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사랑의 초대*이재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30.
 
처음 목록가기
 

☞예수가좋다오

사랑의 초대*
글/이재철 목사
덕수궁 정문 오른쪽 보도 위에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으레 서각에 열중하고 있는 조규현 님
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서각'(書엇1)이란 나무판에 조각도로 글자를 양각 록은 음각으로 새기
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업에 골올하고 있는 조규현 님 뒤쪽 덕수궁 돌당에는 그의 서각 작품들이
수십 점이나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작품마다 끝부분에 '무우수인'(無右手A), 즉 '오른손이
없는 사람'이란 글자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서각예술가인 그에게는 오른손이 없습니다.
조규현 님이 44년 전인 1970년 4월 9일 방 9A| 30분. 서을 신림동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손을 영영 잃을 때, 그의 나이 겨우 열 살이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불구가 되었으니 십대
와 이십대를 거치면서, 그가 겪지 않을 수 없었던 좌절과 번민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가장 중요
한 오른손을 잃은 만큼, 그 보상심리로 자기집착은 또 얼마나 강했겠습니까?
그러던 중 그의 나이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나중에 그의 사부가 된 서각예술가 고암(孤岩)선생
을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일대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고암 선생이 조각도로 나무판에 글자를 새
기는 것을 본 그는, 서각이야말로 자기 생을 던질 자신의 천직임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는 손이
없는 오른쪽 팔뚝에 압박붕대로 조그만 망치를 묶은 두卜 왼손에 쥐어져 있는 조각도를 오른팔에
묶인 망지로 쳐서 글자를 새기는 방식으로, 사부로부터 서각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그리고 21년 전부터 덕수궁 앞에서, 자신의 달란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섬기는 마음으로 서각
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비록 오른손이 없지만, 보도 위에 설치된 작업대 앞에서 오른팔에 묶
인 망지로 왼손의 조각도를 치면서, 서각에 올입하는 그의 얼굴은 조금도 어둡지 않습니다. 언제
보아도, 보는 이가 부러울 정도로 맑고 밝습니다.
지나가던 아이들이 '무우수인’의 작업 모습을 보고, 호기심에 이것저것 물어도 그는 전혀 귀찮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던 작업을 멈추고 시범까지 보여 주면서,아이들이 질문을 그만 할 때
까지 친절하게 대답해 줍니다. 그는 그리 키가 큰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일거수일투족
은, 웰 실버스타인의 책 제목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 주는 거목을 연상
케 합니다.
그가 서각한 작품 중에 '봉헌'이란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긴 길은 자기를 먼 곳에다 바치고 장미꽃은 사랑에다 자기를 바치는데 나는 무엇을 가지고 당신
에게 바칠까 내 사랑하는 사람아 흰 구름은 새벽을 위하여 바치고 강물도 바다에게 자기를 바치
는데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바칠까 내 사랑하는 친구야 나는 너에게 무엇을 바칠까 끊임없이 정
지하지 않고 나는 묻는다 끊임없이 정지하지 않고 나는 찾는다 정지하지 않고 생각한다 흰 비둘
기 창공에 아름다움을 더하고 별빛은 기나긴 여름밤을 비줘주는데 나는 너에게 무엇을 바칠까
내 사랑하는 아이야 비는 대지를 적서주고 세월은 계절에게 바치는데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바
칠까 내 사랑하는 부모여 - 봉헌。김재경 시인
항상 자신을 내어 주기 위해 존재하는 자연고卜 그 자연과는 달리 무엇 하나 남을 위해 선뜻 내어
놓지 못한 인간을 대조하여 보여주는 이 시는, 우리로 하여금 두고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
다. 덕수궁 돌담에 전시되어 있는 조규현 님의 많은 서각 작풍들 가운데, 유독 '봉헌’이란 제목의
이 시가 제 마음에 와 달은 것은, 울론 그 내용도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이 시를
서각한 '무우수인•인 그의 모습 자체가 마치 대자연의 봉헌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어느 것 하나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하늘의 해와 달도, 시냇물
도, 심산계곡의 이름 모를 꽃도, 모두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줍니다.
사과와 감 같은 과실수가 1년 내내 수고하며 열매를 맺는 것도, 자신이 먹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
가에게 남김없이 나누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짐승과 곤중의 세계에도 먹이사슬이라는 게 있어,
서로 먹이가 되어 줍니다. 그래서 자연은 언제나 그 자체로 하나의 크나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도 창조하셨습니 다. 인간 역시 본래는 자연저럼,이타적 존재
로 창조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사지백체(2매支百體: 몽 전제)를 보십시오. 인간
육체의 어떤 기관도,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은 없습니다. 오른손은 오른손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른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오른손은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왼손이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왼손의 문제는 오른손이 처리해 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손은 그 음식을 전혀 맛볼 수 없습니다. 단지 음식을 입으로
운반해 줄 뿐입니다. 입은 자신을 위해 음식을 씹는 것이 아니라 위장으로 내려보내기 위해서요、
위장은 그 음식의 영양분을 몽땅 온 몸에 나누어 주기 위해 밤낮없이 수고합니다. 이렇듯 인간의
사지백체는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모두 이타심의 결정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어
기 우
그러나 불행하게도,이 아름다운 사지백제의 주인인 인간은 남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지 않습니
다. 내어 주기는커녕 밑 빠진 독저럼, 결코 재워질 수 없는 자신의 욕망을 재우기 위해 도리어 많
은 사람들을 해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습니까? 인간 육체의 각 기관은 자
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대자연저럼 이타심의 결정체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육체의 주인인 인
간은 왜 추악한 이기심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죄성으로 인함입니다.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의 본성이 자신의 아름다운 육체를
그릇된 욕망의 도구로 전락시켜 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죄성을 다른 용어로 표현하면 자기집착
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 죄를 범했습니다.
피조을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창조주의 법을 무시한 것은 자기집착으로 인함이었습니다. 자기집
착은, 이 세상에서 자기보다 더 큰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성과 자기집착은 구별되지 않습니다. 죄 역시, 피조물이 창조주보다 자신을 더
크게 여기는 교만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은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집착하지 않기에 항
상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놀을 수 있고、누구에게든 자신을 주기에 언제나 청정한 생명일 수 있습
니다. 그러나 인간은 집작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무엇엔가 늘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습
니다. 무서운 것은,인간이 무엇에 집착하든 그 집착이 실은, 거기에 마음을 쏟고 있는 자기 자신
에 대한 집착이라는 것입니다.
돈에 집착하든, 권력에 집착하든, 집착의 대상은 인간 외부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돈이나 권
력을 절대시하는 자신에 대한 자기 집착입니다. 모든 인간의 집착은 예외 없이 자기집착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집착이 무섭습니다. 인간의 자기집착이란 결국 자기욕망에 대한 집착이기에, 자
기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타인에겐 통기로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가 삭막하다 못해 갈수록 험악해지는 것은,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
는 우리 모두가 저마다 자기집착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해 누군가에게 자신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혹은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는 그 무엇을 이용하여, 자기목
망을 재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gp是空空gp是色)이란 말이 있습니
다.

2002년 12월에 개붕되었던 임창정, 하지원 주연의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색즉시공'은, 당시 포스
터와 광고에 등장했던 문구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풍기문란 섹시 코미디" "섹스 어드벤저" "
신이 섹스에 관해 알고 싶은 모든 것” "애콜은 가라, 두사부사단이 돌아왔다. 이번엔 색이다" 마
지막 문구에 "두사부사단이 돌아왔다"는 표현이 둥장한 것은, 영화 '색즉시공'의 감독이 그 전해
의 히트 영화 '두사부일체'의 윤제균 감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 영화해설가는, 영화 '색즉시공'을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대학생 젊은이들의
성과 사랑을 주제로, 국내에 본격적으로 화장실유머를 선보이는 섹스 코미디" 화장실유머란 일
반적으로 성적 유머 중에서도, 저질스러운 성적 유머를 의미하는 요즈음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을
종학하여 보면,영화 '색즉시공’은, 섹스에 집착하는 대학생들을 소재로 상은, 그리 풍격을 갖준
영화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왜 이런 영화에 '색즉시공'이란 제목을 붙였는지, 우리는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색즉시공'의 색(色)을 섹스의 의미로 사용하여, '색'은 즉시 '빌 공(空)' 즉 해소해야 한다는 암시
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생 대부분이 정말 섹스에 대한 집착 속에서 살고 있기 때
문인지, 아니면 그렇게 하라고 기성세대가 무책임하게 부추기기 위함인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
습니다만, 여하튼 이 영화는 2003년 초까지 상영이 이어지면서 전국적으로 42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t卜으
영화 •색즉시공'의 흥행 성공은 이듬해 2004년 다른 영화사의 '공즉시색'제작 발표로 이어졌습니
다. 조혜정 씨의 인터넷소설 •난 악녀로 남을 수밖에 없다|를 신동엽 감독에 이효리 주연의 영화
로 기획하면서,제목을 '공즉시색'으로 바꾼 것입니다. 당시 이 영화에 대한 제작사의 설명은 다
옹과 같습니 다.
"악녀일 수밖에 없었던 신세대 여대생이,3년 연하의 남자와 운명적인 동거를 통해 진실한 사랑
을 찾는 로맨틱 섹시 코미디." "남성들의 성당론인 '색즉시공'의 속편 격으로 기획된 작풍으로,
여대생들의 성에 대한 담론을 영상화한 영화." 결국 "공즉시색' 역시 섹스에 집착하고 잇는 영화
임을 알게 됩니다. 기획자 스스로도 영화를 '색즉시공'의 속편 격이라 밝혔다는 것은, "공즉시
색’이란 제목이 영화 '색즉시공'의 역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짐작케 해 줍니다. 발표대로라면 •공즉
시색’은 2005년 초에 벌써 개붕되었어야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입니다.
영화전문가에게 알아보았더니 여러가지 사정으로 제작이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공즉시색'을 기
획했던 영화사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색즉시공'과 '공즉
시색•은 섹스 코미디 영화 제목이나 화장실 유머의 소재로 이용되기에는 그 뜻이 너무나도 심오
하고, 더욱이 무엇에 대한 집착의 의미로는 결코 오용될 수 없는 정반대 의미의 용어이기 때문입
니다.
•본래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불교의 정수를 담고 있는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색즉시공
의 '색'(色)은 한자로 '빛’을 가리키지만, 여기에서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의미합니
다. 따라서 '색즉시공’을 알아듣기 쉽게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실은'공'(空》, 즉 '없는 것’이요 '헛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요즈음 서울에서는 보기 어럽습니다만.
아직도 서울을 벗어나면 비가 그친 뒤 간혹 무지개를 블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지개를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무지개가 하늘에 분명히 걸러 있기 때문입니
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무지개를 그 누구도 없다고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지개
가 실체를 지닌 것은 아님니다. 무지개란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들에 햇빛이 굴절 반사되어 일어
나는 일시적인 빛의 현상일 뿐입니다. 분명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없는 것이요, 헛것
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길어야 팔구십 년인 인간 수명이 대단한 것
같지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무지개저럼 없는 것과 갑고, 헛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자 그대로 •색즉시공'입니다. 그러므로 •색즉시공’의 교훈은, 이 세상의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열홀 붉은 꽂이 없고,공동묘지 앞에 왕후장상의 구별이 없
는 판에 대체 무엇에 대한 무슨 집착이 의미를 지닐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인간은 모두 무엇
엔가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普행과 비극의 시발점은 따지고 보면 모두 인간의 자기집착
입니다. 인생이 '색즉시공'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공즉시색'은 한마디로. ’없는 것은 곧 있는 것'이란 뜻입니다. 항상 '색즉시공’과 병행하여
사용되는 '공즉시색'의 교훈을 쉽게 표현하면, ’자기집착'에서 벗어나면 없는 것 같고 헛것 같은
이 세상이 새로운 의미의 실체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에게 집착하는 한 그 집착은
인간의 생영을 갉아먹습니다. 마치 쇠에서 나온 녹이 쇠를 갉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스스로 자기
생명을 갉아먹는 삶이야알로 결국은 '헛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ᄉ、ᄉ、S
그러나 자기집착에서 벗어나면, 그때부터 인간은 이 우주의 일원으로서 온 우주만물에 보템이
되는 전더 새로운 차원의 삶율 살게 됩니다. 자기집착에서 벗어난 인간이 비로소 자신의 사지백
제률 본래의 의미대로, 다시 맡해 이타심의 결정제로 사용하게 %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우리의 마음속에 김이 새겨야 할, 금언(金言: 삶에 본보기가 될 만한 귀중
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짤막한 어구)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
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
어지는 안개니라! - 성경 야고보서 4장 13〜14절 말씀
성경은 인생을 안개라 했습니다. 안개란 있는 것 같지만, 무지개처럼 실체가 없습니다. 해만 떠
오르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인생이 그와 같습니다.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
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 성경 시편 144편 4절 말씀
그림자란 실상이 아니라 헛것, 다시 말해 허상입니다. 영원 앞에서 인생이란 그야말로 헛것이요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와 갑이 성경 역시 인생이 '색즉시공'임율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그
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부인율 요구하십니다. 자기부인이란, 젖소부인이 아니라 자기집
착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헛것에 지나지 않는 자기에게 집착하는 것은,그야말로 자신의 인
생 자체를 헛것으로 날려 버리는 정신 없는 짓일 따름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자기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속세를 버리고 심산계곡에 둥지
를 튼다고 해서 자기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용은 비록 첩첩산중에 거하고 있다
해도 그 마옹이 여전히 세상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는 실은 속세 한 가운데 앉아 있는 것과 같습
니다. 굳게 결심하고 온갖 고행을 다한다고 자기집착을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자기집착이란 인간의 죄성이기 때문입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회복되지 않습니다.
한국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본질적으로 백인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죄성은 십자
가에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죽음의 죄 값을 대신 지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씻어지고 회복됩
니다. 바꾸어 말해 우리를 위해 죄의 사실율 끊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기집착의 권에
에서 비로소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음과 갑이 말씀하시는 까닭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율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성경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안개처럼, 그링자처렁, 헛것에 지나지 않던 인생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
조울로, 새것으로, 전혀 새로운 존재로 승화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색즉시공'이 '공즉시
색'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단계에서 인간은 자기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존재자체가 새로워진 인간에게는, 더 이상 집착해야 할 이기적
인 옛 자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회복된 인간욘 그때부터 대자연처럼, 누군가를 위해 자
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게 됩니다. 그것이 생명의 득성입니다. 참된 생명은 항상 누군가를 향해
들러가게 마련입니다. 고이거나 멈추기률 원하는 생명이 더 이상 생명일 수 없는 것은, 생명은
멈추거나 고이는 순간부터 이내 썩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공즉시
색I율 얻은 자는. 비록 주머니는 비어 있어도 남에게 줄 것은 항상 넘져나게 됩니다. 이타심의 결
정체로 이루어저 있는 그의 사지백제가 원래의 기능움 회복한 탓도 있지만,생명은 마지 용달샘
과 같아 퍼내면 퍼낼수톡 더욱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폐병으로 고통받던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그 끝에 발병한 척추 카리에스로, 무려 13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가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곤 밤낮 병상에 누워 있는 것뿐
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자기에게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환자가 자기에게 집착하면, 그로 인
해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랑들이 힘든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집착의 멍에콜
벗어 던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미우라 아야꼬는, 비록 육체는 중병에 시달릴망정, 자신에겐 다
른 사람둘에게 줄 것이 많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병실을 드나드는 간호사와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었고, 같은 병실의 한자들을 위
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전신을 웅직이기 힘들어 엽서 한 장 쓰는 데 사틀씩이나 걸렸지만, 그녀
는 삶에 지친 지인둘에게 격려의 엽서률 계속 써 보내었습니다. 많은 사람둘은 그녀에게 감동율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콜이 그녀의 병실율 직접 찾아오거나 편지로 인생 상담율 요
청하기까지 했습니다.
퇴원 후 온갖 질병에 계속 시달리는 중에도,그녀는 소설가가 되어 많은 사람의 병론에 생명의
빛을 던져 주었습니다. 일평생 병약한 환자로 살았지만, 건강한 사랑보다 남에게 나누어 줄 것은
더 많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공즉시색',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녀에게는 언제나 참 생
명이 넘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95년 한국을 방문했던 일본의 다하라 요네꼬 여사는 젊은 시
절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소유에 대해 한번도 만족해 본 적이 없었습니
다. 오히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와 같은 그녀의 심중에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이 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마침내 자기집착과
자기정망을 이기지 못한 젊은 요네꼬는 당려오는 전차에 뛰어콜어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자살은
미수에 그쳤고,그 걸과는 너무나도 참담했습니다. 두 다리와 왼팔은 아예 떨어지 나가 버렸고,
그나마 하나 남은 오른손도 손가락이 두 개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두 다리와 두 팔, 10개의 받
가락과 10개의 손가락 중에 남은 것이라고는 오른팔에 불어 있는 손가락 세 개뿐이었습니다.
일평한 사지률 갖고서도 자살율 시도합 정도였다면, 손가락 세개밖에 남지 않은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는 수단과 방법율 가리지 않고 죽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후 요네꼬 여사는
전혀 새로운 인생율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공즉시색', 새로운 피조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피조울이 되어 자기집착에서 벗어난 그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어느 날 세 개의 손가락밖에 붙어 있지 않은 오른손을 내려다보던 중, 자신에게 손가락이 무려
세 개나 남아 있다는 감격적인 깨달움이었습니다. 없는 것에만 집착하던 그녀가 자기에게 있는
것의 소중함을, 자신에게도 줄 것이 있움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녀는 그 세 개의 손가락으로 글
을 쓰기 시작했고, 그 책의 제목을 '산다는 것이 황를하다’고 불였습니다. 어떻게 두 다리가 없고,
한 팔이 없으며, 받가락 열 개와 손가락이 잎곱 개나 없는 그녀의 삶이, 황흘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때, 손가락 세 개만으
로도 이 세상을 향해 줄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덕수궁 앞의 서각예술가 조규현 님에
게 제가 율었습니다. "사부님으로부터 귀한 서각 기슬율 전수받았다 해도 몸은 여전히 블편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육제의 장애률 극복하고 모든 사람율 그토록 지성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
지나가던 아이물의 연이은 질문에도 거리낌 없이 자신율 내어 줄 수 있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요?"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면서도 강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귀한 달란트콜 주셨
는데, 왜 내가 다른 사랑에게 나를 주지 못하겠습니까? 다른 사랑에게 나콜 줄 수 있는데. 육체의
장애가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는 자기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나 '공즉시색|을 이룬 위대한
거인이었습니다.
긴 길은 자기를 먼 곳에다 바치고 장미꽃은 사랑에다 자기를 바치는데 나는 무엇을 가지고 당신
에게 바칠까 내 사랑하는 사람아 흰 구름은 새벽을 위하여 바치고 강물도 바다에게 자기를 바치
는데 나는 당신에게 무엇을 바칠까 내 사랑하는 친구야 나는 너에게 무엇을 바칠까 끊임없이 정
지하지 않고 나는 묻는다 끊임없이 정지하지 않고 나는 찾는다 정지하지 않고 생각한다 흰 비둘
기 창공에 아롬다움을 더하고 별빛은 기나긴 여롬밤을 비춰주는데 나는 너에게 무엇을 바칠까
내 사랑하는 아이야 비는 대지를 적서주고 세업은 계절에게 바치는데 나는 당신에게 무엇율 바
집까 내 사랑하는 부모여 - 봉헌-김재경 시인
날려
、| 오.
사랑하는 님! 없는 것으로 인해 절망하지 마십시오. 헛것 갈은 자기에게 집착하느라 단 한 번뿐
인 인생율 율거품처럼 날려 버리는 어리석음율 범치도 마십시오. 이 세상과 인생율 창조하신 하
나님의 법칙을 종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한 구원자로 이 땅에 보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그분 안에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이루십시오. 그분 안에서 자기집착을 벗어
던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십시오.
乂、C
그때부터 졸은님의 주머니에 든 것이 없어도, 졸은님의 육체에 장애가 있어도, 졸은님이 하루 종
일 병상에 누워 있어도, 좋은님에게는 이 세상에 나누어 즐 것이 무궁무진할 것이요, 예수 그리
안에서 좋은님의 삶은 대자연의 봉헌처럼 황■하기 그지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인생은 허
상에 지나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천지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실상이시기 때
문입니다. -발취: 이재철 목사님의 저서 '사랑의 초대'中-®.
예수가종a오
글클 보시고 스크랩 하시기 전에 그냥 가지 마시고 엇글로 따芸한소갑으로 갑사좋 표하는 그리스도인미 ■시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댓글