄내는 비전동역자가 되기 위해서이고 또한 세상을 살피고 어려운 사람을 은밀하게 도우라고 보낸 암행어사 성도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오래 전에 한 목회자가 길에서 노숙자와 행려병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좋은 뜻이 알려져 큰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 공동체에서 돌보던 한 돌아가신 목회자의 사모가 병들어 근처의 가톨릭교회 무료병원으로 보냈습니다. 그 병원에서는 병자가 사모인 것을 알고 진료를 거부하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면서 그 목사님에게 아픈 말을 했습니다. “평생을 목회한 목사님의 사모님을 모실 곳이 개신교에는 한 곳도 없나요?”

개신교에는 그토록 많은 교인이 있고 곳곳에 수백억짜리 예배당이 즐비한데 어려운 이웃과 행려병자들을 위한 무료숙소와 무료병원이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까워서 그분이 무료병원 설립을 위한 천사의 집 모금운동을 했습니다. 백만 원씩 헌금하는 회원 1004명을 모아 병원을 세우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점점 기독교계의 스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 운동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후원자 모집에 시간도 들고 일의 진척도 늦어지고 몇 년간 떠들썩하게 판을 벌이는 모금운동을 통해 맺는 열매는 인물 성도 한 사람이 뜻을 품고 조용히 헌신할 때 맺는 열매보다 내용이 부실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떠들썩하게 판을 벌이는 다수의 공동모금 운동이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판을 벌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크게 알려진 것에 비해서는 열매가 부실한 경우가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들을 지켜볼 때마다 한 사람의 인물 성도가 정말 그리워집니다.

물론 한 사람이 20억을 드려서 무료병원을 세우는 것보다 백만 원씩 내는 2004명의 후원자를 통해 20억을 마련해 무료병원을 세우는 것이 더 좋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런 의견은 크게 헌신한 한 사람에게 힘이 집중되는 부작용을 염려해서 생기는 의견입니다. 그러나 크게 헌신한 인물이 은밀하게 헌신하고 그 헌신을 깨끗이 잊어버릴 줄 아는 진짜 인물이라면 얼마나 깔끔하고 신속하고 알차고 아름답고 멋지게 선한 일이 이뤄지겠습니까? 진짜 인물 한 명이 순수하게 헌신하면 훨씬 더 문제점이 없이 신속하게 큰일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힘은 의외로 큽니다. 기독교계를 대표하는 인물 한 명이 무너지면 한국 교회 전체가 와장창 무너지는 폭탄을 맞습니다. 반면에 인물 성도 한 명 때문에 한국 교회가 다시 멋지게 일어설 수도 있습니다. 류현진 선수 한 사람이 다저스 투수로 있으니까 한국사람 대부분이 다저스 팀을 응원합니다. 히딩크 감독 한 명이 한국 축구팀 감독으로 있으니까 네덜란드 전 국민들이 한국 축구를 응원합니다. 그처럼 한 사람의 인물이 은밀하게 선행을 하면 거기서 얼마나 큰 힘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매주 약 천만 명이 대박을 노리며 로또를 삽니다. 1등에 당첨되면 약 10억 원 정도를 받습니다. 반면에 추신수 선수는 매년 6개월만 활약해도 약 200억 원이 통장에 자동으로 입금됩니다. 기약 없는 당첨을 바라고 로또를 사는 기복적인 허무한 인생과 7년 동안 시즌 중에 매주 로또를 맞는 것과 같은 상황을 땀으로 만들어낸 알찬 인생을 비교해 보십시오. 그런 사례를 볼 때마다 기복주의를 추구하지 말고 인물의 꿈을 가져야 한다는 도전을 받습니다. 그 인물이 조용히 헌신하는 인물이라면 얼마나 복된 역사가 그를 통해 펼쳐지겠습니까?

왜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때가 많습니까? 조용히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자연의 모습에 자기 마음도 부드럽게 녹아지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이 있다고 너무 흥분할 필요도 없고 나쁜 일이 있다고 너무 울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감정도 절제하고 나쁜 감정도 절제하십시오. 그리고 소리 없이 맡은 일을 해내면서 모든 상처를 치유하는 신비한 자연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물이 되어 은밀하게 어디선가 회복의 역사를 이뤄내는 초석이 된다면 그처럼 즐거운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은밀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세상의 칭찬과 보상이 없으면 더 기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이 더 기억해주시고 더 칭찬해주시고 더 큰 보상을 예비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천국 상급을 바라보며 은밀한 선행을 하나님만 알게 하시고 필요하다면 조용히 소수만 알게 하십시오. 은밀한 선행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가며 영적인 저축 계좌를 늘리는 것과 같습니다. 항상 정의롭게 행하고, 마음을 곱게 쓰고, 교훈을 잘 받고, 약자의 소리를 잘 듣고, 은밀하게 선물을 주는 삶을 통해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가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주일설교(140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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